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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판타지] 어둠을 밝히는 자들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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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11, 2016 23:46에 작성됨.


어두운 장소에서 두 걸음이 점점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간다. 제대로 된 공기청정시설이 준비되어있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지하 몇백미터 아래로부터 나선형으로 건축 . . 이라기 보단 절벽암반을 인공적으로 깎아서 만든 계단을 타고 도로 올라가고있었다. 계단의 중앙에는 생선을 말리듯이 싸늘하고 창백하게 식은 딱딱한 뭔가를 무수한 쇠사슬로 고정하여 놓은 채 였다.

그것에는 아까전까지 둘이 담겨있던 것과 같은 수용액들이 든 수조관 몇개가 흡착되 달라붙어있었다.

란코와 아래가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어둠의 한가운데에 걸린 것을 보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걸음을 늦추고 만다.

 

" 드래곤 ? 드래곤의 사체인가 ? "

 

둘 중 아스카쪽에서 먼저 말이 나왔다. 곤충표본처럼 양 날개의 끝이 거대한 쇠못으로 말미암아 양 절벽에 박힌 채, 이미 생기를 모두 잃고 차갑게 굳어버린 눈동자와 고개는 한없이 아래로 늘어져 그저 사슬에 걸려있을 뿐인 그 거대한 몸체를 보면서, 아스카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 인과의 수호자의 잔재인가 . . 왕국의 탐구자들은 무엇을 추구하는가. "

" 아니, 사슬들에 새겨져있는 문양의 양식으로 보면, 엘프들이 걸어놓은게 맞군. 왕국에선 이걸 그냥 발견했을 뿐이겠지. "

 

그러면서 그녀는 과거에 드래곤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잠시 감상에 잠긴다. 하늘을 부유하는 영지 위에서 하늘과 땅, 바다를 덮는 거체의 드래곤들과 함께 세계를 노닐던 때를. . . 그것도 잠시, 그녀의 눈은 곧장 끝없을 것 같은 나선계단의 위편을 보았다.

아스카는 어깨를 으쓱이며 코웃음을 터뜨린다.

 

" 그렇다해도 . . 드래곤은 모두 ' 녀석 ' 의 양분이 되어버린 줄 알았는데, 이녀석은 죽었어도 육체를 보존해서 그나마 다행이려나. "

" 고인된 자를 왈부하는것은 좋지 못하다. 나의 반신이여. "

 


아스카의 고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능욕발언을 사전에 끊어내며 한 손을 앞으로 뻗고, 손바닥은 하늘을 향한다. 이윽고 척 봐도 기분나쁠것 같은 검은 연기들이 허공에서 응집되어 손바닥 위에서 춤추다가 어떠한 형태로 굳는다.


책이다.

 

 

" 설마, 벌써 한번 크게 벌이려는건가 ? "

 

아스카의 띄우기에도 살짝 고개를 끄덕일 뿐 자신감과 근엄에 가득한 태도로 책 위로 손바닥을 올린다. 보통의 사람이 보면 무슨 사이비 의식을 하는가 의구심을 품을 법한 모습이었다. 그랬을 터 였다.

책이 손짓하나 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펼쳐지고, 안에는 빽빽하게 쓰인 손글씨와 함께 뭔가 투박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흑백의 삽화가 그려져있는 페이지가 드러나 란코의 시야에 들어온다. 굵은 발톱과, 노리는것을 부서뜨릴 것 같은 눈매, 단단한 비늘들에 둘러쌓인 늠름한 몸체. 한 쌍의 커다란 날개.

소녀였던 사도의 얼굴에 결의가 선다.

 

" 나의 손 안에서 도로 생명을 얻으라. 인과율을 수호하는 자여. "

 

책으로부터 날개돋힌 영체가 솟아나와 계단의 나선통로를 타고 생명없는 드래곤의 육신의 주변을 반딧불이마냥 날아다니면서 뒤로 흘리는 흰 연기와 같은 기운을 사방에 흩뿌린다. 기운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 아래로 가라앉으며 옅어지기 시작하자, 원형의 구덩이를 둘러싼 도랑 전체가 흔들림과 동시에 단단히 고정되어있는 것 같아보였던 사슬들이 하나씩 하나씩 지지대를 잃고 바닥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떨어져가며, 회색으로 바래져버린 비늘에 붙은 용기들을 부순다.

