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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띠마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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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08, 2012 21:11에 작성됨.


사람은 이성이라는 걸 가지기 시작하면서 동물들과는 차별된다고 한다.

하지만 때로는 이성이라는 것으로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다.





"................후우."

일본의 소규모 아이돌전문 육성 연예사무소 [765 프로덕션]에서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는 나는 오늘도 일을 마치고 집으로 퇴근하는 중이었다.

일이라고 해봐야 하루종일 아래로는 13살 꼬맹이부터 위로는 21살 아가씨까지 무려

12명의 식충이(못된 취급처럼 보여도 아직까지는)들의 뒤치다꺼리가 다지만.

아이돌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사무소에 전혀 돈을 벌어다 주고 있지 못하는 상황.

당연히 랭크는 전부 F, F, F.......바스트 사이즈가 아니다.

수입은 아직까지 단 1엔도 없는데 매일 트레이닝을 해줘야 하는 상황.

그래서 트레이닝을 할 때를 제외하면 그저 사무소에서 하루하루 시간만 때운다.

어떻게든 소규모 행사라도 잡아보려고 또다른 프로듀서인 리츠코와 함께

여기저기 찔러는 보고 있지만 최근 경기가 좋지 않아서 제법 유명한 사무소의

아이돌들도 싸게 풀리고 있는 상황이다. 당연히 원래같으면 765가 낮은 보수라도

감당하면서 해야 할 일들도 다른 사무소가 가로채가고 있는 현실이다.

애써 내색은 하지 않고 있지만 이대로 계속 이어진다면 도산밖에는 답이 없겠지.

"후우~"

암울한 한숨을 한 번 더 쉰 나는 집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사무소에서 내 자취방까지 가는 길에는 조그마한 공원이 하나 있다.

평소에는 지쳐 떨어져서 한 번도 들러 본 적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나는 발걸음을 옮겨 공원으로 들어갔다.

나는 훗날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선택 중 하나는?]이라는 질문을 받으면

반드시 이 때를 꼽곤 한다. 물론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절대로 아니었지만.









"후우~"

단정한 이미지를 위해 꽉 조여매고 있던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벤치에 다리를

쫙 벌리고 앉은 나는 세번째 한숨을 쉬었다.

이러고 있으니 마치 아내에게는 차마 해고당했다고 하지 못해서 매일같이

공원에 출근하는 실직자 가장이 된 것 같다. 물론 아직 가정을 꾸리지는 못했지만.

처음 765에 입사할 때에는 제법 월급이 많았다.

하지만 F랭크 아이돌들만 줄줄히 딸려있는 사무소의 사정상 도저히 그 돈을 받고

일하고 싶지 않았다. 삭감....삭감....삭감....아이돌들을 아끼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감당 못했으리라. 그래도 고향 아사히카와에서 식당을 하시는 부모님의 결혼 독촉

전화를 생각하면 그게 과연 올바른 선택인지도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쩝..........들어가서 잠이나 자야겠다."

벤치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턴 나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길을 가려고 하는데.

"우와앗!!"

돌바닥 길이 아닌 벤치 옆의 흙을 구둣발로 디딘 것이 화근이었다.

갑자기 흙이 쑥 꺼지더니 내 한쪽 다리가 완전히 흙에 파묻혔다.

아마도 못된 동네 꼬마녀석들이 함정을 판 모양이었다.

구두뿐 아니라 바지까지 흙투성이.

"으으....진짜....한 벌밖에 없는데 세탁을 또 해야하다니."

그 때였다. 바지를 툭툭 털며 불평을 하는 내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린 것은.

[포에에...포에....]

아기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고양이 소리 같기도 한 이상야릇한 소리.

놀랍게도 그 소리는 방금 내 바지를 더럽힌 주요한 요인인 구덩이에서 들리고 있었다.

"...................."

겁은 별로 없는 나였지만 저녁밤의 공원은 나름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구덩이를 확인해보픈 마음은 들지 않았지만 겁보다는 호기심이 앞섰기에

나는 구덩이 안을 들여다보았다.

[포에에...포에에..포에에에...]

