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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별바다에서 별을 본다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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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12, 2013 23:38에 작성됨.

  프롤로그

  구름 없는 밤하늘은 달빛으로 지상을 환하게 비췄다. 산속 폐가는 밝았다.

  나뭇가지에 앉은 새는 수풀 속에서 찌르르 찌르르 들려오는 벌레소리에 푸드득 날갯짓을 했다. 까마귀와 닮은 정체모를 검은 새는 별과 달빛 아래 날개를 크게 휘저으며 먼 곳으로 날아갔다.

  새의 거센 날갯짓에 떨어진 까만 깃털 하나가 마당으로 떨어졌다. 깃털은 선명하게 흔들리며 내려왔다.

  폐가의 마루에 앉아있던 소녀는 몸을 굽혀 깃털을 집었다. 기묘한 윤기가 흐르는 깃털. 소녀는 손가락을 굴려 깃털을 달빛에 비추며 이리저리 감상하다가 금방 흥이 떨어졌는지 휙 수풀 사이로 던져버렸다.

  “누나, 일어났어?”

  이제 막 변성기가 찾아온 듯한 소년의 목소리. 소녀는 빙글 몸을 돌려 폐가 안쪽을 바라봤다.

  소년은 방바닥 위에 깐 모포 위에서 엎드린 채 소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소녀는 비스듬히 비튼 몸을 소년 쪽으로 기울이며 그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소년은 우물쭈물 입을 달싹였다.

  “누나, 아프진 않아?”

  “후훗, 이 정도쯤이야 매일 하는 레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걸. 너, 날 너무 무시하는 거 아냐?”

  “그, 그게 아니라, 아무리 누나가 대단해도 그….”

  갈팡질팡 흔들리는 소년의 눈동자. 소년은 부끄러워 차마 입으로 단어를 내뱉지 못했고, 애꿎은 귀가 새빨갛게 익어갔다.

  소녀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내 걱정 말고 네 걱정이나 해. 난 이제 가볼 테니까.”

  “뭐? 간다고?”

  소년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퍼뜩 몸을 일으켰다.

  “그럼, 가야지. 쭉 여기 있을 순 없잖아. 이런 시골 산속에 계속 있어봤자 재미없는 걸. 은밀한 밀회 놀이도 슬슬 질리고.”

  소녀는 소년의 표정은 살피지 않고 마루에서 일어났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달과 별의 빛이 소녀를 내리쬐었다. 소녀의 긴 머리카락은 빛들을 흠뻑 머금고 어둠 속에서 홀로 번뜩였다.

  소년은 그 뒷모습을 멍청히 바라봤다.

  “그럼 잘 있어. 잠깐이지만 즐거웠어.”

  소녀는 말을 툭 던지곤 앞으로 발을 움직였다. 소년을 폐가에 덩그러니 남겨둔 채 소녀는 멀어졌다. 소녀는 소년을 바라보지 않았다.

  소년은 멀어지며 찰랑거리는 소녀의 머리칼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잠깐! 진짜 가려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묻는 소년. 소녀는 뒤돌아보지 않고 답했다.

  “당연히 가야지. 시간은 금이야. 그냥 여기 앉아있는 걸로 내 소중한 시간을 허비할 순 없어.”

  “그게 무슨…여, 여기엔 내가 있잖아!”

  소년은 애처롭게 매달렸다.

  그제야 소녀는 뒤를 돌아봤다. 소녀의 머리칼과 같은 갈색 눈동자는 소년을 가만히 응시했다. 무감각한 시선.

  소녀는 훗하고 코웃음을 쳤다.

  “네가 뭔데? 아쉽지만 너를 향한 흥미는 이미 떨어졌어. 네가 이 나한테 준 자극은 처음 겪는 것들이었고 신선했지만, 이젠 그렇지 않아. 모든 경험은 처음 접할 때만 재밌는 거니까.”

  소녀는 자신의 배를 툭툭 두드렸다. 소년은 소녀의 모습에 말문이 막혀 망연히 입을 벌릴 뿐이었다.

