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신데렐라 판타지]단편선 번외. 사기사와 후미카 - 현자의 결심

댓글: 3 / 조회: 1048 / 추천: 0


관련링크


본문 - 05-27, 2016 17:37에 작성됨.

" 스승님. 일어나세요. "
 
명료한 목소리에 그녀의 감긴 눈이 띄였다. 눈동자는 깊은 바다를 그대로 투영해놓은 것 처럼 선명하고 깊었다.
그 눈동자에 비치고있던것은, 작은 소녀였다. 아주 작은 약 9~10살 가량 되보이는 소녀.
여성은 소녀의 모닝콜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부스스하면서도 메끈한 머릿결이 천정으로부터 내려오는 햇빛을 받아 빛났다.
무수한 서책과 책장들의 사이에서 홀로 햇빛을 받으며 앉아있는 그녀의 모습은 처음보는 이들에게는 분명 여신으로 보일만큼 아름다움을 품고있었다.
 
" 또 이런곳에서 주무신건가요 ? "
 
소녀는 다소 불만스러운듯이 툴툴거렸다. 아무래도 자기 스승이 제대로 잠자지 않아 건강에 좋지않은 영향을 끼칠까봐 걱정하고있는 마음이 그런식으로 투영된 거겠지. 라고 여성은 자연스레 생각회로가

이어졌다.
툴툴거리는 작은 손으로부터 건네진 따스한 연녹빛이 깃든 머그잔을 받으면서, 작은 제자의 기특함에 여성은 자연스레 미소를 지었다.
 
" 미안해요. 아리스. "
" 현자, 사기사와 후미카는 책들 사이에서 앉은채로 자도 된다. 라는 법은 없다구요? "
 
'신경 써주세요.' 라고 마저 붙인 뒤, 작은 소녀 아리스는 퉁퉁불어있던 뺨의 공기를 빼내고 후미카를 따라 엷은 미소를 내비쳤다.
미시로 왕국 영토와, 북방의 얼음산맥의 경계선에 존재하는 이름없는 바위계곡. 그리고 그 바위계곡의 깊은곳에 숨겨놓듯이 지어진 허름한 나무 산장.
어느 누구도 쉽사리 다가 올 수 없는 자연의 은거처에서 둘의 또다른 하루의 해가 뜨고있었다.
먼 옛날 북방의 산맥에 사는 강인하고 전투적인 어느 민족들과의 오랜 협약 이후로 그곳은 왕국사람들의 흔적이 없게 되었고, 주변 지면은 모두 암석층으로 되어있어 식물조차 뿌리내리지 못해 생태계가

존재하지 않는 황량한 땅의 한가운데에 있는 서고 안에서, 사기사와 후미카는 몸을 일으켜세운다.
햇빛이 비치는 천정의 큰 구멍은, 거대한 유리처럼 되어있는 푸른 막으로 덮여서 협곡으로부터 간간히 부스러져 내려오는 바윗조각들을 '지워'내고 있다.
하지만 그 막은 주기적으로 일렁이면서 푸른 빛이 옅어졌다 짙어졌다를 반복하면서, 곧장이라도 사라질 것 처럼 보이고 있었다.
 
" 일렁거리네요. 새로 깔아두도록 할까요 ? "
" 아리스 .. ? "
" 스승님이 가르쳐주셨던 것, 열심히 연습했으니까요. "
 
자기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갸륵한 제자의 말에 눈을 지긋이 감고, 고개를 끄덕인다. 고요한 서고를 가로질러 나무판자가 삐걱이는 소리가 두어번 들렸다. 작지만 고운 두 손바닥이 하늘로 뻗었고, 명

랑한 눈동자는 찰나동안 눈을 감았다가 떴다.
순간이었지만, 일렁거리며 불안하던 푸른 막이 확연한 반투명의 푸른 빛으로 변하고 흔들리던 모습을 고정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순간이었던건지 막은 다시 형체를 불안정하게 떨면서 푸른 빛을 꺼뜨려가기 시작한다.
소녀의 작은 입으로부터 푹 꺼지는 한숨이 세어나온다.
 