마치 처음부터 모든것이 무너지기 위해 존재해왔던 것 마냥 절벽과 거체에 메달린 모든것들이 부서져내리기 시작했다. 아스카의 얼굴에 한줄기의 미소가 흐르며 란코의 어깨위에 손을 올린다.

이어서 찰나의 순간에 아스카가 발을 튕기자마자 둘의 모습은 계단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동시에 숙여져있던 고개가, 들어올려질 무렵에 . . . .

 

 


같은 시각. 미시로 왕국 궁성.

언제나의 일상과 같았어야할 날, 가공할 만한 지진이 궁성을 비롯한 수도의 땅 전체를 뒤흔들어오자, 한없이 나라의 번영과 평화속에 빠져들어갈 무렵이었을 터인 국민들에게 크나큰 파란을 불러오는것은 불보듯 뻔 한 일이었다. 심지어 아직 제대로 왕국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 정복자의 백성들은 돌연 일어나는 재해에 어쩔 줄 모른다.

그 누구도 이 지진의 의미를 아는 이는 없었다. 아니, 애초에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궁성 인근의 깔끔하게 다듬어진 석재도로를 흔적도 없이 퍼올려 내팽개침과 함께 나타난 가공할 거체를, 그들의 책으로 밖에 본 적이 없으니까.

아직 중천인 햇빛을 받아 선명하게 반사되어 윤기나는 비늘, 태산마다 덮어버릴 것 같은 크고 넓은 한 쌍의 날개와, 마치 거대한 공성추를 보는 것 같은 무수한 발톱과 이빨.

처음에는 뭔가의 장난이라고도 생각했던 찰나에, 거대한 아가리로부터 뿜어져나오는 엉겹의 화염은 일순간의 반응을 허용치 않고 재로 만들어버렸다.


궁성 주변상가 일대가 불바다가 되고서야, 지진의 근원을 . . . '현실' 을 국민들은 목도한다.

 

" 드, 드래곤 ? 진짜 드래곤 . . ?! "


" 히이익 ! 도망쳐 ! 뭐든간에 도망치라고 . . ! "



마침 가려던 거리에 불길이 수 십미터의 벽처럼 솟아오르자, 시민들, 국민들은 패닉에 빠져 저 너머 궁성의 크기보다 더 커다란 은백색의 파충류와 유사한 괴물의 모습으로부터 반대편을 향해 사력으로 질주한다.

그러나 영험하고 거대한 그 눈길은, 길잃은 개미떼처럼 뛰어가는 미약한 생명들에게 한줄기의 자비없이 불의 숨결을 토해내 모두 새까만 재로 바꾼다.

지하로부터 솟아올라온 재앙이, 불과 돌풍을 내뿜으며 인간과 아이돌의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할 중심지를 초토화한다.

아이돌로 추정되는 몇개의 점들이 건물 벽을 벼룩처럼 타고올라 거체에 다가서자마자 거체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들정도로 빠르게 후려쳐지는 발톱에 맞아 붉은 연기가 되어 흩어진다. 수 개월 전까지 실전에 쓰던 대포도, 총도 아무런 의미없이 그저 비늘에 삼켜져 거체를 움직이는 힘이 될 따름이다.


" 정신차려 ! 죽으면 안돼 ! "

 

눌러썻던 철투구를 내던지고 바닥에 널부러져 끅끅거리는 소녀에게 메달린다. 소녀는, 정확히 몸의 절반이 떨어져나가 곧 죽음에 이를 출혈과 상흔으로서 몇 초 전까지 자기가 온전한 아이돌이었다는걸 증명하고있었다.

이미 한계에 다다른 전우를 차마 버리지 못한 그 한명의 아이돌은 몇 초 울어보지도 못한 채로 전우곁에서 나란히 짓밟혔다. 드래곤에게는 밟은게 무엇인지 인지조차 되지 않을정도로 미미했지만.

