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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마스X40k 유니버스] Guns and Flowers 2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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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14, 2013 08:23에 작성됨.

참 바쁜 일주일이 있었습니다. 그게 온전한 핑계가 될 수는 없겠지만, 일단 어쨌든 노트북을 다시 열고 쓰기는 했네요. 눈팅도 별로 못하고 이거........


일단 Heroes and Seed of the Imperium은 확실한 시나리오가 짜여진 지라 Guns and Flowers에 더 신경을 쓰고자 합니다. 조금이라도 봐주시는 분들을 위해서 말이죠.

어쨌든 본편 나옵니다.



Guns and Flowers 22편




"바르코나르, 바르코나르 씨. 그만 자고 좀 일어나 보세요."


지난 밤에, 테러에 가까운 카터의 갑작스러운 배달물 탓에 잠을 설쳐 그는 짧은 시간이나마 쉬려 들었다.

내용물을 보고는 결코 며칠의 노력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냥 잠으로 넘기려고 들었지만, 지금껏 그것을 만들기 위해 쏟아부었던 시간이 아까운 그녀가 독한 마음을 품은 모양이였다.


몇 년동안 쌓여가는 기억에 파묻으려고 들었지만 바르고스 프라임에서 카터와 재회하였을 때부터 그녀는 레빈스 항성계를 언급하였다. 이제는 잊혀지고 언급을 꺼리는 땅이 되었지만, 그는 극소수의 다른 사람들과 같이 '생존자'라 스스로를 칭할수 있는 자였다.

그곳에서 존재하는 가치는 생존을 제외하면 의미있는 것은 없었지만, 칼카스라는 본명을 지닌 그는 생존조차 저버린 채로 신념에 따른 의무로써 행동하였다. 그에 따라, 하나의 항성계가 지옥이 되었어도 추적을 이어갈수가 있었다.


그 뒤로 6년이 지났다. 당시에는 시야에 벗어나 방향만으로 가늠할수 있었던 것은 이제 눈앞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짐작되는 수준까지 다다르고 말았다.

전과는 달리, 이제는 자신이 직접 지휘하며 그동안의 고생을 치루게 만든 대가를 향하게 나아갈수가 있었다. 단 한가지 들이닥친 새로운 장벽이라면, 그 직위와 현재 상황에 걸맞게 커다란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이였다.


그 인내심의 영향력은 가끔씩 이해할수가 없었지만, 최소한 민간 쪽에서 활동하며 그에게 여유를 가져다주었다. 바르고스 프라임에서의 첫 작전으로 며칠간 제대로 누워본적도 없었으니, 그나마 아침과 정오 사이의 햇살이 쏟아지는 때에도 태연히 눈을 감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였다. 급하다면 무리하는 수도 있겠지만, 그는 며칠 뒤에 길거리에서 과다출혈 수준의 코피와 함께 엎어져서 쓰러지는 것만큼은 원하지 않았다.


몇 초가 지났는지, 아니면 몇십분이 지났는지는 눈을 떠야만 알아챌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깨어나기를 원하지 않았다. 계속된 철야 작업과 작전의 구상, 그 모든 것에서 해방될수는 없었으니 이렇게 짧은 시간이라도 쓰고 싶어하였다. 바로 앞에서 심드렁진 목소리로 그 누가 부른다고 해도, 상관하고 싶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마침내, 바르고스 프라임 출신의 지적인 여인이 참다못해 빽 소리를 지르는 수준이 되어야 눈을 번뜩 뜰수가 있었다.




"바르코나르 씨! 밤낮 시간의 차이가 많겠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서 계속 졸기만 하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억! 어어....... 알았습니다." 말의 뉘앙스나, 말하는 당사자나 때나 말투나 그런 모든 것들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였지만 옛 신병 시절을 떠올리며 입가에 손바닥을 대며 아래로 쓸어담았다.

그가 피로로 인해 무게가 가득 실어진 눈꺼풀에 자극이 주어져 앞을 보았다. 손바닥의 밑으로 시야가 닿자 앞의 좌석 뒤에서 잔소리를 하던 여인을 볼 수가 있었다.


