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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없는 세상에서 <안즈편>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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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01, 2016 17:32에 작성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생명의 이름

※ 어디까지나 작가가 글을 쓰면서 들은 작업용BGM입니다. On / Off 는 자유롭게 선택해주세요.

 

 

 

 

 

 

 

 

 

 

 

 언젠가 키라리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지.

 

 “안즈는 꿈이 뭐니?”

 

 안즈는 거기에 즉답했다.

 “물론 인세생활이지.”

 각자의 꿈과 희망으로 반짝이고 있었던 아이들. 그 활기찬 무대의 어두운 뒤편에서, 앞 선 라이브로 지친 몸을 추스리며 키라리의 무릎을 베개 삼고 누워있었던 안즈는, 먼저 질문을 던져온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는

 피식, 그렇게 웃으며 되물었다.

 “그럼 키라리는?”

 “키라리~? 키라리는 음~”

 키라리가 활짝 웃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방울이 뺨을 타고 부드럽게 흘러내린다.

 “꿈이라면 이미 이뤘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안즈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따뜻하……다기보단 상당히 덥고 축축했었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싫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말해도 다음은 절대로 없으니까?”

 “체에~엣 키라리 아직 아무 말도 안했다규?”

 안 그래도 안무는 더럽게 어렵지, 준비 기간도 짧았지, 139cm와 186cm라는 경이로운 체급차이로 키라리가 한걸음 한걸음 디딜 때마다 안즈는 펄쩍펄쩍 뛰어야 할 정도였으니까. 마치 평생 할 라이브는 다 한 것처럼 손가락 까딱 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고로 안즈는 오늘부터 무기한 휴업을─

 ─뭐

 재미는 있었나

 “응, 또 하자”

 실언이었다.

 “그, 그러니까 팬들의 반응도 좋았으니 이 기회에 인세를 왕창 뽑아버려서 어서 아이돌 졸업하고 놀고 먹자는 말이니까!”

 안즈가 당황하며 둘러댔다.

 하지만 키라리는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안즈쨩. 약속……해줄래?”

 그렇게, 안즈는 마지못해 손가락을 걸었다.

 “키라리의 꿈 이루자마자 또 생겨버렸네☆”

 마치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한 그 키라리의 행복했던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다. 원래부터 그런 녀석이었다는 건 이미 진절머리 나도록 알고 있었지, 귀찮은 레슨을 때려치우고 농땡이를 부리고 있으면 어떻게 알아냈는지 안즈를 찾아내어 강제노동을 시킨다던가, 혼자서 쉬고 있을 때면 어느 틈엔가 옆에 붙어서 치대고 있다. 그렇게 악의 없는 바보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도, 언제나 원하는 걸 손에 넣고야 말지. 정말 제멋대로인 녀석이었다.

 

 ……

 

 아니

 

 어쩌면 안즈도─

 

 “─후타바씨.”

 “으응……?”

 안즈는 실눈을 뜬 채, 자신의 옆머리를 빙글빙글 돌렸다. 그 시절처럼 양 갈래로 대충 묶어 내린 트윈 테일이 아닌, 매끄럽게 풀어 해친 풍성한 롱 헤어의 낯선 감촉이 느껴졌다.

 꿈이었나.

 “거의 도착했습니다. 후타바씨.”

 운전석에서 한쪽 팔로 안즈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깨우고 있었던 건 다름아닌 안즈의 프로듀서였다. 오늘따라 유난히 깊어 보이는 그의 팔자주름은, 오늘의 일정이 얼마나 하드했는지를 암시하는 것만 같았다. 안즈는 하품과 함께,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흐아아아……벌써 도착 한 거야?”

 “네”

 “마지막 일정은 회사에서 신곡의 프리프로덕션이었지?”

 “그렇습니다.”

 운전석 정 중앙에 박혀있던 푸른 빛의 전자 시계는 밤 7시를 가르킨다. 차창 밖에선 오랜지 빛 가로등과 간간히 지나가는 차량들의 형형색색의 빛들이 잿빛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잠시 후 멀리서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은 신데렐라─재투성이─들의 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차가 밀려버려 생각보다 도착이 늦어졌습니다만, 저녁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괜찮아. 칼로리메이트 가지고 있으니까. 프로듀서도 먹을래?”

 안즈는 가방에서 스테미너 드링크와 칼로리메이트 한 개를 꺼내 반으로 쪼개어 프로듀서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전 괜찮습니다 그보다, 좀 더 재대로 된 걸 먹어주세요. 오늘은 늦었으니 레코딩이 끝나면 카나코씨들도 불러서 재대로 된 식사를 대접하죠.”

 “안즈라고 이걸 매끼마다 먹는 건 아니라고?”

