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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카「나 말야, 너를, 만나러 왔어」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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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07, 2016 20:58에 작성됨.

전편

하루카「나 말야, 765 프로덕션이라는 곳에서… 아이돌을 하고 있어」

하루카「나 말야, 너를, 만나러 왔어」 - 1

하루카「나 말야, 너를, 만나러 왔어」 - 2

 

 

이유를 알 수 없다.
아마미 하루카는 강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마침내 아이돌이 되었다. 비록 견습생이라는,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칭호가 붙어 있는 반쪽짜리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바라던 것을 이뤘다. 정말로 765 프로덕션 소속의 아이돌 중 한 명이 된 것이다. 목표를 달성했으니 이제 됐다. 됐잖아. 그런데 왜.


「왜냐니, 하루카. 네가 제일 잘 알잖아.」


그 아이, 가, 말을 걸어온다.


「그 때, 나한테 말했었잖아. 기억나지 않는 걸까?」


왜? 이제 아이돌이 됐어. 정말로 아이돌이 됐는데, 왜?


「무서워. 가지 마. 가지 마, 라고. 그래서 가지 않았어.」


그렇다. 그 아이는 치하야. 키사라기 치하야. 나의 최고의 친구. 둘도 없이 가까운 동료.


「네 옆에 있을게. 그걸 원했잖아. 그렇지? 하루카.」


그 목소리는 키사라기 치하야가,
아냐.


뒤집어쓴 이불을 쥔 손에 힘을 넣었다. 더욱, 숨이 막힐 정도로 강하게 이불을 눌렀다. 답답하다. 그래도 상관없다. 이불 안에 틀어박힌다. 저 목소리를 피하기 위해서, 내가 지금 혼자뿐이라는 사실을 흔들림 없이 인식하기 위해서. 무섭다. 너무나 무섭다. 달아나고 싶다. 그렇게 바란 직후 그것이 모순임을 자각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는 달아날 수 없으니까.
그 아이들은 분명, 이루지 못한 소망의 현신이었다. 제멋대로 자아낸 헛된 인형들과 어울려 벌이는 꼴사나운 인형극. 그것을 깨달았고, 그렇기에 그만두었다. 그만두기로 했다. 그런데 사라지지 않는다. 내 안에서만 존재하는데도, 동시에 나에게 속해 있지 않다. 하루카는 강하게 실감했다.
이상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보기 흉한 주인을 버리고 먼저 등을 돌린 것은 인형들이다. 그런데, 납득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웠던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서 놀이의 끝을 고했는데도─ 그것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떠났다고 생각했는데도, 그 아이들이 귓가에 조롱과 저주를 속삭이며 계속해서 곁을 맴돌고 있다.
이래서야 흔한 괴담 같지 않은가.


어쩌면 난,
미쳐 버린 것일지도 몰라.


눈가에 눈물이 고여 뺨 위를 흘러내렸다. 이불을 눈물로 적시며,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막기 위해 딱딱 부딪치는 이를 억지로 악물고서 하루카는 사무치는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다.
공포만으로 쉬어버린 목으로부터 가느다란 속삭임이 흘러나왔다.


「…… 미안해, 치하야. 미안해… 잘못했으니까, 이제…」


「…… 용서해 줘……」


고요. 정적. 그리고,
속삭임.

 


「────싫어」

 

 


아아.


밤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

 

 

「에─… 그건 좀 그렇지 않나 싶은데, 이오리. 무턱대고 사람을 험담하는 건…」
「따, 딱히 험담하려는 건 아냐! 아니지만… 글쎄, 뭐라고 설명해야 하려나」


팔짱을 낀 이오리가 으으, 하고 낮게 신음했다. 왼팔에 앙증맞은 토끼 인형을 걸고 있는 탓에 묘하게도 무거운 그림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찌푸린 미간에서는 적지 않은 고뇌가 느껴졌다. 솔직히 아무런 죄도 없는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지어도 괜찮을 만한 표정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치하야는 마음 한 구석에서 이오리를 이해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것이리라. 치하야 자신부터가, '그 애'를 소개하면서 상쾌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자신조차도 조금 한심스러웠다. 치하야는 이유 모를 초조감에 이어폰 선을 검지에 돌돌 감기 시작했다.


