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내버려둘 수 없는 아이』

댓글: 3 / 조회: 714 / 추천: 4


관련링크


본문 - 10-12, 2016 00:44에 작성됨.

"있지, 있지, 누나는 뭐하는 사람?"

 

본 적 없는 얼굴인데. 이사오기라도 한 거야? 이 근처 살아? 앗 하는 사이에 우수수 쏟아지는 질문들이, 아직 혼란한 머릿 속을 더더욱 엉망으로 만들었다. 슬슬 해가 질 무렵, 조금 쌀쌀해진 날씨 탓에 온기를 잃은 이 손을 새롭게 감싸쥐는 작은 따뜻함. 거기에 정신이 약간 든 나는, 작게 입을 열었다.

 

"일단은, 아이돌, 이야."

"에, 진짜?"

"으, 응."

 

어디까지나 사실을 말하는 건데도, 묘하게 마음이 무겁다. 그것은 아직도 무명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스스로도 명확히 알 수 없는 가운데, 그 아이의 눈이 무언가의 기대로 반짝반짝 빛났다.

 

"우와, 대단해! 나 아이돌을 직접 본 건 처음이야!"

"그러니."

 

같이 걸어가는 도중에도 붕붕, 격하게 흔들리는 오른팔. 이 세상에 다시 없을 진귀한 무언가를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정말 순수하게 기뻐하는 소년. 그 모습에, 마음은 무거움을 더해간다.

 

"그럼 누나는 막 TV 같은데에 나오는 거야?"

"아니, 그렇지는."

"왜에?"

"그럴 정도로 인기 있지는 않으니까."

"헤에......그렇구나."

 

사실 그대로의 대답에, 오른팔의 흔들림이 뚝, 하고 멈췄다. 반짝임을 잃어버린 두 눈, 실망감이 적지 않게 담겨있는 목소리. 그 쪽에서 멋대로 기대한 것이긴 해도, 이 쪽이 깨트리고 말았다고 생각하니 불편해졌다. 이럴 거면 적당히 둘러대는 게 좋았을까. 아니, 거짓말이 서툴다는 건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다. 그렇지, 실은 처음부터 말을 걸지 않는 게 좋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부우웅-

 

저렇게 큰 소리를 내는 것들이 이 앞 길을 몇 번이고 지나가는 한, 이 소년에게는 내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해버리게 된다.

 

"우와아- 굉장히 커다란 트럭! 저 안에는 뭐가 있을까?"

"글쎄."

 

실제로는 내가 있던, 없던 간에 이 애는 아무 걱정없이, 평소와도 같이 횡단 보도를 건너갈텐데. 거기다, 이 애는 생면부지의 타인이지 않은가. 이 쪽에서 굳이 걱정해주고, 그걸 넘어 이렇게 집까지 바래다주기로 할 정도로- 사이가 가깝거나 하지는 않은데.

 

"누나는 궁금하지 않아?"

"별로."

 

그런데도 내버려둘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건, 어째서일까.

 

나는 저 멀리 사라지는 트럭에 두었던 시선을 거두고, 바로 옆의 존재를 내려다보았다. 눈에 띄게 어두워진 얼굴. 지금까지 계속 말을 걸었는데도 무성의한 대답으로 일관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누나는, 일단 아이돌인거지?"

 

방금 그 화제로는 제대로 된 대답을 끌어낼 수 없다고 판단한 걸까. 그 아이는 다시 아이돌을 끄집어냈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바로 또 다음 질문이 들어왔다.

 

"그럼 노래, 불러봤겠네?"

 

아차. 지금와서 잘못을 깨달아봤자, 이미 고개를 끄덕인지 오래. 이 쪽을 바라보는 맑은 두 눈은 다시끔 묘한 기대로 일렁이기 시작한다. 이 다음으로 나올 말이 무엇인지는 아마, 누구라도 예상이 가능하겠지.

 

"불러줘!"

 

역시나. 예상한 그대로의 말에 절로 미지근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그와는 별개로, 뒷목에 내달리는, 한 줄기 얼음 송곳과도 같은 서늘한 아픔. 조금 느슨해졌다고 생각한 입가가, 그만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저기, 왜, 나는,

 

목소리도 생긴 것도 전혀 다른 아이에게서,

 

그 애를 보고 만 것일까.