 안즈는 쪼개진 두 조각의 칼로리덩어리를 입안에 던져 넣고 스테미너 드링크로 넘겼다. 늘 먹던 메이플 맛이 질려 치즈맛을 사봤지만 썩 취향은 아닌 것 같다. 그냥 후르츠 맛이라도 사볼걸.

 회사에 도착한 후 프로듀서는 먼저 내리고는 빙 돌아와, 안즈에게 문을 열어줬다. 그렇게 먼 사이도 아니고 안 그래도 되는데 말이지.

 “주차하고 오겠습니다. 먼저 들어가 계시죠. 아 그리고”

 운전석에 다시 올라탄 프로듀서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안즈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사탕’이었다.

 하지만, 안즈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제 애도 아니고 괜찮아.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빨리 와 프로듀서.”

 “……알겠습니다. 후타바씨.”

 “응?”

 “너무 무리하진 마십시오.”

 “응.”

 그리고 프로듀서는 사원용 주차장으로 검은 벤을 끌고 내려갔다. 뭐……살짝 늦기는 했어도 저쪽도 아직 준비 중일 테니까 뛰어 갈 필요는 없다. 그렇게 안즈는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회사의 정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346프로의 로비

 가장 먼저 천장에 달려있는 신데렐라 프로젝트의 커다란 현수막들이 안즈를 맞이한다. 2년전 그 멤버들 그대로, 시마무라 우즈키, 시부야 린, 혼다 미오, 칸자키 란코, 아나스타샤, 닛타 미나미, 오가타 치에리, 미무라 카나코, 후타바 안즈, 마에카와 미쿠, 타다 리이나, 아카기 미리아, 죠가사키 리카……

 아니

 그대로는 아닌가

 

 내 친구. 모로보시 키라리의 모습은 이곳에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으니까.

 

 

 

 

네가 없는 세상에서 <안즈편> ─ Prologue ─

 

 

 

 

 시끄러운 벨소리 ’안즈의 노래’

 346프로의 감사패, 방송국의 예능 신인상, 크고 작은 선물 꾸러미와 시들다 못해 갈색으로 말라 비틀어진 꽃다발들, 사놓고 몇 개월간 뜯지도 않은 신작 게임이나 신상 옷 따위들. 그런 지저분한 잡동사니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핸드폰의 알람 소리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잠을 설쳤던 탓인지, 안즈 자신의 목소리가 혐오스럽고 끔찍하게 느껴졌다.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어두웠지만 비몽사몽에서 왼손으로 핸드폰을 집어 들고 시간을 확인하니 오전 7시 정각. 안즈는 오른쪽 검지로 화면을 밀어 습관처럼 라인(LINE)을 열어, 맨 아래쪽의 대화방을 터치했다.

 

 

 

 

 있을 리 없는 ‘읽음’ 표시.

 안즈는 화면에 검지손가락을 짚어 그대로 내린다. 하얀색의 말 풍선과 함께 키라리의 얼굴이 보인다.

 

 

 뒤로 가기를 누른 안즈는 맨 윗 쪽의 대화방을 터치해 확인했다. 딱히 새로운 대화는 갱신되어있지 않았다.

 

 

 

 ……안즈가 잠을 설칠 때 아무 생각 없이 답장을 했었던 모양이었다. 오늘도 프로듀서의 잔소리 확정인가. 아무튼 대충 대화방을 확인한 안즈는 또 잠들었다.

 시끄러운 벨소리 ‘미쯔보시☆☆★’

 미오의 활기찬 목소리를 듣고 깨어나 폰을 집어 들고 시간을 확인하니 오전 7시 5분.

 시끄러운 벨소리 ‘S(mile)ING!’

 우즈키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듣고 깨어나 폰을 집어 들고 시간을 확인하니 오전 7시 10분.

 시끄러운 벨소리 ‘Never say never’

 “아, 알았어, 알았다고!”

 이불에서 겨우 빠져 나온 안즈는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는 바닥에 앉아 어젯밤 편의점에서 산 후르츠 맛 칼로리메이트를 입에 물고 머리를 말리며 TV를 켰다.

 “오늘의 게스트는 바로 그 국민요정 후타바 안즈쨩입니다!”

 안즈의 노래, 고압으로 분출되는 탄산가스의 연기, 방청객들의 환호성과 함께 ‘내’가 화려하게 등장한다. TV화면에서의 안즈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다른 예능인들과 함께 바보같이 웃고 떠들어 댄다.

 “뭐가 국민요정이야.”

 폭격이라도 맞은 듯 지저분한 방을 두리번거리며 피식, 그렇게 자조하면서 안즈는 포장지를 공처럼 말아 뒤로 던졌다. 그 포장지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쓰레기더미에 파묻혀 있던 분홍색 토끼인형의 머리를 툭 때렸다. 이제는 입지 않는 ‘일하면 지는 거다’ 티셔츠와 줄무늬 팬츠는 몇 개월째인지 빨래 건조대 위에 그대로 널려있었다.

