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ido] 시작의 석양

댓글: 1 / 조회: 871 / 추천: 0


관련링크


본문 - 10-11, 2016 04:39에 작성됨.

1편. [ido] 파란바람

http://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create&wr_id=76580&sca=%EA%B8%80&sfl=wr_subject&stx=%ED%8C%8C%EB%9E%80&sop=and

 전편을 안 보셨다면 이 쪽으로!

2편 이키마스!

==================================================

 

 "학생분 들은 남은 인생 동안 수많은 인연을 만날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오랜 기간을 지내다 보면 평가를 하게 되겠지요. 이 사람은 착하고 선해, 이기적이야, 이해 타산적이네, 외모 예쁜걸, 부담스러워 등등 많은 평가를 마음속으로 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평가하는 삶을 살아갈 학생분들에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합니다. 그 평가를 맹신하지 마세요. 당신 옆에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나쁠 수도, 똑똑할 수도, 탐욕스러울 수도, 무서울 수도 있으니까요."

------- 아이도(ido) 왕국 소속 왕립대학의 정치학부 교수가 학생들과의 회식에서 술기운에 한 말

 

--------------------------------------------------------------------------------------------

 

 성의 주인이 성을 떠날 때, 성안의 사람들의 기분은 어떨까? 떠나는 본인이야 나가는 목적에 따라 다르겠지만, 주인의 외출 준비를 해야 하는 하인들은 일거리만 늘어나니 좋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런 통념적 이야기는 하루카와 하루카의 하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흐음음 음음~.”

 하루카는 자기 방의 거울 앞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머리의 리본을 정리하고 있었다. 몸에는 높은 지위의 여성이 입는 치렁치렁한 옷이 아닌 활동하기 편한 모피 외투를 걸쳤다. 몸단장을 돕는 시녀 한 명 없이 외출준비를 하는 그녀의 모습은 귀족의 핏줄보단 순박한 동네 소녀에 가까우리라.

 리본을 다 정리한 하루카는 허리춤에 손은 얹혀 보기도 하고, 한 바퀴 삥 돌아보기도 하다가. 만족스러운 듯 씨익 웃었다.

 “좋아, 됐어!”

 하루카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 밖으로 나섰다. 문 앞엔 음식 바구니를 든 시녀장이 있었다.

 “가시죠. 하루카님.”

 “나 혼자 가도 된다니까요. 바쁘실 텐데 다른 일 보세요.”

 “하루카님, 성의 여주인으로서 하인이 따라다니는 건 당연한 겁니다."

 “내가 성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알았어요. 가요.”

 시녀장이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목석 같은 사람이란 걸 잘 알고 있는 하루카는 한숨 한 번으로 설득을 포기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내려가고, 긴 복도를 걸어 건물 밖으로 나오자 내부와 조종석 사이가 뚫린 허름한 마차와 안경을 착용한 젊은 검사가 있었다. 검사는 하루카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타시죠. 하루카님."

 하루카는 시녀장에게 음식바구니를 건네받고 마차에 탔다. 마차 안은 각각 앞과 뒤에 좌석이 있었는데 하루카는 마부와 등을 맞대고 앉게 되는 앞쪽에 앉았다. 하루카가 앉는 걸 확인한 검사도 조종석에 앉았다. 하루카가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고 시녀장에게 손짓했다.

 "시녀장님. 그럼 다녀올게요."

 하루카의 인사에도 시녀장의 표정은 편해 보이지 않았다.

 "하루카님, 지금이라도 엄호할 병사를 몇 명이라도 데려가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괜찮아요. 아카바네도 있잖아요?"

 "아카바네님의 실력이 출중한 건 알지만... 알겠습니다. 부디 조심하시길."

 "걱정 말아요. 멀리 가는 것도 아니니. 그럼 다녀올게요. 아카바네 출발해!"

 "예!"

 고삐의 '촥!' 소리를 내며 휘둘러지고 마차의 바퀴가 ‘기기긱.’ 소리를 냈다. 허리숙여 인사하는 시녀장을 뒤로 한 체 마차가 나아갔다. 5분쯤 달렸을까. 마차는 문의 양 끝에 서있는 병사 두 명의 경례를 받으며 성을 빠져나갔다.