  “아니면, 네가 나한테 그것 말고도 새로 줄 게 있어? 넌 날 즐겁게 만들 수 있어?”

  소년은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네 곁에 있어야할 이유를 대봐. 당장.”

  “이유라니…그런 건….”

  소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씩 웃었다.

  “봐봐. 내 말이 맞지? 그럼 난 갈게.”

  소녀는 다시 떠나려고 했다.

  소년은 팔을 뻗어 자신을 떠나려는 소녀의 팔목을 잡았다. 소녀는 그 팔을 뿌리치지 않았으나, 표정을 찡그렸다.

  “귀찮게 굴지 마. 너도 나도 모두 좋은 경험을 했잖아. 그걸로 된 거 아냐?”

  “누, 누나는, 날 좋아하잖아!”

  소년은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그가 우길 건 이거밖에 없었다. 소녀의 팔목을 잡은 소년의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뭐? 내가 너를?”

  “날 좋아하니까 같이 있던 거잖아! 날 좋아하지 않는다면 어째서…!”

  “흐음, 너 뭔가 착각하는 모양이구나. 그래, 난 너를 좋아했어. 다만 그건 이미 과거야. 내겐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이라고.”

  소년은 납득한 기색이 아니었다. 소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에휴, 그래 좋아. 큰맘 먹고 특별 서비스로 솔직히 말해줄게. 사실 지금도 너한테 호감이 있긴 해. 널 좋아하고 있을지도 몰라.”

  소년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러나 이어진 소녀의 말은 잔인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 이유로 날 네 곁에 묶어둘 순 없어.”

  소녀의 냉정한 말에 소년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소녀를 잡은 소년의 손은 저절로 힘이 풀려 스르르 떨어졌다. 소녀는 자신의 손목을 툭툭 털었다.

  “자기 주제를 아는 게 어때? 너는 한낱 꼬맹이일 뿐이지만, 난 아냐. 나는 아이돌. 난 모든 사람이 추앙하는 아이돌이라고.”

  소녀는 과시하듯 두 손을 좌우로 크게 벌렸다. 긴 머리카락이 넓게 흐드러졌다. 윤기가 흐르는 소녀의 머리카락은 어두운 달빛을 모조리 빨아들였다.

  소녀는 홀로 우뚝 섰다.

  “너의 가치는 뭐야? 너에게 내 미래를 바칠 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소년을 내려다보는 소녀의 눈동자는 압도적이었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도 소녀의 눈빛은 번뜩였다.

  소년은 입을 열지 못했다.

  그 한순간의 침묵으로 모든 대답은 정해졌다. 소녀는 잠시 동안 소년의 대답을 기다렸으나 겁에 질린 소년의 입은 다시 열리지 못했다.

  “대답도 못하는구나. 결국 넌 꼬맹이였어. 한참 어리디 어린 꼬맹이.”

  소녀의 말엔 안타까움과 아쉬움, 그리고 짙은 경멸이 묻어났다.

  “그럼 잘 있어라. 꼬맹아.”

  그것이 마지막 선고였다. 일방적인 통보.

  소녀는 소년으로부터 몸을 돌려 어두운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소녀가 서있던 자리는 처음부터 그곳에 아무도 없었다는 듯 거대한 어스름으로 물들어졌다.

  소녀의 뒷모습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소년은 털썩 제 자리에 무너졌다.

  그렇게 소년의 첫사랑은 끝났다. 그리고 소녀는 별이 되었다. 모든 별을 짓누르는 거대한 별은 세상을 삼켰다.


  1장 - 첫 만남

  언제나 첫 발을 내딛는 건 설레는 일이다.

  청년은 작은 4층 건물 앞에 서있었다. 건물 1층엔 ‘타루키정’이란 음식가게가 있고, 3층 창문엔 ‘765’란 숫자가 노란색 종이 같은 걸로 붙어있다.

  “765면 맞긴 한데….”

  765는 청년이 찾아간 프로덕션의 이름이다. 하지만 건물이 너무 작고 허름했다. 청년은 여기가 찾던 곳이 맞는지 의심이 가 스마트폰으로 메일에 적힌 주소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한참을 그래 봐도 여기가 그가 찾던 곳이란 건 변하지 않았다. 청년은 반신반의한 심정으로 건물의 계단을 올랐다.

