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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카] 초겨울의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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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05, 2012 03:20에 작성됨.

※주의

이 작품에 나온 모든 장소, 인물, 배경은 전부 픽션입니다. 

애초에 이런 커플은 존재하지 않습... 않을까요? [도주]


슬슬 겨울분위기가 거의 자리 잡은 11월 하순. 나와 하루카는 오랜만에 오프가 겹쳤기에 데이트를 하러 가기로 했다.
하루카네 집 현관 앞에 차를 주차시켜놓고 기다리는 나. 제법 쌀쌀해진 바람이 매서웠지만 나는 굳이 밖에서 하루카를 기다렸다. 내가 자동차 히터를 싫어하기 때문이며, 겨울공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우 추웠다. 나름대로 옷으로 싸매고 있는데도 한기가 조금씩 스며들었다. 어렸을 때는 니트 한 장만을 걸치고 뛰어다니던 시절도 있었건만. 세월은 요지경이다. 나이는 먹는 게 아니다.
강한 바람이 한 번 더 스쳐 지나간다. 11월인 주제에 너무 춥다. 옛날 도쿄는 이렇게 춥지 않았다. 지구온난화가 다가온다는 말을 이젠 쉽사리 믿을 수 있을 지경이었다. 방한은 거의 안 되는 가을용 코트를 굳게 여미며 나는 살짝 몸을 떨었다. 얘는 30분이 넘어가는 시간동안 뭘 그리 챙기는 거야. 마음속으로 투덜투덜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그 때 현관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많이 기다리셨나요, 프로듀서?"
"아니, 30분밖에 안 기다렸어. 추워 디지겄다."
"에~ 뭐예요~"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도도도도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뛰어온다. 빨간 데님코트에 목도리를 둘렀고, 머리의 리본이 인상적이었다. 이름은 아마미 하루카. 데뷔 몇 년차의 잘나가는 중견아이돌이다. 내가 직접 키워낸 첫 번째 아이돌이자, 지금은 내 여자친구이다. 감회가 새롭지만, 아직도 여자아이로밖에 안 보이는 이유는 뭘까.
하루카는 내 무신경한 말투에 입을 퉁퉁거리지만 내가 말없이 차에 타자 황급히 따라온다. 어미 새를 뒤쫓는 아기 새 같다.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는 출발하여 곧 주도로에 진입했다. 조수석에 앉은 하루카가 내게 물었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요, 프로듀서?"
"글쎄다~ 딱히 생각해둔 곳은 없는데."
"그런가요?"
"그런 거지."

으음~ 하며 동시에 머리를 기울이는 두 사람. 요새 나는 하루카에게 물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나잇살 먹은 남정네가 귀엽게 머리를 갸웃거리다니, 지인들이 본다면 게슈탈트 붕괴를 일으키겠지. 나이차 많이 나는 여친 생기면 정신연령이 따라간다고 누가 그러더라. 술김에 친구 놈은 그런 듣도 보도 못한 소리를 지껄였는데, 진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그럼~ 무난하게 드라이브로!"
"드라이브? 그런 건 맨날 하잖아. 영업 뛸 때라던가."
"아직도 뭘 모르시는군요 프로듀서. 영업과 데이트는 엄연히 다른 거랍니다. 한 백만 광년은 차이가 있는 거라구요."

칫칫 손가락을 흔들거리며 우쭐거리는 하루카. 건방지다. 누가 누구보고 모른다고 하는 건지. 나는 한마디 해주려고 입을 떼었지만, 다음으로 이어진 하루카의 말에 목소리가 다시 폐 속으로 밀려 내려갔다.

"게다가 프로듀서, 돈도 얼마 없으시잖아요. 월급날 가까워진 거 안다구요."
"......"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최근 묘하게 술자리가 잦아져서 돈 쓸데가 많았다. 확실히 오늘 하루카를 데리고 제대로 된 레스토랑에 간다면 달말 3일 정도는 물만 먹고 살아야할 것이다. 그렇다고 어린 여자애한테 돈 문제를 지적당하다니, 어른으로서 조금......

