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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카「나 말야, 너를, 만나러 왔어」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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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30, 2016 20:25에 작성됨.

전편

하루카「나 말야, 765 프로덕션이라는 곳에서… 아이돌을 하고 있어」

하루카「나 말야, 너를, 만나러 왔어」 - 1

하루카「나 말야, 너를, 만나러 왔어」 - 2

하루카「나 말야, 너를, 만나러 왔어」 - 3

※ 가능하면 라이트 모드로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

 

 

소리가 들렸다.


「… 사 결과, 신체적인 이상은 전혀 없다고밖에 말씀드릴 수 없네요.」


그와 함께 잠겨 있던 의식이 어렴풋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자신이 지금 누워 있다는 것, 그리고 곁에서 누군가가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가 어딘지도, 지금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다. 내가 잠들었었나. 잠시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내 기억이 또렷해졌다. 유키호의 영업 현장을 견학하기 위해서 함께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차 안      에            머리 가아 팠   다다다     손끝이떨렸,            서


「그렇다는 말씀은…?」


아직은 낯선 목소리였지만 어렵잖게 주인을 알 수 있었다. 765 프로덕션의 프로듀서다. 방금 들었던 말의 내용과 연관지어 생각하자 어느 정도 상황이 파악되기 시작했다.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만 나를 프로듀서가 병원으로 급히 데려와 준 것이리라. 신체적 이상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다. 원인은 완전히 다른 데에 있었으니까. 아니, 꼭 그렇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머리만큼은 확실히 이상해져 버렸을지도 모르는걸.


「뭔가 심리적인 이유라고 생각됩니다만. 큰 충격을 받았다거나요. 짚이는 부분은 없으신가요?」


의식은 완전히 돌아와 있었다. 그러나 눈을 뜨지 않았다. 뜨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뜰 기력 같은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큰 이유인가는 스스로도 모를 일이었다. 그저 자는 듯 눈을 감은 채로, 의사로 추정되는 사람과 프로듀서의 대화를 들었다.


「그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아무래도 남성에 대한 공포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 때문일지도…」


남성 공포증. 그렇게 이름을 붙일 수도 있을까. 실제로 그와 흡사한 증세를 보이고 있으니까. 비록 그것이 혼절의 이유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바로잡아 주기 위해 참견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단순히 그럴 힘이 없었기 때문일까. 이러면 아까랑 똑같구나. 의지도, 힘도 없다면 나에게는 무엇이 남아 있는 걸까. 멍하니 그런 것을 생각했다.


「그럼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게 타당하겠네요. 정신은 곧 차릴 것 같은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입원 절차를 치르시겠어요?」


입원 같은 것은 필요없다. 하지만 시킨다면 굳이 저항할 생각도 없었다. 어디에 있든지 변하지 않을 테니까. 그저, 입원하게 될 병실이 높은 층에 위치해 있다면 조만간 스스로를 억제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걱정거리였다.


「… 아닙니다. 이상이 없다면 이만 데려가도록 하겠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잠시 고민하는 듯 망설이던 프로듀서는 그렇게 대답했다. 데려가겠다니, 혹시 들쳐업어 옮기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마자 머리칼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곧바로 몸을 반쯤 일으켰다. 눈을 뜨자 상당히 놀란 눈치의 의사와 어정쩡한 자세로 멈춰선 프로듀서가 보였다. 예상하던 대로 어느 병원의 응급실인 것 같았다. 꺼낼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환멸스러웠다. 아무렇게나 몸을 일으켜 침대 밑에 놓인 신발을 꿰어차듯 신었다.


「아… 아아, 하루카. 일어나 있었어? 그러니까, 그, 몸은 괜찮은 거지? 아픈 데는 없고?」


말없이 고개만을 끄덕이고서 먼저 응급실을 나섰다. 허둥대며 뒤를 따르는 프로듀서를 외면하다시피 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례하다고 여겨지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무례라면 진작에 범했다. 저 사람에겐 아무 잘못도 없지 않은가. 알고 있는데도.