  청년은 3층까지 올라가 ‘예능 프로덕션 765 프로덕션’이라고 적힌 문 앞에 섰다.

  “여기구나….”

  이렇게까지 쓰여 있으니 잘못 왔을 리가 없다. 청년은 혹시 흐트러진 곳은 없나 정장의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넥타이를 적당히 조인 뒤, 다시 문을 마주봤다.

  청년은 문 오른쪽에 있는 인터폰에 달린 수화기를 집었다. 뚜르르, 신호가 들리고 달칵 전화 받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젊은 여성의 목소리. 청년은 긴장함을 애써 감추며 입을 열었다.

  “오늘 프로듀서 면접 보러 온 사람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 오셨군요! 어서 들어오세요~」

  밝게 환영하는 여성의 목소리에 청년은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청년은 수화기를 놓고 닫혀있던 문을 열었다.

  ‘765’라 붙은 종이 사이에서 들어오는 창가의 따뜻한 빛이 청년을 감쌌다. 사무소의 가운데엔 미소를 띤 여성이 서있었다.

  어깨 부분만 검정색으로 포인트를 준 연녹색 조끼에 새하얀 셔츠, 큰 노란 나비넥타이는 귀여움을 한껏 독보였다. 타이트하며 짧은 검정 스커트와 허벅지 근처까지 올라오는 검정 스타킹. 765 프로덕션의 사무원 차림이겠지만, 그게 너무 잘 어울려서 매력적으로 보였다.

  “후후, 시간 딱 맞춰 오셨네요. 사장실에서 사장님이 기다리고 계시니 바로 들어가시면 돼요. 사장실은 저쪽이랍니다.”

  여성이 살짝 고개를 기울이니 머리에 쓴 노란색 머리띠가 초록빛 머리칼 사이에서 힐끔 모습을 보였다.

  여성이 가리킨 곳은 입구에서 바로 왼쪽 방이었다. 위에 ‘사장실’이라고 달린 곳. 청년은 미소로 여성에게 화답하고, 사장실 문을 노크했다.

  “어서 들어오게.”

  사장의 허락에 청년은 문고리를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장실의 양옆엔 책장들로 매워져 있었다. 방송 자료 등으로 가득 채워진 책장들 사이엔 고풍스러운 책상이 있었다. 그 책상 뒤 의자에 765 프로덕션 사장이 앉아있었다.

  “자, 이쪽에 앉으면 된다네.”

  사장은 책상 앞에 놓인 의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청년도 사양 말고 바로 의자에 앉았다.

  청년과 마주하게 된 사장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면접을 하는 건 꽤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가슴이 다 두근두근하구만. 아주 우수한 지원자라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하하.”

  “과, 과찬이십니다.”

  청년은 멋쩍은 웃음과 가벼운 목례로 칭찬에 답했다. 사장은 청년이 마음에 드는지 연신 웃는 표정이었다.

  “먼저, 우리 765 프로덕션에 지원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군. 사장으로서 말하기도 그렇지만 우리 프로덕션은 아직 약소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사람들이 잘 찾아오지 않아서 말이야.”

  사장은 책상에 청년이 제출한 이력서를 올려놨다. 이력서는 깔끔한 글자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일단 자네라고 불러도 되겠나? 그 편이 편해서 말이야.”

  “네, 괜찮습니다. 편하신 대로 불러주셔도 됩니다.”

  “음, 고맙네. 그럼 자네의 프로듀서 면접을 시작하도록 하지.”

  청년은 두 손을 공손히 무릎 위에 올려놓고 허리를 똑바로 폈다. 눈에도 가볍게 힘을 넣어 사장을 바라봤다.

  사장은 청년의 이력서를 들었다.

  “우선 자네의 경력을 봤는데, 아주 훌륭하더군. 좋은 대학에 과도 방송 쪽이고. 대학을 다니면서도 이쪽 계통의 아르바이트나 인턴으로 일했다고 써져 있는데, 사실인가?”

