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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리 나나미 "일곱 대해원과 6년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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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10, 2016 15:11에 작성됨.

태양 끄트머리를 걸어올린 낚싯줄의 끝덩어리가, 무자비하게 내리쬐는 열선에 맞아 한 순간 빛나곤 돌바닥 위에 떨어져버렸다.

30센티미터 좀 덜 되는 되는 물고기가 울퉁불퉁한 바위 위에서 펄떡인다.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빛 속에 적절하게 달궈진 돌이, 어리석게도 미끼를 물어버린 물고기를 천천히 구워낸다. 습기 가득한 무더위는, 이 물고기에게 재빠른 질식사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본능에 따라 바다로 돌아가려 해도, 입에 박힌 낚시바늘과 바늘에 연결된 튼튼한 낚시줄은 도주하려는 그 모든 시도를 효율적으로 막고 있었다.

 

"음..... 이건 아닌 거에여~"

 

갑작스레, 물고기가 돌바닥에서 떨어졌다. 상황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펄떡대는 물고기가 자기 몸통보다 작은 손에 잡혀 올라갔다. 곧게 뻗은 방추형 몸뚱아리가 작은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친다. 하지만 손의 주인은, 등푸른 생선의 저항은 간단히 무시하고선 바늘이 박힌 윗입술로 자신의 손을 가져갔다. 잠시 후, 단백질이 으깨지는 소리와 함께 방어의 푸른 등에 핏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손의 주인--아사리 나나미는 맘에 안 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고선 기껏 낚은 방어를 바다로 던졌다. DHA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등푸른 생선은, 자신에게 뭔 일이 일어났는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생존본능에 따라 자신이 살던 대해원으로 돌아갔다.

 

"에에?! 뭐 하는 거야?! 기껏 잡은 건데 놔주는 거야? 아깝잖아!"

 

그녀가 서 있던 바위 밑, 길게 펼쳐진 금백색 모래사장에서 남성의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아까운 기회를 놓쳤다, 라고 말할 생각인 듯 하다. 30센티미터보다 좀 작은 물고기라면 요리해 먹기도 좋은 크기다. 월척이라고 하기엔 좀 작은 크기이긴 하지만, 그냥 풀어주기엔 너무 아까운 크기인 것이다. 그냥 놔주는 게 굉장히 아까운 짓이라는 건, 누구나가 동의할 것이다. 계륵의 고사를 인용하려 해도 그 대상이 적절하지 않았다. 그가 거기까지 생각하고 말한 것은 아니지만, 아마 그랬을 거라고 아사리 나나미는 생각해주기로 했다.

 

"방금 잡은 건 먹을 것도 얼마 안 나오는 치어인 거에여~ 적어도 하마치 정도는 되어야 먹을만한 거에여."

 

하마치, 방어의 다른 이름으로 일반적으로 40센티미터 이상 60센티 이하의 방어를 일컫는 말이다. 그녀의 기준에선, 30센티미터도 못 되는 방어는 죠가사키 미카도 안 건드릴 치어로서 어족자원보호의 대상이었다. 

 

"그래도...."

 

남자는 못내 아쉬운 듯 말했다. 동시에, 그의 배가 꼬르륵 소리를 내며 공복을 호소하였다. 그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쿡 하곤 웃었다. 얼굴이 더 빨개졌다.

 

"그리고, 여름 방어 같은 건 먹을 게 못 되는 거에여."

 

자신의 담당 아이돌에게 쪽팔리는 모습을 보여줘서 수치심에 얼굴을 붉힌 그를, 아사리 나나미가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자신이 생각도 하지 못하던 이유를 들은 그가 다시 고개를 들어 나나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바다와도 같은 청명한 눈이 그의 두 눈동자를 평안히 응시하였다.

 

"에? 그런 거야?"

 

방어는 겨울이 제철인 물고기다. 겨울철 방어는 최고급 참치와 비견될 만큼 맛있다고 하지만, 여름 방어는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 여름철이 제철이지만 겨울에도 크게 맛이 떨어지지 않는 근연종인 부시리보다 상당히 깐깐하다. 물론 일본에선 출세어라고 불릴 정도의 고급 어종인 만큼 여름철에 먹어도 왠만한 것들보단 맛있고, 시장기 앞에선 모든 것이 산해진미일 게 분명하지만, 오늘의 물주 겸 셰프인 그녀는 배고픔이 최고의 조미료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니까 조금만 참는 거에여."

 

그렇게 말하곤, 그녀는 잠시 입을 다물고 바다를 응시하였다.

잔잔한 듯 보이는 바다의 잔물결들이 일정한 파형을 그리며 태양과 포말로 푸른 세계를 수놓고, 모래사장을 휩쓸고 재창조하며 사라지는 파도와 갯바위에 부딛혀 산산히 부서지는 파도가 아사리 나나미의 오감을 메웠다. 파도 소리 속 아련히 들려오는 해조음이 그녀의 자의식을 지우고 존재를 파도로 휩쓸어 해류 속으로 끌고들어갔다. 남이니 타인이니 하는 울타리가 만들어준 인격 같은 하찮은 것들이 한 순간 그녀의 안에서 사라졌다. 

 

"......."

 

그녀의 프로듀서는 청명한 바다와도 같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머나먼 대해원과도 같은 그것을.