─ 알고 있는데도 어쩔 수 없는 일 같은 건 세상에 너무나도 많다.


병원 밖으로 나왔다. 낯선 거리였다. 타고 있었던 차량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곧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렇기에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엷은 당혹에 물든, 그러나 대상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목소리로 프로듀서가 물어 왔다.


「하루카, 정말 괜찮아? 기절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움직이면 위험하다고.」
「……」
「… 으음.」


대답이 없자 프로듀서는 꽤 난처해하는 눈치였다. 어쩌면 주의를 주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묵은 그다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일단 차로 가자. 유키호의 영업 현장에 가야 해. 혼자 남겨두고 와 버렸거든.」


책망하는 말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내용이었지만, 어조는 무척이나 평탄했다. 오히려 조심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프로듀서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하루카는 잠시 선 채로 그 등을 지켜보다가 이내 따라 걸었다. 손을 잡아끌지 않는 것 역시 그 나름의 배려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발물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을 배려라고 부르지는 않을 테니까.
차는 가까운 곳에 주차되어 있었다. 뒷좌석의 문을 열고 탑승하자 운전석에 앉은 프로듀서가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 무심코 옆 좌석을 힐끗 보았다. 아무도 없다. 구태여 확인할 필요조차 없는 사실이었다.
프로듀서는 말없이 운전에 집중했다. 시선을 둘 곳이 마땅치 않았기에 하루카는 창 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결코 유쾌하지 않은 고착이 몇 분이나 지속되었을까. 먼저 말을 꺼낸 것은 하루카였다.


「… 죄송해요.」


단순하기 짝이 없는, 주변이 조금만 시끄러웠더라도 들리지 않았을 미약한 사죄였다. 그러나 프로듀서는 그것을 놓치지 않은 것 같았다. 정적이 꽤나 거북했던 듯 프로듀서의 응답에서는 안도감마저 느껴졌다.


「사과하진 않아도 돼. 그저… 그런, 쪽으로 주의해야 한다는 건 미처 듣질 못했거든. 미리 말해 줬더라면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겠지.」
「……」
「아아, 그… 뭔가 질책하는 것 같은 투가 되어 버렸는데, 그러려던 건 아니야. 애초에 말했었다고 해도 우리 사무소엔 여성 프로듀서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니까. 리츠코가 비슷하다면 비슷한 느낌이지만… 하하하.」


조금쯤은 따라 웃어 주기를 바란 행동이었겠지만, 기대에 부응할 만한 활기는 남아 있지 않았다. 프로듀서는 조금 무안해졌는지 화제를 돌렸다.

「… 그런데 제대로 인사도 못 한 것 같네. 알고 있겠지만 내가 너희들의 프로듀서야. 우리 사무소에서 활동하게 된다면 아마 자주 보게 될 텐데, 보다시피 난 남자니까 말이지…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나도 될 수 있는 한 조심하도록 할게.」
「… 우습지 않으신가요?」
「응? 뭐가 말이야?」


생각한 그대로를, 읊조리듯 말했다.


「저런 애가 아이돌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


프로듀서는 말문이 막힌 것 같았다. 무의미한데다 무례한 질문이다. 알고 있다. 만약 저 사람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그런 대답은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아까 차에 함꼐 타고 있었을 때의 유키호와 다를 바가 없다. 얼핏 의견을 묻는 것처럼 들려도, 사실은 스스로 생각해내고 스스로 사로잡혀 버린 무언가를 토해내고 싶을 뿐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감당하지 못하는 약함의 증거다. 지긋지긋하다고 느꼈다. 기분나쁜 환멸감이 전신에 스멀스멀 퍼져간다. 자기 자신을 어찌할 수 없었다. 싫다. 그만두고 싶다.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이것도 저것도 나 자신도 모든 것이 싫어서 이젠 안 되겠다고 느꼈을 때였다.


「나한테 그럴 자격은 없어.」


실로 간단하게, 프로듀서는 노래하듯이 답했다.
전혀 예상치 못헀던 내용과 말투에 순간 아연해지고 말았다.


