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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프로듀서가 수라장에서 살아남는 법 첫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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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02, 2012 19:27에 작성됨.

계기는 단순했다. 그저 765 프로덕션의 프로듀서인 그가 언제나처럼 코토리를 도와 이런저런 사무일을 하고 있을 때, 우연히 얼마 전에 참여했던 행사의 주최자인 대기업쪽에서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건내 받은 기업쪽 할인권을 서류더미 속에서 발견했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다 같이 위안 여행을 간 것도 꽤 오래 되었구나─하고 생각한 프로듀서는 어느새 휴가 계획서를 작성하고 있었고, 그 안은 순식간에 사장에게까지 보여져 순식간에 허가까지 받아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속전속결이란 느낌으로, 그렇게 눈 깜짝 할 새에 확정되어버린 그 두번째 위안여행은 이제 아이돌들의 참가 가능 여부만 알아두면 모든 준비가 끝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프로듀서는 아마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 취할 행동을 했고, 당연히 그 이상은 신경쓰지 않은 채로 아이돌들의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이 불러일으킬 파급효과는 전혀 모른 채.


아마미 하루카는 아이돌이다. 그것도 이름뿐만인 아이돌 연습생 같은게 아니라, '모르면 간첩' 수준의 한창 잘 나가는 인기 아이돌이다. 언제나처럼 방송에 행사에 CM 촬영까지 마치고 나서 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주변이 깜깜해진 뒤였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씻은 뒤, 잘 준비를 한 하루카는 침대 위에서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아이돌이라 하더라도, 아직 그녀는 고등학생일 뿐이다. 아이돌 활동도 중요하지만, 교우관계란 것도 그녀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 중 하나였기에 어느새 일과가 되어버린 메일 체크를 하며 친구에게 오늘 있었던 재미있는 일이라도 말해 볼까 하며 핸드폰을 연 순간.

"어라? 프로듀서씨?"

화면에 표시되는 의외의 인물의 이름에, 하루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것이 여태껏 이 시간에 메일을 확인할 땐 프로듀서의 메일을 받아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물론 자신이 먼저 보냈을때 짧은 답이 온 적은 어느 정도 있었지만, 평소엔 일 때문인지 그 답장마저 늦게 올 때가 많았다. 일에 관한건가? 하며 하루카는 프로듀서가 보낸 메일을 열었다.

[하루카, 혹시 이번주 금요일부터 일요일에 시간 있니? 2박 3일로 바닷가 호텔에 갈 예정인데, 혹시 괜찮다면 답장해줘.]

"호텔? 2박 3일로?"

프로듀서에게 받은 메일의 내용을 되새기며, 하루카는 저도 모르게 몇몇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고 있었다. 계속해서 이어질 것 같았던 그 행동은, 이내 메일의 내용에 대해 파악한 하루카가 큰 소리를 내는 것으로 끝나버렸다. 곧 늦은 밤중이란걸 깨달은 하루카는 뒤늦게 한 손으로 입을 막음과 동시에 쿵쾅거리고 있는 심장을 다른 한 손으로 부여잡았다. 어느새 그녀의 얼굴은 새빨간 기운이 가셔지지 않을 정도였으며 그와 함께 따라온 열에 하루카는 다급히 손을 볼에 대어 어떻게든 식혀보려 하고 있었다.

"이거, 역시 '그거'겠지……?"

여전히 얼굴에 손을 댄 채로, 침대위에 열린 채로 놓여있는 핸드폰을 바라보며 하루카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지긋이 핸드폰 액정만을 바라보며 한참을 가만히 있던 하루카는, 이내 결심을 굳힌 듯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마치 휴대폰을 잡아먹을 듯 바라보던 하루카는, 어느새 자신의 방을 뒤지고 있었다.

"기회가 왔을 때, 제대로 잡아야 하는거겠지 역시!"

비장한 눈으로 이런저런 물건을 품에 모으기 시작하는 하루카, 어느새 그녀의 얼굴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우후후, 하며 살짝 기쁜 웃음소리를 내며 싱글벙글한 얼굴로 콧노래까지 부르기 시작하는 하루카. 그 모습은 마치, 처음으로 좋아하는 상대와 데이트를 가게 된 여자아이의 같았다.

"아차, 답장을 해야지!"

