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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리티P 시리즈] 카에데 <밤 바다의 이정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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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14, 2016 03:18에 작성됨.

* 시리즈의 가장 처음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

 

촬영장 바깥. 스포트라이트의 빛이 닿지 않는 장소는 마치 어릴 적 보았던 어두운 밤 바다를 떠올리게 합니다. 어릴 적, 아버지의 손길에 이끌려 보았던 시커먼 바다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검은색으로 저를 유혹합니다. 그 어둠에 눈이 팔려 멍하니 그 곳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것은 어느새 내 귓가로 다가와 조용히 속삭입니다.

‘너는 지금 어디를 가고 있느냐’라고.

 

뱃사공들은 하늘의 별을 이정표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름이 낀 날에는 연안을 벗어나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연안을 떠나 먼 바닷길을 떠나는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향하는 곳에는, 언제든지 그들을 반길 수 있도록 등대가 한 줄기의 빛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죠.

 

 

 

 

********

 

 

소포가 도착했습니다.

봉투를 뜯자, 그 안에는 지난번에 촬영한 사진이 수록된 잡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페이지를 넘기는 손에서 조금씩 힘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풀이 죽었다고나 할까요.

저는 절반쯤 넘긴 잡지를 다시 덮어 탁자 위에 올려놓고, 침대에 올라가 무릎을 세워 앉았습니다. 고개를 살짝 들면, 바로 맞은편 벽에 설치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올해로 나이 25세. 키는 그럭저럭 큰 편이고, 식이조절이나 적당량의 운동은 계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모델로써의 자신은 아직은 양호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잇살이나 군살은 보이지 않고 있고, 주위에서도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이니까요.

그런데도, 요즘에는 이상하게 주눅이 듭니다. 실적 부분이 아니라, 그저 새롭게 들어오는 젊은 아이들에게 왠지 모르게 밀리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고 있습니다.

모델로써의 자신은 분명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최근에는 무언가 자꾸 불안한 생각이 듭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막연한 불안감이기에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모델, 관둘까…….’

 

문득, 다 그만두고 그냥 고향에 내려가서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약한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정말로 고민인 모양입니다. 저는 끌어안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아니, 잠겨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 탁자 위에 놓아둔 휴대전화의 알람이 제 의식을 다시 현실로 끌어옵니다.

그러고 보니 다음 일정이 있었지요.

저는 서둘러 침대에서 튕겨나듯이 일어나 욕실로 향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서둘러서 움직인 덕분에 촬영 시작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했습니다. 평소보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탈의실로 들어가자 회사 소속의 매니저 씨가 밝게 웃으면서 저를 반깁니다.

 

“어서 와. 카에데가 지각을 다 하고. 별 일이네.”

“죄송해요. 잠깐 집에서 다른 생각 좀 하느라.”

 

매니저 씨는 저보다 다섯 살이 많은, 올해로 서른이 되는 언니입니다. 늘 손거울을 가지고 다니면서 잔주름을 걱정하지만,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 때문인지 충분히 젊어 보입니다. 본인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가 ‘사돈 남말 하시네’라고 쓴소리를 듣기는 했지만요.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는 상당히 낯을 가리는 저이지만 일을 하면서 자주 만나다 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가슴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어디보자, 카에데의 순서는 꽤나 뒤쪽이니까……좋아. 시간은 충분하겠어.”

 

이리 오렴, 이라고 말하듯, 그녀는 거울 앞에 있는 의자를 팡팡 두드립니다. 제가 자리에 앉자, 그녀는 능숙한 손길로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메이크업을 시작했습니다.

 

“카에데는 모델 계속 할거야?”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쓰지 마.”

 

되묻기는 했지만, 그녀의 질문은 똑똑히 들었습니다. 제가 질문을 되물었던 것은 그 질문이 요 며칠 사이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불안감의 원인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거울 속의, 컬러 렌즈의 색깔로 반짝이는 제 자신의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어릴 적에 들었던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아버지께서 들려주셨던, 밤 바다를 항해하는 옛 뱃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어두운 밤이 되면, 바다는 노를 젓는 뱃사공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단다. 지금 네가 가는 길이 정말로 옳은 길인지, 지금 네가 가고 있는 이 길의 끝에 네가 원하는 목적지가 있는지. 그래서 노련한 뱃사공들은 밤이 되면 바다를 보지 않아. 오로지 하늘을 바라본단다.]

[하늘이요?]

[그래. 저 밤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을 보면, 내가 가고 있는 길을 확실하게 알 수 있거든. 내가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하늘의 별님은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신단다.]

 

저는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가슴 속에 떠오른, 그 때 그 시절의 아버지에게 되묻습니다.

아버지. 저는 언제까지 이 길을 가야 하는 걸까요. 지금의 저는 길을 잃은 게 아닐까요?

