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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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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04, 2016 21:03에 작성됨.

카와즈님이 제공해주신 플롯을 바탕으로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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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추락 사고.....?

 

어쩌다가 임시로 자리를 맡게 된 행사가 겨우 끝을 맺은 뒤. 대기실에 덩그러니 남게 된 하루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깐 인터넷 서핑을 하던 도중 눈에 띄는 기사 하나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허겁지겁 확인 버튼을 눌러보자, 우그러진 열차들이 여기저기에 나뒹굴고 있는 모습이 화면에 비춰졌다.

 

"우와아....."

 

지난 날 친구가 해줬던 꿈 이야기가 저절로 떠오르는 광경. 꿈과 현실이 마주하는 순간. 뒷목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었다. 만약 그녀가 부탁한 대로 행동하지 않았다면, 아마 자기가 저기에 있지 않았을까.

 

어찌보면 닥쳐올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셈이긴 해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속이 쓰리다. 타고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저렇게나 엉망진창으로 망가져있는데 무사할 리는 없겠지.

 

그리고 그 중에는 분명, 죽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루카는 휴대폰 화면을 탁 소리나게 접어놓고는 앞에 놓인 탁상에 던지다시피 두었다. 그러고는 폭 엎드렸다.

 

"프로듀서씨, 빨리 안 오시나....."

 

생각보다 이야기가 길어지고 있는 모양인지, 금방 온다고 해놓고서는 벌써 30분이나 지났다. 이래서야 다음 장소에 제 때 도착할 수 있는 걸까. 지각이라도 한다면 큰 일이잖아. 아, 그러고보니 치하야쨩 혼자서 괜찮을까?

 

"으음....."

 

어느 순간부터 손 끝이 붉은 물체에 톡 닿았다. 메일, 보내볼까. 어쩌면 그 쪽에서도 뉴스 같은 걸 접하고 걱정하고 있을 지도 모르니까. 하루카는 적당한 속도로 버튼을 조작해 글자를 채워넣었다. 치하야가 정말로 걱정하고 있다면, 먼저 자기 쪽으로 전화를 걸었을 거라는 생각은 한 켠에 밀어두고서.

 

- 그 쪽은 벌써 도착했니? 마음만 같아서는 곧장 따라가고 싶지만, 프로듀서씨가 오질 않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전송 버튼을 꾹 눌렀다. 그 뒤 눈을 감았다. 그러고 있은지 몇 분이 지났을까, 하루카는 의아한 표정으로 손에 꼭 쥐고 잇던 휴대폰을 확인했다.

 

답장이 오질 않는다.

 

불안함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하루카는 천천히 두 눈을 깜빡였다. 그래봤자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어떻게 된 걸까. 평소라면 바쁜가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하얀 손가락이 빠른 속도로 자판을 두들겼다. 전송, 또 전송.

 

- 아직 이동 중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도착했다면 사진, 보내줄 수 있을까? 꽤 큰 축제라고 들었거든!

 

- 지금 뭐하고 있어? 귀찮게 했다면 미안해, 그게- 여기 대기실 진짜 아무 것도 없어서 심심해.

 

답장이 오는 일은 없었다.

 

"아하하, 많이 바쁜가보네."

 

하루카는 애써 웃음을 지었다. 좀 전에 같이 레슨했을 때만 해도 치하야쨩, 조금 지쳐보였지. 아마 그런 이유도 있으니까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응, 그랬을 거라고.

 

부들부들 떨려오는 손은 감출 수 없었다. 하루카는 메일을 하나 더 보냈다.

 

- 저기, 치하야쨩?

 

휴대폰은 울리지 않았다. 하루카는 마지막으로 전화를 떠올렸다. 그래, 이거라면 분명 응답을 해줄거야. 그녀는 근거없는 믿음을 가지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 때, 벌컥하고 열리는 문.

 

"하, 하루카!"

 

"프, 프로듀서씨!? 저기, 대체 어떻게 된 일인데 그러세요?"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대기실로 뛰어들어왔다. 땀에 젖은 이마, 경련하는 입가. 딱 봐도, 무슨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해. 하루카는 저도 모르게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흐읍, 하아, 하아.....자, 잘 들어."

 

"네, 네에?"

 

"열차, 사고, 거기에, 치하야가....."

 

그가 더듬더듬 내뱉는 말소리는 제대로 된 문장을 구성하고 있지 않았지만, 중요한 내용만큼은 들어있었다. 하루카의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듣고 말았다.

 

"에이, 서 설마요.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지금 치하야쨩에게 전화를 걸었거든요. 받을 거에요, 분명."

 

거짓말. 거짓말이야 그런 건. 하루카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리며 쥐고 있었던 전화기를 귓가에 가져다 대었다.

 

- AU부재중서비스에 접속합니다. 신호소리가 들리면 3분이내 전언을.....

 

기대와는 전혀 다른 메세지가 들려왔다.

 

"어, 얼레?"

 

손에 힘이 쭉 빠지면서, 붙들고 있던 것이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졌다. 하루카는 멍하니 서 있다가 뒤늦게 그것을 주워들었다.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가장해서. 그러고는 또 한 번 통화버튼을 눌렀다.

 

"아하하- 아무래도 조금 더 기다려주셔야겠는데요. 치하야쨩, 웬일로 전화를 안 받지?"