그렇게 말하며 황급히 침대로 뛰어들어 핸드폰을 쥐는 하루카의 취침 시간은, 조금 더 늦어질 것 같았다.
같은 시간, 치하야의 핸드폰에도 프로듀서가 보낸 그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후우……."

머리의 물기를 수건으로 닦으며, 치하야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처럼 늦게까지 보컬 레슨을 받은 그녀이지만, 아무래도 치하야 본인은 그 정도론 만족할 수 없었나보다. 아직도 박스에 담겨있는 그대로인 정리되지 않은 이삿짐들을 뒤지며 무언가를 찾으면서도, 불만스러운 얼굴로 이란저런 음을 입 밖으로 꺼내며 가볍게 연습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곧 물건들 사이에서 발견한 드라이기를 꺼내던 치하야는, 어디선가 진동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윽고 치하야의 시선이 당도한 곳은 개어져 있는 옷가지들 쪽이었다. 아무래도 주머니에 넣어놓은 채로 옷을 갈아입었던 걸까, 지금 발견 해서 다행이네—라 혼잣말을 내뱉으며 치하야는 바지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하루카인가?"

그런 혼잣말을 내뱉으며 핸드폰을 조작해 메일 수신함을 여는 치하야, 이내 초록빛 액정에 발신자 : 프로듀서, 라 적힌 메일이 띄어졌다. 의외의 인물에 조금 놀란 것도 잠시, 메일의 내용을 찬찬히 살피고는 일정을 떠올리는 듯 잠시동안 멍하니 먼곳을 바라보는 치하야. 이내 괜찮다고 판단한 듯 프로듀서에게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곤, 다시 수건으로 머리를 가볍게 비비며 드라이기의 플러그를 잡았다.

"……앗!"

멍라니 머리를 말리던 도중, 치하야는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떠올린 듯 재빨리 휴대폰을 쥐어들었다. 다급히 조금 전에 읽었던 메일을 선택해 다시 한번 찬찬히 그 내용을 읽는 치하야. 곧, 그녀의 입에선 '큿'하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으으……답을 이렇게 간단히 해 버리다니, 어째서 제대로 보질 않았던걸까."

머리를 감싸쥐며 자책하기 시작하는 치하야, 혼잣말로 "으으……하루카가 '쉬는 것도 중요하다구, 치하야.'라고 말했던게 기억나서, 쉽게 수락해버리고 말다니……." 라 말하는 것으로 봐선 아무래도 조금 전의 담담한 태도는 그 메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기 때문인걸까.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채로 핸드폰만을 바라보던 치하야는 결국 바닥에 드러누워 버리고 말았다. 한 손에 쥔 핸드폰을 높이 들어보이며, 치하야는 다시금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가야하는거겠지……."

이제와서 거절의 메일을 보낼 자신감 같은건 전혀 없다 게다가 휴식도 필요한 듯 하니……하고 생각한 치하야는 일단 '간다'는 쪽으로 결심을 굳힌 듯 했다. 하지만, 프로듀서에게 받은 그 메일 어디에도 '다른 누군가와 같이 간다'는 말은 전혀 적혀있지 않다. 설마, 여기에 가는건……. 어느새, 치하야의 얼굴엔 홍조가 살짝 띄어저 있었다. 다급히 고개를 휘휘 내저으며 그 생각을 잊으려 노력하던 치하야의 시선은 이내 자신이 벗어 놓은 옷가지쪽으로 향했다.

"그나저나 입고갈 만한 옷, 있으려나?"

청바지와, 푸른 빛 계통의 상의. 치하야의 옷들은 대부분 눈 앞에 보이는 옷가지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무난한 계통의 옷들 뿐이었다. 평소라면 전혀 신경쓰지 않았을 테지만 이럴 때라면 확실히 다른걸까. 역시, 어느정도는 신경써야겠지─하고 생각한 치하야는 내일 스케쥴이 끝나면 꼭 옷을 사러 가야겠다고 다짐하며 다시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물론, 치하야가 그런 결심을 하게 된 원인이 된 메일은 유키호에게도 보내져 있었다.