 쾅, 성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하루카는 몸을 축 늘어트리며 한숨을 쉬었다. 뒤에서 들려온 한숨 소리에 아카바네는 피식 웃었다.

 “고생했어. 하루카.”

 “시녀장님은 너무 고지식해... 날 위해 주는 건 고맙지만... 불편하다고.”

 “병사들 사이에서도 시녀장님은 목석 같은 사람으로 유명하니까 뭐.”

 “시녀장 뿐 아니라 모두가 날 윗사람으로 보는 건 시간이 지나도 적응이 안 돼.”

 “천성이 쉽게 고쳐지겠어? 아, 나 쿠키 좀 줘 오늘 아침 급식이 영 아니었거든.”

 “잠시만.”

 하루카는 바구니에서 쿠키 두 조각을 꺼내 머리 뒤쪽으로 건넸다. 아카바네 손에 집혀진 쿠키는 바로 입속으로 직행했다.

 “캬... 군 식단도 이렇게 좀 안되나.”

 “성의 식재료 거덜 나는 소리네. 하하...”

 하루카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쿠키를 베어 물었다. 바삭 소리와 함께 입 전체로 향긋한 단맛이 퍼졌다. 제과지식이 제법 풍부한 하루카는 맛만 보고도 얼마나 좋은 재료와 고급기술들이 들어갔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이걸 군급식으로 냈다간 성의 창고가 텅텅 비어 버릴 게 뻔하다.

 하루카가 질문했다.

 “아카바네, 미나세 저택까진 얼마나 걸려?”

 “흠... 뭐, 해가 중천도 안 넘어갔으니... 대충 도착하면 어둑어둑해지겠네.”

 “오래 걸리네...”

 “뭐. 이렇게 수다나 떨다보면 금방 가지 않겠어?”

 “그런가?”

 “그럼, 그럼.”

 하루카는 ‘그렇게 긴 시간동안 수다 떨 거리가 없을 텐데?’ 라는 생각을 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조종석에 앉아있는 남자와의 침묵은 불편함이 아닌 편안함이 감돌 것 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저번에 말이지...”

 미나세령까지 가는 길, 영주와 신하이자 1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한 친구인 둘 간의 작은 다과회가 펼쳐졌다.

 

----------------------------------------------------------------------------------------------------

 

 또각또각.

 저택의 복도에 걷는 소리가 울린다.

 딱.

 소리가 집무실 앞에서 멈췄다.

 소리의 원인인 미나세가의 집사, 리츠코는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리츠코가 문을 열자 저택의 여주인, 이오리가 큰 책상에 앉아 서류와 씨름하고 있었다. 리츠코는 두 손을 앞에 모은 체 공손히 말했다.

 “주인님. 하루카님 깨서 오셨습니다.”

 리츠코의 말에 이오리는 서류를 책상에 놓았다.

 “마중 나가야겠네. 신도. 나머지는 알아서 처리해 줘.”

 “괜찮겠습니까?”

 옆에서 이오리를 보조하고 있던 노년의 집사, 신도는 물었했다. 지금 처리하고 있는 건 '혼다' 상단과의 거래 관련 서류다. 물론 큰 규모의 사병과 영지, 그리고 거대 상단을 동시에 운영하는 미나세가에 비하면 5분의 1도 안 되는 작은 규모의 상단이지만 거래 자체는 절대 작지 않은 규모였다. 거기에 더해 상단 사이에 서류는 어떠한 장난질이 되어 있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이 두 가지 이유로 책임자인 이오리가 끝까지 도 맞아 처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신도는 생각했다. 하지만 신도의 권유는 이오리는 콧방귀를 부를 뿐이었다.

 “흥, 미나세가에 사기를 치는 장사꾼이 있을 리가 없잖아. 있다면 이 바닥을 뜨고 싶다 부탁하는 거니까 들어주면 그만이야. 그리고 사실 이런 건 풋내기인 나보다 신도가 더 잘하잖아.”

 사실만 담긴 주인의 말에 신도는 웃음이 났다.

 “알겠습니다. 제가 처리하도록 하죠.”

 이오리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리츠코가 서있는 문쪽으로 걸었다.

