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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 마스터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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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07, 2012 16:05에 작성됨.

하루카와 유키호의 오프닝을 시작으로, 다들 군데군데 배정이 되어있었다. 역시나 엄청난 인연이군. 우리 팀이 출전하게 된 현 대회와 전속계약을 할 줄은…

“그게 다 저번 치어걸 덕분이죠.”

아아.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알 것 같다. 드디어 그때의 일이 나 뿐만 아니라 이 녀석들에게도 빛을 비춰주는 건가.
다들 그쪽에 관심을 주는 틈을 타서 다시 한 번 남은 쪽지 중에 하나를 뽑았다. 쪽지에는 엄청난 악필로 ‘삼관왕’이라고 적혀있었다. 그것도 ‘관’은 한자가 아니라 히라가나로 써져서. 그러고 보니 이 대회. 개인 타이틀에 상금이라든가 주지 않았었나.
나는 부쩍 지출이 많아진 요즘을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다잡았다. 좋아. 돈이다. 돈. 삼관왕은 물론이고 타자가 따낼 수 있는 타이틀은 모두 따 보는 거다.

“좋아. 해보는 거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지만, 이미 녀석들은 리츠코가 물어온 건에 신경 쓰느라 아무도 날 보고 있지 않았다. 쳇.

슬슬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어 사무소를 나와 내 차를 향해 걸어가는데, 뒤에서 누가 날 부르는 것 같았다. 뒤를 돌아보니 서있는 사람은 의외라면 의외의 인물이었다.

“마코토?”

“아. 야구선수 씨.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뭔데. 부탁할 거라도 있어?”

“제가 이번 개막전에서 시구를 맡게 돼서요.”

마코토의 시구라… 뭔가 굉장한 장면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데 왜.”

“어릴 때 아버지랑 캐치볼을 하긴 했었는데, 아무래도 마운드에서 던지는 건 캐치볼이랑 다르겠죠?”

“많이 다르지.”

“그럼… 내일 시간이 비신다면, 제게 투구하는 법을 가르쳐주세요.”

“아니아니. 넌 그냥 던져도 잘할 것 같은데. 그리고 시구하는데 그렇게 공들일 필요도 없고…”

“그래도, 가르쳐주세요!”

마코토의 눈빛이 어째 승부욕에 불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다만, 그 시구에 전력을 다할 필요가 지금의 마코토에겐 있는 것 같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알겠어. 그럼… 내일… 음. 그래. 아침 9시 정도에 말이지. 우리가 쓰는 그 구장 알지? 와봤으니까. 그리로 올 수 있어?”

“물론이죠!”

“좋아. 그럼 그때 보는 걸로 하자고.”

“네. 고맙습니다. 야구선수 씨.”

“근데 대체 왜 시구에 집착하는 거야?”

“예? 아. 아하하… 그게… 뭘 하나 해도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할까.”

“그러냐… 확실히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걸 볼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내일 보도록 하자.”

“예! 아. 조심해서 가세요.”

“…여자에게 조심해서 가란 말을 듣는 건 처음이네.”



다음날 오전 9시. 약속대로 나와 마코토는 우리가 쓰는 구장에서 만났다. 오후에는 더운데다가 무엇보다 연습이 있으니까. 마코토는 야구모자에 연고팀 레플까지 입고 나와서 날 놀라게 했다. 뭔가 본격적이잖아.

“일단 하나 던져봐.”

왼손에 글러브를 끼고 배터박스 뒤에 앉았다. 그러자 마운드 위에 올라서 신기해하며 땅을 고르던 마코토는,

“로진 백(송진가루가 잔뜩 묻어있는, 투수들이 주물럭거리는 바로 그것)은 없나요?”

라고 물었다.

“…넌 지금 시구를 하겠다는 거냐. 아님 완투를 하겠다는 거냐. 그냥 던져.”

“에헤헤… 그럼, 던져보겠습니다.”

제법 폼을 잡는가 싶더니, 와인드업 후 하이키킹 모션을 취한 다음 나를 향해 공을 힘껏 내던졌다. 역시 어디서 본 건 많구만. 공은 의외로 스트라이크 존에 정확히 들어왔다. 글러브에 딱 소리가 나는 것도 그렇고 손에 느껴지는 세기도 그렇고, 확실히 저 나이 대 여고생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스피드와 구위였다.

“어떤가요?”

“굉장한데. 이 정도면 시구가 아니라 우리 팀 선발투수로 나와도 되겠어. 쌀집 아저씨보단 약간 못하지만.”