숲과 바다를 날려버릴 것 같은 어마무시한 포효가, 머잖아 울려퍼졌다.

 

일찍이 엘프의 수도 '엘프헬름'의 땅을 정복하고, 그 위에 터전을 잡은 인간과 아이돌들이 모두 깨어나 고대의 존재가 아직 남아있다는걸 인지하는 순간이었다.

일부는 태양에게 구원을 기도하고, 또 일부는 도망을 포기하고 가족들과 얼싸안고 가까이 다가오는 죽음의 굉음에 떨며 최후를 기다린다. 그래, 고작 수 걸음을 걸었을 뿐인데, 빽빽하게 늘어섰던 시가지와 상가단지가 납작한 폐허가 되버리고 입에서는 아이돌마저 일순간에 재로 만드는 불길을 토해내는 재앙 앞에 무릎꿇어갈 터 . . .

 

 


였다.

 

 


막대한 크기의 파충류가 성큼성큼 옮기던 발걸음을 돌연 멈춘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갑작스레 멈춘 것 처럼.

움찔하며 그 떠는 진동으로 주변 건물들을 마저 부수기는 했지만, 더욱 많은 부수적 피해가 일시적으로 멈춘 것이다.


드래곤이 몸을 틀어 뒤돌아보자, 몸체를 따라 회전하는 꼬리를 따라 건물들이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간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드래곤도 그걸 인지한건지 맹렬한 눈동자를 더욱 가늘고 매섭게 뜨며 그 이상의 흔적을 내려다보았다.

자기 몸을 따라서 왔어야 할 꼬리의 끄트머리 수 미터가, 연결점을 잃고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꼬리부분의 옆에 뭔가가 반짝였다.

 

 

 

 

" 어라아, 들켜버렸다아 . . 분명 둔해서 못 볼 줄 알았는데에. "

 

 

선명한 붉은 점액질 액체를 거검에 메달고서 어깨에 들쳐멘 여인의 모습은, 그러한 일촉즉발의 순간에도 한결같다.

 

다음은, 당연하게도 드래곤의 응징의 화염이 남아있던 꼬리와 함께 주변일대를 불살라서, 이제 영웅도 죽고 왕국은 끝이다 . . . 가 되었어야 하지만, 이후 예측을 모두 처부수듯이, 하늘로 번쩍 뛰어오른 아이리의 검격이 화염줄기를 허공에서 위아래로 갈라 흩어버린다. 족히 수 백 미터는 되는 괴물의 화염을 돌파하고 빠져나온 그녀는 곧이어 날아오는 거대하면서도 날카로운 발톱의 존재를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듯 공중에서 그대로 발톱이 덮쳐들어오는 측면으로 몸을 돌려 세로로 크게 거검을 휘두른다.

휘두름과 동시에 날아드는 발톱에 '깡 !' 하는 금속 충돌음과 함께 아이리의 모습이 아직 부서지지 않은 시가지 한가운데로 먼지를 내며 곤두박질쳤다. 황토빛의 먼지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시가지에 시선을 고정하고있던 드래곤은, 자신의 몸에 일어난 또 하나의 이변을 인지하고, 다시금 크게 포효하면서 그대로 아이리가 추락한 지점을 향해 천천히 진격해오기 시작했다.

 

양 앞발 중 아이리를 향해 휘둘렀던 한쪽 발톱이 모두 손질되어 반토막이 되있다는 사실에, 드래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듯 보였다.

 

자기가 사는 집 주변 돌바닥 안으로 뭔가 깊게 처박히며 모래와 먼지의 안개가 자욱해지자, 시민들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나와 깊게 파인 지면을 유심히 살펴본다. 그러다가 곧, 거대한 재앙이 자기들을 향해 오고있음을 목격하고 일부는 걸음아살려라 도망치고 일부는 집 안으로 도로 들어간다.

어느것이든 수 분 내로 모두 잿더미가 되어버릴 범위 내였다.

