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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CHEMY] FUNFUN한 프로듀서 이야기

댓글: 3 / 조회: 986 / 추천: 2



본문 - 06-22, 2016 17:22에 작성됨.

매미가 가열차게 울어대던 여름날, 자기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놓은 프로듀서가 사무소에 들어왔다. 프로듀서의 눈에는 형광등이 모두 꺼진 사무소의 광경이 들어왔다.

 

P : 그러고보니 코토리 양은 어제부터 휴가였지.

 

일정을 적어놓은 화이트보드를 확인하고 사무원도 없음을 확인한 그는 자기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약 30분 뒤, 소파가 있는 곳에서 난 목소리는 그의 단잠을 깨웠다.

 

키타자와 시호 : 응. 오늘 저녁은 카레야.

 

잠을 깨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키타자와 시호였다. 프로듀서는 칸막이 너머로 시호의 행동을 살펴보았다.

 

키타자와 시호 : 고기는 잔뜩 넣었으니까. 아~ 당근 골라내지 마.

 

에어컨 바람이 들어오는 사무소에서 시호는 대본을 읽고 있었다. 좁디 좁은 사무소였지만, 시호 혼자서 연기 연습하기엔 넓은 곳이었다.

 

P : Tres Bien!

 

프로듀서의 서툰 프랑스어는 즉각적으로 아이돌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시호가 가늘어진 눈매로 자기를 노려보는 모습을 그는 볼 수 있었다.

 

P : 내 프랑스어가 너무 유창해서 입을 떼지 못하나 보구나.

 

키타자와 시호 : 그럴 리가 없잖아요. 프로듀서.

 

프로듀서는 허허 웃기만 할 뿐, 대꾸하지 못 했다.

 

키타자와 시호 : 프로듀서는 언제나 그런 식이셨어요. 언제부터 깨어 있으셨던 건가요?

 

P : 카레 권하는 때부터. 방금 연기한 배역은 오늘 저녁에 연기할 고등학생 맞지?

 

프로듀서는 시호가 자기 말을 듣고나서 시선을 살짝 돌린 것을 발견했다. 시호가 부끄러워하는 것을 감추려는 것이리라 지레짐작한 프로듀서는 어색하지 않은 한도 내에서 화제를 돌렸다.

 

P : 시호는 언제나 진지하구나.

 

키타자와 시호 : 지금은 아직 출연 기회도 적지만...더 큰 드라마에서 주역이 되려면, 어떤 역할이든 전력으로 연기하지 않으면......

 

담당 아이돌의 진의를 알아챘다고 믿은 프로듀서는 자신만만하게 화답했다.

 

P : 그 말. 기억해둘게.

 

시호의 맑은 눈동자에 비친 프로듀서는 미소짓고 있었다. 그는 자기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차 열쇠를 꺼내어 빙빙 돌리고 있었다.

 

P : 마침 아는 친구가 드라마 PD로 일하는데, 주연 여배우를 못 찾고 있었거든.

 

프로듀서의 말을 듣고 나서 시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P : 원래 의향을 물어보는 것이 순서니...

 

키타자와 시호 : 할게요!

 

프로듀서가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시호는 대답했다. 잽싸게 말한 시호의 간절한 표정이 프로듀서의 눈에 띄었다. 문득, 그는 자기 담당 아이돌에게 맹한 어조로 반문했다.

 

P : 흐응? 잘 못들었는걸?

 

키타자와 시호 : 자꾸 이런 식으로 놀리실 건가요? 프로듀서? 하겠다고 말했잖아요.

 

P : 하하하하. 장난이야. 장난.

 

프로듀서는 돌리던 열쇠를 잡았다. 에어컨이 꺼진 것을 확인 한 다음, 그는 밖으로 나왔다.

 

P : 대본은 챙겼지?

 

시호는 대답하는 대신 대본을 들어 보였다. 승용차에 탄 프로듀서는 시동을 걸어 운전했다. 신호를 잘못 만나 늦어지긴 했지만, 두 사람은 제 시간에 방송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P : 여보세요? 응~ 잘 지내지?

 

시호가 고등학교 교복으로 갈아입는 동안, 프로듀서는 전화를 걸고 있었다.