 방 안에 은은하게 감도는 차 향기, 점점 흩어져 가는 그 냄새를 맡으며 유키호는 살짝 미소지었다. 매일 밤 일과를 마치고 차 마시기는 유키호에게 있어서 중요한 하루의 마침표를 찍어주는 일이었다. 그녀의 프로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차 마시기'란 그녀의 취미 중 하나이다. 아이돌이 되기 전부터 차는 자주 마셔왔었지만, 아무래도 유명해 지고 난 뒤로부턴 꽤 힘든 일이 많아졌고 그때마다 유키호는 이 저녁의 차 한잔으로 언제나 피로를 회복하고 있었다. 물론 사무실에서도 차는 꽤나 많이 마시는 편이었지만 그것과 이것은 별개, 라고 생각하는걸까. 어찌되었든 언제나처럼 다도를 즐긴 그녀는 찻잔과 작은 찻주전자를 쟁반 위에 올려 그것을 들곤 밖으로 나가—려 했으나,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핸드폰의 진동 소리에 놀라 쟁반을 다시 바닥에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메일? 마코토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핸드폰을 천천히 열어보는 유키호. 그리고, 궁금한 표정이던 그 얼굴은 순식간에 당황스러우면서도 부끄러운 듯한 표정으로 바뀌어갔다. 아직 메일을 열어 본 것도 아닌, 수신함의 '프로듀서'라는 그 단어를 본 것 만으로 유키호는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다.

 "프, 프로듀서? 이 시간에 대체 무슨 일로, 으우우우……무슨 내용인지 궁금한데, 열어보질 못하겠어!"

마치 핸드폰이 프로듀서라도 되는 양, 쭈그려 앉은 채로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핸드폰을 올려다보는 유키호. 한참을 그렇게 대치하고 있던 유키호는, 머뭇머뭇거리면서도 손 끝과 핸드폰까지의 거리를 천천히 줄여가고 있었다. 유키호는 마치 아이를 감싸안듯 핸드폰을 손에 쥐었고, 여전히 화면에 표시되어 있는 '프로듀서'라는 글자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역시, 확인 해 봐야겠지?"

핸드폰을 잡아먹을 듯이 바라보던 유키호는 엄지 손가락으로 확인 버튼을 누르—려다 말고, 머리를 좌우로 휙휙 내젓더니 버튼 위에 있던 손가락을 치워 버린다. 이렇게나 유키호가 뜸을 들이는 이유는, 하루카가 품었던 의문과 같은 종류의 위화감 때문이었다. 언제나 이 시간에 메일을 보내던건 다름아닌 유키호 자신이었다. 물론 언제나 보낼까 말까 고민하기도 했고 무슨 말을 써야 할까 한참을 생각하다 보내지 못할때도 많았긴 하지만 메일을 보내는 것은 유키호였다. 그런데 이번엔 프로듀서가 먼저 메일을 보냈다, 그저 보내는것 만으로 고민하던 유키호 입장에서는 이렇게 뜬금없이 온 메일을 열어보는 것만으로도 이런 반응을 보이는건 그저 과민반응이라곤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그렇지! 이 메일, 일에 관한 걸지도……."

한참을 고민만 하던 유키호는 순간적으로 뭔가 떠올랐다는듯이 고개를 번쩍 들고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 시간에, 그것도 프로듀서가 메일을 보낸 이유는 분명 일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고 혼자 결론내 버린건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온몸의 긴장을 풀고 있었다. 그런거라면, 괜히 고민했잖아 라며 메일을 여는 유키호.
그리고, 메일을 확인하자 마자 그대로 굳어버린다.

"어어어어어어, 어떡하지!"

한참동안 멍하니 핸드폰만 바라보던 유키호는 순간 깜짝 놀라 소리친다. 안절부절 못 하며 어쩔줄 몰라하던 유키호는 일순 멈추며 다시 핸드폰 액정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생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답장 버튼을 누르고는 몇 번이고 지워가며 메일을 적기 시작했다. 이내 긍정의 뜻이 담긴 답장 메일 하나가 완성되었고, 유키호는 그것을 보내는 대신 그 메일을 바라보며 볼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일단, 아이돌 일 때문이라고 하고 갈 수 있을 거 같은데. 답장……해 볼까. —우으, 그럴 수 있을리가 없잖아!"

