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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 10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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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13, 2016 22:05에 작성됨.

카와즈님이 제공해주신 플롯을 바탕으로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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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럭.

 

어느 병원의 1인실. 푹 잠들어있던 환자복 차림의 소녀가 눈을 떴다. 765 프로덕션에 소속하고 있는 유명 아이돌, 키사라기 치하야. 그녀가 불행하게 사고에 말려들고 만 지 벌써 2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으음....."

 

3시간 정도는 잤던 것 같은데. 햇살은 여전히 창가에 머물고 있다. 멍한 눈으로 잠깐 바깥을 바라보던 치하야의 얼굴은 그리 좋지 않았다. 겨우 병원에 실려와 응급처치를 하고 수술에 수술을 거듭했던 때보다는 훨씬 낫긴 하지만.....그래도, 자기 혼자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치하야는 사무소 사람들을 떠올렸다. 작지만, 아니 작은 만큼 더더욱 바쁘게 굴러가는 765 프로덕션. 아마 오늘 하루도 레슨과 행사와 방송으로 꽉 찬 스케쥴 표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다들, 오늘 하루도 잘 보내고 있으려나."

 

원래 그들과 같이 일해야할 그녀 자신은 혼자 이 병원에 있다. 몸은 편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니, 그녀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몸도 불편하다. 다리 한 쪽은 골절에, 허리 근육도 좀 다쳤고, 거기다 특히.....치하야는 아직도 뻐근해 죽을 것 같은 오른쪽 어깨를 돌아보고는, 쓴웃음을 흘렸다.

 

이미 관절이 빠져버린 상황에서, 무리하게 움직여버린 관계로 완쾌를 장담할 수 없다던가. 일상생활까지는 가능하겠지만, 앞으로 아이돌 활동에는 지장이 갈 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그녀의 머릿 속에서 재생되었다.

 

우선 재활 치료에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극 좋은 경과를 보일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다.

 

".....하아."

 

치하야는 한숨을 내쉬고는 곁에 놓여진 문고본을 집어들었다. 파락파락, 마음 가는데로 펼친 페이지. 내용 같은 건 머릿 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자기 혼자 빈둥거릴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불러일으킨 행동일 뿐이다.

 

똑, 똑.

 

그런 지 5분 정도 지났을 쯤이었다. 종이를 적당히 넘기는 소리, 치하야의 고른 숨소리만이 차지하는 따분한 병실에 새로운 소리가 추가되었다. 치하야는 책을 무릎맡에 내려놓고 문쪽에 시선을 돌렸다.

 

누구일까.

 

한 때 온갖 잡지사, 방송사의 기자들이 들이닥쳐 질문이라는 질문은 잔뜩 받았던 관계로, 조금은 긴장하게 된다.

 

".....들어가도 될까?"

 

다행히 오늘의 방문자는 치하야에게 있어 잘 아는 사람이었다. 문을 통과하며 작게 들려오는 친숙한 목소리에 그녀는 미소지었다.

 

"응. 들어와."

 

그러자 조심스럽게 열리는 문. 하루카는 쭈뻣쭈뻣 발 끝을 복도에서 병실 안으로 옮겼다. 이전에도 몇 번 이 곳에 얼굴을 비춘 적은 있었다. 그 때는 치하야가 잠들어 있거나 주변의 기자들에게 시달리고 있거나 해서 제대로 마주하질 못했지만.

 

"아, 안녕. 이젠, 그, 괜찮아.....? 아프거나 하지는, 않은 거지?"

 

"응.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이리 와."

 

하루카는 어느 정도 건강을 되찾은 친구의 모습에 안도하면서 침대 옆에 있는 간이 의자에 걸터앉았다.

 

"와줘서 고마워. 많이 바쁠텐데."

 

"이 정도야 뭘. 미리 메일이라도 보내두는 게 좋았을까?"

 

"아니야. 와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 여긴 너무 심심해서 누구라도 와주지 않으면 지루하거든."

 

"에- 그런거야? 그럼, 굳이 내가 아니라도 상관없었다는 걸까."

 

"글쎄, 그건 어떨까."

 

치하야는 진심이 담겨있지 않은 말을 던졌다.

 

"우으, 너무해. 기껏 짬내서 왔는데. 이러면 그냥 돌아가버릴까봐."

 

하루카가 장난 삼아 던진 멘트 또한, 진심이 아니었다. 이윽고 두 사람의 시선이 짜기라도 한 듯 마주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치하야쨩."

 

폭, 하고 치하야가 무리하게 움직이기도 전에 하루카가 그녀를 껴안았다. 아직 머릿 속에는 곧 죽어버릴 것만 같은 얼굴이 강하게 남아있다. 그걸 지워버리고 싶어서, 하루카는 치하야가 살아있다는 실감을 강하게 요구한다.

 

"돌아왔어."

 

"응, 응. 고마, 워."

 

하루카의 목소리에서 울음이 섞여나왔다.

 

"오히려 이 쪽이 할 소리야, 하루카."

 

".....에?"

