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흑백 정원의 마술사-0 (3)

댓글: 2 / 조회: 609 / 추천: 0


관련링크


본문 - 10-09, 2016 19:09에 작성됨.

기회는 개뿔.

기회를 주겠다는 소리 하나 듣고, 자퇴까지 한 뒤 일본으로 온 지 한달.  슬슬 서늘한 기운이 가시며 날씨가 좋아지는 3월인데, 왜 내 상황은 갈수록 악화일로를 걷는건지 모르겠다. 

기회를 준다고 달려온 조카한테 시작부터 기회를 원하면 성과를 보이란 말을 던지고 아이돌이나 육성하라는 그 망할 큰아버지.  그래도 그 사람이니까 나름 잘 키웠겠지 하고 본 아이돌 후보생들은 태반이 기준 미달. 

“센카와 씨.”

이딴 인재풀로 뭐하겠냐고 바락바락 악을 써서 그나마 2주전의 오디션에서 건져낸 둘은 있었으니 망정이지만,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모로보시 혹시 왔나요?”

하하하, 프로듀서는 혈압이 올라도 차마 그만 못 두고 있는데, 아이돌이란 녀석이 먼저 파업을 해?

“후타바 안즈으으으!!!!”

3월 초, 빌어먹을 아이돌 후보생이자 니트 지망생, 후타바 안즈, 프로덕션 안에서 잠적.

 

 

그렇게 1시간 뒤인 9시 반, 출근한 직후부터 이게 뭔 난리였는지 모르겠지만, 후타바를 가장 효율적으로 다루는 모로보시의 등장으로 사건은 허무하게 종결되었다.

“저기 후타바씨?  프로듀서가 1시간 동안 목이 찢어져라 불렀는데도 안 튀어 나오더니, 사탕 한번 던지니까 튀어나와?”

그래도 찔리기는 하는지 후타바는 시선을 피한다.  그래, 네가 최소한의 양심이 있으면 찔리기라도 해야 지.  오디션 때 보인 막장스러운 모습을 봤을 때 이런 녀석일줄은 알고 뽑았지만, 고작 2주만에 탈주를 시도할 줄은 몰랐다. 

이 계륵 같은 아이돌.  이 빌어먹은 프로덕션은 노력량과 재능이 반비례하는지, 재능 하나는 넘쳐나 서 버릴 수도 없고.  한탕 친 다음에 인세로 먹고 살게 해주겠다고 꼬시긴 했는데, 한탕 칠 노력도 안해주니 이건 뭐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빌어먹을, 만약 내가 탈모 생기거나, 담배 다시 피면 다 이 녀석 탓 일거야.  사탕도 지금 책상에 다 놔두고 왔는데, 이런 생각을 하니 다시 담배가 피고 싶다.

 

… 아, 저기 사탕 있네.

“아앗, 프로듀서!”

하하, 후타바 이 자식, 뭐라고 변명 해보라고 할 때는 입 다물더니 사탕 하나 가져갔다고 입을 열어?

“사탕 하나 가지고 뭔 대수야.  1시간 내내 고생하게 만든 것에 대한 최소한의 사죄라고 생각해!”

“어른이 되어서 여고생의 물건을 빼앗다니, 그게 어른이 할 짓이야!”

“그러는 넌 17살이나 된 주제에 최소한의 양보도 못하냐!  너 내가 너 때문에 담배 다시 피워서 폐암이라도 걸리면 책임 질 거야!”

“스트레스 받을 상황을 초래한 게 누구인데!  난 분명 한탕 치고 빠지는 거라 들었다고!  레슨 같은 중요한 노동에 대한 말을 빼먹어서 파업하게 한 게 누구인데!”

“말 안해도 그 정도는 알아 야지!  그리고 네가 사인한 계약서에는 그런 내용 있었다고!”

“사기 계약이야!”

안되겠다.  말이 안 통해.  평소에는 그나마 논리적인 녀석이 사탕을 빼앗긴 분노로 말까지 안 통하게 되었어.  애초에 고등학생이라는 녀석이, 뭐 이렇게 사탕에 대한 집착이 심한 거야?

