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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o]파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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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29, 2016 06:21에 작성됨.

휴일 전날의 밤은 사람 속에 있는 음주가무의 습성이 최고점을 찍는 시간대라고 할 수 있다. 2일간의 휴일의 화려한 개막식이 도시의 거리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침샘을 자극하는 노점들과 웃음 짓는 사람들, 그리고 만석의 음식점들 까지! 작은 축제라고 표현해도 되리라.

이 축제 덕에 한창 고생하고 있던 술집 자식 겸 종업원인 나야카는 가게의 구석을 쳐다봤다.

로브를 뒤집어 쓴 사람이 홀로 앉아 과일주를 홀짝이고 있다. 물론 이 정도 광경은 나야카에겐 일상이었기에 딱히 흥미로울 건 없다. 하지만 술집 아들이자 종업원으로 살며 얻은 ‘사람을 보는 눈’이 “저 사람 뭔가 특이하네.” 라고 말했다.

나야카는 흥미를 참지 못 하고 그에게 걸어갔다.

 

“혼자에요? 동석해도 될까요?”

 

그가 고개를 들자 머리를 덮은 후드의 아래로 영롱한 청색의 눈이 살짝 비췄다. 예쁜 색이다.

 

“...원하신 다면.”

 

여성의 목소리였다. 나야카는 ‘여자였나. 안쓰럽구만, 흉부가‘ 라고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죠. 마야카! 여기 물 안탄 듯하게 탄 꿀술 한잔만!”

 

“아, 오빠 또 농땡이!”

 

“임마, 농땡이가 아니라 손님맞이다!”

 

마야카는 투덜거리며 주방으로 향했다. 나야카는 ‘나중에 먹을거리 좀 사주면 풀리겠지.’ 라고 생각하며 앞을 보았다. 로브 쓴 여자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있었다.

 

“귀엽네요. 저 아이.”

 

“오빠인 제가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확실히 먹히는 얼굴이죠.”

 

“네... 그나저나, 술집 종업원이 무슨 일로?”

 

“쉬는 시간에 술도 한잔 하고 적적하신 숙녀 분과 담소라도 나누고자 했습니다만...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말주변과 재미가 없는 여자여도 괜찮으시다면.”

 

니야카는 미소로 대답했다.

 

“제 이름은 나야카입니다. 이름을 물어도 될까요?”

 

“...라기라고 불러주시길.”

 

“불러 달라... 본명은 아니란 건가요?”

 

“저의 본명은 마을을 오갈 때마다 바뀌니까요.”

 

나야카는 속으로 자신의 감각에 감탄했다. ‘사람을 보는 눈’ 제법 쓸만 한 걸. 이렇게 특이한 사람을 골라내다니.

 

“부랑자에요?”

 

“이곳저곳에 덧없는 이야기나 읊는 부랑자지요.”

 

“음유시인?”

 

라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술을 들이켰다. 그러는 사이 마야카가 탁자에 술잔을 탁 두고 돌아갔다. 어지간히 삐진 행색이었다. 풀어주는 것은 나중일이고, 나야카는 당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음유시인이면 다니는 곳에 자신의 이름을 알려 유명해지고 싶어 하지 않아요? 계속 이름을 바꾸면 그러지 못 하잖아요.”

 

음유시인에게 명성은 중요하다.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시와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이름을 알린다.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 유명한 파티에 초청 되어 노래를 부르거나 광장 같은 곳에서 공연을 해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런 음유시인이 이름을 바꾸다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음유시인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나요?”

 

술잔을 내려놓은 라기는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장면이요? 흠... 모닥불에 둘러 않은 서너명의 박수를 받으며 공연하는 음악가?”

 

라기는 우습다는 듯 피식 웃었다.

 

“보통은 그런 낭만적인 장면을 생각하겠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실력 있고 유명한 음유시인들은 귀족들과 장군들에 좋은 장기말이 됩니다. 돈을 쥐어주며 ”저 마을에 나의 위대함을 알려주게.“ 라고 명령 하죠. 있지도 않은 미담을 그려내는 일은 고역. 그렇기에 저는 이름을 바꿉니다.”

 

그런 이유였나. 나야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나야카는 라기에 발언에 담긴 엄청난 자신감을 깨달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건 잘만 구슬리면 써먹을 수 있다.

나야카는 사기꾼이나 지을 법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힘드시겠네요. 그렇게 힘들어야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라기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로브 아래에 있던 맑은 청안이 나야카를 째려봤다.

