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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수거 1―(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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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20, 2016 01:46에 작성됨.

다음 무대의 진행으로 바쁘게 외치는 스태프들의 목소리.

다음 무대 준비로 분주한 기자재의 움직임.

덕분에 언제나 무대의 뒷편은 시끄럽다.

그런데 그 뒷편이 조용하다.


이 기묘한 위화감과 긴장감에 주변을 둘러보지만 자신 외에는 누구도 찾아볼 수가 없다. 기분나쁘게 엄습해오는 혼란에 살짝 목소리를 내보려고 침을 삼키고 목에 힘을 주려는 순간, 무대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머뭇거린 사이 입 밖으로 새려고 한 목소리는 쉽게 흩어져버렸다. 예상 외의 상황에 놀랐던 것도 잠시, 자세히 귀를 기울여보니 큰 소리는 환호성처럼 들린다. 무엇에 환호하고 있는걸까, 싶어 침착하게 귀를 기울여본다.

설마, 설마. 생각하지만 반복되어 불리는 것은 틀림없는 자신의 이름. 좀처럼 상황이 파악되지 않아 아직도 갈 길을 제대로 정하지 못 했는데도 다리를 겨우 움직여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로 눈을 돌린다.

 

그 곳에는
투명하고
아름다운
[    ]가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것이, 자신을 부르고 있는 무대 위에 놓여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무대로 발을 한 걸음 내딛자, 장소의 공기가 변한다.

환호성이 멈추고 내려앉는 침묵은 곧이어 따가운 바늘이 되어 자신을 찌르는 시선으로 변한다. 일순간에 공기가 변한다. 차가워진 공기에 흐름에 나아가려던 발은 향하는 길 없이 그대로 넘어지듯 [    ]를 향해, 그러나 그 아주 짧은 거리가 닿지 않아서. 손짓은 허무하게 허공을 향해 버려진다. 간신히 손끝에 [    ]가 닿았지만, [    ]는 그 손을 거부하듯 하늘로 튀어올라, 그대로 허공을 향해 떨어지며 어쩔 도리 없이 바닥으로―


쨍그랑


"우냐아?!"

 

귓속을 찌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난다.

 

"아차…죄송해요. 미쿠의 잠을 깨워버렸네요. 미안해요. 이건 곧 나나가 정리할테니까요."

 

정신을 가다듬어 흔들리는 시야를 억지로 멈춰세우자, 그제서야 미쿠의 눈에도 나나가 접시를 정리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미쿠, 깜짝 놀랐다냥."
"아하하……. 미안해요. 그런데 무슨 꿈을 꾸고 있었나요?"
"꿈?"
"으음, 자면서 뭔가 이것저것 말하기에 꿈을 꾼다고 생각했는데…아니었나요?"

 

듣고보면 자는 도중에 무언가 흐릿한 환상을 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꿈인지, 잠에서 깬 정신없는 와중에 남은 인상인지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으음~잘 모르겠다냥."
"그런가요, 뭐 꿈은 깨고 나면 잊어버리는 거라고도 하니까요!"
"흠, 듣고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다냥."

 

깨고 나면 잊어버리는 것이 꿈. 새삼 들으니 당연한 말이다.

 

"후냐아-"

 

하품을 하면서 기지개를 핀다. 사무실에서 꿈까지 꿀 정도로 푹 자다니. 최근 레슨이라던가, 열심히 했으니까 피곤했던걸까 하고 생각한다.
창 밖을 보니 어느새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앗, 그 접시 나나가 아끼는 접시가 아닌가냥?!"
"그래요. 나나도 조금 쇼크인 거에요. 무척이나 소중히 여겨온 건데…."
"기운 내라냥, 뭐하면 새로 비슷한 걸 사는 건 어떨까냥?"
"으응, 괜찮아요. 오래 됐으니까 어쩔 수 없죠."
"그렇게나 오래된 거냥?"
"그그그그그렇게 오래된 건 아니라구요? 나나는 17살이니까요?! 꺄핫☆"
"후냐아아, 그런데 그 접시는 어쩌다가 깨진 건가냥?"
"오늘은 파티가 있으니까요, 그 준비를 하다가 그만…아하하, 우사밍 성인도 가끔은 실수하는 거에요☆"

 

파티. 듣고보면 그런 일이 있었던 것도 같다. 뭐였더라, 뭐 때문에 준비해야하는 거였더라.

