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이치노세 시키: 도망치는 이유

댓글: 7 / 조회: 1694 / 추천: 3


관련링크


본문 - 05-14, 2016 00:39에 작성됨.

쾅-!

 

둔탁한 소리와 함께 어두운 창고 안에 빛이 들었다.
매섭게 열린 철문 앞에는 그 빛을 등지고 한 남자가 서있었다.

 

누가 봐도 들어가기 싫은 창고였지만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성큼성큼 걸어들어갔다. 몇번을 두리번거리더니 쌓여있던 박스 하나를 넘어트렸다.

 

그에 같이 쌓여있던 박스들이 넘어지면서 창고는 연막탄이라도 터진 것 처럼 금새 뿌옇게 번졌다.

 

"콜록, 콜록"

 

그러나 그 연기 속에서 들린 기침소리는 여자아이의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 또 왜 도망친거냐? 이치노세."

 

"콜록콜록, 저기, 좀 더 상냥하게 대해 줄 생각은 없어? 프로듀서."

 

"없다."

 

"너무행~"

 

"너무한 건 네 역마살이랑 그 무자비한 자제력이지."

 

"그래도 말양? 난 한창 때의 여자아이라구? 그런 아이를 몇 시간이나 대기만 시키다니. 그런 건 누구라도 못 행?"

 

"시끄러"

 

프로듀서는 냉담하게 굴면서 손에 든 것을 시키에게 던졌다.

 

[카카오밀크 85%]

 

쯉-

 

"써어~!"

 

한 모금 마시기가 무섭게 시키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우유를 다시 내려놓았다.

 

"그러냐"

 

P는 옆에 앉아 초코우유를 쭙쭙거리며 말을 받았다.

 

"P는 어떻게 이런 먹는 거야?"

 

"그거야 난 안 쓴 걸 먹으니까."

 

[카카오밀크 -달콤한 맛-]

 

"⊙○⊙"

 

"뭐"

 

"어떻게 자기가 담당하는 아이돌에게는 이런 걸 주고 자기만 좋은 걸 먹어?"

 

"어떻게 널 담당하는 프로듀서에게는 이런 일을 주고 너만 좋은 시간 보내냐?"

 

"으으으응....!"

 

"쓴 거 먹고 정신차리라는 의미에서 준거다."

 

옆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시키를 보면서 P는 익숙하다는 듯 받아치고 있었다.

 

"에잇~!"

 

"이...! 뭔 짓이냐!"

 

"몰라! 몰라몰라몰라! 이렇게 된 이상 마구 킁킁거릴거라구!"

 

"떨어져 임마! 우유 흐른다고!"

 

격렬한 입 놀림과 다르게 P는 우유를 든 손만 올리고 있을 뿐 시키를 떼놓으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않았다.

 

"스으으으으으흡....."

 

"아이고"

 

어느새 P는 우유를 한 쪽에 얌전히 두고 시키의 머리를 쓰다듬기까지 하면서 시키를 안고있었다.

 

"후아아아아...."

 

"이제 좀 만족했냐?"

 

"스으으으으......"

 

"어~이~ 이~치~노~세에~"

 

"역시 안 되겠어!"

 

"뭐-? 우와왁-!-!"

 

그 말과 동시에 시키는 P를 잡고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아아아~ P는 왜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는거야~? 참을 수가 없다구우~"

 

"아이고오.... 좀 얌전하다싶더라니...널 믿은 내가 바보다."

 

"흐응~? 있잖아 P"

 

"왜"

 

"혹시 고X야?"

 

"....도대체 우리 대화나 사이에서 어떻게하면 그런 결론이 도출되니?"

 

"그래도 말이지~ 이런 톱톱 아이돌이 위에 올라타고있는데에~? 게다가 지금은 아무도없다구~? 헤헤..."

 

빠악-!

 

대답대신 돌아온 건 시원한 딱밤이었다.

 

"이게, 확, 그런 소리 함부로 하지말라고 좀."

 

"아파아~ 훌쩍, 너무해"

 

"맞아도 싸!"

 

"우우...그래도 이런 기회같은거 없다고?"

 

"나한테 여기서 정신교육받고 싶다는 소리가 자꾸 들리는데 내가 맞나?"

 

"역시 사람은 자기 몸을 소중히 해야지, 특히나 아이돌들은 더더욱"

 

"음, 내가 틀렸구만 다행이네."