 

“...그게 무슨 소리죠?”

 

“아뇨 뭐~ 사람의 고생은 절반쯤은 본인이 사서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잠깐의 침묵. 라기는 이 애매한 말이 무슨 의미일지 머리를 굴렸다. 뭐, 이 능글맞은 태도를 보면 답은 금세 나온다.

 

“그럴 필요가 없다... 라고 말하시는 건가요?”

 

걸렸다. 나야카는 속으로 환호을 질렀다.

 

“귀족들에게 이름을 알리기가 싫다. 유명해지기 싫다. 그래서 일부러 이름을 바꾼다. 즉 이름만 안 바꾸면, 마음만 먹으면 자신은 언제든지 유명해질 수 있다. 라고 말 하시는 거죠?”

 

나야카는 ‘흠... 과연?“ 이라는 뜻이 담긴 비웃음을 끝으로 입을 닫았다.

 

라기는 한숨을 쉬었다. 나야카라는 청년이 왜 자신을 자존심은 건드리려는지 알 수 가 없다. 여기서 문제는 실제로 자존심이 건드려졌다는 것.

 

“네, 맞아요.”

 

라기는 강한 어조로 대답했다.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따로 해본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이류 음유시인들은 죄다 들러리로 만들 수 있으리라.

 

“흠, 그럼 여기서 증명해 주실 수 있나요? 저기 있는 간이무대에서요.”

 

나야카는 가게의 한 켠에 있는 단을 가리켰다. 라기는 실소했다. 과연, 이게 목적이었나. 그냥 술집 분위기도 띄울 겸 공연 한 번 해달라고 하면 될 것을. 말 한번 어렵게 하는 남자였다.

라기는 상 아래에 두었던 류트를 들고 일어나 무대 쪽으로 몸을 틀었다. 빨리 간이 무대로 올라가 해치울 심산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나야카의 말에 막혔다.

 

“예, 그럼 무대 대여료 10000골드 되시겠습니다.”

 

“네?”

 

라기는 황당하단 표정을 지으며 돌아봤다. 나야카는 능청스레 말을 이었다.

 

“당연하잖아요? 당신은 유명한 초대가수가 아니에요. 오히려 완전 무명. 자신을 홍보하는 공연을 한다구요. 그럴려면 무대를 대여해야 하죠. 오히려 감사를 받아야 할 지경이라구요. 무명 음유시인에게 이런 황금시간대의 무대를 준다니. 잘못 해서 허접한 무대를 보이면 가게에 손해가 와요.”

 

라기는 한숨을 쉬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돈을 내면서 까지 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흠... 역시 고생을 사서 하시는 타입이셨네.”

 

아 이거였나. 라기의 한쪽 입 꼬리가 씨익하고 올라갔다. 기분 좋음이 아닌 짜증남이 담긴 웃음.

 

“당신 술장사를 이어 받기보단 상업에 발을 담그지 그래요?”·

 

“그럴까요?”

 

나야카는 크게 웃으며 속으로 말했다. ‘자, 어느 것을 고를래, 청안의 음유시인씨.’. 나야카는 처음부터 라기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할 심산이었다. 10000골드를 내고 공연을 할래? 아니면 너의 실력을 입증 못하고 허세나 떨어대는 딴따라가 될래? 물론 라기가 자존심이 쌔지 않거나 남이 뭐라던 한 귀로 흘리는 사람이었다면 다 부질 없는 짓이다. 하지만 나야카의 ‘사람을 보는 눈’ 이 말했다. “이 여자 자존심이 엄청나.” 라고. 감각에 의지한 맞추기가 아주 제대로 먹혔다. 라기가 분에 못 이겨 공연을 한다면 10000골드를 번다. 실력이 있다면 더 좋은 거고 아니여도 상관없다. 이미 수입은 있으니까. 그녀가 무대를 안 해도 손해는 0. 굳이 손해라면 라기와의 인간관계겠지만 부랑자 한명에게 욕 좀 먹는다고 가려울 귀가 아니다. 이거 정말 장사를 시작 해 볼까?

라기는 나야카를 빤히 쳐다봤다. 어찌해야 할까. 사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말 따윈 무시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안에 깊이 자리 잡은 음악에 대한 자존심이 그것을 막았다. 그럼 그냥 무대를 대여해 공연을 할 까? 그것도 안 될 말이다. 10000골드가 적은 돈아 아니거니와 이 남자의 손바닥에 놀아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계책이 필요하다. 실력을 증명하면서 이 남자의 술수에 걸려들지 않을 수 있는 계책이.