 

 

메이크업을 마치고도 의상을 받기까지는 시간이 약간 남았습니다. 듣기로는 이전 순번에 촬영하기로 한 신인이 몇 번인가 미스를 저질렀다고 합니다. 딱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참견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의상실에 앉아서 오늘 촬영하기로 한 장면의 샘플 컷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지만, 이렇게 다시 살펴보면 간과하고 지나갔던 점이 하나 둘씩은 보이기 마련이기에 틈틈히 샘플을 체크하는 것은 모델에게 있어 좋은 습관이 됩니다.

오늘 촬영 분의 샘플을 모두 한번 훑어보았을 때 즈음, 의상실에 매니저 씨가 들어왔습니다.

 

“자, 앞 사람 촬영 끝났으니까 우리도 슬슬 준비하자.”

“네.”

 

매니저 씨는 제 이름이 적힌 라커의 문을 열고, 제게 배정된 의상을 주르륵 꺼내어 늘어놓았습니다. 바깥의 날씨는 한겨울이지만, 오프숄더 스타일의 얇은 드레스와 적당히 얇은 가디건, 그리고 직물재질의 하늘하늘한 코트까지. 지금 제 눈 앞에 늘어놓은 옷들은 아무리 잘 봐 주더라도 겨울 옷이라 보기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오늘 찍은 사진은 봄 특집 호에 실리게 될 사진들이기 때문입니다. 의상을 한번씩 입어보며 사이즈를 점검하고 있자니 스태프 중 한 명이 의상실에 들어와 제 차례가 되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재빨리 첫 번째 의상으로 갈아입고, 저는 촬영장으로 향했습니다.

평소에 보던 스태프들 가운데, 처음 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두운 곳에 서 있어서 색깔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단정한 정장 차림에 안경을 쓰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상하리만치 시선을 잡아 끄는 존재감에 누굴까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곧바로 촬영준비를 재촉하는 목소리에 이끌려 저는 그의 존재를 곧바로 머릿속에서 지웠습니다.

스포트라이트 아래로 들어가 평소처럼 포즈를 취합니다. 셔터 소리와 함께 플래시가 번쩍이고, 사진사는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좋습니다. 타카가키 씨, 샘플 C로 바로 가능하겠어요?”

“네.”

 

세트장의 창틀에 비스듬히 앉아, 한쪽 다리를 세우고 그 다리에 상체를 기대어 카메라 뒤편의 먼 공간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샘플의 포인트는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 연기.

그 때, 평소대로 바라본 카메라 뒤편, 스포트라이트의 빛에 가려진 어둠이, 마치 파도가 치는 듯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어……?’

 

깜짝 놀라 저는 그만 움찔, 하고 자세를 흐트러뜨리고 말았습니다. 막 셔터를 누르려던 사진사가 고개를 들어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괜찮다는 제스쳐를 취하고, 다시 자세를 잡았습니다.

시선을 들어 다시 어둠을 바라봅니다. 꿈틀거린 것은 기분 탓이었는지, 새까만 그것은 이제는 잠잠하게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입니다.

또 다시, 아버지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네가 가는 길이 정말로 옳은 길인지, 지금 네가 가고 있는 이 길의 끝에 네가 원하는 목적지가 있는지. 바다는 끝없이 네게 질문한단다.]

 

 

 

*******

 

 

 

“으~음.”

 

책상에 납작하게 엎드려서, 그 위에 놓인 전화기와 건너편 벽에 걸린 벽걸이 시계를 번갈아 노려보며 나는 신음을 흘렸다. 연락을 주기로 한 시간은 진작에 지난 상황. 이번 스카우트도 결국 이렇게 허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때, 사무실 문이 열리면서 댕기머리를 옆으로 늘어뜨린, 녹색 옷차림의 여성이 들어왔다.

 

“프로듀서 씨, 아직 연락 안 왔어요?”

“아, 센카와 씨……그렇게 됐습니다.”

“아깝네요. 이번엔 느낌 좋았는데.”

“그러게 말이에요……프로듀서인데 아이돌이 없는 프로듀서라니. 이것 참.”

 

나는 속이 빈 웃음을 흘리며 왼손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이돌 부서가 신설되고, 담당 프로듀서로써 내가, 그리고 내 직속 사무 어시스턴트로 센카와 치히로가 배정된 지 두 달이 지났다. 틈틈이 길거리 스카우트도 해 보았지만, 보다시피 성과는 영 좋지 않았다.

뭐, 구색 맞추기 용으로 적당적당히 한 것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만.

 

“너무 낙담하지 마세요.”

“하하, 낙담하긴 아직 이르죠. 양성소 쪽은 어떻게 됐나요?”

“아, 그렇지 않아도 방금 전에 1기 오디션 결과가 나왔어요. 다음주부터 트레이닝을 시작한다고 하니까, 못해도 6월쯤에는 후보생들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여기 이거는 요청하셨던 패션모델 쪽 자료에요”

“감사합니다. 다음 주라…….”

