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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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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03, 2016 22:53에 작성됨.

하루카, 너는.....죽었구나. 더는 만날 수 없어.

 

어느 이국의, 이름도 알 수 없는 바닷가까지 와서야 겨우 깨달아버렸네.

 

아니, 실은 알고 있었어. 유명 아이돌의 죽음이었던 만큼 온갖 곳에서 네 소식을 전해왔으니까, 싫어도 알 수밖에. 처음에는 꿈인줄 알았어. 두 눈으로 네 장례식이 치뤄지는 것을 보고도, 다른 사람들이 참지못하고 오열하는 소리를 듣고도.

 

눈물, 나오지 않았어. 울 수 없었어. 울고 싶은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어. 어딘가 탁하고 막혀버린 것만 같았지. 괴로운 소용돌이가 계속해서 마음 한 가운데에 머물고 있었어.

 

꿈, 꿈, 꿈.

 

지독한 꿈. 악몽. 그렇게, 쭈욱 믿고 싶었는데. 점점 시간이 지날 수록 네가 없어져버렸다는 실감이 갈 수록 강해져만 갔어.

 

하지만 인정할 수 없었어. 솔직히, 인정하기 싫었어. 그게, 아직도 눈을 감으면 네 환한 미소가 선명하게 떠오르고 마는 걸. 때로는 치하야쨩, 하고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스치고 가곤 해. 물론, 눈을 뜨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려. 하루카, 너는 이제 추억으로밖에 존재하지 않게 된거야. 유우처럼.

 

그러니 내 말은.....들리지 않을 거야. 그 어떤 노래를 불러도, 역시 들리지 않아. 갈라진 목소리만이 허공만을 맴돌다 사라질 뿐. 알고 있어. 너무나도 잘. 내게 있어서 두번째로 일어나는 일이니까.

 

그렇지만 나,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들어줘, 하루카.

 

들리지 않아도 들어줘.

 

아까도 말했지만, 나 어느 외국에 있어. 어디냐고? 글쎄.....워낙 충동적으로 와버린 거라 잘은 몰라.

 

에, 정말!? 치하야쨩, 완전 대책없는 거 아니야!?

 

만약 네가 살아있었다면 이런 말을 해줬을 정도네. 아, 그래. 스케쥴은 어떻게 되었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구나. 걱정 마. 아이돌 활동은 잠깐 쉬고 있어. 그래도 사무소 사람들과는 정기적으로 연락 하고 있어. 이번에는 모두에게 알리지도 않고 무작정 와버렸지만.

 

특별한 이유는 아니고, 바다가 보고 싶었어. 일본에도 바다가 있는데 굳이 이 먼 타역까지 와버렸나고? 이왕이면 아무도 없는 곳이 좋겠다고 생각했어. 날 알아보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으면 해서. 너무나도 지쳐버렸거든. 격려를 듣는 것도, 응원을 받는 것도, 악의를 받아내는 것도.....전부, 전부.

 

너무나도 속상해서, 괴로워서 다른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어지는 마음도 이해해. 한때는 나도 그랬으니까. 부질 없는 일이지만. 내가 기운 차리고, 슬픔을 딛고 일어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도 인식하고 있어. 하지만, 이따금 그런 게 있잖아. 주변에 다가오는 모든 것이 싫어질때. 혼자 있고 싶어질 때.

 

그래서 여기까지 와버렸어. 어떻게해서 이런 인적 없는 곳까지 흘러들어왔을까, 하고 스스로도 그만 깜짝 놀랐지 뭐니. 설마 저 편의 세계에서 웃고있다던가.....그런 건 아니겠지? 아니다, 마음껏 웃으렴. 나 자신이 생각해도 이건 어이없는 일이니까. 정말, 아즈사 씨를 걱정할 게 아니었어.

 

돌아가는 방법은.....아니, 괜찮아. 중요한 건 바다야. 염원하던 풍경은......쓸쓸하네. 어울리지 않은 계절에 와버린 탓일까. 하늘은 어둡고, 바람은 메마르고 차가워. 그래도 원하던 대로 정말 나 혼자밖에 없다는 게 좋아.

