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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즈 담당 프로듀서는 죽을 만큼 후회했다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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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14, 2016 18:50에 작성됨.

원작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A-1 Pictures

안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소파에 파묻혀 있던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우 재빠르게. 안즈는 눈을 크고 동그랗게 뜬 채로 당황에 물든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반대로 교육 담당은 침착하게 대답한다.
“말 그대로입니다. 후타바 가에서는 안즈 아가씨께서 아이돌을 그만두시길 원합니다.”
“저기, 잠깐만요.”
안즈처럼 당혹감에 물든 프로듀서가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아직 계약 기간은 남았을 텐데요?”
“네, 그렇죠. 표면상의 계약이나. 수면 아래의 계약이나 둘 다 남아있죠. 지급이 늦은 적은 없습니다만…….”
몇몇 단어가 안즈의 신경에 거슬린다. 안즈는 그 단어들을 지적했다.

“수면 아래? 지급? 그게 뭐야?”
“아아, 아가씨께서는 모르고 계셨나 보군요.”
교육 담당은 프로듀서를 슬쩍 보았다. 프로듀서의 얼굴은 여전히 당혹감에 젖어있었지만 맥락상 지금부터 교육 담당이 할 이야기를 막을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교육 담당은 물 흐르듯이 이야기를 이었다.

“표면상 평범하게 맺은 아이돌 활동 계약. 즉, 안즈 아가씨의 법적 보호자……. 아가씨의 부모님께서 사인하신 그 계약 외에 한 가지 계약이 더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중계약이죠. 안즈 아가씨께서 아이돌 활동을 하실 수 있도록 프로듀서 씨와 아가씨 부모님께서 맺은 계약이니까요.”
교육 담당은 안즈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안즈는 여전히 당황한 표정.

“우선 앉으시죠. 서서 이야기하는 것도 그러니.”
교육 담당의 말에 따라 안즈가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예, 설명해드릴게요. 애당초 아가씨의 부모님께선 아가씨께서 아이돌이 되는 걸 반대하셨습니다.”
그도 그렇다. 안즈의 부모는 안즈를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능력을 발휘하는 완벽초인으로 기르려고 심혈을 기울였다. 그들이 심어놓은 안즈의 능력 중엔 연예계에 관한 건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보기엔 프로듀서가 안즈의 재능을 쓸데없이 낭비하는 것처럼 보일 테지.

“그래서 프로듀서 씨께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거절하려는 목적으로요.”
“그리고 그걸 내가 물었어.”
프로듀서는 착잡한 얼굴로 교육 담당의 이야기를 거들었다.

“계약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후타바 안즈 사용료를 후타바 가에 지급할 것.”
사용료. 마치 물건을 대하는 듯한 단어.
하지만 안즈는 단어 취급에 대해선 놀라지 않았다. 계약 내용 자체에 놀랐을 뿐.

“매달 천만 엔씩 후타바 가에 지급할 것, 또한 데뷔 1년 이내에 별다른 성과가 없었을 시엔 위자료 1억 엔을 지급하고 후타바 안즈는 아이돌을 그만둔다. 이런 내용입니다.”
“천만 엔? 346에서 후타바로?”
안즈의 물음에 교육 담당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프로듀서 씨께서 후타바 가에 지급하는 금액입니다.”
안즈는 말문이 막혔다. 너무나도 어이가 없었기에. 천만 엔은 후타바에서 보면 푼돈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보면 만만찮은 금액. 일개 개인 차원으로 보았을 땐 더욱 그러하다. 안즈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프로듀서가 그런 안즈의 마음을 진정시키려 말을 꺼냈다.

“1년 내로 성과를 내려고 그랬어. 어차피 모든 걸 다 포기하려던 차에 널 만났으니까 그 정도 금액쯤은 투자할 만하다고 생각했거든.”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그리고 1년 후엔 어쩌려고? 금액이 올라가면?!”
“네가 성인이 될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거로 생각했으니까.”
“아, 진짜 프로듀서! 진짜! 진짜! 진짜! 진짜!”
괜히 안즈의 화만 돋웠다.