"제가 내드리려고 해도 묘하게 사양하시는 거 같으니, 뭐 마음 넓은 제가 참아야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서로서로 좋~게 드라이브를 하러 가는 겁니다. 히힝."

......요새 하루카도 나를 닮아가는 것 같다. 나를 보며 짓는 저 능글맞은 웃음은 나와 판박이였다.

-

내일은 일이 있으니 그다지 멀리 갈 순 없었다. 당일치기로 갈 수 있는 범위에서 골라야했다, 라고는 하지만 못 가본 곳이 워낙 많아서 장소 선정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목표는 도쿄 근교에 있는 어떤 작은 시골마을. 같은 현에 속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밤하늘이 잘 보인다는 히든 스팟이란다. 주변에 산이 있는 분지라 광공해 걱정 없는 깨끗한 밤하늘이 유명하다고 한다. 예전부터 알아둔 곳인데 겨우 오게 되었다.
네비게이션에게 물어물어 차를 타고 간지 약 2시간. 우리는 겨우겨우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와, 가게가 무척 깔끔하네요. 거기다 의외로 크고.”
“뭐,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니까.”

일단 밥을 먹기 위해서 알아봐둔 정식집을 찾아갔다. 신선한 산채정식으로 유명한 곳이다. 늦은 점심시간이라 가게에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해 밥부터 먹으러 왔는데, 아무래도 정답인 것 같았다. 가게에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덕분에 하루카는 변장하지 않아도 되겠다며 좋아했지만.

“매뉴판, 뭔가 귀엽네요~ 동글동글한 글씨... 여성분이 쓰신 걸까요?”
“그게 귀엽냐? 잘 못 읽겠는데.”

일단 유명하다는 산채정식을 시켰다. 가격은 그리 비싼 편이 아니었다. 내심 지갑사정을 생각하고 있던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루카는 주변을 신기하다는 듯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꺄아꺄아 까불어대는 하루카에게 적당히 맞춰주는 나. 언제나 있는 일이다.

“아, 산채정식 나왔네요! 우와, 뭔가 많아요! 튀김에 나물에 보리밥! 맛은 어떨까요?”
“그보다 겨울에 산채라니 조금 이상하지 않냐? 산채는 보통 봄에 먹는 거 아냐? 사시사철 산채라니 장사 되겠나 이거.”
“정말 프로듀서, 아까부터 심드렁하게만 말하시네요. 그러지 말고 드셔보세요. 맛있어요.”

재촉하는 하루카때문에 젓가락을 입에 넣은 나는 알싸한 산채 맛에 놀라게 되었다. 지난봄에 저장한 산채라 싱싱하진 않았지만 간과 풍미가 적절한 나물과 바삭바삭한 튀김의 식감은 나를 놀라게 했다. 산채 주제에 이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니.....

“이거 술안주로 딱인데.”
“......감상은 결국 술인가요? 하아......”

솔직한 감상을 말한 나를 보며 하루카는 한숨을 쉬었다. 실례잖아, 맛있다길래 감상을 표현한 거뿐인데.
어느 정도 식사가 일단락되고 우리는(주로 하루카가) 잡담을 펼치기 시작했다. 나는 적당히 맞장구쳐주는 것으로 응수했다.

“프로듀서, 이제 어디로 가는 건가요?”
“글쎄다...... 원래 목표인 밤하늘을 보기에는 아직 시간이 남았고...... 뭐, 적당히 싸돌아다니면 되지 않겠냐.”
“계획은 없으신 거죠? 그럼 일단 쇼핑을 좀 하러가요! 모두에게 줄 선물을 사야하거든요. 어제 실컷 자랑을 해서....... 에헤헤.”
“얌마, 데이트하러 가는 거 자랑하고 그러지 말랬잖어.”
“에이, 자랑하고 그러는 게 뭐 어때서요. 좋으면서, 에이, 에이.”
“야, 어른 이마 손가락으로 찍고 그러는 거 아니다.”
“헤헤, 죄송해요. 근데 이거 꽤 재밌네요. 이렇게, 이렇게.”
“야, ㅇ, 야! 자꾸 찌르지 마! 너!”
“아하하~ 프로듀서 뭔가 웃겨요. 요리조리 튕기는 게 공 같네요.”
“......그건 욕이냐?”
“글쎄요?”