" 아직 수행이 부족한거겟죠 ? "
" 아리스는 충분히 잘 하고 있어요. "
 
나긋나긋, 조심스레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말을 건네며 가늘고 긴 손이 천정쪽으로 부드럽게 훑고 지나간다.
그제서야 푸른 막은 형체와 빛깔을 도로 되찾아, 흔들리게 않게되었다. 소녀는 스승의 대단함에 다시한번 마음속으로 감탄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부족함을 재차 상기하면서 두번째 한숨을 입밖으로 내뱉었

다. 뒤늦게 '아' 라고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후미카는 찻잔을 내려놓고서 아리스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나 역시 아직 스승으로서 부족한게 많답니다.' 차마 말은 하지 못한다.
 
" 죄송해요. 이제, 한숨 쉬지 않기로 했었는데.. "
" 시부야 린. 그 사람과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죠. "
 
시부야 린. 푸른 불꽃의 기사. 아이올라이트의 푸른 힘을 다루는 극소수의 아이돌(능력자) 중 한명.
그녀는 예전에 타카가키 카에데의 음모에 휘말려 반역자로서 쫓기다가 우연찮게 이곳에 다다른 적이 있었다. 그녀가 서고에 발을 들였을 당시에 아리스와 시부야 린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곧 서로 어

느정도 마음이 통하는 면이 있다고 느끼게 되었고.. 항상 스승에게 도움이 되지못해 불만이었던 아리스의 한숨을 듣던 린과, 약속했었다.
푸른 불꽃의 기사는 하루도 채 안되서 도로 떠나갔지만..
 
" '한숨은 안도할 때의 것만 해도 좋아'. 라고.. 그 사람이 그랬죠. 그때부터 벌써 5개월인가요 ? "
" 시간은, 느린 것 같다 싶으면 한걸음만에 모두 지나가버리죠. "
 
아리스는 잠깐동안 시부야 린과 이야기했던 것들을 모락모락 떠올리다가, 스승과 자기의 아침식사 준비를 하고있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깨닫고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만 기다려달라며 가버리는 아리스의

등 뒤를 보며 미소짓다가, 등 뒤에서 뭔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아니냐 다를까, 무질서하게 쌓여있던 수 백페이지의 서적 수 십권들이 책의 산을 만들고있었다.
 
" 아리스가 걱정하지 않도록, 정리하고 있도록 해야겠네요. "
 
후미카는 중얼이며 쭈그려 앉아, 두어권씩 책을 들어올린다. 그녀의 작고 가는 팔에 비해 꽤 무거워보이는 책더미였으나, 아랑곳 않고 책들을 세로로 바꿔들어 좌우에 늘어선 책장의 빈 곳에 꽃아넣었다.

두권 정도 씩, 규칙적으로 넣어가면서 어느정도 정리가 끝나갈 무렵, 마지막 한세트를 남겨둔 채 그녀의 가는 팔이 갑자기 떨리기 시작했다.
 
" 읏...! 흐읍. "
 
드디어 올게 왔다고 직감하고, 자기 양 팔의 소매를 꽉 붙들고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고, 몸의 진동이 점점 거세졌다. 당장이라도 몸 안에서 무언가가 폭발해버릴 것 만 같은 압박감이 차올랐다. 그러나 차마 고통스러움을 제자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기에, 후미카는

햇빛비치는 책장들 사이에서 홀로 무릎꿇고 조용히 떨고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후미카에게는 마치 한시간이었을 것 만 같은 1분 전후의 시간이 흐르고서, 몸의 아픔이 진정됨을 느끼고 머리에 맻히는 땀

방울을 옷으로 급히 닦았다.
작은 발걸음이 식사준비를 마쳤음을 알리러 오는 때에 맞추어, 다행히 그녀는 흔적을 지웠다.
그리고 자기를 부르려는 타이밍에 맞춰서, 책장 사이에서 나와 제자에게 자신의 건강한 모습을 비췄다.
 