안즈는 후회했다. 프로듀서가 안즈의 부모와 계약을 체결한 건 3월 14일. 프로듀서는 그날 혼자 후바타 가에 방문해서, 두 시간 만에 계약을 마쳤다. 안즈도 마찰이 있을 건 예상했으나 프로듀서가 어떤 방식으로 해결했는지는 부모에 대한 반감 때문에 묻지 않았다.

그때 그냥 넘기지 않고 물어보는 거였는데…….

물론 계약 내용을 들어봤자 안즈가 어떻게 할 순 없었겠지만.

“음……. 이야기를 계속해도 될까요?”
교육 담당이 조심스레 물어본다. 안즈는 무응답. 프로듀서는 살짝 손짓하여 교육 담당의 이야기를 끌어냈다.

“얼마 전까지 계약은 문제없었습니다. 아가씨 부모님께선 여전히 불만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셨지만, 기색만 내비치셨지 딱히 다른 말은 않으셨습니다. 네에, 얼마 전까지는요.”
얼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다. 아무리 감이 안 좋은 사람이라도 이쯤 되면 쉽게 알아차릴 테지. 교육 담당이 이야기의 핵심을 꺼냈다.

“346 프로덕션의 계약팀과 법무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자기들은 모르는 계약이라고 작은 항의를 했지요. 정말 작은 항의였어요. 하지만 아가씨 부모님의 심기를 건드리기엔 충분했지요.”
교육 담당이 프로듀서를 떠보듯이 프로듀서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본다. 프로듀서는 교육 담당의 시선을 전면으로 받으면서 턱을 쓰다듬었다.

“저는 모르는 일이군요. 짐작…… 가는 곳은 있습니다만…….”
프로듀서의 낯빛이 어두워진다.
교육 담당은 프로듀서의 반응을 확인하고 확신에 차서 말했다.
“역시 제 예상대로군요. 외부인인 제가 이런 말을 입에 올려도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사내정치죠?”
사내정치. 안즈는 귀를 쫑긋 세웠다. 아이돌 활동을 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들어갔던 화제가 다시 떠올랐으니까. 안즈는 첫 데뷔 무대, 그 뒤편에서 몰래 들었던 말을 지금도 기억한다.

-사내정치……였죠? 저라면 그런 분위기를 버티지 못할 거예요. 바로 그만뒀을 겁니다.
-신인 아이돌의 데뷔 무대마저 방해할 정도였으니까. 보통 눈엣가시가 아니란 거겠지.

그리고 프로듀서의 과거에도 얽힌, 안즈가 사투를 벌인 오오츠키 유이의 예전 유닛 C.M,Y.K.에도 얽힌 346 사내의 암투. 예능, 가수, 아이돌 부서의 파벌 싸움.

“정치질은 일정 규모를 넘은 곳이면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쳐내기 위해서, 콩고물을 더 얻어먹기 위해서, 출세하기 위해서…….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지요.”
교육 담당의 목소리에 씁쓸함이 실렸다. 그러나 그 직후에 교육 담당은 가볍게 손뼉을 쳐 씁쓸함을 날려버렸다. 지금 이야기에 개인감정은 접어둔다는 신호였다.

“하지만.”
교육 담당이 품고 있던 포근한 분위기가 물에 젖은 솜처럼 순식간에 무게를 얻었다.

“후타바 입장에서는 346의 사내정치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이 일이 346의 이름 아래에서 일어났다는 게 중요하죠. 후타바 입장에서 보기엔 그냥 그겁니다. 346에서 계약을 따갔고, 346에서 그것을 가지고 항의했다.”
“하지만 그건 처음부터 프로듀서 개인을 대상으로 한 계약이잖아!”
안즈가 무거운 분위기를 뚫고 교육 담당에게 따졌다.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후타바에선 그런 건 상관없어요. 오히려 물고 늘어질 건수가 생긴 거죠.”
안즈의 부모는 안즈가 아이돌 활동을 하는 걸 반대했다. 그리고 계약을 거부할 생각으로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걸어 프로듀서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프로듀서는 그걸 받아들였고 안즈는 아이돌이 되었다. 게다가 안즈는 신인 아이돌로서 말도 안 되는 성과를 내버렸다.