 “가자. 리츠코. 둘 다 먼 길 오느라 배고플 테니 바로 저녁 준비 하라고 해.”

 “이미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그래.”

 이오리와 리츠코는 1층 로비로 향했다. 건물 2층과 로비를 잇는 거대한 계단에 도착하자 손을 흔들고 있는 하루카와 아카바네가 보였다. 이오리와 리츠코는 계단을 내려가 하루카 앞에 섰다. 이오리가 치마를 살짝 들어 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시죠. 하루카 영주님.”

 “에~. 편하게 해주라. 영주님이라니 삭막해.”

 “이제 그럴 생각이야. 어서와. 하루카 오랜만이야.”

 조금 전 공손한 태도는 어디 갔는지 이오리는 악수를 청했다.

 "응. 오랜만이야! 리츠코도!"

 하루카는 얼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양손으로 이오리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얘는 어쩜 이리 달라진 게 없지..' 라는 생각에 이오리는 한숨을 쉬며 피식 웃었다. 리츠코도 마찬가지였다.

 리츠코가 입을 열었다.

 "먼 길 오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하루카님 아카바네님."

 "나야 고삐만 놀렸고 고생은 말이 했지, 뭐."

 “흥, 알긴 아는구나.”

 이오리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런 이오리의 태도에 아카바네는 너스레를 떨었다.

 “말들 좀 잘 먹여 달라고.”

 “우리 미나세가에서 쓰는 말 먹이가 싸구려 일거 같아? 내일이면 말이 마구간에서 나오기 싫다 발버둥 칠 걸.”

 "그건 곤란한걸?“

 “흥. 시답잖은 그만하고 방에 짐부터 풀어. 난 먼저 가서 기다릴 태니까. 리츠코 안내해.”

 “네. 주인님.”

 리츠코가 갑자기 오른손을 위로 뻗어 ‘딱’ 소리를 냈다.

 “가시죠. 손님.”

 ““예?!”“

 메이드의 귀신같은 등장에 놀란 두 명의 목소리가 저택의 로비에 메아리쳤다.

 

-----------------------------------------------------------------------------------------------

 

 미나세가의 저택의 접견실, 이오리는 의자에 앉아 아카바네가 건네 준 서류를 보고 있었다. 이런걸 보여 주는 이유가 뭘까? 쉽게 예측되지 않았다. 이오리는 맞은편에 앉은 아카바네와 하루카에게 질문했다.

 “이게 반란 1부대인 립스가 자금과 무기를 조달한 서부지역의 8개 상단 목록이라는 건 잘 알겠어. 근데 이걸 나에게 보여주는 이유가 뭐야?”

 이오리의 질문에 아카바네가 입을 열었다.

 “그 상단들에겐 전부 큰 벌금형과 운영 정지. 추가로 제일 위에 있는 3개의 상단은 국가와의 거래가 중단돼. 알지?”

 “알아.”

 “형벌이 시행되는 건 한 달 후야. 해당 3개의 사업에 발을 뻗어놔. 할 수 있지?”

 이오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카바네의 질문은 대답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한 상단이 독점적으로 물자를 공급하고 있는 3개의 국가 사업에 발을 슬쩍 걸치고 있다가 독점상단이 퇴출당하면 그 즉시 움켜쥐라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이걸 내게 알려주는 이유가 뭐야? 아니 다시 말할게. 원하는 게 뭐야?”

 이건 명확한 불법. 짜고 치기다. 만약 이 계획이 성공한다면 미나세 상단은 큰 이익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이런 걸 먼저 알려준다는 건 분명 저쪽에서 원하는 게 있다는 소리다

 아카바네는 검지를 앞으로 뻗으며 말을 이었다.

 "원하는 건 하나야. 그 목록에 있는 8개의 상단의 사업분야를 철저하게 조사하고. 1달 간 나무코 은화를 다량 소모하게 해줘. 그리고 나중에 생기게 될 해당 상단의 공백은... 조사한 게 아까워서라도... 그렇지?"

 "...너네들... 도대체 뭔 짓을 할 작정이야?"