정차한 탓에 바로 뒤를 돌아본 리츠코는 바르코나르와 눈이 맞닿았다. 윤곽만 드러나는 광대뼈, 그리고 각진 턱을 중심으로 피부가 수축되고 기미가 눈밑에 낀 사내의 모습은 그 체격에도 불구하고 초췌하게 보여졌다.

그녀는 몇 번이고 그의 지친 모습을 보았지만, 거의 일주일째 같은 상태로 남으면 뭔가 문제가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미쳤다.


하지만, 그의 태도나 다른 것들을 바탕으로 추론하면 그런 것까지는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약간 과장되기는 했어도 열의는 있으니 밤을 새도 딱히 이상한 것은 아니며, 그가 살던 행성의 주야 시각 개념이 다른 것이면 앞으로 몇 주는 더 고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넘겼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기는 하죠. 그래도 중요한 자리에서 졸고 있는 모습은 보여주면 안됩니다. 뭐....... 설마 아프거나 그런 거는 아니죠?"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프면 솔직하게 말할 테니 필요 이상으로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앞으로 몇시간 남았습니까?"

그의 용모처럼, 대부분의 답변이나 말하는 것들이 가볍지 않은 탓에 그녀는 그의 말이 단순히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말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 대신, 사람 대 사람으로 기본적인 걱정을 담아가며 운전대를 잡기 시작하였다.


이제 잠에서 완전히 깨어난 그가 팔의 근육을 이완시키며 두 손을 잡을 쯤에, 리츠코는 아침에 나서며 그가 한 말을 기억했듯이 평소의 목소리 톤보다 조금 더 높게 말하였다.

"생각해보니, 아침에 밥을 먹지 않고 나섰으니 그런게 아닐까 생각도 드네요. 혹시 뭐 도시락 같은 것은 챙겨왔나요?"

집에서 음식을 만들 생각은 하나도 없을 바르코나르는 부정하였지만, 비스무리한 용도의 물건을 꺼내며 답하였다.


"아닙니다만, 대신 옛날에 자주 보던 비스무리한 것을 가져오기는 했습니다."


"네?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지........ 뭐 바깥에서 뭔가 사온 모습은 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죠." 리츠코는 가끔씩 동떨어진 소리를 하는 새 프로듀서에게 낮선 기분을 넘어 약간의 경계감까지 생기려던 것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걱정되는 눈빛으로 뒤를 쳐다보려고 하다가, 그가 들고 있던 것을 보자마자 허무하다는 듯이 미묘하게 맞장구쳤다.


바르코나르의 서류가방의 안에서 보던 물건은 단순히 한 끼를 넘어, 거의 하루동안 허기를 달래줄 만한 양의 처음 보는 전투식량이였다.




기묘한 시선에도 흉터를 지닌 얼굴이 철로 만들어진 것처럼 바르코나르는 아무렇지도 않게 뜯기 시작하였다.

바르코나르에게는 그 나름대로의 사연으로 한동안 집 안에서조차 먹고 다녀야만 할 처량한 대체식량이였지만, 관심이라고는 먼지 한 줌조차 없을 물건을 처음 보던 리츠코의 반응은 냉담한 듯 보였지만 계속 언급하는 모습을 취했다.


"그러니까........ 저것이 음식이 담긴 주머니 같은거란 말이죠. 분명 옛날에 많이 먹어봤을 느낌이 딱 드네요. 저런 것을 이곳에서 구할수 있을 줄이야."

애써 시선을 돌려 무시하고, 그냥 그려러니 하고 괴상한 취향으로 넘기려고 들었지만 무리였다. 귀를 기울이고, 무언가 싶어 머릿속으로 상상하려고만 드니 오히려 더 궁금해지지 않는가.


안경 너머의 두 눈동자는 앞을 보고, 뭐라 질문할까 대화를 고르던 참에 바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르코나르의 대답이 전해졌다.

"대부분 집과 뭐 좀 마련하느라 돈을 쓴 덕분에 아끼는 일환이 아니겠습니까. 집 밖에서 얻어먹는 것을 매일마다 반복할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렇게라도 대신해야죠."

