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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할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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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02, 2016 10:01에 작성됨.

"i'm happy, 흘러나오는-"

 

나는 그 다음의 가사를 잇지 못하고 말라붙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까부터 몇 번이나 같은 노래를 입에 담았던 걸까. 몇 번이나 그 전부를 부르지 못하고 있는 걸까. 음정도 박자도 틀린 곳은 없고, 특별히 컨디션이 불량이라던가 하는 것도 아니야. 그런데도 노래하면 할 수록 점점 뭔가 빠진 기분이 든다.

 

이대로는 부족해.

 

시간이 갈 수록 이 생각만이 머릿 속에 가득해져, 결국에는 이렇게 노래하는 걸 멈추고 만다.

 

".....후우."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뱉는다. 그래도 허전한 마음은 여전했다. 아니- 아까보다 더 가슴 한 구석이 텅 빈 것만 같아졌다. 조심스럽게 스스로를 끌어안아보아도 가시지 않는 상실감. 쓸쓸함. 외로움.

 

"......hey boys, 기대해버리네. let's go, 뭔가 좋은 일-"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노래밖에 없다. 나는 눈높이에 펼쳐져 있는 악보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 같은 노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혼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에는 꽤나 넓게 느껴지는 연습실. 그 안을 조금씩 채워나가는, 반주도 누군가의 호응도 일절 존재하지 않는 단 한 사람만의 노랫소리.

 

"i'm happy, 흘러나오는-"

 

그러나 노래는 전과 같은 소절에서 멈춰버리고 말았다. 뒤이어 찾아오는 건, 전보다 깊이를 더해 되돌아온 정적. 그 조용함이 두려워진 나는 부족해진 숨을 집어삼키고는 다시 노래를 부른다.

 

"i'm happy, 흘러나오는......"

 

슬슬 다른 선곡을 할 때도 되었건만, 어째서인지 계속해서 같은 노래를 반복한다. 그리고- 같은 부분에서 멈춰버리고 만다. 곡이 절정에 오르기 일보직전에서, 넘쳐흐르는 부족함을 이겨내지 못한다.

 

노래하고, 멈추고, 다시 노래하고.

 

그러면 그럴 수록 싸늘한 느낌이 주위를 빈틈없이 덧칠해나간다. 쓸쓸함을 잊기 위해 부르는 노래가 더욱 큰 외로움을 불러오고, 그걸 해소하기 위해 다시 노래를 부르고 마는 악순환. 깊이를 알 수 없는 수렁으로 점점 빠져드는 것만 같은 스파이럴.

 

나는 숨을 고르면서 깝깝해진 목을 어루만졌다. 또, 노래를 부르고 싶어진다. 이 이상 부르는 건 목에 부담을 주는 일이라고, 머리로는 인지하고 있지만.....다시 입이 근질근질해진다. 정말, 어떤 결과가 돌아오는 건지도 뻔히 알면서도. 아직 더 부르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나가며,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흰 바탕을 차지하고 있는 검은 선과 기호 대신 시야에 담기는 쾌청한 하늘.

 

"....."

 

그래도 허전함을 채울 길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완전히 눈을 감았다. 이제 시각을 지배하는 건 익숙한 어둠. 그리고, 거기서부터 조금씩 희미하게 떠오르는 그 날의 풍경.

 

아이돌 데뷔 이후 처음으로 모두와 함께하는, 일명 올스타즈 라이브가 열렸던 그 때.

 

들리는 이야기로는 이것에 회사의 모든 사활을 걸었다고 했던가. 그 탓인지 평소 라이브를 하던 곳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드넓은 스테이지를 무대로 해서 시작되는 공연. 여러 조명이 어지럽게 수놓여진 가운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관객석을 메우고 있는, 형형색색의 사이리움들. 일정한 구호와 함께 흔들리는 그것은 마치 빛의 바다만 같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는 내가, 아니, 우리들이 존재하고 있어-

 

- I'm Singin'! 뛰어올라 Dance!

 

다같이 노래했던 것이다.

 

"hey boys, 기대해버리네....."

 

나는 그 노래의 첫 소절을 중얼거리면서 천천히 눈을 떴다. 차가운 현실이 모두와 함께했던 풍경을 대체해나간다.

 

같이 노래한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었구나.