 

"에?"

 

"나도 10시간 동안 떠들기는 힘들거든."

 

시키는 움찔- 몸을 떨며 움츠러들었다. 비슷한 일로 P에게 교육을 받았던 일이 순간 떠오른 것이다.

 

"슬슬 무거워서 숨이 막히기 시작하는데 내려오지?"

 

"시이-러-"

 

그 말과 동시에 시키는 오히려 P의 몸 위에 더 바짝 달라붙었다.

 

"크아아아악-!"

 

"스으으으으으....!"

 

"떨어지라고오~!"

 

결국 시키는 분노한 P에 의해 날아가버렸다.

 

"너무해 P. 아이돌을 폭행하다니."

 

"너무하네 이치노세. 프로듀서를 성희롱하고 상해를 가하다니."

 

"P가 나쁜거야!"

 

"뭐 임마?!"

 

"P는 내 프로듀서니까, 언제나 내가 킁카할 수 있게 내 옆에 있었어야지! 아이돌을 최상으로 유지시키는게 P의 일이잖아!"

 

"....그 말이 저런 망할 성벽을 정당화 시키는 말이 되다니....내 인생을 통째로 부정당한 기분이다."

 

"냐하하하, 내가 이긴거네 P?"

 

"하아아.....내가 도대체 왜 널 데리고있는 걸까? 이치노세."

 

"그건 그날의 P에게 물어봥. 길거리에서 덮친 여자애가 아이돌이 하고싶다니까. 뭐? '그래 한 번 해봐' 이랬잖아! 냐하하하하! 지금생각하니 완전 어이없다구!"

 

"프로듀서로는 내가 정확했는데....내가 사람보는 눈은 없었던 거구만..."

 

삐삐- 삐삐-

 

창고에서 이러저런 만담을 나누던 도중, 기계음이 그 둘사이로 끼어들었다.

 

"나 저 소리 싫어 P"

 

"네가 이렇게 도망다니지 않으면 들을 일 없어."

 

"엑, 그건 그거대로 싫은데"

 

"시끄럽고. 자."

 

먼저 일어난 P는 아직 앉아있는 시키에게 손을 내밀었다.

 

"냐하하하 고마워 P"

 

시키가 손을 잡은 순간

 

"니 손말고, 우유팩 달라고"

 

"에? 난?"

 

"혼자하라고. 랄까 이러는 거 안 지겹냐? 설마 너 내 손에도 페티쉬가 있는거냐?"

 

"에에에~~ 그럴지도?"

 

"하지마라"

 

"그럼 킁카할래!"

 

"그것도 하지맛!"

 

철문을 다시 닫는 P

 

"아무튼 가서 얌전히 일하고 와라. 킁카는 다음이다."

 

"에헹? 왠일로?"

 

"널 다루는 방법을 깨달아갈 뿐이지"

 

시키는 묘한 얼굴로 철문을 정리하고 나서 허리를 편 P를 바라보았다.

 

"........"

 

"뭐야 그 장난치기 전의 고양이같은 미소는?"

 

"있잖아 P."

 

"앙?"

 

"내가 도망치면 P는 날 쫓아올꺼야?"

 

"안 도망치는 건 없냐?"

 

"대답해봐. 내가 세상 끝까지 가도 쫓아올꺼야?"

 

"걱정마라. 넌 이 빌딩을 벗어나기도 전에 나한테 잡힐 거다."

 

"냐하하하. 그거 다행이네."

 

"그래?"

 

"응~♥"

 

"뭐, 좋은 게 좋은 거려나."

 

===================================================

 

시키 side

 

처음에 내가 일본으로 도망쳤을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처음에 도망칠 땐, 지긋지긋한 미국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무작정 호기롭게 나왔다.

 

그러나 연구실 밖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돈은 금방 바닥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없었다.

 

그래서 그냥 쏘다니다가 이름도 모를 거리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냥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엄청 부럽더라. 

 

'내가 보는 사람들은 적어도 자기가 하고싶은 걸 해보겠지? 나보다 많이 말이야. 번돈으로 원하는 걸 사보거나 할 수는 있잖아. 난 내 엄마의 희망 소리나 듣고 신문에 귀찮게 몇 번 나오고 짜증나는 약품실에 틀어박히는 게 전분데. 세상에'

 

멍하니 투덜거리듯 생각하고 있을 때, 말도안되는 냄새가 났다. 초콜릿같은 냄새인데 뭔가 다른, 더 오묘하고, 고소하고,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은, 더 더 맡고싶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목소리가 들렸다.