바르코나르는 대답을 하면서도 계속 봉지를 뜯고, 그 중 일부를 다시 안에 넣어 보관하기 시작하였다. 계속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자니 단순히 한 끼를 넘어 아예 하루치의 식량이 들었을 듯한 느낌까지 리츠코는 감을 잡았다.


단순히 때려맞춘것에 불과했지만, 부피 자체는 그저 그렇다고 여겨질수도 있지만 열량만 따져본다면 하루는 넘길수 있을 양이였다.

애초에 수령인과 발신인의 정체가 정체인만큼 바르코나르의 손에는 몇 번 보지 못한 장교용 전투 식량이 들려져 있었으며, 신속대응팀 부대원으로 복무하였을 당시에 조우한 임페리얼 가드 간부들의 악담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시작하였다.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정도면 충분하였기에, 봉지를 뜯고 드러난 파운드 케이크를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잡았다. 밀폐되어 표면에 물기가 남아있을 정도로 촉촉했지만, 약간 빵가루와 반죽이 약간 섞여 손가락에 쉽게 뭉게져 자칫하다 땅에 떨어지면 그녀에게서 무슨 소리를 들을지는 뻔하였다.


차마 입에 쑤셔넣지는 못하고,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손바닥 절반만한 크기로 떼어내며 입에 넣는 도중에 그녀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게........ 맛은 있나요?"

"예?"

그 와중에도 계속 몇 조각을 떼어서 먹고 있었건만, 갑작스레 닥쳐온 리츠코의 관심에 바르코나르는 뭐라 답해야만 할지 생각하느라 얼어붙었다. 기묘한 모습에 리츠코는 시선만을 떼놓은 채 계속 물어보았다.

"일단 뒷처리는 알아서 잘 해주실거라고 믿는데....... 그래도 저걸 가져올 정도면 최소한 맛 자체는 이상하지 않겠다는 뜻이겠죠?"




바르코나르는 말없이 끄덕였다. 그것이 백미러를 통해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무어라 불평하지 않을 것을 보아 용납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라고 짐작하였다. 저 남자가 워낙에 무뚝뚝한 인상을 지닌 탓에 그냥 얼버부리는 것일수도 있지만 리츠코는 그것도 아니라고 짐작하였다.

뭐라 말하려고 입밖에 나오려고 했지만, 스스로 폐를 끼치는 것처럼 느껴져 운전대의 손가락을 몇 번이고 놀리며 다잡으려고 행동했다.

"으흐음." 코를 찌르는 듯한 과장된 설탕냄새나 오래된 밀가루의 향, 입에 털어넣고 오물오물 먹는 소리가 불편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처음부터 물어보지 말았을걸....... 이라고 후회하던 차, 갑자기 뒤로 내밀어지는 손에 놀라고 말았다.


"아앗?! 운전 중에는 방해하지 말아....... 아."

"차라리 원한다고 했으면 그냥 빠르게 끝났을텐데 말입니다. 드셔 보십시오." 리츠코는 백미러를 통해서 그의 왼손바닥에 담긴 파운드 케이크 한 조각을 보았다. 아마 자신이 말을 너무 흐린 것이라고 생각하며, 보이지도 않을 표정을 애써 담담하게 하며 빵조각을 집었다.


가볍게 집어 그녀의 오른손에 넣었을 쯤 차라리 그가 뭐라 덧붙이면 대꾸할 핑계라도 댈 터, 직후 계속 먹어대니 그 소리가 냠냠이라고 입으로 소리내어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 지경이였다.

다시 운전대를 잡아 좌측으로 돌릴 쯤,  그것의 모양을 보지 않은 채로 입에 던져넣었다. 정작 그 궁금증의 절반은 해소되지 않았지만, 보지 않았을 편도 괜찮겠다고 자기위안을 가지며 오물거리며 씹기 시작하였다.


몇 초간 말이 들리지 않고 조용히 먹는 느낌이 전해졌다. 자신이 먹던 느낌과는 확실히 다를 거라고 예측하며, 심지어 간신히 삼키며 뭐라 볼멘소리를 할 것까지 생각했건만 그것만은 빗나간 모양이였다.

