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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 마스터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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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09, 2012 11:49에 작성됨.

개막 날 3경기, 둘째 날 6경기, 셋째 날 7경기로 32강전이 모두 끝났다. 
곧바로 그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16강 경기에서, 우리 팀은 첫날 두 번째 경기. 오후 네 시에 시작되는 경기에 편성이 되었다.
힘내서 하기로 한 것도 있었고, 이오리와의 약속도 있고. 오늘은 특히 더 신경을 써야하는 경기다. 그래서 어제 밤에는 술도 마시지 않고 일찍 잠들었다가,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러닝을 한 후에 집에 돌아와 전신거울 앞에서 타격자세를 점검해봤다. 오늘도 첫날 정도는 아니지만 절호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대로 공원으로 나가 스윙연습을 몇 번 해봤다. 물론 아마추어 야구대회라 알루미늄 배트를 쓰지만, 연습 때는 그래도 나무배트로 휘두르는 게 내겐 더 잘 맞는다. 
한 30분 정도를 스윙에 매진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밥을 먹고(고맙게도 하루카와 유키호는 내가 며칠정도 더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찬거리를 만들어주었다.) TV 좀 보다가, 이미지 트레이닝을 위해 다시 침대에 누웠다.

……
어느새 잠이 들었나. 정신을 차려보니 휴대폰이 울려대고 있었다. 비척비척 걸어가 휴대폰을 들었다. 발신자는 다름 아닌 미키였다. 

“뭐야.”

[아저씨. 오전에 시간 비면 미키네 좀 태워줄 수 있어? 그다지 시간 안 걸리는 일인데.]

“얼마나 걸리는데. 나 오늘 네 시에 경기 있는 건 알고 있냐?”

[응. 걱정 마. 길어봐야 왕복 한 시간에 작업시간 한 시간 정도인 거야.]

“그래? 알겠다. 지금 사무소 앞으로 가면 되지?”

[응! 고마운 거야. 아저씨.]

현재 시각 9시 30분. 넉넉잡고 세 시간 쳐도 충분하다. 그 정도야 못해줄게 없지.

하지만 그때의 나는 모르고 있었다.
고작 세 시간만 투자해도 됐을 일이,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엄청나게 불어나버리게 되는 것을.



“역시 선수오빠는 젠틀맨이네! 마미. 다시금 선수오빠한테 반해버렸을지도?”

“비켜라. 중학생.”

“으에…”

“혹시나 해서 걸어봤는데, 이렇게 흔쾌히 승낙할 줄은. 미키. 오늘은 아저씨에게 정말 고마운 거야.”

“오늘만?”

“폐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아니. 전혀. 폐라고 생각하지 마. 근데… 조금 독특한 조합이긴 하네. 뭐하러 가는 건지 물어봐도 돼?”

미키 혼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마미와 치하야가 함께 있었다. 내가 세 사람이 함께 하는 일에 대해 의문을 갖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응~후~후. 우리들. 신곡 레코딩 마무리작업 하러 가는 거야.”

“호오. 신곡.”

레코딩 작업하는 스튜디오라면 한 번 가본 적이 있다. 여기서 그렇게까지 멀지 않은, 미키의 말대로 왕복 한 시간이면 되는 곳이다. 저번에 타카네와 마코토를 태워다줘서 알고 있지.

“응. 원래 야요잇치 곡인데 어떻게 해서 우리 열두 명 전부의 버전을 내기로 했거든.”

“야요이 곡이라면 저번 공연 때 불렀던 거 말하는 거냐? 그 ‘거울을 보면 초러블리~’하던 거.”

“응? 아니아니. 그거랑은 다른 곡. 선수오빠. 보고 싶다면 우리들이 부르는 거 구경해도 좋다고?”

해도 되는 건가. 하긴 저번에 타카네와 마코토를 태워줬을 때도 구경해본 적이 있었다. 그땐 정말 모든 게 신기해서 노래는 듣는 둥 마는 둥 레코딩하는 거 구경하기 바빴는데, 이번엔 제대로 들을 수 있으려나.
특히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른다는 치하야의 노래를 드디어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조금 설레는 기분마저 들었다.

“자. 그럼 어서 출발하자고.”

미키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올라타고, 나머지 두 사람은 뒷좌석에 탔다. 

“지금쯤이면 1,2차전이 시작했겠군.”

“거긴 지금 아미랑 유키뿅이랑 하루룽이랑 야요잇치가 가있으니까.”

“경기장마다 두 명씩?”

“응. 16강 경기부터 배트걸 역할도 한다나봐.”

“허허… 아마야구에 무슨 배트걸. 호사를 부리시네, 아주. 그럼 우리 땐 누가 하냐.”