 

"흠, 도둑은 아니고, 무슨일이냐 꼬마야?"

 

'어라?'

 

엄청나게 놀랐다. 아무리 내가 내 맘대로 설치듯 살았어도 길거리에서 누군가를 이렇게 딥허그 해본 적은 없었다. P는 이때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는지 지금도 말을 안 한다. 힝....

 

놀라서 올려다 봤을 때, 내 눈앞에는 한 손에 아이스초코랑 샌드위치를 든 P가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음?"

 

"냐하하하! 아! 찾았네! 흥미로워 보이는 재료발견♪ 당신당신♪ 좋은 냄새가 나잖아?"

 

솔직히 그때 막 던졌다. 진짜루 그런데...

 

"그래? 흠, 난 잘 모르겠는데? 그래서 넌 뭐하는 녀석이냐? 과학자? 화학자? 괴짜?"

 

P가 너무 잘 받아줬다.

 

"흐~응, 글쎄에~? 당신, 당신은 뭐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는 거야?"

 

"글쎄다."

 

여기까지라면 좀 괴악한 인연으로 스쳐지나가고 말았을 것이다. 만약 내가 좀 더 멀쩡해 보였다면, P가 눈썰미가 좋지않았다면, 혹은 둘 중 하나가 덜 괴짜였다면그랬을 것이다.

 

"......먹을래?"

 

그는 자기 손에 있던 샌드위치를 건네주었다. 새것이기는 했어도, 솔직히 먹던 거여도 난 받았을 것 같다. 뵈는 게 없었거든

 

"잘 묵네, 배고팠냐?"

 

지금 생각하면 P도 엄청 괴짜였다. 대뜸 자기를 안은 여자애한테 밥을 주고 그걸 구경하고 있는 사람이 괴짜가 아니면 뭘까. 나중에 이에 대해서 P는 자기보다 더 필요한 놈한테 물건을 주는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냐하하하, 뭐 그랬던 것 같네."

 

"그래서 넌 뭐하고 있던거야?"

 

"에......."

 

그래도 솔직하게 국제가출 했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뭔가 둘러대야 할 것 같아서 좀 뜸을 들였다.

 

♬♪♬♪~

 

그러나 그의 시선을 돌린 건 다행히도 휴대폰이었다.
적어도 난 샌드위치를 먹을 시간은 번 셈이었다.

 

"어? 나? 길거리 한복판, 사람 많은 곳. ....... 아직 시간 남았는데? ....... 뭐하냐고? 길잃은 새끼 고양이 주워서 놀고있다."

 

나중에 알았는데 '길잃은 새끼고양이'는 둘러댄 말이 아니라 날 말하던 거였단다.

 

".....귀찮게, 알았다."

 

그는 투덜거리면서 전화를 끊고서 나를 잠깐 바라보았다. 그때도 그의 몸에서는 초코향같은 어떤 재밌는 향기가 나고있었다

 

"........잘 있어라 난 간다."

 

샌드위치를 다 먹었을 무렵, 그는 일어나서 가려고했다. 그때,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하고 무모한 짓을 난 했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냥 단순히 내가 말한 것 처럼 냄새가 좋아서였을까, 아니면 너무 오래 방황해서 이상해진 걸까. 뭐, P의 표현을 빌려보자면 '팅'하고 와버린 거였겠지.

 

참고로 나중에 P한테 이 소리를 했더니 자기 같이 정신나가고 오지랖넓은 멀쩡한 직업의 소유자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했을거냐고, 험한 꼴 당할 수도 있었다면서 불같이 화냈다. 10시간 동안 정좌하고 교육받았다. 진짜, 그렇게 화내는 P는 처음이었어♬ 화내니까 초코향이 민트향이 되더라.

 

아무튼 난, 그의 옷을 잡고 말했다.

 

"당신 재밌어보여♪, 따라가볼래♬"

 

"너, 내가 뭔 일을 하는 줄 알고?"

 

"그러게 뭐행?"

 

".....아이돌 프로듀서 겸 스카우터"

 

"헤에~? 그거 재밌어보이네! 당신 같이 재밌는 냄새를 가진 일이라면 괜찮을지도!"

 

그런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p도 멀쩡하지 않았다. 횡설수설하는 그런 말에 대답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구?