..귀찮은데 슬슬 빠질까?  마침 뒤에 해결책이 있고.

“하아, 모로보시, 미안한데 나 지금 코히나타 데리러 가야하거든?  후타바 좀 레슨실까지 데리고 가줄 수 있어?”

거인 출격.  더 이상 상대할 시간도 없고, 상대할 가치도 없어.  자업자득.  오늘은 특별히 빡 세게 굴려주마.

“프로듀서 이러 기야!  키라리!  놔줘!”

뒤에서 뭔가 원망과 키라리에게 절규하는 소리가 들리지만, 상관 없다.  후타바와 꽤액 꽤액 소리 지르며 말 싸움 하던 걸 들었는지 황당해 하는 시선을 보이는 센카와 씨를 뒤로 한 채, 막대 사탕 몇 개와 차 키를 책상에서 집어서 밖으로 나간다.

아니, 센카와 씨, 전 잘못 없어요?  다 저 니트가 나쁜거에요.

 

운전 면허는 따 뒀지만, 한국에 있었을 때는 차도 없었고, 반쯤 장롱 면허였었다.  어떻게 보면 딸 이유가 딱히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따 둔 게 다행이었다.  만약 따 두지 않았다면 지금 이 거리를 매번 걸어 다니거나 대중 교통을 이용했어야 했을 테니.

특히 이 주변 지리를 잘 모를 코히나타에게는 그것도 고역이겠지.  아이돌이 되기 위해 구마모토에서 도쿄까지 와 혼자 자취하는 애인데, 그렇게 만든 장본인으로서 되도록이면 필요 이상의 고생은 하게 하기 싫었다. 

코히나타에게 도착했다는 연락을 넣은 지 5분, 건물의 정문이 열리며, 한 소녀가 모습을 드러낸다.  짧은 단발의 검은 머리와, 후타바 같이 성장 정지가 아닌 딱 적당히 앳되어 보이는 얼굴.  알고 지낸 지 이제 2주 가량 되었지만 아직도 약간 긴장하고 있는 기색의 눈동자와, 약간의 홍조는 왠지 모르게 보호 본능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포근한 천성적인 매력.  그래, 이게 아이돌이지.  그 망할 니트가 가지고 있지 않은 매력.

“아, 안녕하세요 프로듀서!”

아직도 긴장하며 더듬는 모습과, 더듬었다는 사실에 더 당황하며 우물거리는 입도, 서투르고 귀여운 소녀라는 느낌이다.  다른 누군가 했으면 답답하다 느꼈을 지 모를 모습이었지만, 코히나타는 이걸 충분히 매력으로 바꿔냈다.

어째 같은 담당 아이돌인데 이렇게 다를까?  그 니트 지망생과 대조되는 모습에, 생각 뿐이라고 하지만 왠지 너무 나간다는 느낌도 들었다.  

“좋은 아침, 코히나타.”

차에서 내려서, 그녀가 들고 있는 짐들을 받아 든다.  평상시의 짐은 그녀가 레슨 후에 갈아입을 옷이나 다른 물건들이 들어 있는 정도지만, 평소와 다르게 끙끙대며 나오는 모습을 본 이상 계속 들고 있게 하기도 뭐했다.

“프, 프로듀서 씨, 그럴 필요는..”

이런 경험 자체가 처음인지, 당황한 코히나타의 얼굴이 새빨개지며 이내 고개를 숙인다.

미치겠네,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누가 아이돌 후보생 아니라고 할까 봐 사랑스럽다.

..정신차리자.  담당 아이돌이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 시킨 뒤, 조수석 문을 연다.

“가자 코히나타.”

 

결국, 프로덕션까지 오는 10분 동안, 한 마디도 제대로 못했다.  그나마 대화를 해보려고, 가져왔던 사탕도 하나 줘봤지만, 여기 있어, 고맙습니다, 서로 한마디씩 한 뒤 끝.  고개를 푹 숙이며 아직도 부끄러워하는 코히나타를 보고 있 자니, 신경 쓰여서 그냥 뒷자리에 앉힐 걸 그랬나 싶었다.

