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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치바나 아리스 "학업을 이유로 아이돌 활동에 휴식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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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29, 2016 13:45에 작성됨.

타치바나 아리스 "학업을 이유로 아이돌 활동에 휴식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 애니로부터 5~6년 이후입니다.  

(지적된 부분 수정했습니다. 미리아>리카)

 

원고를 읽어나가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아니 정정하자, 이번 원고를 읽어나가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아리스는 반짝거리는 카메라들 앞에서 태블릿을 들고, 적어 온 원고를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또박또박 읽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저에게 보내주신 많은 관심에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저 타치바나 아리스는 오늘부로 잠시 휴식기를 가지고자 합니다..."

 

태블릿의 하얀 바탕과 대비되는 검은 글자들. 평소에 자주 하는 촬영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드라마 촬영에 앞선 인터뷰나, 혹은 음반 후 음악방송에 나가서 하는 발표들. 매일같이 한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한 번도 해본 적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아리스는 목소리를 다시 가다듬었다. 태블릿 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글자들은 이제 절반이 지나갔을 뿐이었다. 아리스는 잠시 헛기침을 했다. 콜록. 아리스는 고개를 들었다. 저 카메라 뒤의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팬들은? 실망할까? 응원할까? 생각이 핑그르르 도는 와중에도, 입은 한 줄씩, 한 줄씩, 쓰여진 원고를 읽어 나갈 뿐이었다.

 

"복귀 시점은...미정입니다. 그럼, 감사합니다."

 

아리스는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고등학생이 된 자신은, 이제 초등학생 때와는 다르게 받침대에 서지 않고서도 마이크에 대고 말하는 대에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아리스는 깊게 고개를 숙였다. 환한 플래시가 터져나왔다. 아마 저기 찍힌 사진들 중 일부는 기사 사진이나, 심하면 내일 연예신문 1면에 실리겠지. 또 수많은 억측기사가 실릴 것이다. 물론 아리스는 볼 생각이 없지만. 아리스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질문 몇 개를 미소와 함께 대답하자, 시간이 다 지났는지 기자들이 흩어지고 있었다. 아리스는 연단을 내려와 무대 뒤로 향했다.

 

"수고했습니다. 타치바나 양"
"...항상 고맙습니다. 프로듀서."

 

의자에 주저앉자, 검은 양복의 사나이가 생수병과 시원한 수건을 내밀었다. 아리스는 손을 뻗어 생수병부터 잡았다. 이상하게 목이 말랐다. 아리스는 물병 한 통을 숨쉴 틈 없이 통째로 비워냈다. 눈을 감고, 목으로 시원한 물이 넘어가는 감촉만이 아리스를 자극했다.

 

"지금까지 수고하셨습니다, 타치바나 씨."

 

아리스는 눈을 떴다. 그녀의 눈에는, 목 뒤를 손으로 문지르는 프로듀서가 보였다. 처음 볼때와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항상 비슷한 정장을 입고 당황하거나 쑥스러워 할 때면 저런 버릇을 연발하면서, 잘 웃지 않고, 하지만 노력하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아리스의 프로듀서. 아리스는 픽 하고 웃어버렸다. 어릴 때, '타치바나라고 불러주세요' 라고 말한 말을 지금까지 지켜온 프로듀서. 아리스는 프로듀서의 왼쪽 네 번째 손가락을 보았다. 등불에 비친, 작은 은색 선이 손가락을 두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프로듀서."
"감사합니다."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이미 할 말은 다 했다. 이 결정이 충동적인 것도 아니었다. 아니, 복귀 시점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충분히 충동적인가? 아리스는 복잡해지는 머리를 감추기 위해 가방에 태블릿을 반쯤 쑤셔넣었다. 아리스는 가방을 어깨에 걸쳤다. 더 이상의 일정은 없었다.

 

"데려다 드릴까요?"
"괜찮아요."