 

".....그래 한 번 해봐."

 

P는 나중에 '프로듀서로서의 심미안, 팅하고 왔다, 주워가달라고 외치는 고양이가 있었다'라는 식으로 말했지만, 그래도 상당히 얼빠진 대답이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정말 쫄래쫄래 따라갔다. 어차피 미련이나 걱정되는 건 없었으니까.

 

당연한 소리지만 사무실에 가니까, 그 안의 사무원은 매우 놀라더라. 그 아이는 누구? 라면서 말이지~

 

"길에서 주웠다."

 

P는 초쿨시크하게 대응하면서 종이 한 장이랑 펜 한 자루를 내게 줬다.

 

"네가 쓰고 싶은 걸 써라. 귀찮게 칸 채우는 것보다 나아보이네."

 

"흐응~, 이름은 이치노세 시키, 동기는 P의 냄새, 에....취미는.....음... 가족은...어...."

 

"잘 알았다. 내놔"

 

P는 나중에 이 일에 대해 그냥 시간 끄는게 싫어서 가져갔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거 츤데레였는데 말이지~ (츤데레 소리에 으르렁 댄거 보면 확★실)

 

"치히로, 이 녀석 마스 트레실에 던져두세요."

 

"엑? 너무 이른 거 아니에요? 애시당초 길거리 캐스팅한 아이인데."

 

"그 이하에 두면 안 됩니다."

 

마스터 트레이너는 지옥이었셔....

 

이렇게 회고하고 나니 드는 생각이지만, 확실히 난 운이 좋았다. 내가 아이돌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점에서도 운이 좋았다. 내가 뭐라도 알았으면 P를 그렇게 따라가진 못 했겠지. P는 '무식하면 무모한 법'이라더라.

 

나중에 몰래 알았는데 P는 엄청 깨졌다고한다. P의 말에 의하면 자주 있는 일이라던데 흐응~? 참, 그리고 쓸떼없는 데 들쑤시고 다닌다고 맞았다.

 

에...사실 중간은 잘 기억이 안 나넹~ P 집에 무단칩입•점거했다가 맞고, P가 집 구해다주고, 뭐...재미없는 건 아니었다. 끝나고 마중나온 P의 초코향에 파묻히는 일상이 나쁘진 않았다. 떨어지라는 구박과 구타는 별로 였지만, 사실 그리고 지금도 다를 건 없다.

 

그래도 도망치고 실종되는 건 데뷔 후에 시작한 거다. 라이브나 다른 건 제법 재밌지만, 촬영이나 대기는 도무지 할게 못 되는 것 같았다.

 

내가 인기가 높아지면서 P는 오히려 더 바빠졌다.

 

그러다가, P 초코향 금단증세가 왔다.

 

그래서 난 대기실을 나갔다. 그러니까 이건 P잘못이라구! 그리고 P에게 엄청 맞았다. P는 말도안되는 소 리 말라더라. 내가 뛰쳐나간건 순전히 내 성향이라고했다. 흠~ 흥미로운 가설~

 

사실 뭔 생각으로 그렇게 굴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니 진짜 모르겠네

 

그래도 한가지, 누가 찾을 거라고 생각은 안 했다. 그냥 그 창고가 나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두컴컴하고 누구도 오지 않는 그런 곳. 그런게 난 꽤 익숙했다. 그래서 거기에 머물러있었다. 기대따윈하지 않은 채. 그리고 나중에 P는 먼지먹고 뒤질려고 작정했었냐며 날 혼냈다.

 

거기에 쭉 있었는데, 쾅--! 하고 철문이 열렸다. 슬쩍 보니 딱봐도 P였다. 심지어 그때 들키기까지 해서 '죽었다~'싶었는데

 

"야, 마셔라"

 

초코우유나 던져주더라.

 

"에?"

 

"마시라고. 딱 보니까 돌아다니느라 힘이 쫙 빠졌구만."

 

그러더니 내 옆에 앉아 자기도 초코우유를 쭙쭙 빨아먹기시작했다.

 

"에....저기 P."

 

"왜?"

 

"뭐양? 이거?"

 

"뭐가?"

 

"그러니까, 에, 궁금하지 않아? 나 왜 이러는지? 아니, 안 돌아가도 괜찮아?"

 

"촬영은 미뤘고, 니가 도망친 이유는 네가 나중에 심심하면 말하겠지."