「… 기분 나빠. 역시 그 말밖에 할 게 없다구」
「… 뭐, 이오리가 기분 나빠하는 건 세상에 얼마든지 있을 테니 이해는 가긴 하는데」
「키잇! 뭐야, 마코토! 사람 무시하는 거야!?」
「두, 둘 다, 싸우는 건 안 돼…」


이오리와 마코토가 사소한 일로 투닥대는 것은 꽤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둘을 말리기 위해 쩔쩔매고 있는 유키호가 평소보다 더 곤란해 보이는 것은 마냥 착각 때문은 아닐 것이다. 마코토와 유키호는 아직 그 애를 만나보지 못했다. 어제 사무소에 돌연히 찾아와, 느닷없이 견습생으로 공표되어, 홀연히 사라져 버린 그 애. 아마 별 일이 없다면 오늘부터 사무소에 나올 것이 틀림없었다. 새로운 동료가 들어왔다는 말에 반색하며 어떤 아이냐고 물어 온 두 사람에게 이오리가 보인 반응이라는 것이, '저랬다'. 누구라도 동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나세 이오리가 비록 자존심이 강한데다 약간은 사교성이 부족할지언정 인품을 갖추지 못한 아이는 아니라는 것 정도는 마코토도 알고 있다. 그런 이오리가 그저 단편적인 인상만으로─아이러니하게도, 그 짧고 강렬한 만남에서 단편적인 인상 이상의 무언가를 쌓을 수 있었을 리도 없었지만─누군가를 무턱대고 흉볼 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신뢰할 수도 없겠지만, 분명 이오리가 저렇게까지 말하게 만든 모종의 이유 정도는 있을 터다. 마코토는 아마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치하야는 예상했다.


「아~, 진짜! 직접 보는 게 제일 간단할 거 아냐! 그 녀석은 왜 안 오는 거야, 벌써 이런 시간인데!」
「그 녀석은 또 뭐야! 아직 얘기도 안 해봤다고 했었잖아, 실례라고!」
「상관없잖아, 듣고 있는 것도 아닌데!」
「저, 저어… 아직 안 온 사람들도 많고, 좀 더 기다려 보는 게 좋지 않을까…」


특별히 더 들을 이유도 없을 것 같아 치하야는 빼고 있었던 한 쪽 이어폰을 다시 귀에 꽂았다. 순식간에 주변의 소음은 지워지고 귀 안이 음악으로 가득 찼다. 치하야에게 주어진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고 한다면, 분명 이런 모습이겠지. 추상적인 소리만으로 모습을 논할 수 있는 것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치하야는 눈을 감고 음악에 집중하기로 했다. 방금 전까지 이오리의 사교성에 대한 것을 생각했었지만, 이래서야 자신에게 사교성을 논할 자격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 역시도 아무래도 좋았다. 노래를 듣고, 부른다. 치하야에겐 그거면 충분했으니까.


옆머리를 귀 뒤로 쓸어넘긴 자세 그대로 음악을 듣기 시작한 지 몇 분 정도가 지났을까. 문득 치하야는 위화감을 눈치챘다. 이어폰은 분명 주변의 잡음을 차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대화를 나누는 소리 정도는 미약하나마 새어들어오게 된다. 그것이 없었다. 마코토와 유키호와 이오리가 말하던 소리가, 완전히 뚝 끊겨 있었다.
치고받던 두 사람이 마침내 지치기라도 한 것일까. 치하야는 별 생각 없이 한 쪽 이어폰을 빼낸 후 눈을 떴고, 그렇기에 다른 아이들이 목격한 것을 한 발 늦게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이오리도, 마코토도, 유키호도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묘한 표정이다. 굳어 있다고 설명하는 것이 가장 정확할까. 이윽고 세 사람의 시선이 모두 출입문 쪽을 향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치하야는 마찬가지로 문으로 시선을 돌렸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 애다.


