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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 마스터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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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07, 2012 16:05에 작성됨.

“수고하셨슴다-”

바다에서 돌아온 다음날의 원정경기. 우리 팀은 7대5로 승리를 거두었다. 나의 기록은 6타수 4안타 3타점 1득점. 오늘은 운 좋게도 내 타석 때마다 주자가 쌓여서 그때마다 휘둘러줬다. 팀원들은 경기가 끝난 후, ‘드디어 우리 팀에도 에이스가 생겼다.’며 또 나를 실컷 두들겼다. 생겼으면 생긴 거지 대체 왜 때리는 거야. 어디서 본 것만 있어가지고 말이야.
강하게 맞은 곳을 문지르며 내 도구들을 정리해 가방에 쑤셔박고 있는데, 주장이 내게 다가와 어깨를 툭 건드렸다.

“라팔이 어찌 된 거야? 연습 하루 쉬고 바다 갔다 왔다고 들었을 땐 흠씬 두들겨주려 했는데 말이다.”

“…어차피 맞은 건 매한가지잖아요.”

“주먹의 강도가 다르지. 오늘 만약 삽질했으면 지금의 세 배는 더 아프게 맞았을 거다.”

“허허…”

“그나저나, 요즘 확실히 물이 오른 것 같은데 뭔 심경의 변화라도 있는 거냐? 1년 내내 죽 쓰던 놈이.”

“심경의 변화라… 뭐. 그렇다고 치죠.”

“그러냐. 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잘해보자.”

“네이.”

주장은 내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치고 돌아갔다. 원채 근력이 강한 사람이라 등짝에 불이 나는 것 같았지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확실히 맨날 선풍기질만 해대고 뒤에서 욕이나 들어먹을 때보단 지금이 훨씬 낫다. 

가방을 챙겨 구장 밖을 나오니, 오늘 단역 오디션이 있었다던 아미와 마미와 이오리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뭐야. 니들 언제 온 거야? 오디션은?”

“흥. 이 이오리쨩에게 걸리면 그런 시시한 것쯤은 낙승인 걸로 정해져 있잖아.” 

“낙스응-!”

이오리의 양 어깨를 서로 붙잡은 쌍둥이 자매는 나머지 한 손으로 내게 V자를 그려보였다. 셋 다 잘 된 모양이군. 다행이다.

“그럼 끝나고 곧바로 여기로 온 거냐?”

“그래.”

“별일이네. 아미랑 마미는 몰라도 네가 날 보러올 줄은.”

“누가 누굴 보러와? 난 그냥… 아미랑 마미가 여기 오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따라온 것뿐이니까!”

나는 사실을 알고 싶다는 얼굴로 아미와 마미를 바라보았다.

“응~후~후. 과연 그럴까나.”

“우리들도 잊고 있었는데, 이오링이 먼저 ‘오늘 시합 있지 않아?’라고 말했었지, 아마.”

“그, 그, 그건 말하지 않기로 했었잖아!”

금세 얼굴이 빨개져서 소리치는 이오리가 왠지 귀여웠다. 뭐니뭐니해도 내게 진짜 바비큐 파티 기분을 내게 해준 장본인이니까. 지금이라면 한 일주일 정도는 뭘 해도 귀여울 것 같았다. 79이하라도 용서해줄게. 저 키에 77이면 C컵이라고 하지 않은가. 어떻게 보면 저 녀석도 2,3년 후가 기대된다. 물론 옆에 있는 아미와 마미만큼은 아니지만.

“그래서. 나의 활약은 잘 봤느냐.”

“6타수 4안타였지. 점수도 몇 점 냈고.”

“그래. 후후후.”

“하지만 홈런이 없었잖아.”

“마미. 선수오빠의 홈런볼 잡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홈런이 ‘나 홈런 칠래!’하고 치면 뚝딱하고 나오는 건 줄 아냐.”