담담하게 일정에 대해 생각하며 메일을 보낼 것만 같았던 유키호였지만, 아무래도 순간적으로 놀라서 평소와 다른 태도를 보인것 뿐이었던걸까. 지금은 언제나처럼 프로듀서의 메일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유키호가 조금 전에 담담한 태도로 메일을 쓴 것은 그저 놀랐다는 이유 그 하나만이 아니었다. 메일을 읽자마자, 가고싶다는 생각이 유키호의 마음 한 구석에서 피어올랐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가고싶다고 답장하는걸로 끝났겠지만, 유키호의 입장에선 보내는 것 만으로도 부끄럽기에 답을 보내지도, 그렇다고 해서 가고싶은 마음은 없지 않기에 보내지 않을수도 없는 상황에 빠져버린 것이다.

"역시, 거절하는 편이 낫겠지? 프로듀서도 나같은거랑 가는것 보다 다른애들이랑 가는게 나을테니……."

자신없는 말투로 고개를 숙이는 유키호, 결국 포기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걸까. 한 번 한숨을 내쉬고는 벽만 멍하니 바라보며 쓴웃음을 짓는다. 내가 같이 간다 해도, 프로듀서에겐 폐만 끼치겠지 하는 마음이 어느새 유키호의 마음 속에 가득 차고 있었다. 좋게 말하자면 한번 정한건 절대 흔들림 없이 일직선으로 가는 그 성격이, 이런 경우엔 나쁘게 작용하여 끝없이 자신을 깎아내린다. 결국 유키호는 핸드폰을 들어 조금 전에 썼던 그 메일을 삭제하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화면에 떠 있는건 [발신완료]란 글자.

"으, 으앗! 왜 보내진거지! 으우우우우, 어쩌다 이런 일이."

당황해서 눈물까지 글썽이며 핸드폰을 바라보는 유키호, 아무래도 핸드폰을 잡았을때 송신 버튼을 잘못 눌러버렸던걸까. 이유야 어떻든 이미 메일은 보내져버렸다. 애꿎은 핸드폰만 원망하던 유키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핸드폰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찻잔등이 올려져 있는 쟁반이 있는 쪽으로 다가간다.

"뭐어, 보내졌으니 어쩔수 없는거겠지. ……이렇게 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한 것 같기도 하니 잘된걸까."

얕은 미소를 지으며 유키호는 가볍게 쟁반을 들고는, 문 쪽으로 다가간다. 조금 전의 복잡하기만 하던 마음이 본의아니게 한 쪽으로 정해져버려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게 되었으니 그 편이 낫다고 생각한걸까. 담담한 태도로 방 밖으로 나갔다 돌아온 유키호는 불을 끄고 그대로 침대에 누워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을리가 없잖아!"

딸깍, 하며 방의 불이 켜진다. 거기서 보이는건 울것같은 표정의 유키호, 아무래도 조금 전처럼 순간적으로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서 한 행동이었던걸까. 뭘 입고 가지, 뭘 챙겨가지, 당장 내일 프로듀서는 어떻게 보지—?! 하며 부산스럽게 방 안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다.

"으우우우, 어떡해야 하는거야 정말……."

아무래도, 오늘 유키호는 잠자리에 들 수 없을 것 같았다.
유키호가 안절부절 못하며 방 안을 몇 번이나 빙글빙글 돌고 있을 무렵, 공수도 연습을 하던 마코토도 물론 그 메일을 확인하고 있었다.

"흐음? 해변가 호텔이라, 재미있겠네—."

타월로 땀을 닦으며 헤헹, 하는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면서 마코토는 답장을 보냈다. 간만에 하는 여행이 어지간히도 즐거운지 콧노래까지 부르며 다시 운동을 시작하려는 마코토는 무언가 떠올랐는지 다시 핸드폰을 열어본다.

"……이거 분명 프로듀서랑 나랑 '단 둘이'가는거겠지?"

무언가 곰곰히 생각하며, 마코토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아이돌과 프로듀서의 관계라 해도 단 둘이서 호텔에 간다. 그 말은 즉—하는 데까지 생각이 닿은 마코토는 앗! 하며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곤 집에 부모님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 듯 자신의 입을 막는 마코토, 이미 늦었다곤 생각되지만 잠시 밖의 기척을 살피며 가만히 서 있던 그녀는 천천히 입에서 손을 때며 눈쌀을 찌푸린 채로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설마, '마코토는 남동생 같으니까 둘이서 가도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는건가!"