" 스승님.. 어라? 저는 스승님이 또 독서에 열중인줄 알았는데.. "
" 아리스에게, 걱정을 끼쳐선 안되겠죠. 가도록 해요. "
" 앗.. 스승님이 저를.. "
 
아리스는 감동한건지 일순간 목소리가 떨렸다.
그와 별개로 후미카의 목소리 역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다행히 눈치채지 못한 채 넘어가자, 스승은 안심했다.
서고에서 열 걸음 정도(아리스 기준) 걸어 작은 통로를 지나고 나온것은 낡은 목재 식탁과 위에 올려진, 싸구려 금속재질로 된 그릇에 담긴 몇 가지 채소들이었다. 아리스와 후미카는 서로 삐걱이는 낡아

빠진 의자에 앉아 마주보고 짧은 기도를 올렸다. 후미카도, 아리스도 태양의 신앙을 믿지는 않았으나, 후미카는 어린 아리스에게 정신적인 위안에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아리스쪽에서는 스승과 동질

감을 느낄 수 있다, 라는 완전히 엇나간 취지로 기도를 하는 거지만.
 
" 이 나물, 굉장히 맛이 좋아서 사왔는데, 어때요 ? "
" 네. 맛있어요. 역시 아리스는 훌룡해요. "
" 에헤헤헤.. "
 
사실 그녀의 입속에서는 모두 비슷하지만, 이 낡아빠진 건물에서 한발짝도 나갈 수 없는 자기를 위해 수십km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을 왕래하는 아리스의 정성은 눈앞에 차려진 모든 음식들이 산해진미에

버금갈정도로 맛있게 느껴지게 했다. 그리고 식사 중에는, 바깥 물정에 어두울 것 같은 스승을 위해 마을에서 전해들어온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준다. 최근까지는 왕국의 전쟁으로 인해 뒤숭숭하고 흉흉한

이야기들만 잔뜩 들어왔기 때문에 좋은 이야기를 선별하는데 오래걸린 탓에 별로 많은 이야기를 해준 적은 없지만,  오늘 이야기의 화제는 본인기준으로, 조금 특이했기에 말을 아끼지 않았다..
 
" 스승님, 최근에 이상한 종교가 퍼지는 듯 하더라구요. "
" 종교.. 말인가요 ? "
 
후미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승의 관심을 끌었다고 캐치한 순간,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한다.
 
" 네. 지금 가장 널리 퍼져있는 종교는 '태양'을 섬기는 '젤러시교' 인데.. 이 종교는 '별'을 섬긴다고 하더라구요 ? "
" 별 ? "
" 태양의 빛은 이미 꺼져버렸으니까, 곧 우리를 새롭게 비춰줄 별이 내려올거라고. 별이 비춰주는 빛이야 말로 진짜라면서... 스승님 ? "
" ...아. 죄송해요. 별이라고 하니까, 잠깐 다른 옛날생각이... "
 
'정말..' 이라고, 자기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스승에게 아이처럼 볼울 부풀린다.
후미카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들을 채비를 하자, 아리스는 다시 공기를 빼고 곧장 이야기를 계속이어나갔다.
 
" 아무래도, 그 종교는 왕국 외곽의 군소촌락이나 군 기지같은곳에 포교를 하고다니는 모양이에요. 문양은, 요상스레한 삼각형 모양이었어요. "
" 흔히 말하는... 사이비... 일지도 모르겠네요. "
" 그쵸? 그런데 그게 말이에요. 이 종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신실한 신도가 됬다고해요. 마치 홀리기라도 한것처럼. "
" ...사이비, 네요. "
 
후미카는 확신의 뜻으로 고개를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였다.
 