 

지금까지 내게 있어서 노래란 혼자서 하는 것이었는데. 처음으로 알게 된 또 다른 세계. 그 곳에 한 번 몸을 담고나니 혼자서 노래하는 게 무척이나 허전하고 쓸쓸해져서, 부족해져서. 절대 대충하는 것도 아니고 전심전력을 다해서,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기량을 동원해 부르는 건데도, 어째서. 이것은 단순히 혼자서 여럿을 당해내지 못한다, 같은 문제가 아니다.

 

그 날의 노래에는 그것들과는 또다른 무언가가 그 안에 있었다. 딱 무어라고 꼬집어서 말할 수 없는 그것.

 

"눈을 감으면- 마음의 소리 들려오네-"

 

정확히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나는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다시 손에 움켜쥐고 싶어져서, 계속해서 그 다음 소절을 이어나갔다. 이미 없는 것을 필사적으로 더듬는 것이나 다름없는 걸, 혼자서는 다시 그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흘러, 나오는......"

 

예정된 실패가 돌아왔다. 힘이 쭉 빠진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조용히 악보를 덮었다. 아무리 해도 안되는 일을 억지로 부여잡고 있는 건, 체력과 시간의 낭비에 불과하니까.

 

".....하아."

 

지쳤다. 끊임없이 노래를 부른 탓일까, 머리가 좀 어지럽기도 하다. 조금은 쉬어두지 않으면. 무거운 머리를 한 손으로 부여잡으며 천천히 자세를 낮추는 도중이었다.

 

끼이익.

 

"앗, 치하야쨩?"

".....안녕."

 

그 때, 돌연 귓가를 때리는 문소리. 그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두번째의 방문자. 아무 전조도 없이 발생한 만남에,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녀를 맞이해줄 수밖에 없었다.

 

"또 노래 연습?"

"응. 이제는 끝났지만."

 

그녀가 아주 살짝 내 앞으로 다가온다. 밤색머리 양 옆에 단 붉은 리본 한 쌍이 걸음걸이에 맞춰 작게 흔들린다. 나는 앉으려는 걸 멈추고 똑바로 서서 그녀를, 아마미 하루카를 맞이했다.

 

"에, 그래? 이번에도 치하야쨩의 노래, 들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하루카가 주변을 슥 돌아보더니, 이 쪽을 향해 수줍게 웃어보였다. 어째서일까. 이 일대를 뒤덮고 있던 우중충한 공기가 그것만으로 싹 날아가버린 것만 같아서, 나는 놀라움에 두 눈을 깜빡거렸다.

 

"나, 혹시 방해였다던가....."

"아, 아니. 그렇지는."

 

잘 돌아가지 않는 입으로 어떻게든 대답하고는, 덮어두었던 악보를 슬슬 손가락으로 쓸었다. 혼자서는 절대 그 때와 같은 노래를 할 수 없어. 그 사실을 자각했으면서도, 묘하게 미련이 남는 건 어째서일까.

 

포기해. 그만둬.

 

혼자서는 다시 그 노래를 부를 수 없어.

 

마음 속으로 강하게 되뇌이며 심호흡을 한 번. 불안함과 두려움, 미련이 한데 뒤엉킨 덩어리를 수면 아래에 어떻게든 밀어넣으려고 했다.

 

".....오늘은 이걸로 끝내려고. 과도한 트레이닝은 독이니까. 하루카에게는 미안하게 되었네."

"에이, 아닌 걸 뭐."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들어가지 않고 모퉁이가 툭 튀어나오고 말았다. 나는 입으로는 연습의 중단을 말하면서도, 끝까지 악보에게서 눈길을 뗄 수 없었다.

 

"아, 그 노래....저번 라이브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는 사이 뒤에서 하루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하루카가 좀 더 이 쪽으로 다가와서 덮어버린 악보를 다시 펼쳐내고는, 내용을 쭉 훑었다.

 

"고작 며칠밖에 안되었는데, 굉장히 그리운 기분."

".....응."

"설마 그렇게나 큰 데에서 노래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그렇네."

"우리가 나중에 좀 더 유명한 아이돌이 되면, 거기보다 훨씬 큰 곳에서 노래하는 일도 있을까나?"

"글쎄."

 

돌아오는 하루카의 말에 적당히 대꾸하며, 나 또한 도로 펼쳐진 악보를 읽는다. 그것만으로 머릿 속에 가득 차오르는 소리. 이미 어떻게 불러야할 지는 잘 알고 있다. 좀 전만 하더라도 수없이 불러봤다. 하지만, 그러니까, 입밖에 낼 수 없다. 나로서는 할 수 없다는 걸,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런데.

