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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야 린은 가벼운 사랑을 하고 있다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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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04, 2016 12:36에 작성됨.

001


 시부야 린(渋谷凛)이란 아이돌은 이른바 톱 아이돌로서, 다른 아이돌과는 급이 다른 자리에서 그 위상을 떨치며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있다고 한다. 대를 거쳐서 나오는 전설적인 아이돌. 누구나 한 번씩 이름만은 들어봤을, 인지도 최상의 아이돌.

 

 「계신가요?」

 

 물론 톱 아이돌은 그녀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그녀는 특출나게 많은 사랑과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솔직히 말해 연예인 쪽에는 문외한인 나로서는 인간 하나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열중하는 건지 모르겠는게 사실이다. 이 말을 그녀의 팬들, 현재는 몇 십만은 넘어간다고 하는, 이 들으면

 

 [시부린의 모에 포인트를 모르면 가만히 닥치고 있어! 쿨하면서도 아름다운 미모와 방송에서 조금씩 보여주는 평범한 여고생이라는 갭모에, 같은 뉴제네 소속 시마무라 우즈키와의 백합 전개의 파괴력은 차원이 다르다고!]

 

 ...라면서 달려들 수도 있겠지만, 모르는건 모르는거다. 한번도 머리 속에 담아두지 않은 사람의 이야깃거리 같은건 매일 듣는 학교 선생님의 잔소리 패턴보다도 외우기가 어렵다.

 

 「...아, 어서오세요」

 

 뭐, 시부야 린에 대한 이야기는 그에 준하게 들려오고 있지만. 여자에 대한건 몹시 기억하기 어려워하는게 내 특성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자.

 

 「오랜만이시네요. 이번엔 무슨...」

 

 이야기가 잠시 샜지만, 어쨌든 그런거다. 시부야 린이라는 하나의 아이돌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귀여움을 받으며, 떄로는 질투를 받으며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길에는 평범한 이벤트보다는 특별한 이벤트가 훨씬 많을 것이다. 스폰서에게 머리를 숙이거나, 윗 분들에게 몸을 굴리거나, 라이브를 실패하거나 등등. ...어쩐지 생각하면 위가 아파지는 예시들만 든 것 같지만. 오히려 세간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특별’한 일에서 양수로 표현되는 일을 찾는게 더 힘들 것이다. 유명이라는건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널리 욕을 먹는 한 방법에 불과한 개념이고, 보람이라하면 억지로 만들어진 이유 같은 것이다. 무대 위에 서는 시간은 고작 해봐야 5분. 그 5분 동안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과 로비를 해야 하는 것일까.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냥 선물 하나 정도는 사주려고요」

 

 사람들의 우상이라는건 그만한, 아니 그보다 더한 고생과 끔찍함이 뒷편에 도사리고 있기 마련이다. 정치인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그런 뭣 같은 짐들을 짊어지고서 아이돌을 한다는 면에서는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 굳어버린 두뇌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바보라고 칭하는데에 참을만한 이유가 없다.

 

 「그런가요. 그럼 이쪽으로...」

 

 이상이 아이돌이라는 존재에 대한 나의 견해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변해야 하는 이유가 없다. 그쪽 업계를 지나가던 사기꾼이 완전히 붕괴뜨린다- 라는 괴이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은 그런 이유 따위 생기지 않을 것이다.

 

 「목련입니다. 꽃말은...」

 「알고 있습니다」

 

 만약 내가 이 주장을 주변에 이야기한다면, 끔찍한 참사가 벌어질 것이다. 그럴만한 상황에 처해 있고, 솔직히 지금이 아니더라도 안좋은 눈빛 정도는 받는게 당연하겠지. 그럴 만큼 아이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게 나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것도 나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내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시부야 린에게 피해가 되는 것도 아니다.

 

 「언제나...잘 부탁드립니다」

 

 그것으로 되었다.

 그것으로 끝났다.

 그것으로 막을 내렸다.

 이런 느낌으로 시부야 린에 대한 생각을 마무리 지은 어느 겨울철의 나였으나, 그 관점이 바뀌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고서였다.

 

 「하아...」 저벅저벅

 

 언제나처럼 학교를 끝내고, 그 끔찍했던 화이트데이의 악몽을 되새기며 집으로 돌아가던 중,

 

 「...」끼익

 

 만나고 만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발견’했다고 해야 할까.

 

 「...다녀왔어」

 

 여러 명, 아니 수십 명의 인간들에게 둘러싸여 집단으로 폭행당하면서-

 

 「어서와, 프로듀서」

 

 온 몸 여기저기가 부러지며, 사망 문턱까지 도달했던 아이돌. 시부야 린.

