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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 마스터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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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07, 2012 16:04에 작성됨.

밖으로 나가보자. 밤바다를 보면서 산책이라도 하면 딱 좋겠군. 슬쩍 시계를 보니 11시 35분. 한 삼십 분 걷다 들어오면 되겠지. 
민박집 밖으로 나서려다 주인아주머니를 만났다. 잠시만 산책 좀 하고 오겠다고 했더니, 밖에 한 사람 더 있을 테니 올 때 같이 데려오라는 말을 했다. 나 말고 잠 안 오는 녀석이 또 있나.

민박집은 바닷가에서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있었기에, 조금만 걸어도 금방 모래사장이 발에 밟힌다. 사람이 없어 고요한 바다에는 파도소리와 내 슬리퍼가 모래를 밟고 있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바다조차 몇 번 와보지 못한 나는 지금껏 밤바다라곤 TV에서밖에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꽤나 생소한 광경이라고 할까, 어째 꿈속에 와있는 느낌이 들었다.

문자 그대로 그림 같은 풍경이라고 할까. 오늘따라 달은 또 무지하게 크고 밝았다. 밤바다를 환하게 비춰주는 달 아래 조용히 흔들리고 있는 파도, 달빛을 받아 더욱 더 반짝이는 모래사장, 그리고 그 위에 서 있는… 

헉.

“뭐, 뭐야.”

나보다 먼저 와서 달빛 아래 서 있는 한 여자가 보였다. 순간 심장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자세히 보니 뒷모습이 낯익었다.

“타…카네?”

내 목소리를 들은 여성의 고개가 내 쪽으로 빙글 돌았다. 순간 목이 180도 돌아가는 호러영화를 생각했지만,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

“야구선수 씨. 이 밤에 어인 일이신지.”

“그러는 너야말로.”

다행히 내가 아는 그 시죠 타카네가 맞는 것 같았다. 아. 살짝 쫄았네.

“안자고 뭐해? 나야 뭐 아직 잘 시간이 아니라 좁아터진데 틀어박혀있기 뭐해서 나온 거지만.”

“달을 보고 있었답니다.”

“달?”

나는 타카네의 시선을 따라 하늘 위를 올려다보았다. 아까도 느꼈지만, 오늘의 달은 유난히 크고 눈부시도록…

“푸르다?”

“예?”

나도 모르게 감상을 입에 올렸더니, 타카네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니. 눈에 보이는 달은 저렇게 하얀데, 왜 하얀 달이라고 하지 않고 푸른 달이라고 할까. 생각하고 있었어.”

“후훗… 야구선수 씨는 생각했던 것보다 시적이시군요.”

“딱히 감상적인 성격은 아니야. 달이랑은 그래도 친분이 있으니까.”

“친분…입니까?”

타카네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지만, 왠지 내 말에 흥미를 느낀 것 같았다. 내가 그냥 때려 맞춘 것뿐이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라는 생각에 이야기를 해주기로 했다.

“언론에서도 그랬고, 내 스스로도 내가 게으르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학생 시절엔 꽤나 연습벌레였거든. 단지 훈련의 방식이 다른 이들과 다를 뿐이지. 나도 열심히 한다면 열심히 했다고 생각해.”

“그랬군요.”

“그때의 난 목표가 확실했으니까, 그 목표를 위해서라면 귀찮은 것도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어. 그런 내게 하루 24시간은 너무 짧았어. 그 24시간 중에 반나절밖에 야구에 할애할 수 없다는 것도 납득이 되지 않았지. 그래서 밤에도 혼자 배팅연습 하고 그랬지. …라기보다는. 난 낮에는 대충하고 밤에 확실히 하는 게 습관이라서 말야.”

타카네는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환한 달빛을 받은 그녀의 은빛 머리칼은 눈이 부셔서 차마 오래 바라볼 수도 없을 정도였다.

“어쨌든, 밤에 혼자 가로등 하나 없는 공원에서 혼자 스윙연습을 하고 있다 보면, 하늘에 떠있는 달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단 말이지. 쉴 때는 벤치에 누워서 몇 분이고 넋이 빠져서 달을 보곤 했지. 어느 때는 손을 뻗어서, 닿지도 않을 달을 움켜쥐면서, ‘내 목표는 저 달보다는 가까이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뭐. 이렇게 되어버린 지금 생각해보면 달 쪽이 더 가까웠던 것도 같지만.”