 외출을 위해 옷을 갈아입고 갈색 빵모자와 도수 없는 뿔테안경을 쓴 안즈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악보들을 가방에 쓸어 담고 ‘국민요정’이라는 그 가면을 쓰기 위해 집을 나섰다. 오전 9시부터 캔디아일랜드의 레슨이 있었으니까. 토요일이지만 어쩔 수 있나 불행하게도 예능인에게 주말 따위는 없다.

 한산한 전철의 창 밖에선 파란색 한 점 없는 하얀 하늘에서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슬비는 싫다. 차라리 쏟아지기라도 한다면 우산을 쓸지 말지 같은 영양가 없는 귀찮은 고민을 할 필요도 없을 텐데.

 

 이렇게 이슬비가 내리던 날이었지.

 

 예전부터 키라리는 가끔 두통이 있다며 진통제를 먹고는 했었다. 두통의 원인이야 스트레스나 과로 등으로 인한, 현대인에게 흔한 증상 중에 하나였으니까 별 것 아닌 줄 알았다. 안즈는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평범한 나날이 영원히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토도키라 학원의 촬영일.

 키라리의 키는 어느새 189cm를 넘어있었고, 감독은 그것의 네타화를 주문했다. 물론 키라리도 즐거워하며 열심히 방청객들을 웃겼다. 하지만 같은 촬영 세트 위에서 유치원생 복을 입고 앉아있었던 안즈는, 뒷짐을 진 키라리의 손이 떨리고 있던 것을 목격했다.

 역시 겉으론 괜찮아 보여도 속으론 힘들어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 안즈는 휴식시간에 키라리가 혼자 들어가 있던 대기실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런 안즈의 속 편한 걱정과는 관계없이

 

 키라리는 쓰러져있었다.

 

 폭풍이 불어도 지진이 일어나도 꿋꿋이 버틸 것 만 같던 189cm의 건강한 그 아이가, 그렇게나 힘없이 쓰러져 있었던 것이었다. 안즈는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아 다급하게 키라리의 이름만을 소리칠 뿐이었고 그 소리를 듣고 달려온 프로듀서가 구급차를 불러 우린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이게도 키라리는 금방 깨어났다.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된 리카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팔뚝을 내보이며 건강함을 어필하는 키라리. 하지만 병원의 새하얀 복도에서 프로듀서와 함께 MRI검사지를 들고 온 의사에게 들었던 그 검진결과는 안즈에게 있어서도 충격적이었다.

 뇌하수체 선종

 다양한 호르몬을 분비하여 특히 성장호르몬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그 뇌하수체에 양성 종양이 발견되었던 것이었다. 이대로라면 키가 더 커지는 것뿐만 아니라 종양이 시신경을 압박하여 시력을 잃고, 손발이 커지는 등의 말단 비대증이 올 수 있었다.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겨우 17세의 청소년기 여성의 키가 180cm후반을 넘겼다. 한마디로 ‘비정상’. 하지만 사태가 이렇게 될 때까지도 키라리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아니, 모를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무서우니까

 인정하기 싫으니까

 이상하게 키가 별로 크지 않는 안즈조차 당장의 생활에 불편함이 없다는 이유로 병원엔 발 한번 디딘 적 없었다. 거기다 지금이야 키 140cm를 겨우 넘겼기에 장애 등급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겨우 1cm차이긴 하지만.

 어찌됐든 종양은 키라리의 머릿속에 들어있었고,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한다면 수술로 종양을 제거 한 후 약물치료를 계속하면 어떻게든 회복하여 생명에 지장은 없을 거라는 것이었다.

 그 이후 아이돌 활동을 중단하고 괴로운 투병생활에 들어간 키라리를 위해 안즈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몇 번이고 병원으로 찾아갔다. 다행히 몇 달 후에는 증세는 호전되어 두통이 없어지고 키의 성장도 멈췄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키라리의 키가 190cm를 넘기고야 말았다.

 물론 당시나 지금이나 큰 키를 가지고 키라리를 뭐라 하는 몰상식한 인간은 인터넷에 서식하는 일부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본인은 어떨까

 겨우 1cm차이?

 189와 190이라는 단순한 수치라도 다가오는 심리적인 부담감은 격이 다르다. 안즈가 139cm면 소인증으로 인한 장애 판정을 받고 140cm면 그냥 키가 좀 많이 작은 일반인인 것처럼. 역시나 키라리는 투병 중 안즈의 앞에서는 항상 웃는 얼굴을 보이며 내색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병실의 문을 닫고 나올 땐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었다.