대충대충 봐줄 생각이었는데, 첫 번째 공을 받아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고등학교 때 잠깐 투수해봤던 경험을 살려 한 번 가르쳐보자.

“에? 투수도 해보셨다고요?”

“그래. 원래 고교야구는 멀티 포지션이 많아. 나도 우익수랑 투수랑… 가끔 3루도 봤지. 물론 프로 들어가면 자기가 가장 잘하는 포지션 하나만 집중하게 되지만.”

“투수하셨다면, 변화구도 많이 아셨겠네요? 저에게도 하나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커브라던가, 포크볼이라던가!”

“아니. 몰라. 저번에 너랑 히비키 야구용품 모델 할 때 말했잖아. 난 패스트볼이랑 슬라이더 그립밖에 몰라. 실제로 고등학교 때도 그거 두 개로 먹고 살았지.”

“에에? 겨우?”

“겨우? 임마. 투 피치를 무시하는 발언이냐, 그건? 패스트볼이랑 변화구 하나만 제대로 단련해도 충분히 무서운 투수가 될 수 있어. 08년도 베이징 올림픽 때 두 번이나 우리 대표 팀을 작살낸 한국의 좌완투수도 패스트볼이랑 슬라이더. 단 두 가지 구종으로 우리 타선을 물 먹였지. 물론 그 이후로 엄청나게 그 투수에 대해 연구해서 09년도 WBC에선 설욕했지만.”

“그럼 결국 안 먹혔다는 소리 아닌가요.”

“…시, 시끄러. 어차피 넌 시구하는 거잖아. 공 하나만 던지면 되잖아. 그냥 패스트볼 그립이나 가르쳐 줄게.”

“에에…”

마코토는 약간 부은 표정이었지만, 금세 표정을 풀고 내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패스트볼 그립과 던질 때 하체를 고정시키는 법을 가르쳐주자, 마코토는 내가 다 놀랄 정도로 빠르게 배워갔다. 하지만 역시 쉬운 일은 아니지. 30분 동안 마코토가 던진 공 개수는 이미 30구 가까이 되어가고 있었다.

“괜찮냐?”

“네.”

“어깨 아플텐데.”

“이 정도는 괜찮아요.”

“아니. 애초에 겨우 시구 한 번 하는데 뭔 전력투구씩이나 하려고 하는 거야? 요즘 아이돌들 시구하는 거 못 봤냐?”

“그래도… 이편이 더 재미있잖아요. 그리고 제대로 던져야할 이유도 있고요.”

“무슨 이유?”

“그건… 나중에 알게 되실 거에요.”

그렇게 10구 정도 더 던진 후, 마코토는 드디어 같은 나이대의 여자 야구선수도 흉내 내지 못할 엄청난 공을 완성했다. 공에 테일링(공 끝에 무브먼트가 걸리는 것)이 걸린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의 공이었다. 받은 내 손이 얼얼할 정도의. 쌀집 아저씨가 이 공을 봤다면 은퇴 해야겠다는 말을 했을 것이다.

“이 정도면 누가 네 공을 받게 될지는 몰라도 기겁을 할 거다.”

“헤헹. 역시 이 정도 하지 않으면 제대로 한 것 같은 느낌이… 아읏!”

오른팔을 빙빙 돌리며 웃던 마코토는 갑자기 인상을 찡그렸다. 당연한 반응이다.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전력투구를 안 해봤을 테니, 갑자기 40구나 던지면 통증이 오는 건 당연하다.

“그러니까 계속 물어봤잖아.”

“으… 그래도 평소에 단련한 게 있어서 40개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는데요…”

“쓰는 근육이 다르니까. 그 레플 안에 뭐 입었어?”

“그걸 왜 물어보세요?”

“대답이나 해.”

“우우… 검은색 탱크탑인데…”

“색까진 안 물어봤어. 탱크탑이라면 그거지? 여자들 운동할 때 입는 그거. 그럼 됐네. 아이싱해줄 테니까 레플 벗어.”

“에? 아. 예…”

오늘이 연습일이니 아이싱 팩은 준비해놨겠지. 덕아웃 냉장고를 뒤져 팩을 찾은 뒤, 마코토의 오른 어깨에 팩을 붙이고 비닐로 꽁꽁 묶었다. 그런 다음 다시 레플을 입게 했다. 물론 단추는 잠그지 않게 하고.

“그러고 앉아서 좀 쉬었다 가.”

“다, 다들 이러나요?”

“당연하지. 어깨가 그만큼 가열됐으니 식혀야지. 8회나 9회에 TV에서 덕아웃 비춰주면 그날 던진 투수들 펑퍼짐한 옷 입고 어깨 불룩 튀어나온 거 봤지? 그게 다 이거야.”