 

나는 그녀가 건넨 종이뭉치를 받아 몇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그러자 오늘 있을 촬영의 참가자 명단이 나타났다. 가볍게 명단을 한번 훑어본 뒤, 그것을 가방 안에 집어넣으며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어휴, 벌써 시간이 이렇게……저 잠시 나가보겠습니다.”

 

옷걸이에 걸려 있던 얇은 코트를 걸치고 거울을 보며 옷 매무새를 다듬었다.

 

“아, 또 스카우트 가시나요?”

“스카우트……그 비슷한 거라고 해 두죠. 일단은 뭐, 닥치는 대로 돌아다녀 볼 생각입니다.”

“네……. 오늘도 수고해주세요.”

“하하, 제가 할 말이죠.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사무실이 있는 제1별관의 정문을 나와서 손목시계를 재차 확인했다. 남은 시간은 20분, 회장까지는 택시로 약 10분 정도……잘 하면 미리 점찍어둔 몇 명은 사전에 만나 볼 수 있지 않을까.

 

 

 

“자세 좋고! 입꼬리 약간 올려봐!”

“좋아, 좋아! 오른손을 조금 아래로!”

“다음! 샘플A로!”

 

……라고 생각했던 그 때의 나를 때려주고 싶다. 대기실은 개뿔.

나는 촬영장의 구석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멀뚱히 서서 열심히 셔터를 터뜨리는 스태프들의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교통이 혼잡했던 탓에 이동에만 20분이 걸렸다. 즉, 대기실 근처에는 발도 못 붙여보고 나는 이렇게 촬영장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역시, 다들 모델이라 그런지 프로모션이 장난이 아니구나.’

 

대기 중인 모델들을 살펴보면서 느낀 감상이었다. 비록 신체비율이나 외모의 차이는 있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쪽이든 프로모션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환하게 빛나는 세트장에는 의상을 차려 입은 젊은 남자 모델이 심각한 표정의 사진사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이는 10대 후반 정도로, 아무래도 막 데뷔한 신인처럼 보였다. 얼핏 들려오는 단어로 추론해보면 아무래도 표정을 죽여야 하는 장면에서 자꾸 표정이 드러나는 것 때문에 열심히 혼나고 있는 듯 했다.

한동안 이어진 사진사의 꾸중이 끝나고, 잔뜩 풀이 죽은 표정으로 남자 모델은 세트장을 나와 대기실로 향했다.

 

‘그러면서 크는 거지. 힘내라.’

 

마음 속으로 응원을 보내고 나는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스튜디오에 들어온 지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지나 있었다. 슬슬 발바닥도 아파오고, 그냥 갈까. 하고 생각하던 찰나.

 

“타카가키 씨, 오셨어요?”

“네.”

”아아, 오셨구나. 바로 시작하실래요?”

“네, 바로 시작할게요.”

“알겠습니다. 이봐, 조명 이쪽으로 돌려!”

 

지금 막 촬영장으로 들어선 한 여성이 여기저기를 떠돌던 내 시선을 단박에 끌어당겼다. 그녀가 세트장으로 들어서자, 풍성한 단발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옅은 녹색으로 반짝인다. ‘타카가키’라는 성을 듣고, 조금 전 사무실에서 읽었던 명단을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이름이 ‘타카가키 카에데’였던가.

이름이 떠오르자 그와 함께 프로필의 내용도 얼추 떠올랐다.

우선은 장신. 키를 감안하면 볼륨은 부족하지만 손발이 길다. 그야말로 모델에 최적화된 조형미. 치히로에게 받은 자료에 따르면 패션모델 부서의 흥행수표라고 하는데, 과연 그 평가에 맞는 외모였다.

 

‘그런데 표정이……저건 뭐, 마네킹이 더 생기가 있겠네.’

 

모델은 자신이 촬영하는 사진에 따라 표정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꽃밭에서는 활짝 웃어야 하고, 도시 한복판에서는 감정을 죽이고 무표정을 유지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녀를 보고 있으면 지금 그녀의 표정은 모델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것으로 보인다. 굳이 말하자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아닌 쪽. 마치 부평초처럼, 물결이 흐르는 대로 이리저리 떠다닌다는 감상이 느껴졌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머릿속으로 그녀가 화려한 무대의상을 입고, 스테이지 위에서 환한 미소를 짓는 모습을 떠올렸다. 분명히, 지금처럼 축 늘어져 있는 것보다는 훨씬 매력적이리라.

몇 번인가 셔터를 터뜨리고, 사진사는 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그녀를 바라본다.

 

“좋습니다. 타카가키 씨, 샘플 C로 바로 가능하겠어요?”

“네.”

 

또 한 가지 더.

처음에는 몰랐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내가 알고 있는 그녀의 프로필에 비하면 약간 독특한 축에 드는 목소리였다. 가늘다고 생각하면 약간 허스키하고, 허스키하다고 생각하면 또 가늘게 들리는, 그런 신기한 목소리. 그 사실을 깨닫자 무언가가 느낌이 왔다. 사장식 표현으로 하자면, “팅, 하고 왔다.”