 

"......나나미!"

 

프로듀서의 목소리가 신호였을까.

나나미는 자기 다리 옆에 놓인 아이스박스를 열었다. 더운 날씨 속에서도 상하지 않은 크릴새우들이 용도에 따라서 분류되어 있었다. 그녀는 아이스박스 바닥 크릴 덩어리에 박혀 있던 국자로 밑밥용 크릴을 퍼올려 바다에 뿌리고, 플라스틱 통에 따로 나눠둔 갯지렁이를 2마리 정도 꺼내 능숙한 솜씨로 낚시바늘에 끼워 던졌다. 이 모든 과정을 신속하게 마치고 나서, 그녀는 그를 향해 전한다.

 

"음, 제가 봐도 포인트를 제대로 잡아서 던진 것 같아요.. 아여."

 

아사리 나나미가, 그녀의 프로듀서를 향해 미소지었다. 아이돌 6년차의 미소였다.

 

 

 

---

 

 

 

어찌되었든 배고픈 것은 배고픈 것이다. 담배를 태우면 좀 허기를 억누를 수도 있겠지만, 꽤 오래 전에 담배를 끊은 그가 담배를 갖고 있을 리가 없었다. 프로듀서는 배고픔을 받아들이고, 미리 챙겨온 조리기구들을 파라솔 아래에 세팅하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삼발이가 달린 작은 화로를 가방에서 꺼내고, 그 안에 구이용 성형탄을 적당히 채워넣은 다음 석쇠를 올렸다. 간단하다 못해 단촐한 세팅이지만, 둘만을 위해선 이걸로도 충분했다. 격식을 차리기보단, 신속함을 더 중시해야 한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은 그의 배가 그렇게 주장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아침을 거르고 온 아사리 나나미를 위해서라도.

 

"흰밥이랑 조미료랑 물 빼곤 현지조달이었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만들어온 밥은, 보온도시락통 안에서 식지 않고 따스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반찬만 있다면 바로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이라도 차 타고 편의점에 가서 간단한 찬거리를 사와 나나미와 같이 먹자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쓸데없는 생각을 씻어내었다. 길도 길이었지만, 나나미가 바닷물고기를 잡아 준다는데, 고작 배고프다는 이유로 그녀의 성의를 무시할 수 있을까. 그녀가 이 뜨거운 태양빛 아래서, 물아일체의 경지가 되어 바다를 향해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는 이유를 실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약간의 생각 후, 그는 가방 속에서 갈퀴와 작은 통을 꺼내들고 금백색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반바지가 젖지 않을 정도로 얕은 앞바다로 들어갔다. 그가 나나미 정도의 실력과 눈썰미를 갖추고 있었다면 모래사장보다는 갯바위 근처에서 작살을 들고선 작은 놀래미 같은 걸 잡았겠지만, 많은 도시 사람들이 그렇듯 그에겐 그럴만한 능력이 없었다.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아사리 나나미가 특출난 거니까.

 

"......"

 

6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를 돌봐왔지만, 정작 그녀에게 진정으로 가까워지는 일은 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신입사원 시절, 어쩌다 보니 길을 잃고 헤메다 아오모리의 숨겨진 비경에 도달하게 된 지 벌써 6년이 지난 것이다.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에겐 어째서인지 너무나 짤막하게만 다가왔다. 대해원을 바라보는 자는 시간 감각도 대해원을 닮게 되는 걸까?

그는 다시 한 번 아사리 나나미를 쳐다보았다. 6년 전, 14살 여자아이들의 평균보다 조금 밑이지만 표준편차 안쪽이었던 신장과 체중은 20살이 된 지금 둘 다 평균 이상으로 올랐다. 물론 프로필상으론 체중을 조금 속여서 평균 이하로 맞췄지만, 동년배에 비해 높은 신장과, 의외로 발달해선 건강미를 뽐내는 근육, 그리고 평균 이상의 가슴은 몸무게가 조금 나간다고 해서 아이돌답지 않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암, 그렇고말고. 잘 안다고."

 

태양빛이 아사리 나나미를 덮어 역광을 만들어내었다. 성장한 그녀가 태양빛을 받아 빛나는 모습을 보며, 그는 헤엄치는 청새치처럼 빠르게 지나간 6년은 그녀에게 있어 자신의 감각보다 오랜 인연이었음을 새삼스럽게 실감하게 되었다. 혀짤배기 말투로 주위의 귀여움을 사던 14살의 여자아이는, 혀짤배기 말투를 고치진 못했지만 어느 새 훌륭한 성인 여성이 되어있었다. 바닷물에 반사된 태양빛이 너무 눈부셔, 그는 고개를 숙이고 물 속 모래바닥에 갈퀴를 박았다. 바지락이 딸려 올라왔다. 그와 그녀가 만났던 것도 이 해안가였다. 심심풀이 삼아 아사리를 캐고 있던 그와 그녀가 만난 곳이다. 그때도 사람은 없었다.

 

아사리가 한가득 모였다. 다른 그릇에 아사리를 바닷물 째로 옮기고 식초를 풀었다. 조개는 해감을 잊으면 안 된다.

 

"나나미! 바지락 잡았다! 지금 해감시키는 중이니까 밥먹을 준비 해!"

