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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노미야 아스카의 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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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21, 2016 00:03에 작성됨.

후우, 드디어 때가 왔나. 첫 라이브...와 비슷한 기분이지만 조금 다르네, 그래 이건 한 번 경험했었으니까.
응? 무슨 소리냐고? 아, 너는 잘 이해가 되지 않으려나. 그렇다면 이야기해볼까. 이번 일은 정말 흔치 않은 일이니까. 이런 것도 나쁘진 않을지도 몰라.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은 '변혁'이니까.

 

사람은 변혁함으로서 성장한다.

 

그것은 인간이 사고하면서, 아마 역사란 걸 연구하면서 시작된 말이지. 대부분이 동의하는 사실이지.‘변혁’이라는 주제에 있어서 논쟁점은 하나 뿐이야. ‘정도의 차이’. 그것 뿐. 그것을 잘못 조율한다면 파멸로 이어지거든.

 

과도한 변혁은 파멸. 스스로가 그 변혁을 주체하지 못하고 문제를 만들겠지. 문제는 곧 분열을 낳는다. 분열과 혼란. 스스로를 파괴하는 과정이지. 물론 그런 걸 제압할 자도 나올지도 몰라. 너희들은 ‘영웅’이라고 부르겠지. 하지만 그거 알아? ‘영웅’의 결말은 두 가지야. ‘영웅’은 싸우는 자. 혼란을 제압하고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투사지. 그 녀석은 대화를 몰라 대화가 통하지 않는 비이성의 시대에서 살아남은 그 시대의 정점이거든. 결국 ‘평화’에 적응하지 못하지. ‘평화’는 대화가 곧 수단이거든. 그럼 ‘영웅’은 어떻게 될까? 다시 한번 싸워서 ‘지배자’ ‘악당’이라고 하는 것들이 되거나, 그냥 잊혀지거나. 잊혀진다고 해서 해결일까? 아니, 사람들이 그에게 사로잡히겠지. 언제나 그 ‘영웅’을 노래하고 추억하고 그리워할 거야.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누군가 또 영웅을 자칭하고 나서겠지. 사로잡힌 영혼들. 결국 혼란의 연속이겠지. 아무것도 해결되지않아. 게다가 '영웅'을 바란다는 건 너무 무책임하고 무력하잖아. 타인이 해줄 때까지 기다린다는 건데 말이지.

 

그러나 정체 또한 파멸. 정체한다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잡아먹힌다. 구시대로 남아 그저 그 조각만이 남들에 의해 불리고 말겠지.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거야. 그런 말이 있잖아? ‘깨달음은 언제나 늦는다.’라고. 시대에 맞춰 살기 위해서라고 우린 끊임없이 변화해야해. 네가 시간을 넘어 그 끝에 도달한, 나조차도 끝임없이 고민하고 상상하게 만드는 초월적 존재로 각성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농담이라는 거지.

 

그럼 어떻게 하냐고? 말했잖아. ‘정도의 문제’야. 스스로가 스스로를 관찰하고 본질을 이해해서 변혁을 시도해야지. 자신에게 맞는 변혁을. 그리고 나는 날 알고 있어. 이게 네게는 작게 보일지라도 나에게는 아마도, 그래, 제법 큰 일이지. 나에게 맞는 일이야.

 

그것이 네게 작게 보이든 크게 보이든 관계없어. 애시당초 그 크기의 기준은 어디서 나오지? 네게서 나오는 것이잖아. 내 기준은 너와 다를 수 있어. 객관적이니 어쩌니 하지만, 그 ‘객관’이라는 말도 어떻게 보면 ‘주관’이지. ‘객관’과 ‘주관’의 기준은 또 무엇이고, 어디서 나오는데? 기준은 그저 개개인의 개성 중 일부야. 모두에게 다르게 존재하는 거라고.

 

예를 들어볼까. 아이에게 아버지는 거인이고 초인이야. 그러나 회사에서 아버지는 그냥 사원 중 한 명일 뿐이야. 그래, 결국 관찰자와 행동자에 따라 그 대상은 그 의미가 달라져. 흥미로운 건 대상자는 그 어떠한 변화도 행하지 않았다는 거지. 알겠어? 너와 내가 다르기에 지금 우리 둘이 보고있는 것도 각자에게 그 의미가 다르다는 거야.