갑자기 으으, 하며 분한듯한 소리를 내는 마코토, 그리곤 타월을 어께에 걸친 채로 거울 쪽으로 다가갔다. 거기에 비친 모습은 언제나 보던 마코토의 늠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항상 볼 수 있는 그 모습에, 마코토는 분한듯이 눈쌀을 찌푸렸다. 평범한 여자아이처럼 귀여워지기 위해 아이돌이 된 마코토이지만, 여자다워지긴 커녕 여자팬이 대부분이다. 물론 얼마 전에 자신의 왕자님이 되어준다고 한 프로듀서 덕분에 이젠 그런건 신경쓰지 않게 되었지만 정작 왕자님이 되어주겠다고 한 프로듀서가 자신을 남자애 취급 하고 있다. 마코토의 입장에선 화내지 않을수가 없었다.

"좋아, 이번 기회에 내가 여자아이라는걸 확실히 알 수 있게 제대로 어필해야지!"

자신만만한 얼굴로 미소짓는 마코토, 아무래도 벌써부터 계획을 짜기 시작한건지 이런저런 표정을 지으며 후후후, 하고 웃는다. 그러면서도 볼을 붉히며 여행을 기대하는 모습이야말로 여자아이 다운 행동이란걸 마코토 본인은 전혀 모르고 있는 듯 했다.
마코토가 몰래 숨겨둔 거대한 리본을 벽장에서 꺼내는 사이, 이오리는 꽤나 불만스러운 얼굴로 핸드폰을 꺼내들고 있었다.

"정말, 이 시간에 무슨 메일이야?"

조금 전까지 자신의 토끼인형에게 인사하고 침대에 누웠던 이오리는, 곧이어 들려온 핸드폰의 진동 소리에 불만소릴 터뜨리며 침대 옆에 놓여진 작은 전등의 불을 켰다. 분명 무음으로 해 뒀던것 같은데 말야—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린 이오리는 핸드폰을 확인했고 거기엔 익숙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중요한 메일이 아니면 내일 다리를 차 버릴테니, 각오하라구."

내 담당 프로듀서도 아니면서, 라며 정작 본인에게는 들리지 않을 투덜거림, 하지만 이오리의 입가에는 웃음이 살짝 묻어나오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니히힛, 하는 웃음소릴 낸 이오리는 다시 핸드폰을 잡고 천천히 메일의 내용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잠시동안의 정적, 그 뒤에 이어진 것은 이오리의 새된 비명소리였다.

"아가씨,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그, 거, 걱정 마 신도! 아무 일도 없으니까!"

그런 이오리의 목소리에 놀라 달려온 집사에게, 당황한듯 더듬거리며 답하는 이오리. 어느새 붉어진 얼굴을 감추고 싶은 듯, 조금 전까지 정면을 향하고 있던 몸을 돌려 벽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오리의 시선이 어느쪽으로 향해있든 상관없다는듯이 그 답에 안심하여 흔히 유능한 집사가 하는 듯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그럼, 이라고 답한 신도는 문에서부터 멀어져갔다. 잠시 멍하니 있던 이오리는 무언가 떠오른 듯 여전히 등을 돌린 채로 신도를 다급히 불러세웠다.

"이봐, 신도."
"네, 아가씨."
"이번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외출하게 되었으니 그렇게 알아둬."
"네. 다른분들께도 전해두겠습니다."

꾸벅, 하고 가볍게 인사한 신도는 마치 그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는 듯이 자취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이오리는 그런건 별로 신경쓰이지 않는다는 듯이 다시 핸드폰을 바라보며, 혼자 나직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네—…. 이 슈퍼 프리티 아이돌인 이오리님에겐, 그에 합당한 휴식이 필요하니까. 만약에 기대에 못 미친다면, 각오해 둬야 할거야. 니히힛♪"

다시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을 프로듀서를 향해 그런 협박을 해 두는 이오리. 하지만 그런 말투와는 반대로, 이오리의 볼은 어느새 붉은 빛으로 물들어져 있었다. 핸드폰을 원래 있었던 자리에 놔두고, 불을 끈 뒤 다시 침대에 누워 인형을 바라보는 이오리. 터져나오는 미소를 마치 누군가에게 들키면 안된다는듯이 참아가며, 자신의 토끼인형을 끌어안았다. 그 시간, 야요이는 막 자신의 막내동생을 재운 뒤였다.

"잠들었어?"

