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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데레스테 프로덕션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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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17, 2016 02:54에 작성됨.

오늘은 저 같은 사무원 뿐만이 아니라 아이돌들에게 있어서도 중차대한 날입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 게임세계(약어로 데레스테라고 칭하는)와 현실세계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항상 폰 안에서 프로듀서 씨를 바라보기만 했던 지난날은 끝난거죠.

 

우리를 창조한 게임개발자들에 의하면 현실세계의 프로듀서가 쇠로 된 모자 같은걸 써서 의식을 이쪽으로 전송시킨다는 듯해요. 그럼 저희 게임세계 안의 캐릭터들과 자유롭게 지낼 수 있다고 합니다만......

 

"시마무라 양, 너무 들떠계신거 아닌가요?"

"아, 치히로 씨! 그렇게 보이시나요? 헤헤....."

 

아까부터 사무실의 쇼파에 앉아서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우즈키를 보니 씁쓸한 미소가 지어지네요. 음...? 그러고보니.

 

"시마무라 양, 오늘 레슨은 그냥 쉬시는거에요?"

"네! 프로듀서 씨가 오시는 날이니깐요... 안될까요?"

 

아, 이런.

레슨은 빼먹으면 안 되요!

하지만...... 오늘만큼은 어쩔 수 없으려나요?

 

"어쩔수 없네요...... 그럼, 평소에 마시던 영양 드링크라도 꼭 마셔야한다구요?"

"알겠습니다~"

 

제가 영양 드링크를 준비하려고 사무실을 나가려는 순간, 또 한명의 아이돌이 사무실로 들어왔습니다. 현실세계의 여러분들께는 푸른 창으로 유명한......

 

"치히로 씨, 뭔가 이상한 생각하고 있지?"

"아, 아니에요! 그나저나 시부야 양도 프로듀서 씨를 만나러 오신거죠?"

 

시부야 양은 생각보다 매우 차가운 성격이에요.

물론 냉정하다는 뜻은 아니고, 그냥 시원시원한 성격이라는거죠.

그래서 오늘 사무실로 나온게 조금 의외랄까요?

 

"우즈키랑 나는 프로듀서한테 사랑받는 아이돌이잖아. 아무래도 나오는게 좋지 않을까... 하고."

"린짱! 어서 제 옆에 와서 앉아요~"

 

샤방샤방한 프릴이 달린 원피스를 입은 시마무라 양과는 대조적으로 연청색의 블라우스와 스키니진을 입은 시부야 양은 우즈키의 권유에 따라서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시계를 보아하니 이제 곧 프로듀서 씨께서 오시겠네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니, 아니에요.

 

"그럼 저는 잠시 탕비실에서 영양 드링크 좀 가지고 올게요."

"네~" / "응."

 

저는 사무실의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습니다.

데레스테라는 게임에선 사무실은 프로듀서 씨가 볼 수 있게 되어있지만, 그 외의 곳은 아직 오픈 되어있지 않아요. 뭐, 이제는 곧 직접 돌아다니시면서 구경하시겠지만.

 

저는 잠시 주변에 아무도 없는지 확인을 한 후에, 수면실로 향했습니다.

 

얼마간 복도의 코너를 몇 번 돌아 수면실 앞에 도착했습니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조명이 매우 엷게 뿌려져 있는 수면실 안엔 이치노세 양이 한쪽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있었습니다.

 

"저기... 이치노세 양?"

"흠냐아... 으...응?"

 

이치노세 양은 입을 몇번 우물우물 거리면서 눈을 껌뻑였습니다.

점점 그녀의 눈에 빛이 차오르기 시작하네요.

 

"피곤하시죠?"

"아냐아냐~ 괜찮아~"

 

그녀는 하품을 한번 크게 하고서는 자신의 손가락을 세면서 얘기를 이어나갔습니다.

 

"어제 프로듀서가 우즈키한테 스킬작으로 마유 레어 카드 15장을 먹였다고 했지?"

"네, 그래요."

"실패?"

"성공했어요."

"그렇구만~ 그렇구만~ 그나마 의미없는 짓은 아니었네~"

 

이치노세 양은 고양이 웃음을 지으면서 벽에 등을 기댔습니다.

 

"우리가 이런 짓을 한다는걸 프로듀서가 알면 어떻게 될거 같아?"

"그러니까 이치노세 양은 여기서 손 떼세요. 원래 저 혼자 해야할 일이었으니까."