「이 일을 하면서 느낀 게 그거야. 다들 꿈을 가지고 있다는 거. 하나같이 소중한 목표들이었어. 적어도 우리 사무소 애들은 그렇더라고. 그야 개중엔 좀 유치한 것도 있고, 애처로운 것도 있고, 좀 과하게 비장한 것도 있었지만… 좌우지간 무시해도 될 만한 건 하나도 없었거든.」
「……」
「하루카 너한테도 있지?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던 이유가. 그게 뭔지는 몰라도, 적어도 타인이 함부로 재단해도 될 만한 건 아니지 않을까.」


이유. 목표. 이질적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단어에 제멋대로 몸이 움찔했다. 단어 자체의 등장보다도, 그것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는 사실 자체가 하루카를 전율케 했다. 머릿속에 검은 잉크가 느릿하게 퍼져간다. 공포스러운 감각이었다. 무언가 떠올려내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빛 한 점 존재하지 않는, 시커멓게밖에 보이지 않는 물 속에선 아무것도 건져올릴 수 없었다. 그 안에 틀림없이 무언가가 존재할 텐데. 존재했을 텐데. 아니, 그렇지만. 나는 무슨 이유로 그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일까. 믿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데도, 무엇을 근거로?


목표로 삼았었던 것. 품었었던 꿈. 강하게 바랐던 것. 나는 왜 이곳에.
그것은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조차 없었던.

 


─ 어렸을 때부터, 계속 꿈꿨어


치, 하야.

 


「… 다 왔다. 유키호 데리고 금방 돌아올게.」


프로듀서가 차에서 내렸다. 가벼운 현기증을 억누르고 창문 밖을 보자, CD 판매점 앞에서 인파에 둘러싸여 음반에 사인을 해 주고 있는 낯익은 소녀가 눈에 띄었다. 유키호다. 만면에 부드러운 웃음을 띄운 얼굴에서 평소의 유약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을 보고서 새삼 인식했다. 아니, 인식이라고 하기보다 오히려 자조에 가까운 것이었다. 실소라도 흘리고 싶은 심정으로 꼴사나운 깨달음을 마음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진짜 영업'이라는 건, 저렇게 하는 거였구나.


「하루카! 정신을 차렸었구나…! 모, 몸은 어때? 입원 같은 거 하지 않아도 괜찮아?」


차에 올라탄 유키호는 먼저 타고 있었던 하루카를 알아보기가 무섭게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기세로 물어 왔다. 하루카는 고개를 느릿하게 저었다.


「… 응, 괜찮아. 미안 유키호. 나 조금 쉴게」
「앗, 알… 았어. 푹 쉬어, 하루카」


시트에 몸을 뉘이고 눈을 감았다. 더 이상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차체의 진동과 함께 깜빡이던 의식은 서서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갔다.

 

 

***

 


사무소에 도착한 직후, 프로듀서에게 조퇴를 권고받았다. 얌전히 수긍하고서 두 사람을 배웅했다. 유키호는 염려가 가득한 표정으로 연신 뒤를 돌아보며 계단을 올랐다.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조용해졌다. 혼자가 되었다. 익숙할 터인데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공간을 휘감는 고요를 비집고 누군가가 말을 걸 것만 같아서, 참을 수 없이 불안해진다.


「……」


생각이 지나쳤다. 떨려오는 몸을 양팔로 짓누르듯 껴안았다. 어서 돌아가자. 프로듀서의 말대로 휴식하면서 컨디션을 회복해야 한다. 결국 영업 견학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앓는 소리를 할 수 있을 만한 여유는, 없다. 좀 더 채찍질해야 해. 더 몰두해야 해.

그렇게만 하면─ 주위의 소음 따윈.