 

" 아야아 . . . 발톱에 맞았으면 아픈걸로 안끝날 뻔 했네에 . . "

 

구덩이에서 걸어나오는 그녀만 아니라면.

 

 

부서진 갑주일부를 뜯어내며 그녀가 한숨을 내쉰다. 여성용 무장으로 정규군복은 사이즈가 맞지않아서 유능한 대장장이에게 주문해 특제로 만든 흉그리브와 건틀릿이 25쥬엘도 안하는 고철파편이 되어 구덩이에 잔류한것을 돌아보고 입술을 꽉 물었다.

 

 

" 토토키 아이리. 백성분들을 지키기 위해서, 진지하게 가겠습니다 ! "

 

 

눈빛이 변한다. 동시에 공기도 변한다. 멀리 떨어져서 사람들의 피난을 유도하던 아이돌들 모두가 그 변화를 느낀다. 엘프와의 전쟁을 통해 아이리의 무용담을 직접 보았던 자들은 그것이 어떤것인지 알고있었다. 참격황제 - 토토키 아이리가 '진지함' 을 띄게 되었을 때, 언제나 전세를 순식간에 엎어버렸다. 드래곤과 대치한 아이리는, 불과 산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었던 엘프헬름의 견고한 방벽도 두부썰듯이 무참히 흩어버릴 때의 그것과 같은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드래곤도 그 변화한 분위기를 느낀건지 선명하게 두 눈을 빛내며 직접 몸을 숙이며 앞발로 지면을 파헤치 . . . ㄹ 뻔 했다.

토토키 아이리의 양 팔이 드래곤의 손톱 하나를 붙들고, 그 이상의 진행을 막고있음에, 거체는 분노로 휩싸이며 다시금 불길을 내뿜으려고 아구를 벌릴 때, 갑작스레 중심이 틀어지더니 거체가 옆으로 넘어진다. 아니, '넘어뜨려졌다. ' 동시에 조준점이 틀어진 채로 뿜어진 화염이 이미 한번 재로 만들었던 폐허를 가로지르며 불 벽을 만든다.

 

" 으아아아아 ! ! "

 

사뭇 진지하고 느긋한 기가 사라진 여인의 목청으로부터 악에받친 기합소리와 함께, 용의 몸이 중심을 잃는 것이었다. 이어서 거검을 다시 집어들고, 당황하는 그것에게 사태를 파악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질주한다. 뒤로 자욱한 먼지구름과 함께 제트기류가 발생하며 주변의 반파된 상가단지를 완전히 파괴하면서 재앙에게 달려가는 여인은, 흡사 고대 신화에나 나올법한 영웅과 그 위세가 같았으리라.

순식간에 상가단지를 주파하고 용의 머리부분에 다다른 여인의 칼날이, 거대한 합과 함께 용의 금색 눈 한쪽을 앗아간다. 안구안에서 끈적한 혈액과 수액이 마그마처럼 치솟아 올라 드래곤과 아이리의 몸을 덮는다. 용이 비명과도 같은 울음을 울린다.

 

하지만 참격은 도려낸 안구에서 끝나지 않은 채 이번에는 드래곤의 몸 위를 질주하는 아이리에 맞춰 그 금을 점점 늘여가며 삽시간에 목숨줄을 조여왔다.

 

지면에서 일어나려고 하자마자, 그것은 지탱할 팔이 도려내져 떨어졌음을 깨닫는다. 뒷 다리로 바닥을 딛으려는 찰나에, 그것은 양 발바닥이 이미 몸과 떨어졌음을 알고만다.

 

마지막으로, 불길을 다시 퍼부으려 하는 순간, 목과 몸이 떨어졌음을 알아버린다.

 

 

불길을 뿜으려고 아가리는 벌린 그대로 도로 다물지 못하고.

 

 

서글픈 울음소리와 함께 다시금 자기 종족의 종언을 고한다.

 

 

 

 

끈적하고 검붉은 용의 피를 뒤집어 쓰고, 마찬가지로 피에 흥건하게 적셔진 거검을 한 손에 움켜쥔 채로, 아이리의 두 눈은 용의 머리를 바라본다.