“흥. 결국 네 한계가 그거라는 거네.”

이오리의 방금 발언은 내 일주일어치 호감도를 5일 정도로 떨어뜨리는 말이었다. 예전이었더라면 곧바로 으르렁거렸겠지만, 지금의 나는 꽤 관대해져 있으니까. 저 정도는 참아주지.

“자. 그럼 세 사람의 오디션 합격 축하 기념으로 내가 저녁이라도 사주지. 가자.”

“정말?”

“만세! 역시 선수오빠 최고!”

“흐응. 그럼 내가 자주 가는 별 다섯 개 짜리…”

“아니. 생각해보니 역시 됐어. 이만 해산하도록.”

“에에에??”

“이오리잉-!”

“니히힛. 농담이야. 저 변변치 않은 남자에게 그 정도의 자금력이 있을 리가 없으니.”

애석하게도 반박할 수 없었다. 더러운 물질만능주의! 나도 돈 줘! 돈!

“길가다 백만 엔 정도 떨어졌으면 좋겠다.”

“속물.”

“진짜 백만 엔이 내 앞에 떨어진다면 속물 소리 2천 번 정도는 더 들을 수 있어.”

“그 이상은?”

“마음 상할지도.”

“대범하지 못한 남자네.”

“2천 번 정도면 많이 봐준 거라고 생각하는데, 대체 이오리 네 ‘대범한 남자’의 기준이 뭐냐. 마하트마 간디나 공자 정도는 되냐?”

“하루에 열 번씩 채찍으로 맞고도 아무 말 하지 않는 남자.”

“………”

이오리의 말에 나는 물론이고 아미와 마미까지 이오리를 겁먹은 눈초리로 보기 시작했다. 그걸 깨달은 이오리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 다, 당연히 농담이잖아. 왜 이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거야? 아미랑 마미까지!”

“아니. 이오링이 그런 말을 하면.”

“전혀 농담같이 들리지 않아.”

“좋은 사람 찾길 바란다. 이오리.”

“잠깐--!!!!”



결국 내가 세 사람에게 사준 건 붕어빵이었다. 아미와 마미가 먼저 붕어빵을 요구했기에, 밥 안 먹고 이걸 괜찮겠냐고 물어봤지만, ‘하루 정도면 괜찮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오리 역시 별다른 토를 달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맥주 한 캔을 따고나서 생각해보니, 어째 자의든 타의든 765 프로덕션의 아이돌들과 엮이지 않는 날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이러다 정말 덜컥 프로듀서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버리는 게 아닌지.
뭐. 좋을 것도 없지만 나쁠 것 또한 없나. 천천히 생각해보면 뭐든 답이 나오겠지.

맥주 캔을 들어 막 입으로 가져가려는 순간, 갑자기 내게 메일이 한 통 왔다.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미우라 씨였다. 미우라 씨가 내게 메일을? 왠지 두근두근한 마음에 내용을 확인해보니,

[도와주세요.]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대, 대대대대대대체 무슨 일이지? 내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빨리 미우라 씨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가는 그 몇 초 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내가 미우라 씨의 뭣도 아닌 주제에 말이다. 그냥 아는 사람. 그것도 미인(게다가 F)이 내게 직접 도와달라는 메일을 보낸 건 내 인생 처음이라 뭔가 혼란스러웠다. 미우라 씨가 나를 의지하고 있으니까 이런 메일을 보낸 거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기도 했다가, 곧 무슨 나쁜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가 난리법석이었다.

[여보세요?]

“아. 미우라 씨! 대체 무슨 일입니까!”

[에? 무슨 일이라뇨?]

뭐지. 이 반응은.

“방금 전에 메일로 ‘도와주세요.’라고 보내지 않으셨나요.”