계단으로부터 등을 돌려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 주변은 점차 어두워지고 있었다.
건물로부터 어느 정도 멀어졌을 때 무심코 사무소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노란색 테이프로 이루어진 세 자리의 숫자가 어설프게 붙어 있는 사무소 창문. 저 너머에서는 아마 지금도 모두가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다. 게임을 하던 아미와 마미가 유키호를 반갑게 맞아 주고, 코토리는 프로듀서에게 수고했다며 인사를 건네겠지. 소파에서 자고 있던 미키가 하품을 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리츠코가 한숨을 쉬고, 아즈사는 흐뭇하다는 듯 푸근하게 웃을 것이다. 그리고, 직접 만들어 온 과자를 모두와 나누어 먹던, 언제나 긍정적인 것이 장점인 여자아이가, 그 중심에.

그것은 가슴이 따뜻해지는 추억. 굉장히 그리운 풍경. 지금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데.


「… 에헤헤.」


오직, 나밖에 알지 못해.
실로 오랜만에 듣는 자신의 웃음소리는 흉하게 메말라 있었다.


「… 그렇지. 치하야랑… 같이 음악을 듣고 있었으려나. 자주… 그랬는데.」


내가 치하야의, 혹은 치하야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서, 각자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누어 착용하고, 같은 음색을 함께 공유하며, 이 부분이 좋다던가, 여기는 치하야가 부르면 잘 어울릴 거라든지, 하는 느긋한 감상을 나누기도 하고.
입가가 움찔움찔 경련했다. 그것이 미소를 띄우기 위한 움직임이었다는 것을 조금 늦게 알아차렸다. 그저 웃는 것뿐인데, 왜 그것만으로도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일까.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인가.
모르겠어.


언제부턴가 발은 멈춰 있었다.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것조차 잊고서,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사무소의 창문을 하염없이 응시했다. 입만은 계속해서 달싹이며 의미 모를 중얼거림을 흘리고 있었다. 건조하게, 한결같이.
눈 밑에 가져다 댄 손가락 끝이 소리를 내지 않고 젖어들었다.

 

***


하루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사무소에 돌아온 것은 프로듀서와 유키호 둘뿐이었다. 동행했을 터인 하루카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것을 단번에 눈치챈 치하야는, 자신이 그토록 신경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에 다소 곤혹스러워하며 프로듀서에게 질문했다.


「프로듀서, 아마미 씨는 어디에 있나요?」
「아아, 치하야. 하루카는 먼저 돌려보냈어. 컨디션이 안 좋아져서.」
「컨디션…?」
「… 그게, 차 안에서 쓰러졌거든. 금방 정신을 차리긴 했는데, 아무래도 쉬게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으니까.」
「쓰러─ 지다니」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치하야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 이상 말해줄 생각은 없는 듯 프로듀서는 묵묵히 자신의 책상으로 향했다. 유키호만이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문을 바라보며 오도카니 서 있을 뿐이었다.


「… 저어, 하기와라 씨? 무슨 일이야?」
「헤? 앗,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그냥… 하루카가 걱정돼서.」
「하루카?」


놀랐다, 고 하기보다는 그저 조금 의외였다. 유키호는 언제부터 하루카를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일까. 정작 유키호는 치하야의 반응으로부터 무엇도 느끼지 못했는지 두 손을 초조하게 맞잡은 채로 고개를 떨구있다.

 

「괜찮을까…? 집까지 잘 돌아갈 수 있을까? 역시 데려다 줬어야 했을지도…」


걱정이 과할지도 모르겠지만, 확실히 갑자기 쓰러져 버린 사람이 또다시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인적이 없는 곳에서 의식을 잃기라도 한다면 큰 사고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 의식, 을」


사고가 우뚝 정지했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애초에 이 점을 확인해야만 했다. 반드시 의미가 있을 거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더라도.


「하기와라 씨, 아마미 씨가 차 안에서 쓰러졌다고 했지? 이유는? 짐작 가는 건 없어?」
「이유? 그게,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건, 있어.」
「들려줄 수 있을까?」
「으음, 그게…」


유키호는 잠시 주저하다가 머뭇머뭇 대답했다.