물론 장교용 전투식량인 지라 최소한의 맛만큼은 보장된다고 바르코나르는 염두했지만, 그것이 근거없는 자신감이라는 것으로 드러나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기......." 리츠코는 앞을 보며 운전하였기에 반응을 한눈에 볼 수가 없었다. 머리를 위로 접어묶고 안경을 쓴 생소한 '직장동료'에게서 기억될 만한 반응까지 바란 것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말하면 뭐라 예리하게 판단할 듯한 느낌까지는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아마 다 먹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그가 대답하기를 바랬다.

"나쁘지 않았다면 좋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천연덕스럽게 그 봉지를 들고, 살짝 흔들며 다시 펼쳤다. 몇 번 오물거리는 소리가 이제는 귀에 들릴 수준이 되더니, 삼킬 때는 목에서 텁텁하게 삼키는 느낌이 닿았다. 그것을 집은 손을 비치시켜둔 손수건에 문지른 다음 가차없이 기어를 조작하기 시작할 때는 후기 정도는 예상되었다.




"저'것'을 군인 분들은 수 년동안 먹어야만 한다는 거죠."

"맞습니다....... 만."

"그리고 저걸 맛있다고 생각하며 친구들과 나눠먹는다는 것이죠." 순간 바르코나르는 입끝이 살짝 올라간 채로, 분명 자신도 보았을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며 절로 표정이 변하고 있었다.

물론 저 파운드 케이크가 이상적인 맛은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장교용'으로 지급되었는데도 저래 불평하는 것을 보아 타군과 작전을 뛸 당시에 푸념을 털던 간부들의 모습도 언뜻 생각될 법도 하였다.


"그냥 차라리 맛없다고 하면 덜 민망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러면 이걸 먹는 제가 무슨 신세가......."

"언제는 음식값 아낀다고 구했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저걸 오랫동안 먹다가는 오히려 약값이 더 나올거만 같은데요. 그래도 프로듀서 씨는 옛날에 많이 드셔보셨을거 아니예요. 지금 먹고 있는 것도 어울리니..."

봉투 안쪽에 달라붙은 파운드 케이크를 짜내다가, 무언가 번뜩 떠올린 것이 있어 잠시 그의 시선은 리츠코의 뒷통수를 향하였다.


"흐으으음......." 백미러를 통해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시선을 그에게 주기 위해 돌린 탓에 앞에 집중하던 리츠코의 얼굴이 보였지만, 생각난 것은 그게 아니였다.

잠시 그는 자리를 바꿔 왼쪽으로 옮긴 다음, 다시 운전석의 천장에 매달린 백미러를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여전히 절반 가량을 가린 운전석의 머리받침을 넘어, 그쪽을 생기없게 응시하는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아키즈키 씨." 짧게 깎은 바르코나르의 갈색 머리 아래로 거울에서 응시하던 사내의 입이 움직이며 그녀의 신경을 끌었다.

"뭔가요?" 여전히 운전하고 있는 바람에 리츠코는 건성으로 대답하는 듯 보였지만, 바르코나르는 개의치 않고 차분한 목소리로 이었다.

"혹시 제가 이곳에서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느낍니까?"


듣자마자 리츠코는 당황하며 머리 오른쪽 위의 백미러를 조절하며 그의 얼굴에서 속내를 알아채려 들었다.

흉터들이 양옆으로 가득하고, 단정하고 날카로운 눈매와 머리카락에는 그가 평상시에 보여주는 표정밖에는 섞여있지 않았다. 장난기섞인 조롱이나 속상한 듯한 토라지는 느낌도 아니였으며 오직 단 한가지 기분만이 담겨져 있었다.

'사람좋은' 잔잔하면서도 신뢰감있는 미소가 아닌 무표정한, 영혼이 눈가로 비쳐보이는 듯한 느낌이 전달되었다.




"아, 아니 그게 무슨........"


"그럴 의도로 말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아키즈키 씨가 말한 것처럼 약간 튀어보이는 인상이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어쩌면 저 남자가 시침떼는 것인가 싶어 그녀는 눈초리를 두었다. 그리고, 저 사내가 한번이라도 거울을 보는 것인가 혼자 생각해보았다.