 

"hey boys, 기대해버리네. let's go, 뭔가 좋은 일-"

 

바로 곁에 있는 다른 누군가의, 단 혼자만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그 노래 또한 몇 소절 뒤로는 뚝 끊기고 말았지만. 하루카는 복잡미묘하다는 얼굴을 하고는 다시 악보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몇 번 더 부르다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뭔가, 전에 불렀던 느낌이 아닌 것 같은데....으으음....."

 

하루카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뭔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두 손을 모았다. 그러고는 이유는 모르겠으나 이 쪽을 향해 반짝이는 시선을 보냈다.

 

"있잖아 치하야쨩."

"응?"

"잠깐만이라도 좋으니까, 같이 불러보지 않을래?"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힌 것만 같았다. 이 애는 또,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있었다. 그 날, 합숙소에서 라이브 회장으로 이동할 때. 모두가 앞서 가고 있는 가운데 나 혼자 뒤쳐져있던 그 때처럼, 이 쪽을 돌아봐주고 있다.

 

같이 가자.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음, 역시 무리일지도.....치하야쨩, 아까부터 쭈욱 연습해온 모양이고. 으음, 너무 많이 부르면 목이 아플테니까....."

"아니."

 

나는 급하게 고개를 저으며 하루카의 두 손을 잡았다. 별로, 싫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엄밀히 따지면, 나는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 애가 놀란 눈으로 이 쪽을 바라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혹시라도 늦을까봐 서둘러 스스로의 소망을 입에 담았다.

 

"노래, 하자."

"어, 으응!"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노래가, 아직은 넓은 연습실을 울렸다. 여전히 반주 같은 것도 없고, 실제로 관객들을 대상으로 부르는 것도 아니다. 현란한 조명이나 화려한 의상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연습에서 고작 한 사람이 더해졌을 뿐이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의 실력이란,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런데도 노래는 거짓말처럼 착착 진행되어간다.

 

사전에 이렇게 맞추겠다고 상의한 것도 아닌데, 뭐라 말할 수 없는 독특한 하모니를 이뤄가며-

 

"I'm Singin'! 뛰어올라 Dance!"

"좀더, 좀더, 달아올라보자!"

 

마침내, 그 동안 넘지 못했던 부분까지.

 

"You’re Happy! 언제나-"

"You’re Singin’! 믿고서 Jump!"

 

아니, 그것조차 넘어서서.

 

"분명, 분명, Happy Smile! 찾아올 거야♪"

 

급기야 완벽히 1절을 끝마치고야 말았다. 해냈, 다. 내가, 우리 둘이. 부족함이 없는 노래를. 스스로도 믿겨지지 않아서, 몇 번이나 몇 분 전의 상황을 되새겨본다. 그럴수록 돌아오는 건, 틀림없는 성공이라는 마음 속의 메세지.

 

"치하야쨩, 고마워! 덕분에 노래가 더 즐거워진 것 같아!"

"그, 그러니. 아니.....그렇지는......"

 

상기된 얼굴의 하루카가 이 쪽을 바라보며 방긋 웃어주었다. 아니야, 감사를 받아야할 건 네 쪽인데. 네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를 접하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또 다시 그 가슴 벅찬 무언가의 편린을 느낄 수 있었는 걸.

 

"이쪽이야말로 고마워, 하루카."

"에, 그런.....나, 난 별로.....치하야쨩만큼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닌 걸."

"그런 문제가 아니야. 너는 나에게....."

"응?"

"아니, 아무 것도. 나는 이만 쉬러 갈게. 연습, 수고해."

 

나는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말 같은 건 도중에 끊어버리고, 대신 작별 인사를 입에 담았다. 하루카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인사에 회답해주었다.

 

"어, 어어! 잘 가, 치하야쨩! 다음에 보자."

"응. 다음에 봐."

 

조금 더, 한 번 더. 같이 노래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나는 완전히 가라앉은 목을 부여잡았다. 아쉽게도, 이젠 정말로 쉬어두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마지막으로 하루카의 모습을 한 번 더 시야에 담고는, 느린 걸음으로 연습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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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 동료와 함께하면 할 수 있는 것.....은 평범한 the world is all one이네요 으허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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