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오늘의 날씨, 마풍

댓글: 11 / 조회: 648 / 추천: 2


관련링크


본문 - 09-17, 2016 18:28에 작성됨.


그 날은 화창한 날씨에 치하야를 데리고 놀러나가려다가 마코토에게 걸려, 딱 안 죽을 만큼만 맞고서 결국 성에 있는 정원으로 피크닉 장소를 결정한 날이었다.


"치하야쨩에게... 마계어를?"
"그래."


고개를 끄덕이며 뭘 또 다시 묻느냐는 듯한 마코토의 시선에, 하루카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치하야는 정원을 탐색하러 갔는지 그 자리에 없었다. 멀리 가지 말라고 이야기는 했으니 멀리 가진 않았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곤 다시 마코토를 바라본 하루카는 자신의 심정을 솔직히 이야기했다.


"치하야쨩은 아직 그렇게 어린데, 진심이야 마코토?"
"지금 내가 농담하는 것 처럼 보이는건 아니지?"


물론 그렇진 않다.
마코토는 어디까지나 진지하게 치하야에게 마계어를 가르쳐보자는 권유를 하고 있다는 것 쯤은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보다 그녀가 그런 말을 농담으로 할 사람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건.


"하지만 마코토, 저번에 나한테 말조차 못하는 아이한테 마계어를 가르친다고 설치지 말라고 했잖아?"


치하야는 참 똑똑한 것 같다며 자신이 기뻐할 때 저렇게 말한 마코토가 할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를 가득 담아 던진 말에도, 마코토는 태연히 정원 한 곳의 평평한 바위에 자리잡고 앉더니 고개를 끄덕이고선 말했다.


"그랬었지. 하지만 치하야라면 조금 이야기가 다를 것 같아."
"응?"
"말한 대로야. 기억력도 좋은 편이고. 네가 평소 어디에 물건을 두고 쓰고 있는 지 다 기억하고 있지?"


마코토의 말에 하루카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치하야는 하루카가 종이와 잉크를 어디에 두는지, 펜은 어디에 있는지, 가끔 도서관에서 가져와 읽다 놓는 책들도 어디에 뒀는지 다 알고 있다. 때때로 자신이 어디다 뒀는지 잊어버리고 찾고 있는 것을 치하야가 가져올 때도 있다. 그런 경험을 떠올린 하루카가 어쩐지 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질 즈음, 마코토는 무릎 위에 손을 올려놓고 턱을 괸 채 하루카의 표정 변화를 관찰하다 말했다.


"너하고 늘 함께 생활하니, 네 방 정도는 기억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야. 겨우 두 세번 와 본 내 방의 구조도 기억하고 있고, 그 사이 변한 것도 정확히 찾아낼 정도니까."
"으, 응? 치하야쨩이?"
"그래. 한번 본 건 왠만하면 잊지 않는 것 같아. 거기다가 어려운 말이 아니면 다 알아 듣고 있지?"


그 말에 하루카는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맨 처음 데려온 뒤로 거의 여서일곱 달이 지났다. 그 사이에 치하야의 말을 알아듣는 능력은 정말로 급전진한 상태라는 것은 하루카도 알고 있었다. 맨 처음엔 자신의 이름과 부르는 소리밖에 못 알아듣던 치하야는, 이제는 왠만큼 어려운 문장이 아니라면 다 이해할 정도였으니까.
생각해보면 태어난지 일곱달도 안 되었는데.


"익인은 육체의 성장이 빠른 만큼, 정신의 성장도 빠른 종족이야. 치하야의 경우엔 보통 익인보다 정신적인 면의 성장이 좀 빠른 것 같지만... 하여간, 그런 상태라면 아직 말은 못 해도 글은 배울 수 있을 거야."
"어... 그렇지만 아직 말도 못하는데... 너무 서두르는 거 아냐? 왜 그렇게..."
"당연히 서둘러야지. 왕궁에서 사는, 그것도 여왕이 데려 온 녀석이 다른 녀석들과 똑같거나 혹은 그것보다 하위의 수준이어서야 왕족의 자존심이 말이 아니겠지?"


그 말의 반은 자신을 향한 것이라는 건, 마코토의 날카로운 시선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 시선에 식은땀을 흘리며 마코토를 마주 바라보던 하루카는 화제를 돌릴 거리가 생각이 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저, 마코토. 그런데 치하야쨩은 왜 말을 못하는 거야? 말을 전부 이해할 정도라면, 우리의 말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보는... 왜, 왜 그래?"


질문하던 하루카는 갑자기 자신을 이상하단 눈으로 바라보는 마코토에 움찔하며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뭐 옷차림이나 그런 것에 잘못된 건 없다. 뭔가 묻거나, 나무에서 떨어진 벌레도 없고─ 라고 생각하며 마코토를 다시 돌아보는 순간, 마코토가 입을 열었다.


"왠일로 그런 걸 묻지? 바보 하루카가.."
"...마코토오오..."