'견습생'─아마미 하루카가 문을 열고 사무소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어제 보았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수수하면서도 매력을 살린 귀여운 옷차림이다. 한 쌍의 새빨간 리본도 여전하다. 그리고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무참하게 가라앉아 있는, 생기라곤 느껴지지 않는 눈 역시도. 한 가지만은 어제와 달랐다. 눈가가 약간 부어 있는데다 잠을 심하게 설쳤는지 눈 밑이 눈에 띄게 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할 말을 잃었는지 선 채로 멍하니 굳어 버린 세 사람을 흘깃 바라보더니, 하루카는 한 차례 몸을 움찔했다. 무엇에 놀라기라도 한 것 같다. TV로만 봤던 아이돌들을 직접 만났기 떄문, 이라는 것은 지나치게 느긋한 추측일까. 불안한 걸음걸이로 터벅터벅 걸어들어온 하루카는 소파 한 구석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자신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는 네 명을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빙 둘러보았다. 그 시선이 일순 치하야에게 머물렀다. 실로 한순간이었지만, 치하야는 그 잠깐 동안에 하루카의 눈에 어렸던 어렴풋한 공포를 분명히 읽어냈다.
─이걸로, 모두들 이해했겠지.
치하야는 그렇게 확신했다.


마코토는 과연 용감한 아이였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분위기 속, 누구도 먼저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가장 먼저 하루카에게 다가가 말을 건넨 것은 마코토였다.


「아~… 그러니까, 그… 네, 네가 걔구나? 우리 사무소에 어제 들어왔다는 애, 맞지?」
「……」
「… 아, 아하하. 조금, 그… 쑥스럽네. 이름이, 그러니까…… 으음」


이오리로부터 들은 이름이라곤 '아마미 뭐라던가' 정도였기 때문에 마코토는 하루카의 이름을 알고 있지 못했다. 더듬더듬 말하던 마코토는 도움을 요청하듯 이오리 쪽을 돌아보았지만 이오리는 눈을 내리깔고 있을 뿐이었다. 특별히 피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똑바로 마주하기가 부담스러웠을 뿐이겠지. 보다 못한 치하야가 대신해서 간략하게나마 소개해 주려고 했을 때였다.


「… 아마미 하루카예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하루카가 대답했다. 반응이 돌아온 것이 기뻤는지 마코토는 금새 화색이 되었다.


「하루카란 말이지? 헤헷, 난 키쿠치 마코토고, 여기는 하기와라 유키호야! 저기 있는 애는… 뭐, 어제 봤겠지? 저쪽에 앉아 있는 치하야도 그렇고」
「……」


하루카는 말없이 끄덕, 하고 고개를 움직여 대답을 대신했다. 시선을 피하던 이오리가 그제서야 마코토를 흘깃 쏘아보았다. 소개를 대충 넘겨 버린 것이 분했던 모양이다. 치하야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아마 이 중에서 하루카와 이야기를 나눠 본 사람이라곤 치하야밖에 없을 테고, 그런 이상 소개가 더 필요할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 흥. 얼굴이야 어제 봤겠지만, 이름은 모른다구. 제대로 소개하란 말야」
「뭐야, 이오리. 어차피 하루카랑은 별로 안 친해지고 싶은 거 아니었어?」
「뭣…!? 누, 누누누가 그런 소리…! 마코토, 너 진짜!」
「헤헹,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뭐」


분개하는 이오리를 적당히 상대하던 마코토는, 문득 시선을 느끼고 하루카 쪽을 내려다보았다. 언제부터였는지 신기한 것이라도 보듯이 하루카가 마코토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여전히 음울하게 가라앉은 눈이었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것은 이번엔 공포만이 아니었다. 치하야는 그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일찍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 어, 얼굴에 뭐라도 묻었… 어?」
「……」


당황한 눈치인 마코토에게 하루카는 그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아주 약간이나마 인간적인 모습을 마주했기 때문일까. 세 사람은 아느 정도 긴장이 풀린 듯 했다. 마코토가 특유의 쾌활한 웃음과 함께 손을 내밀었다.


