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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13, 2013 14:34에 작성됨.


*타 사이트에 올렸던 글을 약간 덧붙여서 올려봅니다.

-


 안녕하세요. 아마미 하루카라고 합니다. 나이는 17살, 아이돌을 하고 있…었습니다. 네. 얼마 전까지는요. 지금은 평범한 여자아이입니다. 아니, 평범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네요.

 얼마 전까지 저는 765 프로덕션의 소속 아이돌이었고 자기 입으로 이런 말 하면 조금 부끄럽지만 나름은 인기 있는 아이돌이었습니다. 처음엔 정말 힘들었어요. 아무데서도 아이돌다운 일은 커녕 아무런 일도 들어오지 않았었지요. 시간이 흐른 후에야 사무소의 모두가 함께 열심히 노력한 끝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조그마한 시골 마을의 축제 무대에 섰던 게 처음이었지요. 그래도 소중한 추억이었습니다. 다들 처음으로 서는 무대였고, 그렇게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아이돌이라는 감각을 느낀 건 처음이었을 거에요. 그런 기분을 한 번 더, 계속 느끼고 싶어서 노력한 끝에 저희가 고정으로 진행하는 방송도 맡게 되었고 콘서트를 보러 와주시는 팬 분들도 많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열심히 했지만 아마 그 사람…… 프로듀서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요. 프로듀서가 765 프로덕션에 오신 후 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던 거에요. 프로듀서도 처음에는 실수 투성이였지만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노력해 주셨어요. 그런 프로듀서가 있어 주었기에, 프로듀서가 저희들을 프로듀스 해 주셨기에 저희는 무대 위에서 빛날 수 있었습니다.

  아, 잠시만요. 그이가 씻을 시간이네요. 정말이지 손이 많이 가게 한다니까.

 ……….

  네? 몸을 전부 다 씻겨 주냐고요? 아이 참, 그런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어요. 짓궂으시네요. 그럼, 죄송하지만 더 늦어지면 그이가 싫어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왜 이런 일을 하냐고요?

 ……….

 그야 이것이 제 책임이고 제 속죄니까요. 제가 해야만 하는 일이에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볼 면목이 없으니까요. …흑.

 …더 이상 울지 않기로 그이와 약속했는데.

 …그 날, 저는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평소에 밝고 명랑한 아마미 하루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죠. 그 날 뿐만 아니라 그 무렵의 저는 정말로 평소같지 않았죠. 저는 다가오는 콘서트를 정말로 성공시키고 싶었어요. 저희는 많이 부족했기에 연습을 해야 했어요.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모두 많이 바빠서 함께 연습할 시간이 거의 없었죠. 저는 불안했어요. 이러다가 콘서트에서 큰 실수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지금껏 힘들게 쌓아 온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너무나 불안했어요. 모두가 스케줄이 가득해 바빴지만 제가 어리광을 부렸죠. 미키와 함께 하는 뮤지컬도 마음에 전혀 들어오지 않아서 엉망이었죠.

 아, 미키. 미키는 정말로 대단한 아이에요. 흔히들 하는 천재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지요. 한번 보고 들은 노래와 안무를 바로 외워서 완벽하게 해내 보일 만큼 대단했죠. 그녀는 누구보다도 빛나는 아이돌이었어요. 그리고 미키는 그이를 좋아했죠. 리츠코 씨나 그이가 항상 주의를 주고는 했지만 미키는 그이를 계속 '허니'라고 불렀지요. 분명 미키는 프로듀서에게 연애감정을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다른 사람은 장난이겠거니, '그러다 말겠지' 했을 수도 있지만 저는 왠지 알 수 있었어요. 뭐, 이젠 별로 상관없지만. 후훗.

 이야기가 조금 새버렸네요. 그 날, 말했듯이 저는 제대로 된 상태가 아니었어요. 뮤지컬 감독님께는 야단을 맞았고, 그 날 하기로 했던 단체 연습도 모두들 오지 못한다는 연락이 왔죠.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난 거예요. 저는 뮤지컬 무대 아래로 떨어졌죠. 아니, 떨어져야 했어요. 하지만 프로듀서가 저를 끌어올려 줬어요. 덕분에 저는 떨어지지 않았죠. 그 아래는 정말로 깊었어요. 떨어졌으면 분명 큰일이 났겠죠. 저를 구해주신 프로듀서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이가 보이지 않았죠. 그리고 굉장히 불길한 소리가 아래에서 들려왔죠. 프로듀서가…… 제 대신에… 흑……

 …죄송해요. 지금은 이야기를 더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어라, 아직 돌아가지 않으셨나요?
 네, 좀 진정 됐어요. 괜찮아요. 차라도 더 가져올게요.

 그럼 계속하죠. 그 이후로 사무실에는 나가지 않았어요. 제가 그이를 다치게 해버렸으니까요. 그이가 깨어날 때가지 제가 보살펴야해요. 그게 제 책임이니까요. 다른 누구에게도 책임을 돌릴 생각은 없어요.