 

뚜- 뚜-

 

그러나 연결음만이 그녀를 반겨줄 뿐이다. 뒷머리에 무언가 끼어들어간 것만 같은 이질감. 2, 3분쯤 지났을까, 전과 똑같은 자동응답 메세지가 귓가를 때렸다.

 

"이럴 리가.....이럴 리는 없는, 데."

 

하루카는 반복적으로 전화를 걸었다 끊었다를 반복했다. 그러면 그럴 수록,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이 점점 다가왔다. 하루카는 얕은 숨을 자꾸만 내뱉었다. 프로듀서가 다가가 그녀의 덜덜 떨리는 어깨를 양 손으로 꼭 붙잡았다.

 

이젠 부정도 도피도 무엇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지, 진정해. 뉴스에도 나왔으니까, 분명 구조대가 갔을 거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프로듀서는 거기까지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머릿 속에서 지난 번 치하야가 이야기했던 악몽이 펼쳐졌다. 그것의 결말은.

 

"아니야, 그럴 리 없어요!"

 

마치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하루카가 크게 소리쳤다. 프로듀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조금이라도 벙긋했다간 바로 이젠 틀렸어, 같은 대답이 튀어나갈 것만 같았다.

 

"......"

 

하루카는 어깨에 올려져있는 손을 스윽 치워냈다. 그러고는 자기 앞에 서 있는 프로듀서를 제치고, 열려있는 문을 통해 복도로 뛰어갔다.

 

"하, 루카?"

 

자기 안의 감정을 꾹꾹 눌러 참고 있던 프로듀서가 느릿느릿 뒤를 돌아보았다. 좀 전만 해도 쓰러질 것같이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던 소녀는 아주 작은 뒷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짝!

 

"윽!"

 

프로듀서는 스스로의 뺨을 세게 쳤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잡아넣기 시작했다. 놓치면, 안 돼. 필사적으로 주문을 걸었다.

 

"헉, 헉, 으흑, 흑, 큭!"

 

그 사이 하루카는 미친듯이 달렸다. 다른 사람과 부딪칠 것만 같아도,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넘어질 것만 같아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달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컥컥거리면서도.

 

그동안 나오지 않았던 눈물이 지금에서야 펑펑 쏟아져도, 시야가 흐릿해져도.

 

철퍽!

 

그러다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바닥에 넘어져도.

 

하루카는 아픔도 느끼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달렸다. 주변의 모든 것들과 스쳐지나간 끝에, 하루카는 겨우 출구로 나와 길거리를 휘청휘청 걸었다.

 

"저, 저기요!"

 

"잠깐 멈춰봐요! 다, 다리에 상처가!"

 

아이돌임을 알아본 누군가 불러세워도 멈추지 않았다. 무릎에 피멍이 든 걸 확인한 사람들이 깜짝 놀라 소리쳐도 전부 무시하고 걸었다. 애초에 뭐라고 하는 건지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헉, 허억, 읍....헉."

 

지금, 아마미 하루카에게는 그 쪽으로 가야만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으니까.

 

"하루카! 멈춰!"

 

겨우 뒤쫒아오는데 성공한 프로듀서가 그녀의 등을 꼭 끌어안았다. 하루카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바짝 마른 입술을 달싹거렸다.

 

"저, 가야해요. 가지 않으면, 안돼요."

 

"응, 알아. 그러니까......같이 가자. 부탁, 이니까."

 

프로듀서는 하루카를 데리고 급하게 택시를 잡았다. 두 사람의 얼굴은 눈물로 엉망진창이었다.

 

.....

 

급하게 도착한 사건현장에는, 이미 구조대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동원된 중장비가 잔해물을 걷어내고, 수십명의 사람들이 개미처럼 차량에 달라붙어 혹시 있을 생존자를 찾고 있다. 거기에 다른 누군가가 끼어들 틈은 존재하지 않는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프로듀서, 그리고 하루카. 크게 찌그러지고 뒤틀린 열차들이 서로서로 포개어져있는 모양새로 봐선, 도저히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믿겨지지 않는다.

 

눈 앞에 들이닥친 냉혹한 현실에, 품고 있었던 일말의 희망마저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가야, 하는데."

 

하루카의 두 눈에서, 눈물이 마를 일 없이 계속해서 양 뺨을 타고 흐른다. 빨리 가보라는 듯 바람이 등 뒤를 강하게 밀어냈지만, 꼼짝없이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안 돼."

 

프로듀서가 하루카의 팔을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치하야쨩이, 기다리고 있어요."

 

".....여기 있어줘, 제발."

 

하루카는 몇 번 더 버둥거렸지만, 성인 남성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어찌어찌 프로듀서를 뿌리치고 가봤자 바로 다른 사람들이 제지할 게 뻔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마음만 같아서는 당장 저 고철덩이들 사이에 뛰어들어서, 괴로워하는 친구를 구해내고 싶은데.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뭐라도 하고 싶다.

 

가만히 보고만 있는 건, 싫어.

 

부질없는 짓인걸 알면서도 하루카는 또 다시 지금까지 답장없는 번호에 전화를 걸어봤다.

 

뚜- 뚜-

 

역시,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알고 있어, 알고 있었는데.

 

하루카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저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 스스로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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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허 입에서 쇠맛이 느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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