어두컴컴한 방 밖으로 나와 문을 닫는 야요이에게 그런 질문을 하자, 대답 대신 쵸스케에게 고개를 끄덕여주는 야요이. 이내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그 장소를 빠져나가 거실에 앉았다. 야요이가 아이돌이 된 뒤로, 그녀의 남동생인 쵸스케는 평소보다 더 많이 도움을 주고 있었다. 물론 단 한번 트러블이 있었던 적도 있었지만, 마치 그때 야요이가 했던 걱정을 배로 갚아준다고 결심한 듯이 이전보다 더 열심히 집안일을 해나가고 있었다. 물론 야요이가 아이돌로써 유명해져 그런 부분도 있었지만, 어찌되었든 쵸스케는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야요이에게 꽤 많은 도움이 되어주고 있었다. 물론 오늘도 동생들을 재우는 것 까지 도와주고, 지금은 남아있는 빨래들을 개는것까지 도와주려 하고 있다. 야요이 입장에선 이보다 더 고마운 일이 있을까.

"쵸스케는 피곤할텐데, 먼저 자."
"누나야말로 스케쥴, 피곤할텐데. 나한테 맡기고 자도 돼."

서로 그런 걱정을 하며, 두 사람은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에 따라 함께 빨래를 개어나가기 시작했다. 잠시 뒤, 빨래가 어느정도 정리되었을 무렵 어디선가 핸드폰의 진동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금 집에 있는 사람 중 핸드폰을 갖고 있는건 야요이 하나뿐. 그렇기에 야요이는 고개를 들곤 핸드폰을 찾기 시작했다.

"아, 누나 여기있어."

두리번거리던 야요이보다 먼저 핸드폰을 발견한 쵸스케가 그를 집어들어 건내준다. 그에 야요이는 가벼운 감사인사를 건낸 뒤 핸드폰을 받아들곤 그 내용을 확인해본다. 그리곤 갑자기 우음……. 하며 고민에 빠진 야요이. 가만히 앉아 빨래를 정리하던 쵸스케는 그 목소리에 궁금증이 생겼는지 고개를 들어 야요이쪽을 바라봤다.

"누나, 왜 그래?"
"그게, 프로듀서씨가 이런 메일을 보내셔서……."

자, 하며 쵸스케에게 핸드폰을 건내는 야요이. 그를 받아들어 액정에 비친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쵸스케는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야요이는 쵸스케와는 대조적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느긋하게 빨래더미를 정리하며 "그런 메일을 받았긴 한데, 역시 3일간이면 힘들겠지?" 라며 쵸스케쪽을 바라봤다.

"아니 누나! 괜찮아, 얼마든지 다녀와도 좋아!"
"응? 쵸스케, 갑자기 왜 그래? 그보다 내가 없으면……."
"집 걱정은 안 해도 돼! 나 혼자만으로 괜찮으니까, 누나는 실컷 놀다와."
"그치만……."

우물쭈물거리며 말을 흐리는 야요이, 물론 본인도 가고싶긴 하다. 하지만 문제는 동생들이다, 쵸스케는 혼자서도 괜찮다고 주장하고 있긴 하지만 야요이는 집안의 첫째딸이다. 결국 동생들 걱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기에, 야요이는 대답을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확실히 주말엔 부모님도 계시는데, 그치만 금요일 저녁은 쵸스케 혼자 다른 동생들을 돌봐야 하고……. 라며 머릿속에서 이런 저런 걱정만이 떠오르는 야요이. 그에 쵸스케는 걱정 말라는듯이 당당히 가슴을 펴고 말한다.

"걱정 말라니깐. 여태까지, 누나 옆에서 동생들 돌보는 법 같은거 제대로 배웠으니까. 누나도 가고싶잖아? 요즘 아이돌 일로 힘든거 같은데, 푹 쉬다 와."

그런 쵸스케의 믿음직한 말에, 야요이는 다시금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고민은 그리 길진 않았다. 집안의 맏딸로써의 역할을 다하는 야요이지만, 아직은 어린 아이일 뿐이다. 아이돌이기에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집에 와서도 동생을 봐야 하기에 언제나 그 나잇대의 소녀가 맛봐야할 재미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조금은 망설이면서도 야요이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쵸스케는 그 답에 만족한 듯 씩 하고 미소를 지었다.