“야구선수 씨의 그 옛 목표는 무엇이었나요.”

“타격 전 부문 석권.”

“만약 야구선수 씨가 아직도 프로의 길을 걷고 있다면, 그 목표를 달성하셨을 것 같나요.”

“흐음… 지금은 힘들고, 한 5,6년 후면 가능하지 않았을까.”

잠시 아무 말이 없던 타카네는 다시 달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떤가요.”

“뭐가?”

“그때의 달과 지금의 달은.”

타카네의 말에 나는 다시 한 번 머리 위로 뜬 달을 바라보았다. 그때의 달에 비해 지금의 달이 어떻게 보이는지 말해달라는 건가.

“그때보다 큰데.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렇게 밝고 큰 달은 처음 보는 것 같아.”

“그야. 도심에서 보는 달과 이런 바닷가에서 보는 달은 다르니까요.”

“그렇겠지.”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야구선수 씨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목표가, 예전의 그 목표보다 더 가까이 있음을 뜻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래. 이거구나.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이. 직접 맞아본 적은 많았지만, 이런 느낌을 느껴본 것은 처음이다. 난 머릿속이 멍해짐을 느끼며 타카네를 바라보았다.

“…그럴 듯한데. 그럼 그 목표라는 녀석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거지?”

“그것은 야구선수 씨가 직접 찾아보셔야겠지요.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개척하는 것이라는 게 제 지론인지라. 야구선수 씨에게 해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매정한 말이라지만, 이게 맞는 말이지. 타카네가 내 인생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나도 딱히 손 벌릴 생각은 없다. 멍해졌던 머릿속이 재빠르게 식는 것이 느껴졌다. 
새로운 목표를 찾는다. 은퇴 이후 지금까지 생각만 하고 실천에 옮긴 적은 없었던 그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들으니 조금 신선하군.

“느긋하게 생각해보자구. 내게 있어서 서두르는 건 베이스를 도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내 말에 타카네는 말없이 생긋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지금껏 잊고 있었던 무언가가 생각났다.

“아. 그래. 계속 얘기한대놓고 잊고 있었어.”

“무엇을…?”

“고맙다고 한다는 걸 잊고 있었어. 벌써 꽤 지난 일인데 말이지. 그… 예전에 둘이서 밥 먹었을 때 했던 얘기.”

“아. 야구선수 씨에 누나 되시는 분에 대한 일 말이신지.”

“그래. 그거야. …뭐. 잘 해결됐어. 네 덕분에.”

“그것은, 진실로 경사스러운 이야기로군요.”

“경사까지야. 어쨌든 네 말대로 누나는 내게 아무런 화도 내지 않았어. 예전처럼 서로 전화도 자주 하고 관계도 회복됐으니, 네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그러실 필요 없답니다. 그런 것을 따지려면 오히려 제가 야구선수 씨에게 신세를 진 일이 많기에.”

“응? 내가 뭘?”

“멀리 나갈 일이 있을 때 차를 태워주신 것도 그렇고, 그때 점심시간이 끼어있을 때마다 식사를 사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거야 저번에 치어걸 사건에 대한 보답일 뿐이잖아.”

“그것은 저희 모두의 마음,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도 어떻게든 보답을 하고 싶습니다만.”

“필요 없다니까.”

“아닙니다. 이대로는 제 마음이 불편하게 되어 버립니다. 자, 이 넓은 바다에 야구선수 씨와 저 둘뿐입니다. 이 기회를 빌려 제게 바라고 싶으신 것이 있으신지.”

물론 타카네의 속뜻이야 부담을 갖지 말라는 것이겠지만, 나로 있어선 뭔가 엄청난 상상을 하기에 충분한 발언이었다. 물론 타카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가슴이라든지, 가슴이라든지 가슴이지만 그건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다. 나는 어디까지나 이성적인 인간이다. 어차피 보답을 받아야 한다면 뭔가 다른 걸 생각해보자.

아. 그래.

“그러고 보면, 너희들 명색이 아이돌인데 노래하는 걸 한 번도 못 봤어. 저번에 이오리 하인 노릇할 땐 밖에 있어서 잘 들리지도 않았고, 저번 치어걸 때 내 응원곡인지 뭔지를 불렀을 땐 단체로 부른 거니까. 될 수 있으면 솔로를 들어보고 싶어.”