내 질문에 누군가와 메일을 주고받던 미키가 대답했다.

“아저씨 팀 2경기장?”

“그래.”

“그럼 미키랑 마미인 거야. 둘 중에 누가 아저씨 팀 배트걸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리츠코…씨의 말에 따르면 경기 MVP 수상도 미키 아니면 마미가 한다고 했어.”

“그럼 1경기장은?”

“저랑 아즈사 씨에요.”

차에 탄 이후 줄곧 조용히 있던 치하야가 입을 열었다. 그럼 3,4차전에 필요한 인원이 여기 셋이나 있다는 거네. 이 녀석들도 힘들겠구만. 내가 알기로는 노래하는 것도 은근히 힘이 드는 일이라는데.

“그래도 마미는 괜찮아.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바빠졌으니까. 이제야 조금씩 아이돌다워진다고 할까?”

“흐응. 미키는 아이돌다운 활동도 좋지만, 이렇게 바빠지면 역시 잠이 부족해진다는 느낌?”

“저는… 노래만 부를 수 있다면 좋아요.”

이 녀석은 처음 자신을 소개할 때도 보컬리스트라고 했었지. 노래 말고는 그다지 하고 싶지 않은 건가. 그러고 보니 그 요리 방송 때도 초반에 표정 별로 안 좋았고.
대체 왜 아이돌이 되고 싶어 하는지 알고 싶었지만, 왠지 사람 많은 곳에서 물어볼 거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치하야는 원채 말이 없고 미키가 잠이 들었지만, 그나마 남은 사람이 마미라서 그다지 심심하지는 않게 차를 운전할 수 있었다. 
스튜디오에 도착해 마미를 선두로 스텝들에게 인사하는 것을 보며 나도 뻘쭘하게 고개를 숙였더니, 다들 개의치 않고 나를 맞이해주었다. 아마 이 녀석들의 프로듀서로 오해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인데. 별로 상관없나. 스텝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치프로 보이는 사람이 세 사람에게 뭔가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며, 난 한걸음 물러나 구경이나 하기로 했다. 마미가 가장 먼저 작업을 시작하는지, 빙글빙글 웃으며 녹음실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선수오빠. 잘 듣고 있어! 마미의 스위트 보이스로 해롱해롱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헤드폰을 끼고 마이크 앞에 선 마미는, 곧 스텝의 큐 사인에 맞춰 고개를 까딱거리더니 곧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안녕!! 아침밥 - 후타미 마미


원래 야요이의 노래라더니, 역시나 귀여운 노래였다. 마미 특유의 목소리(자칭 스위트 보이스)가 잘 어울린다고 할까… 아니. 솔직히 저 독특한 목소리라면 무슨 노래든 자기 분위기로 만들 것 같지만. 


밥에 낫토 된장국 김 달걀
토스트에 샐러드
오믈렛 우유

자, 잔뜩 먹자
아침 일찍 일어난 상
자 모두 먹자
낮까지도 든든해

…거 참 배고파지는 노랠세. 시간을 힐끗 봤더니 11시가 거의 되어가는 시간. 슬슬 점심이 생각날 때다. 


우유엔 칼슘이
채소엔 비타민 풍부
대두는 단백질 
밸런스도 중요해

하루가 시작할 때 
배가 고프면 어딘가 부족해
몸을 움직이기 위해선 맛있는 아침밥


좋… 좋은 노래다. 정말 너무나도 야요이스러운 노래다. 야요이가 직접 부르는 걸 들어보고 싶을 정도네. 나 역시 아침밥은 무슨 일이 있어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노래에 감정이입이 잘됐다. 이런 노래에 감정이입이 되어봤자 라는 생각도 들지만.
마미는 그대로 마지막 부분을 몇 번 더 부르더니 녹음실 밖으로 나왔다.

“어땠어? 마미의 스위트 보이스는?”

“솔로로 부르는 건 처음 듣는데. 잘 부르는 걸? 오늘 컨디션 좋은가봐?”

“응~후~후. 선수오빠는 의외로 눈썰미가 좋구나? 마미. 오늘의 컨디션은 절호조!”

“의외로 라는 말은 빼. 난 원래 눈썰미가 좋다고.”

“오옷. 자신감!”

“녹음하는 곳에서 쓸데없이 떠들지 마.”

내 말에 마미는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더니, 

“뭔가요오-? 선수오빵. 그 프로듀서 같은 발언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런 곳에서 조용히 하는 건 상식이지. 딱히 프로듀서가 아니라도 지적할 수 있는 거라고 보는데.”