 

P : 그래. 그러면 부탁한다.

 

전화를 끊은 프로듀서는 촬영장에서 리허설 하는 시호를 지켜보았다.

 

키타자와 시호 : 편식하면 키 안 큰다?

 

진지하게 연습해온 덕분인지, 시호는 무사히 리허설을 마칠 수 있었다. 촬영에 들어간 뒤에도 NG 없이 연기하는 시호를 보면서, 프로듀서는 전화 너머의 상대와 대화하였다.

 

키타자와 시호 : 그래. 누나가 만들어줄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대사가 끝나자 마자, 감독은 컷을 외쳤다. 제작진들에게 인사한 두 사람은 지하 주차장으로 갔다. 담당 아이돌을 집에 보내주고, 사무소에 도착한 뒤에야 프로듀서의 일과는 끝이 났다.

 

다음 날, 사무소에 온 프로듀서가 시호에게 보여준 것은 새 드라마의 각본이었다.

 

키타자와 시호 : 그 각본은!

 

야부키 카나 : 우와. 이런 모습은 처음 봐.

 

평소와 다르게, 시호는 살짝 상기된 어조로 말했다. 그 다음에 그녀는 잠시 눈을 크게 뜨더니, 아까보다 한결 낮은 어조로 다시 질문했다.

 

키타자와 시호 : 그 각본은 뭔가요?

 

P : 어제 말했던 그 드라마야.

 

야부키 카나 : 드라마? 시호가 또 드라마 배역을 딴 거에요?

 

P : 응. 재미있을 것 같은 배역을 하나 알아내서 말이지. 그것도 주역이야.

 

야부키 카나 : 좋겠다~~

 

야부키 카나에게 선망의 눈길을 받은 시호는 침착하게 질문했다.

 

키타자와 시호 : 그래서 제가 연기할 배역은 뭐죠?

 

프로듀서의 표정을 시호는 바라보았다. 터지려는 웃음을 참으려는 듯이 프로듀서는 미소짓고 있었다.

 

P : 후우. 하아.

 

키타자와 시호 : 프로듀서?

 

심호흡을 내쉬던 프로듀서는 시호의 말을 듣고서 비로소 입을 열었다.

 

P : 여신이야.

 

키타자와 시호 : 네?

 

P : 여신이라고. 남주인공을 가호해주는 여신.

 

키타자와 시호 : 그 설명만으로는 어떤 배역인지 모르겠거든요?

 

P : 천계의 행정상 착오로 지상에 강림해서 남주인공인 용사를 도와주는 여신이야.

 

키타자와 시호 : 저도 각본 좀 볼게요.

 

프로듀서가 건네준 각본을 읽어본 시호의 표정은 급속도로 굳었다. 시호의 표정이 변한 것을 포착한 카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야부키 카나 : 시호?

 

키타자와 시호 : 프로듀서. 여기 나온 여신 말인데요.

 

P : 응.

 

키타자와 시호 : 지상에 강림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남주인공의 멱살을 잡고 목 놓아 울기'네요.

 

야부키 카나 : 으엑??

 

P : 맞아. 천계에 행정상 착오가 생긴 건 여신에게 푸대접을 받은 용사가 품은 앙심이 하늘에 닿아 전산 오류를 일으켰기 때문이거든.

 

야부키 카나 : 전산 오류라니, 이상하잖아요??

 

몇 페이지 정도 넘기던 시호는 각본을 들이대며 다시 프로듀서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키타자와 시호 : 여기 '외상값 갚을 수 있도록 금전 좀 빌려달라 울면서 매달린다.'는 뭐죠?

 

P : 시호가 연기하게 될 여신이 술값이랑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하거든. 그래서 용사인 남주인공에게 매달려.

 

이제 카나는 시호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키타자와 시호 : 여기 미장이 일을 한다고 써 있는 건 뭐죠?

 

P : 여신 시호가 벽에 회칠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는 의견이 있었거든.

 

키타자와 시호 : 누가 그런 의견을 낸 거죠?

 

잠시 뜸을 들이던 프로듀서가 꺼낸 말은 아래와 같았다.

 

P : 나란다.

 

키타자와 시호 : 하아??