한참을 멍한 눈으로 서있던 도중, 자기 몸을 뒤덮은 혈액들을 그제서야 깨달은건지, 하와와와 하는 귀여운 소리와 함께 탈탈탈 털어낸다.

그녀를 감싸고 있던 분위기도 도로 원래 그녀 특유의 느긋느긋함으로 돌아와있던지 오래였다.

 

엄청난 굉음과 화염폭풍이 흔들리는 소리, 파괴음이 들리지 않고 정적이 찾아오자, 기도하던 이들과 삶은 포기한 자들은 각자의 최후준비를 그만두고, 피난처 밖으로 걸어나온다. 걸음의 목적지는 모두 같았다. 

이윽고 그들이 도착한 끝에는 도륙되어 최후를 맞이한 고대의 괴물이었던 사체와, 그 피를 닦아내고있는 그들의 전쟁영웅이 있을 따름이다.

사람들은 아이리에게 홀린듯이 다가와 양 팔을 하늘로 올렸다 내리며 외친다. 눈에는 눈물을 머금은 채로.

 

 

 

' 참격황제 - 만세 ! '

 

 

 

왕국에, 토토키 아이리의 별칭이 하늘높은 줄 모르고 우뢰처럼 울려퍼져갔다.

 

.

.

.

.

.

.

 

" 오직 순수한 힘과 순수한 영혼을 가진 자만이, 드래곤을 무찌를 수 있다. 라는게 동화책에 나오는 내용이었지. 저사람은, 진짜로 세계를 뒤흔들만한 사람인게 틀림없겠네. 반칙이 좀 있긴 했지만. "

 

엘프헬름을 무너뜨린 이후, 천신만고 끝에 복구된 수도의 성벽 위에서 두 인물은 나란히 서서 너머에 쓰러진 용의 사체쪽을 응시하고있다.

언제나처럼 코웃음치면서 옆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가려는 순간 . . 그녀에게 드리워진 슬픈 그림자를 보고 말을 도로 목 너머로 삼킨다. 그녀도 말을 할 때와 안할 때를 알고있다. 지금 란코에게 있어서 어떤 상황인지 어느정도 인지하고있었지만, 이정도로 심각하게 다가와있는 상태다.

 

" 아이리 . . 언니 . . "

 

사도로서 스스로를 떠올려내기 전의, 순하고 여린 소녀로서의 모습이 투영된다.

아스카는 순간 눈쌀을 찌푸렸다가 그녀의 시야안에 자기 얼굴이 들어올까봐 순식간에 표정을 무로 되돌렸다.

 

 

" 이 이상 우리들의 무대는 없어. 드래곤을 부활시킨건 그렇다쳐도, 거기에 수작질까지 한건 충분히 위험해. 너도 인지하잖아 ? "

" 하지만 . . 하지만 . . ! "

 

 

다시한번, 그녀의 눈가에 주름이 잡힌다. 이번에는 감출 생각이 없는 듯 더욱 명료하고 선명하게 드러난다.

 

" 우리는 관리자의 피조물이야. 관리자의 명이 있지 않는 한 우리들은 인과율에, 역사의 도표에 개입해서는 안돼 ! 네가 여태까지 도표속에 살아있던 시절도 원래는 존재해서는 안돼는거야. 알아 ? 그럼에도 넌 그 인연에 메달려서 . . . ! "

 

차마 말을 잇지못하고 혀를 차며, 아스카의 손은 성벽 난간을 움켜쥔다. 쥘 때의 힘 때문인건지 붙잡은 난간이 바스락바스락 분말이 되어 스러져간다. 움켜쥠에 따라 점점 스러져 난간 돌출부 하나가 완전히 없어져갈 무렵에 아스카의 고개는 도로 란코를 향했다.

우수에 가득 찬 사도로서의 자각을 잃어버린 그녀를 향해, 냉담하고 단호한 태도로 아스카는 일관한다.