“그런가? 그래도 말 나왔으니 말인데. 마미는 선수오빠가 우리 프로듀서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 같이 놀 수 있는 시간도 길어지고, 무엇보다 선수오빠는 놀리는 재미가 있으니까.”

“뭔가 맘 놓고 좋아할 수는 없는 발언인데. 특히 마지막 말이.”

“신경 쓰지 마.”

“…잘도 말하는군.”

“그야 당연히 가해자는 피해자의 사정 따윈 모르니까 할 수 있는 소리야.”

“니가 그 가해자인 주제에 그런 말을?”

하여튼 이 녀석이나 아미나 뭔가 농담 따먹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다. 이것도 여기가 스튜디오라 최대한 자제해가며 말하는 건데 말이다. 더 이상 분위기가 오르기 전에 마미를 막아야겠다.

“아저씨. 미키 갔다 올게.”  

“아. 미키. 열심히 하라고.”

다행히 화제를 돌릴 수 있었다. 미키에게 손을 흔들어준 다음 뭔가 다른 이야기를 꺼내보려 했는데, 마미의 표정은 이미…

“마미. 가만히 지켜봤는데, 역시 선수오빠 미키미키에게 약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건 또 무슨 헛소리냐.”

“오늘도 그렇고, 선수오빠는 미키미키의 말이라면 다 들어주잖아? 미키미키랑 말도 잘 통하는 것 같고. 저번에는 같은 소파에서 같이 자기도 했잖아.”

“꼭 누구랑은 안 통한다는 듯이 말하네. 그리고 그때 일은 언급하지 마. 유성매직의 분노를 다시 맛보고 싶냐?”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미키미키랑은 죽이 잘 맞는다고 할까?”

똑같은 말을 미우라 씨에게도 들은 적이 있는데 말이지. 그땐 그냥 미우라 씨 성격이 워낙 유해서 그런 말을 한 줄 알았는데. 마미에게서까지 이런 말을 들으니 좀 색다르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하는데. 단지 미키와 내 성격이 비슷하니까 그런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이 열두 명 중에 가장 먼저 만나서 대화를 나눈 케이스도 있고.

“성격이라… 후훙. 여기서 질문! 선수오빠는 미키를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냐니. 그냥 귀여운 녀석이라고 생각해. 잠을 잘 자서 부러운 정도?”

“그것뿐?”

“그래. 그것뿐.”

“그럼 다른 질문. 우리 열두 명 중에 선수오빠의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이 있다면 누구?”

“음… 이런 얼토당토않은 질문에 내가 왜 대답해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나마 근접하다면 역시 미우라 씨나 타카네인가.”

“호오…”

“미리 말해두는데, 이걸 당사자에게 말했다간 널 다시는 내 차에 태우지 않을 거야. 명심해.”

“쳇.”

“쳇. 방금 쳇이라고 했다는 건 역시 말할 생각이 있었던 거구나!”

내가 버럭 소리치자 마미는 짐짓 책망하는 표정으로 손가락을 자신의 입에 가져다댔다.

“선수오빠. 스튜디오에선 조용히 해야 돼.”

…이 녀석이. 하여튼 말 받아치는 거 하난 천재적이다.
벌써부터 이런 소악마적 기질을 보이는데, 나중에 머리 크면 어떻게 될지 두렵기까지 하다. 게다가 이 녀석과 똑같거나 더 위인 녀석이 하나 더 있는데 말이다.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느낀 거지만, 이 녀석보다 동생인 아미다 장난치는 거 하난 더하다.

“어쨌든. 선수오빠의 취향은 역시 그거라는 거네. 빵쭉빵!”

“빵쭉빵? 그건 뭐야.”

“빵! 쭉! 빵! 이야. 선수오빠.”

마미는 양손으로 자신의 가슴과 허리와 둔부를 가리키며 말했다. 소위 ‘쭉쭉빵빵’을 표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물론 그쪽이 내 취향인 건 맞지만, 미우라 씨나 타카네는 조용하고 사근사근해서 가까이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라 이상형에 가깝다고 한 건데.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응~후~후. 마미도 약 5년 정도만 지나면 가슴이라던가, 대단해질 거라구? 그때 가서 후회해도 소용없으니까 지금부터 마미한테 잘 보이는 게 좋을 거야.”

“아니. 필요 없어.”

“에에-”

“지금부터 5년 후면 난 스물여덟이다. 고작 열여덟이 되어있을 너랑 뭘 어쩌라는 거야.”

“하지만 선수오빠. 마미는 열 살의 차이 정도는 극복할 수 있다궁-? 딱히 5년 후가 아니라… 지금이라도 말이야. 으응~?”