 

"네에~"

 

그가 닿을 수 없을 것만 같던, 머나먼 대해원으로 떠나갔던 나나미가 갯바위 위로 돌아와 대답했다. 그는 미소지으며 갯바위로 다가갔다. 아사리 나나미가 뒷정리를 하는 동안, 그는 갯바위에서 해초를 조금 채취했다.

 

 

 

---

 

 

 

프로듀서가 석쇠 위에 올려두었던 호일을 조심스레 벗겨내었다.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꽁꽁 싸매두었던 뜨거운 쿠킹호일을 젓가락으로 찢어내고 속살을 열어제낀 순간, 양념과 함께 올라온 신선하고도 강렬한 바다의 냄새가 코 끝을 찔렀다. 신선한 해산물들이 익어가며 뿌린 내음이 공복에 지쳐있던 둘의 식욕에 불을 붙였다.

 

"조과가 생각보다 안 좋은 거에여."

 

정작,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그녀는 안타까운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입에선 침을 흘리면서도 조과가 안 좋다고 중얼거리는 건 그가 종종 봐온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타까움도 익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랑스러움이 익숙해지지 않는 것 처럼.

 

"그래? 혹시 한 마리도 못 잡았어?"

 

"손바닥보다 조금 큰 감성돔 1마리랑, 왠지 모르게 걸린 쥐노래미랑 우럭 정도에여. 원투채비로 온 것도 아닌데...."

 

그녀는 잘 안 풀린다곤 말했지만, 그는 나쁜 조과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밤낚시를 해도 한마리도 못 잡을 때도 있는데, 아침부터 지금까지 3마리라면 실망스러울 정도로 나쁜 조과는 아니다. 물론 씨알 굵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나미가 선별한 거라면 괜찮을 것이다. 프로듀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괜찮네, 그 정도면."

 

"우음..... 원하는 건 그게 아니란 말이에여~ 냠냠~ 놀래미도 우럭도 맛있긴 하지만~ 암냠냠~"

 

나나미가 큰실말과 톳을 씹으며 말했다. 프로듀서가 갯바위에서 뜯어온 해조류를 바닷물에 씻어 대충 잘라낸 다음, 식초와 미림, 간장 등으로 적당히 간을 했을 뿐인 음식이지만, 신선하고 향긋한 바다풀의 내음은 어째서인지 쳐져 있던 나나미의 마음을 다시 들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상호간에 '잘먹겠습니다' 라는 인사도 없이 뜨거운 바지락에 젓가락을 뻗어 조갯살과 국물을 맛 본 후엔, 약간 처져있던 기분은 조개 국물처럼 깔끔해졌다.

 

"그렇지! 밤낚시를 하는 거에여!"

 

"아니, 내가 힘드니까. 그리고 위험하다고."

 

낮의 바다도 위험하지만, 밤의 바다는 더더욱 위험하다. 프로듀서는 아사리 나나미와 함께 여러 곳을 다니는 동안 그 사실을 잘 알게 되었다. 그녀가 아무리 바다의 전문가라고는 하지만,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바다는 무자비하게 그녀를 쓸어갈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넓은 바다로 돌아가는 거일지도 몰라' 프로듀서는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는 육지의 인간이다. 그녀와 함께 하늘과 땅도 구분할 수 없는 칠흑을 감상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태풍주의보랑 일기예보는 항상 확인하고 있는 거에여. 그리고 안전장비도 다 챙겨왔고."

 

그녀는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장비들을 자랑하듯 보여주었다. 반팔 티 위엔 통기성이 좋은 소재로 만들어진 고급 구명조끼를 걸치고, 허리춤엔 안전고리와 안전끈을 달아 바위에 박아둔 쇠핀에 묶어 추락을 방지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어께에는 방수기능이 달린 작은 전등을 달았고, 주머니들엔 현대인의 필수품인 스마트폰 대신 여러 의약품들을 넣어두었다. 잔잔한 연안에서 빠져죽을 일은 없는 채비다. 물론 수영도 배웠다.

 

"하지만....."

 

"괜찮은 거에여~"

 

따스한 밥 위에 조갯국물과 큰실말이 흘러내렸다. 본능적으로 아이스크림을 찾게 되는 더운 여름날이지만, 밥만큼은 차갑게 식은 것 보다 따스한 것이 맛있다. 아이스크림을 찾으려 해도, 근방 몇키로미터에선 가게는 커녕 사람도 찾아볼 수 없다. 이 곳엔 오직 둘 뿐이었다. 잘 포장된 도로에서 벗어나 흙모랫길과 싸워가며 차바퀴에 겟메꽃 덩쿨이 얽혀가는 악전고투 끝에 끝이 안 보이는 바다로 나온 것이다.

 

사람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여기 있는 것은 그와 그녀, 남자와 여자 뿐.

땀 때문에 나나미의 온 몸에 쫙 달라붙은 티셔츠가, 구명조끼 뒤에 숨어 아름다운 아이돌의 몸매를 감추고 있었다. 버튼은 그의 손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었다. 그의 얼굴에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나나미도, 데뷔한 지 6년차네."

 

"벌써 그렇게 된 거에여~ 나나미, 멀리 나갈 정도로 커졌습니까?"