 

자, 다시 봐. 이 일은 네게 아무렇지 않은 작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큰 문제야. 지금도 울리는 내 본능을 거부하고 오로지 이성으로만 내 행위를 강제해야하거든.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본능은 이 자리마저도 거부하고 과거를 후회하고 있어. 어쩔 수 없지, 본능은 의지와 거리가 먼 존재니까. 그리고 난 내 의지로 이 일을 해낼 생각이거든

 

난 때때로 생각해. 이 사회는 너무나도 불합리하다고. 언제나 ‘이성’을 통한 해결을 강요하잖아? '법'이라는 이름으로 말이야. 하지만 모든 지성체는 본능과 이성이 뒤섞여서 만들어져. 본능은 이 사회보다 오랜 시간 동안 그 동안 생존을 담당해줬잖아. 나를 위협하고 제거할 존재를 빠르게 알아차리고 생존의 길을 만들어주었지. 그리고 그 본능은 ‘감정’이라는 형태로 아직도 존재해. 왜일까? 글쎄, 적어도 그게 아직은 우리에게 필요해서 아닐까? 지성체의 진화는 환경에 맞추어 생존과 번식, 진보를 향해 이루어져왔잖아. 그렇다면 이 사회가 비웃고 이성의 아래로 취급하는 본능도 우리에게는 아직 필요하다는 것이겠지.

 

하지만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은 그 본능을 철처하게 배제해야만 하지. 오히려 고통을 향해 스스로 뛰어드는 짓이잖아? 그래, 이건 정말 고통스럽고 어쩌면 진화의 법칙에 어긋나는 행동일지도 몰라. 어쩌면 본능이 정답일지도 모르지. 아니면 둘 다 정답이 아닐 수도 있고. 하지만 그거 알아? 내 본능은 지금 갈라져 있어. 많은 형태로, 지금 어디선가 자그마한 본능은 기대하고 있어. 이번에는 가능하다고, 그 이후가 기대된다고. 이런 식으로 말이지. 후우, 역시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참 흥미롭네.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일 하나에도 이렇게 여러 반응을 내보이다닌 말이야.

 

그래도 하지 않으면 안 돼. 너나 아니면 다른 누군가는 비웃을지도 몰라. 이런 것에 비장하다고 아니면 넘겨버리라고 조언같은 스노브의 언어를 나에게 내뱉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런 건 의미가 없어

 

세상이 비웃던 것이 뒤집어진 경우는 이미 역사가 몇 번이고 증명해주었지. 그런 소리를 하는 건 역사에게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무지한 존재라는 걸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건가? 그리고 그런 비웃음을 두려워하며, 또는 과거의 일에 사로잡혀 안일함을 추구하던 이들이 어떻게 파멸했는지도 역사가 보여주고있어. 설령 변혁해서 파멸할지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런 걸 받아들이기는 싫어. 거절이야.

 

그래, 변화해야만해. 지금까지 어떻게 해왔든 그건 상관없어, 과거는 과거로. 나는 이제 한 발짝 내딛는 거다. 작은 일일지라도 나에게는 커다란 변혁이지. 그 과정은 고통스럽고 즐겁지않겠지만, 그래도 변혁한 나는 꽤 즐거울 것같아. 한층 더 자유롭고, 내게 더 많은 기회와 가능성이 생기겠지. 기대해도 좋아. 내 변혁을

 

슬슬 시간인가? 잘 봐두라고.

 

-그리고 아스카는 에스프레소 잔을 들어 입을 가져다대었다.

 

후훗, 내가 오판했던 걸까. 아무래도 이건 나에게 너무나도 과도한 변혁이었을지도 몰라.....쿨럭
설탕 좀 주지 않겠어? 아, 티슈도. 역시 내 본능은 틀리지....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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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커피 마시는 데 말 참 많다.

 

솔직히 이런 독백체 글은 참 쓰기 힘들어양

 

그리고 아스카를 쓸 때는 늘 생각하는 건데, 도무지 내가 뭘 쓰고 있는 건지 헷갈립니다. 의식의 흐름 저 너머로 날아가는 이 기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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