 현재 아이도국의 법에 따르면, 반란부대와 관련된 범죄에 대한 형량은 아주 무겁다. 물자와 자금을 직접 조달했다면 막대한 금액의 벌금형과 긴 시간의 운영 정지를 당할 것이다. 그럼 만약, 다량의 물품을 도매하여 현금 보유량이 적은 상단이 벌금형과 운영 정지를 당한다면? 더 볼 것도 없이 압수, 파산이다. 지금 아카바네는 미나세가의 힘을 이용해 시장을 조절하여 8개 상단을 파산의 길로 인도한 다음, 8개 상단의 공백을 미나세가가 차지하라는 말을 돌려 말한 것이다.

 "어쩔래? 할래?"

 아카바네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오랜만에 보는 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가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게 할 줄 누가 알았을까.

 이오리는 아카바네를 째려보며 말했다.

 "솔직히 말 할 게. 계획대로만 된다면 미나세 상단이 얻는 이익은 상상초월이야. 인정해. 혹해. 무진장 끌려. 그러니까 말해. 너네가 원하는 게 뭐야. 이렇게 우리 미나세 상단에 돈을 퍼주는 게 너네 한태 무슨 이득이 되는 건데? 아마미가는 미나세가에게 뭘..."

 "너의 힘으로 나를 도와주면 돼."

 침묵하고 있던 하루카가 이오리의 말을 끊었다. 하루카는 이오리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이오리 너에게 힘을 줄게. 그 힘으로 세상을 뒤집을 수 있게. 나를 도와줘.”

 

-----------------------------------------------------------------------------------------------

 

 찬란한 보름달이 밝게 비추는 밤. 이오리는 토끼 인형을 안은 체 테라스의 걸상에 앉아있다. 일과를 마치고 취하는 휴식시간이지만 이오리는 별로 편해 보이지 않았다. 상에 놓인 찻잔엔 손도 대지 않고 뚱한 표정을 지은 체 토끼인형의 귀에 손가락을 빙빙 돌리고 있었다. 리츠코는 의아하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간만에 옛친구를 만난 즐거운 날이고 서류작업도 신도가 전부 처리했다. 이오리가 기분 나쁜 표정을 지을 이유는 없었다.

 “리츠코.”

 침묵하던 이오리가 입을 열었다.

 “네. 주인님.”

 “편하게 해도 돼. 아니, 해. 명령이야.”

 리츠코는 명령에 당혹스런 표정을 짓더니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근무 중엔 집사로서 예의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원칙이었지만 정작 주인은 그렇지 않은 듯했다.

 “왜요. 아가씨.”

 “앉아. 할 얘기가 있어.”

 리츠코는 이오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침묵, 이오리는 계속 침묵했다. 2분쯤 지났을까. 밤하늘을 바라보던 이오리가 입을 열었다.

 “학교 다닐 때 기억나?”

 “기억나죠. 하루카랑 아카바네랑 치하야랑, 저랑 이오리님이랑. 같이 다녔지요.”

 “그때 너가 말했지? ”하루카는 보통 아이가 아닌 거 같아요.” 라고.”

 “네. 그랬죠.”

 “솔직히 말하면 난 그 말을 비웃었어. 하루카는 모난 곳 없는 평범한 성격에 능력도 특출난 건 없었으니까. 하루카가 영주의 딸이란 걸 알고 나서야 ”리츠코가 평범한 아이가 아니라고 한 건 이거 때문이었나?“ 라고 어렴풋이 생각했어.”

 과거를 더듬는 말을 리츠코는 경청했다. 집사가 아닌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언니로서.

 “리츠코. 넌 하루카의 어떤 점을 보고 평범한 얘가 아니라고 했던 거야?”

 “딱히 대단한 이유는 없어요. 그냥 감이니까.”

 “감?”

 “네. 감이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사람을 보고 평가하는 능력에는 제법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거든요. 그 재능이 하루카는 범상치 않다고 판단했죠. 뭘 보고 판단했냐고 하면... 정말 할 말이 없네요. 하하하...”

 리츠코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스스로도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분명 사실이었다.

 이오리는 그런 리츠코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미소 지었다.

 “리츠코. 미안하지만 너의 일이 또 늘어날 것 같아.”