안즈의 부모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자기들이 직접 내건 조건 때문에 묵묵히 안즈의 활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미 계약 자체가 부당계약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더 손을 쓸 순 없으니까.

별다른 일이 없었으면 아마 프로듀서의 계산대로 안즈가 성인이 될 때까지 계약이 무사히 이행됐을 것이다.

별다른 일이 없었으면.

그런데 별다른 일이 생겼다.
그리고 안즈의 부모 입장에서, 후타바 입장에서 이건 꼬투리 잡을 절호의 기회였다.

“주도권은 아가씨 부모님께서 잡고 계십니다. 어쩔 수 없지요. 왜냐하면 안즈 아가씨의 친권은 아가씨 부모님께서 갖고 계시니까요. 아가씨께서 이렇게 아이돌 활동을 하고 계신 것도 부모님의 허락이 있어서 가능한 거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애초에 부모님 동의가 없으면 미성년자가 일할 수 없으니까.

“후타바에선 지금 법 위에서 싸우는 것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겠죠. 왜냐하면 누가 봐도 부당한 계약이니까요. 그리고 저희가 알아본 결과, 당신은 일본에서도 유능하다고 손꼽히는 좋은 변호사를 알고 있습니다. 346의 법무팀이 움직이지 않아도 그의 도움이 있으면 후타바와 싸울 수 있겠죠. 후타바 입장에선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겁니다. 하지만 후타바에선 그 싸움에서 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교육 담당의 눈초리가 조금 싸늘해졌다.
프로듀서는 교육 담당에게 대답하려다가 말았다. 추론은 했지만, 그걸 입 밖으로 내기엔 너무 잔인하니까. 프로듀서가 입을 다물자 교육 담당이 말한다.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니까요.”
프로듀서가 예상한 바로는 이렇다. 애초에 법으로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다. 그 과정이 목적이다. 즉…….
“법률 싸움을 최대한 오래 끌어서……. 안즈 아가씨와 프로듀서 씨를 최대한 오래 괴롭히는 게 목적입니다.”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 싸우면서 상대를 더 많이, 더 아프게 때리는 게 목적인 싸움. 상대의 체력만을 갉아먹는 전법.

“법률 싸움이 되면 안즈 아가씨가 성인이 되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집니다. 안즈 아가씨께서 성인이 되신다고 하더라도 싸움이 없던 게 되지 않으니까요.”
폭탄이 터지기만 하면 폭약과 함께 피어오른 불꽃은 오랫동안 타오른다.

“그리고 예를 들어 후타바에서 이런 방법을 쓸 수도 있죠. 후타바 안즈와 후타바 가의 갈등을 언론에 풀어버린다든지요. 그러면 이미지로 먹고사는 아이돌에겐 충분히 타격이 되겠죠. 어떤 이유든 구설수가 오르내리는 건 좋은 현상이 아니니까요. 안즈 아가씨께선 이미 주목받는 아이돌이시니 노이즈 마케팅도 되지 않고요.”
예능인에게 이미지란 절대적이다. 카메라에 어떻게 찍히는가, 모니터에 어떻게 나오는가. 팬들과 대중은 그것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기억하는가. 예능인이 대중에게 기억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인기와 실력으로 기억되는 것. 그리고……. 구설수로 기억되는 것.

연기자든 가수든 아이돌이든 후자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그건 자충수 아닙니까? 후타바의 이미지도 안 좋아질 텐데요.”
프로듀서가 지적. 이미지가 중요한 건 후타바도 마찬가지. 후타바의 일원이자 유력한 후계자인 안즈가 후타바와 갈등을 맺는다는 소식은 후타바의 이미지에도 좋지 않다.