그래, 저 사람이다.

저 사람에겐 걸 수 있다.

아니, 내가 만들어낼 수 있다!

이미 샘플은 모두 파악하고 있는 듯,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장소를 옮기더니 능숙하게 자세를 잡는다. 그런데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에메랄드처럼 반짝이는 그녀의 눈이 촬영장 밖을 향할 때마다 그녀의 표정이 뻣뻣해지는 것이 눈에 띄었다.

계속해서 그녀를 보다 보니 그녀는 이상하게 어두운 곳을 피하는 듯 했다. 물론 사진사 또한 아마추어가 아니라면 그녀의 그런 변모를 모를 리가 없을 터.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사진사는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았다.

 

“저기, 타카가키 씨. 자세는 정말 좋은데 표정이 좀 딱딱해. 오늘 컨디션 별로에요?”

 

사진사의 말에, 마치 목덜미에 차가운 것이 닿은 듯 움찔한 그녀는 시선을 조심스레 촬영장 안으로 돌려놓았다.

 

“에? 아, 아뇨. 컨디션은 나쁘진 않은데…….”

 

스태프들의 한쪽 끝에 서 있던 나는 그녀와 사진사가 이야기를 나누는 틈을 타 조심스레 카메라의 뒤쪽으로 움직였다. 그녀의 시선이 이따금씩 향하던 방향으로.

이 어둠 속에서 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무렵 다시 촬영이 시작되었다. 자리를 옮긴 탓에 사진사와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흥이 오른 사진사의 목소리와 셔터 소리만 들려오는 것을 보면 어찌어찌 촬영은 잘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눈이 완전히 어둠에 익었을 무렵 나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혹시 그녀의 주의를 끄는 물건이라도 있을까 싶었지만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심지어 비상구 전등조차도.

 

‘귀신이라도 봤나?’

 

중얼거리며 다시 몸을 돌리는 순간 셔터소리가 멎었다. 스포트라이트가 뿜어내는 빛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두 눈에 잔뜩 힘을 주며 촬영장을 바라보자, 어느새 촬영을 마친 것인지 그녀가 그녀의 매니저로 추정되는 한 여성과 함께 촬영장을 벗어나는 것이 보였다.

 

“더 보고 싶었는데, 아깝다.”

 

나는 다시 처음의 자리로 돌아와서 펜라이트를 꺼내어 입에 물고, 품 속에서 수첩을 꺼내 ‘타카가키 카에데’라는 이름을 적어 놓은 뒤, 다음 차례의 모델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지금 대기실에 들어가는 것은 늦었으니, 기왕이면 남은 후보들까지 한번씩은 다 훑어볼 요량이었다. 그녀는 어차피 같은 회사 소속이고, 만나려고만 한다면 언제라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

 

 

 

“하아…….”

 

어떻게든 촬영을 마치고, 의상을 반납한 뒤 대기실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저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함께 들어온 매니저 씨가 신기하다는 듯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왠 한숨을 그렇게 쉬어? 너답지 않게.”

“그러게요……오늘따라 갑자기 왜 이러는지.”

“앗.”

 

매니저 씨의 비명소리와 함께 대기실의 불이 꺼졌습니다. 곧바로 다시 불이 켜지기는 했지만,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도 저를 감싸고 있던 어둠은 제게 또다시 아버지의 이야기를 속삭였습니다.

 

“미안해, 발을 헛디뎌서 스위치를 건드렸어.”

“아, 아뇨, 괜찮아요.”

“……괜찮은 거 맞아? 식은땀이 보통이 아닌데?”

“네?”

 

그녀의 말에 저는 거울을 바라보았습니다. 평소와 똑같다, 라고 생각했건만 어느 샌가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목덜미까지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컨디션 별로인 것 같으니까, 오늘은 빨리 갈아입고 돌아가자. 감독님한테는 내가 말해놓을게.”

“고마워요.”

“뭘, 매니저가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전속은 아니지만 오래 알고 지냈잖아?”

“후훗, 그랬었죠.”

 

제가 처음으로 모델을 할 때부터 이 매니저 씨는 저와 함께했습니다. 어느덧 3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네요. 돌이켜보면 시간이란 것은 참으로 빠르다고 생각합니다.

 

매니저 씨의 배려로, 저는 곧장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오늘 촬영하지 못한 분량은 내일 해야 할 테지만, 지금 상황에 촬영장에 눌러앉아 있어 봤자 민폐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하아…….”

 

집에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을 생각도 하지 않고 저는 곧장 침대로 뛰어들며 무거운 한숨을 내뱉었습니다. 가슴을 짓누르는 아버지의 말씀,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넘실대는 어둠이 지금껏 어렴풋이 느끼고만 있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것만 같습니다.

 

“모델 관둘까…….”