" 역시! 저랑 똑같은 생각이군요 ? "
" 아마도, 그 종교안에 아이돌들이 깊게 관련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
" 맞아요. 그래서 마을에 갔었을 때 마침 그 종교의 유력자로 보이는 사람이 지나가는걸 봤는데.. "
 
" 아리스. "
" 네 ? "
 
이야기의 흐름이 클라이막스로 치솟으려는 순간, 후미카가 이야기를 끊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신나하다가 초친 아리스는 살짝 삐지려던 중, 스승을 보았다. 정확히는 먼 곳을 응시하는 스승의 두 눈동자를 보았다. 영롱하게 새파란 빛으로 발광하고있는 두 눈동자는, 사기사와

후미카가 '적대' 를 인지했을 때 보이는 모습.
아리스는 소름이 온 몸을 타고 오르는걸 느꼈다.
 
" 방으로 돌아가세요. "
" 스승님.. 혹시.. "
" 빠르게. 둘 접근. "
 
무감정하고 딱딱한, 자기 스승이 적대적인 이를 지칭 할 때의 전형적인 태도다.
아리스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은 채 소리없이 재빠르게 일어나 자기 방이 있는, 서고와는 반대편 통로로 타고 올라갔다.
 
아리스가 완전히 올라간걸 보고서, 후미카의 선명한 푸른 두 눈은 허공으로부터 아리스가 올라간 통로로 시선을 옮겼다. 시선이 통로에 닿자, 푸른 방벽이 솟아나 아리스의 방으로 향하는 길을 완전히 봉

쇄해버린걸 확인하자, 천천히 도로 서고를 향해 걸어간다. 다시 돌아가고 돌아가서, 자기가 자고있던 햇빛이 비추는 천정 아래로 갔다. 선명하게 불빛을 태우고있는 눈동자가, 짙어진 푸른 막 너머 바위

계곡 사이의 하늘을 본다.
일순간의 폭음, 천정에서 보는 기준으로 좌우가 균형을 갖추고있던 바위절벽들은 산산조각나 모조리 푸른 막을 향해 추락하고, 없어지고있었다.
그리고 바위들이 모두 막에 닿아 사라짐과 동시에, 막 역시 사라졌다. 그리고 떨어졌다. 두 개의 뭔가가 책장들을 무너뜨리며. 그것들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있었다.
 
" .... "
" 놀랄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유감. "
" 신세 좀 폈나보네? 귀여운 어린아이랑 아침식사까지 하고. "
 
두 개의 목소리가, 책장을 무너뜨리며 일어난 자욱한 연기속에서 자기 존재감을 어필하고있었다.
후미카의 푸른 두 눈이 일순간 빛나자, 연기들이 거짓말처럼 모두 사라졌고, 떨어진 한 명과 한 마리의 침략자가 모습을 보였다.
 
" 안녕. 지금은 푸른 예언의 현자. 라고 했던가 ? "
" 역사속에서 지워진 채 살아가는 기분은 어때 ? "
 
" ... 당신들은.. "
 
" 통성명을 하자면, 유이. "
" 나는 슈코. 기억나 ? "
 
한 쪽은 바람을 불면 날아갈 깃털마냥 가벼운 분위기, 한쪽은 한량처럼 느긋한 느낌의, 결론적으론 둘 다 무척 가벼워보이는 이들이었지만, 생김새는 확연히 달랐다.
슈코 라고 자기를 소개한 쪽은 사람의 귀 대신 여우과의 귀와, 요사스러운 아홉개의 꼬리를 달고 있었고, 유이라 소개한 쪽은 풍성한 금발에 전혀 맞지 않는 시꺼먼 갑주를 뒤집어 쓰고 주먹과 얼굴에 핏

자국을 달고 있었다. 인간과 인간의 정도에서 벗어난 무언가였다.
그와 별개로, 둘이 내뿜는 것은 어마어마하고 흉흉한 살의였다. 후미카는 그 기세가 명백히 자신를 향해있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 초면에 이런 부탁하는건 처음인데 ? "
" 그러면 내가할까 ? "

 

풍성한 아홉개의 여우꼬리에서, 꼬리의 주인이 가진 눈동자와 같은 연녹의 빛이 피어올랐다.
녹색의 피어오른 불들이 한 순간 번쩍이자마자, 후미카가 양 팔을 올린다.