“어디까지나 예를 들어본 거니까요. 이러는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교육 담당은 태연하게 굴었다.
교육 담당의 태도를 보고 안즈는 이를 악물었다. 교육 담당이 태연하게 푸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안즈의 심기를 콕 집어 건드리니까. 안즈는 속으로 으르렁거리면서 가슴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진정되기는커녕 오히려 가슴 속 온도가 상승하기만 했다.

안즈는 결국 짜증과 분노의 숨을 토했다.

“대체 뭐 어쩌란 거야. 하고 싶은 게 뭐냐고 줄기차게 물어본 주제에 하고 싶은 걸 하니까 하지 말라니 대체 뭐냐고!”
안즈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자라면서 품어왔던 울분 일부가 전류처럼 안즈의 주먹을 타고 흘렀다.

“안즈는 인형이 아니야! 이제 질렸어! 안즈는 이제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안즈는 교육 담당에게 단호하게 고했다. 교육 담당을 똑바로 보고 한 말이지만, 말이 향한 곳은 따로 있다. 교육 담당의 배후에 있는 사람들. 안즈는 그들에게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냈다.

“안즈 아가씨 입장은 확인했습니다. 자, 그럼 이제 프로듀서 씨의 입장을 확인할 차례군요.”
교육 담당은 손바닥으로 프로듀서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떻게 하실 거죠? 안즈 아가씨의 매니지먼트를 계속하실 겁니까?”
프로듀서는 교육 담당의 말이 끝나자마자 입을 열었다.

“그야, 계속할 겁니다. 포기할 생각은 없어요. 안즈가 포기하게 할 생각도 없고요.”
프로듀서가 어깨를 으쓱이며 마무리. 교육 담당은 커피잔을 들었다. 그리고 커피 내음을 음미하고 한 모금 홀짝였다.
그는 혀로 입술을 쓱 핥고는 말했다.
“좋네요. 단호하고 거침없는 맛입니다. 상당히 굴곡 있는 경험을 겪은 사람이 아니면 낼 수 없는 맛이죠.”
교육 담당은 커피잔을 컵 받침에 올려놓았다. 어느새 나긋나긋한 아우라가 교육 담당 주위에 다시 피어났다.

“저는 어디까지나 전령 역할로 온 거니까요. 후후, 목적은 달성했습니다. 맛있는 커피도 마시고 득을 봤네요.”
교육 담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프로듀서도 그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즈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 턱을 괴어 교육 담당을 무시.

“아, 한 가지 더 여쭤보아도 될까요?”
교육 담당이 둘렀던 나긋한 분위기가 갑자기 증발했다. 교육 담당은 날카롭게 웃으며 프로듀서에게 물었다. 목소리에도 날이 선 섬뜩함이 묻어나온다. 분위기만 보면 대답 여부에 따라 목을 칠 수도 있다는 기백이 교육 담당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아이돌과 프로듀서. 이 관계를 제외하면 당신은 안즈 아가씨에게 있어…… 뭐죠?”
그러나 프로듀서는 이번에도 곧바로 대답했다. 이번에도 어깨를 으쓱이면서. 기백에 눌리지 않고.
“같은 취미를 가졌고, 같은 길을 걸으며, 같은 추억을 공유하는 이해자이자 동반자.”
프로듀서의 대답에 다소 모호함을 느꼈는지 교육 담당의 눈썹이 조금 씰룩였다. 프로듀서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가면라이더 시리즈는 아시죠?”
“전 특촬은 별로……. 이름만 들어봤습니다.”
“어, 그러니까 그럼……. 마블 영화는요? 아이언맨이나 어벤져스 같은 건 아시죠?”
“네, 영화관에서 가끔 봅니다.”
“다행이군요.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는 보셨나요?”
“윈터 솔저는 봤어요.”
“스티브 로저스와 버키 반즈라고 생각해주세요.”
잠시 정적. 프로듀서는 가슴을 쭉 폈고, 안즈는 시선 끝을 프로듀서의 발 근처에 걸쳤으며, 교육 담당은 그저 멍하니 있었다. 정적은 교육 담당이 피식 웃고 나서야 물러났다.