 

프로듀서가 아리스 대신 버튼을 눌렀다. 아리스는 픽 하고 웃어버렸다. 이런 말없는 배려는, 프로듀서의 주특기였다. 아리스가 프로듀서와 만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프로듀서는 한 번도 본인의 성격을 위조한 적이 없었다. 너무나 솔직하고 한결같은 남자.

 

"그럼,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연락드릴께요."
"복귀하고 싶으시면...연락 부탁 드립니다."
"네, 당연하죠."

 

프로듀서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엘리베이터 종 소리가 울렸다. 프로듀서는, 조용히 두 손을 내밀었다.

 

"명함, 간직해 주시겠습니까?"

 

짧은 순간. 석양이 비추는 고층 빌딩에서, 빛의 폭류 아래서, 과거의 그 남자가 겹쳐보였다. 아리스는 말을 잃고 명함을 받아들었다.

 

"네..."

 

작은 목소리와 함께. 아리스의 끄덕거림을 마지막으로.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문이 닫힘과 동시에, 타치바나 아리스는, 오늘로서 아이돌 일을 그만두었다.

 

 

"일어나!"

 

스마트폰의 벨소리가 아리스의 귀를 시끄럽게 자극했다. 전화와 문자가 시끄러워서 모든 알람을 무음으로 설정했지만, 알람은 미처 까먹었는지 스스로의 존재감을 화려하게 울리고 있었다. 아리스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오전 7시 30분? 어제가 금요일이었으니 아마 오늘은 토요일. 학교랑은 관계 없는 날이었다. 아리스는 침대 위에 앉아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스마트폰의 바탕화면을 장식하고 있는 '오늘의 일정'란은, 텅 비어 있었다.

 

"...졸려."

 

푹 자고 싶을 때까지 자 본건 오랜만이었다. 평일에는 학교, 주말에는 촬영. 비는 날은 트레이닝. 학교와 아이돌 일을 병행하는건 아리스마저도 지치게 만들었다. 오늘은 적어도 푹 자도 될 것이다. 아리스는 이불에 파묻혔다. 잠시 후 다시 조용해진 방에는, 흰 이불 위에 분홍색 딸기 파자마를 입은 소녀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쌕쌕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리스가 두 번째로 깬 건 약 다섯 시간 후인 12시 30분이었다. 아리스는 2층의 방 문을 열었다. 집안은 휴일이지만, 평일과 같이 인기척은 없었다. 아리스는 한 손에 스마트폰을 쥔 채로 방을 나왔다. 아리스는 아래로 내려와 무의식적으로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부엌의 싱크대는 물기의 흔적조차 없이 깨끗했다. 전기 레인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리스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가사도우미가 왔다간 것이 어제. 다행스럽게도 어제 저녁에 밥을 해놨으니 반찬만 좀 뜨면 될 것이었다. 그렇게 결정한 아리스는 샤워실로 향했다.

 

'머리카락을 잘라볼까'

 

긴 머리를 말리면서, 아리스는 생각했다. 초등학교 때 어깨를 살짝 간지르던 머리카락은, 이제 어깨를 지나 허리의 절반 정도까지 닿을 정도로 길어져 있었다. 아리스는 머리카락을 어깨 앞으로 돌려 쓰다듬었다.

 

'언니처럼 짧은 머리도 좋으려나?'

 

후미카 언니는 의외로 앞머리가 긴 것에 비해서 전체적인 머리 길이는 짧았다. 하지만 아리스는 다시 머리카락을 넘기고 드라이어로 말리는 일을 계속했다. 지금 머리카락을 자르면... 그래, 오해받기 싫었다. 라는 말이 가장 어울렸으리라.

 

"그럼, 이제 뭘 할까?"

 

식사도 했다. 평소에 자고 싶던 잠도 푹 잤다. 그렇다면, 뭘 해야 할까?
아리스는 지난 몇 년간 오랜만에 해본 고민에 빠져들었다. 보통 휴식시간은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음악은... 오늘은 음악을 듣고 싶지 않았다. 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취미가 일이 된다는 건, 일이 취미가 된다는 것과 같군요..."