 


-----------------------------------


" 스승님.. ! "

 

푸른 방벽 너머로부터 들려오는 귀가 먹먹해지는 폭음에, 스승의 안부가 염려되어 참을 수 가 없다.
그러나 돌조각들 조차 막는 벽도 만들지 못하는 약함을 가진 자기가 스승의 무엇을 도울 수 있겠는가, 그저 이렇게 앉아서 연달아 터지는 폭음소리에 계속해서 불안해하는것이 전부다.
무력한 자신에 화가나지만, 그저 다음을 기약하는 수 밖에 없다고..

그렇게 스스로 바득거리고있을 무렵에, 폭음과맞춰 유리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린다. 작은 충격음과 함께..
처음에는 너무나 크 폭음이 연달아 일어나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그 소리와 관계없이 빠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점점 선명하고, 커져온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아리스가 앉아있던 침대와 맞붙은 벽면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깨졌다.


" ?! "


그녀가 당황하여 차마 대응 할 틈도 없이, 부서진 나무 벽- 그리고 뒤편의 부서져 노이즈를 일으키는 푸른 벽의 너머로부터 손이 뻗어나왔다.


손아귀는 거침없는 기세로 아리스의 몸을 통째로 붙들어 끄집어내고, 손의 시작지점이었던 곳의 허공에 선 사람의 형상이 고개를 높이 치켜들었다.
끌려나가는 와중에 빠져나가려고 몸을 비틀어도, 푸른 불꽃을 내뿜어도.. 쥐고있는 붉은빛의 손아귀는 놓을 기미조차 없었다.


" 흥흥 흐흥~ 창(蒼)의 아이.. 잡았다..! 이히히히?! "
" ... ! ! "

 

일순간, 머리에 크게 얻어맞는 감각과 함께, 아리스의 의식은 꺼트려져갔다.


 


 
 ------------------------

 

여우꼬리들이 수가 많은 값을 하듯, 서로 돌아가며 녹색의 불길을 내던진다. 던지는 속도가 워낙 빠른데다가, 불꽃이 지나가는 궤적까지 어우러져 마치 레이저를 난사하는 우주세기의 병기같은 느낌이 들

었다. 연이어서, 녹색불꽃들이 쉴 새 없이 폭발을 일으키는 와중에, 그 사이로 검은 갑주의 광전사는 날카롭게 뛰어들었다. 막아내느라 온 집중을 다하고있을 푸른 여인에게 방심한 자의 최후를 손수 보

여주기 위해 연기속으로 파고들어 힘껏 내지른 유이의 주먹 끝에는, 놀랍게도 아무것도 없었다.

 

" 얼라리 ? 없.. "

" ?! 위쪽이야 ! "

 

녹빛 포화속에서 언제 이동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푸른 불길로 감싸여 마치 맹수의 것 처럼 변한 후미카의 오른손이 풍성한 금발머리의 정수리 한 가운데를 그대로 내리꽃았다는 것.

'아'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유이의 상반신이 터져나오는 피의 분수와 함께, 그대로 나무바닥 속으로 처박혔다. 
슈코는 몸에 소름이 돋음을 느낀다. 심지어, 아직 여전히 형상을 유지하고있는 불꽃의 발톱이 자기를 노리고 있다는걸 깨닫는데 오래걸리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나마 다행힌것은, 보기만해도 위협적인 불길이 곧바로 자신을 처박으러 오지는 않았다는 것.

 

" 방심했다지만, 유이를 일격에 저렇게 만들다니.. '교만한 현자' 라고 불렸던 이유가 허세는 아니었단거네.. "
" ... 어떻게 그걸 알고있죠? "

" 아... 이놈의 입방정. "
" 뒤에 쓰러진 분에겐 힘조절을 잘 못했지만, 당신은 여러가지 물어볼 게 있으니 목숨을 빼앗긴 않겠어요. "

 

말이 끝나기 무섭게, 푸른 불길이 궤적을 그으며 슈코에게로 다가간다. 삽시간이었다.