「하루카, 아무래도 남성 분을 무서워하는 것 같아.」
「… 남성을?」


치하야는 아연해지고 말았다. 지나치게─ 갑작스럽다.


「응. 운전 도중에 프로듀서가 말을 거셨는데, 곧바로 심하게 떨더니… 그렇게」


혼란스러운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치하야는 유키호의 말을 곱씹었다. 남성공포증. 말하는 장본인인 유키호 역시 갖고 있는 증상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의지로 극복 가능한 정도에 그칠 뿐으로, 증상이라고까지 표현할 수준까지는 이르지 않는다. 두려움으로 정신을 잃을 지경이라면 유키호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중증이 아닌가. 그래서야, 도저히.


「도저히… 아이돌 같은 건」


그렇게 중얼거린 것이 다름아닌 자신임을 깨닫고 치하야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함부로 발을 들여놓아도 될 영역이 아니다. 무슨 주제넘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 그치만, 어쩌면 그것만이 아닐지도… 몰라」

「그건, 무슨 뜻이야?」


번잡한 의식 안으로 유키호의 의기소침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치하야가 되묻자 유키호는 힘겹게 쥐어짜내듯 입을 열었다.


「정신을 잃기 직전에 하루카가 날 봤어. 그 다음 곧바로 기절해 버렸으니까, 그렇게 길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유키호는 말을 잇지 못하고 시선을 피했다. 아마 무척 말하기 괴로운 내용이기 때문이리라고 치하야는 직감했다. 그럼에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데?」
「……」


유키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새하얀 손끝이 코트 자락을 강하게 쥐었다. 갈등이 여실하게 느껴지는 몸짓이었다. 자신이 본 것의 진위를,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치하야는 그저 시선을 통해 답을 재촉했다. 마침내 유키호가 입을 열었다.


「─나를, 무서워하고… 있었을… 지도 몰라.」
「…… 에」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렇게밖엔 대답할 수 없었다. 유키호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지 모른다고 후회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것은 치하야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아무 것도 제대로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생소하지는 않았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 애가 '우리들'에게─ 치하야에게 보내는 시선에 짙은 공포심이 깔려 있다는 것 정도는. 단지 그 이유가 짐작이 가지 않았을 따름이다. 아마미 하루카라는 아이는,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에게 겁을 먹고 있기라도 하다는 건가. 그런 터무니없는 가정을 가져다 붙이고서도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은 남아 있었다.
그토록 두려움에 떨고, 괴로워하고, 도망치고 싶다고 써 붙여 놓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도.
왜, 그 아이는.


「…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엣, 치하야…!?」


유키호를 지나쳐 그대로 사무소를 나왔다. 어둑어둑해진 계단을 내려가면서 치하야는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졌다. 근거조차 없는 예감이 아닌가.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나. 그러나 이성은 순수한 호기심으로 덧칠되어 사라졌다. 어떻게 해서든, 알고 싶었다.

1층으로 내려온 치하야는 건물을 벗어났다. 동시에 예감은 현실로 모습을 바꾸었다.


멀찍이에서 가로등의 불빛을 받으며, 그 아이가 서 있었다.
사무소 방향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는 채였다.

 

***


멈춰 있다고 느꼈다.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자동차의 소리도, 조금 쌀쌀한 저녁의 공기도 하루카에게는 닿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아마미 하루카는 세계에서 오직 혼자였다. 그런 상태가 얼마나 계속되었을까. 주위가 완전히 어두워지고, 한기에 노출된 손이 발갛게 얼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추위 탓에 죄어들듯 아파 오는 귀가 돌연 무언가를 감지했다. 발소리다. 그렇게 인식한 하루카는 시선을 내려 소리의 근원을 확인했다. 제대로 초점이 잡혀 있지 않던 그 동공이, 단숨에 팽창했다.


「…… 아」


잘못 볼 리가 없다. 이 쪽을 향해 똑바로 걸어오고 있는 것은.


「아… 아아아…」


하루카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푸른 머리의 소녀.