 결국. 그렇게 언제나 해맑게 웃으며 강한 척, 괜찮은 척 하던 키라리는

 

 퇴원 날 짧은 메모 한 장만을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안즈쨩! 키라리는 너무너무 힘들어서 이제 좀 쉴려고 해. 그러니까 당분간 키라리가 돌아올 때 까지 키라리의 몫까지 열심히 힘내줘~☆’

 

 그리고 마지막 줄에 적혀있는 추신.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못 지킬 약속이면 처음부터 하질 말라고.

 

 안즈는 차가운 스테미너 드링크를 ‘마신다’라기보단, 거의 약처럼 원샷으로 들이키고는 차창 밖 멀리서 다가오는 346프로의 건물을 바라보았다. 아침부터 계속된 몽롱함은 가셨지만 가슴이 두근거리고 속이 쓰렸다.

 

 

***

 

 

 “원, 투, 오가타 자세 처진다고! 쓰리, 포, 미무라는 좀 더 팔 앞으로 빼!”

 금쪽같은 토요일 아침부터 하드코어한 스케줄을 강요해오는 블랙기업 346프로의 일상적인 레슨실 광경이었다.

 “후우, 이거 단기간엔 안 되겠구만 일단 오전 레슨은 종료! 점심 먹고 쉬었다가 둘 다 후타바 참고하면서 아까 지적한 부분만 될 때까지 반복 연습하고 있어.”

 트레이너는 박수를 짧게 두어 번 치며 그렇게 말하고는, 스포츠 타올로 땀을 닦으며 레슨 실을 나갔다. 안즈도 땅바닥에 주저 않아 스포츠 음료로 목을 축였다. 그리고 잠시 후, 엎드려 쓰러져있던 카나코가 겨우 상반신을 일으키며 말했다.

 “하아……하아……안즈 쨩. 이번 곡 정말 어렵네.”

 “그러게. 나중에 업데이트 되면 난이도 27정도는 될지도.”

 “그쪽!?”

 안즈는 핸드폰을 꺼내 ‘우리들을 모티브로 한 그 리듬 게임’의 룸에 들어가 아이템을 회수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가챠운이 안 좋은지 아무리 뽑아도 자기 자신이 목소리를 녹음한 ‘안즈’가 안 나와 곤란했었지만 어째서인지 키라리만은 3번이나 중복으로 나왔었지. 으 머리야.

 안즈는 게임 속 치히로씨의 아로마 제단에 갇혀있던 키라리를 집어 들어 넓은 곳에 풀어주었다. 이내 키라리는 리카, 미리아와 함께 그 작은 세계를 신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치에리쨩은 괜찮아?”

 “응.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안즈쨩이 잘 해줘서 어떻게든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아.”

 안즈는 치에리에게 음료수를 건내며 말했다.

 “둘 다 너무 힘이 많이 들어가서 그런 거 아니야? 신곡이라고 해도 아직은 연습이니까 그렇게 긴장 할 필요 없다구?”

 “그, 그럴까나?”

 안즈는 일어서서 트레이너가 지적한 부분을 두 사람에게 재현해주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고 있던 두 사람이 손뼉을 쳤다.

 “그렇게 하는 거였구나!”

 “역시 안즈쨩이야!”

 안무를 맞추고 있을 땐, 자기 자세에만 온갖 신경이 쏠리는 게 보통이라 틀린 부분을 쉽게 찾아내기가 쉽지 않은 법이었다. 이럴 땐 억지로 몸을 움직이기보단 느긋하게 앉아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것이 효율적인 방법. 되도록이면 쓸 때 없는 일을 늘리지 않고자 하는 안즈의 노하우였다.

 10분 정도가 지나 어느 정도 숨을 고른 우리는 346프로의 옥상 정원으로 올라가 각자 싸온 도시락을 먹었다. 오늘의 메뉴는 편의점의 삼각김밥.

 “안즈쨩은 정말 어른스럽네.”

 “맞아, 2년전에는 일하는걸 그렇게도 싫어했는데, 물론 그때도 우리들을 잘 이끌어 줬지만 말이야.”

 “안즈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치에리와 카나코의 순수한 칭찬에도, 안즈는 김밥을 조금씩 뜯어먹으며 그저 고개를 조금 끄떡일 뿐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도 싫다. 빈둥거리고 싶고, 땡땡이 치고 싶고, 대충대충 때우고 싶고 그런 건 애초에 안즈의 선천적인 본능이다.

 그럼에도 다짐했으니까.

 키라리의 몫까지 힘내겠다고, 그리고 키라리라면 분명 열심히 했을 테니 안즈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이곳을 떠난 키라리도 분명, 어디선가에서 안즈의 모습을 보고 있을 테니까.