 

 

" 이미 이 일때문에 수레바퀴는 틀어졌어. 더 이상 어지럽히지마. 그러지 않으면 . . 더 최악의 결과가 될 수 있어. "

" . . . 알았다. 나의 반신이여. "

 

어느정도 우울함을 털어낸 란코의 응답에 그녀는 소녀였던 어깨위에 손을 올리고 발을 튕긴다.

란코의 모습이 먼저 없어지고, 아스카의 모습이 사라져가며 끝에 말을 흘린다.

 

 

" 충분히 최악으로 치달은 것 같지만. "

 

 

 

 

 

해가 저물어갈 무렵에, 아이리가 다시금 신데렐라 걸로서 칭송하는 함성이 널리 울려퍼져간다.

 

 

.

.

.

.

.

.

 

" 뭐야. 아직도 살아있는 녀석이 ? 이것도 나의 날개가 인과율을 뒤흔들어준 덕택일라나. "

" 녹의 주민 . . .  "

 

어둠과 풀숲의 2중의 장막 속에 숨은 눈동자가, 자신에게 걸어오는 듯한 말을 듣고 흔들리는 동공을 주체하지 못한다. 

풀숲에서 혹시라도 목소리나 숨소리가 세어나갈까봐 양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나무그늘이 달빛을 가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세어나오는 눈물을 막을 수 없다. 자신들 . . 자기 일족 특유의 감으로, 두 존재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정도로 무겁고 어두운, 어둠조차도 더 어둡게 덮어 심연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것임을 본능으로 알아챘다.

 

" 인과율에 어긋나는 요소는 . .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잖아 ? 보여줘. 네가 네 본모습을 완전히 찾았다는걸 말야. "

 

두 목소리 중 하나가 ' 나는 저쯤에서 기다리지 ' 라고 마저 흘리며 걸음을 멀리한다.

 

곧이어, 풀숲이 중력에서 벗어난 듯이 뿌리채로 뽑혀 올려지고 . . 나무들이 의지를 가진듯이 좌우로 휘어진다. 그제서야 달빛이 선명하게 비추며, 자신을 감추는데 필사적이던 이종의 정체를 드러낸다. 은회색의 머릿결이 달의 반사광에 미려하게 빛나고, 그와 별개로 두 붉은 눈동자가 번뜩이며 죽음의 공포에 떠는 생명을 내려보았다.

 

" 사 . . 사려 . . 주세여 . . . "

 

어줍잖게 인간의 말을 하는 그것은 울면서 떠올린다. 거대한 날붙이를 든 여인의 모습을 한 악마가 가족들과 이웃들을 끝까지 찾아내서, 무참히 도륙하는 모습을. 자기도 곧 그렇게 될 것만 같아 공포감을 주체 할 수 없다.

 

" 녹의 주민이여 . . 나를 원망하지 말아라. "

 

비정한 한마디와 함께, 그림자를 입은 손이 달빛을 가리듯 들어올려진다.

 

허나, 내려가는것은 너무나 느렸다. 당장에 조금이라도 힘을 쥐어 후려쳤다면 충분히 그 작은 생명을 짓뭉게버릴 수 있을만 했지만, 붉은 눈동자는 좌우를 살피고는 손을 천천히 내려 공포에 떠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부드러운 감촉에, 그것이 질끈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떠서 도로 붉은 눈을 마주보며 흐느꼈다.

눈동자가 사슴눈망울 같은 큰 눈을 보며 짧은 한숨을 내쉰다. 반대편에서는 눈동자가 한숨을 쉬는 거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 역시 나는 할 수 없다. "

 

흐느끼던 소리가 잦아들고, 어느정도 진정된걸 확인한건지 . . 반대편 손에 든 책을 펼쳤다. 그리고 쓰다듬던 손을 책 표지 위로 올렸다.

책이 스스로 표지를 펼치고 장이 넘어가다가 어느 페이지에서 멈추었다. 소녀의 목소리로, 작은 생명에게 속삭이듯 전한다.