 

"부탁이니 옆으로 부풀진 말아라."

 

지금도 그녀를 아껴주는 팬들이, 옆으로 잔뜩 부풀어오른 나나미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망망대해보다 더 위험한 속세에 몸을 맡긴 나나미를 볼 때마다, 그는 때때로 차가운 겨울 바다보다 시린 가슴통을 느끼곤 했다. 차라리 옆으로 부풀어 바다에 떠오른다면, 적어도 헤엄치면 닿을 수 있는 곳일지도 모른다.

 

"나나미, 체중 관리 하고 있어여~ 이런 날은, 서서 낚시하는 것 만으로도 운동이 되는 거에여~"

 

"그건 그렇네. 보는 것만으로도 더워 보이더라. 괜찮아? 또 쓰러지면 안돼."

 

"프로듀서는 6년 전 일을 아직도 기억하는 거에여? 걱정이 많네여."

 

데뷔 초, 너무 무리한 나머지 쓰러진 적이 한 번 있었다. 그 때, 나나미는 별로 지친 기색을 보여주지 않았다. 괜찮다는 말과 아직 여유롭다는 말을 되풀이했고, 그는 그것을 그대로 믿어버렸다. 결국,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내려왔다고 생각한 순간, 아사리 나나미는 마치 뙈약빛 속에서 죽어가는 생선처럼 경련하며 쓰러졌다. 30분 전 까진 성공적인 무대가 될 거라며 자축을 나누던 아이는, 그것이 마지막 축배였다는 마냥 쓰러진 것이다. 질책은 생각보다 약했다. 신입 프로듀서와 갓 데뷔한 아이돌이 자신과 서로의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라는 위로까지 들어버렸다. 그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큰 성공을 거뒀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런 위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나나미는 한 번도 무리하는 듯 한 기색을 보여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후, 그녀의 상태를 체크하고 일거리를 조절하는 것은 오롯이 그의 일이 되었다.

 

".....그렇네. 괜한 잔걱정이겠지."

 

이미 오래 전에 떨쳐낸 작은 실패, 아니 실수일 뿐이다. 하지만 그의 아이돌이 망망대해를 쳐다볼 때 마다, 그는 그 때 느꼈던 그것을 언제부터인가 매번 복기하고 있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녀가 자신이 보지 못하는 어딘가의 바다를 보고 있을 때부터 그랬을 것이다.

 

"그런 거에여~"

 

나나미는 만면에 미소를 띄고선, 다시 한 번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프로듀서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묻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걸 어기고 그녀에게 한 가지를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말이야, 나나미."

 

"음냠?"

 

"왜 오늘 여기 오자고 한 거야?"

 

그때와도 같은 불안이 가시지 않는다.

 

 

 

---

 

 

 

여전히 둘 밖에 없었다. 뜨거운 태양은 변함없이 모래사장과 갯바위를 달궈 맨살을 붙이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너무 밝은 나머지, 태양이 중천에 걸렸는지 그보다 좀 더 뒤쪽에 걸렸는지 눈으로는 확인조차 할 수 없었다. 나나미가 그에게 준 낚시용 선글라스라면 태양을 볼 수 있겠지만, 그래도 눈이 멀어버릴 것 만 같은 빛을 보느니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오후 3시 반. 빛이 조금 약해질 시기다.

나나미는 여전히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일렁이는 빛무리에 눈이 멀어버려도 계속 보고 또 보고 쳐다봐서 결국 철썩이는 파도와 깊은 해류와 하나가 될 것만 같았다. 반대편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너머가, 그녀가 노리는 곳일지도 모른다. 그가 나나미를 불렀다.

 

"나나미!"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물고기 하나를 낚아올렸다. 바다와도 같은, 무자비할 정도로 푸르른 시선이 물고기를 훑고 지나갔다. 10센티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가자미가 퍼덕이며 익숙하지 않은 돌바닥 위에서 스스로의 비늘을 깎아내었다. 어쩌다가 미끼가 모래톱 쪽으로 이동한 듯 싶었다. 아사리 나나미는 어망 속에 가자미를 집어넣었다. 아까 잡은 물고기들이 들은 어망이 좀 더 비좁아졌다.

나나미는 다시 침착하게 바다를 응시하곤, 고개를 숙여 아이스박스를 열고, 다시 밑밥을 뿌리고 몸을 뒤로 젖혔다가 앞으로 당기며 낚시를 펼쳤다. 오전과는 달라진 해류에 맞춰, 밑밥의 배합을 바꾸었다. 나나미는 이 바다의 흐름을 완벽히 읽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해류에 몸을 맡기듯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바다에 잠긴 바닥엔 뾰족하게 튀어나온 돌덩어리들이 보였다. 보이지 않는 암초도 있을 것이다.

 

"어라.....?"

 

촤르르르륵, 낚시줄을 묶어놓은 릴이 끝없이 풀려간다.

 

"나나미!"

 

프로듀서가 달려나왔다. 잡고 올라가기도 마땅치 않은 깎아지를 듯 한 갯바위는, 올라가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살을 밀착시켜야 했다. 프로듀서의 손과 팔이 바위에 달라붙었다. 전어를 태우는 듯 한 냄새가 그의 코 끝을 찔렀다. 살이 타는 냄새였다. 모래바닥에 깊게 패인 불규칙한 발자국들이 첫 파도를 맞이해 약간의 흔적만 남기고 사라질 때 즈음, 그는 불그스름하게 그슬린 팔로 아사리 나나미를 잡아올렸다.