 

“리이나 이 멍청이!!! 바보!!! 정신을 어따두고냥!!!”

 

갑자기 가게 안에 앙칼진 고함소리가 울렸다. 소리의 근원지는 가계 입구의 카운터.

 

“으... 미안하다니까...”

 

“해결책을 내놓라냐! 내일 아침 떠나야 하는 데 설거지 하게 생겼다냥! 진짜 미쳤냐!”

 

“으으... 이미 잃어버린 걸 어떻게...”

 

“조금 이면 말도 안 한다냥!! 그 많은 돈을!!"

 

두 명의 단발소녀가 계산대 앞에서 언쟁을 하고 있다. 아니 언쟁은 아니다. 한 쪽이 일방적으로 사과하고 있으니.

라기는 두 명을 빤히 주시했다. 저 두 명,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가능할지도...

라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다. 뒤에서 들리는 나야카의 말을 무시한 체 3명의 대화에 난입했다.

 

“주인장. 만약 내가 이들이 먹은 음식의 가격만큼 가게에 이득을 준다면 넘어가 주겠어요?”

 

뜬금 없는 인물의 등장은 3명을 침묵시켰다. 침묵을 깬 건 냥냥거리는 소녀였다.

 

“지... 진짜냥!? 고맙다냥!”

 

냥냥소녀(?)는 라기의 양손을 잡고 흔들며 웃음 지었다. 고양이 보단 개 같은 걸. 라기의 쓴웃음을 지었다.

 

“빌 붙는 건 뭐랄까 멋있지 않...악!!”

 

불만스러워 보이는 리이나의 뒤통수에 따귀가 갈겨졌다.

 

“넌 좀 닥쳐라냥.”

 

"왜 떄려!!"

 

"주제를 알아라냥!! 도와달라 빌어도 모자랄 판에!"

 

그새를 못 참고 투탁거리는 두 명을 무시한 체 사장이 입을 열었다.

 

“아가씨, 아가씨가 내주기라도 할거요?”

 

라기는 고개를 저었다.

 

“가게의 문과 창문을 열어주시고 저 간이무대를 서게 해주세요. 무대사용료 까지 포함 해 싹 다 벌어드리죠.”

 

“흠... 악사요?”

“네.”

 

사장은 턱을 매만지며 고민했다. 두 명에게 설거지라도 시킬 심산이었지만, 사실 설거지 할 사람은 지금도 충분하다. 사장 입장에서 두 명이 며칠 간 설거지 해봤자 아무런 이득도 없다. 그렇담 차라리 설거지를 시키는 것보다 호언장담하는 이 악사를 믿어 보는 게 더 났지 않을 까? 자신감 있는 표정을 보니 한 실력 하겠지.

 

“뭐, 한번 해봐요. 무대료 10000골드에 이 두 명이 먹은 20000골드, 혹여나 가게 분위기 망치면 당신 술값 배로 받을 거니 그리 아쇼. 마야카! 앞에 창문 좀 열어라!”

 

라기는 주인장의 허락에 목례로 감사를 표했다. 마야카가 가계 앞의 창문과 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자 그럼 준비를 할까... 무슨 곡을 하지? 머리를 굴리고 있던 라기의 어깨에 손이 얹어졌다. 뒤를 돌아보니 냥냥소녀와 리이나가 서있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고맙다냥! 난 미쿠다냥! 우리가 뭐 도와 줄 건 없냥? 뭐든 하겠다냥!"

 

"왜 도와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도 급하니 감사히 도울게. 무대에 할 거야? 나도 노래 좀 하는데 도와줄까?"

 

"도움...이라."

 

라기가 이들을 돕는 이유는 호의 따위가 아니라 나야카의 계략을 타파하기위해서이다. 어찌 보면 이용하는 거니 감사를 받을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걸 대놓고 말 할 수는 없다. 여기선 시답잖은 도움이라도 받는 것이 서로 편할 것이다.

라기는 무엇을 부탁 할지 고민했다. 같이 무대를 할 마음은 없다. 그렇다면... 음유시인에게 도움을 주는, 힘을 주는 건 하나 밖에 없다.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부탁. 이거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힘내서 즐겨주시길."