 

급격하게, 시야가- 흐릿하게, 잿빛으로, 어그러진다. 어지럽다. 뭔가 알 수 없는 소리 같은 게 잔뜩, 귓가에서 웅웅거린다. 급격히 두려워진 나는 황급히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눈동자에 비치는 건, 생기라곤 전혀 없는 회색빛 세계. 아, 잠깐. 뭔가 하나 눈에 띈다.

 

그래, 저기 앞에, 하얀 선에, 크게 얼룩진 빨강.

 

그것만이 빨려들 것만 같이 선명하게-

 

".....윽!?"

 

돌연 느껴지는, 무언가가 옆으로 쭉 끌어당기는 것만 같은 감각. 신체가 살짝 기우뚱한 것만으로도, 그 세계의 모든 것이 눈 녹듯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천천히, 고개를 조금 옆으로. 그리고 조금 아래로. 거기에는 본래 있어야할 아이가 있어-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가득 짓고 있었다.

 

"저기.....누나?"

".....미안. 지금은, 안될 것 같아."

 

가까스로 거절하는 말을 토해내자,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수긍했다. 나는 저도 모르게 흐트러진 숨을 정돈하고, 조금 땀이 맺힌 이마를 살짝 훔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전보다 더 어두워진 게 눈에 띄었다. 그리고, 우리 둘이 횡단 보도를 눈 앞에 두고 쭉 멈춰있었다는 사실 또한 겨우 눈치챘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네. 가자."

"으, 응."

 

그 사이에도 몇 번이나 바뀌기를 반복했을 신호등. 그것이 다시 초록불인 것을 똑똑히 확인한 나는,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 애한테는 돌아갈 집이 있다. 이 쪽도 합숙소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조심해."

 

그 말을 주문처럼 되뇌이면서, 조금 앞장 서서 한 걸음, 두 걸음 걸어나간다. 초록불이긴 해도, 혹시 모르니까 좌우를 면밀히 살피면서. 혹시라도 잡고 있는 작은 손을 놓칠까봐 더욱 강하게 붙잡고서. 앞으로, 쭉 앞으로.

 

그런 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마치 영원과도 같았던, 그러나 실제로는 몇 분도 채 걸리지 않았을 건너기가 겨우, 끝을 맺었다.

 

후웅-

 

보도블럭에 발을 딛고 올라간 순간, 기다렸다는 우리 두 사람의 등을 강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슬쩍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는 검은 승용차가 어느 순간 저 멀리 작은 점이 될 정도로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신호는 많이 깜빡거리긴 해도, 아직 초록인데도.

 

만약 우리들이 조금만 더 건너는 게 늦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좋지 않은 방향의 상상. 나는 그것을 억지로 털어버리면서,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옆을 확인했다.

 

"누나? 왜 그래?"

 

그 애는, 무사하다.

 

뭐, 실은 무사하지 않은 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이런다고 해서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저 단순한 대리만족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데도 안도하게 되는 내가 있다. 바보 같게도.....조금은 눈물이 나올 것 같기도 하다. 정말 별 것 아닌건데도, 어째서일까. 머릿 속을 아무리 뒤져봐도 그 이유를 찾아낼 수 없었다.

 

"어디 아파? 아까부터 좀 이상해. "

 

나는 일부러 먼 곳에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불안하다는 듯 몇 번이고 계속 손을 잡아끄는 그 애에게 늦은 대답을 겨우, 해주었다.

 

".....괜찮아."

 

------------

플라마스 치하야 메일을 바탕으로 짧게 끄적적 해봤습니다. 원래 메일은 저녁 무렵 개와 산책하던 애를 치하야가 집까지 바래다줬다는 내용인데 저는 여기서 멍멍이를 과감히 삭제(......). 허허 별 것 아닌 내용인 것 같아도 묘하게 어두운 쪽인 것 같기도 해서 보고 좀 심란했던 기억이 나네요. 치하야쨩은 여기서도 동생을 잃었구나,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4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