 그렇게, 키라리의 귀환을 기다리며 정신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지 2년이 넘었다. 하지만 키라리는 돌아오지 않았고, 어째서인지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더 일에 빠져들게 되었다. 결국 어느 틈인가 정신차리고 보니 안즈는 일개 프로젝트의 아이돌을 넘어 연예계 유망주가 되어버렸고,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정규 방송국에서 신인상까지 받아버렸다. 적당히, 되도록이면 적게 일하고 싶은 안즈로선 도리어 심각한 상황.

 “올해는 신데렐라 걸도 노려도 되는 거 아닐까?”

 “아니아니아니, 그거 무리라니까.”

 큰일 날 소리를 하는 카나코. 그런 귀찮은 타이틀은 린이나 우즈키 같은 성실한 사람에게 맡기면 그만일 뿐이다. 실제로도 랭킹이 위험할 정도로 올라버려서 곤란했고 지금도 밥 먹을 시간도 없어서 칼로리메이트로 하루 한끼 정도는 때우고 있는 현실.

 앨범은 고맙지만 투표는 적당히 좀 하라고 이 로리콘 놈들아.

 

 

***

 

 

 안즈는 오후 레슨을 끝내고 어젯밤 프로듀서의 통보대로 프로젝트 룸에 들어갔다. 거기엔 데코레이션의 멤버인 죠가사키 리카와 아카기 미리아가 즐겁게 떠들고 있었다. 그 둘은 안즈를 반기며 인사했다.

 “안즈쨩 오랜만이네! 요즘 서로 바빠져서 재대로 얼굴도 못 봤는걸.”

 “안녕~! 미리아도 안즈쨩 엄~청 보고 싶었어! 치에리쨩이랑 카나코쨩은 잘 지내?”

 그 둘이야 지금쯤 레슨실의 차가운 바닥에서 엎드려 쓰러져 있을 테니까. 물론 안즈도 쓰러지고 싶은 기분, 어서 빨리 집에 가서 자고 싶다.

 “잘 지내. 그리고 오랜만이라 해도 일주일전에 봤잖아?”

 그러고 보면 2년간의 신데렐라 프로젝트 중에 외형적으로 가장 변한 게 이 두 사람이었던가. 올해에 리카는 중3이, 초등학생이었던 미리아는 중2가 됐으니까 키든 외모든 한창 자랄 시기긴 하다. 물론 안즈의 경우를 제외하고.

 “에엣 그랬던가! 그래도 일주일이면 미리아에겐 길다구?”

 “그래 그래 건강하게 지냈어?”

 “응!”

 뭐……키가 좀 크긴 했지만 내면은 영락없는 어린아이들이었다. 머리스타일도 그대로고. 그래도 리카는 카리스마라고 해야 하나……언니 쪽인 미카와 분위기가 많이 비슷해져 있었다. 안즈와 나이가 같은 언니 쪽은 올해부터 대학생이었지.

 “다 모이셨군요.”

 “아, 미안 일하는 중이었어?”

 우리들의 대화가 소란스러웠는지 인기척을 느낀 프로듀서가 집무실 안쪽에서 문을 열고 걸어 나왔다.

 “아니, 괜찮습니다.”

 프로듀서의 표정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어제 새벽에 잠을 설치고 답장 한 건에 대해선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잔소리라고는 해도 점잖은 태도긴 했지만 웬만해선 그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기도 하고.

 안즈는 프로듀서가 건네는 기획서를 받아 읽었다. 내용은 지금의 2인조 유닛 ‘데코레이션’과 후타바 안즈의 합동 라이브. 이런 식의 신데렐라 프로젝트 내 콜라보레이션은 자주 있는 일이니 안즈는 평소처럼 페이지를 넘기며 그 상세를 확인했다.

 하지만 안즈는 기획된 음악의 리스트를 훑어보고는, 의심스럽게 프로듀서를 쳐다보았다.

 “이거……키라리랑 했던 곡이잖아?”

 뒤늦게 놀란 리카가 안즈의 눈치를 본다. 하지만 프로듀서는 이런 반응을 예상했는지 평소대로의 그런 무덤덤한 표정으로 안즈를 쳐다보며 물었다.

 “역시 불편하십니까?”

 ……가끔은 이런 그의 상냥함이 원망스럽다. 급조 유닛의 이벤트 치곤 부담스러울 정도로 두꺼운 기획서를 써 내놓고 이제 와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니, 그냥 의외구나 싶어서……프로듀서야말로 괜찮겠어? 그 이후로 한번도 부른 적 없는 곡인데 이걸 기억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건 문제없습니다. 제 판단에서라기 보단 라이브 당시의 평가가 훌륭해, 지금까지 핵심 팬 층과 스폰서 측에서도 종종 요청이 올라오고 있었기에…...”