 

""에..?""

 

황당해 하는 두 명을 뒤로 한 체, 라기는 자리로 돌아와 로브를 지탱하고 있던 매듭을 스륵 풀었다. 로브에 가려져있던 얇은 몸매와 살랑거리는 청장발, 도도한 이목구비가 나야카의 눈을 사로잡았다. 로브 따위로 가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외모다.

그녀의 외모에 홀려있던 나야카의 앞에 라기의 검지손가락이 들이닥쳤다. 라기는 말했다.

 

“잘 들어요."

 

나야카는 휙 돌아 무대로 걸어가는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돈 뜯어낼 사람을 잘못 골랐나. 아니 가계입장에선 완전 이득이니 좋은 건가?'

라기가 무대에 오르자 시끄럽던 가계 안이 약간이나마 조용해졌다. 라기는 관객들을 슥 흩어봤다.

음유시인들에게 있어서 술집 공연은 위험부담이 있는 공연이다. 술 취한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니 뭐든 위험하지 않으랴. 허접한 무대를 했다가 술잔을 머리에 날아왔다는 이야기는 라기도 수없이 들어봤다.

'뭐, 그건 그 사람들 이야기지.'

라기는 류트로 화려한 곡조의 전주를 연주했다.

짧은 전주가 끝나고 라기의 입이 열렸을 때, 천사의 목소리라고 불렸던 그녀의 목에서 음이 나왔을 때. 가게엔 오직 한명의 목소리만 있었다.

 

노래가 끝난 후, 열린 창문으로 흘러나간 음악에 홀린 사람들이 가계 앞에 줄을 이뤘고 무대 앞엔 지폐와 동전이 쌓여 있었다. 손님들의 뇌리엔 이름 두자가 각인되었다. 라기라는 이름이.

미쿠와 리이나는 라기에게 몇 번이나 감사를 표하고 떠났다. 수중에 돈이 없어 보답하지 못 해 미안하다는 말도 덧 붙혔다.

별이 가득한 하늘을 보며 라기는 생각했다. 일 하기 전 나쁘지 않은 여흥... 일까나? 지붕위에 서있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밤바람과 함께 춤을 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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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안개가 자욱한 시간. 노크소리가 울렸다.

 

"이봐, 문 좀 열어봐."

 

밖에서 보초서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무슨 일이야? 남자는 나른한 눈으로 문을 열었다.

 

"무슨..."

 

그의 나른한 눈이 사백안이 될 만큼 번쩍 뜨였다. 하지만 튀어 나올 것 같이 커다랬던 눈은 금세 감겼다.

침입자가 남자를 제압한 시간은 2초가 채 되지 않았으리라. 입을 틀어막고 뒤로 돌아가 목을 조르며 대바늘을 목 뒤에 쑤셔 넣자 남자의 몸은 힘없이 무너졌다.

침입자는 축 늘어진 그를 방바닥에 눕히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방안을 뒤졌다.

찾았다. 반란세력의 특수부대인 립스의 자금조달장부 이것이 있으면 반란세력의 자금확보를 약간이나마 막을 수 있으리라. 칩입자는 방 중앙의 책상에 종이를 깔고 장부의 내용을 빠른 속도로 적었다.

다 적은 종이를 돌돌 말은 침입자는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새벽공기를 5초 정도 맞았을 까. 검정색의 깃털과 하얀색깃털이 조화가 멋스러운 커다란 맹금류가 위쪽에서 나타났다. 침입자는 새에게 종이를 건냈다.

 

"빨간 리본에게. 조심히 가. 아바."

 

아바라고 불린 새는 발로 종이를 움켜쥐더니 위를 향해 날개짓 했다.

이젠 다음 임무가 올 때까지 내키는 대로 지내면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침입자는 한숨을 쉬었다.

 

"이건 번외인가."

 

침입자는 등에 매고 있던 활과 화살을 빠르게 빼들어 창문 밖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아바는 고작 활 따위에 당할 아이가 아니다. 화살 따위는 여유 있게 피하겠지. 조심하라고 까지 했으니 걱정은 없다. 그렇다면 이쪽은 본체.

팽팽한 활시위가 풀리고, 화살이 새벽 공기를 갈랐다.

칩입자는 활을 든 왼팔을 내리고 전방을 주시했다.

 

"막았나..."