 

 

" 녹의 주민이여. 나의 권능으로서 . . 평화를 살아갈 지어다. "

 

 

그러면서 작은 얼굴의 귀를 어루만진다. 따스한 빛이 손길을 타고 흐르는 듯 기분이 좋은가 달빛에 비친 뺨에는 살짝 홍조가 드리운다.

이윽고 손이 떨어지자 그것은 자신의 손으로 귀에 남은 온기를 어루만진다. 뭔가 달랐다.

 

 

" 아 . "

 

 

" 자, 비극은 이제 없다. "

 

 

 

돌연 거센 바람이 불어와 눈을 감는다. 그리고 다시 뜬 시야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 . 생명은 고개숙여 감사를 표했다. 얼굴없는 눈동자를 떠올리고, 어둠을 밝히는 달빛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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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용 ( Dragon )

 

먼 옛날에 하늘을 떠다니는 영지와 함께 번영했다고 하는 전설의 생물 및 종족 전체를 통칭하는 말. 바위처럼 단단하고 태산보다 거대한 몸집으로 폭풍을 일으키며 날아다닌다고 전해져오는 이 환상의 생물은 '신' 의 명에 따라 세계의 균형을 지키기 위한 수호자들 이었다고 전해졌었다.

 

다만, 머나먼 옛날 세계의 각 종족들이 역사의 시대에 갓 진입할 무렵에, '신'의 질서에 반기를 든 무수한 종족들을 심판하다가, 최초의 왕이자 가장 위대한 '오래된 왕' 에 의해 모두 멸종당해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 . 고 제국 역사서에 서술되있다.

제국에서 용을 '악의 전도자' 라고 하며 국민들에게 나쁜 이미지로 심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고, 제국 내에서는 용을 영험한 생물이 아닌 단순히 '괴물' 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 인식이 국경을 넘어 퍼져가고 세월이 지나면서 '신'에 대한 나쁜인식과 겹쳐 플러스 작용을 발휘해 용은 나쁜 괴물이라는 이미지로서 국제적, 대중적으로 퍼지게 됬다.

 

아무튼 용은 모두 멸종당해 뼈만 남은 상태며, 이 뼈들은 오토노키자카 제국 수도 외곽에 쌓아올려져 '용골탑' 이라고 하는 관광명소로써, 현재까지 수많은 관광객들이 제국관광 필수코스로 들르는 곳이 되었다. 물론 용골탑에 손상을 입히거나 용골탑을 도적질하는 행위는 국제적인 중죄로 취급되어 국적 불문하고 제국에서의 종신노역형을 면치 못한다.

 

 

엘프

인간과 아이돌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미시로 왕국' 이 세워지기 전에 그 땅에 '엘프헬름' 이라는 수도를 가진 '공화국'이라는 나라를 세워 살았었다는 이종족. 생김새는 인간과 유사하나, 귀가 길고 뾰족했다고 한다. 미시로 역사서에 서술된 기록에 따르면 동식물과 대화할 수 있으며 다친 상처나 병을 치료하는 힘을 모든 구성원이 갖추고 있었다 하며, 이를 이용해 주변 이종족들을 이용하고 지배해 나라를 세웠다고 되어있다. . .

 

라는건 어디까지나 왕국 역사서의 서술이고, 엘프에 대한 진실은 그 때 그 시절의 사람들만이 알겠지 . .

 

'이름 없는 숲'의 주인인 '우메키 오토하' 가 최후의 엘프라고는 하나, 그녀와 직접 접촉한 이들이 극히 드물며, 그나마 제자라고 왕래가 잦은 타카모리 아이코와 아이바 유미는 절대로 함구하고 있기 때문에 진실여부를 확인 할 방법은 없어보인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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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올리는 어둠밝 그 6편입니다 ! 대략 이제 1~2편 정도면 란코가 주역인 이야기가 끝나겠군요 !

남은편은 아마도 충격적인(?) 전개로 갈것 같네요. 올려도 별로 충격 안같으려나 . . . .

 

아무튼 날씨다 다시 겁나 더워졌습니다 ! 비라도 내려줘 . . 살려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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