 

부모님께서는 제 뜻을 항상 존중하셨습니다. 고향을 떠나 상경할 때도, 대학에서 만난 친구를 따라 모델 일을 시작할 때도, 부모님은 항상 제 등을 밀어주었습니다. 그런 그 분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있기에 저는 다소 억지로 이 길을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뱉으며 저는 눈을 감았습니다.

 

 

 

***********

 

 

타카가키 카에데의 촬영장에 갔다 온 다음 날.

 

베테랑 트레이너와 치히로가 실무자 간담회를 간 사이, 나는 소파와 테이블을 옆으로 밀어 놓은 사무실에서 루키 트레이너와 트레이너 자매에게 공을 던지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실무자’라고 한다면 나도 포함되는 것이지만, 일단 나는 직책상으로는 프로듀서이자 아이돌 부서의 부서장을 겸직하고 있기에 매주 금요일에 있는 부서장 결산회의에만 출석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이렇게요?”

“거기서 발을 조금 더 크게 밟아요. 보통은 마운드가 지면보다 높으니까 앞으로 달려든다는 느낌으로 중심을 앞으로 밀어줘야 됩니다.”

“으응, 잘 모르겠는데……이런 느낌으로?”

“아뇨, 이런 식으로, 축 발을 살짝 굽히면서 자연스럽게 체중이 축 발에서 앞발로 움직이도록.”

“어엇……이렇게요?”

“네, 그렇게 하시면 되요.”

 

몇 번인가 동작을 따라하더니 루키 트레이너는 이제야 요령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그녀의 옆에는 동생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 트레이너가 있었다.

 

“발은 대강 알겠는데, 팔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몇 번 해 봤는데 어깨만 아팠거든요…….”

“어떻게 했는지 한 번 보여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했었나…….”

“그렇게 하니까 당연히 어깨가 아프죠. 공을 던질 때는 어깨, 팔꿈치, 손 순서대로 움직여야 해요. 투석기에서 돌을 던지듯이. 이런 식으로 말이에요.”

“그렇구나……확실히, 그렇게 하니까 어깨가 조금 덜 아픈 것 같아.”

“보통 학교 수행평가에서는 자세를 중요하게 보니까, 등을 조이고 가슴을 연다는 느낌으로 천천히 자세를 연습해보세요.”

“네.”

 

제각각 자세를 연습하는 두 사람을 두고, 나는 잠시 시선을 돌려 사무실 안을 둘러보았다. 평소에는 꽤나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소파와 테이블을 한쪽 옆으로 밀어두자 사무실도 생각보다는 꽤나 넓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시선을 제자리로 되돌리자, 루키 트레이너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으응,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네.”

“초보자에게 와인드업 포지션은 어려우니 일단은 슬라이드 스텝부터 연습하면서 중심을 이동하는 방법을 익히는 게 좋습니다. 체중이동이 안 되면 결국 어깨만 쓰는 꼴이니까요. 공은 공대로 안 나가고, 어깨에도 탈이 나기도 쉽거든요.”

“그렇구나…….”

 

눈을 반짝이며 내 말을 듣고 있던 두 사람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첩에 뭔가를 열심히 받아 적기 시작했다. 그 때, 사무실의 문을 열고 베테랑 트레이너와 치히로가 함께 들어왔다.

 

“저희 왔어요.”

“다녀왔습니다. 꼬맹이들, 프로듀서 씨한테 잘 배우고 있었냐?”

 

열심히 동작을 연습하던 트레이너와 루키 트레이너가 동작을 멈추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베테랑 트레이너가 미안한 듯 나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미안해요. 괜히 폐를 기친 것 같아서…….”

“괜찮습니다. 어차피 저도 한가했거든요. 그나저나 간담회는 잘 갔다 왔습니까?”

“네, 뭐……늘 하던 대로죠.”

“사장님께선 천천히 하라고는 하셨는데, 아무래도 눈치라는 게 있으니까 말이에요.”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두 사람에게, 나는 같은 의미를 담아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하하, 좀 더 분발하겠습니다…….”

 

그 때, 책상 위에 올려놓은 휴대전화의 알람이 울렸다.

 

“아이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왠 알람이에요?”

“일 나갈 시간이란 뜻이죠.”

“이 시간에요?”

 

치히로는 깜짝 놀라서 시계를 바라보았다. 이제 곧 퇴근시간이니 저 반응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네. 어제랑 같은 곳에 가려고요.”

“어제라면……아!”

 

나는 밀어둔 테이블과 소파를 제자리로 돌려놓은 다음, 미리 챙겨놓은 외근 가방과 외투를 챙겨서 사무실의 문으로 향했다.

 

“괜찮은 사람이라도 찾으셨나 봐요?”

“뭐, 한 사람 찾긴 찾았는데 말이죠……지금부터가 문제라고나 할까요. 저는 거기서 바로 집으로 갈 테니까 센카와 씨도, 시간 되면 바로 퇴근하세요.”

“네~수고하셔요.”