“아…”

“그리고 손 좀 보자.”

“으에엣-!”

마코토의 오른손을 덥석 잡았더니,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라는 바람에 내가 더 놀랬다.

“뭐, 뭐야?”

“아니. 아니에요…”

어쩐지 얼굴이 빨간데 더워서 그러는 건가. 어쨌든 손도 확인해봐야지. 다행히 손톱이 깨졌다거나 손가락이 벗겨졌다거나 하진 않았다. 간혹 프로에서 뛰는 투수들도 선천적으로 손톱이 잘 깨진다거나 손바닥, 혹은 손가락 피부가 벗겨져서 공을 오래 못 던지는 투수가 있는데, 혹시나 마코토도 그러지 않을까 하고 확인했지만 기우였다.

“그랬군요…”

“그래. 그래서 그런 투수들은 투구 수를 몇 구 이하로 제한시켜놓지. 중간계투로 말이야. 근데 넌 그런 것도 없고, 배우는 것도 빠르고, 공도 묵직하고… 어떻게 보면 타고난 것 같은데.”

“헤에…”

“자네. 야구 한 번 해볼 생각 없나.”

“그래도 전 역시 아이돌이 좋은 것 같아요.”

“그래? 그럼 자기가 좋은 걸 하도록 해.”

“그렇죠? 역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는데, 그런데 아버지라는 사람은…”

분위기가 어째 또 그 얘기를 할 것만 같았다.
결국 예감 적중. 아이싱을 하는 30분 동안 마코토는 계속 아버지 이야기를 늘어놓았으므로, 나는 한숨을 쉬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정말 고마웠어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그래. 간간히 오늘 가르쳐준 폼 연습해보라고. 또 공 가지고 전력투구 하지 말고. 쉐도우 피칭으로 충분하니까.”

“네-! 아. 그날 성공하면 꼭 보답할 테니까요!”

뭘 성공하면 보답하겠다는 거야? 제대로 미트에 꽂으면? 
마코토를 먼저 돌려보낸 후, 나도 슬슬 내 도구를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안녕-! 지금 어디야?]

이 활기찬 목소리는 히비키다. 녀석이 웬일이지.

“지금 우리 팀 구장이다.”

[에에- 다들 연습?]

“아니. 나 혼자야. 마코토가 공 던지는 법 가르쳐달라고 하길래 가르쳐주고 이제 집에 가려고 하는데.”

[뭐? 마코토가???]

“응. 왜 그렇게 놀라?”

[자, 잠깐. 잠깐 기다려! 거기 기다려! 내가 그리로 갈 테니까!]

“응? 뭐? 왜?”

[기다리라면 기다려줘! 금방 갈게-!]

전화는 그것으로 끊겼다. 나 참.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그리고 히비키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곧 밝혀졌다.

“뭐냐, 넌.”

히비키가 민소매 운동복에 야구 배트 하날 들고 개선장군처럼 나타난 것이다.

“어디 뭐 야쿠자 항쟁이라도 있나.”

“틀리다구!”

히비키가 나를 향해 다가와 한다는 말이,

“치는 법 좀 가르쳐줘.”

“넌 또 왜.”

“물론 내가 이번 대회 시타를 하기로 했으니까.”

그제야 마코토가 그렇게 맹연습을 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것들 또 시구 시타한다고 서로 같잖은 승부욕에 불탔던 거군.

“어이. 시구를 전력투구하는 것도 충분히 문제긴 하지만, 시구를 쳐버리는 건 좀 그렇지 않냐.”

“아니. 이미 시구 시타의 레벨을 초월했다고 생각해. 개막식을 화려하게 장식할 불꽃의 1구 승부라구.”

“아아… 어쩐지 싫은 예감.”

“내가 치는 모습. 조금만 봐줘. 마코토의 공 따위 오키나와까지 날려 줄 거니까!”

“공을 쳐서 오키나와까지 날릴 수 있다면 넌 이미 아이돌 따위 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해.”

“어, 어쨌든! 마코토만 가르쳐주고 난 안 가르쳐주지는 않겠지? 형평성에 어긋나잖아.”

“형평성이고 자시고… 휴. 그래. 가르쳐 줄게. 가르쳐 준다고.”

“흐흥. 일본 야구최초로 시타자가 시구를 받아쳐서 홈런 날리는 걸 보여주겠어!”

일본야구 최초가 아니라 세계 최초일 것 같은데. 어쨌든 이렇게 됐으니, 히비키에게도 대충 가르쳐주기로 하고 히비키를 배터박스에 세웠다. 물론 피칭머신이 없으니 배팅볼 투수는 짤없이 내가 해야 했다.