놀랍게도 구덩이 안에는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겨우 30cm 자 하나크기도 채

되지 않는 것 같은 미니사이즈. 여자아이(?)는 동그랗게 몸을 감싸고 있었고 손으로

머리를 가린 채 쉴새없이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내 싸구려

구둣발자국이 달 표면에 난 크레이터마냥 크게 나 있었다. 다행히 당시 구둣발에

아무런 느낌이 없었던 것으로 추정하건데 직격은 피한 모양이었다.

만약 직격이었다면........

"으으으."

순간 언젠가 봤던 고어한 영화의 영상이 떠올라 도리질을 한 나는 일단

구덩이 안쪽에 대고 사과했다. 동물인지 사람인지 괴생물체인지는 제대로 구분이

가지 않았지만 일단은 내 실수로 밟을 뻔한 건 엄연한 사실이니까.

"미...미안해. 실수였으니까. 괜찮아?"

[포에?]

내 말을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괴생물체는 낑낑거리면서

구덩이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쭈삣쭈삣하면서 경계는 하고 있었지만.

그리고 괴생물체의 얼굴을 본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하기와라 유키호?!"








부비적.

[포에?]

부비적부비적.

[포에?]

부비적부비적부비적.

[포에에?]

한 번 눈을 비볐다. 두 번 눈을 비볐다. 세 번 눈을 비볐다.

괴생물체는 아무리 봐도 765프로의 아이돌 중 하나인 [하기와라 유키호]였다.

면접을 볼 때 쭈뼛거리면서 들어와서는 [저....저는 아무데도 쓸모없는 아이이지만

치...친구가 억지로 원서를 넣어버려서.....]라는 말을 했던 아이다.

나는 조용히 사장님에게 떨어뜨릴 것을 종용했지만 사장님은 [모...모에!!!!]라고

외치면서 제멋대로 합격통보를 날려버렸다. 덕분에 나는 혼자 악역이 되었고.

그 뒤로 유키호는 쭉 나를 무서워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괴생물체 역시도.

계속 포에거리면서 여전히 나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괴생물체.

머리랑 옷은 온통 흙투성이였다. 하긴 흙구덩이 안에 있었으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저기...."

[포에?]

"집이 없니?"

[포에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는 상황이다. 유키호(?)를 그냥 여기에 방치하고 가자니

뭔가 마음 한 구석이 찌릿찌릿하고. 그렇다고 데려가자니 또 그렇고.

차라리 평범하게 개 고양이 이런 거라면 얼마나 선택하기 쉬운가.

"아악! 불행해!"

가끔 보는 애니메이션에서 불행하다고 외치는데 내가 보기에는 전혀 아닌것 같은

토X마 개객기의 대사를 날려주면서 나는 공원 맨바닥에 OTL포즈를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포에에...포에..]

갑자기 내 등 뒤로 폴짝 올라타더니 내 어깨를 주물러주는 괴생명체.

시원했다. 모든 피로가 싹 날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자. 아무것도 없지만 들어와. 라고 하기에는 이미 들어왔지만."

나는 내 머리위에 앉아있는 괴생명체를 내 방에 들였다.

치우는 게 귀찮아서 되도록 안 어지르는 성격이라서 방이 깨끗한 게 다행이었다.

자 이제 어떻게 하지.

[포에?]

방 한가운데 앉아서 갸웃갸웃하는 모습이 꽤나 귀엽다. 흙투성이 인것만 빼면.

"이...일단 씻겨야겠지?"

여기에서 나는 또다시 딜레마에 빠졌다. 개나 고양이라면 그게 암컷이든 수컷이든

상관없다. 하지만 내 눈 앞의 이 괴생명체는 미니사이즈이고 [포에]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걸 제외하면 영락없는 [하기와라 유키호]다. 유키호를 직접 씻긴다?

아마 그녀는 그 말을 듣는 즉시 기절하거나 삽 하나만 들고 모호로비치치 불연속면

까지 땅을 파고 들어가버릴거다. 그렇다고 이 괴생명체가 혼자 씻을 수 있을까?

"후우........."

깊은 한숨을 쉰 나는 욕탕으로 들어갔다. 정확히는 들어가려고 했다.