 

"프로듀..... 서? 저, 바다가...."

 

잠시 후, 갯바위 위엔 낚시도구들만 덩그러니 놓여있게 되었다. 릴 풀리는 소리도 곧 잦아들었다. 아사리 나나미를 들고 떨어지다시피하며 내려온 프로듀서는, 파라솔 그늘 안에 나나미를 뉘이자마자 다리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모래사장 위라곤 해도, 몇 미터나 되는 바위 위에서 떨어지는 건 발다리에 심각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나나미, 괜찮아?"

 

"아......"

 

뜨거운 모래 바닥에 맨살과 티셔츠를 갯지렁이처럼 질질 끌며 파라솔 그늘로 파고들어갔다. 사지가 불가사리처럼 꿈틀대는 모습을, 나나미는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완전히 파라솔 안으로 들어왔고, 상반신을 필사적으로 일으켜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프로듀서......?"

 

그리곤, 구명조끼를 벗겼다. 습기를 머금어 축축해진 구명조끼를 벗겨내자, 땀에 푹 절어버려 피부에 밀착해버린 하얀 티셔츠가 나타났다. 젖어서 투명해진 티셔츠 너머, 아사리 나나미의 신선한 살이 비쳐보인다. 이 끈적거리는 피막 같은 티셔츠를 벗기면 먹음직스러운 속살이 나올지도 모른다. 미끈거리는 생선과는 차원이 다른 매끄러움이, 자꾸 그의 손을 피막 아래의 지방층으로 유도하는 것만 같았다. 조금만 손질을 한다면, 지방층에 달린 속옷 같은 기관도 떼어낼 수 있다. 푸른색이었다.

 

"으으....."

 

그녀가 다리를 움찔거렸다. 생선의 맛을 최대로 끌어내기 위해서라면 이케시메를 해야 한다고 나나미가 이전에 말했다. 갓 잡은 생선으로 시범도 보여주었다. 뒤쪽에서부터 위쪽에 찔러넣을 뿐인, 생각보다 간단한 작업이었다. 뜨거운 여름이다, 이대로라면 선도가 떨어지고 잡것들이 묻어나온다. 자칫하다간 놓쳐버릴 지도 모른다. 이 때를 놓치면 기회가 다신 찾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에, 그가 충동적으로 손을 뻗었다.

 

"안돼....."

 

그의 손이 그녀의 가슴 위를 지나갔다. 땀에 젖은 옷이 쓸려나가고, 가슴과 손이 스쳐지나간 순간, 그녀가 신경을 찔린 생선처럼 몸을 한 차례 크게 펄떡였다. 뻐끔거리는 입조차 완전히 열려버린 채, 그 자세 그대로 꼿꼿이 얼어붙었다.

 

"정신차려."

 

그녀의 머리 위에 차가운 무언가가 떨어졌다. 머리 뿐만이 아니라 가슴에도, 배에도. 다리에도. 그녀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그녀의 몸 위에 떨어진 차가운 것의 정체는 푸른색 아이스팩이었다.

 

"프로.... 듀.... 서?"

 

"난 이거면 돼."

 

얼음물이 담긴 통을 자기 다리에 갖다대었다. 남자의 신음소리가 금백색 모래사장을 찔렀다. 그는 그녀를 등지고 있었다.

 

"일사병이야. 거기 포카리스웨트 있으니까 마시고 몸 좀 식혀둬."

 

잠시동안, 둘의 숨소리와 신음소리만이 파라솔 아래에서 들려왔다. 달콤한 음료수가 목을 타고 넘어가는 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한껏 달아오른 열기가, 아이스팩 따위로 식을 리가 없건만 둘은 그것이 열을 식혀준다고 믿는 것 마냥 열사의 바다 속에서 부질없이 냉기만을 찾고 있었다.

여전히 살아있는 것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인간이 사는 곳을 벗어나, 또 도로를 벗어난 끝에 있는 비경에 그 누군가가 들어올 리가 없었다. 문명과는 동떨어진 곳, 인간이라곤 둘이 전부인 도피처와도 같은 바다였다. 이곳만큼은, 6년 전 그가 갯바위에 홀로 서 있던 그녀를 만났던 때와 같았다. 여전히 그녀를 부르고, 이곳에서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저기, 나나미."

 

그의 뜨거운 숨소리 속에, 실날같은 이성이 느껴진다. 차가움 따위로는 가라앉지 않는 열을 어떻게든 배출하기 위해, 뜨거운 숨을 헐떡이며 말하고 있었다.

 

"난 프로듀서고, 넌 아이돌이야."

 

마치 자신에게 다짐을 받는 듯, 자신은 프로듀서라고 말하기 위해.

 

"프로듀서....."

 

"그래, 프로듀서야. 아이돌 아사리 나나미의 프로듀서."

