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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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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09, 2016 12:04에 작성됨.

카와즈님이 제공해주신 플롯을 바탕으로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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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흑, 헉, 콜록!"

 

부서진 좌석 밑에서 기침 섞인 숨소리가 터져나왔다. 감겨있던 눈이 부르르 떠졌다. 그래도 어둡다. 온 몸이 아프다. 앞에 축 늘어져 있는 오른손. 새하얗게 질린 손가락이 움푹 파인 바닥을 더듬거렸다.

 

"흐윽, 컥, 허억."

 

어디선가 어렴풋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지금은 조용하다.

 

어떻게, 된거지.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과거를 돌이켜본다. 타고 있던 전차가 심하게 흔들린다 싶더니,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고다. 기절하기 직전 어딘가로 떨어지는 것 같으니 아마, 추락이라도 한 게 아닐까.

 

그 꿈처럼.

 

오싹함이 등줄기를 타고 전신으로 퍼졌다. 치하야는 피와 먼지가 말라붙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지금 상황은?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거지? 나는? 이 세 가지를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도 시급했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서둘러 주위를 훑었다. 찬 공기가 스며들어오는, 약 45도 각도로 기울어진 객실. 강한 충격을 받아 성한 곳 하나 없이 온통 쭈글쭈글하다.

 

조각난 좌석과 꺾여진 철봉이 어렴풋하게 보인다. 덜렁거리는 두 문짝의 틈새로는 다른 열차의 옆면이 자리잡고 있다. 바람은 술술 통해도, 사람이 빠져나갈만한 구석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지금은, 밤이라고 생각된다. 아침이었다면 햇살이 조금이라도 틈새로 들어왔을테지. 그 때로부터 짧으면 몇 시간, 길면 몇 십시간이 지나지 않았을까.

 

끼기긱, 키리릭.

 

두번째까지 점검했을 때, 천장에서 뭔가가 덜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뭐지?

 

치하야는 고개를 겨우 들었다. 흔들거리는 손잡이밖에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돌려봤지만, 각도가 부족하다. 좀 더 상체를 일으켜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으드득.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하아, 하아, 큭!"

 

숨을 쉬는 것 자체가 고통을 동반한다. 아무래도, 꽤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 같다.

 

"크, 이익!"

 

살짝 몸을 비틀었을 뿐인데도 근육이 마구 당긴다. 양 팔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어깨가 크게 어긋나있는 감각. 뜨겁게 달궈진 날붙이가 그 주변을 푹하고 찌르는 것만 같다.

 

"아아악!"

 

이마와 등이 점점 축축해졌다. 부위를 가리지 않고 밀려들어오는 통증에 질식할 것만 같다. 치하야는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쳤다. 끼이익. 하반신을 덮고 있던 판쪼가리들이 후둑, 툭 떨어졌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어딘가 끼어들어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가뿐 숨을 몰아쉬었다. 뒤돌아보는 건 할 수 없다.

 

"흐윽, 큭, 흑."

 

투둑, 툭. 생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나올 수밖에 없는 눈물이 한 두방울씩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 찬 바람이 무심하게 피에 엉겨붙은 앞머리를 살짝 흔들고 지나갔다. 치하야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전차에는, 적어도 이 객실 안에는 자기밖에 없었다. 혼자서는 여기를 나갈 수 없다.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끼릭, 끼릭하고 기분 나쁜 소리만이 이따금 들린다.

 

구조대는, 오는 걸까?

 

만약 온다고 해도 그 때까지 버틸 수 있는 걸까, 나는.

 

딱딱하게 굳은 손가락이 경련했다. 다리는 팔에 비하면 조금 상태가 나은 듯 하지만,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는 못했다. 치하야는 바닥에 바짝 얼굴을 붙였다.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지금으로서는 꽤나 힘든 일이었다.

