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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 9 -

댓글: 9 / 조회: 950 / 추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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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09, 2016 21:05에 작성됨.

카와즈님이 제공해주신 플롯을 바탕으로 써봤습니다.

 

와랏테(笑って!)를 들으면서 보면 더욱 좋을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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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복하는- 매일은- 멈추는, 것을 모르니까-♪

 

저 멀리서, 노랫소리가 지직거리며 흘러나오기 전까지는.

 

.....어?

 

멈춰있던 손가락이 살짝 움직였다. 끊길 듯 말 듯 작고 가늘게 이어지는 소리. 그래, 처음 정신을 차렸을 때도 들렸던 것 같았어. 이 목소리.

 

- 즐거, 운 일만 있, 건 아니지만, 나는 잔뜩 힘내, 니-까

 

"하루, 카!"

 

검붉은 시야가 일순에 개였다. 눈으로 봐서는 아무 변화 없는 어두침침한 객실. 가라앉아가던 의식을 억지로 끄집어낸 탓일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그래도.

 

치하야는 이를 악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신체를 움직였다.

 

"크으윽!"

 

탈골된 양 어깨에 참기 힘든 고통이 달린다. 전철과 같이 떨어지면서 여기저기 부딪치고만 등허리가 욱신욱신거린다. 그저, 엉금엉금 기어가는 것조차 지금으로서는 엄청난 부담.

 

그래도!

 

치하야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팔과 다리를 놀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 이, 다시, 운-, 걸까 용-기를, 받았어

 

그 애가, 하루카가 부르고 있다.

 

들려오는 건 단순한 벨소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치하야는 그렇게 생각하며 힘겨운 전진을 계속했다.

 

"으극, 하아, 하아....."

 

가다 서고를 몇 번이나 반복한 끝에, 겨우 치하야의 손 끝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언가가 닿았다. 몇 번 헛손질을 하다 잔해물 틈새에서 그것을 붙잡아 꺼냈다. 다소 찌그러져있긴 해도 통화 기능은 살아있는 남색 휴대전화.

 

오른손가락에 추가로 유리조각이 몇 개 박혀들어갔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치하야는 꼭 닫혀있는 걸 어떻게든 열려고 안간힘을 썼다.

 

약속했던 것이다.

 

전화를 걸면, 받아주기로.

 

- 그, 보다도 소리가, 듣고싶, 만나고- 싶어….

 

그 노력이 무색하게, 마지막 소절이 끝을 맺었다.

 

"아....."

 

전화가 다시 걸려오는 일은 없었다. 이 곳에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치하야는 포기하지 않고 전화기의 갈라진 틈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화면을 위로 밀어올리려고 했다.

 

쿵!

 

그 때 객실 전체가 크게 들썩였다. 아까부터 치하야의 머리 위에서 신경 거슬리던 소리를 내던 커다란 철판이 떨어진 것이다.

 

"윽!?"

 

그 파편 일부가 튀어나가 치하야의 등을 강하게 때렸다. 새롭게 찾아온 격통에 그녀는 온 몸을 바들바들 떨며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뒤를 돌아볼 수 없어서 어떻게 된 건지 그녀로서는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머리통 하나 정도는 충분히 박살낼 수 있을 법한 무언가가 떨어져내렸다, 까지는 추측할 수 있었다.

 

이마에 식은 땀이 주륵 흘렀다.

 

만약 여기까지 기어오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죽었다.

 

"하아, 하아, 하아....."

 

고개를 들이미는 공포를 저 멀리 치워버리고, 멈췄던 작업을 계속하려는 치하야. 하지만, 지나치게 혹사한 신체는 한계를 맞이하고 있었다.

 

"안돼, 안....."

 

눈 앞이 가물가물해져간다. 치하야는 입술을 피가 배여나올 정도로 깨물며 버티려고 했지만, 그것마저 역부족이었다. 벌써 반쯤 감기고 있다.

 

 

......

 

 

턱.

 

하루카는 아무 소식없는 휴대전화를 떨어트렸다.

 

정말 마지막으로 했던 건데.

 

역시, 받지 않았다.

 

아무 소용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약속, 했었는데....."

 

나는 꼬박꼬박 받아줬는데. 정작 치하야쨩은 하나도 받아주질 않았어. 하루카는 습관처럼 눈가에 손등을 가져다 대었다. 눈물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하루룽....."

 

아미가 뒤에서 옷자락을 붙들었다. 하루카와 프로듀서말고도 다른 사무소 멤버들까지 차례차례로 현장에 찾아와 동료의 생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 쪽 가서 조금, 쉬자. 날이 밝아오려고 하는 걸."

 

"그랬, 어?"

 

"응....."