 리츠코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여기서 더 일을 늘리라고? 아가씨는 나를 죽일 셈인가?

 “무립니다.”

 리츠코는 단호하게 말했다. 전혀 효과가 없지만.

 “앞으로 회의나 계약에 갈 때 네가 따라와. 주인으로서 너의 재능. 사기꾼 감별에 써먹어야겠어.”

 “왜죠. 그건 이미 신도님이 하고 계시잖아요.”

 “이미 만개를 끝내고 시들기를 기다리는 꽃보다 이제 막 봉오리를 맺고 꽃에 정성을 들이는 건 당연하잖아?”

 “그 말 노인분들에게 굉장히 실례 같은데요...”

 “사... 사실이잖아!!”

 이오리는 당황한 얼굴로 소리쳤다.

 신도는 이오리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준다. 일생을 미나세가의 집사로 살아오면서 얻은 업무처리능력과 유려한 언변, 그리고 거래에 교묘히 숨겨져 있는 속임수를 간파하는 통찰력까지. 이제 막 서부 지역의 상업 총책임자로서 가문수업을 시작한 이오리에겐 소중한 스승이다. 하지만 신도는 이미 백발의 노인이다. 한 사람을 평생 의지 할 수 없다는 걸 모를 만큼, 이오리는 어리지 않다. 능력 있는 업무 파트너를 새로 찾는 건 당연한 일. 리츠코는 파트너로서의 자질을 방금 증명했다.

 “어쨌든 따르도록 해. 신도에겐 내가 말해 둘 태니까!”

 “후... 알겠어요."

 이오리의 생각을 어렴풋이 알아챈 리츠코는 자포자기하며 대답했다. 이오리는 “니히히힛.“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보다 아가씨.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보시죠? 옛날 얘기하시더니 갑자기 집사장님의 일을 대신 하라 하시고... 하루카가... 아니 하루카님이 무슨 말이라도 했어요?”

 리츠코의 질문에 풀어졌던 이오리의 표정이 다시 굳었다. 어느새 진지함을 머금은 이오리의 갈색 눈동자가 리츠코를 똑바로 응시했다. 이오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피를 부르려는 사람을 나는 따라가도 되는 걸까?”

 학교를 떠나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지 2년. 오랜만에 만난 옛친구가 가져온 이야기가 이런 고민을 주다니. 몇 시간 전엔 상상도 못한 기묘한 상황에 이오리는 고개 숙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게 무슨...”

 “리츠코 앞으로는 바빠질 거야.”

 고개를 든 이오리는 티스푼을 찻잔에 직각으로 담갔다. 찻잔의 바닥과 스푼이 붙이 치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홍차 위에 뜬 달이 산산이 부서졌다.

 “이미 따라가 보기로 결정했거든.”

 이오리가 지은 미소는 요근래 리츠코가 본 이오리의 미소 중 가장 상쾌하고, 호전적이었다.

 

-----------------------------------------------------------------------------------------------------

 

 아마미성으로 돌아가는 길. 하루카와 아카바네를 태운 마차는 한 마을의 입구의 근처에 정차했다. 하루카는 아픈 허리와 무릎을 툭툭 치며 신음했다.

 “으으... 아파...”

 “그니까 좀 좋은 마차로 하라니까 굳이 필요 없다고 말이야.”

 “좋은 마차를 쓰면 시녀장님이 호위 기사들을 붙여 한다고 하시는 데 할 수 없잖아.”

 “그럼 참아야지. 뭐.”

 아카바네는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마을의 입구를 쳐다봤다. 열려있는 성문 안으로 많은 사람과 건물이 보였다. 특별할 것도 없는 장면이었지만 두 명에겐 의미가 있는 장면이었다.

 “마을 많이 변했을까?”

 하루카가 나지막이 물었다. 자신 어렸을 적 살았던 마을의 변화를 궁금해하는 건 당연한 일이리라.

 “가 볼래?”

 아카바네의 권유에 하루카는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대신 거기 가보자.”

 “어디?”

 “절벽 놀이터.”