 

 

다녀오라며 손을 흔드는 네 사람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나는 사무실의 밖으로 나갔다. 어제 하루 동안 촬영장을 관찰하면서 타깃은 한 명으로 확실하게 좁혀 놓은 상태였다.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며칠 전에 새로 만든 명함을 만지작거리면서 나는 택시가 오기를 기다렸다.

 

 

 

***********

 

 

 

제 순서가 다가옵니다. 의상을 착용하고 저는 대기실로 돌아왔습니다.

어제와 연계되어 진행되는 2일간의 촬영이었기에, 오늘은 매니저 씨도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모습으로 메이크업에 열중하는 모습입니다. 오늘이 제가 참가하는 이번 특집의 마지막 촬영이라는 것도 있지만, 어제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일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만큼 오늘 더 분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공들인 만큼 정리도 세심하게 해야 한다며, 평소보다도 더욱 섬세한 손길로 매니저 씨는 제 얼굴 여기저기를 꼼꼼하게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똑똑,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매니저 씨는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저 대신 문을 열고 밖의 사람을 만났습니다.

 

“타카가키 씨, 준비 다 됐어요?”

“3분 정도만 더 줘요.”

“알겠습니다. 직전 차례 거의 끝났으니까, 서둘러 보내주세요.”

“알았어요.”

 

대기실의 문을 닫고, ‘들었지?’하는 표정으로 매니저 씨가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쿡, 하고 웃으면서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자, 다 됐다.”

 

마지막으로 마무리를 하고, 매니저 씨는 제 어깨를 툭툭 두드렸습니다.

 

“유종의 미, 잘 거두고 와.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네, 고마워요.”

 

앞으로도 계속 일할 터인데, 어째서인지 작별인사처럼 들리는 매니저의 배웅을 받으면서 저는 대기실을 나왔습니다. 촬영장이 있는 중앙 스튜디오에 도착하자, 방금 촬영을 마친 듯 뒷정리를 하고 있는 스태프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 한 가지가 눈에 띄었습니다.

 

‘저 사람, 또 있네요…….’

 

어제도 본 적이 있던, 안경을 끼고 있는 키가 큰 정장 차림의 남자입니다. 그는 스튜디오의 가장자리에서, 팔짱을 낀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팔짱을 끼고 있는 것에 대한 대응책인지, 그의 사원증은 외투의 옷깃이 아닌 아래쪽 주머니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관찰하는 것도 잠시, 곧바로 사진사가 다가와 제게 인사를 건네었습니다.

 

“샘플 확인은 다 했죠?”

“네.”

“그럼 바로 갈게요. 샘플D부터 준비해주세요.”

 

저는 고개를 끄덕이곤 곧바로 세트장 위로 올라갔습니다. 오늘 촬영 분은 모두 카메라를 바라보는 구도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제처럼 쓸데없는 생각이 끼어들 여지는 없겠지요.

 

‘아…….’

 

하지만, 촬영이 시작되고 나서, 저는 그것이 저의 오산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카메라의 너머로 보이는 새까만 풍경, 사진사의 등 뒤로 꿈틀대는 어둠이 제 시선을 모조리 빼앗아버린 것입니다. 밤의 바다를 항해하는 뱃사공은 바다를 보지 않는다고 하지만, 저는 어리석게도 매번 그 넘실거리는 어두운 바다를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바다 위에 떠있는 배를 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저는 이미 시커먼 바닷물에 절반 정도가 잠겨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 시꺼먼 스튜디오의 구석에서 한 쌍의 빛이 반짝였습니다. 그 빛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 빛을 발견하고 난 다음부터, 스튜디오의 어둠은 더 이상 밤의 바다처럼 넘실거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림자처럼 조용히,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조용히 장막을 드리우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야, 수고했어요. 처음엔 좀 불안하다 싶었는데 결국엔 제대로 다 해냈네. 역시 타카가키 씨야.”

“후훗, 칭찬 감사합니다.”

“오늘 수고 많았어요. 푹 쉬고, 다음에 또 봅시다.”

“네,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샘플과 의상을 바꿀 때마다 약간씩 호흡을 고르기만 할 뿐, 별도의 휴식시간이 없으니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촬영을 마쳤습니다. 반쯤 얼이 빠져서 세트장에서 내려왔을 때, 저는 그 반짝이는 빛이 있던 정체를 알았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조금 전에 보았던 키가 큰 남자가 쓰고 있던 안경에서 나오는 빛이었습니다. 스포트라이트의 빛을 반사시키는 것이었을까요,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이 또다시 반짝, 하고 빛났습니다.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한 그 때.

꾸벅, 하고, 남자가 작게 목례를 했습니다.

제 시선을 느끼고 있었나 봅니다. 생각지도 못한 그의 반응에 깜짝 놀라, 저는 그의 인사에 답해주는 것도 잊고 재빨리 짐을 챙겨 대기실로 돌아갔습니다.

 

“어머, 촬영 빨리 끝났네?”