[포에!]

미니어처 유키호(괴생명체라고 부르는 건 일단은 그만뒀다)가 갑자기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었다. 그리고 눈에는 물기가 그렁그렁하다. 아무래도 오해를 산 것 같다.

"걱정하지마. 버리거나 그려려고 하는 게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호두알만한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미소를 짓는다.

[포에에에~]

우와. 예쁘다. 진짜 유키호에게서는 아직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다.

진짜 유키호도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으면 나부터라도 팬이 될텐데.






일단은 잡생각을 집어치우고 조그마한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주었다.

그리고 미니어처 유키호에게 들어가라는 눈짓을 했다. 제발 알아들어라.

[포에~]

다행히 상황을 깨달았는지 참방하는 조그만 소리와 함께 미니어처 유키호는 옷을 입은 채로

물에 뛰어들더니 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역시 진짜 유키호에게서는 아직 본 적 없는

그런 귀여운 표정이다. 그리고 물은 점점 흙탕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옷을 입은 채로 들어갔잖아?!









[포에?]

"이것은 인형이다. 이것은 인형이다. 이것은 인형이다. 이것은 인형이다. 이것은 인형이다.

이것은 인형이다. 이것은 인형이다. 이것은 유키호다. 제기랄!"

열 번 정도 하면 자가최면에 걸릴 것 같았는데 여덟번째에서 의식해버렸다.

일단은 더러운 옷을 벗기는 대신 그냥 물만 갈아주기로 했다.

언젠가는 흙탕물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포에!]

한 다섯 번 정도 물을 갈아주자 그제서야 맑아진 물에서 몰라보게 뽀얗게 된

미니어처 유키호가 나왔다. 정말 불행 중 다행으로 미니어처 유키호가 입고 있던

하얀 베이비돌 원피스도 흙투성이에서 원래의 색깔을 찾았다.

내게는 정말이지 다행이었다. 이럴 때만 사람같지 않아서.

깨끗한 수건을 깔아주자 알아서 열심히 머리를 닦고 뒹군다. 역시나 다행이었다.

뽀송뽀송해진 미니어처 유키호에게 방석을 하나 깔아주고 손수건을 덮어주었다.

[포에....포에에.....포에...]

금방 잠이 들어버린 미니어처 유키호는 숨소리도 [포에]였다.








"풋. 귀엽네."

그리고 나는 내 침대에 올라가 잠들었다. 침대에서 떨어져서 미니어처 유키호를

덮치면 어떡하지라는 쓸데없는 고민을 하면서.








다음날이었다.

[포에! 포에! 포에에에에!!]

"으으.......나더러 어떡하라고."

다행히 사람이 먹는 아침밥을 미니어처 유키호도 먹는다라는 점은 분명히 다행이지만

문제는 출근을 해야하는 지금 이 시점이었다.

차라리 동물이라면 사료와 물을 남겨두고 갈 수 있겠지만이라는 문제도 있는데다가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이 녀석이 내가 자기만 두고 출근하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지

절대로 내 머리 위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단은 떨어뜨리려고 햇지만 잘 떨어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힘으로 억지로 떼어내니까.

[포에...포에....포에에에...]

또다시 버림받은 강아지 눈을 하고 바닥에서 울먹울먹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마를 짚었다. 내가 두통으로 죽게 된다면 원귀가 되어서 평생 그 공원에서

살테다. 그리고 그 공원을 유령이 나오는 곳으로 만들어서 폐쇄시킬테다.

"..............따라갈거야?"

[포에!]

비록 여전히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눈빛과 표정으로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쩝. 그래. 어차피 먹을 걸 챙겨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나도 모르겠다."









나는 결국 반포기 상태로 내 머리에 미니어처 유키호를 올려놓고 사무소로 출근했다. 

아아 불행해.

신이 내게 두 번째 기회를 주신다면 절대로! 저얼대로! 공원에서 청승같은 거

떨지 않고 열심히, 정말 열심히 살 테니까! 후우우.......됐다. 신은 날 버린 것 같으니까.

그냥 다른 사람들한테나 신경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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