이렇게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바로 그 때, 왠지 이쪽을 가만히 지켜보던 가게직원으로 보이는 청년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저기, 죄송한데요......”
“네, 무슨 일이시죠?”

하루카는 청년의 물음에 순식간에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대꾸했다. 우와, 아이돌의 변신 끝내주네. 몇 번이고 본 거지만 매번 새삼 놀라는 경지이다. 순식간에 가면을 덮는 듯한 연기력. 이게 중견아이돌의 실력인가.
청년은 우물쭈물하며 말을 고르는 인상이었다. 키도 훤칠하고 얼굴도 얼짱 스타일인데 말주변이 꽤나 없구만. 조심스럽고 귀여운 인상이지만 할 말은 다 한다는 점에서 지골로 냄새가 조금 났다. 아니, 천연이려나. 지골로라면 초면에는 이런 식으로 접근하지는 않는다. 더 적극적이지. 그런 식으로 청년을 품평하고 있는데 청년이 말을 꺼냈다.

“저, 혹시 765프로의 아마미 하루카 씨 아니신가요?”
“네. 맞아요. 아마미 하루카입니다~ 반가워요~”

영업용 스마일로 생긋 웃어주는 하루카의 얼굴을 정면에서 본 청년은 얼굴이 새빨개졌다. 우와, 알기 쉬운 스타일이네. 저런 타입 끝장나게 좋아하는 여자들이 있긴 하지. 이런 타입을 본 건 오랜만이라 제법 흥미가 돌았다. 요놈 여자 꽤나 후리게 생겼구만.

“저, 정말이구나! 저, 저 진짜 팬이거든요! 우, 우와!”
“후훗. 감사합니다.”

허둥대는 청년과 대조적으로 하루카는 침착했다. 아~ 뭐 이런 팬은 수백 수천 번은 만나봤으니까. 이젠 대응패턴도 거의 정형화된 느낌이었다. 처음 데뷔했을 때 하루카는 허둥거려서 귀여웠는데.

“저, 저기! 싸인 한 장만 해주실래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가, 가게! 가게에 걸어둘 거 라서요!!”
“아, 물론 해 드려야죠. 혹시 종이나 펜 있으신가요? 유감스럽게도 지금 둘 다 없는 바람에......”
“아, 예! 지금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서둘러 카운터로 돌아가는 청년. 부모님으로 보이는 중년부부가 재빨리 종이와 펜을 건네주는 게 보였다. “요놈 잘했다!” “가게 선전이 되겠어요!”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사인을 받으라고 샤이보이인 아들을 부추긴 거구만. 오호라. 재밌는 가족이네.
그렇게 실실 웃으며 고개를 돌려보자 하루카가 어째선지 나를 곁눈질로 슬쩍슬쩍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돌리고 청년이 가져온 종이에 싸인을 해주는 하루카. 응? 뭐지 지금 건?
싸인을 받은 청년이 감사를 거듭 말하며 카운터로 사라진 다음, 나는 하루카에게 물었다.

“하루카?”
“네, 네!?”

하루카는 어째선지 눈에 띄게 당황해했다. 더욱더 의아해진 나는 직접적으로 하루카에게 묻기로 했다.

“갑자기 왜 내 눈치를 그렇게 슬금슬금 보는 거야? 무슨 일 있어?”
“에...? 아니, 저 그게...”

이번엔 또 놀라는 하루카.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다. 하루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갑자기 데이트 중간에 방해가 들어와서...... 화내시는 줄 알고......”
“......잉?”

순간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랐다. 방해가 들어와서 화를 냈다고?