 

" 윽, 이건'그 방법' 밖에 없...! "


" 네네~ 거기까지~ "

 

무척이나 경망스러운 웃음소리와 함께, 살벌한 분위기가 일순간 끊긴다. 피떡이 되서 처박힌 동료처럼 될까봐 잔뜩 쫄아있던 슈코의 모습이, 후미카를 멈춰세운 목소리를 듣고 크게 안정되어갔다.
후미카가 뒤에서 들려온 맥을 끊는 소리에.. 불길을 거세게 피운 채 뒤를 돌아보자마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엉망진창으로 찢겨진.. 드레스라고 부르기 민망한 누더기를 입은 여자가 자기가 가장 아끼는 사람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
동공 풀린 새빨간 삼백안의 눈동자가 꿈뻑도 하지 않고서 후미카를 처다보고있었다. 기분 나쁨 미소와 함께.
눈동자에 동요가 잔뜩 서려있던 푸른 현자였으나, 수 초 만에 상황을 파악하고서 이내 격양된 감정을 억누르고 차분히 입을 연다.

 

" ..원하는게 뭐죠? "
" 원하는거어 ? 꺄하하하하 ! 원하는게 뭐냐는데에 ?! 주인님 ! 주인님께서 원하시는건 뭔가요오 ?! "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올려보더니 미친듯이 떠들기 시작한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언행과, 그런 여자의 팔에 걸쳐있는 의식 잃은 제자를 두고.. 후미카는 망설인다.

 

" 아! 주인님께서 알려주셨어 ! 주인님께서 말씀하셧어 ! 창(蒼)이.. 창(蒼)의 힘이 필요하시다고 !! "
" 프레, 우선은 저쪽부터. "

 

다시금 여유를 되찾은 슈코,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의 끝에 처박힌 유이를 보고 여자가 광소를 지으면서 노래부르듯이 지껄인다.

 

" 너는너는너는 아직 떠날 수 없잖아~? 히히히..! 주인님께, 주인님께 더 봉사해야지이?! 어서어서 일어나아 !! "

 

정체불명의 붉은 연기가 말 그대로 그녀로부터 뿜어져 나와 후미카를 휩쓸고 지나 처박혀있는 육신으로 스며들어간다.
연기가 스며들어감에, 터져나와있던 핏줄기들도 물리법칙을 무시하듯이 도로 박혀있는 균열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이윽고, 연기가 들어간 몸이 부들부들 떨더니.. 곧 주변 바닥을 모조리 초토화시키며 다시 일어난다.

 

" 푸하 !! 죽을 뻔 했네..! "
" !!! "

 

놀랍게도 처박혀서 터져있어야 할 곳은 멀쩡. 오오츠키 유이는 무상처였다.
마치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던 것 마냥 가볍게 몸을 털고 몇 번 제자리뛰기를 하는 등 무척이나 태평한 모습에, 후미카의 어안이 벙벙해진다.

 

" 이건 대체... "

" 그런 이유로, 목적은 다 이뤘습니다~ "
" 어? 뭐야. 걔도 그러면.. "
" 네에네에~ '아이올라이트 블루' 랍니다? 이히히하하하 !! "
" 뭐야, 괜시리 힘만뺏네. "


" 아, 안돼..! 그 아이를 ! 아리스쨩을 놔주세요 ! "

" 흐흥~? 싫은데에 ? "

" ..라고 교주님이 말하시네. 가자, 유이. "
" 흥~ 다음에 두고 보자고. 바이바이. "

 

" 당장, 멈추세요 ! "

 

푸른 불꽃이 거욱 거대하게 일렁이며, 합류한 셋과 한명의 인질을 향해 맹렬하게 덮쳐왔다. 불길이 건물의 벽과 바닥, 천장 가릴 것 없이 모조리.. 그들이 있던 자리를 휩쓸어버리고 기세가 완전히 사라지자, 그 자리에 있던것은 오직 다 타서 숯검댕이가 된 서재의 흔적 뿐이었다.


타버린 책과, 불길때문에 꺼진 바닥을 처다보며, 후미카가 허탈함에 무릎꿇는다.