 

아미 말대로, 깜깜했던 하늘이 서서히 밝아져오고 있었다. 늦은 오후부터 기다렸는데, 벌써 내일이 오고 말았다니. 하루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렇게나 긴 시간이 흘렀다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그 애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실감하게 되버리니까.

 

"지금까지 쭈욱 여기에만 있었자나. 다리 안 아파?"

 

"모르, 겠어."

 

"저기 있자나.....아미가 보기에는 하루룽,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옷자락을 붙잡은 손이며, 메마른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목소리까지 떨렸다. 하루카도 아미도 시선을 마주치는 일 없이 땅바닥을 쳐다보았다.

 

"좀만 쉬다 오자. 치하야 언니는 착하니까 그 정도쯤은 용서해줄거야."

 

"치하야쨩은.....이젠....."

 

"하루룽.....?"

 

이젠.

 

하루카는 그 다음의 말을 잇지 못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틀렸어. 아니, 그렇지 않아. 무수히 격돌하는 두 마음. 힘없이 늘어졌던 한 손을 겨우 들어, 가슴에 한 가운데에 갖다 대었다.

 

포기하면, 안돼.

 

포기하면.....

 

하루카는 터져나오려는 소리를 꾹꾹 눌러담았다.

 

"나 있지.....조금만 더, 기다려볼게."

 

"그럼- 아미도 같이 있을랭!"

 

아미가 하루카의 옆으로 와서는, 비어있던 다른 쪽 손을 강하게 쥐었다. 차갑게 굳어있던 손이 본래의 온기를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고마워."

 

"헤헷, 천만에. 아미도 치하야 언니를 기다리고 있는 걸."

 

두 사람은 힘겹게 서로를 마주하고는, 작게 웃었다. 자박, 자박. 그 때, 뒤에서 들려오는 여러 사람들의 발소리. 하루카는 슬픈 미소를 머금은 그대로 돌아보았다.

 

나머지 765 프로덕션 전원이 서 있었다.

 

"모두, 똑같네요."

 

"응."

 

프로듀서가 어색하게 걸쳐져있는 안경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너나할 것없이 양 눈이 발갛게 부어있었다.

 

"치하야는......반드시 돌아와줄거야. 그치?"

 

".....네."

 

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카는 그들을 슥 둘러보다, 시선을 다시 앞으로 향했다. 저 멀리 현장에서 구조작업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봐, 저 사람들도 힘내고 있어.

 

그러니까, 포기하면, 안돼.

 

덜컹.

 

찌그러진 철판을 들어내는 소리가 들렸다. 전에도 비슷한 소리가 났던 것 같은데. 하루카의 시선이 저절로 그 쪽으로 향했다.

 

 

......

 

 

또 다시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또 뭔가 떨어지거나 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 치하야는 마음 속으로 힘껏 빌었다.

 

제발.....부탁이야!

 

여기서 끝날 수는 없어!

 

하루카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혹시 모를 충격을 대비해 오른팔을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구부려 머리를 감싸려고 애썼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여기, 사람이 있습니다!"

 

"정말인가!"

 

돌연 마주하고 만 새하얀 불빛에 눈이 부셔 견딜 수 없었다. 가로막혔던 벽이 뜯긴 덕분에, 전신으로 맞는 강한 바람. 치하야는 안간힘을 쓰며 고개를 들었다.

 

방금 났던 커다란 소리를 듣고 구조대가 찾아온 것이다.

 

"상태가 좋지 않아. 빨리, 들것 가져와!"

 

흐릿한 두 눈이 그 쪽을 향해 달려오는 구조대원들의 틈새를 비췄다. 그리 어둡지만은 않은 하늘. 저 멀리 펼쳐진 산 근처에 오렌지 빛 테두리가 살짝 보였다.

 

밤인줄 알았는데. 새벽, 이었구나.

 

억지로 쥐어짠 힘이 쭉 빠져나갔다. 치하야는 마음 편히 고개를 떨구고, 눈을 감았다.

 

 

.....

 

 

뭐라뭐라 소리치며 바쁘게 오고 가는 구조대원들. 그 중에는 주황색 판을 가지고 달려가는 이도 보였다. 하루카는 주먹을 꼭 쥐었다. 사람을 새로 구출한 모양이었다.

 

"후아, 하아, 하아."

 

하루카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그리고 원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주륵하고 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하루카는 나오지도 않는 침을 억지로 삼켰다. 모든 것은 직접 봐야만이 알 수 있다. 어서 가라는 듯이 바람이 등 뒤를 살짝 떠밀었다.

 

뛸 수밖에 없었다.

 

"하루카!"

 

"잠깐 기다려!"

 

뒷편에서 걱정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하루카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갑자기 달리거나하면 넘어져서 크게 다칠 수도 있다.

 

털퍽!

 

"으극!"