 

단지 일 관계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하게 확인하듯 말했다. 갑작스레 흡연에 대한 욕구가 솟아올랐지만, 아사리 나나미를 위해서 담배를 끊어버린 지 오래인 그가 담배를 갖고 있을 리가 없었다. 담배 핀 손으로 미끼를 만지면, 물고기가 옮겨붙은 냄새를 맡고 다 도망간다고 그녀가 말했기 때문이었던 것을 떠올렸다.

 

"왜 여기에 오자고 했는지 아직 대답은 못 들었지만, 넌 올해로, 지금, 6년차 아이돌이야. 휴가 끝나면 팬들이랑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야지."

 

아이돌 아사리 나나미의 목소리에 열광적으로 환호하고, 아이돌 아사리 나나미의 댄스에 흥분의 도가니에 빠지고, 아이돌 아사리 나나미의 이야기에 열의와 지지를 보내는 그녀의 팬들. 휴가철에 낚시를 하러 갔다가 몸을 망쳐버렸다는 소식을 들으면 슬퍼해줄 그들이 있기에, 아사리 나나미는 아이돌로서 있을 수 있다. 아이돌 아사리 나나미가 성립하는 것이다. 그는, 아사리 나나미의 프로듀서인 자신이 그들의 성원에 등을 돌려선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럴 리 없지만, 만일 나나미가 팬들에게서 등을 돌리려 해도 그는 프로듀서로서 그것을 막을 생각이었다. 스스로도, 전혀 말도 안 되는 가능성이라고 자조하고 있었다. 어째서 자조하는지에 대해선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아이돌, 아사리 나나미라고."

 

그녀가 아이돌 일을 하면서, 대해원처럼 푸르고 시린 눈동자를 보여준 것은 첫 데뷔 무대, 그 때 뿐이었다. 대박이긴 했지만 결국엔 소소했던 데뷔 무대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그 후다. 프로듀서는, 아이돌 아사리 나나미가 그 시린 눈을, 너무 멀고 장황한 시선을 무대 위나 카메라 앞에서 보여준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다를 바라볼 때, 낚시를 할 때, 그리고 둘만이 존재하는 이곳에서.

 

".....팬의 인기라는 건, 넘칠 때는 양손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크지만 결국 양손만큼도 안 남는 거라고. 그러니까, 팬을 위해서라도....."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이 비경을 아는 것은, 그녀와 같은 심상에 조금이나마 닿아가고 싶다고 꿈꾸는 것은 그 뿐일지도 모른다. 남모르게 감춰진 해안은 6년 전과 같이 빛나고 있었다. 그 6년의 시간은, 14살 소녀의 나이를 스무 살로 끌어올리고 동시에 몸과 마음을 키우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20대의 신입사원을 30대의 문턱 앞에 끌어다놓기에 충분한 시간이었고, 그의 마음을 찌우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헤엄치는 청새치처럼 빠르게 지나간 6년은 그녀 뿐만이 아니라 그에게 있어서도 오랜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고개를 등 뒤로 돌렸다.

 

청명한 대해원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끝없는 바다가 두 눈동자에 담겼다.

석양으로 바뀌기 시작한 태잉빛이, 하늘에 연보라색을 수놓곤 맞닿은 두 입술 사이를 빠져나갔다.

 

먼저 몸을 뺀 것은 나나미였다. 그녀의 프로듀서는 건어물마냥 딱딱하게 굳어선 움직이지를 않았다.

 

"프로듀서."

 

그녀가 입을 열었다.

 

"1년 후에, 나나미는 아이돌을 관둘 거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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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갯바위에 서서 저물어가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맨눈으로 보기엔 여전히 힘들지만, 그래도 오후 내내 뜨겁게 내리찍히던 뙈약빛에 비하자면 훨씬 약했다.

 

".......오늘이,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이던가?"

 

"아마 아닐 거에여."

 

그는 자기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갯바위 위에서 떨어졌다간 목숨을 보장할 수 없으니, 그는 어찌어찌 다리에 힘을 집어넣어 쓰러지는 것 만큼은 면했다.

 

"하지만, 이제부터 중요한 날이 될 거에여."

 

그녀는 돌바닥에 있던 낚싯대를 쥐어들었다. 밑밥은 이미 저 멀리로 흩어졌고, 낙시줄은 풀릴 대로 풀려 봉돌이랑 미끼를 바다 밑바닥에 쳐박았을 게 분명했다. 중간에 돌이나 해초, 혹은 불가사리에게 걸리지 않기를 바라며 그녀가 줄을 감기 시작했다. 성급하지 않고, 느긋하게. 차분한 그녀의 성격을 나타내듯.

 

"중요한 날?"

 

그가 되물었다. 나나미의 손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몰라서 물어여?"

 

나나미의 질책 어린 목소리에, 그는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붉어진 건 석양빛 때문이라고 믿고 싶지만, 점점 빨라지는 나나미의 손놀림은 거짓말과 침묵을 쫓아내며 대답을 재촉해왔다. 석양이 바다 너머로 가라앉아가고 있었다. 벌써 태양의 반 이상이 바다 밑으로 잠겨버렸다. 가라앉은 태양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남겨진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여긴 원래 나나미의 비밀장소였어여."

 

연보라빛 하늘이 군청색에게 영역을 내주기 시작했다.

 

"여기서 낚시도 하고, 조개도 잡고.... 학교도 즐거웠지만, 나나미는 그래도 여기가 가장 좋았어여."