[제가요? 그런 일이 없는데요. 무엇보다 방금 전이라면 제 핸드폰은 미키가 가지고 있기도 했고…]

타이밍 좋게 미우라 씨의 목소리 뒤로 미키의 목소리로 추정되는 ‘미키의 승리인 거야!’라는 목소리와 히비키의 목소리로 추정되는 낙담한 기색의 목소리가, ‘알겠다구… 딸기 바바루아면 돼?’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그런 거군. 대충 알겠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미우라 씨.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주시겠습니까?”

[예? 아. 예. 야구선수 씨의 부탁이라면 들어드려야죠. 항상 신세지고 있는데.]

“감사합니다. 제 부탁이란 게 다름이 아니라… 거기 아직 사무소죠?”

[예. 사무실이랍니다.]

“미우라 씨가 어떻게든 히비키랑 미키 둘을 집으로 못 가게 막아주실 수 있나요? 제가 시켰다는 말은 하지 말고.”

[음… 해볼게요. 근데 왜 그러시나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럼 이만.”

전화를 끊자마자 미친 듯이 방으로 달려가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옷을 갈아입고 눈썹이 휘날리도록 집 밖으로 뛰어갔다. 곧바로 주차장으로 달려가 내 차의 문을 열고 뛰어 들어가 시동을 걸자마자 밟았다.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분노였다. 이번에야말로 가만두지 않으리라.

“으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엑셀을 미키와 히비키라도 되는 듯이 밟았다. 계속 밟았다. 꾹꾹 힘줘서 밟았다.
지금까지 우리 집에서 사무소로 내 차를 끌고 갔던 것 중에 가장 시간이 적게 걸린 것 같았다.
차를 적당한 곳에 세우자마자 문을 박차고 나와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계단이고 나발이고 내 눈엔 보이지 않는다. 그냥 올라갔다. 
3층에 도착해 사무실의 문을 벌컥 열자, 막 집에 가려고 했는지 문 앞에 미키와 히비키 두 사람이 서있었고, 그 뒤에 미우라 씨가 그 둘을 난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 미우라 씨가 마지막까지 둘을 막으려 했는지, 둘은 그때까지 미우라 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아즈사. 그건 내일 하기로 하고, 미키는 이만… 히익?!”

히비키보다 먼저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던 미키는 자연스럽게 나와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그러자 미키의 표정은 뭔가 대단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응? 뭐야, 미키. 귀신이라도 본 표…정을…”

히비키 역시 나와 눈이 마주치고, 곧바로 사색이 되었다.

“아, 아, 아저씨… 여, 여, 여긴 왜 온 거야? 이 시간에.”

“왜 왔을 것 같냐.”

“미, 미키는 모르겠는 거야.”

“정녕 네가 모른다고 말할 수가 있어?”

“으, 응! 아하, 아하하… 미키는 전혀…”

“나, 나도 모르겠다구…”

처음엔 시치미를 떼던 그녀들이었지만, 내가 아무 말 없이 노려보고 있자 점점 눈동자가 떨리고 몸이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보고 있는 미우라 씨가 갑자기 고개를 옆으로 돌린 것은 그때였다.

“아. 리츠코 씨. 끝나셨나요?”

미우라 씨의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은 마치 새하얀 도화지 그 자체였다.

“네. 아즈사 씨. 어머. 야구선수 씨? 이 시간에 어쩐 일로?”

후후. 이렇게 도와주는군. 
나는 두 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리츠코에게 다가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일체의 가감 없이 설명했다. 물론 내 휴대폰의 메일도 보여주면서.

“너…희…들…”

오오…방금 리츠코 등 뒤에서 후지산이 폭발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이후, 리츠코는 두 녀석을 내 앞에 꿇어앉혀놓고 장장 30분간의 설교를 늘어놓았다. 설교가 끝났을 때쯤엔 두 녀석은 물론 보고 있던 나까지 지쳐버릴 정도였다.

“자. 제대로 사과드려.”