“자. 자세 잡아봐 처음엔 살살 던져줄 테니.”

“좋아. 언제든지 오라구!”

히비키는 씩 웃으며 자기 나름대로의 자세를 취했다. 자신의 몸을 완전히 투수에게 열어 보이는 것 같은 타격자세에 나는 살짝 놀라며,

“뭐냐. 그 극단적인 오픈스탠스는. 너 야구 해본 적 있었냐?”

“오픈… 뭐? 뭐야, 그게.”

…아무래도 그냥 자기 마음대로 자세를 잡은 것 같군. 오픈스탠스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한테는 힘들 거 같은데.

“어쨌든, 던진다.”

살짝 던져주려다가, 히비키의 뛰어난 운동신경이 생각나 살짝 속도를 붙여서 던지기로 했다. 포수는 없지만 대충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가게 던졌더니, 히비키는 의욕만 살아서 엄청난 풀스윙을 했지만 역시나 헛스윙이었다.

“으엑-!”

“…바보냐. 너. 스윙이 너무 빨라.”

다시 던졌다. 이번엔 속도를 조금 줄여서. 
히비키는 이번에도 시원하게 헛스윙을 했다. 어찌나 스윙을 크게 하는지 히비키의 몸이 스윙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한 바퀴 빙글 돌 정도였다.

“고, 공이 너무 느려서 그래! 더 빨리 던져봐!”

“그으래?”

전력투구까진 아니지만 7~80%정도 힘을 내서 던졌다. 거의 아까 전의 마코토 수준으로. 그랬더니 이번엔 스윙이 늦었다.

“너무 빨라!”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 참고로 지금 던진 공이 마코토가 아까 전에 던진 공이랑 구속이 비슷할 거다.”

“뭐? 그, 그럼 다시 던져봐!”

이번엔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스윙이 너무 빨랐다. 이건 중증이다. 야구 초보의 모양새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 역시 운동신경과 요령은 별개다. 새삼 깨달았다.

“우으… 왜 이리 안 맞는 거야…”

“히비키. 니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히팅포인트 있지?”

“히팅포인트? 아. 지금 쳐야겠다. 라고 생각하는 그거?”

“그래. 그걸 좀 늦춰. 넌 지금 공을 너무 앞에서 보고 있어서 그래. 조금 더 땡겨. 기다리라는 말이다.”

“음… 해볼게.”

히비키가 히팅포인트를 잡아가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구속을 조금 느리게 해서 던졌다. 그랬더니 이번엔 공을 빗맞춰 뒤로 날아가는 파울을 만들어냈다.

“그래. 지금보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 때려. 이제 ‘스윙이 너무 빠르다.’라는 거 이해하겠어?”

“응! 뭔가 감을 잡은 것 같다구!”

그렇게 공 서너 개를 더 던지자, 히비키는 그제야 배트 중앙에 공을 맞췄다. 타구는 꽤나 멀리 날아가 투바운드로 펜스를 맞췄다. 여고생이 저 정도 비거리면 엄청난 건데 말이지.

“굉장해! 딱하고 맞는데 손맛이라고 할지… 어쨌든 엄청났다구!”

“그래. 배팅은 파워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타이밍이야. 힘이 아무리 좋아도 공이 제대로 맞지 않으면 소용없어.”

“응, 응. 알 것 같아.”

“그러니까 잘 치는 타자들은 공을 ‘잡아놓고 친다.’라고 해. 자기가 원하는 히팅포인트에 공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친다는 거지. 그리고 투수들은 그 타이밍을 빼앗기 위해 타자들의 허를 찌르는 유인구를 던지는 거고. ‘배팅은 타이밍이고 피칭은 그 타이밍을 빼앗는 것이다.’라고 말했던 게 누구였더라…”

그 이후로도 나는 계속 공을 던져가면서 히비키를 지도해주었다. 기어이 홈런을 치고 말겠다는 히비키를 위해, 나는 파워가 약한 타자들도 홈런을 칠 수 있는 방법. 즉. 배트스피드를 가장 빠르게 할 수 있는 타격법을 약간이나마 가르쳐주었다. 