 

입을 여는 대신, 그는 나나미의 말을 조용히 경청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로듀서.... 당신이 찾아온 거에여. 당신은 나나미에게 사람의 바다를 보러 가자고 말했어여."

 

6년 전. 길을 잃고 헤메다 비경으로 들어온 그는, 홀로 갯바위 위에 서 있던 소녀에게 등 뒤에서 말을 걸고 명함을 건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는 등을 돌려 자신을 바라본 14살 소녀의 바다를 스카웃해온 것이었다.

 

"나나미는, 사람의 바다를 처음 봤어여. 나나미가 모르던 바다였고, 지금도 잘 모르겠어여. 가끔씩, 프로듀서마저 가져갈까 봐 불안해져여. 하지만 즐거워여. 당신과 제 바다가 겹쳐져서, 진정한 대해원이 되어가는 게."

 

6년의 시간을 거쳐, 소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 때와 같은, 하지만 훨씬 더 넓고 커진 바다가 서로의 눈동자를 통해 만나 섞여들어갔다. 그 때의 그와 그녀가 아니었고, 더 커진 바다의 댐이 폭풍우가 일듯 터져 섞여나가듯 서로의 감정을 뒤섞어 새로운 바다를 만들었다.

 

"나나미라는 이름은, 일곱 개의 큰 바다를 누비라고 할아버지가 붙여주신 이름이에여. 7년이 되는 날, 전 지금까지 모르던 큰 바다로 더 나아갈 거에여. 당신이랑 함께.

따라와줄 거에여?"

 

바다가, 청명하고 온화하고 시리도록 불안한 바다가 웃어주었다.

 

그와 그녀가 다가왔다. 서로의 몸이 달라붙었고, 그가 그녀를 꽈악 붙잡았다. 그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자, 그녀가 살며시 비음을 흘리며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기울여, 깊숙히 찌르는 듯 한 키스를 위해 서로가 다가선다. 나나미, 나나미, 6년 동안 쌓여온 그녀의 존재를 계속 속삭이듯 부르며 입술이 다가선 순간, 목소리가 멈추었다.

6년 동안, 너무 느긋하게 흐르던 둘의 사랑이 격렬하게 서로를 요구하였다.

 

 

낚싯대게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둘은 입술을 떼고, 함께 웃으며 함께 낚싯대를 잡았다.

 

 

 

---

 

 

 

1미터짜리 부시리와 60센티미터짜리 돌돔을 잡은 시점에서, 해가 완전히 저물어버렸기 때문에 둘은 낚시대를 걷고 파라솔로 돌아왔다.

 

"손질 다 끝났어여~"

 

"수고했어. 여기 올려줘."

 

구이용 성형탄이 달궈놓은 석쇠 위에, 큼지막한 부시리의 머리가 올라갔다. 1미터가 넘는 붉은살생선이 머리만 남아선 그릴 위에서 익어가며 좋은 냄새를 풍기자, 둘의 입가에 동시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 옆에선 부시리 내장과 척추뼈가 들어간 맑은탕이 끓고 있었다. 양념 대용으로 챙겨온 파와 양파, 그리고 근처에서 조달해온 먹을 수 있는 야생초들을 조미료와 함께 적당히 집어넣은 물건이지만, 그 맛만큼은 일품이었다.

 

"감성돔은 다 구웠어여?"

 

"거의 다 돼가. 그나저나 이걸 구이로 먹어도 되는 건지...."

 

"돌돔이랑 부시리를 나중에 회로 먹을 거니까 괜찮아여~"

 

"부시리랑 방어랑 다른 거야? 난 차이를 모르겠던데......"

 

"입 모양이 달라여. 그리고, 일본의 여름은 출세할만한 계절이 아니에여. 방어는, 나중에 겨울이 되었을 때 다시 여기서......."

 

나나미는 부끄러운 듯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나미가 있다면 어떠한 바다라도 헤쳐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그도 무심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은하수가 소리없이 흐르는 밤이었다.

 

"아, 여기 놀래미회랑 우럭회랑 가자미회에여~"

 

침묵 끝에, 나나미가 회를 가지고 나왔다. 조금 작은 생선들을 뼈째 썰어 만든 회가 나왔다. 생선구이와 맑은탕이 완성되기 전에 먹는 전채 요리라는 느낌이었다. 회를 전채로 먹는 사치를 부리고 있건만, 척추뼈가 오독거리며 씹히는 감촉이 느껴질 때 마다, 그는 방금 전에 그녀가 생선을 손질하던 장면을 떠올렸다.

 

"설마 생선의 미간에 철사를 꽂아넣을 줄은 몰랐어........"

 

생선의 미간에 송곳을 꽂아 넣은 다음 빈 공간을 만들곤, 그 속으로 철사를 쑤셔박았다. 길쭉한 스테인리스 철사가 척추를 따라 끝까지 박히자, 나나미는 철사의 끄트머리를 잡고 앞뒤로 흔들어 척추의 신경을 완전히 파괴해버렸다. 신경 물질을 과다분비시켜서 부패를 막는 기술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철사가 꽃히는 순간 입을 쩍 벌리고 아가미와 입에서 피를 토해내며, 생선 눈동자가 철사의 움직임에 맞춰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는 장면은 역시 그냥 참고 보기는 좀 힘들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숙성회는 못 먹는 거에여. 내일 저녁까지 아이스박스에서 숙성시키고, 돌아가서 맛있게 먹는 거에여."