“아저씨… 미안한 거야…”

“잘못했다구…”

이렇게까지 되었는데 또 용서를 안 할 수가 없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두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 이 정도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미키가 저번부터 리츠코 얘기만 나오면 겁부터 먹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뭐. 그렇게 여차저차해서 미키와 히비키. 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무소를 나오자마자, 두 사람이 동시에 볼에 바람을 잔뜩 집어넣고 따졌다.

“미안.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어. 그리고 애초에 잘못한 건 니들이잖아.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마시던 캔 맥주까지 놔두고 왔다고. 아아. 지금쯤이면 김 다 빠졌겠네. 니들도 후딱 돌아가.” 

하지만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날 보고 있을 뿐이었다.

“뭐야. 안 가고 뭐해.”

“하지만 미키. 30분 동안 무릎 꿇고 있었더니 다리가 너무 아픈 거야.”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냐.

“…알겠다. 집까지 태워줄게.”

“됐다-!”

다리가 아프다던 주제에 자리에서 깡충깡충 뛰며 좋아하는 미키를 보자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뭐. 온 김에 봉사한다고 치지. 맥주는 이미 작살난 것 같으니. 미키와 함께 내 차를 향해 가려는데, 어째 히비키는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안 오고 뭐해? 넌 그냥 갈 거냐?”

그러자 히비키는 과장되게 힘든 표정을 지으며,

“난 아예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겠다구.”

“그럼 어쩌라고.”

“업어줘.”

“…넌 그냥 그러고 있어. 둘이 갈 테니까.”

“우갸-! 그런 게 어디 있어!”

결국 자기 다리로 걸어왔다.
뒷좌석에 히비키가, 조수석에 미키가 폴짝 올라탄 것을 확인하고 차를 출발시켰다. 얼마쯤 갔을까, 미키가 문득 입을 열었다.

“미키. 오늘의 보컬 레슨은 미키 스스로도 잘 됐다고 생각해.”

“그거 잘됐네.”

“그러니까 노래 불러볼게.”

“뭐? 지금?”

“응.”

설마 이 녀석도 타카네의 ‘보답’에 대해서 들은 건가. 이유는 모르겠다만, 정말 뜬금없네. 별로 안 될 것도 없겠다는 생각에 바로 카 오디오를 껐다.

“마음대로 해봐.”

그러고 보면, 그때의 타카네도 꽤나 타카네다운 노래를 불렀었는데, 미키도 그럴까. 미키다운 노래라면 도대체 뭘까. 짐작이 잘 안 간다.

“음, 음. 아- 아- 아- 응. 좋은 거야.”


♬ 수면부족 - 호시이 미키


오늘도 언제나처럼 수면부족
머리가 아파져와
언제나 같은 학교의 언제나 같은 교실
저 애는 오늘도 활기차네.

수면 수면 수면 수면 
수면부족


“푸웁-!”

너무나도 미키다운 노래라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뒤에서 들려오는 킥킥거리는 소리는 히비키 역시 웃고 있다는 걸 반증하고 있었다. 미키는 그런 두 사람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계속 노래를 불렀다.


아아 하늘은 이렇게나 푸른데
바람은 이렇게나 따뜻한데
태양은 정말 밝은데
어째서 이렇게 졸린 거야?

수면 수면 수면 수면 
수면부족


미키는 노래를 끝내자마자 게슴츠레한 눈으로 날 쏘아보았다.

“왜 웃은 거야? 미키. 진지하게 노래하는데.”

진지하게… 불렀다고 해봤자 가사 내용이 전혀 진지하지 못하다고. 하지만 미키의 마음은 이해한다. 노래 부르는데 옆에서 웃으면 기분이 좋지는 않겠지.

“아니, 아니. 가사가 너무 너답다고 해야 하나…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어. 미안.”

“미키다워?”

“응. 가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

“나도 그래서 좋아하긴 하지만… 으응. 그래도 웃으면 안 돼는 거였어.”

“미안.”

“나도 미안하다구.”