  “네, 그렇습니다.”

  “하긴 이력서에 거짓말을 쓸 사람으로 보이진 않으니. 그럼 자네는 대학을 입학하기 전부터 이쪽, 그러니까 방송 일을 하는 게 꿈이었나?”

  청년은 작게 심호흡을 하고 대답했다.

  “프로듀서는 제 오랜 꿈이었습니다. 아이돌을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시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아이돌로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사장은 청년의 말을 들으며 청년의 눈동자를 지긋이 바라봤다. 상투적이지만 나름의 진심이 느껴졌다.

  “흠. 그럼 뭐하나 물어봐도 괜찮겠나?”

  “네, 뭐든지 물어봐주십시오.”

  “왜 우리 프로덕션에 지원한 건가? 자네의 경력과 능력을 보면 충분히 대형 프로덕션에 지원해도 합격했을 텐데.”

  청년의 경력은 눈부셨다. 사장의 말대로 프로듀서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할 경력은 모두 있었다. 청년의 이력서에는 프로듀서 하나만을 바라보며 노력했다는 의지가 넘쳐났다.

  “아까도 말했다만 우리 프로덕션은 약소하네. 데뷔한 아이돌도 아직 없고 후보생만 몇 명 있을 뿐이지. 프로덕션을 세운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헌데.”

  사장은 들고 있던 이력서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청년을 바라봤다.

  “어째서 자네 같은 인재가 우리 프로덕션에서 일하고 싶다는 건가?”

  더 이상 이력서를 볼 필요는 없었다. 사장이 듣고 싶은 건 청년의 대답이었다.

  청년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청년은 자신을 짓누르는 듯한 사장의 무거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청년은 똑바로 앞을 바라봤다.

  머릿속으로 지나가는 대답들은 수없이 많았다. 명예, 성공욕, 돈, 권력 등. 그 중 청년은 주저 없이 하나의 단어를 택했다.

  “제 가치를 만들기 위해섭니다.”

  “가치?”

  “네, 저는 이 765 프로덕션에서 제 가치를 만들고 싶습니다.”

  가치를 만든다. 얼핏 들으면 뜬구름 잡는 소리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청년은 흔들리지 않았다. 얼핏 무례하게 보일 정도로 사장을 바라보는 청년은 꼿꼿했다.

  가치.

  사장의 표정이 변했다.

  “팅하고 왔다!”

  사장은 소리치며 청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네?”

  “팅하고 왔다는 걸세! 자네한테 말이야!”

  “팅이라니, 그게 무슨….”

  “자네가 좋다는 뜻이지! 하하하!”

  사장의 뜻 모를 소리에 청년이 당황해할 무렵, 때마침 여성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렸다.

  “타카기 사장님, 차를 가져왔는데 잠깐 실례해도 될까요?”

  “그래, 오토나시 군! 어서 들어오게나!”

  사장은 흥분한 상태 그대로 여성을 맞이했다. 오토나시라 불린 여성은 그런 모습이 익숙한 듯 자연스레 차 두 잔을 청년과 사장의 앞에 놓았다.

  “후훗, 사장님 기분 좋아 보이시네요.”

  “음!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젊은이를 만나서 기분이 좋구만, 허허허!”

  차를 쭈욱 들이키고, 사장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자신의 가치를 만들고 싶다. 그래, 가치는 남이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 그걸 언제 알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사람은 달라지는 걸세. 자네는 아주 바람직한 젊은이구만. 마치 내 젊었을 때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그렇지 않나, 오토나시 군?”

  “글쎄요, 사장님보다 이 분이 더 잘생긴 거 같은데요. 후훗.”

  “그거야 다 나이 때문이지. 나도 젊었을 땐 얼마나 멋졌었는데!”

  “사진 보여주시면 믿어드릴게요. 타카기 사장님.”

  장난스레 말을 주고받는 사장과 여성 사이에서는 면접의 긴장감은 이미 없었다. 청년은 그저 쑥스럽게 웃으며 앉아만 있었다.

  “아무튼, 이제부터 자네는 우리 765 프로덕션의 프로듀서일세! 앞으로 잘 부탁하지, 프로듀서 군!”