“네. 표정이 자연스럽게 나왔대요.”

“그래, 잘 됐네. 자, 어서 옷 갈아입고 화장 정리하자.”

“네.”

 

벗어놓은 의상을 정리하고, 매니저 씨가 제 화장을 지우고 있을 무렵 복도 저편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뭐야, 갑자기.”

 

매니저는 인상을 쓰면서 잠시 기다려, 라고 말하곤 밖으로 나갔습니다. 곧이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들어온 그녀에게 저는 밖에서 일어난 일이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아, 별 일 아냐. 그냥 외부인이 난리를 조금.”

“정말로요?”

“……응, 정말로.”

“알았어요.”

 

거짓말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정말로 외부인이라면 지금처럼 이렇게 시끄럽진 않았을 테죠. 하지만 이렇게까지 숨기려 한다면 알고 싶어도 알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저는 굳이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어 보았습니다.

대체 무엇을 기대하는 것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혹시나, 하고 말이에요.

 

“저기, 정말로 외부인인가요?”

“왜? 관심 있어?”

“네? 아니, 그…….”

“별일이네, 카에데가 다른 사람한테 관심을 다 가지고.”

“아뇨, 저, 딱히.”

“맞아. 외부인이란 건 거짓말.”

 

프로듀서야. 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프로듀서?”

“응. 얼마 전에 회사에 아이돌 부서가 새로 생겼다던데, 그 쪽 사람인가보지.”

 

매니저 씨는 계속해서 소음이 들려오는 복도 쪽을 힐끗 바라보면서 말을 계속합니다.

 

“사장이 직접 미국에서 데려왔다고 들었는데. 꽤나 신뢰받는 모양새더라? 인사권한을 아주 빠방하게 넣어줬다던데. 뭐 듣기로는 본인만 OK하면 바로 빼낼 수 있다는 소문도 있고.”

“저, 혹시 옮긴 사람은.”

“없어. 저 사람 아직 한 명도 스카우트 못 한 모양이더라.”

 

눈이 높은 건지, 능력이 없는 건지. 라며 그녀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아이돌…….’

 

아이돌이라면 몇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화보 촬영을 하다 보면 특별출연 정도로 마주치는 일이 잦으니까요. 가끔씩 TV에서 보는 그들의 모습. 스테이지에서 반짝거리는 그녀들을 보고 있자면 나이에 걸맞지 않게 가슴이 뛰곤 합니다. ‘나도 어쩌면…….’ 하고요. 물론 이런 이야기는 가슴 속에서만 할 뿐. 밖으로 내지는 않습니다. 술김에라도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간 한동안 안주거리가 되면서 나잇값을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 테지요. 이제 곧 스물 다섯. 나이 얘기엔 민감해질 때입니다.

 

“왜, 관심 있어?”

“아니요. 그런 꿈을 꿀 나이는 지났잖아요?”

 

장난기 깃든 목소리로 놀리듯 말하는 매니저 씨에게 저는 고개를 강하게 가로젓습니다.

 

“아쉽네, 카에데 정도면 금방 뜰텐데”

“농담은 그만해주세요.”

“정말이야? 지금도 20대 초반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아뇨, 외모 같은 부분이 아니라……저, 그 성격이라던가……말이에요.”

“……그래, 그랬지. 으응, 너무 오랫동안 같이 지내서, 그만 깜박한 모양이야.”

 

그러면서 매니저 씨는 제 어깨에 손을 얹었습니다.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했습니다.

 

“저기, 갑자기 왜 그러세요?”

“응? 아아, 아무것도 아니야. 자아, 어서 마무리하고 집에 가야지?”

 

딱히 캐묻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저는 매니저 씨의 말에 별 다른 의문은 가지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건 그렇고 아이돌이라뇨. 25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그것도 낯선 사람들 앞에선 말도 제대로 못 꺼내는 제가 아이돌이라니, 정말로 우스운 이야기네요.

 

 

그래서.

 

“저기, 이건.”

“명함……인데요.”

 

그래서, 뒷정리가 끝나고 촬영장을 나서자마자 마주친 그 사람. 저보다 머리 두 개는 더 높은, 어마어마하게 키가 큰 그 사람이 조심스럽게 건넨 명함을 저는 멍하니 받아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매니저 씨와 잡담을 나누느라 한 시간 남짓 늦게 나왔는데, 그 사람은 제 촬영이 끝난 그 때부터 스튜디오의 입구에서 제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미 해가 떨어져서 밖은 상당히 추워진 상태였습니다. 나를 향해 웃는 그의 코와 뺨은 새빨갛게, 그리고 명함을 건네는 손은 서리가 내린 듯 새하얗게 곱아서, 주머니에서 나온 내 부드러운 손이 살짝 스치기만 했음에도 마치 얼음을 만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CG프로덕션 아이돌 부서 프로듀서 P].

명함에는 제가 소속된 회사와 같은 이름, 같은 로고가 그려져 있습니다.