“알겠습니다. 당신이 안즈 아가씨께 어느 정도로 정을 느끼고 있는지는 이해했습니다. 후후…….”
교육 담당이 원래 분위기를 되찾았다.

“스티브 로저스와 버키 반즈라……. 우후후.”
스티브 로저스는 2차 세계 대전 때 미국의 슈퍼 솔저 프로젝트에 참가해 초인이 되어, 레드스컬이란 악당이 이끄는 조직 하이드라에 맞서 싸운 히어로다. 그리고 스티브 로저스를 어렸을 적부터 지탱해준 게 바로 스티브와 친하게 지낸 버키 반즈.

몇몇 사건을 거쳐, 어떤 사정으로 70년 후 현대 사회에 덩그러니 남겨진 그들에겐, 서로의 존재가 그야말로 둘도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래요, 서로에게 있어 둘도 없는 사이죠.”
교육 담당은 방긋 웃었다.

교육 담당이 돌아가자 프로듀서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군.”
프로듀서는 혀를 차면서 중얼거렸다.

“저기, 프로듀서.”
뚱한 기색을 남겨둔 채로 안즈가 프로듀서에게 말을 걸었다. 프로듀서의 시선이 안즈에게 향하자 안즈가 말한다.

“아까 가면라이더 예시 들려고 했던 거 더블이야?”
“응, 쇼타로랑 필립. 캐치볼도 했고.”
프로듀서가 손짓으로 공을 던지는 흉내를 낸다. 6월 14일 때처럼.
“하긴 그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지.”
안즈는 그날을 회상했다. 이야기를 주고받고, 공을 주고받은 날.

“저쪽이 가면라이더를 잘 모른다고 그래서, 바로 떠오른 대로 스티브와 버키를 이야기했지만.”
“저기, 프로듀서. 스티브와 버키 중에서 안즈는 어느 쪽이야?”
“글쎄다. 어느 쪽이든 될 수 있지 않을까.”
프로듀서는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안즈에게 던졌다. 안즈는 재주 좋게도 소파에 파묻힌 채로 사탕을 캐치. 안즈는 재빨리 포장지를 풀어 내용물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레몬 향이 안즈의 침에 녹아 입안에 가득 퍼졌다.

사탕의 단맛 덕분에 안즈의 얼굴이 다소 풀어졌다.
대신 프로듀서의 얼굴이 다소 심각해졌다.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야?”
“일단 안즈는 여태 하던 대로 하면 돼. 후타바 쪽하곤 내가 좀 더 교섭해볼게.”
“안 되면?”
“안 되면……. 최대한 저항해야지.”
안즈의 얼굴도 다시 어두워졌다. 안즈는 사탕을 순식간에 으적으적 씹어 목구멍으로 넘겼다. 화가 났다. 그래서 사탕을 깨물어 부쉈다.

“정말 최악이야. 왜 이러는 거야. 왜 자꾸 안즈를 궁지로 모는 거야…….”
안즈는 소파에 더욱더 파고들었다.

“재능을 살려야 한다면서 공부, 공부, 공부……. 질렸어!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데 왜 막는 거야! 너무하잖아……! 안즈는 인형이 아니라고!”
안즈는 이젠 입안에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이를 갈았다. 이가 맞물리면서 잇몸에 힘이 실린다. 이가 잇몸에 파고드는 감각이 안즈에게 울분을 씹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안즈는 턱에 힘을 더 줬다.

그러나 진짜로 무언가를 씹는 게 아니라서 그럴까? 울분을 씹고 또 씹어도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안즈가 태어나고 자라서 후타바에서 겪은 일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주로 얼룩이 묻은 어두침침한 기억 위주로. 안즈가 일부러 네거티브한 기억들만 떠올리는 게 아니다. 후타바에 관해선 그런 추억이 대부분이라서 그렇다.