“원래는 다른 노래를 부르려고 했던 거야. ‘눈물의 허리케인’이라던가. 하지만 그건 댄스 없이는 노래가 살지 않는다고 생각해.”

라고 말하며, 미키는 곧바로 그 노래로 추정되는 멜로디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어때, 어때?”

라고 해봤자 가사조차 없는 콧노래가 전부였지만.

“나중에 꼭 듣고 싶은걸.”

“응, 응. 기회가 되면 그건 꼭 댄스와 함께 해줄 테니까. 기대하고 있는 거야.”

“그래. 기대할게.”

“그럼. 미키의 보답은 이걸로 된 거지?”

역시 들었구나. 밤바다를 배경으로 들은 그 몽환적인 노래와 차 안에서 불러대는 귀여운 노래랑은 스펙 차이가 엄청나다지만, 그래도 이건 이것대로.

“그럼 히비키 너는?”

“윽. 나? 난… 그, 그래. 나 역시 댄스가 필요하다구. 나중에 보여줄게.”

“호오. 역시 기대되는군.”

“물론이지! 나. 댄스든 노래든 뭐든지 완벽하니까!”



다음날.

연습이 끝나고 감독님이 팀원 전원을 집합시켰다.

“갑작스럽겠지만, 다음 주 주말부터 바로 친선대회가 잡혔다. 룰은 작년과 동일. 우리 현에 있는 사회인 야구팀들이 모여 진행하는 32강 토너먼트다.”

아아. 그 연례행사 말인가. 1년에 한 번씩 하는. 작년엔 32강 광탈이었지. 물론 그때의 내 기록은 5타수 무안타.

“크흠. 작년에는 1회전 탈락이었지만, 올해는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드디어 방망이에 불을 붙이기 시작한 놈이 한 명 생겼으니까.”

내 얘기겠지. 그래도 동네 리그보다 확실히 이런 친선대회에 더 눈길이 쏠릴 텐데, 어떻게 할까. 역시 갑자기 다시 삽을 푸는 것보다는, 해왔던 대로 치는 게 낫겠지.
감독님은 그 밖에도 대회에 대비한 몇 가지 지시사항을 전파한 다음, 그대로 우리를 해산시켰다.

가는 길에 팀원들 몇몇이 ‘이젠 기대해 봐도 되겠지?’라며 내 어깨를 툭툭 치고 갔다. 어째 또 고교 야구부 때랑 똑같이 된 기분인데. 이렇게 된 이상 조금 힘을 내보자.

“라고 생각해서 말인데…”

연습이 끝나고 곧바로 야요이와 유키호가 있는 곳으로 간 나는, 그녀들을 차에 태워 사무소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번엔 그녀들과 같이 사무소로 들어갔다. 그 이유는 바로,

“대충대충 치는 것보단 역시 목표가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래서 생각한 건데, 니들이 한 번 이번 대회에서 내가 노려볼만한 ‘목표’를 종이에 적어서 접은 다음에 나한테 주는 거야. 그럼 내가 그 중에 하날 뽑아서 그걸 목표로 삼아볼 테니.”

“호오--”

다들 내 말에 뭔지 모를 감탄사를 자아냈다. 이런 친선대회에서 내가 목표를 정하긴 좀 재미가 없어서 생각해본 건데, 다행히 다들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자. 그럼 다 쓴 사람은 이 테이블 위에 놔줘. 부탁할게.”

다들 무언가 쓰러 쪼르르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오토나시 씨가 타준 커피를 음미했다. 한 10분 정도 지났을까. 다들 내 앞에 쪽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뭔가 쓸데없이 오래 걸린 녀석도 있는데 뭐라고 썼을지 궁금하군.
쪽지를 이리저리 섞은 다음, 눈을 감고 가장 먼저 잡힌 쪽지 하날 집어들었다. 그리고 바로 펼쳐서 써져있는 내용을 읽었다.