  사장은 호쾌하게 말하며 청년에게 악수를 하자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갑작스런 합격 통보에 청년은 당황해 선뜻 사장의 손을 잡지 못하고 주저했다.

  “뭐하고 있나, 프로듀서 군! 어서 내 손을 잡게! 앞으로 같이 일 할 사이지 않나!”

  “아, 네!”

  사장의 호통에 청년은 황급히 사장의 손을 잡았다. 사장은 청년의 손을 꽉 잡고 흔들며 만족스럽게 껄껄 웃었다.

  어찌됐든 합격이다. 청년도 사장을 따라 웃었다. 사장처럼 호쾌한 웃음소리는 아니었지만, 그 웃음엔 기쁨이 가득했다.

  “사장님, 저도 인사해도 될까요?”

  “오, 물론이지. 이제부터 동료가 될 사이가 아닌가.”

  사무원의 말에 사장은 청년을 놓아줬다. 사무원은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청년에게 인사했다.

  “전 오토나시 코토리라고 해요. 프로듀서 씨,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저도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씩씩한 청년의 대답에 여성 즉 코토리도, 사장도 모두 밝게 웃어주었다.

  갑작스럽게 프로듀서가 되어 아직 실감은 나지 않지만, 그래도 청년은 이제 765 프로덕션의 프로듀서였다. 청년, 프로듀서가 품었던 꿈을 향해 드디어 첫 발을 내딛은 것이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프로듀서가 합격의 기쁨을 즐길 때 사장이 불쑥 말을 꺼냈다.

  “오토나시 군. 오늘 아이돌들 스케줄은 어떻게 되지?”

  “오늘은 레슨하는 날이니 다들 학교 끝나고 바로 사무소로 올 거예요. 슬슬 학교 끝날 시간이기도 하니, 얼마 안 있으면 오겠네요.”

  “그거 마침 잘 됐군. 프로듀서 군, 이왕 온 김에 아이돌들을 직접 보고 가지 않겠나?”

  “네? 오늘 바로 말입니까?”

  “자네는 우리 765 프로덕션의 프로듀서 아닌가. 아이돌을 한시라도 빨리 확인해야지 않겠나.”

  사장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지만, 이건 빨라도 너무 빨랐다. 사장이 프로듀서가 되었다고 하니 프로듀서가 된 게 맞겠다만, 계약서라든가 그런 절차는 아직 남아있었다.

  또 아직 프로듀서는 765 프로덕션에 어떤 아이돌이 있는지 상세한 프로필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물론 자료도 받지 못했고.

  “사장님, 아이돌과 만나는 건 일단 제가 아이돌들 정보를 알고 나서 하는 게 어떨까요?”

  “정보야 직접 만나서 알아가는 게 제일이지! 아니면, 혹시 이 다음에 약속이라도 있는 건가?”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만 좀 더 준비를 했으면 해서….”

  “자네 정도라면 준비 따위 할 필요가 없지. 이 타카기가 인정한 남자인데!”

  사장은 프로듀서가 뭐라 말해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오늘 처음 본 상대를 이렇게까지 믿어주고 칭찬할 수 있는지, 프로듀서는 그저 당황하고 놀랄 뿐이었다.

  프로듀서는 힐끔 코토리 쪽을 바라봤으나, 코토리는 원래 이런 분이시라며 어쩔 수 없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그럼 사무소에서 아이돌들을 기다리겠나?”

  프로듀서는 사장의 말에 별 수 없이 고개를 끄덕여야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라는 심정으로.

   * * * * * * * * *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프로듀서는 사무소 한 편의 책상에 앉아 아이돌들의 프로필을 보고 있었다. 원래 오늘은 면접 보고 돌아가려 했는데, 바로 합격 통보 받고 아이돌 소개까지 받게 생겼다.

  다행히 빈 책상이 있어서 그나마 일하는 구색은 갖췄다. 프로듀서는 사무소 안쪽에 모인 책상 네 개 중 가장 구석에 있는 걸 사용했다. 책상 네 개 중 하나는 코토리가, 그 옆은 누가 쓰는 듯해서 그 맞은 편 걸 골랐다.