07년도 코나미컵.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일본의 우승팀 주니치와 한국의 우승팀과의 경기를 직접 현장에서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날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다른 무엇도 아닌 한국 우승팀 소속 노장 좌타자의 솔로 홈런이었다. 
그때의 일은 아직도 기억난다. 4대1에서 4대2로 따라붙는 홈런. 정말 보는 사람의 등골마저 서늘해지는 엄청나게 빠른 스윙으로, 나중에 TV로 보니 스윙 이후 카메라가 관중석을 비춰주기도 전에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버릴 정도로 타구가 빨랐다. 그 장면을 내야석에서 본 나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그 이후부터 배트스피드를 빠르게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좌타자는 전성기 때 한국의 누구보다 빠른 배트스피드로 ‘캐넌’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였다고 한다. 내 생각이지만, 그 정도의 스피드면 일본에서도 따라올 선수가 없을 것 같은데. 있다고 하면 오가사와라 정도일까.

어쨌든 히비키에겐 그때 충격을 받은 후에 익힌, 배트스피드를 극한으로 빠르게 하는 타격자세를 가르쳐주었다. 마코토와 마찬가지로 히비키 역시 배우는 속도가 상당히 빨라서, 뭔가 가르쳐주는 보람이 있었다.

“어이. 그쪽 다리 좀 더 벌려.”

“아얏! 발로 치지 말라구.”

“그럼 어떻게 하라고. 팔로는 니 지탱해주느라 바쁜데. 어이 팔꿈치 더 벌려.”

“우걋-! 거긴 건드리지 마!”

“뭐야. 그 쓸데없이 큰 반응은!”

“여자의 몸을 그렇게 함부로 만지는 게 어딨어!”

“누가 보면 성추행이라도 하는 줄 알겠네!”

“거의 성추행 급이거든!!”

대충 이정도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거의 1시간 동안 가르친 끝에, 히비키는 내가 마코토가 던진 것과 비슷한 속도로 던진 공에도 정확하게 반응하여 때려내게 되었다. 정말이지 몸으로 하는 건 잘하는 녀석들이다. 마코토도, 히비키도.

“흐흥. 이 정도라면 마코토의 공 따위. 한 칼에 베어버릴 수 있다구!”

“그래. 잘해봐라.”

이렇게 되니 문제는 다른 게 아니라 내 체력이었다. 장장 두 시간동안 공 받고 던지고 줍고… 이제 오후에는 연습까지. 끝장이구만.
무엇보다 결정타는 히비키 때문에 아까 마코토가 던진 것 이상으로 공을 던졌더니, 오랜만에 던져서 그런가 어깨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젠장. 너 때문에 부상당해서 삼관왕 날아가면 니가 상금 내놔.”

“그건 무슨 억지야.”

“망할.”

“어쨌든, 고맙다구. 만약에 정말 마코토 공을 담장 밖으로 날려버리면 꼭 보답할 테니까.”

“그러던지.”

“자. 그럼 난 이만 갈게!”

“……(이 시점에서 대답할 힘마저 잃었다.)”

역시 오랜만에 전력투구는 무린가. 고등학교 땐 3~40구 정도는 무리 없이 던졌는데. 안하다보니 여기저기 쑤시고 죽겠네. 이따 연습 땐 어쩐다.

결국 연습 때까지도 통증이 가시지 않아 어깨가 아프다는 걸 이유로 배팅도 설렁설렁. 그냥 갖다 맞추는 것만 집중하기로 했다. 감독님과 팀원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별일 아니라고 웃어넘겼다. 
그 녀석들. 그렇게 연습을 시켜놨으니 시구 때 아주 난리가 나겠군. 마코토나 히비키나 하는 거 보니까 내 눈이 다 돌아갈 지경으로 잘 배우던데 잘하면 몇몇 선수들은 의욕을 잃고 사회인 야구 때려치울지도 몰라. 당장 우리 팀에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인데. 제발 우리팀원들이 얘네들 시구시타하는 것은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팀 해체되면 대회에도 못나갈 테니. 그럼 내 돈… 아니. 타이틀도 날아가는 게 아닌가.



집으로 돌아와 씻고 나온 다음 다시 어깨에 아이싱을 했다. 아무래도 어깨가 뭉친 거 같은데, 아마 내일이나 모레 정도면 풀어질 것 같다.
무거워진 오른팔 대신 왼손으로 냉장고 문을 열어 마지막 남은 맥주 캔을 꺼내 간신히 뚜껑을 땄더니, 전화가 왔다. 요즘 집에서 막 쉴라고 하면 이렇게 된다니까. 이 녀석들이 내 집에 CCTV를 달아놨나.

전화번호는 못 보던 번호였다. 약간 움찔했지만 그래도 받기로 했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야구선수 씨. 저 아마미 하루카인데요…]

으잉. 하루카가 나에게 전화를?

“무슨 일인데.”

곧이어 나온 하루카의 말은 나에게 뭔가 데자뷔를 느끼게 하는 말이었다.

[도,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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