자신에 대한 신뢰는 이렇게 바닥까지 추락해 있었는가.
그런 의미를 담아 그녀의 이름을 길게 늘여 불렀지만 마코토는 신경도 안 쓰이는 듯, 오히려 대견하다는 양 고개를 끄덕이고선 말했다.


"뭐, 의외지만 설명해줄까."
"...대답해 줄 거라면 서두의 말은 빼도 좋지 않나요..."
"간단한거야. 분명히 말도 알아들을 수 있고, 그 입모양을 흉내낼 수도 있지. 하지만 아직 어리기 때문에 말을 못하는 거야. 성대가 생기지 않았거든."
"에? 그렇지만 치하야쨩, 소리는 내잖아?"


말은 할 수 없다지만, 치하야는 마치 새 울음소리 비슷한 소리는 낼 수 있다. 그런데 성대가 없다니.


"그건 마물이나 인간처럼 성대에서 내는 소리가 아냐. 익인에게만 있는 기관이기 때문에, 익인들이 표현하는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는데. 주머니 비슷하게 생긴... 그래... 그 박사는 '소리 주머니'라고 일컫는 것 같아."
"...피요피요 박사?"
"아무튼 그건 어린 익인만 갖고 있어. 성대와 똑같은 발음 기능은 하지 않지만, 지금 치하야가 내는 것과 비슷한 소리는 낼 수 있지. 익인이 크게 되면 성대가 생기고 발달하는 대신, 그 기관은 퇴화하게 되서 성체가 되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고. 그러니까 저 녀석은 지금 우리와 똑같은 발음을 하려고 해도 소리가 나지 않는 것 뿐이야. 말을 못 하는게..."
"삐이이이이─잇!!!!"


마코토의 설명을 들으며 하루카가 점점 모를 것 같다는 표정을 지어가기 시작했을 때, 갑작스레 치하야의 목소리가 정원을 울렸다. 그 커다란 소리에 깜짝 놀란 마코토가 앉아있던 바위에서 일어섰을 때, 하루카는 이미 저만치 달려가고 있었다.


"치하야쨩─!!! 어디있어!!"
"...하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본능적으로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달려가는 하루카를 보고, 마코토는 한숨을 푹 내쉬곤 그 뒤를 따라 걸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지만, 하루카가 저렇게 열성적으로 달리는데 내가 서두를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도, 그 자신의 발걸음이 평소보다 빠르다는 것은 마코토 자신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치하야쨩?!"


그리고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전속력으로 달려간 하루카는 찾고 있던 아이를 찾아내곤 순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삐이, 삐이이! 삐!!!"


푸른 날개의 아이는, 푸른 잎사귀들에 붙잡힌 채 울고 있었다. 그러니까, 끈적거리고 긴 통 비슷한 형태의─ 근데 그게 좀 큰 것 같다. 어른 손바닥만한 치하야가 반은 빠질 정도로.


"치, 치하야쨩!!"


─왕의 정원에 식충 식물, 그것도 일반보다 좀 더 큰 식물이 자라고 있는 상황을 멍하니 바라보던 하루카는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며 우는 치하야를 보고서 정신을 차리곤 황급히 치하야를 끄집어 내었다. 다행히 아예 그 속으로 쑥 미끄러져 들어가기엔 치하야가 그 식충식물보다는 컸다. 하지만 소화액 떄문에 빨갛게 익은 피부에 통증이 있는 듯 했다.


"삐이, 삐, 삐이..."


그러곤 그 작은 몸으로 하루카에게 매달려 옷깃을 꽉 잡은 채 울먹이는 치하야를 멍하니 바라보던 하루카는, 뒤에서 들려온 마코토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언제부터 여왕의 정원에 네펜데스같은 게 자생하고 있었지?"
"마, 마코토?"


뭔가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었는지, 하루카의 목소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하루카를 지나쳐 걸어간 마코토는 가볍게 그 식물을 짓밟아버렸다. 그 발 아래에서 파직, 하고 검은 번개가 잠깐 일어나며 녹색의 푸른 잎사귀가 순식간에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모습을 멍하니 보던 하루카와 치하야는 마코토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빨리 의무부로 데려가 봐."
"아, 응! 치하야쨩, 많이 아파?? 잠시만 참아!"


그리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자신을 바라보는 치하야를 붙잡은채, 하루카는 서둘러 정원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마코토는 자신의 발 밑에 짓밟혀 새까맣게 타버린 식물의 잿더미를 바라보고선 생각했다. 이번의 정원사는 지금 당장 해고다. 네펜데스같은 식충 식물 따위 대체 누가 키우라고 했단 말이냐.
물론 그것도 어디까지나 관상용으로 애용될 수 있는 식물이라는 것은 염두에도 두지 않은, 어딘가에 있을 정원사가 들었으면 엎드려 울었을 결정이었다.

 

 

 

 

 

 


"고마워, 마미. 덕분에 안심이야."
"마미야 상관 없지만, 하루룽이 그러고 다니면 여왕의 체면이 말이 아니지 않아? 갑자기 쳐들어와선 치햐가 크게 다쳤다면서 울 것같은 표정이라니, 이 쪽도 놀랐다고!"
"우웅.... 그렇지만, 정말로 놀랐단 말야..."