“제 노래를 듣고 싶으신 겁니까.”

“응.”

“그걸로 괜찮으신가요.”

“물론.”

“이렇게나 달이 밝은 밤바다에서 노래라… 후훗. 운치가 있군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쪽에 앉아주시겠습니까.”

나는 타카네가 말하는 대로 몇 걸음 물러나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타카네는 달과 바다를 등지고 서서 나와 마주본 다음, 고풍스러운 자세로 내게 인사했다. 나는 그런 타카네에게 열렬히 박수를 쳐주었다.

“자연이 만들어준 이런 멋진 스테이지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다니. 진실로 부끄럽습니다만, 여기선 용기를 내서 부르는 것이 좋겠지요.”

“제대로 잘 들어줄 테니까.”

“예. 그러면, 달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좋아, 좋아.”

내 말에 타카네는 다시금 빙긋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신고 있던 슬리퍼를 벗었다. 그녀는 맨발이 되어 몇 걸음 걷더니 그대로 한 바퀴 빙글 돌았다. 고요한 바다에는 그녀의 발이 모래를 밟는 사박거리는 소리와 그녀가 입고 있는 민박집의 실내복이 사라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파도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막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려던 나는 그것만으로도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되어, 마치 빨려 들어갈 듯 그녀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오후 11시 59분이었던 휴대폰 액정의 시계가 정확히 오전 12시로 바뀌는 그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 타카네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 달의 왈츠 - 시죠 타카네
 

이렇게나 달이 푸른 밤에는 
신기한 일이 일어나요.
어딘가 깊은 숲속에서 
헤매이는 나


첫 소절을 듣자마자 어디선가 들어봤던 노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파도소리를 반주삼은 타카네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원곡과 다른 매력이 있었다. 


턱시도 차림의 토끼가 다가와 
‘와인은 어때요?’라며 테이블에
새빨간 버섯 우산 아래서 춤이 시작되어요.

그대는 어디에 있나요.
시간 나라의 미아
돌아가는 길을 모르겠어요. 
계속 기다리고 있는데도


타카네가 입을 달싹일 때마다, 그녀의 가녀린 몸이 움직일 때마다, 뒤에서 흐르는 파도만큼 아름다운 그녀의 은빛 머릿결이 이리저리 춤을 췄다. 달빛에는 마력이 있다고도 하는데, 그런 달빛을 한 몸에 받으며 노래하는 그녀는 마치 마녀 같기도 하고 성녀 같기도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입을 벌리고 그녀의 노래를 듣는 것 밖에 없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유혹의 미궁
우유빛 안개의 저편
확실한 사랑을 원해요

차가움이 발끝을 백조의 날개로 감싸
달의 궁전의 왕자님은 
그대를 닮은 눈동자로 웃어요.


‘그대를 닮은 눈동자로 웃어요.’부분에서 타카네는 내게 살짝 미소 지었다. 그녀가 저렇게 웃는 건 오늘만 해도 몇 번을 봐왔는데, 달빛을 비스듬히 받는 자세로 서서 고개만 돌리고 눈웃음과 함께 보이는 옅은 미소에 내 심장이 덜컥이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여튼 엄청난 파괴력이었다.
뭔가 TV에서 ‘몽환적이다.’라는 표현을 썼을 때마다 그게 뭔 개소리인가 했는데, 이제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지금이 꿈인지 현실인지도 모호했고, 내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타카네인지 아니면 나를 홀리러 내려온 달의 공주인지도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혼이 빠져서 타카네에 시선을 못박고 있는데, 그녀가 마치 하늘 위를 걷는 것 같은 사뿐한 걸음걸이로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뭐…하는 거지? 설마 잡고 일어나라는 건가? 
그녀의 손을 살짝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녀는 내 손을 잡은 채로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이렇게나 달이 푸른 밤에는 
신기한 일이 일어나요.
어딘지 모르는 숲속에서
헤매이는 나   

이렇게나 달이 푸른 밤에는
신기한 일이 일어나요. 


갑자기 타카네가 내 품 안으로 들어오려 했기에 나는 화들짝 놀라 몸을 뒤로 뺐다. 그러자 그녀는 입으로는 노래를 계속하고, 눈으로는 웃음을 지으며 내게서 다시 물러났다.