“......내가 왜 화를 내야하는데?”
“네? 그게... 어, 네?”

내가 다시 역으로 질문하자, 하루카는 또 당황하기 시작했다. 에, 아, 아닌가요? 라며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또 이상한 오해를 한 모양이다.

“나참, 내가 팬이랑 이야기 조금 하는 거 가지고 바로 삐지는 그런 속 좁은 놈으로 보여? 아직 멀었네, 하루카.”
“하지만 저 분을 엄청 노려보셔서......”
“아~ 그건 조금 관찰한 것뿐이야. 관심이 약간 생겨서.”
“그런 거였군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하루카. 하지만 곧 얼굴 표정이 굳어지더니 이번엔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참 표정이 잘 드러나는 아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다시 되물었다.

“왜 또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어? 이번엔 또 뭔데 그래?”
“아뇨, 그냥...... 조금.”

하루카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표정을 조금 고치더니 곧장 옷가지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표정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밝은 표정이었다.

“자! 식사도 다 했으니 이제 쇼핑을 조금 하러갈까요, 프로듀서? 빨리빨리 가요!”
“아, 응. 알았어.”

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해결된 건가? 마음속으로 물어보며 나도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

적당히 쇼핑을 즐긴 우리는, 차를 이끌고 별이 잘 보인다는 언덕으로 올라왔다. 초승달 모양의 언덕 가운데에 차를 정면으로 세운 우리는 곧 압도적인 별의 홍수를 볼 수 있었다.

“와아~ 예뻐요~”
“오...... 정말이네. 끝내주는걸.”

하늘에는 온통 별이 있었다. 겨울하늘치고는 드물게 하늘에는 구름이 거의 없었다. 중앙에는 은하수가 밝게 빛나고 있었으며, 그 밖에도 여러 가지 별들이 하늘에 온통 수놓아져있었다. 솔직히, 장관이었다.

“굉장해...... 이렇게 많은 별은 처음 봐요! 굉장해요!”
“나도 이렇게 많은 별은 처음 보는군. 꽤 잘 찾아왔는걸.”

나와 하루카는 뜨끈한 히터바람을 맞으며 캔커피를 홀짝거리면서 말없이 밤하늘만 바라보았다. 따뜻하게 덥혀진 시간이 천천히 내 몸을 관통하여 흐르는 감각. 마치 추운 겨울날 이불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둥실거림이 이어졌다. 이렇게 기분 좋은 히터바람은 처음인데. 나는 혼자 산통을 깨는 생각을 하며 웃었다.
그렇게 둘이서 조용히 밤하늘 감상에 여념이 없었을 때, 갑자기 하늘에 희미한 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프로듀서! 별똥별이에요! 별똥별!”
“어, 정말이네.”

은빛의 꼬리가 밤하늘에 스쳐 지나갔다. 하나, 둘, 셋. 세 개의 빛이 차례차례 사라져간다.
에잇! 이라면서 하루카는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곤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내년에는 결혼할 수 있도록... 내년에는 결혼할 수 있도록... 내년에는...”
“벌써 지나갔어.”
“엥? 정말로요?”

하루카는 눈을 뜨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을 봐봤자 거기엔 아까까지 봤던 그냥 별빛하늘만이 있을 뿐이었다. 눈을 감았을 때부터 별이 이미 져버렸으니 한참 늦은 셈이었다.

“이미 지나간 지 한참 됐거덩. 유감이네.”
“에에~ 소원 빌려고 했는데요~. 우우우.”