 

P는 나에게 관심이 없구나...싶었다. 대답이 엉망이었으니, 그런데 그러더라.

 

"여긴 아무도 안 와. 그러니까 멋대로 굴어. 하고싶지않을때까지."

 

"에? 무슨 소리?"

 

"킁가니 뭔지를 하든, 잠을 자든, 다~~~아 네 맘대로 하세요."

 

"갑자기 왜 그래?"

 

"갑자기고 자시고, 우린 원래 이랬잖냐. 이유도 모르고 갑자기 부딪쳐서 시작된 인연이었는데, 이제와서 무슨 논리관계를 찾어? 그냥 그날 처럼 생각해."

 

"흐응~ 그럼! 잘 맡겠습니다!"

 

얼굴을 들이박으니, 또다시 그 오묘한 향이 밀려들어왔다. 그렇게 몇 분을 파묻힌 채 가만히 있었다.

 

"좋냐?"

 

"응......"

 

"그럼 다행이고."

 

오랜만의 일이라 그랬을까. 나는 너무나도 빠르게 풀어져버렸다. 취한 것 처럼.

 

"프로듀셔오어어....외로웠셔어어....스으으으하하하...."

 

그말을 시작으로 난 그때 완전히 무장해제되었다.

 

"그러냐. 완전 애잖아."

 

그때 P는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 거렸다. 완전 애 취급, 처음부터 애 취급, 꼬맹이라고 부르고, 배고파보인다고 밥주고, 주워왔다고하고, 쓰고있는 자기소개서 갈취하고, 트레이닝 룸에 던져놓고, 새끼 고양이라고 하고, 애 취급, 애 취급, 애 취급, .....

 

"........애 취급......"

 

"맞아 너 애 맞아. 이치노세 시키."

 

".....언제부터 알았어?"

 

"처음엔 짐작 이름듣고 확신."

 

"너무해...."

 

"나한테 별로 중요한게 아니었거든, 네가 뭐였는지는 천재니, 최연소 어쩌구니는 전부 다 귀찮은 불필요한 것들이다. 넌 그냥 애야."

 

"..........."

 

그때 뭔가 끊어져 터져나왔다. 천재니 희망이니 하는 소리에 파묻혀 사라진 것, 남들보다 더 빨리 어른이 되었기에 사라진 것, 나에게 아예없어진 줄 알았는데, 아직 나에게 남아있었구나. 그 날 처음 그렇게 깨달았다.

 

"........그래 그런식으로 솔직해져라, 멋대로 어리광피우고 맘대로해. 그런게 아이의 특권이니까."

 

P는 그 뒤로 아무말없이 나와 같이 있어주었다. 아마 내가 한 일에 대해 부끄러워질 때 쯤....?

 

"좀 낫냐?"

 

"응."

 

"그럼 나가자. 공기가 너무 탁해."

 

"그럴까나♬"

 

"회복 빠르구만?"

 

"P의 향을 흡수했거든!"

 

철문을 걸어 잠그며 그는 나에게 언질을 주었다.

 

"중요한 건, 넌 여기 밖에서는 아이돌이야. 알고있지?"

 

"응"

 

"그러니까 함부로 멋대로 굴지말라고."

 

"응"

 

"그리고, 너 아직 나한테 안 혼났지? 아마?"

 

"응. 응? 어라라? 아까 그건?"

 

"자아~ 아이돌 이치노세 양? 프로듀서에게 프로듀스 당할 준비는 되셨나요~?"

 

"저, 저,기 저기저기? 프로듀서?"

 

"넌 오늘 죽었다. 이치노세"

 

뭐, '죽었다'라는 예상은 결과적으로 맞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한가지는 알았다.

 

그러니까 알았어. 또 여기로 오면 되는거네, 당신이랑 같이 있고싶으면, 당신에게 안기는 고양이, 당신에게 파묻히고 싶은 꼬맹이, 멋대로 어리광 부리는 어린이 , 그렇게 있고 싶으면 말이지.

 

그러니까, P, 꼭 찾아줘. 내가 도망치고, 멋대로 나가버려도 또다시 날 찾아줘. 초코우유 들고서 나랑 단 둘이 그렇게 있어줘.

 

 

===================================================

 

얀데레 시키냥 쓰려고 만든 밑작업이 왜 이리 길어졌는가

 

감사합니다!

 

 

3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