사무소에서 속한 아이들의 여린 마음을 고려한다고 쳐도, 뒤에 앉아있는 프로듀서의 기품(氣稟)은 그 누가 보아도 '흠칫'이라고 한 단어로 표현해야만 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인정합니다'라니? 쉽게 이해할 만한 것은 아니였다.


뭐라고 말해야만 할지 떠올리지도 못하고, 이에 덧붙이는 사내의 말이 이 기묘한 위화감을 더할 것이라고 여기며 리츠코는 귀기울여 들었다.

"행동이야 바로 고쳐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적응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죠. 제가 그렇게 이곳, 아니 이 행성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아키즈키 씨도 생각합니까?"

이미 답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잣대가 아닌 남의 판단을 원하고 있었다. 설령 자신이 생각하는 대답과 상반될 지언정.


"아니, 대체 무슨........ 잘나가다가 왜 그런 말로 화제를 넘겨요. 그래도 일 자체를 봐서는 걱정되는 것은 아니고........"

어쩌면 저 사내가 지나치게 둔감하거나, 어리숙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여기며 얼버부리려 들었다. 그러나, 리츠코는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그가 원하는 만큼 솔직하게 들려줘야만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일단 들어보세요." 그에 바르코나르가 고개를 끄덕이니 머리 위에 백미러로도 비추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바르고스 프라임에는 프로듀서 씨같은 사람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으니 놀라거나 약간 시선이 집중되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겠죠."

백미러를 통해 리츠코와 시선이 마주치자, 바르코나르는 그녀의 비치는 안경 너머로 담담하게 끄덕이는 사나이의 모습을 보았다.


일자리나 옷차림같은 것치례는 비슷했지만, 단순히 성별이나 출신 차이에 넘어서 극복하기 힘든 차이점을 그는 명확히 알고 있었다. 같은 정장차림에, 같은 차에 같은 목적지를 향한다고 해도 본래 자신의 모습은 이것이 아니라고 알고 있었다.

리츠코는 답하던 말에 잠시 뜸을 들이다가, 드디어 명쾌하게 그를 달랠 말을 찾았다고 속으로 자축하며 덧붙였다.


"그래도, 지금껏 나름대로 괜찮게 일을 도와주셨는데요 뭘. 옛날 모습도 인상깊고 훌륭한 이야기가 될 터지만, 그래도 마음이 어지럽다면 일에 집중하고 있어보세요."

그녀는 잠시 헛기침을 하더니, 안경을 고쳐쓰고는 의견을 표력하였다. "내 경험이기도 하지만, 집중을 하다 보면 잡념도 사그러들고 나쁜 기억 같은 것들도 떠오르지 않게 한다니까요. 그리고 밥도 잘 챙겨먹고요. 그런 음식을 먹으니까 떠오르는게 아닐까 싶은데......."


"아아....... 알겠습니다." 바르코나르는 챙겨운 전투식량을 옆에 내버려둔채 등과 어깨에 힘을 풀었다.

그리고 시트에 기대자, 목 뒤와 어깨 위를 짓누르는 듯한 불안감도 사그러든 것에 절로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대답하였다. 어느새 고개가 살짝 뒤로 꺾어지자, 자신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선 안도감을 느끼며 그 스스로가 생각했던 모든 것을 조소하며 속으로 비웃기 시작했다.


지나간 과거가 어떤 진실을 내포하고 있든, 결코 되돌릴수도 없었다. 그의 신념에서 비롯된 헌신, 의무로써 새로운 전장을 맞이하였으니 그에 복종하는 것이 안식을 잠깐뿐이라도 가져다줄 유일한 방법이였다.

무엇이든 집중하기 위하여 파고들고, 집중하려 들었지만 왜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할까.


그는 이단심문청의 동료를 원망하였다. 차라리 거짓이라도 좋으니 제국의 의무를 따르기 시작하였건만, 왜 그녀는 7년 전에 벌어졌던 참사에 대해서 언급하였을까 책망하기 시작했다.

바르코나르 스스로도 그곳에서 무슨 결과가 도출되었는지는 알고 있었으며, 이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최대한 꺼려했다. 의무에 대한 의심은 오직 반역과 실패만을 남길 것이라는 제국의 격언으로써 자신을 변호하며.