마미는 뜬금없이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한 걸음 바싹 다가와 붙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하는 짓이 귀여우니 잠깐 놔둬보기로 했다. 

“번뇌가 몸을 괴롭혀 참을 수 없는 밤이면 언더그라운드의 서비스를 부르는 거야. 선수오빠.”

“…그건 무슨 말이래.”

“마코찡한테 물어보면 알아. 아니.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라, 선수옵빵. 마미. 몸이 너무 뜨거운 거야.”

“미키 같은 말투구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그래? 그럼 따라와. 잠깐 나가자. 내가 식혀줄 테니까.”

“에?”

내 반응이 의외였는지, 마미는 살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마미의 양 어깨를 잡고 출입문을 향해 밀었더니, 마미는 몸을 움찔 떨더니 어깨만 짚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경직되어 기계적으로 문을 열고 나갔다. 스튜디오의 문을 열고 나와 문을 조용히 닫았더니 당연히 복도에는 나와 마미만이 있게 되었다. 나는 마미의 어깨를 잡은 그대로 지긋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 오빠…”

“‘선수’는 어디 빼먹은 거야.”
“저기… 역시…”

“여기서 식히고 와.”

나는 마미를 남겨둔 채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갔다.
마미는 그로부터 약 1분 정도 후에 스튜디오로 들어와서는 뭔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완패야.”

“음. 좀 더 정진하도록.”

“응.”

잠시 침묵을 유지했더니, 어느새 미키의 작업이 끝났는지 녹음실 밖으로 폴짝 뛰어나왔다. 미키는 나오자마자 내 앞으로 걸어오더니,

“미키의 노래. 어땠어?”

라고 물어봤지만 미키가 녹음실에 있었던 내내 마미와 농담 따먹기나 하고 있던 내가 제대로 들었을 리가 없는 일이다. 

“아… 응. 좋았어. 엄청 좋았어. 이야. 역시나 미키라는 느낌인가. 으허, 으허허허허.”

“어째 수상한 소리로 웃는 거야.”

“뭐, 뭐가 수상해.”

“안 듣고 있었던 거 아냐? 그러고 보니 막판에 스튜디오 문이 열렸다 닫혔던 것 같기도.”

“그럴 리가. 내가 얼마나 열심히 네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 안 그러냐. 마미?”

“응? 으, 응! 내가 계속 장난쳐도 선수오빠는 끝까지 미키미키 노래 들었는 걸?”

“흐응… 그래?”

내가 발로 그녀의 발끝을 툭 건드리지만 않았어도 이 녀석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왔을지 모르겠다. 그러던 와중에 치하야가 녹음실로 들어갔고, 미키는 ‘치하야 씨 차례다!’라며 녹음실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마미는 예의 그 능글맞은 표정으로 ‘고저스 세레브 푸딩’이라는 입모양을 뻐끔거렸다. 젠장. 입막음용이라는 건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거린 후 한숨을 쉬었다. 결국은 또 내 패배인가.
그나저나, 드디어 그 치하야의 노래실력을 감상할 기회가 왔다. 미키가 벌써부터 저렇게 기대하는 표정인걸 보면 역시나 대단하다는 거겠지. 나도 조금 기대가 되는걸.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마이크 앞에 선 치하야의 표정은 약간 불안해보였다. 원채 표정이 없는 녀석이라지만 그 안에 담긴 미묘한 분위기를 나는 읽어낼 수 있었다. 

“치하야 쟤. 표정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

내 말에 마미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치하야 언니. 다른 노래는 정말 잘 부르는데, 귀여운 노래엔 약하다고 할까. 저번에도 이 노래 작업할 때 치하야 언니랑 같이 했었는데… 음. 들어보면 알아.”


♬ 안녕!! 아침밥 - 키사라기 치하야


…저건 웬 사이보그래. 뭔가 약간 기대했던 걸 완벽하게 박살내버리는 노래였다. 스텝들한테 묻고 싶다. 저거 저대로 내도 되는 겁니까? 라고.
저렇게 딱딱 끊어 부르는 건 야구선수들이 자기 응원가 따라 부르는 것보다 더한 수준이다. 정말 괜찮겠냐?


밥에 낫 토 된 장 국 김 달 걀
토스트 에 샐 러 드
오 믈 렛 우 유

자 잔뜩 먹 자
아 침 일 찍 일어 난 상
자 모두 먹 자
낮까 지 도 든든 해


“터미네이터 같아.”