 

의미없는 말을 주워섬기면서, 리모콘을 찾던 아리스는 순간 손을 멈췄다.

 

"...생각보다, 일을 피한다는건 쉽지 않네요."

 

중얼거리면서, 아리스는 장롱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밖으로 나가기는 좋은 날씨였다.

 

아리스는 조용히 안경을 썼다. 밖에 나갈 때 선글라스를 쓰는 건 아리스의 습관이 되었다. 다행히, 사람들은 눈을 가리고 옷을 살짝 바꾸면 잘 알아보지 못했다. 카메라의 렌즈 너머로 본 자신과, 일반적으로 본 자신은 다르다는 거겠지. 원래라면 이 선글라스도 안 쓰고 싶었지만...

 

"1년 정도 지나면 안 써도 되려나?"

 

대중의 기호는 빠르게 변한다. 수많은 컨텐츠가 넘처흐르는 지금, 자신 같은 떨어진 아이돌은 아마 1년 정도면 잊혀질 것이다. 그래, 아마 그럴 것이다. 아리스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주말 점심이라 그런지, 주택가는 한산했다. 아리스는 일단 무의식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어디를 향해야 하지? 이미 목적지는 없었다. 아리스는 버스에 올라탔다.

 

"...생각해보니 거기 딸기 빙수, 맛있댔었지."

 

리카가 언젠가 맛있다고 했던 빙수집. 언젠가 한번 꼭 가봐야지라고 생각은 했지만 가 보진 못했던 곳이었다. 아리스는 태블릿을 키고, 습관적으로 손을 뗐다. 태블릿의 맨 앞 페이지, 즐겨찾기 목록에는 뉴스기사들이 몇개 있었다. 아리스는 그 쪽으로 가려던 손가락을 돌려 검색창에 손을 댔다.

 

"지도가..."

 

버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리스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를 타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집과 학교는 걸어서 이동했고, 고등학생이 된 지금은 그 사람이 항상 차를 데리고 마중왔었다. 본인은 당연한 프로듀서의 업무라고 했지만.

 

'생각하지 말자.'

 

아리스는 눈을 감았다. 살짝 열린 창문으로 부는 바람이 아리스의 눈썹을 스치며 닫힌 눈꺼풀을 건드리고 지나갔다. 이대로 내리지 않고 쭉 가보는 건 어떨까? 가끔 이렇게 졸다, 버스에서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드는 것도 어쩌면 좋아 보였다. 마음 속의 천칭이 살짝 움직이다가... 딸기 빙수로 조금 기울었다. 아리스는 눈을 떴다.

 

"여기서...조금만 걸어가면 되던가요?"

 

아리스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도심 한가운데라 그런지, 사거리로 뻗은 길에는 수많은 차들과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아마 주말에 나온 연인들일 거고. 저 사람들은 아마 친구들. 모습을 보면 고등학생 혹은 대학생 같고. 저 사람들은 가족. 저 사람들은 ...아가씨?

 

아리스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왜, 왜 저 차가 저기있지? 아리스는 저 머리칼을 너무 오랫동안 봐 왔었다. 물결치는 금발 머리칼. 아리스 자신과 비슷한 키. 가장 확고한 건, 저 옆에 서있는 큰 검은 차. 아리스 주위에 연예인들이 아무리 많다 해도 저런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아리스는 급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버스는 이미 떠났고. 택시? 아니 애초에 대체 어떻게 자신이 여기 올 줄 알고 있었던 거지?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도 확실히 보이는 금발머리가 점점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주위에 소근소근거리는 울림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아리스는 머리를 짚었다. 초등학생때의 인연으로 시작해서, 중학교 때부터 같은 학교에 가서, 고등학교인 지금에 와서는 완벽한 단짝 친구가 되버린 금발머리 복숭아 소녀가 다가오고 있었다.

 

"어머 아리스 짱, 우연이네?"
"하,하,하 모모카 짱. 우연이네. 스케쥴은?"
'중3때부터 마유 언니랑 사에 언니랑 다니더니 이상한 걸 배우기 시작했어!?'
"물론 오늘은 없었어 그나저나..."