그는 이렇게 안도감을 얻은 것은 오랜만이라고 여기며 온몸에 주던 힘을 풀었다. 놓여져 있던 전투 식량 백을 옆으로 치우고 목을 뻗으니, 확실히 해소되지 못한 피로가 역류처럼 밀려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절로 찡그려지는 미간을 왼손으로 누르며, 기억하기도 싫은 꿈 덕분에 떠올려지고 만 것 하나가 연상되고 말았다. 전투식량인 탓에 임페리얼 가드의 장병들과 떼놓을수도 없지만, 동시에 격렬하게 터부시되는 물건이기도 했으니.


봉지를 다시 뒤적일 쯤, 리츠코는 운전대를 좌측으로 꺾으며 속력을 줄이기 시작했다.

"늦잠이야 약간 쓴소리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식사는 해결되었으니 좀 나으려나......."

왼쪽의 표지판이 시선을 기울이며 차선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얼마 남지 않은 탓에, 리츠코는 가볍게 마음을 풀기 위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일은 물론이요 앞으로 몇 주간 잘 풀리면, 한 달 동안은 최소한 현상 유지만 해줘도 괜찮을거 같네요. 일거리를 역시 좀 많이 찾아야만 할 텐데......."

그가 껄껄대는 것까지는 기대하지 않고, 시선도 없었지만 눈을 좁히며 두리번거리는 시늉을 하였다. 어차피 그래봐야 왼쪽이고 오른쪽이고 넓은 대로 양옆의 시가지가 전부이긴 했지만, 그 모습에 스스로 웃고는 하였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릴 쯤에 바르코나르의 말까지 덧붙여져 분위기는 생각보다 빠르게 풀어졌다.


목과 시트의 뒤로 흐르던 종잇장 구겨지는 소리는 오른쪽으로 그의 손을 따라갔다.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사람의 기운에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리츠코는 물어보았다. "뭔가요?"

"옛날에 군대에 있었을 쯤 몇몇 가드맨들이 뭘 찾으러 이골이 났을때 자주 씹었는데....... 그런 걸 믿지 않아도 단맛도 있고 하니 괜찮을테고 말입니다." 으적거리며 씹고 깨는 소리가 말문에 섞여서 나왔다.


사탕에 시선을 두지 않았지만, 설탕의 단맛을 풍기는 그것은 리츠코가 꺼려하는 것은 아니였다. 최소한의 단맛만은 혀끝에서 맴돌 것이지만, 핸들에서 오른손을 떼기 전 신중히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을 받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북함은 둘째쳐도, 아직도 입천장에서는 마비되는 듯한 단맛이 그 사탕에 없으리라는 보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손사레를 치며 받기를 거부했다. "아무리 봐도 그게 같은 봉지 안에 있었던 거 같은데........ 사탕은 나중에 시도해보도록 하죠. 그게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남의 호의를 거절하는 데는 바르고스 프라임의 신민답게 꺼림칙하다고 생각했지만, 단 한 줌의 파운드 케이크 조각으로도 충분히 변호가 될 수 있는 내용이였다.


"알겠습니다. 다른 때에는 없어서 못먹는 물건이긴 한데, 차 안에서는 먹는 꼴을 보지 못했으니...." 능청스럽게 대답하며 다시 봉투에 집어넣을 쯤, 이제는 바깥의 풍경이 잔상을 흘리지 않을 정도로 느려졌다. 바르고스 프라임의 모습 또한 그에게 다가오며 전쟁터뿐만 아닌 일자리이자 거처로써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브레이크를 조심스럽게 밀어지며 두 명을 태운 중형차의 속력도 늦추어지기 시작했다. 도심에서 벗어난 탓에 교통량과 인적은 눈에 띄지 않아 리츠코는 비교적 쉽게 인도에 밀접하게 주차할수가 있었다.

수수한 건물의 창문에서 비추는 햇빛 탓에 그가 눈을 부실 쯤, 미리 안전벨트 버튼에 왼손을 댄 리츠코가 그의 시선을 환기시켰다. "도착했으니 준비해 주세요. 예정 일정보다는 일찍 돌아갈수도 있으니 알아두세요."