 안즈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물론 연락이 끊긴 시점에서 그분을 다시 모셔오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모로보시씨가 있었던 지금의 데코레이션과 콜라보를 진행한다면 타당한 기획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갑자기 미리아가 뜬금없이 끼어들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면 안돼. 프로듀서.”

 “네?”

 미리아가 안즈의 양손을 잡았다.

 “기획이라던가 팬이라던가 스폰서라던가 관계없잖아? 이 노래는 안즈와 키라리의 추억이 담긴 소중한 노래라구?”

 “……”

 언제나처럼 정곡을 찔러오는 미리아였다. 물론 노래도 안무도 전부 기억하고 있다. 일이 귀찮네 뭐네 하면서도 키라리와 함께 죽도록 연습해서 성공시킨 라이브였으니까. 하지만 키라리가 없는 지금 이 곡을 다시 부를 수 있을지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미리아와 리카가 진지한 얼굴로 안즈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안즈의 선택을 기다리고 어떤 결과라도 수용할 의지를 보이는 것처럼.

 생각해보면 이 애들도 분명 안즈 만큼이나……

 “할게.”

 결국 안즈는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 미리아가 고개를 끄떡였다.

 “응. 안즈쨩이 그렇게 말한다면. 미리아도 할래.”

 “나도!”

 리카도 활짝 웃으면서 양손으로 미리아와 안즈의 손을 잡았다.

 “뭐어, 이렇게 되면 데코레이션이 아니라 보코레이션(凹レーション)이 되겠지만”

 “아하하! 정말이네! 어느새 미리아도 안즈쨩보다 키가 커졌구나!”

 “에에~? 나는 원래부터 안즈쨩보다 컸다구?”

 “그래 그래, 그보다 언제까지 손 잡고 있을 거야? 생각보다 덥다고?”

 솔직하게 말하자면……덥다기보단 부끄럽다. 키라리가 있었던 데코레이션은 언제나 이런 분위기였던 건가……

 “그럼 예정대로 기획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프로듀서가 처음보다 풀린 온화한 얼굴로 우리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평소에도 좀 그렇게 긴장 풀고 다니지, 그러면 안즈랑 다닐 때도 조금은 덜 의심받을 텐데. 가끔 사생 팬으로 오해 받아 경찰서에라도 잡혀가면 설명하고 빼오는데 여러모로 피곤하다.

 “내가 세 명 다 라인에 초대할 테니까!”

 “네, 부탁 드립니다.”

 리카가 핸드폰을 꺼내들어 가볍게 톡톡톡 두드리자 주머니에서 진동이 한번……이 아니라 끊임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우와! 하루카쨩 스탬프 귀여워! 미리아도 할래!”

 “봐봐 우리들 것도 있다구?”

 “그거 알아! 미리아도 샀다구. 리카쨩 귀여워!”

 

 

 ……이 패턴대로라면 한참이 걸릴 것 같다. 배터리도 얼마 안 남았고 알림은 그냥 꺼둘까. 프로듀서도 자신의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언제나처럼 목덜미를 잡고 있었다.

 

 

***

 

 

 이후, 안즈와 미리아, 리카는 추가로 레슨을 잡고 호흡을 맞췄다. 예상외로 늘어난 스케줄이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프로듀서의 배려로 자잘한 업무가 최소한으로 줄어들었으니 할만하긴 했다. 그리고 키라리 때보단 리카와 미리아가 안즈와 체격이 비슷해서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고, 아니, 반대로 말하자면 늘 키라리와 안무를 맞추고 있었던 두 사람의 실력이 오히려 무서울 정도다.

 그러고 보면 이 둘은 그 당시 어떤 심정이었을까.

 키라리는 안즈 이외에도 특히 이 둘과도 상당히 친했었지. 당시엔 자기 앞가림만으로도 벅차 그럴 겨를이 없었지만 지금에서야 신경이 쓰인다.

 “아앗! 안즈쨩 또 그거 먹는다!”

 레슨실의 마룻바닥에 주저앉아 칼로리메이트와 스테미너 드링크로 간식을 때우고 있던 안즈에게 미리아가 소리쳤다. 이 애의 성정을 생각하면 화내는 것도 무리는 아닌가.

 “그럼 안돼! 재대로 된 밥을 먹어야지!”

 “끼니마다 먹는 것도 아니고 괜찮잖아. 물론 칼로리도 재대로 계산하고 있다고?”

 “칼로리라던가 그런 문제가 아니라 사람은 밥을 먹어야 해!”

 ……아직 중2니 칼로리 개념은 잘 모를 수도 있는 건가. 미리아는 아무리 봐도 안즈처럼 이공계를 갈 것 같진 않지만. 아무튼 미리아 말에 리카도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그것도 그렇네. 그럼 끝나고 언니가 가르쳐준 맛있는 케이크 집 같이 갈래?”