 

그래서 그런 걸까, 바람이 붉게 얼어붙은 뺨을 할퀴고 지나가도 아프지 않아. 숨을 들이쉬고, 내뱉을 때마다 하얀 김이 새어나올 정도인데도, 춥지 않아. 아, 어느 순간부터 하늘이 탁하게 변했네. 나는 언제까지 여기에 있었던 걸까. 좀 전만 해도 햇살이 약간이나마 비추고 있었는데. 시계가 없으니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지만, 곧 있으면 저녁이 될 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꽤 긴 시간 동안 나는 바다를,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었어. 위 아래가 서로 맞닿은 곳. 한 일자에 가깝게 그어진 경계. 그 위로는 뿌연 하늘이 있고, 밑에는 파랗기만 하지는 않은 바다가 있어. 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곳에 이르러서는 적막한 냉기가 감도는 텅 빈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지.

 

마치 누군가에게 버려진 것만 같은 이 잿빛 공간. 하루카, 나는 바다를 보고 있었어. 그게 여기에 온 목적이었으니까 당연한 소리겠지. 그렇다고 가만히 보고만 있던 건 아니야. 때로는 짙은 황갈색 바닥에 시선을 고정하고 말없이 걸었어. 지금까지 나 있는 발자국은 단 한 줄. 오직 나만의 것. 사락사락, 모래 밟는 소리가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게 나쁘지 않았어.

 

그러다 질리면? 멈춰서서 바다를 바라봤지. 나는 지금까지 그 두 행동을 끝없이 반복하고 있었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바다를 만끽하고 돌아갈까 해서. 그리고 그러다가.....인정해버리고 말았어.

 

하루카, 너는 정말 죽어버렸구나.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이, 지금 와서는 너무나도 시원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리게 돼. 하루카, 저기 있지.....바다는 푸른 색만이 있는 건 아니었어. 갑자기 왜 그러냐고? 네 눈과 똑 닮은 빛깔을 발견해서 그래. 일렁이는 바닷물에서.

 

하루카.

 

무심결에 네 이름이 흘러나왔어. 대답, 당연하지만 돌아오지 않았지.

 

응. 맞아. 그래서 인정하게 된거야. 아, 이제야 속이 시원하게 풀린 느낌.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았지만, 실은 나.....울고 있어. 이제야 눈물이 흘러나왔어. 이미 늦었다는 건 알고 있지만, 한 번 터져나오고 나니 그치질 않아서, 무척, 곤란하네. 다행이야. 여기가 사무소가 아니라서. 이런 모습 보이기라도 한다면, 다들 분명 화들짝 놀랄테니까.

 

눈물이 그칠 때까지는 여기 있을게.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계속 울고 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꼴사납잖니. 그러니까, 이제 늦었다는 말은 하지 말아줘. 때가 되면 돌아갈테니까.

 

......

 

미안해. 거짓말이었어. 나, 사실은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하루카, 들어줘. 들리지 않겠지만 들어줘!

 

바다를 보고 싶다는 말은 핑계였어. 나는 힘내라는 그들의 기대에 보답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도망쳐온 거야. 아무도 없는 장소로. 힘들어. 이젠 지쳤어. 질렸어. 잃어버리는 건 두 번만으로도 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무언가를 소중히 여길 수 없을 것 같아. 그게 다른 사람이건, 나 자신이건, 뭐던 간에.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감정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는 걸까.

 

눈물은 이제 그쳤어. 대신에, 마음에 녹이 잔뜩 슬어버렸어. 슬프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아. 아까부터 바람이 심하게 부는 데도, 아무 감각이 느껴지질 않아.

 

어쩌지, 앞으로 나는.....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모르겠어.

 

이 밋밋한 풍경과 같이 액자 안에 가둬진 것 같아. 나갈 방법을 모르겠어. 길이 보이지 않아. 그러니까 알려줘. 하루카,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하루카?

 

미안해, 뭐라고 말하는 건지 들리지 않아. 조금 더 크게 말할 수 없을까? 그게, 파도 소리가 너무 커서 그것밖에 들리지 않아. 그것도 아니라면, 이 무섭게 불어오는 바람이 흩어놓고 있는 걸지도 몰라. 그러니까, 크게. 좀 더 크게. 귀가 아플 정도로 소리쳐도 좋으니까, 힘껏!

 

......미안해. 이런 엉망진창인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벅찼을텐데, 힘든 요구까지 해버렸네. 나가는 방법은 이 쪽에서 찾아보도록 할게.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앞으로 힘낼 수 있도록, 노력, 해볼게. 그러니까, 잠깐만, 아주 잠깐만 더 여기 있게 해줘.

 

부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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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아아아아아 중2력 발싸~~~~~ 하루카가 난데없이 죽어있고 이제 곧 여름이 오는데 겨울 바다라니 웬말인가~~~

fictionjunction의 동명의 곡을 바탕으로 써봤습니다. (급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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