"최소한 본전은 건질 겁니다." 차문을 열어, 운전석이 위치한 오른쪽으로 리츠코가 발을 내린 사이 그도 휴대전화를 꺼내며 왼쪽으로 하차하였다. 민간쪽의 일정이 오늘 이후로는 2일간 공백인 탓에 문제는 없을 것이였지만, 문득 하늘을 올려보며 그 외의 방책을 생각해두고 있었다.

그것으로 인해 잠시동안 발 전체를 짓누르는 압박과 함께 그의 발목을 잡았지만, 이내 사내는 리츠코를 뒤따라 건물로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차 안에서 내버려둔 전투식량이 태양빛을 오래받아 미지근해질 쯤, 좌측에 위치한 5층 건물의 정문에서 세 명의 사람이 걸어오는 실루엣이 유리문을 통해서 비추어졌다. 제국 전역에서 보편적인 고딕 양식과  바깥에서 몇 분 전과 같이 사람 둘셋이 바깥의 복도에서 로비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말이 좋아 건물의 로비였지, 크림색의 페인트로 칠하고 책상 하나를 놓은 지라 바르고스 프라임에서 느끼는 특유의 분위기는 풍기지 않았다. 대신, 그 밖에서부터 천천히 입구를 향해 걸어오는 한 사내, 한 여인과 한 소녀에게서는 이국적인 풍채를 느낄수가 있었다.


"좋아, 그렇다면........ 일단 다음주 월요일이 최대 고비겠네. 하루카, 이번엔 실전이니 실수 없이 하는거다?!"

"실수일 뿐이였는데....... 다음에는 그러지 않을거 같으니 안심하세요." 보기에는 그냥 지나치는 말처럼 들렸지만, 말에 올리던 암피테 하루카를 제외하고 두 명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녀 자신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기에 마찰이 없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같이 걸어나오던 바르코나르는 고개를 약하게 끄덕이며 애매모호한 동의를 표하였다. 저 건너편을 바라보듯 시선을 좁히던 차, 잠시동안 발밑을 조심히 보며 걷던 하루카를 제치며 리츠코는 그의 발걸음을 맞추었다.

보폭 자체야 빠르게 걸어가던 체격 좋은 프로듀서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보다 휠씬 빠르게 리츠코가 하는 말은 옆에 붙을수가 있었다.


"미리 숙고해서 알려드리긴 했지만........ 같이 따라오게 할 필요까지는 없었네요. 결과적으로는요."

"아니, 괜찮습니다. 일이 있든 없든 일단 보면서 배우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리츠코의 눈으로 바라본 그는 지쳐보였다.

대체 최근에 밤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졸려운가 생각되기도 했지만, 그의 모습과 함께 잠에 밀려와서 쉽게 쓰러지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어했다. 결정적으로, 사무소 안에 있었을 때는 단 한번도 내색하지 않았다. 심지어 차 안에서 졸았던 모습을 다시 연상하기 힘든 정도였으니.


이후 앞으로 여유를 가질 2일동안 활동할 방법을 강구하던 사이, 차에 올라타던 쯤 리츠코는 그에게 걱정스레 충고해 주었다.

"일단 오늘 많이 지치신거 같으니 이틀동안 쉬고 있으세요. 다음주부터는 본격적으로 전담 일을 맡게 될 테니 준비하시고."

"예, 예. 다음주부터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자연스레 담담한 듯 보여 별 문제는 없어보였다. 바르코나르는 차라리 진짜 이 모습대로 쉰다면 여한이 없을 거라고 여기며 다리의 긴장을 풀었다.


아쉽게도 이틀동안 제대로 침낭 속에서 누울 일은 없을 거라고 스스로 자책하였다. 생각하던 것처럼 인격을 덮어쓰는 수준으로 자신을 밀어붙이지 않았지만, 지휘하는 작전에 모든 신경을 기울일수 없다는 제약은 상당히 버겁게 다가왔다.

물론 앞만 신경쓰고 나간다면 언젠가 임무도 완수되겠지만, 예감은 그보다 더 커다란 진실과 비극을 몰아올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찌 7년 전의 참사가 다시금 다가오기 시작하는가.



1일 1개 연재를 어떻게든 복귀시켜야만 한다고 느끼며 마침내 이번편 집필을 완료했습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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