 “와앗! 미리아도 갈래!”

 “아까 밥이 어쩌고 어째!?”

 “안즈도 올 거지? 케이크라던가 사탕이라던가 되게 좋아했잖아?”

 “안즈도!? 그, 그게, 안즈는 이젠 그런 거 필요 없으니까……”

 갑자기 리카가 핸드폰으로 각종 스위츠들의 사진을 들이대기 시작한다. 딸기 크림 케이크……초코 케이크……티라미슈……치즈케이크……막대사탕……크림사탕……샤브레……마카롱……

 “큭큭, 시간제라구? 맘껏 먹을 수 있다구? 단 거라면 사족을 못쓰는 그 안즈쨩이 저항 할 수 있을까나~?”

 “까나까나~☆”

 “아, 안돼! 봉인된 자신이 나와버렷!!”

 “그대로 나와버려랏~!”

 “려랏~☆”

 “으아아아아아!!”

 안즈는 끝내 본능에 패배하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새인가 리카가 들이댄 사진 속 가게의 객석에 앉아, 포크로 케이크 조각을 입안에 넣고 있는 안즈가 있었다.

 “맛있어……달아……핫!”

 “그치? 그치! 언니가 소개시켜준 가게라구! 그러니까 미리아도 안즈도 많이 먹으라구?”

 “응!”

 헛웃음이 나왔다. 속 편한 녀석들. 이렇게 보니 그 녀석이랑 정말 닮은 거 같기도 하다. 프로듀서는 그래서 이 둘과 키라리를 한 유닛으로 엮었던 걸까.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분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있잖아 안즈.”

 “왜? 리카.”

 미리아가 행복에 젖어 케이크를 먹는 모습을 바라보던 리카가, 평소와는 다른, 의외의 낮은 진지한 톤으로 물어왔다.

 “예전엔 그렇게도 좋아했던 사탕이나 과자같이 단것들, 왜 그만두게 된 거야?”

 “안즈도 이젠 19살이니까.”

 그렇게 답하고는, 왼손으로 턱을 괸 채 멜론소다를 빨아 마셨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즈라는, ‘나’라는, 글러먹은 히키코모리 인간을 억지로라도 움직이게 할 수 없었으니까. 단것이라면 물론 지금도 좋다. 목에서 팔이 튀어나올 정도로 좋다. 죽도록 싫은 ‘일’은 할 수 있어도 단것 없이는 못 살았었다. 그게 안즈의 유일한 낙이었으니까.

 “헤에 안즈쨩도 이제 어른인가~ 나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걸?”

 “리카쨩, 언제는 이미 어엿한 레이디라면서 프로듀서에 노출 많은 일이라던가 졸라대지 않았어?”

 그러자 리카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트, 틀려! 그건 옛날일 일 뿐이라구! 봉인된 흑역사라구!!

 리카가 울상이 되어 테이블을 동동 때린다. 그래도 중2병의 희생자 치곤 빠르게 나아, 앞으로 찰 이불이 많지 않아 다행인건가. 뭐, 그걸 고딩이 되어서도 아예 컨셉으로 밀고 가는 녀석도 안즈 주변에 있었으니 딱히 상관은 없을지도.

 “사실……키라리가 그렇게 떠나버리고 나서 말이야. 난 내가 정말 어린애였다는 걸 알게 됐거든.”

 그 의외의 고백에 안즈는 리카를 멀뚱히 쳐다봤다. 리카는 빈 유리컵의 얼음을 빨대로 빙글빙글 돌려가며 말했다.

 ”당장 미리아는 나랑 별 차이도 없었지, 예고도 없이 리더를 맡겨져서 당장 뭘 해야 하는 지도 모르겠지, 조금만 잘못되면 언니나 P군에 달려가서 졸라대면서 울기만 했지……”

 본인 말마따나 일이 수틀릴 때마다 언니나 프로듀서에게 달려가 도움을 요구하기만 하던 그 리카에게서 안즈가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리카는 나름 진지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나도 미리아와 키라리와의 소중한 유닛을 쓸모 없게 만들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았어. 그러고 나서 키라리가 없는 첫 라이브를 성공시키고 나서야 드디어 알겠더라고”

 안즈는 고개를 돌리고 있던 리카의 눈을 바라봤다. 추억에 젖은 애처로운 눈빛.

 ”키라리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했는지.”

 그리고 5초 후

 “우….우우ㅜ우…. 우에에에에에엥!!!”

 “옳지 옳지. 괜찮아. 리카의 옆엔 미리아가 있으니까. 키라리도 분명 돌아올 거니까.”

 울음을 터뜨린 리카의 머리를 미리아가 자신의 품에 안아 부드럽게 감싸준다. 이래나 저래나 옛날부터 리카보단 한 살 아래인 미리아가 훨씬 어른스러웠지.