 

정작 나나미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선을 해체하고 내장을 들어내면서 기대감에 눈을 반짝였지만. 물론 그 역시 나나미가 만들어주는 생선회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기대하고 있었다.

 

"여러가지로 인내심을 요구하는 사치구만......."

 

그는 자조하듯 말하곤 소주를 꺼냈다. 근처의 양조장에서 증류한 독한 물건이다. 그와 그녀가 서로에게 술을 따라주고, 갓 손질한 돌돔의 쓸개를에서 즙을 짜내 서로의 술에 뿌렸다. 투명무색의 맑은 술이 순식간에 압생트보다 강렬한 녹색으로 물들었다. 쓸개즙이 술을 전부 물들이자, 둘은 아무런 신호도 없이 서로의 술잔을 부딛혔다. 쨍, 하는 소리와 함께 40도를 넘나드는 뜨거운 술이 둘의 목을 타고 넘어갔다.

 

"크으....."

 

누가 낸 소리인지는 모르나, 직후에 둘이 동시에 웃은 것은 확실했다. 녹색 술 안에 달빛이 떠올랐다. 둘은 다시 한 번 달을 삼켰다. 전체 요리인 세꼬시 회를 다 먹었을 때 즈음, 잘 익은 새 안주들이 나왔다. 버터를 바른 서양식 도미구이와 야생초를 넣은 일본식 나베요리,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을 법한 생선 머리 구이.

나나미가 잡아올린 생선이, 그의 손을 거쳐 맛있는 요리로 재탄생하였다. 나나미가 원했던 대로, 공복 대신 애정이 최고의 조미료가 되었다. 서로의 애정으로 배를 채운 둘이, 부끄러운 듯 서로를 마주보았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서로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 끝없이 넓어진 밤바다가 조금 거칠어진다.

 

 

기분좋은 취기, 맛있는 요리, 무엇보다 서로간의 애정.

보는 이는 아무도 없는 조용한 밤의 비경 속, 약간 거칠어진 해조음이 마치 두 남녀처럼 바다를 조용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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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니까 살 것 같구나! 으하하하하하하! 

 

 

실버메탈은 건전한 작가입니다. 그렇고 그런 어른의 관계는 보여주지 않아요. 엣찌나노와 다메데스!

.......에? 이 뒤가 보고 싶다고요? 꼬노 헨타이! 도헨타이! 헨타이따렌!

 

요즘 시국이 시국이니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이건 플라토닉이라고요. 프로듀서, 플라토닉이에요 플라토닉!

그리고 전 독자 여러분들을 아끼며 건전함을 추구하는 작가입니다. 실버메탈은 건전한 작가이며 외설은 일절 없다. 알겠지?

 

아무튼 그런 느낌으로 로맨스 비스무리한 걸 싸내서 오늘도 아이커뮤에 쓸데없는 트래픽 부과를 일으켰습니다.

......아니 일단 남녀간의 로맨스라는 느낌으로 썻는데 이걸로 괜찮을지 잘 모르겠네요. 사실 로맨스랑은 영 거리가 먼 취향에 로맨스랑은 관계 없던 인생이어서 말이죠. ASKY! 

 

게다가 이거 쓰고 보니 조행기 먹방이 되어버린 느낌. 낚시 채비에 대한 건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넘기긴 했지만, 정작 먹을거리에서... 크으... 자연산 부시리는 1미터급이여도 아주 귀하거나 비싸진 않으니 그렇다치고 자연산 돌돔..... 참고로 이 돌돔은 60센티급. 60센티급 자연산 돌돔은 관측 최고치에 근접한 수준이고, 가격은...... 싯가.

참고로 남은 돌돔 내장은 불로 겉을 살짝 익혀서 먹었고 뼈랑 머리는 다시 한 번 국물을 우려내서 먹었습니다. 부럽다!

 

나나미는 처음엔 그냥 대물낚시광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애가 의외로 차분하더라고요. 그래서 한층 성숙하고 차분한 멋을 강조하기 위해 이름의 의미를 적당히 스까서 스무살로 올렸습니다. 그리고 여기 나오는 프로듀서는 로리콘이 아닙니다. 평범한 키잡러입니다. 아니지, 이 경우는 역키잡인가? 아무튼 건전한 작가랑은 다르군요. 전 건전하다고요.

그리고 마이너한 캐릭터들은 뭐라고 해야 할까, 공식이나 2차창작에서 깊이있고 입체적인 모습을 찾기가 힘들더라고요. 이번에 쓴 건 약 빤 물건도 아닌 만큼, 결국 입맛대로 재해석을 했습니다.

 

그럼 이만 줄입니다. 로맨스라고 일단은 어찌어찌 써봤는데 제대로 로맨스 느낌이 날지는 잘 모르겠네요. 시간 내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마마유땅으로 로맨스물을 쓰고 싶었지만 가능한 한 잘 쓰고 싶고 조금이라도 잘 쓸거면 밑준비에만 2주일이 넘게 소모될 것 같아서 못하고 있습니다. 마리 유키코님 제게 힘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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