"정말 잘 할수 있겠어 쵸스케?"
"걱정 마 누나! 누나야말로 힘내. 여행, 프로듀서란 분이랑 가는거잖아?"
"힘내라니? 으음, 뭐 알았어. 쵸스케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한번 믿어볼께. 싸우지 말고 잘 지내야한다?"
"누나도 참, 난 어린애가 아니라구."

야요이의 말에 웃어보이며 그렇게 대답한 쵸스케는, 슬쩍 야요이가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을 바라봤다. 프로듀서, 야요이가 집에서 자주 입에 올리는 사람 중 한명이다. 쵸스케가 그 사람을 직접 본건 단 한번뿐이지만—그것도 우느라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야요이가 해 주는 프로듀서에 대한 이야기는 자주 들어왔었다. 어떨때는 믿음직하고, 또 어떨땐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고마운 마음이 드는 사람이라고, 야요이는 그렇게 말해왔었다. 매일 해주는 그의 이야기에 쵸스케는 질릴법도 했지만, 언제나 야요이로 하여금 프로듀서 이야기를 그만두게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이야기를 하는 누나는 너무나 즐거워 보였으니까..쵸스케는 그렇게 생각하며, 야요이를 바라봤다.

"누나, 힘내!"
"응? 왜 갑자기 그래?"
"일단 힘내! 화이팅!"
"뭔진 잘 모르겠지만……응, 힘낼께!"

그러니, 그 프로듀서란 사람과 누나를 어떻게든 좋은 방향으로 끌어주는게 동생으로써의 도리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쵸스케는 마음 속으로 한번 더 화이팅을 외쳤다.
그렇게 타카츠키가의 남매애 비스무리한게 돈독해질 무렵, 동물들에게 저녁인사를 하고 있던 히비키도, 가만히 달을 바라보고 있던 타카네도, 침대에 엎드려 노래를 듣던 미키도. 또 친구에게 메일을 보내고 있던 아즈사도, 류구 코마치의 개선할 점을 분석하던 리츠코도, 만화책을 보며 여유를 부리던 마미도, 막 샤워를 마친 아미도 프로듀서의 그 메일을 받고 있었다. 잠시 뒤, 프로듀서는 전원에게 답을 받을 수 있었다.


"좋아, 야요이까지 다 답장 메일이 왔네."
"어때요, 다들 갈수 있다던가요?"
"네. 간만에 가는 여행인데다가 다 같이 갈 수 있다니, 다들 좋아하겠죠."

만족스러운듯이 미소를 지으며, 프로듀서는 핸드폰을 탁 하고 닫는다. 코토리도 함께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후후, 하는 소릴 낸다. 지난번 위안여행으로 바다에 갔던 이후로 이런저런 스케쥴 때문에 다 함께 여행을 간 적이 없다. 아이돌들도 좋아하겠지만, 나도 간만에 함께 가는 여행이니 기분이 좋은걸. 이라 생각하며 프로듀서는 컴퓨터의 전원을 껐다. 물론, 프로듀서가 생각하는 대로 메일을 받은 전원이 굉장히 기뻐한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진의에 대한건 전혀 떠올리지 못하는 프로듀서, 반면에 코토리는 어딘가 짐작가는 곳이라도 있는지 여전히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재미있겠네요. 다 같이 가는 여행, 전 처음이니까요. 작년엔……."
"아하하하……. 어쩐지 죄송하네요. 그러니 이번 기회에 푹 쉬시면 됩니다! 다른 아이들은 제가 전부 책임질테니까요."
"후후, 그 말만으로도 고마운걸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퇴근 준비를 하는 두 사람, 이내 사무소의 등이 하나둘 꺼지고 마지막 형광등 하나가 빛의 잔상을 남기며 꺼졌다. 문을 잠그면서도 두 사람의 회화는 이어졌고, "정말이라니깐요, 저한테 다 맡기시고……." 라던가 "그건 제가 찜찜해서라도 그렇겐 못하겠네요. 대신 이건 어때요?" 하는 소리가 사무실 안까지 조금씩 들려왔다. 이내 그 소리마저 잦아들고, 765 프로덕션의 사무실 내는 완전한 어둠과 정적이 지배하고 있었다. 마치 폭풍 전야처럼 고요한 사무실 내에 조금 전까지 있었던 프로듀서는, 며칠 뒤 금요일 오후에 이곳에 일어날 일을 전혀 짐작치도 못하고 있었다.

금요일은, 순식간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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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게 쓰고 있는 장편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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