 

 「...칼은 분명 숨겨놓았던 것 같은데」

 「그만큼의 시간이 있으면 물건 하나 찾는 것 쯤 시간문제야. 그것보다...」

 

 

 

 「왜 이렇게 늦은거야...또 혼자 죽어버릴뻔 했잖아, 쓸쓸하게」 싱긋

 

 그녀는 선혈이 넘쳐나는 왼팔을 가만히 놔둔채로,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002


 내 눈앞에 닥친 상당히 곤혹스러운 상황은 일단 뒤로 하고, 지금의 시점에서부터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 내가 시부야 린을 처음 만났을 때로 돌아가보자. 그 때의 그녀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머리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으며, 다리는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려있고, 상반신 옷은 거의 다 찢어져 안쪽의 속옷이 전부 보이고 있었다.

 

 「아...으...」

 

 수십 명 정도의 사람들 -주로 남자가 많이 섞여 있는 듯 보였지만- 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한 사람을 차고 때리고 밟는 광경은,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조금은 남아있던 세상에 대한 나의 동심을 박살내고 말았다. 산산히 조각내고 말았다.

 [찢어]    
                             [없애버려]
      [밟아]

폭언.
폭행.
폭력.      
                     
    [사라져]
               [쓰레기]

 

 사람은 누구나 그런 면이 하나씩은 존재한다고 한다. 차도를 건너다 치여 죽은 고양이를 묻어주거나, 갑자리 쓰러지신 할머니 분들을 도와드리거나 하는, 인간적인 면.

 

사람이 사람으로서 있을 수 있는, 인간의 양심. 그런 것들이 눈 앞의 광경에서는 한가지도 보이지 않았다. 찾을 수 없었다.


 [죽여]
 

 참고로 마지막 한 마디는 약 10초간 움직이지 않고 있던 나의 몸을 움직이기에는 충분했다.

 

 「...누...구?」

 「지나가던 학생인데...」

 

 제일 처음 들은 말은 신상을 묻는 말이었다. 말을 할 정도로 기력이 남아있다면 굳이 나서지 말거 그랬나- 하는 생각이 머리속을 헤집기 시작하는 순간 그 사람은 기절했다. 누가 봐도 ‘아, 이사람 지금 기절했구나’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말끔하게.

 

 「...」

 

 구급차를 부르고 나라의 돈을 먹는 공무원들이 오기까지 최소 10분은 걸릴텐데, 그동안 여기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걸까.

 

 「...그러고 보니 이 사람 누군지도 모르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하게도 그 떄의 나는 시부야 린의 얼굴은 물론이고 이름까지도 말끔히 머리속에서 지워낸 상태였다. 한 조각도 남기지 않았었다. 솔직히 말해 지나가는 여자 얼굴 하나하나를 계속 기억하고 있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기억을 했어야 했다.
 아무리 불가능한 일이라도 나는 그것을 기억해야 했다. 기억하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곰곰히 생각하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예측하고, 그리고 바로 도망쳐야 했다.

 

 「찾았다」

 

 나는 이 행동이 앞으로 어떤 일을 불러 일으킬지 생각하지도 않은채, 일단 내가 구한 사람이 누구인지 판별하기 위해 근처에 떨어져 있던 지갑을 주워들었다. 세련된 파란색의 지갑이였다. 누가 봐도 고급이란걸 알 수 있는, 그리고 지갑 주인의 세심한 관리를 엿볼 수 있는 지갑이였다.

 어디 볼 만한 신분증 같은건 있으려나...

 기대와는 다르게, 신분증은 없었다. 그러나 학생증은 있었다.

 

 「...이사람 학생이었어?」

 

 그렇게 어리게 보이지는 않는데...

 어른스러운 복장 떄문인지(이미 많이 찢겨서 대락적인 윤곽밖에 볼 수 없지만), 옆에 있던 쇼핑백 떄문인지 잠시 착각을 한 것 같다. 뭐, 세상에는 30세 이상이면서도 여고생을 자칭하고 다니는 별난 아줌마가 있다는 소문도 돌아다니니, 딱히 특별한 건 아니겠지만.

 아니겠지만.

 미성년자를 이렇게까지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화가 치미지 않을 수 없다. 아니, 나도 미성년자지만, 그런 면에서 더욱더 동질감이라는게 있지 않을까? 나보다 한 학년 높은 선배들이 선생님에게 혼나는 걸 보면 꼴 좋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지만, 같은 반 소속인 아이가 선생님에게 혼나면 약간의 동정심이 생기는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이 경우는 좀 더 범위가 넓은 이야기가 되겠지만.

 어쩄든.

 그렇게 지갑 안의 학생증을 확인하려 내 손을 지갑 속에 넣은 순간, 일은 벌어진 것이다.

 

 「어이 거기 너! 손 올려!」

 

 좋아, 잠시 내 상황을 돌이켜보자.

 내 발 앞>> 온 몸이 찢겨진 여고생 한명.

 내 손 안>> 비싸보이는 지갑 하나. 손까지 집어넣고 있다.

 ...

 범죄네 이거!

 

 「...신발끈은 묶고 데려가시면 안될까요?」

 

 여고생 폭행 및 절도 혐의로 붙잡혀간 내가 끌려가기 전에 한 말은 이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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