  “타카기 사장님이 원래 한 번 꽂힌 일은 밀고 나가는 성격이시거든요. 프로듀서 씨도 익숙해지셔야 할 거예요.”

  자신의 책상에 앉아 프로듀서를 힐끔 쳐다보던 코토리가 말을 꺼냈다.

  “하긴 빨리 아이돌을 봐야한다는 사장님 말씀도 틀린 건 아니니까요. 저도 힘내야겠네요.”

  “후후, 나쁜 분은 아니시니까 걱정 안하셔도 돼요.”

  코토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너무나도 눈이 부시고 어른스러워서, 프로듀서는 복잡했던 마음이 다 풀리는 느낌이었다.

  “프로듀서 씨, 아이돌들 프로필은 다 보셨나요?”

  “네. 오토나시 씨가 주신 건 다 훑어 봤습니다.”

  “드린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거 같은데, 읽는 게 꽤 빠르시네요.”

  “하하, 프로필이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읽기 쉬웠습니다.”

  가볍게 웃으며 프로듀서는 책상 위에 놓아둔 프로필을 힐끔 봤다. 사실 프로필을 빨리 읽은 가장 큰 이유는, 아이돌들이 적기 때문이었다.

  현재 765 프로덕션에 소속한 아이돌은 총 네 명. 아무리 프로덕션이 작다 해도 이건 너무 적었다. 거기다 전부 후보생이니 프로필도 짤막하게만 적혀있었다.

  ‘일단은 스카우트를 더 해야겠구나. 네 명 가지고는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세상에는 일인 프로덕션이란 것도 있지만 그건 특수 케이스다. 그 일인이 프로덕션 전체를 먹여 살릴 정도로 뛰어난 경우만 가능한.

  ‘그런데, 이 아이 프로필은 왜 이렇게 딱딱하지?’

  프로듀서는 한 아이돌의 프로필에서 눈을 멈췄다. 프로필에는 취미, 특기, 할 말 등이 적혀 있는데 이 아이돌의 프로필은 좀 독특했다.

  취미 - 자격증 취득, 봉사. 특기 - 계산, 분석. 할 말 -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그밖에 프로필에 쓰인 내용을 봐도 아이돌의 프로필 느낌이 나지 않았다. 외모도 예쁘긴 한데 눈빛이 또랑또랑하고 착실해보였다.

  전반적으로 이 아이돌의 프로필은 아이돌의 프로필이라기보다, 취직할 때 내는 그런 자기소개서 같은 느낌이 났다.

  “오토나시 씨, 잠깐 하나 여쭤 봐도 될까요?”

  “네, 무슨 일이세요?”

  “이 프로필 말인데요. 아무리 봐도 아이돌 프로필 같지가 않아서…혹시 잘못 섞여 들어온 거 아닌가요?”

  “프로필이요? 어디….”

  코토리는 프로듀서한테 문제의 프로필을 받아 쓱 훑었다. 프로필에 적힌 아이돌의 이름을 본 순간, 코토리는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이 아이도 아이돌 맞아요. 다만 좀 독특한 아이돌이어서 그렇지.”

  “아, 그런 건가요? 하긴 착실한 이미지니 그쪽으로 밀고 나가는 것도 좋겠네요. 외모도 괜찮아 보이고.”

  “후후후, 역시 프로듀서 씨도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코토리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렸지만, 프로듀서는 프로필을 보고 생각하느라 눈치 채지 못했다.

  “아마 곧 올 테니 자세한 건 직접 만나보면 아실 거예요.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코토리는 시계를 바라봤다. 시계의 시침이 움직여 5시를 가리키는 순간, 닫혀 있던 사무소의 문이 열렸다.



  전에 제목 미정으로 올렸던 글을 다듬고, 제목 정하고 다시 올립니다.
  두달 전에 올렸던 글이니 아무도 기억 못하실 거예요. 허허허.
  이 글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최대한 편하게 막 써보려고 합니다. 다시 글 쓰는 습관도 붙일 겸.
  그럼 다음 편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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