「그럼, 정식으로 잘 부탁할게, 하루카! 마코토라고 부르면 돼!」
「아…」


내밀어진 손이 어떻게 보였던 것인지 빤히 바라보기만 하던 하루카는, 슬슬 마코토가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걱정되기 시작했을 즈음에 스르륵 손을 내밀어 마주잡았다. 유키호는 안심했다는 듯 엷은 미소를 띄우고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오리만은 어딘가 석연치 않은지 딴청을 부리고 있었지만, 딱딱하게 경직된 분위기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어찌어찌 잘 해결되었다─고 봐도 좋을까.

치하야는 다시 이어폰을 끼웠다.

 

***

 

─그대로다.
─다르다.
─그대로다.
─아니, 다르다.
─무엇이?
─당연하다. 그건.


「… 저어, 아마미… 씨?」


하루카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옆자리에서 밝은 갈색의 단발을 한 유약한 인상의 소녀가 걱정스러운 듯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언제부터 말하고 있었을까. 오래 전부터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엷은 초조함을 느끼며 하루카는 서둘러 답했다.


「아, 그, 네…」
「괜찮아? 혹시 많이 긴장한 거야…? 힘들어 보여」
「아뇨… 괜찮아요. 힘들지 않아요」
「그… 그래? 다행이다아. 아마미 씨가 긴장해 버리면, 그, 나까지… 긴장해 버릴 것 같아서. 에헤헤…」


터무니없이 선량해 보이는 웃음이다. 하루카는 그렇게 생각했다. 역시 그대로다. 무엇이 그대로냐고 한다면, 765 프로덕션에 찾아오기 전까지 '상상하고' 있었던─ 그 인상 그대로다. 하지만 다르다. 무엇이 다르냐고 한다면, 때를 가리지 않고 주위를 '맴돌며'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디찬 조소를 날리는─ 그 하기와라 유키호와는 완전히 다르다.
어느 쪽이 진짜인가, 같은 질문은 무의미할 것이다. 정답이 너무나도 극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라는 개인에게 있어선, 어느 쪽이든 진짜인 것이 아닐까.


좋지 않다. 하루카는 실없는 공상을 쫓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튼 아이돌의 일을 배우기 위해, 유키호의 영업 현장을 견학하러 가는 것이다. 똑바로 정신을 차려야만 한다. 유키호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웃음을 지어 보이려 했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결국 편한 것인지 불편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표정밖에 지을 수 없었다.


「저, 있지, 아마미 씨…?」
「… 네」
「그게, 있잖아? 역시 아마미 씨라고 부르는 건… 조금, 불편… 하지?」
「…..」


뭐라고도 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한 하루카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하루카라기보다는 아마 유키호 자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아마미 씨, 라는 호칭을 입 밖으로 낼 때마다 타인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자신의 소심함을 떠올리게 될 테니까. 하루카로서는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생각이었지만, 동료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는 말을 사장으로부터 들었던 것도 같았다. 그렇다면 유키호가 바라는 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루카는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돌려줄 말을 고민하던 하루카는, 그러나 별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유키호 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 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저기… 나도 마코토처럼… 하루카라고 불러도, 괜찮을까?」
「……」
「그… 다, 당연히 아마미 씨도 날 유키호라고 불러도 괜찮아! 싫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괜찮아요」


간결한 대답이었지만, 그렇기에 쌀쌀맞게 들리지 않도록 조심했다. 긍정이 돌아오자 유키호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고, 고마워…! 그러면 앞으로 잘 부탁할게, 하루카…! 후후」
「… 응. 잘 부탁해, 유키호」


대화 도중에도 하루카는 어딘가 현실감이 없다고 느꼈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이었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해야겠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때의 '관계'는 이런 단계조차 없이 무턱대고 시작되었을 텐데도.
어째서,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을까.