안즈는 후타바의 기대대로 총명한 아이로 태어났다. 천재. 재능을 처음부터 손에 쥐고 태어난 사람. 어떤 사람은 신체적인 미숙을 서번트 증후군에 포함한다면 안즈도 서번트로 분류할 수 있을 거라고 평할 정도로, 안즈는 어려서부터 총명했다.

그리고 그런 안즈의 재능이 안즈를 불행에 빠트리는 데에 일조했다. 차라리 재능이 없었으면 덜 괴롭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안즈는 인형처럼, 사유물처럼 후타바에게 마구 다루어졌다.

자유는 최저로. 책임과 의무는 최대로.

아무리 천재라도 사람 한 명이 짊어질 수 있는 무게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안즈는 무너졌고, 후타바에서 강요하는 모든 걸 거부하였다.

안즈는 거의 자포자기 상태로 살아있는 시체가 되었다. 프로듀서를 만나기 전까진.

안즈는 축 늘어졌다. 울분을 씹고 과거를 되새기느라 지쳤다. 안즈는 프로듀서를 바라보았다. 프로듀서에게서 따뜻한 말이 듣고 싶었다. 피로를 녹이는 따뜻한 우유 한잔 같은.

“안즈. 있잖아…….”
프로듀서가 조심스럽게 안즈를 불렀다. 안즈는 프로듀서의 말에 최대한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위로의 말을 기대했다. 그러나 이어 나온 말은 안즈가 기대했던 것과 180도 다른 말이었다.

“부모님하고 화해하는 게 어떨까?”
안즈의 기대가 순식간에 깨졌다.

“왜 그런 말을 해? 안즈가 어떻게 자랐는지 알면서 왜 그래? 전엔 안 그랬잖아!”
안즈는 프로듀서에게 따졌다. 프로듀서가 왜 이럴까? 안즈와 처음 만났을 때 프로듀서는 안즈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땐 안 그랬는데 왜 이제 와서…….

아니면……. 오히려 오래 알고 지내게 되었기에, 터놓고 말할 수 있게 되었기에 건드리는 건가?
안즈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급하게 화를 풀었다.

“미안, 프로듀서. 괜히……. 화풀이해서.”
안즈는 머리를 긁적였다.

“애초에 안즈는 프로듀서의 과거를 있는 대로 긁었으면서 말이야. 이러는 거 안즈가 봐도 우습네. 진짜 미안.”
프로듀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오히려 내가 생각이 짧았다. 너한텐 네 인생이 있는 건데 순간적으로 그걸 망각했어. 미안하다.”
프로듀서는 안즈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다시 고개를 올려 쓴웃음을 지었다. 안즈는 프로듀서의 이런 점이 좋다. 프로듀서는 어른인데도 안즈에게 서슴없이 고개를 숙인다. 안즈의 부모는 안즈에게 이런 적이 없는데…….

“자, 그럼 오늘은 오늘 일이 있다. 난 하던 일을 마저 해야지. 시간 되면 밥 먹고 나가자.”
프로듀서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한다.

“아직 할 일이 하나 있어.”
안즈는 프로듀서를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걸음 이동해서 프로듀서 옆에 착석. 프로듀서가 의아해하자 안즈는 무게 중심을 옆으로, 프로듀서 쪽으로 기울였다. 안즈가 마치 도미노의 첫 번째 블록처럼 프로듀서에게 풀썩 쓰러졌다. 안즈의 머리와 어깨가 프로듀서의 팔에 닿는다.

“뭐해? 나 이제 일해야…….”
“조금만 이렇게 있자.”
안즈는 눈을 감았다.
“응석 부리고 싶어졌어.”
안즈는 그대로 고요에 잠겼다. 프로듀서는 그런 안즈는 보고 일어나길 포기했다.

결국 의상 발주서는 밥 먹기 직전이 되어서야 확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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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전에 올리려고 했는데 결국 연휴에 올리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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