 

사쿠라이 모모카. 정진정명 대기업 영애이자 아가씨 아이돌. 그리고, 아리스의 같은 반 친구이자 그룹 멤버. 중학교 때 부터 프로덕션 근처의 사립학교에서 만난 이후로, 둘은 같이 다니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평소에는 여기 리카짱까지 더해 세 명이 프로덕션 내부에서 붙어 다니지만.

 

"여기에 리카짱만 있으면 세컨드 제너레이션이네!"
"..."

 

아리스는 대답할 수 없었다. 대답하지 못했다.

 

"밖에서 말하니 덥네. 아리스짱 딸기 빙수 먹으러 온 거지? 그럼 올라갈까?"
"어...응."

 

아리스는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 파파라치들은?"
"아 그건 괜찮아!"

 

모모카는 뒤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이 더운 여름 날씨에도 불구하고, 검은 선글라스에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차에서 마주 손을 흔들었다.

 

"아저씨들이 아마 밑에서 대기해주실거야."

 

아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니 모모카는 346프로 아이돌 중에서도 사생활 노출이 가장 드문 걸로 손꼽히는 아이돌이었다. (참고로 두 번째는 타쿠미 씨였다)

 

"그럼 올라갈까?"

 

모모카는 계단을 걸어오르기 시작했다. 아리스 역시 그저 따라 오르는 것 밖에 할 말이 없었다.

 

몇 분 후.

아리스는 닫힌 방에서 모모카와 단 둘이 엄청난 크기의 빙수를 눈 앞에 두고 마주보고 있었다. 대기업 딸의 힘은 여기까지도 미쳤는지, 모모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걸어올라서 가게 문을 열기만 했는데 뭔가 높아 보이는 사람이 모모카에게 인사하더니 둘을 정중히 안내해서 방 안에 두고 주문까지 받아가는 것을 아리스는 멍한 얼굴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여기는 딸기 빙수로 유명하지만 원래 전통 과자집에서 시작됬었거든."
"...자주 오는 거야?"
"...아니, 우리 집 단골 과자가게의 제자였을걸? 서양식이랑 일본식을 섞는다고 해서 본인의 가게를 차리러 나왔던가 할 거야."
"...그러고보니 디자인도 방 형식이네."
"응."

 

모모카는 아리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리스는 이상하게 눈을 들지 못하고 그저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아리스 짱?"
"네,넷?!"
"...설마긴 한데, 내가 화나있을거라고 생각한건 아니겠지?"

 

아리스는 빙수에 숟가락을 넣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침묵이 이어졌다. 생각이 이어졌다. 아리스는 손가락을 내밀어 머리 끝을 살짝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리스의 머리 위로, 모모카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사실 화났어"
"아리스의 무책임함에도 화났고. 아무에게도 의논하지 않고 결정한 것에도 화났고. 내가 그렇게 믿음을 줄 수없었다는 것에 화났고. 평소의 아리스짱이 아닌 것에도 화났어."

 

평소에 본심을 숨기는 사람이 꺼내는 본심은 강력한 법이다. 모모카의 말은 아리스의 마음을 콕콕 찔렀다. 아리스는 눈을 한 손으로 덮었다. 모모카의 모든 말은 아리스의 마음 이곳저곳을 찔러 들어갔다. 아리스는 눈을 손으로 덮었다. 분명 모모카짱이 하는 말은 다 맞았다. 하지만...

 

"모모카짱. 나... 모르겠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마음. 지금까지 댐으로 막아뒀던 마음이 방금 쏟아진 말들에 대답하려고 넘실거리고 있었다. 벽이이 깨지고 홍수처럼 말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물을 너무 많이 담아둔 댐처럼. 비가 흘러넘쳐 강 하류를 휩쓰는 것처럼.

 

"...변명일지도 몰라. 슬플지도 몰라. 하지만 프로듀서 씨는... 응, 이유였어. 아이돌을 하는 이유였어."
"아리스짱은... 음악을 좋아해서 아이돌을 하는 게 아니었어?"
"처음에는 그랬어. 처음에는..."