사랑하는 것은 신뢰하는 것
언젠가 그 가슴에 안겨
잠드는 꿈을 꿔요.


뭔가 노래가사가 의미심장한 건 내 착각이겠지. 아니. 그것보다, 저 색기라고 해야 할지 신성함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저 분위기. 심장에 너무 안 좋다고. 물론 엄청 좋긴 했지만, 수명이 한 달은 줄어들은 것 같다.

그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타카네는 내 손을 놓고 마지막 턴을 한 다음, 실내복이 마치 드레스라는 되는 양쪽 끝을 잡고 살짝 들어 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게 또 무시무시할 정도로 어울리는 모습이라,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정말 심장에 안 좋아.

“어떠셨는지.”

“어…어버버버…”

“음…?”

“아. 아. 어. 그래. 진짜 좋았어. 끝내줬어. 뭐라고 할까 정말… 이 무식한 머리에서 나오는 표현력으로는 설명이 안될 만큼 좋았어. 정말. 최고.”

“후훗… 과찬이십니다. 달빛이 너무 아름다워 그에 취해버린 탓에, 저도 모르게 추태를 보이고만 것 같아 죄송할 따름입니다.”

“추태라니 무슨 소리야. 엄청 대단했다고. 정말이야. 진짜로. 와. 대체 왜 아이돌이 되려는 거야? 타카네라면 그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 것도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제가 아이돌이 되고 싶은 이유라면 저번에도 말했듯이…”

타카네는 예의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집게손가락을 입 앞에 가져다댔다. 달빛을 등진 그녀의 그 모습은 평상시의 세배는 더 아름다웠다.

“톱 시크릿입니다.”



다음 날. 아니. 오늘 아침.

“으으… 머리가…”

“우에에… 졸려요오…”

“좋은아침…이라구.”

자고 일어나 하품을 쩍하며 밖으로 나오니, 아주 난장판이었다. 저게 정녕 현역 아이돌이 맞는지 의심되는 녀석들도 몇몇 보였다. 특히 어제 술 마시고 괴기스러운 노래를 열창했던 하루카 같은 경우에는 그야말로 좀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루카. 어젠 노래 잘 들었어.”

“에… 노래…요?”

“그래. 어휴. 아직도 생각하니 몸이 떨리네.”

“내, 내가 대체 무슨… 노래를? 기억이… 나지 않아요…”

“물론 뚜껑 따놓고 거기 놔둔 내 책임도 조금 있다지만, 그렇다고 그걸 벌컥벌컥 마실 줄이야.”

“아. 그랬죠. 저 분명 과일탄산음료를…”

“아니아니. 그거 술이었다니까.”

“에에? 수… 윽. 머리가…”

“…고생 좀 하겠구나.”

아무리 미성년자라지만, 달랑 술 두 모금에 저 정도 타격이라니. 물론 도수가 조금 세긴 했지만. 

“으… 좀 비켜 달라구…”

“넌 술도 안 마셨는데 그게 무슨 꼴이냐.”

“아우으에으…”

“뭔 소리야. 그게.”

더 이상 여기 있다간 여러 가지로 환상이 깨질 것 같아 짐정리나 미리 해놓기로 했다. 아침식사만 하고 바로 돌아가기로 했으니 미리 해놓는 게 편하겠지.

그렇게 아침을 먹고, 다들 준비를 끝낸 후에 기차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미우라 씨와 리츠코를 앞에 두고 앉았다.

“고마워. 나도 데려와줘서. 진짜 재미있었어.”

“재미있으셨다니 다행이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그래, 그래. 나도 이제부터 조금씩 더 힘내볼까 생각하고 있으니까.”

“호오. 어느 일을?”

“일단…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일까.”

“야구 말인가요?”

“그래. 야구도 그렇고… 내 새로운 목표를 찾아볼까해.”

“새로운 목표라…”

리츠코는 약간 생각하는 것 같더니 곧 씩 웃으며,

“프로듀서로서 이 아이들을 정상의 자리에 올려놓는다. 는 어때요?”

“귀찮아.”

“엑. 일언지하에 거절?”

“무엇보다, 프로듀서라는 거 애들이랑 친하다고 되는 거 아니잖아. 뭔가 전문적인 지식 필요하지 않아?”