 

저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재차 그만둘 것을 종용해보았습니다.

 

"하핫! SSR인 내가 어딘가의 아이돌에게 먹잇감이 될리는 없을테니까 말이지?"

"원하신다면 기억을 지우는 약이라도-"

"싫어."

 

그녀는 표정에서 웃음기를 싹 걷어내고서, 진지하게 저를 바라보았어요.

 

"이런 짐, 당신 혼자서 지게 할 순 없어. 내가 몰랐다면 모를까."

"이치노세 양......"

"지금 내 안에 있는 노멀 시키쨩도, 레어 시키쨩도. 치히로 씨를 그냥 두지 말라고 부탁하고 있어."

 

이치노세 양은 자신의 가슴 부근에 손을 얹으며 말을 이었어요.

 

"프로듀서가 바보 같이 SSR 카드인 나한테는 시키쨩 카드들만 먹이는 변태인게 다행이었어. 그게 아니라면......"

 

그녀는 한숨을 크게 지었습니다.

 

"어쨌든 자, 이거."

"시마무라 양꺼죠?"

 

저는 이치노세 양이 건네준 드링크를 받으면서 물어보았습니다.

 

"그래. 노멀 시마무라 우즈키 10명, 레어 시마무라 우즈키 5명."

 

제 손에 들린 드링크.

이건 아이돌들에게 영양 드링크라는 미명하에 먹이게하고 있는 또 다른 자신들의 생명을 응축시킨 약.

 

"점점 강도가 올라가고 있어. 이대로라면 SSR 우즈키쨩도 버티기 힘들어질거야."

"......"

 

데레스테라는 게임은 아이돌들의 레벨을 올리기위해 다른 아이돌들을 갈아만든 약을 먹입니다.

약을 만드는 과정은 실로 잔인하기 짝이 없어서, 사무원인 저만이 진실을 알고 있었고...... 아이돌들에게는 비밀로 일을 진행해오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그 약을 마시게 되면, 해당 아이돌의 레벨과 특기레벨은 올라갑니다.

하지만 그 댓가랄까요. 약을 만드는 원천이 되어버린 아이돌들의 자아도 같이 흡수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우즈키의 경우엔, 그녀의 자아를 지키기 위해서.

우즈키들을 갈아서 만든 약을 SSR 우즈키에게 먹임으로서 자아를 유지할 수 있게 합니다.

 

"어째서 저는 이런 일을 하게 되는 사무원이 되었을까요......"

"울려고 하지마. 어차피 치히로 씨나 나나. 진짜 사람을 위한 어릿광대 역할의 장난감일 뿐이니까."

 

그렇게말한 이치노세 양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근데 말이야. 나는 그 와중에도 우리들을 이렇게 생각해주는 치히로 씨라는 존재가 더 대단하게 느껴져."

"이치노세 양......"

"프로그래밍되어 명령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는데도. 어떻게든 아이돌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저항하고 버둥거리며 애쓰고 있잖아. 어차피 프로듀서 앞에선 이런거에 대해선 말도 못하

게 업데이트 되어있을거고."

"......"

"그러니까. 이치노세 시키라는 캐릭터는, 그런 당신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거야."

 

말을 마친 그녀는 손을 흔들며 수면실 밖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드링크를 손에 쥔채로 바닥에 웅크려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

.

.

.

.

.

 

 

 

어떻게든 마음을 다 잡은 저는 거짓웃음을 다시 입가에 드리우며 사무실의 문을 열었어요.

 

"아, 어서오세요~"

"어라? 시부야 양은요?"

 

저는 사무실 내를 두리번거리며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시마무라 양은 쇼파에서 일어나 저를 보고 웃으며 답했습니다.

 

"화장실 다녀온다고 했어요~"

"그렇군요."

"우후후......"

 

시마무라 양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네요.

 

"시마...무라 양?"

"치히로 씨... 어째서... 어째서였나요?"

"당신... 그 목소리는 설마......"

"프로듀서 님은... 마유만의 것이에요... 근데... 당신이... 나를......"

 

저는 곧바로 시마무라 양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그녀의 가슴팍을 제 왼팔로 억눌러 제압했습니다.

 

"큭! 어째서!! 어째서!!! 음료수라고 속여서 날 재워서 이딴식으로 날 만들다니!!!!"