 

그들이 예상했던 대로, 곧바로 무릎이 꺾여 넘어졌다. 딱지가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처가 새롭게 벌어져 피가 배여나왔다. 옷에 풀때기와 진흙이 묻어 더러워졌다.

 

그래도.

 

하루카는 바닥에 손을 짚고 일어나 절뚝거리면서 걸어나갔다.

 

"......"

 

급하게 하루카를 쫒아가던 리츠코는 앞으로 쭉 뻗은 손을 거두었다. 그대로 잡아챌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졌다. 따라오던 나머지 사람들 또한 속도를 늦췄다.

 

터벅, 터벅.

 

하루카는 몇 걸음 더 걷다가 우뚝 멈춰섰다. 보인다. 구조대원들이 그 사람을 판에 올려놓고 벨트로 고정하고 있다.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솔직히.....두렵다.

 

하루카는 고개를 급하게 숙였다. 어쩌지. 만약, 그 애가 아니라면. 그 애가 맞다고 해도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다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죽어있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해야.....

 

"흐윽.....흑, 후윽....."

 

억지로 눌러버렸던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말라붙었다고 생각한 눈물이 새롭게 솟아흘러 바닥을 적셨다.

 

그래도!

 

하루카는 울면서 억지로 다리를 움직였다. 균형을 잃어 또 넘어질 뻔했지만, 이번에는 누군가가 잡아줘서 살았다. 눈물로 가득한 두 눈에 다정한 인상의 안경 낀 남자가 비쳤다.

 

"정말이지, 하루카는 잘 넘어진다니까."

 

그가 떨리고 있는 손을 꼭 잡아주었다. 하루카는 감사를 표할 여유도 없이 앞장서서 걸었다.

 

"7, 765 프로다!"

 

"키사라기 치하야가 사고에 말려들었다는 소리, 진짜였나봐!"

 

수가 좀 줄긴 했어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기자들이 그 쪽으로 플래시를 마구 터트렸다. 두 사람은 아무 응답도 하지 않고 쭉 걸어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만날 수 있었다.

 

"치, 치하야, 쨩....."

 

하루카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소중한 사람의 얼굴은 너무나도 창백했고, 피와 먼지가 엉겨붙어있었다. 불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죽은 걸로 보였을 정도였다.

 

"어떻게 된거야!"

 

"치하야쨩, 치하야쨩은 살아있는 거죠!"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모두가 뛰어들어 상태를 확인했다.

 

"으, 으음....."

 

치하야가 아주 가느다랗게 눈을 떴다. 숨이 붙어있는 것 이외에도 의식까지 있는 걸 확인하자, 그들은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살았다! 치하야가, 살았다고!"

 

"정말.....걱정했단 말이야!"

 

"괘, 괜찮아요? 많이 다친 것 같은데....."

 

그런 그들에게 지금까지 얌전히 사진만 찍고 있던 기자들이 하나둘씩 다가와 마이크와 보이스 레코더따위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키사라기 치하야씨가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 언제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예?"

 

"지금 심경은 어떠신가요?"

 

"철도 회사에게 뭔가 하고 싶은 말은 없습니까?"

 

"저, 저기....그러니까....."

 

원래부터 어수선했던 현장이었지만, 한꺼번에 많은 이들이 몰려들다보니 더욱 엉망진창. 보다못한 구조대원들이 달라붙은 사람들을 흩어버리기 시작했다.

 

"모두, 비켜주십시오. 빨리 병원으로 이송해야합니다."

 

"자, 잠깐! 우리가 뭐 도울 건 없는건가요?"

 

"지시대로 따라주는 게 도와주는 겁니다."

 

"비켜요! 언제까지 막고 있을 작정입니까!"

 

터져나온 일갈에 사람들이 앞다투어 길을 터줬다. 치하야는 대기하고 있던 차량에 이송되어 급히 병원으로 떠났다. 근처에 있던 구조요원에게 물어 위치를 확인한 사장이 부랴부랴 모두를 이끌었다. 특종을 놓치지 싫은 기자들도 서둘러 그들을 쫒았다.

 

다시 조용해진 현장에는 하루카 혼자 떨어져있었다.

 

"아니야, 치하야쨩. 충분해."

 

뭐가 약속을 못 지켜서 미안하다는 거야. 하루카는 치하야가 이송되기 직전 웅얼거렸던 소리를 곱씹으며 새롭게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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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길었습니다. 이젠 정말 단편뿐이야.....는 전에도 이런 소리를 했던 거 같은데. 분할절단신공 때문에 총 용량은 기존과 그리 특별나지는 않겠습니다만.

 

하여튼 하루치하 왓-호-이- 치하야쨩 살았다 만세!

 

이제 에필로그를 써야하는데 어떻게 해야할까요 으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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