 

치하야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등에 두 팔을 슬쩍 둘러주었다. 지금으로서는 이 정도가 최선이리라. 좀 더 꼭 안아줄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저기 있지. 나, 틀렸다고 생각했어. 정말로 꿈과 똑같아서, 그래서....."

 

"그런....."

 

하루카의 어깨가 떨렸다. 치하야는 황급하게 다음 말을 뱉어냈다.

 

"하지만, 하루카 덕분에 살았어."

 

"나 덕분에?"

 

"그래."

 

하루카는 믿을 수 없었다. 눈을 감자 아직도 선명하게 그려지는, 그 날의 모습. 바람 부는 강변, 부서진 열차들. 멀리서 무력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자신.

 

".....정말 죽겠구나, 하는 순간에 네 목소리가 들렸어. "

 

"목소리, 라니. 어떻게.....?"

 

아무리 해도 닿지 않는 전화, 였을텐데.

 

"정확히는 벨소리. 그게 들려서, 그 쪽으로 갔어. 하루카가 부르는 것만 같아서. 그랬더니.....거짓말처럼 내가 있던 자리에 무거운 철판이 떨어지더라고."

 

가만 있었다면, 정말로 꿈처럼 흘러가버리고 말았을 거야. 치하야의 조금 떨리는 목소리가 그 심상의 풍경을 지워냈다. 하루카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물이 또르륵 뺨을 타고 흘렀다.

 

"전화.....아무 소용없던 게, 아니었구나."

 

"응. 전화해줘서, 고마워. 비록 받아주지는 못했지만."

 

"이미 충분해. 돌아와준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러니까, 괜찮아."

 

하루카는 더욱 강하게 치하야를 껴안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아팠지만, 잠자코 받아주기로 했다. 훌쩍거리는 소리가 한동안 병실에 울렸다.

 

"하루카, 부탁이 있어."

 

"뭔데?"

 

잠시 후, 울음소리가 조금 잦아들었을 쯔음. 치하야는 부드럽게 하루카를 밀어냈다. 지금 눈 앞에 있는 사람만큼은 아니어도 그녀 또한 눈시울이 조금 붉어져있었다.

 

"이미 잘 알고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기다리고 있을게."

 

하루카는 치하야가 전부를 말하기도 전에 대답했다.

 

"치하야쨩은 분명 돌아올 수 있을 거야."

 

눈물로 온통 젖어있는 눈이지만, 그 안에는 강한 확신이 담겨있었다. 보답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치하야는 생각했다.

 

"응, 최대한 노력할게. 아니.....반드시 돌아갈테니까."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객관적인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복귀할 수 있다고 해도 사람들이 키사라기 치하야라는 존재를 기억하고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래도 치하야는 돌아간다는 말을 입에 담으며, 하루카의 두 손을 꼭 붙잡았다.

 

잠깐 동안의 흐르는 따뜻한 침묵. 그 뒤에 도란도란 이어지는 대화. 마음 속에 품어두었던 말들을 풀어낼 수 있었던 두 사람은 한층 더 밝은 얼굴로 회화를 주고 받았고, 그렇게 둘만의 시간이 지나갔다.

 

"아, 이젠 정말 갈 시간."

 

".....응. 그렇네."

 

"에헤헷, 치하야쨩 지금 외로워 죽겠다는 얼굴 하고 있어."

 

"너도 이런 데 하루 종일 있으면 아마 같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치하야는 무기질적인 병실을 슥 둘러보고는 고개를 픽 숙였다. 앞으로 6주 정도는 더 신세를 져야한다니. 벌써부터 진절머리가 날려고 하는데.

 

"윽, 그건 그럴 지도.....아, 그렇지. 다른 애들도 온다고들 하니까 그렇게 추욱 늘어지지 않아도....."

 

"후훗, 불행 중 다행이네."

 

사무소 사람들 중 아직 얼굴을 못 본 이들이 몇몇 있다. 다들 어떻게 반응할까 상상하고 있는 치하야에게, 하루카가 작별 인사를 건넸다.

 

"잘 있어, 치하야쨩."

 

"조심해서 가."

 

다음에는 사무소에서 만나자.

 

두 사람의 입에서 같은 말이 나오는 걸 마지막으로, 문이 닫혔다.

 

다시 혼자가 된 치하야. 그 쪽에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가, 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악몽을 떠올렸다. 그 때 이후로 꿈을 꾼 일은 없다.

 

앞으로 또 악몽을 꾸는 일이 생기는 걸까?

 

치하야는 이제 두렵지 않았다. 만일 악몽이 다시 찾아온다고 해도, 상관없다.

 

꿈은, 어디까지나 꿈에 불과하니까.

 

그 어떤 어둠 속에서도 불러주는, 기다려주는 사람이 존재하니까.

 

키사라기 치하야는 조용히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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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하 나만 오글거림 속에서 죽을 수 없다 하하하하 손발이여 오그라들어라!

 

같은 느낌이네요. 옙. 끝났습니다. 대본체가 아닌 걸로 이렇게까지 길게 써본 건 처음이에요, 처음! (본격 혼자 감격 중)

플롯을 제공해주신 카와즈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젠 정말.....단편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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