 

함께 웃어주었다. 어른으로 취급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한 기획을 비웃지 않고 한 자 한 자 들어주었다. 외롭던 자신의 손을 잡아주었다.
항상 필요할 때 옆에 있어주었다.
아이돌을 알기 전, 항상 집은 춥고 외로운 곳이었다. 거실은 넓기만 했고, 불을 켰어도 방 구석에서 스멀스멀 기어들어오는 어둠들은 어린 자신에게 무섭기만 했다.
학교에서는 항상 어려운 책만 읽고 있는 아이라고 취급받았다. 아리스는 그래서 더더욱 책, 그리고 선물받은 타블렛을 통한 인터넷에 파고들었다.
그런 아리스에게 하나의 햇살이 비춰들었다. 온기가 사라지고 정보만이 있었던 세계에 하나의 빛나는 창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는, 진정으로 신데렐라에게 찾아온 요정이었다.

 

그렇게 346프로의 집무실이, 아리스의 두 번째 집이 되었다.
언니들. 동생들. 친구들. 선의의 경쟁자이면서 친한 친구들이 많아졌다. 사람의 온기가 방의 차가운 어둠을 밀어냈었다.
촬영을 핑계로 동물원에도 갔었다.
마법사처럼 분장하고 MV를 찍기도 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제 아리스에게 아이돌을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생겨버렸다.
생겨버리고 말았다.

 

"...아리스라고 불러주셔도 돼요. 괜찮아요. 아냐 씨도 그렇게 부르시니까."
"흥흐흐흥? 그럼 나도오?"
"싫습니다."
"슈코! 아리스가 미워해!"

 

무릎을 굽혀야 닿던 그의 눈은 이제 살짝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주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제 머리를 쓰다듬으려면 그는 손을 올려야 했다.
10년도 안 되는 사이에 그와 나의 차이는 이제 조금만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응, 또 다른 이유가 생겨버리고 말았어."

 

그리고 그 차이는 이제 영원히 좁혀질 수 없게 되었다.
한 달 전. 모두가 함께한 라이브. 신데렐라 페스티벌의 뒷풀이 때. 모든 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프로듀서는 조용히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누구에요?!"

 

잠시 진행된 침묵. 그리고 빗발치듯 쏟아지는 질문들. 프로듀서는 조용히 한 소녀의 손을 들어올렸다.
아리스는, 그 모든 상황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아리스 짱..."

 

아리스의 말이 갑자기 멈췄다. 빙수 너머로 들리는 모모카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리스는 조용히 빙수를 한 숟가락 떠서 입 속으로 삼켰다. 떨리는 목사이로 차가운 얼음이 들어가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다.

 

갑자기 찬 것을 먹어서인지 찡 하는 느낌이 머리에 다가왔다. 아리스는 이마를 짚었다.

 

"미안. 시간이 필요해 모모카짱. 미안"
"무책임할 지도 몰라. 미안해. 하지만... 시간을 조금 줄래?"

 

'프로답지 않다' 고 아리스는 생각해버렸다. 프로라면 지금 이 상황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이 계속 활동하겠지. 모두에게 민폐를 끼치면서, 어린아이처럼 떼쓰지는 않겠지. 이미 정해진 걸 바꾸려고 발버둥치지도 않겠지. 아리스는 얼굴에 손을 묻었다. 하지만...

 

지금 상대가 어쩌면 모모카였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모모카가 아니라면, 아마 이렇게 말하지는 못했겠지. 그냥 웃으면서, 미소를 지으면서 '학업 문제로 인해 휴식을 취하게 됬어요' 라고 말했겠지.
모모카는 그게 통할 상대가 아니지만.

 

"응, 아리스짱. 다행이야"

 

덜컥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얼굴을 덮은 손에 따뜻함이 느껴졌다. 모모카의 양 손이 아리스의 양 손을 덮었다.
금발의 머리카락이 얼굴 근처로 미끄러지는 느낌, 사각사각한 감촉이 느껴졌다.