 음, 사과 드실래요? 헤헤, 저도 사과 정도는 깎을 수 있어요. 옆에서 간병하면서 과일을 깎아주는 거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이지 않나요? 소녀는 그런 것에 묘한 동경을 가지고 있곤 하지요. 물론 저도요. 프로듀서는… 역시 드시지 않네요. 사과를 싫어하는 걸까요? 다른 아이들이나 코토리 씨가 깎아 주는 사과는 잘 드시던걸 본 적이 있는데 말이지요. 제가 깎아드려서 그런 걸까요? 당신을 상처 입힌 제가 깎아주는 거라서? 정말로 그런가요?!

 챙그랑.

 아, 아아… 죄송해요. 칼 같은 걸 떨어트리다니, 나도 참. 위험한 짓을 해버렸네요.
 어쩌죠? …음, 할 수 없네요. 제가 먹여드려야겠어요. 몸이 불편하거나 단단한걸 잘 못 먹는 경우에는 옆에서 적당히 씹은 걸 먹여주곤 하잖아요?

 ……….

 이 정도면 적당하겠죠. 이거 먹고 프로듀서가 건강해지셔야 할 텐데.
 …네? 그럼 프로듀서가 언제 깨어나냐고요?

 ………………….

 ……돌아가…주세요.
 네. 프로듀서가 깨어날 때까지는 그만 두지 않을 거예요. 사무실에도 나가지 않을 거예요. 다른 모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게 제 책임인걸요. 그리고… 그이 없이 저는 빛나지 않으니까요. 빛날 수 없으니까요….

 자, 그럼 이만 돌아가 주세요. 오늘 즐거웠습니다. 평소 사장님과도 친하고 저희를 많이 도와주신 요시자와 씨니까 이야기라도 한 거니까요. 혹시 그러시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이상한 말은 하지 않으시겠죠? 만약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저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요.


-


 "요시자와 씨, 어떻게 됐어요?"

 요즘 부쩍 들리는 일이 잦아진 765 프로덕션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녀와 가장 친분이 깊었던 키사라기 치하야가 가장 먼저 달려왔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었다. 다들 같은 마음으로 그녀를 걱정하고 있을 것은 분명하지만 아마 이 치하야라는 아이가 가장 그녀를 걱정하고 있을 것이었다.

 "…아마 무리인 것 같아."

 치하야의 뒤를 따라 나온 765 프로덕션의 아이돌들의 표정은 내 말을 듣자마자 마치 붙잡고 있던 구원의 동아줄이 끊어진 것 처럼 어두워졌다.

 "겉으로 보기엔 많이 괜찮아 진 것 같기도 해.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정도일 뿐이지 그녀는 아직도…"
 "…큿, 하루카…."

 치하야가 961 프로덕션, 그러니까 쿠로이 사장의 폭로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고 있을 때 도와준 것이 하루카였다. 덕분에 치하야는 다시 한 번 노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앞을 보고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카는 치하야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모두가 치하야의 손을 잡아 주었지만 가장 먼저 치하야에게 손을 내민 것은 하루카였다. 하지만 그녀는 하루카를 도울 수 없었다. 반드시 보답해야 하지만, 보답이 아니라 해도 친구로써 하루카를 도와야만 했지만 치하야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하루카는 아직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건가요?"

 아키즈키 리츠코. 그녀는 그와 함께 765 프로덕션의 다른 프로듀서이기도 했기에 하루카의 상태를 비교적 침착하게 물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리츠코의 상태도 침착을 가장하고 있을 뿐 다른 아이돌들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음같아서는 765 프로덕션의 모두가 하루카처럼 생각하고 싶을 것이다. 말을 꺼낸 리츠코도 인정하기 싫다는 듯 목소리가 떨려왔다.

 "그래. 아직도 그녀는 프로듀서가……"


-

 요시자와 씨가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가자 집은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밖에서 엄마가 요시자와 씨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지만 그 점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요시자와 씨는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실 테니까요.

 "아, 프로듀서 씨. 목마르시겠네요. 잠시만요."

 계절이 겨울이라는 것도 있지만, 집안의 사정 때문에 제 방은 항상 건조한 편입니다. 그래서 자주자주 그이에게 물을 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건조한 환경에서 수분 섭취를 하지 않으면 몸이 상하고 마니까요.
 나는 옆에 놓인 주전자에서 물을 컵에 따랐습니다. 하지만 그이는 그래서는 마시지 못하니까 직접 입에 물을 머금고 그이와 입술을 포개서 물을 흘려주었습니다.

 "아이, 프로듀서도. 그렇게 흘리시면 어른답지 못해요."

 그이의 입에서 제멋대로 흘러나오는 물을 익숙한 손놀림으로 옆에 놓인 수건으로 닦아 줍니다. 정말이지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라니까. 역시 내가 돌봐주지 않으면 안 돼.