“30홈런 100타점.”

…………잠깐.

“이거 쓴 녀석 누구야.”

“넷-! 아미입니당-!”

“프로야구 전 경기를 풀로 돌려도 30홈런 100타점 하는 놈은 손에 꼽는다고. 32강 토너먼트에서 결승까지 전 경기 치러봤자 다섯 경기인데, 다섯 경기 100타점은 고사하고 30홈런이 말이 되는 소리냐? 배리 본즈 할아버지가 와도 못해!”

“에에---”

“그런 이유로 다시 뽑겠습니다.”

두 번째 쪽지.

“노히트노런. 이건 또 누구야.”

손을 든 건 하루카였다.

“내가 투수냐!!!”

그러자 하루카는 땀을 흘리며 어딘가 다른 곳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대충 のヮの 이런 표정이 되어서 말이다.

“어, 얼레. 노히트노런이란 게 타자가 하는 기록 아니었던가…?”

“틀렸어! 절대로 틀려먹었어! 타자가 노히트노런이라는 건 결국 나보고 안타 하나  치지 말라는 뜻이잖아. 감독님이 날 죽이려들 거다. 이것도 기각. 다음 쪽지.”

세 번째 쪽지. 뭔가 깨알같이 빽빽이 적혀있었다.

“야구선수 씨의 영웅적 활약으로 드디어 결승전! 그곳에서 만난 상대는 다름 아닌 운명의 숙적… 그가 던지는 160KM의 강속구에 팀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남은 것은 야구선수 씨의 마지막 타석 뿐. 765프로의 미래를 위해 야구선수 씨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타석에 선다. ‘후후후… 드디어 올라왔군. 보아라. 널 쓰러뜨리기 위해 20년간 수련해온 이 공포의 마구. 드디어 봉인을 풀고 일본 야구계를 공포에 떨게 만드는 거다. 그 첫 번째 제물은 바로 너야!’ ‘큭. 이럴 수가. 하지만 난 절대 여기서 쓰러질 수 없어. 765 프로의 모두를 위해!’ …라니. 이 막장소설은 대체 누가 쓴 거야?”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뒤편에서 누군가 달려가는 소리와 함께,

“안 돼, 안 돼! 코토리이이이잇--!!”

이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문이 쾅 닫혔다.
아무래도 이건 오토나시 씨가 쓴 것 같았다. 뭔가 조신하기만 할 것 같았던 오토나시 씨의 인식을 한 방에 바꿔버린 쪽지를 보며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오토나시 씨가 뛰쳐나간 문으로 리츠코가 들어왔다.

“아. 마침 다들 있었구나, 어머. 야구선수 씨도? 무슨 일 있나요?”

“아니. 별 거 아냐. 이번 친선대회의 목표를 설정하고 있었어.”

“친선대회라면… 설마 이건가요?”

리츠코가 내민 것은 왠 서류였다. 서류를 쭉 훑어보니, 과연 우리 팀이 출전하는 그 야구대회가 맞았다.

“응. 이거 맞는데 네가 왜 이걸 가지고 있는 거야?”

“그야 저희 프로에서 그 대회 행사를 주관하기로 했으니까요. 개막식전 행사라던가, 폐회식 때 트로피 수여라던가 이것저것.”

“오오?”

내 감탄사를 시작으로 아이돌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리츠코에게 다시 서류를 받아서 죽 훑어보기 시작했다. 리츠코의 말대로 두 장째의 서류는 그에 대한 계약서 비슷한 것으로 보였다. 하긴 작년에도 누군가 나왔었지. 무대라고 돼지 콧구멍보다 좁은 무대이긴 했지만.

서류의 아래쪽을 보니, 이미 나올 아이돌들의 순서까지 대충 짜 맞춘 것 같았다. 리츠코가 서류를 달라고 해서 자세히는 보지 못했지만, 개막식 행사의 첫 라인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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