볼을 부풀리며 바둥바둥거리는 하루카. 참 귀여웠다. 나는 무심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하루카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하루카는 살짝 놀란 듯 움찔거렸지만 이내 기분 좋다는 듯 얼굴이 풀어지며 내 손에 몸을 맡겼다. 잘 따르는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아 왠지 웃음이 나왔다.
하루카는 잠시 머리의 감촉을 느끼며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눈을 감고 하루카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프로듀서.”
“왜?”
“전 사실, 굉장히 불안해요.”
“......”
“프로듀서와 사귄지도 벌써 1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새로운 모습이 보여서 두근두근해요. 하지만 한편으론 아직도 내가 이 사람에 대해 이렇게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
“......그래서 솔직히, 무서워요. 혹시 제가 모르는 사이에 떠나가는 게 아닐까하고. 혼자 그렇게 바보같은 생각을 하고 혼자 겁내요. 완전히 바보네요, 저.”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루카도 그대로 말을 멈췄다.
둘이서 묵묵히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군데군데 둘러쳐져있는 회색빛 구름과,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이 절묘한 아름다움을 만들고 있었다. 신비스러운 광경이었다.
문득 아마 평생 이런 밤하늘을 볼 수는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하루카와 이렇게 있을 수 있는 순간은 지금이 유일하다.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설사 나중에 하루카와 이 시간을 추억하며 다시 이 장소를 찾게 되더라도, 추억은 추억으로 남고 과거는 변하지 않는다. 내 손끝에서 불안에 떨고 있는 작은 여자아이를 위로하는 것도,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거겠지. 그런 감상을 품으며 나는 쓰다듬는 손에 조금 힘을 주었다. 잠깐 센티멘탈해진 걸지도 모르겠다.

“......저기.”
“네?”

눈은 여전히 하늘을 향한 채로 캔 커피를 홀짝거리며, 나는 하루카에게 말했다.

“11월은, 굉장히 어중간한 달인 것 같지 않아?”
“......네?”

하루카는 잠깐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잖아? 연말연시라고 보기에는 좀 이르고, 그렇다고 올해라고 보기엔 좀 늦고. 딱히 쉬는 날도 없고 일정도 없는 그런 달이잖아? 좀 시기가 어중간하다고 생각해.”
“어...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하루카는 멍하니 대답했다. 아마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 사실 나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하루카는 내가 말한 것이 무슨 내용인지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을 시작하는 하루카를 보며 나는 말을 이었다.

“방금 했던 말의 대답 말인데.”
“......네.”
“지금 그걸 약간 보여준 거라고 생각해줘.”
“네?”

하루카의 두 번째의 어벙한 표정. 사실 나도 맥락 없이 말하고 있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어쩐지 말을 자아내기가 어려웠다.

“아~ 뭔가 말하기가 답답하네. 그러니까 방금 난 11월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한 거야.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라는.”
“그렇군요.”
“지금은 아직 못 본 모습이 많겠지만, 방금 전처럼 하나하나 쌓아나가면 되지 않겠어? 우리는 시간이 아직 많잖아. 서로 대화하면서, 몰랐던 점을 알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솔직히 나도 살면서 많은 모습을 보이겠지만, 네게 보여준 것도 참 많아. 그러니까 앞으로는 두 사람이서 같이 채워나가자.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난 어디에도 가지 않아, 그렇게 중얼거렸다.

네, 라고 하루카는 대답했다.

두 사람은 다시 밤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 손은 살며시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고, 하루카는 가만히 그의 품에 머리를 기댔다. 어쩐지 별이 하나 또 떨어진 것 같았다. 그 소원을 이뤄주기라도 했다는 거냐, 별? 그렇게 히터의 열로 멍해진 머리로 생각했다.



우리들의 밤하늘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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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

아마미 하루카 (18, 여)

곧 성인이 되는 당차고 귀여운 중견아이돌. 성인이 되자마자 프로듀서와 결혼하고 싶어하나 주변에서는 극구 만류하고 있다.

프로듀서 (3?, 남)

쿨하고 시크한 도시남자. 나이차 많이 나는 연인과 순조롭게 연애중. 근데 최근에는 얘랑 결혼까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심히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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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작가 본인은 솔로인데 이것들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연애세포가 뇌세포로 번졌나 요새 망상력만 순조롭게 상승중 ㅜㅜ 연애하고 싶당 근데 돈이 없엉 시간도 없엉 다 없엉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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