 


「── 힉」


그 다음을 이해한 순간 하루카는 그 자리에 무너졌다.
몸을 웅크렸다. 머리를 끌어안았다. 널부러진 두 다리를 버둥대며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신발이 흉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긁을 뿐이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쳤다.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 질끈 감은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넘쳤다. 이제 싫다. 그만둬. 나한테 다가오지 마. 부탁이야. 사라져 줘─
발소리가 더욱 빨라졌다. 달려온다. 그것을 깨달은 직후 어깨 위에 손이 얹혔다. 극한의 공포로 굳어있던 몸이 크게 움찔했다. 안 돼. 귀를. 막아야─

「아마미 씨…!?」


── 아.


「……」


필사적으로 감았던 눈을 가늘게 떴다. 위를 올려다보자 낯익은 소녀가 당혹과 근심이 뒤섞인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다르다. 거기에 방금 그 호칭. 그렇다는 건, 이 아이는.


「…… 치하야…?」


망연하게 굳어 있던 하루카의 입에서, 엉망으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괜찮은 거야? 갑자기 쓰러져서 또 의식을 잃은 줄 알았어…」
「… 또」
「하기와라 씨로부터 들었어. 차 안에서 기절했었다고. 그래서…」


그렇구나. 이 사람은 진짜 키사라기 치하야다.
저주도, 경멸도, 비아냥도 하지 않는다.
손이 불쑥 내밀어졌다. 하루카는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설 수 있겠어?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거라면, 사무소에서 사람들을…」
「아냐. … 괜찮아.」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길바닥에 쓰러진 탓에 옷이 지저분해져 있었다. 꼴사납다. 후회와 환멸감이 의식을 거세게 채찍질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슬펐다. 그러나 그런 것을 내색할 수는 없었다. 아마미 하루카와 키사라기 치하야는.


'그래도 좋은 관계' 같은 게, 아니다.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아아.
어찌나 비극적인 일인지.
알고 있는데도 어쩔 수 없는 일 같은 건, 너무나도 많다.


「걱정하게 해서 미안. … 돌아갈게. 괜찮으니까.」
「아, 잠깐…」


붙잡으려는 치하야를 뒤로 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부어오른 눈가가 시큰거렸다. 강하게 쥔 손이 아팠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이유는 오한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른팔을 들어 왼팔을 쥐어뜯듯이 움켜잡았다.


─ 네가.


「기다려, 아마미 씨!」


하루카는 멈춰섰다. 여전히 치하야를 등진 채였다.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 왜 네가.


「아마미 씨는, 무엇 때문에」


움켜쥔 손에서 꾸욱, 하는 소리가 났다. 팔이 아프다. 악문 이가 아프다. 마음이 아프다.


─ 하필이면, 왜 네가.


마침내 키사라기 치하야는 그 입으로 하나의 물음을 자아내고.

 


「무엇 때문에 아이돌을 하고 싶은 거야?」
「하루카는 어째서 아이돌이 되었어?」

 

 


「──, ── 왜 네가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 순간, 아마미 하루카는 붕괴했다.


「───나는!!」


몸을 굽혀 토해낼 듯한 기세로 부르짖었다.


「나는…!! 치하야, 너를… 위해서… 만나기 위해서… 너를!! … 왜애애!!?」


부조리함을, 억울함을, 안타까움을, 애틋함을, 폭발하듯 역류하는 것들을 전부 내지르고.


「…… 저기, 치하야… 왜…?」


완전히 잠겨 버린 껍데기 같은 목소리는, 과연 소녀에게 닿았을까.


「… 왜 치하야가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진정, 멈춰 있다고 느꼈다.
등 뒤로부터는 이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루카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치하야는 제지하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힘이 풀려 주저앉을 듯 비틀거리며, 하루카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땅 위에 떨어진 눈물의 흔적만이 마치 발자국을 남기듯 소리없이 뒤를 따랐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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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할 정도로 느린 연재만큼 기합 넣고 썼습니다

...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만 어떻게 읽힐런지는.

쓰면서 조금 우울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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