 

침입자는 혀를 차며 창문을 닫았다. 들킨 데다가 죽이지도 못했다. 서둘러 자리를 떠야한다. 어질러진 긴 청발을 정리하며 침입자는 방을 나섰다.

 

 

민가의 지붕 위, 미쿠는 식겁한 얼굴로 주저앉았다.

 

"아... 안 막았으면 머리를 관통했겠다냥..."

 

"헛실력이 아니네."

 

리이나는 칼을 칼집에 넣으며 대답했다. 리이나가 칼로 화살을 쳐내지 않았다면 지금 쯤 미쿠는 삼도천에 몸을 담갔으리라.

 

"새는 맞췄어?"

 

"짜증날 정도로 여유롭게 피했다냥... 으으..."

 

"뭐, 어찌 보면 당연한가."

 

자신들을 발견하고도 새를 날려 보냈다는 건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다. 밑져야 본전으로 쏴보긴 했지만 역시였다.

 

"추적할거냥?

 

일어난 미쿠는 엉덩이를 툭툭 털며 물었다.

 

"하려면 할 수야 있지만 저쪽도 실력 있어 보이니 잡진 못할 것 같고... 빚도 있으니 넘기는 게 어때??"

 

"상관 없다냥. 반란 측 에게 피해를 주는 건 우리로서도 좋으니까냥. 거기다... 술집에서 빚을 졌으니냥."

 

결론이 났다.

 

"그럼 가자."

 

"그래냥."

 

지붕위에서 내려온 두 명은 거리를 걸었다.

 

"소문만 자자하던 얼룩새와 함께하는 정탐인을 여기서 보다니 별 일이 다 있다냥."

 

"다음 임무가 있을 때 까지 또 이름을 바꾼 체 음유시인으로 살아가겠지."

 

"진짜 엄청난 노래였다냥... 리이나, 너 따위는 상대가 안 될 정도로."

 

"...너무 당연 한 거라 대꾸 할 말도 없다."

 

수다를 떠는 두 명의 사이로 해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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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라~"

성안에서도 화려하기론 둘째라가면 서러운 방안에 흥얼거림이 울렸다. 방의 주인인 하루카의 기분 좋은 콧노래였다.

툭툭툭

갑자기 들리는 창문 두들기는 소리가 하루카의 콧노래를 끊었다. 밖을 보니 새 한 마리가 부리로 창문을 치고 있었다. 하루카는 서랍에서 팔꿈치 아래를 전부 덮는 가죽장갑을 꺼내 왼팔에 착용한 후 창문을 열고 새를 방안으로 들였다.

 

"아바왔구나? 고생했어."

 

하루카는 아바의 발에 있던 종이 받아 책상에 놓은 후, 아바를 왼팔에 앉혔다. 등을 쓰다듬어 주자 기분이 좋은 듯 "골골골" 울음소리를 냈다.

 

"거기 밖에 누구 있니?"

 

하루카의 부름에 시녀 한명이 들어왔다.

 

"예. 영주님! 무슨일이세요?"

 

"아카바네 좀 불러줄래?"

 

"또 아카바네 씨인가요?"

 

"헤헷... 이번에도 몰래 부탁해!"

 

"어휴... 네네."

 

시녀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갔다.

방문이 닫힌 후, 하루카는 아바에게 물었다.

 

"아바. 치하야도 힘들텐데 슬슬 한번 돌아오게 하는 게 어떨까? 뭐... 사실 내가 보고 싶은거지만. 헤헷."

 

짐승인 아바가 대답 하는 일은 없었다. 뭐 당연한가. 하루카는 흐뭇한 미소를 지은 체 아바의 등을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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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조금씩 구상하던 이야기의 시작부분이랄까... 도입부입니다. 더 쓸지 안쓸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재밌게봐주세요.

사실... 맞춤법 검사기를 안돌려서 띄어쓰기랑 오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양해부탁해요.

여담으로 먼저 읽어 본 미쿠P 친구가 "판타지 세계에서 냥냥체라니 졸라 어색하지 않냐?" 라고 말하길래

"아주 어렸을 때 부터 이상성벽을 가진 악덕귀족에게 팔려가 말 끝마다 냥냥체를 붙이게 교육 받았고 매일밤 고양이 플레이를 수반한 하드 플레이 당했다는 설정 어떰?"

이라고 말했더니 살기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리이나가 개 멋있게 구해줌." 이라고 덧붙혔더니 박수를 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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