 문득, 이런 생각을 하는 안즈도 리카의 말처럼 자신도 모르는 새에 어른이 되어 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글쎄……그것에 대해선 아무런 실감도, 감상도 떠오르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는 가정에서 태어나, 유치원에 들어가, 초등학교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안즈는 언제나 혼자였으니까. 아무도 없는 빈 집. 매일 일로 바쁜 엄마가 남겨놓고 간 사탕. 해질 대로 해진 분홍색 토끼 인형.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라곤 그것이 전부였다. 그런 안즈에게 ‘어른’이란 단어가 와 닿을 리 없지. 그냥 아무래도 좋을 뿐이다.

 케이크의 무한리필 시간이 끝나고, 안즈는 둘의 귀가가 너무 늦지 않도록 역까지 배웅해줬다. 그리고 밤 10시쯤 집에 도착한 뒤, 안즈는 침대 위에 그대로 엎드려 뻗어버렸다.

 

 

***

 

 

 안즈가 눈을 뜬 것은 새벽 1시였다. 딱히 악몽을 꿨다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잠이 들어도 수면을 지속하지 못하고 정상보다 일찍 깨어버리는 조기각성이라는 증상이었다. 그리고 몇 개월 전부터일까, 이런 문제가 자주 일어났고 처음엔 대수롭지 않았지만 가면 갈수록 안즈를 미치게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별 다른 대처방법은 떠오르지 않았고 허구한날 뜬눈으로 밤을 지새기 일쑤였다. 그러다 잠들어서 2시간이라도 더 잘 수 있으면 운이 좋았을 뿐, 결국 낮에는 스테미너 드링크를 달고 살게 되고 그 덕분에 더욱 잠을 재대로 자지 못하게 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어찌됐든 오늘의 일은 미쿠와 함께 오전 6시부터 시작하는 버라이어티 방송의 야외촬영이니까 그냥 이대로 밤을 새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안즈는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신작 게임……아니, 구입한지 몇 개월이나 지났으니 이미 신작은 아닌가. 어쨌든 게임을 했다.

 초인종이 울렸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현관에 서있는 프로듀서를 확인한 안즈는 문을 열어주었다.

 “깨어계셨군요.”

 “3시간 정도는 잤으니까 걱정 마 프로듀서. 미쿠는?”

 “마에카와씨는 아베씨와 함께 따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프로듀서가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본다. 왜 이제 와서야 이런 기분 좋은 졸음이 찾아오는 걸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바로 씻고 나올게.”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전 그럼 나가있죠.”

 “괜히 그럴 거 없다니까? 편하게 앉아서 기다려.”

 이 쓰레기 매립장 같은 방에서 편하게 앉을 자리도 없겠지만.

 새벽 4시의 도로는 한산했고 하늘은 생각보다 어둡지 않은 남색이었다. 저녁 6시가 되어도 아직도 해가 지고 있을 그런 시기니까. 그러고 보면 곧 여름인가……아마 올해도 질리도록 수영복 입혀지고 또 찍히려나.

 “프로듀서, 이번에도 우리들한테 수영복 같은 거 잔뜩 입힐 거야?”

 “기획 검토 중입니다.”

 “유카타는?”

 “기획 검토 중입니다.”

 “아~ 아~ 또 그런다.”

 가로등의 주황빛으로 물든 도로의 정면을 쳐다보며 운전하던 프로듀서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만큼은 안즈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경직된 얼굴이 아니었다. 희미하지만 분명한 형태의 미소로, 자기 딴에는 장난스럽게 대답하고 있는 프로듀서였다.

 “후타바씨.”

 “응?”

 “당신은 아이돌이 즐겁습니까?”

 모르겠다.

 프로듀서에게 인세생활이라는 감언이설에 낚여, 처음엔 일확천금을 벌어 평생 혼자서 놀고 먹고 살 궁리밖에 안 했으니까. 하지만 그 녀석을 만나고 나선 모든 게 바뀌었다.

 혼자가 편했던 안즈에게 어느 틈엔가 귀찮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멋대로 귀찮은 사람들을 또 증식시켜놓는다.

 정말 민폐가 따로 없다.

 하지만 안즈는 그것에 즐거움을 느껴버렸던 것이었다.

 “……그럴지도.”

 “그렇다면 무리는 하지 말아주세요.”

 “응……그럴게.”

 

 그의 마지막 말에, 안즈는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꼈다.

 

 그러고는, 안즈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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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화가 : kylo

※ 이번 글에서 삽화는 한 장밖에 못구했습니다. 부탁한 친구가 프로라서 겨우 팬픽 삽화로다가 공짜로 부려먹기가 좀 미안하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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