그렇게 프로덕션에 도착한 뒤, 코히나타를 내려 놓고, 혼자 주차장으로 향한다.  이 망할 프로덕션은 왜 주차장을 이렇게 떨어져 있는 건지.  걸어서 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주차장이 있는 건 또 뭔 데? 

툴툴대며 프로덕션으로 걸어가던 중, 길 너머에 마트가 보인다.  그러고 보니 후타바 녀석 기분은 풀어줘야 될 텐데, 사탕이 제일 편하겠지.  괜히 사무소 책상에 있는 사탕 줬다가 급할 때 없으면 곤란하니, 내 사탕도 보충할 겸 몇 개 사가는게 나을 거다.

마트에 들어가 사탕 봉지를 두 개 집는다.  후타바 녀석, 먹을 복은 터졌군.  하나 뜯기고 한 봉지 얻어 가다니.  왠지 뭔가 억울한 기분이어서 그냥 한 봉지 말고 낱개로 사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그거 대로 쩨쩨하게 느껴진다.  코히나타한테도 하나 사주면 덜 억울하겠지.  그럼 그냥 담당 아이돌들한테 하나씩 사준다 치면 되는 거니까.  뭐, 어차피 둘의 레슨이 끝나면 마실 것도 필요할 테니, 겸사겸사 마실 것도 좀 사가고.  담당 아이돌들 챙기는 것도 프로듀서의 업무 중 하나니.

 

..담당 아이돌이라.  어떻게 보면 한 달 전 까지만 해도 개소리 취급했겠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은 꽤 익숙해졌다.  코히나타는 성장이 느리지만 충분한 잠재력이 있고, 후타바 쪽은 어떻게 든 통제만 해내면 된다.  둘 다 어느정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충분히 성과를 보일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재촉해 봐야 소용 없겠지.  어차피 나도 시간이 필요하고, 거기 다가 그만한 재능을 찾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니.  그렇게 생각한 뒤, 어깨에 봉투를 걸치고, 사무실에서 가져온 마지막 사탕을 입에 문다.

“..?”

아니, 정정해야 될 듯하다.  재능을 찾는게,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없지는 않다.

 

잠깐 눈에 스친 것뿐이다.

주황빛 머리, 약간 밤색 빛이 도는, 어딘가 공허한 눈.

그리고, 알 수는 없지만, 너무나 닮은 듯한 분위기.

그녀가 겹쳐 보인다고 느낀 순간, 이미 그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하아, 하아,”

빌어먹을, 너무 달렸나.  걸어도 될 거리였는데, 마음만 급하다 보니 결국 달리게 되었다. 

숨을 가쁘게 내쉬는 남자라니, 첫인상으로는 최악이었을지도 모른다.

“뭐야, 헌팅?  그런 거면 흥미 없는데, 저리 가줘.”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은 없다.

“혹시, 아이돌이 되어 볼 생각은 없나요?”

 

-----------------------------------------------------------------------------

자기 만족일지 몰라, 하지만, 다른 끝이 보고 싶어.

 

내가 원하는 것은 진짜야.  결함품이 아니라.

저들이 말하는 건 무시해.  어차피 3류들이니까 지껄일 수 있는 말이지.

그런 건 전부 신기루지.  그런 요소들에 일희일비하는 순간 넌 진짜가 될 수 없어.

그냥 다 X까라 해.  진짜가 되는 순간, 전부 따라오게 되어있어.

그리고, 넌 그렇게 될 수 있지.

안 그래?  

 

제발, 다물어.  나도, 당신도, 더 이상..

 

--------------------------------------------------------------------------

미호가 생각보다 달달하게 나왔는데, 이거 모노크롬 릴리 팬픽입니다.

담당돌이 여러명이지만, 일단 메인은 카렌, 카나데.

메인 아이돌들이 안나와서 문제지만(..)  일단 다음화에 카렌 등장은 확정입니다.  카나데는.. 나중에 생각하죠!

0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