그리고 지나가던 성의 하녀들이 멍하니 자신을 보든 말든 전속력으로 왕궁 복도를 달려 의무부까지 3분도 안 걸려 도착한 하루카는 약재들을 옮기다 말고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마미를 붙잡고 치하야가 크게 다쳤다며 정리되지 않는 말을 횡설수설 한 끝에 치하야를 무사히 치료할 수 있었다. 소리내어 울진 않았어도 아픈 듯 계속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던 치하야도 치료 후에 고통이 가신 덕인지 눈물은 그쳤다. 아직 그 포충낭에 떨어졌던 공포 때문인지 하루카에게서 도저히 떨어지진 않았지만.


"다 치료했어?"
"아, 마코찡도 왔넹."
"응. 치하야쨩의 치료는 끝났어. 그런데, 뭐하느라 늦은거야?"
"정원사에게 해고 사실을 통보했지. 네펜데스는 다 뿌리뽑고 가라고 해놨고."


마코토의 태연한 대답에, 마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지만 하루카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루카의 옷깃에 고개를 묻은 채 하루카에게서 전혀 떨어지지 않던 치하야는 빼꼼 고개를 들어 마코토를 바라보았다.
마코토의 말대로라면, 아까 그 곳에 그 무서운 건 이제 없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치하야는 마코토가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며 의무부 한 쪽에 비치된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 것을 바라보았다.


"너."
"응? 나?"
"...너 말고. 치하야."


그리고 너무 자연스레 자신의 방이라도 되는 양 자리를 잡고 앉은 마코토가 손을 까딱하며 부르자 치하야는 눈을 깜빡이며 하루카의 어깨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하루카가 멍하니 치하야를 바라보자 와보라는 뜻인가, 라고 생각한 치하야는 날아올라선 마코토에게 다가갔다.


"글 읽는 법 배워볼 생각 있냐?"
"삐?"
"저거 말이야."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해 고개를 갸웃하던 치하야는 마코토의 손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마코토가 가리킨 곳엔, 의무부의 책장이 있었다. 의학 관련 서적들이 꽃혀있는 것을 멍하니 보던 치하야는, 그 서적들에 그려진 이상한 그림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게 '글'이라고 하는 것이라는 걸 하루카가 가르쳐 준 기억도 났다.


그걸 읽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하는 건가?


"마코토, 진심이야, 지금?"
"...내가 지금 농담하는 걸로 보여?"
"하루룽한테서 이상한 바이러스라도 옮은 거 아냐? 바보는 옮는다던데~"
"...마미, 지금 그 말은 무슨 뜻이야...?"


장난으로 한 말에 하루카가 너무하지 않느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마미는 에헷, 하고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그 표정에 하루카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런 대화가 오가는 동안 마코토의 말 뜻을 이해한 치하야는, 반짝이는 눈동자로 마코토를 돌아보았다가 마코토가 마미와 하루카의 대화를 한심하단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곤 마코토에게 좀 더 가까이 날아가 마코토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삐이, 삐."
"응?"
"삐, 삐삐!"


옷깃을 잡아당기는 손길에 돌아본 마코토를 보고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치하야를 본 마코토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어디의 바보보단 낫네. 배울 의지도 있고."
"...다들, 오늘 나를 괴롭히기로 작당이라도 한 거야?"
"뭐, 치하야가 좋다고 하니 더 이상 할 말은 없겠지?"
"으으.. 그건 사실이지만... 그런데, 누가 가르칠려고?"


반대라도 하면 울어버릴 듯한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치하야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곤 그렇게 질문했던 하루카는, 어디에서도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 것에 당황했다. 그리고 마미도 당황해서 마코토를 바라보았다. 설마하니.


"...마코토가?"
"...내가 가르치면 안 될 이유라도?"
"뭐어?!!! 안돼, 치하야쨩! 맞을 각오를 하고 배워야 할 거라고!"
"얘가 너야? 때려가면서 가르치게."
"에에?! 잠깐, 그건 하루카씨를 상대로만 했다는 소리?!!"
"하지만 정말 가르칠 수 있어, 마코찡~? 무리하는 거 아냐? 금방 성질내면서 때려치는 건..."
"...그 입 좀 다물어봐, 둘 다."


의외의 교육자로 인해서 그렇게 시끄러운 분위기에서도, 치하야는 마코토의 어깨 위에 앉아선 반짝이는 눈동자로 저 멀리 있는 책장의 글씨들을 응시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날 밤, 곧장 마코토에게서 마계어의 기본 발음과 쓰는 법을 받아오곤 반복해서 써오라는 숙제를 받고 돌아온 치하야를 바라보며 하루카는 진심으로 치하야를 말리지 않아도 좋을지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

카메오? 출현이 점점 늘어나는 기분인걸 '~`...

 

여담으로 다음주부터 무려 그 ㅇㄱ훈련이랩니다 으허허

그래서 연휴가 거의 일주일이나 되지만 정신적으로 굉장히 불안하네요 ^호^

2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