" 아, 으으아아아아아..! "

 

그대로.. 마치 터져나올 것 같던 목소리가, 끓어오르는 후미카의 노함을 대변하듯 피어나오던 불길들이 모두 일순간에.. 도로 후미카의 안으로 빨려들어간다.
꿇었던 무릎을 털며 일어나는 사기사와 후미카의 모습은.. 여느 때 만큼이나 냉정해보였다. 다만, 두 눈동자는 밝은 푸른빛을 여전히 유지하고있었다. 마치 손만 대면 불길이 터져나올 것 같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후미카의 뒤쪽으로 작은 발걸음 소리가 다가왔다. 발걸음은 고작 십여걸음 정도 앞에서 멈추어, 그녀의 두 눈동자를 응시하였다.

 

" 안타깝게 됬네. 하지만 이것도 흐름의 일부야. "
" 아리스가...잡혀간게 말인가요 ? "
"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반복되는 흐름중에 발생한 인과율 오류의 결과지만. "

 

후미카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조용한 분노가 솟음을, 거기있었다면 누구라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그런건 아랑곳도 않고, 뒤편의 누군가는 후미카의 뒤통수에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 유한한 삶을 사는 너희에게 말해주는것도 뭐하지만.. 이쪽 입장에서 '이 세계'의 관리는 꽤나 까다롭단 말이지. 몇번이나 높아버리라는 주변인들의 만류도 있었고.. 그럼에도 내가 이 세계에 집착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야. 그리고 이번건 특히 기대하고있고. "

 

" ..'별'..! "
" 그래, 역시 한때 내게 사랑받던 아이답게 총명하구나. "

 

" [별의 사도들이 나타나, 세계를 혼란으로 이끌지어니. 소녀들은 별의 권위앞에 맞서다가 차례차례 스러져, 별의 제물이 되리라.]"
" [.. 그리고 마침내, 찬란한 별이 이 세계에 도래하리라.] "

 

" 그녀가, 돌아오리라. "
" 그녀가.. 돌아오리라 ! "

 

뒤에 있던 인물이 마지막 구절을 따라하곤 작게 웃는다.
예언의 구절을, 자기가 봤던 미래에 대한 계시를 그대로 읉조리던 후미카의 눈동자가 아리스가 잡혔을 때 처럼 다시 동요로 휩싸인다.
머리를 움켜쥐고 고통에 신음하기 시작하는 후미카의 뒷모습을 보며, 그 누군가는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 후후후, 이래서 내가 여기 관리를 그만 둘 수 없다니까? 줄지어 대사건이 빵빵 터져나가니까..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 "

 

뒤에 있는 목소리가 분위기와 관계없이 혼자 웃기 시작한다. 마치 재밌는 프로그램만 연달아 방송하는 웃긴채널의 시청을 그만 둘 수 없다는 어투로 몇번이고 강조하며, 뒤의 누군가는 낄낄 웃는다.
머리를 잡고 떨고있던 후미카가, 간신히 힘을 내어 작게 소리낸다.

 

" 당신들은...'악마',,야..! 악마라고 !! 우리는 희극의 대상이 아니야 ! 당신들의 장기말이 아니라고, 우리들은..!! "


있는 힘껏 기운을 짜내 지르는, 아마도 처음 목격하는 후미카의 악소리와 함께, 웃는 소리는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녀가 이를 갈면서 뒤돌아본 곳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사기사와 후미카의 시선이 누군가가 있던 자리에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사랑하는 제자를 되찾기 위해서..

 

아마도 마지막으로 '역사의 도표' 위에 다시 서게 될 때라고 결심하며.

 

 

 

 

-------------------------------------------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글만 올리기 무안해서 올리는 (중복이지만) 어린이 후미카 (+유이).

 

번뜩해서 후미카 단편을 살짝 적어봤습니다. '~'

다 쓰고보니 이거 완전 사망플래그 빠방하잖아 ?!

 

안돼, 난 이런 전개 감당 할 수 없어 .. !

0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