 "하루카, 있니?"

 문 쪽에서 노크 소리와 함께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요시자와 씨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가버려서 직접 이야기를 하려고 온 거겠죠. 엄마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꾸 그이와 나를 떼어놓으려고 해요.

 "하루카, 밥은 문 앞에 놓고 갈게."
 "……."

 나와 그이 사이를 떼어놓으려는 엄마도, 다른 모두들도 보기 싫어요. 왜 자꾸 내게서 그이를 데려가려는 거야?!

 "기다릴게. 그러니까 빨리…"
 "그만! 필요 없어요!"

 손에 잡히는 대로 던져버린 하얀 찻잔이 문에 부딪혀서 쨍그랑 하는 엄청난 소리를 내며 깨져버렸습니다. 다행히도 요시자와 씨가 차를 다 드시고 가셔서 안에 차가 남아있지 않은게 다행이었네요. 잠시 후에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문 밖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엄마는 돌아간 모양이에요. 이렇게 하면 적어도 오늘 하루는 더 이상 오지 않겠죠. 드디어 방해하는 사람들도 사라지고 둘만의 시간이 생겼네요. 깨진 찻잔을 치우지 않으면 귀찮은 일이 벌어지겠지만 방해받지 않는 둘만의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싫었기에 청소는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후후, 프로듀서. 이렇게 둘이 있고 싶었어요."

 침대에 아무런 말도 없이 조용히 누워있는 프로듀서의 옆에 누워봅니다. 침대는 두 명이 누워도 될 정도로 충분히 넓어서 제가 옆에 누워도 좁아서 불편하다던가 하는 일은 없어요. 그렇게까지 큰 침대는 아니지만 저도, 그이도 그저 얌전하게 누워있을 뿐이니까요.

 "다른 모두들은 전부 거짓말쟁이들이에요. 모두들 프로듀서를 좋아한다고 했으면서. 프로듀서를 돌보는 건 저뿐이잖아요?"

 언제나와 같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실망하지 않아요. 언젠가 그이가 다시 깨어나 밝은 얼굴로 웃으며 저를 칭찬해 주겠지요. 갑자기 굉장히 의미 없는 일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마음을 다잡기 위해 그이를 꼬옥 안았습니다. 그이의 몸은 차가웠어요. 방 안에서 작은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는 계절에 맞지 않는 에어컨 바람 때문에 상당히 추웠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으음, 프로듀서. 좀 추운가요? 프로듀서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 일이니까 어쩔 수 없네요 그건. 어때요, 이러면 제 체온 때문에 따뜻하지 않나요?"

 나는 온기를 나누려 그이를 더 끌어안아주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그의 굳은 몸에서 한기가 올라오는 듯 했습니다. 그럴리가 없는데. 그럴리가 없어.

 "꺄악! 미안해요!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갑작스럽게 뒤로 물러나자 침대에서 굴러떨어져 버렸습니다. 손 끝이 따끔한 것을 보니 떨어지면서 손이 깨진 찻잔에 베인 듯 했습니다.
 차디찬 얼음같은 방 안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손끝을 바라보니 그곳에서 열이 퍼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혼란스러운 감정도 다 빠져나가 다시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미키 말이에요. 참 나쁜 아이에요. 그렇게 허니 허니 하면서 달라붙었던 주제에 프로듀서가 이렇게 되고 나서는 한 번도 찾아오지도 않는 거 있죠? 거짓말쟁이."

 손에 반창고를 붙이고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아서 그런 소식을 말해봅니다. 일부러 미키에 대한 건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요시자와 씨와 이야기할 때 무심코 생각이 나 말해버리기 전까지는 잊고 있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미키는 그 날 이후로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병원을 뛰쳐나간 미키는 그대로 사라져서 제가 집으로 돌아올때까지는 모두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 이후도요.
 하지만 미키가 찾아왔어도 그이를 만나지 않게 했을 것이라는 말은 물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항상 당신 곁에서 지켜줄게요. 저만은 언제까지라도 당신을 지켜줄게요."

 차가운 방에서 지내는 탓인지 찻잔 조각에 베인 아픔도 눈물이 얼굴 위로 흐르는 것도 잘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저 기다릴 뿐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갑니다. 그 이가 깨어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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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마스 후반부의 그 사건에서 만약.. 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분명 다른 글을 쓰고 있었는데 왠지 묘한 기분이 들어서 다른 사이트에 올렸던 글을 조금만 덧붙여서 올리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예전에 이미 보신 분들도 제법 계시겠지만[..]
그 때도 밝힌 바 있지만 모티브는 아는 사람은 안다는 예의 모 뮤직비디오입죠.

저도 모르게 이런 도피를 하게 된걸 보면 쓰려고 했던 글은 무난하고 밝은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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