“그건 그렇지만, 야구선수 씨라면 빨리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

“예. 제 눈은 정확하답니다.”

“흐음…”

자신 있게 웃고 있는 리츠코와 ‘새로운 목표’를 이야기하던 타카네의 표정이 겹쳐보였다. 프로듀서라… 애들한테 말만 했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고민 좀 해보자. 심각하게.”

“해보세요. 야구선수 씨의 고민이 길어질수록 제가 힘들어지는 시간이 늘겠지만요.”

“그거 혹시 협박이냐?”

“에이. 설마요.”

“어머, 어머. 우후훗.”

리츠코의 옆에서 배시시 웃고 있는 미우라 씨를 보니, 미우라 씨가 노래를 잘한다고 리츠코가 말했던 게 생각이 나 자연스레 오늘 자정의 일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타카네 노래 잘하더라.”

“네. 타카네쨩도 목소리가 정말 좋지요. 그런데… 타카네쨩의 노래는 언제 들어보셨나요?”

미우라 씨의 질문에 아차 싶었다. 어떻게든 둘러대려 했는데, 차마 미우라 씨(의 F)를 앞에 두고 거짓말을 할 수 없기에 그냥 사실대로 말했다.

“어머나. 타카네쨩이 그런 보답을. 우후훗. 야구선수 씨 좋으셨겠네요.”

“예. 뭐… 뭐라고 할까. 그건 이미 ‘아이돌의 노래’라는 레벨은 훨씬 지나친 것 같았지만요.”

“그렇죠. 타카네쨩은 어딘가 신비한 느낌이죠? 어느 때 보고 있으면 저도 닮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에요.”

“아니, 아니. 타카네는 타카네대로 미우라 씨는 미우라 씨대로 다른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요? 그럼. 음. 음.”

갑자기 미우라 씨가 목소리를 가다듬기 시작했기에, 나는 물론 리츠코 역시 미우라 씨를 보게 되었다.

“아, 아즈사 씨. 설마 기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시려는 건 아니겠죠? 공공장소라구요.”

“아. 그랬죠.”

“정말, 아즈사 씨도 참…”

리츠코는 미우라 씨를 약간 책망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우라 씨의 노래. 여기서라도 듣고 싶었으니까.

“야구선수 씨. 그럼 제 노래는 나중에. 기대해주세요?”

“물론이죠. 그리고 리츠코의 노래도 기대하고 있어.”

“에에? 거기서 제 이름이 왜 나오는 건가요?”

“뭐야. 리츠코. 목소리 낮춰. 다른 사람들한테 실례야.”

“윽. 알겠어요. 그런데 어, 어째서 제 노래를…”

“리츠코 너도 전직 아이돌이었다며, 그럼 노래 한 두곡쯤은 불렀을 거 아냐.”

“그, 그건 그렇지만…”

“내가 만약에 정말 프로듀서를 할 마음이 들게 된다면, 네게 받을 보답은 네 노래다. 기억해둬.”

“그,러,니,까! 야구선수 씨가 프로듀서를 하는데 제가 어째서 야구선수 씨에게 보답을 해드려야 하냐구욧!”

“그래? 그럼 안하지, 뭐. 끝까지 혼자 고생해보라고.”

“흥. 상관없거든요. 저희야 뭐 모집광고 내서 뽑으면 되고.”

“훗. 과연 그럴까. 모집광고로 뽑힐 프로듀서였다면 전직 야구선수에 불과한 나에게 네가 손을 내미는 일 따윈 없었겠지!”

“큭. 정곡.”

리츠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765 프로덕션의 녀석들 상대로 오랜만에 맛보는 승리감이었다.
리츠코가 그대로 침몰하고, 미우라 씨가 웃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나 역시 몸을 좌석에 눕혀 천장을 바라보았다.

프로듀서라… 아직은 모르겠다. 언젠가 하고 싶어지는 날이 오면 도전해볼까. 왠지 그 하고 싶어지는 날이 조만간 다가올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하지만, 뭐 이것저것 머릿속에 집어넣는 건 귀찮은데. 프로듀서하게 되면 역시 배워야 할 게 많겠지. 그래도 애들이랑 같이 있는 건 재미있고… 이거 참 딜레마로군.

에라. 모르겠다. 내일 시합인데 일단 그거나 신경 쓰자. 내게 중요한 건 미래가 아니라 현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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