「유키호, 하루카! 이제 거의 다 와 가. 상태는 괜찮지?」
「아, 네! 괜찮아요, 프로듀서」


「…… 읏!」


앞에서 차를 운전하던 프로듀서가 몸을 돌려 질문했다.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몸이 경련헀다. 숨이 가쁘다. 시선을 맞출 수 없다. 사무소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를 떠올린다. 나쁜 인상 따윈 없었다. 양복이 잘 어울리는 말끔한 인상의 청년. 이야기는 사장님에게 드었다며 하루카에게 다가와 쾌히 악수를 청하는 그의 손을, 하루카는 맞잡지 못했다. 고의는 아니었다. 그저 손을 내뻗을 수 없었다. 그뿐이었다. 악수에 응해야 할 손은, 파르르 떨며 애꿎은 스커트 자락만을 애처로울 정도의 힘으로 움켜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계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이래선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어쩔 수가 없다.
곤란하다. 양복은 곤란하다. 남성은 곤란하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 괜, 찮, 아요」


겨우겨우 입을 떼어 대답했다. 분명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을 것이다. 프로듀서는 아주 약간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유키호가 뭔가 말하고 있다. 하루카는 그것을 들으려고 노력했다.


「괘, 괜찮아, 하루카? 역시 프로듀서가 어려운 거야…?」
「……」
「저기,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도 이해해. 그게, 부끄럽지만… 나도 남자는 아무래도 어려워서… 무섭다고도, 할 수 있을지도…」
「……」
「그치만 지금은 프로듀서라면 괜찮아. 그러니까, 나도 해낼 수 있었으니까… 하루카도 금방 익숙해질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안심해, 응?」

 


「건방지다고 생각하지?」


안 돼.
귀를 틀어막고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대화를 내누었던 부드러운 목소리. 하기와라 유키호의 목소리. 그만해. 하지 마. 부탁이야.


「진짜로 남자가 무서워질 만한 일은, 겪어 보지도 못한 주제에─ 잘난 듯이 아는 체나 하고」


아니야.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 하지 않았어. 사라져.


「생각한 그대로 말해 버려, 하루카. 겪은 일을 이야기해 줘. 지금도 기억나지?」


귓가에 속삭여 온다. 하기와라 유키호다. 그렇지 않다. 알고 있다. 관계없다. 왜냐면. 똑같. 은걸.


「그 폐건물에서」

 

아아. 아아아. 아아아아아아.
그 콘크리트 바닥이, 폐자재가, 보기 흉한 철골들이, 눈앞으로 밀려와
안 돼, 그만
겪지 않았어─


「────윽!! …… 하앗, …… 하아, …… 하아……!!」
「하… 하루카!? 괜찮은 거야, 하루카? 정신 차려…!」


숨을 몰아쉬며, 공포에 잠식되려는 의식을 필사적으로 붙잡아, 하루카는 자신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힘겹게 옆을 돌아보면 보이는 것은 하기와라 유키호다.
아아, 틀림없다. 방금까지 대화하고 있었던 유키호다. 그렇게 생각한 하루카는 손을 뻗었다.


「… 유키…… 호」


유키호가 손을 맞잡아 주었다. 됐다. 이젠 없어. 안도했을 때였다.


씨익, 하고.
유키호가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꼴 좋네, 하루카」

 

 

그럴 리가 없는데.

 

 

「좋은 일 같은 건 없을 거라고─ 말했는데」

 

 

 

 

무리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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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방에서 연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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