내 짧은 감상평에 마미는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하지만 미키는 뭐가 그리 좋은지 감탄사를 내뱉으며,

“저건 분명히 새로운 시도인 거야. 역시 치하야 씨는 대단해.”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아 나를 경악케 했다. 다른 사람들에겐 옆에서 보는 사람이 놀랄 정도로 직설적으로 내뱉으면서, 치하야에게는 무한긍정이구나, 이 녀석. 
어쨌든 노래인지 사이보그어인지 하는 것이 끝나자, 스텝들은 모여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틀렸겠지. 혹시 지금까지 잘 부르다가 오늘만 저렇게 부른 것이라거나?

“네. 좋아요. 키사라기 양. 레코딩 끝입니다.”

“뭐…라고?”

저번 라면가게에서의 타카네에 이어, 두 번째로 느끼는 이상한 나라의 야구선수였다. 사실 저게 정상인데 나만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머릿속에 혼돈이 찾아왔다.

치하야가 녹음실 밖으로 나오자, 미키가 가장 먼저 달려가,

“역시 대단해. 치하야 씨. 나는 절대로 그런 노래 못 부를 거야.”

…저건 칭찬인가 비웃는 건가. 어쩔 때는 악의가 없는 것이 악의를 갖고 말하는 것보다 더 큰 타격을 주기도 한다.
싱글싱글한 미키의 얼굴을 보며, 치하야는 평소보다 약간 더 긴장이 풀린 얼굴로 말했다.

“나 이런 노래에 약해서… 뭔가 실수하지 않았나 걱정되는데. 노래 시작하고부터 끝날 때까지의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저… 미키? 혹시 내가 실수를 했다거나…”

“으응. 전혀 없어. 한결같이 노래에 매진하는, 미키가 존경하는 그 치하야 씨였어.”

“…다행이다. 근데 존경한다는 말은 조금 부끄럽네.”

일련의 대화를 들으며, 나와 마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라는 게 제대로 된 표현이겠지. 그런걸 보면 역시 나와 마미 쪽이 정상인 건가. 

여담으로, 나중에 미키와 둘이 있게 될 때 이 일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과연 무슨 생각으로 치하야에게 그런 말을 한 건지. 혹시 비웃었다거나 한건 아닌지. 그러나 미키는 너무나도 천진한 표정으로,

“진심으로 말한 거야. 치하야 씨는 분명 노래를 너무 좋아하니까 그런 실험정신을 발휘한 거라고 생각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거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저렇게 말하는데 누군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레코딩이 끝난 시각은 12시 정각. 딱 점심 먹기 좋은 시간이다. 이오리 덕분에 아직 상금도 그대로 남아있고 해서, 점심은 내가 사는 것이 되었다. 미키의 강력한 주장으로 인해 점심메뉴는 주먹밥이 되었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키가 예전부터 봐뒀던 곳이야.”

“미키미키가 봐뒀던 주먹밥이라면 맛은 보증된 거네!”

“응!”

주먹밥은 역시나 맛있었다. 특히 명란젓이랑 장아찌가 정말 끝내줬다. 역시 주먹밥 귀신 미키가 추천할만하군. 맛이 대단히 안정적이야.

다들 만족스럽게 배를 채우고 차에 탑승했다. 이제 이 녀석들을 사무소로 데려다준 다음, 나는 먼저 가서 앞선 경기나 구경하고 있으면 되겠지. 컨디션은 아직 좋다. 이 정도라면 홈런 하나 때려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아니. 꼭 쳐내야지. 약속인데.
조수석에 앉은 미키는 시동을 걸자마자 잠에 빠지는 묘기를 보여주었고, 치하야는 다시금 없는 사람이 되었기에, 또 마미와 대화를 하며 차를 몰게 되었다. 

“미키 녀석. 저렇게 자고 배트걸은 잘 할 수 있을라나. 꾸벅꾸벅 졸다가 눈먼 공에 맞지나 않았으면 좋겠군.”

“저래보여도 미키미키. 실전에 강하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그런가.”

“예전에는 말야… 응? 릿쨩한테 전화다.”

“리츠코?”

“응. 여보세요? 릿쨩. 무슨 일이야? 응? 응. 아즈사 언니? 어디에?”

아무래도 어딘가에 있는 미우라 씨를 픽업해달라는 부탁인 것 같은데. 혹시나 내 예상이 맞고, 미우라 씨가 지나온 곳에 있을 걸 대비해 차를 갓길로 뺐다. 마미의 통화는 내가 차를 빼고도 약간 더 이어진 후에 종료됐다.

“릿쨩의 부탁이야. 아즈사 언니가 저기 보이는 XO백화점에 있으니까 같이 태워서 사무소로 와달라고 했어.”

“그래? 가깝구만. 후딱 가자고.”

이때까지만 해도 미우라 씨가 가까이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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