 아. 그곳, 아카바네는 향수가 느껴지는 단어에 미소 지었다.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두 명은 마을 입구의 보초병에게 마차를 봐달라고 부탁하고 절벽놀이터로 향했다.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한 숲을 굽이굽이 걷다 보면 나오는 탁 트인 절벽. 어릴 적 하루카, 리츠코, 이오리, 아카바네, 치하야, 5명이서 숲을 탐험하다 발견한 5명만의 놀이터다. 그 놀이터를 다시 방문하기 위해, 두 명은 몸이 기억하는 숲 속의 미로를 걸었다. 숲을 빠져나오자 하늘에 떠있는 석양과 저 멀리 보이는 호수가 다시 찾아온 손님을 반겼다.

 “여긴 변한 게 없구나. 이야~. 저 바위까지 그대로 있네.”

 아카바네는 큰 바위로 다가가 발로 툭툭 치더니 걸터앉았다. 아카바네의 지정석이었던 바위이다.

 하루카도 그를 따라가 옆에 섰다.

 어릴 적 이야기로 달아오르기를 잠깐, 하루카가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카바네. 내가 왜 마을에 안 들어간다고 한 줄 알아?”

 “왜 그랬는데?”

 아카바네의 되물음에 하루카는 침묵하더니 이내 답했다.

 “좋게 바뀌었을 리 없기 때문이야.”

 “...그렇지.”

 아카바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아이도 왕국에서 좋게 변하는 게 몇 가지 될까. 아카바네는 머리를 굴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권력실세들의 지갑 사정 외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그게 아이도 왕국의 현재였다.

 두 명은 말이 없었다. 넓은 절벽위에 바람 소리만이 울렸다. 긴 침묵을 깬 건 하루카였다.

 “나중에 꼭 갈 거야. 나는...”

 하루카는 뒷짐을 진 체 절벽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마을이. 영지가. 서부지역이, 이 나라가, 좋게 바뀌었을 때 나는 저 마을에 갈 거야. 멀리 돌아가는 길이지만. 오늘에야 겨우 한 걸음 내밀었을 뿐이지만. 언젠가 반드시 갈 거야.”

 하루카는 아카바네 쪽으로 몸을 빙글 돌렸다. 그녀의 뒤에서 맹렬히 불타고 있는 주홍빛 석양이 그녀를 검게 물들였고 그녀의 머리칼과 치맛자락은 바람을 맞아 펄럭였다. 아카바네는 환상이라는 단어가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그녀의 모습에서 눈을 때지 못했다.

 “아이도 왕가의 명령 아래 아마미령을 다스리는 영주인 나는...”

 한 소녀가 아카바네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선언했다.

 “나는 왕이 될 거야.”

 “...기꺼이.”

 아카바네는 바위에서 일어나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영주와 부하라는 단순한 관계로서의 인사가 아닌 평생을 따르기로 정한 여인에게 바치는 충성의 맹세로서.

 “그러면 명령을 내리겠어.”

 바뀌었을 리가 없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위엄을 느낀 건 단순한 아카바네의 착각만은 아니리라.

 “명만 내리시길.”

 하루카는 명했다.

 “저, 하루카 영주의 직속부대인 솔라리 별동부대의 대장 아카바네. 솔라리 부대 소속 정탐인 치하야에게 지령을 내리세요. 아이도 왕국의 제9 황녀 우즈키를 조사하라고.”

 

===========================================================

 

2편이 왔네요. 저번에 보셨을 1편에 오류가 있었는데요. 하루카는 옹주가 아니라 영주입니다. 네.

일단 판타지입니다.  처음 읽자마자 한 작품을 떠올리신 분도 있겠군요. 제노그라시아 ver2 보는 기분으로 봐주세요. 캐릭터 붕괴 조질거니까요 하핫

최대한 독자의 상상을 독려하는 방향으로 쓴다고 썻는데 잘 됬는지 모르겠군요.

사실 중간에 나오는 상단관련 얘기는 저도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이 세계관은 그런갑다하고 봐주세요. (마음 속 이성: 우와. 전형적인 불쏘시개 쓰는 작가 마인드....)

재밌게 보셨다면 댓글 추천 꾹 눌러주시기 부탁 드리구요~ 네~ (아프리카 bj풍)

관심고파요....

구리다면 가감없은 팩폭부탁드립니다.

 

 

0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