 

"...응, 아리스짱. 이해해. 민폐라고 생각하지 않아. 아리스짱의 마음 , 알겠어."
"진짜...?"

 

치사하다. 치졸하다. 아리스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약한 면을 보여주고, 동정을 얻으려 하다니. 하지만 아리스는 모모카의 저 말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치사하다고 생각하지마 아리스짱. 왜냐하면... 아리스짱도 인간이잖아?"
"하지만!"

 

모모카의 손가락이 아리스의 손 사이로 파고들었다.

 

"아리스짱은, 아이돌이기 전에 인간이야. 아리스짱이 아이돌이라고 해도, 힘들고, 지치고, 슬플 때가 있는걸.""내가 화났던 이유는 , 아리스짱, 나에게 말도 없이 결정한 것 때문. 오직 그 뿐이야."

 

"하지만...응, 지금이라도 말해줬으니 괜찮아."

 

문장과 문장 사이 살짝 목이 메이는 듯, 모모카는 아리스의 귀에 속삭이듯이 말했다. 아리스는 손을 떼지 못하고 가만히 있기만 했다.
얼음이 물이 녹을 때 나는 소리처럼 살짝 흐느끼는 소리와, 동시에 지켜보는 소리. 방 안은 들리지 않는 소리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몇 분 후. 둘은 다시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그래서, 아리스짱은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아마 학교에 가지 않을까?"

 

모모카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아, 아니! 사실이야! 왜냐면 학업도 거짓말은 아닌걸. 곧 고3이니까..."

"그렇지만 아리스 짱 공부 꽤 잘하는 편 아니었어?"

 

아리스는 눈 앞의 모모카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완벽초인이라는 별명을 학교에서 듣고 있는 모모카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아리스도 공부를 꽤 잘하는 편이긴 했지만 그건 문과 한정이었고, 몇몇 과목들은 어릴 때 부터 지금까지 아리스의 약점으로 남아있었다. 특히 영어라던가. 영어라던가.

 

"대학을 가려면 조금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렇구나..."

 

모모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복귀는 언제 할 거야?"

"...말도 있고 하니, 센터시험이랑 본고사 후에 하지 않을까?"

 

말을 하면서도 아리스는 회의적이었다. 1년. 1년간 TV에 안 나온 아이돌을 누가 알아줄까. 아마 복귀한다고 하더라도 예전과 같은 자리에는 도저히 올라갈 수 없을 것이 뻔했다. 애초에 일거리가 들어오긴 할지조차 미묘했다.

 

"아냐, 아리스는 절대 잊혀지지 않을 걸?"
"왜?"

 

모모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야, 아리스니까."

 

아리스는 어떤 표정을 지을 지 모르면서 똑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컨드 제너레이션 앨범은 저번달에 나왔고, 아리스 짱 올때까지는 자리를 남겨둘께. 그러니까 재수하면 안돼 아리스짱?"
"응. 알겠어."

 

방을 나가면서 말하는 모모카의 말에, 아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스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모모카는 바쁜 일이 있는지 발을 동동 구르면서 기다리던 기사님들 사이로 차를 타고 손을 흔들며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아리스는 눈을 깜박였다. 에어콘과 빙수가 있어서 으슬으슬하기까지 했던 방이었지만, 밖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온 몸을 찌르는 더위 앞에서, 아리스는 고개를 까닥였다.

 

"...그럼, 돌아갈까."

 

-후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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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후기.

생각보다 길군요. 원래 모모카는 이정도 분량을 차지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폭주해버렸다고 해야 할까. 뒤쪽 후반부가 급히 마무리해서 전개가 미쳐날뜁니다.

앞으로 중~후편. 혹은 후편까지 아리스의 활동을 잘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

세컨드 제너레이션은 뉴 제너레이션 다음을 잇는다는 의미로 제가 마음대로 붙였습니다. 아리스 모모카 리카 3인방이겠네요. 따지자면. 뉴제네와는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정반대의 그룹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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