 

뺨에 달리는, 차갑고 꺼글거리는 감촉. 온기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바닥을 두드리던 손가락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런, 거였나."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고통에 움찔하면서, 치하야는 두 눈을 감았다. 뜨고 있으나 감고 있으나 어둡다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그런 거였어."

 

트고 메마른 입술이 확신을 자아냈다. 레슨 후 전차를 타고 이동하던 도중 사고가 발생한다. 그 뒤로는 장례식이 치뤄지고, 무덤이 하나 생긴다.

 

'키사라기 치하야의 묘'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지금까지의 꿈들은 그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던 것이다.

 

"하....."

 

바람이 몇 번 더 옷자락을 흔들어도, 치하야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움직여봤자 헛수고. 고통만 추가될 뿐이다. 소리를 내서 구조요청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도 않았다.

 

라스트 씬은, 이미 정해져있다.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바보 같네, 나."

 

정말로 조심해야할 건 하루카가 아니었어. 치하야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거기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단순한 조소만이 아닌, 안도감 또한 담겨있었다.

 

다행이다.

 

하루카가 아니라서.

 

"후훗, 쿠흑, 쿨럭."

 

치하야는 기침 섞인 웃음소리를 토해냈다. 괴롭고 부자유한 몸. 혼자 어둡고 좁은 곳에 갖혀있어도, 마음은 어딘가 모르게 착 가라앉았다. 정말 다행이야. 하루카가 아니라, 나라서.

 

남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치하야는 동료들을 떠올렸다. 모두, 걱정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좀 더 시간이 지나고나면, 사무소는 눈물바다가 되려나.....꿈과 똑같이. 여전히 입가는 느슨했지만, 비리고 쓴 맛이 느껴졌다. 눈가에 뜨뜻미지근한 물이 고였다. 말랑해진 눈꺼풀이 저절로 스르륵 열렸다.

 

붉게 충혈된 눈동자가 비추는 건, 여전히 어둡고 어지럽혀진 객실이다.

 

"으극, 끄극.....흑....."

 

치하야는 한참 끙끙거렸다. 큰 소리를 내서 엉엉 울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꽉 틀어막힌 것만 같아서, 그러지도 못했다.

 

앞으로 닥쳐올 지도 모를 죽음에 대한 공포, 만약 천운이 닿아 살아날 수 있다고 해도, 앞으로 어제와 같은 일상을 보낼 수 없다는 절망감, 여기에 자기 혼자밖에 없다는 외로움이 안쪽을 마구 뒤흔들었다.

 

"......"

 

그렇게 정신적, 신체적 양방으로 고통에 시달린지 얼마나 지났을까. 겨우, 떨림이 멈췄다. 치하야는 쥐죽은 듯 바닥에 늘어붙었다. 안정을 되찾은 게 아니다. 모든 게 바싹 말라붙어버린 것만 같은, 체념이 그녀를 지배했다.

 

그래도.....이걸로 끝이야. 그럴 거야.

 

나 혼자로 끝나서, 조금은 안심이네.

 

억지로 끌어내려진 마음은 근거 없는 믿음을 자아냈다. 눈물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뻑뻑해진 두 눈은 휴식을 요구했다. 시야가 점점, 더 검고 붉게 변해간다.

 

끼익- 기기긱.

 

쇠가 긁히는 것 같은 불온한 소리가 귓가를 맴돌다 사라진다.

 

솔직히, 죽는 건 그다지 반갑지는 않아. 정말, 그 애와 이런 재회는 바라지 않았는데.

 

하지만 이젠 정말.....틀렸으니까.

 

완전히 닫혀버리고 만 두 눈은 다시 뜰 수가 없었다. 몸에서 힘이 스르륵 빠져나간다. 그나마 명료했던 의식마저, 갈수록 흐릿해져가고 있었다. 단순히 졸려오는 건지, 아니면 정말 영원한 잠에 들고 마는 건지 알 수 없다.

 

".....미안해, 모두. 정말, 미안."

 

라스트 씬은, 이미 정해져있다.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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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정해진 라스트씬, 히로인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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