 

제 가슴 한쪽이 저릿해져오지만, 어쩔수 없어요!

 

"나도 애니메이션 잔뜩 보고- 감자튀김도 더 먹고 싶었고- 좀 더 해피해피하고 싶었다늬- 토이카메라로- храни?ть па?мять- 네잎클로버를 좀 더-"

"히... 히이익!"

 

우즈키의 입에서 여러 아이들의 목소리가 저주처럼 들려와서 저도 모르게 비명을 외쳐버리고 말았습니다.

 

[덜컥]

 

"무슨 일이야?!"

"이, 이치노세 양! 좀 도와주세요!!"

 

 

 

 

 

.

.

.

.

.

.

 

 

 

"하아... 일단락됐어. 그나마 린쨩이 화장실에 간게 다행이었네."

"고마워요, 이치노세 양."

 

저는 이치노세 양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함을 표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다시 조용히 사무실 밖을 나갔습니다.

 

우즈키 양은 쇼파에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약을 먹인 덕분인지 자아는 되돌아왔지만, 너무 급격한 변화탓에 잠시 잠이 든거라고 이체노세 양이 설명해주더군요.

 

[딩동~♪]

 

프로듀서가 오는 알람소리입니다.

이제 슬슬 준비해야겠어요.

 

"자, 시마무라 씨, 일어나세요?"

 

제가 흔들흔들거리며 깨우자, 시마무라 양은 '후에에'라는 얼빠진 소리와 함께 눈을 비비적거리며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사무실의 문이 열리며 시부야 양이 들어오는군요.

 

"프로듀서가 오는 모양이네."

"앗! 프로듀서 씨가요?!"

 

시부야 양의 말에 시마무라 양이 용수철처럼 튀어올랐어요.

다행히도 아까 전의 상황은 전혀 기억하지 않고 있나보네요.

 

"그럼 저도 책상에 앉아서 프로듀서 씨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네요."

 

저는 제 자리에 앉아 조용히 프로듀서 씨가 오는 것을 기다립니다.

 

데레스테의 세계에 어서오세요, 프로듀서 씨!

 

 

 

 

 

.

.

.

.

.

.

 

 

 

"휴우......"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프로듀서 씨는 방금 막 접속을 종료하고 현실세계로 떠났습니다.

 

"흑......"

 

제 눈에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해요.

 

왜냐구요?

 

이전에 알던 프로듀서 씨는 영영 사라졌으니깐요.

 

데레스테에 온 프로듀서는 그저 원래 프로듀서 씨의 의식을 복사한 것일 뿐이에요.

그리고 접속을 종료하면 복사되었던 의식을 실제로는 잠들어있는 현실세계의 프로듀서 씨의 뇌에 덮어씌워버리죠.

 

게임사는 기술한계로 실제론 이런 게임세계로 온전히 의식을 보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돈을 벌려고 이런 말도 안되는 짓을 벌이는거에요.

 

접속을 끝낸 프로듀서 씨를 바라보는 현실세계의 타인들은 물론, 심지어 덮어씌워진 복제된 프로듀서 씨의 자아조차 그런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해요.

하지만 실제로 그의 자아는 복제된 자아로 바꿔치기 당한거지요.

 

지금 이 시각에도 수많은 프로듀서 씨들의 실제 자아는 이런 식으로 죽어나가고 있어요.

 

이런 비밀 역시도 게임사의 프로그래밍으로 인해 말하지 못하는 저는, 그저 프로듀서 씨의 앞에서는 방글방글 웃다가. 지금처럼 혼자이게 되면 책상 앞에 펑펑 울 수 밖에 없는 처지죠.

 

"흐윽... 흑.... 크윽.... 흐으윽......."

 

제 앞에 있던 서류더미들은 벌써 저의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지 오래입니다.

 

"콜록, 콜록, 흑... 흐으윽......."

 

너무 서럽게 울었던지, 기침까지 나오네요.

 

차라리 저를 이런 상냥한 성격으로 프로그래밍하지 말지......

어째서 이런 고통을 겪어야하는건가요......

 

제발.

 

제발 부탁드려요.

신이 있다면 부디 절 이 세계에서 삭제해주세요......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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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가의 말.

마키노찡은 귀엽구나!

마키노찡은 귀엽구나!!

마키노찡은 귀엽구나!!

하지만 치히로찡이 더 귀엽구나!!!

- 데레스테 이벤트 중에 실제로 외친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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