 

“정말로 있었네.”

“네?”

“아, 미안해요. 잠시 다른 생각을 좀…….”

“……그런가요.”

 

저는 명함을 뚫어져라 바라보았습니다. ‘아이돌’이라는 글자가 너무나도 큼직하게 보입니다. 저는 고개를 들고, 안경 너머로 비치는 그의 바둑알 같은 눈동자를 바라보았습니다.

 

“저기, 질문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네, 말씀하세요.”

“왜 저인가요? 저는 젊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이들처럼 귀엽지도 않은데…….”

 

이 질문에, 남자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답변을 선택하고 있는 듯, 시선이 이리저리 춤을 춥니다.

 

“음, 글쎄요…….”

“……?”

“딱 보는 순간에 팍! 하고 왔다고 해야 할까요…….”

 

말꼬리를 흐리던 그는 “그것보다도”라고 말하면서 약간 자세를 낮추어, 안경 너머의 검은 눈동자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께서 걷고 있는 이 길을 자신의 길이라 확신하고 계십니까?”

 

저의 가슴을 찌르는 그의 말에 저는 한 순간 숨을 삼켰습니다.

 

“지금 당신이 걷고 있는 길……그래요. 이를테면 ‘모델’이라는 길에서, 당신은 정말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글쎄요…….”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저와 함께 찾아보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길을.”

“제 길을……말인가요.”

“네.”

“…….”

 

의심 섞인 눈초리로 바라보는 저의 시선을 구김살 없는 웃음으로 받아 넘기면서 그는 자세를 곧게 세웁니다. 제 눈높이에 있던 안경을 쓴 그의 얼굴이 삽시간에 저 위로 치솟았습니다.

 

“혹시 조금이라도 관심이 생기신다면, 그때는 언제라도 연락 주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는 한 걸음 물러서서 “귀한 시간 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라며 깊게 허리를 숙이고는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갔습니다. 어째서인지 그의 커다란 뒷모습이 잔뜩 기대하고 있는 어린아이처럼 통통 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 벌써 시간이.”

 

그의 사람 좋아 보이는 표정에 넘어간 것일까요? 저는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것도, 제 자신이 원래 낯선 사람에게는 매우 낯을 가린다는 사실도 잊은 채, 촬영장 입구 옆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곧 자주 가는 마트의 타임세일이 시작될 시간입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타임세일은 놓치고야 말았습니다. 내일 먹을 것은 있으니, 내일 다시 한번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까지 모두 마친 저는 어제 낮에 미처 다 하지 못한 생각을 마무리하기 위해 침대에 올라와 무릎을 끌어안고 앉았습니다. 어제와의 차이점이라면, 제 손에는 작은 명함이 들려 있었다는 점이네요.

 

“프로듀서, 29살……?”

 

명함을 살펴보다가 저는 조금 놀랐습니다. 저랑 동갑이거나 한 살쯤 어릴 거라 생각했는데 29살이라니. 그 때, 매니저 씨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사장이 직접 미국에서 데려왔다고 들었는데. 꽤나 신뢰받는 모양새더라?’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사장님은 성격은 다소 괴팍하지만 안목 하나만큼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직접 데려온 것이라면, 그 프로듀서는 괜찮은 사람일까요? 궁금해진 저는 휴대전화의 인터넷을 켰습니다.

 

“어디, 성함이 P…… 29살이면 1985년생…….”

 

인터넷에 생년과 이름을 입력하자 뜻밖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연예계 정보는 온데간데 없고, 영어로 된 야구 뉴스만 엄청나게 나왔던 것입니다. 다만 그것도 그것도 본인의 이름은 아니었고, 정확히는 그 선수의 미들네임에 P가 들어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일본계 미국인……사진으로 보면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한데.”

 

혹시나 싶어 검색결과를 좀 더 열어보았지만 별 다른 소식은 없었습니다. 저는 휴대전화의 화면을 끄고 침대에 벌러덩, 하고 크게 드러누웠습니다. 고개를 돌려, 손에 쥐고 있던 명함을 한 번 바라보며 이 명함의 주인이 했던 이야기를 되새겨 보았습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께서 걷고 있는 길을 자신의 길이라 확신하고 계십니까?]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저와 함께 찾아보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길을.]

‘나의 길…….’

 

그러자 이번에는 기다렸다는 듯 아버지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던. 옛 뱃사람들이 마음 놓고 고향을 떠날 수 있었던 이유가 떠올랐습니다.

 

‘언제든지 돌아올 길을 가르쳐주는 등대가 있기 때문에…….’

 

그러고 보니 저는 이 명함을 받을 때, 그 사람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보았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기는커녕 이야기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던 저인데,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요.

 

“한번 이야기를 해 볼까…….”

 

그의 명함을 바라보면서 저는 침대에 누운 채 생각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사람과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이에요.

 

 

------------<밤 바다의 이정표(下)>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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