 

P : 드라마 PD가 여신이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넣고 싶어했거든. 그래서 내가 제안했어.

 

키타자와 시호 : 어째서 그런 걸 제안하신 건가요??

 

분노한 담당 아이돌 앞에 선 프로듀서는 침착하게 답했다.

 

P : 당시에 추가되려는 장면이 술집 여급이었거든. 그래도 미장이가 여급보다는 나아 보였어.

 

프로듀서는 여세를 몰아 계속 반격했다.

 

P : 분명 '지금은 아직 출연 기회도 적지만...더 큰 드라마에서 주역이 되려면, 어떤 역할이든 전력으로 연기하지 않으면...... '이라고 말했지?

 

키타자와 시호 : 윽!

 

말투까지 완벽하게 흉내낸 프로듀서를 보고, 시호는 입을 꾹 다물었다. 흡족해하는 표정으로 프로듀서는 이렇게 덧붙였다.

 

P : 분명 재미있는 드라마가 될테니까 시청자들의 재미(Fun)를 위해 조금만 참아주려무나.

 

시간은 흘러흘러 새로운 드라마 촬영 당일, 프로듀서는 시호를 방송국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는 촬영장에서 혼다 미오의 프로듀서를 만나 인사했다.

 

혼다 미오 : 혼다 미오입니다!

 

키타자와 시호 : 키타자와 시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시호가 다른 출연자들과 인사하는 동안, 프로듀서의 눈에 띈 사람은 다름 아닌 드라마 감독이었다. 감독은 심각한 표정으로 PD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뒤통수를 긁적이던 감독은 시호의 프로듀서를 불렀다.


감독 : 키타자와 양의 프로듀서 되시는 분. 잠깐 여기 와주세요.

 

P : 무슨 일이십니까?

 

감독 : 남자 배우가 교통 사고를 당했다고 연락이 왔거든요?

 

P : 네?

 

감독 : 그래서 누군가가 대신 남주인공을 연기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죠.

 

P : 촬영 일정상 그 방법 밖에 없겠네요.

 

감독 : 이번만 남주인공 역할을 대신 해주셔야겠습니다.

 

P : 음? 그럼 저는 일단 무대 뒤로......

 

감독 : 부탁드립니다.

 

무대 뒤로 돌아가려던 프로듀서는 뒤늦게 감독이 한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P : 잠깐만요? 뭐라고 하셨죠?

 

감독 : 부탁드린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을 주연으로 섭외하고 싶습니다.

 

P : 아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프로듀서를 주연으로 내세운다니요?

 

감독 : 우리가 섭외할 수 있는 인원 중 그 배우와 용모가 닮은 분이 당신 뿐입니다. PD의 추천이 있기도 했고요.

 

P : 저, 대학생 이후로 연기 같은 건 해본 적 없습니다! 주연 같은 건 무리입니다!

 

감독 : 당사자가 이렇게 말하는데, 어쩌죠?

 

PD : 대학생 때, 연극부에서 활약하신 선배니까 괜찮을 것 같네요.

 

감독 : 그래요? 그럼 괜찮겠네요!!

 

P : 잠깐!! 대역을 쓴 다음 CG를 쓰는 방법도 있잖습니까?

 

프로듀서의 제안을 들은 PD와 감독은 황당한 말을 하는 사람을 볼 때와 같이 프로듀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PD : 그럴 예산이 있으면, 처음부터 제안하지도 않았겠죠.

 

감독 : CG 만드는 데 쓸 인력과 장비도 없습니다. 촬영 일정이 빠듯해서 외주로 맡기기도 여의치 않습니다.

 

키타자와 시호 : 받아들이세요. 프로듀서. 시청자들의 재미(Fun)는 소중하잖아요.

 

이마에 왼손을 얹은 프로듀서의 오른손을 시호는 잡아주었다.

 

키타자와 시호 : 어떤 역할이든 전력으로 하라 일깨워주셨죠? 제게 그렇게 말씀하신 프로듀서는 배우 역할도 성실하게 해낼 것이라 믿어요. 

 

그러나 프로듀서의 안경에 비친 시호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예전에 느낀 감정을 담당 아이돌도 느끼고 있음을 그녀의 표정을 통해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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