 

"잊어버렸나요~? 후후, 안즈 씨의 앨범 발매 기념 파티에요♪"
"앗, 그랬다냥. 우우, 그런 거라면 미쿠도 도울테니까 말해달라냥~!"
"깨진 접시는 이미 치웠으니까요. 다른 건 거의 끝났고. 으음, 그럼 이 조각들 좀 버려줄래요?"
"맡겨달라냥!"

 

나나는 신문지로 접시 조각들을 모아 감싼 뒤에, 다시 안이 보이지 않는 검은 봉투에 넣었다. 이제 필요없어진 것을 그냥 버릴 뿐인데 어째서 이렇게 세심하게 관리해야하는 걸까.

 

"아얏"

 

작은 비명과 함께 나나의 손끝이 붉게 물든다. 서로 손가락 끝을 살짝 멍하니 바라보다가 방울져 손끝에서 똑, 하고 떨어질 때에서야 정신을 차렸다.

 

"반창고, 반창고!"

 

급하게 반창고를 나나의 손끝에 붙여주었다. 반창고의 뒷면이 어두워지는 걸 보자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깜짝 놀랐네요…오늘따라 나나도 참. 쓰레기 부탁드릴게요. 저는 조금 쉬고 있을게요, 미쿠 양."

 

그렇게 말하는 나나를 뒤로 하고 봉투를 손에 든 채로 사무실을 나왔다. 저물어가는 노을 때문인지 나나의 콧등도 묘하게 붉어보였다. 그렇게나 아팠던 걸까.

깨진 접시조각이 들어있는 봉투를 적당히 건물 쓰레기통 언저리에 묶어서 던져놓았다. 괜히 상한 기분에 봉투를 던져놓을 때, 기분 나쁜 작은 마찰음이 귀를 긁었다.

 

깨지는 건 그렇게나 쉬우면서도
깨질 때는 그렇게 큰 소리로 파고들면서
깨진 뒤엔 겨우 그 정도 작은 소리밖에 내지 못하는 걸까.
깨진 조각끼리 부딪치는 작은 소리도 기분 나쁘기만 할 뿐.

 

괜시리 기분이 안 좋아지면서 등골에 차가운 감각이 맴돌았다. 이젠 어엿한 봄인데도 저녁만 되면 공기가 차갑다. 추워서 얼른 사무실로 돌아가려 발걸음을 옮기는 와중에, 사무소 앞의 벚나무들이 눈에 띄였다. 아직 추운데도 포근하게 피어난 꽃들이 저물어가는 노을빛에 반사된다. 잠깐 눈이 부셔 눈을 감았는데도 빛은 눈꺼풀 사이로 시야를 붉게 스며들어온다.

 

"여, 미쿠. 다녀왔어."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앗, P냥이다냥. 오늘 일은 끝난 건가냥?"
"겨우 끝났지. 하여간 안즈 녀석도 너무 도망다녀서……."
"냐하하, 그건 늘 큰일이다냐. 어라? 그 안즈는 어디 간거냥?"
"잠깐 편의점에 들르려고 했는데 말야, 얼른 들어가서 쉬고 싶다고 말하길래 먼저 보내줬지. 미쿠는 어디 다녀오는 길이야?"
"조금,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오는 길이다냥."
"그런가, 먼저 들어가. 나도 다녀오는 대로 들어갈테니까."

 

어째선지 목에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냥 깨져버린 접시를 버리고 온 것 뿐인데.
방금 전까지 잊고 있었던 저녁 무렵의 냉기가 놀래키려는 듯이 목을 쓸어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얼른 커다랗고, 아늑해서, 성과 같은 언제나의 사무소로 돌아가고 싶어져서 발걸음을 서둘렀다.

 

겨우 돌아온 사무소의 복도는 이미 어둡고 차가워서.

바깥의 차가운 공기가 복도까지 휘말려서, 차갑고 단단하게 얼어버린, 그 공기가.
뭐라고 목소리를 내버리면 곧장 깨져버릴 거 같은 그런 공기가 복도를 휘감고 있었다.
문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조용한 복도를 무겁게 내려앉히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렇다. 이 분위기는.

 

언제나 스태프들의 목소리와 기자재의 이동으로 시끄러운 무대의 뒷편. 그 뒷편을 조용하게 만든 것 같았다.

 

―그렇게 일하기 싫다고 말할 거라면 당장 그만두면 되잖아요!

 

하지만, 나는 모른다.

 

다음 무대의 진행으로 바쁘게 외치는 스태프들의 목소리도.

 

다음 무대 준비로 분주한 기자재의 움직임도,

 

나는, 데뷔하지 못한 아이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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