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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질투(Jealousy)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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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01, 2016 03:34에 작성됨.

* 프로듀서의 P는 퍼스널리티의 P 시리즈의 P가 등장합니다.

* 시기상으로는 [밤 바다와 등대]의 1년 반 뒤, [익숙한, 하지만 평소보다 푸른 하늘]의 1주일 뒤입니다.

* 읽기에 따라 P가 재수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 태양의 질투(Jealousy) 上 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별관 지하에 위치한 연습실에 도착할 무렵에는 후미카와 루키 트레이너가 트레이닝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마무리 운동을 끝내고 후미카를 샤워실로 보낸 뒤 루키 트레이너는 얇은 차트를 들고 내게 다가왔다.

“저기, 프로듀서 씨. 드릴 말씀이…….”

“말씀하세요.”

“우선 이것부터 좀 보시겠어요?”

그녀는 들고 있던 차트를 내게 보여주었다. 차트에 적힌 내용은 지난 1주일간 급속도로 나빠진 마유의 컨디션에 대한 내용이었다.

“원래는 이번 주말 전에나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조금 전 보컬 트레이너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이대로면 다음 테스트는 힘들 것 같다고…….”

“……알겠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어떻게든 해 볼게요.”

차트를 덮어 루키 트레이너에게 건네주자, 그녀는 그것을 받아 품에 안으면서 불안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마유, 괜찮은 거죠?”

“괜찮습니다. 저한테 맡겨주세요.”

“네…….”

억지로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면서 나는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루키 트레이너가 꾸벅, 인사를 하고 직원실로 들어가자, 잠시 후 피부가 약간 발갛게 달아오른 후미카가 복도로 나왔다.

“죄송합니다. 기다리게 해서…….”

“아냐, 별로 안 기다렸어. 그럼 가자.”

“네…….”

 

여자 기숙사에 도착했을 무렵엔 이미 석양도 저물어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피곤했던 모양인지, 후미카와 함께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마유는 담요를 덮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기숙사에 도착하고, 잠든 마유를 깨워 후미카와 함께 돌려보낸 뒤, 나는 차를 몰고 남자 기숙사 근처의 공원으로 향했다. 어디든 좋으니 생각을 정리할 장소와 시간이 필요했다.

“하아…….”

좁은 공원을 빙글빙글 돌다가 가로등 밑에 있는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입으로 날숨을 내쉬면서 코로 공기를 들이마셨다. 조금씩 풀내음이 옅어져 가는 초가을의 싸늘한 공기가 빈 폐로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뭐가 문제일까…….’

아니지, 무엇이 문제인지,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최근 2달간 후미카에게 신경을 쏟느라 마유와의 거리를 둬 버린 것. 이것이 문제일 것이다.……라고 제멋대로 결론을 내리는 나 자신을, 머릿속의 이성은 차갑게 부정했다.

그렇다.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뻔한 변명으로 나 자신마저 속일 정도로, 나는 그것에게서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문제는 나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 마치 자석의 같은 극처럼.

“맥주나 한 병 사서 갈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프로듀서 씨?”

고개를 돌리자, 그 곳에는 음식 재료가 담긴 봉투를 품에 안고 있는 카에데가 가로등의 불빛을 받으면서 서 있었다.

“아, 타카가키 씨. 안녕하세요.”

일어서서 인사를 하자 그녀 또한 목례하면서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이 곳엔 무슨 일이세요?”

“잠시 머리가 좀 복잡해서 식히러 왔습니다. 타카가키 씨는요?”

“유키랑 치히로 씨랑, 저희 집에서 한잔 하기로 했거든요.”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마세요. 내일도 일정이 있으니까. 그건 안주 재료인가요?”

“네. 잘은 못하지만, 그래도 몇 가지 간단한 것 정도는.”

카에데는 도중에 말을 멈추고는 물끄러미,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서로 다른 빛으로 반짝이는 두 개의 보석이 지긋이, 내 두 눈을 비춘다.

“저기, 프로듀서 씨.”

“……네.”

“프로듀서 씨도 같이 마실래요?”

“네?”

“지금 프로듀서의 표정, 도저히 눈 뜨고는 못 봐주겠어요.”

“…….”

대답을 망설이자, 그녀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축 늘어뜨린 내 오른손을 감싸쥐었다.

“부탁이에요. 제가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해 주세요.”

“하지만…….”

“우리들, 동료잖아요?”

그녀의 마지막 한 마디에,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어머, 프로듀서 씨?”

“아! 프로듀서! 어서 와!!”

“하하, 좋은 자리에 껴서, 실례하겠습니다.”

“에에, 벌써 시작하셨네요.”

“아냐, 이제 겨우 맥주만 뜯었는걸!”

잠깐 집에 들러 간단한 변장을 하고 카에데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의 안내에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자,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키와 치히로가 나를 반겼다.

나는 꾸벅, 인사를 한 뒤 술판이 차려진 테이블에 슬그머니 들어가 앉았다.

그 뒤로는 그들이 건네는 술잔을 한 잔씩 받으면서 그녀들이 나누는 대화를 그저 듣기만 했다. 이따금씩 유키가 야구 이야기를 물어볼 때나 적당히 이야기를 했을 뿐이었다.

사실은 머리 속이 복잡해서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알코올로 뇌를 촉촉하게 적셔놓을 뿐. 가끔씩 맞은편에 앉은 카에데와 눈을 마주치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적당히 눈웃음을 지으며 넘어갔다. 약 두 시간쯤 지나, 마침내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잠든 유키를 침대에 뉘이고, 치히로는 다시 내 맞은편 자리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잠시 자리를 비운 카에데는 맥주가 아닌 사케를 들고 치히로의 옆자리에 앉았다.

“자, 프로듀서 씨. 이제 어른들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그 두 사람의 표정에서, 지금까지의 뜬구름 잡는 회화는 그냥 유키를 재우기 위한 연막작전이었음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알코올로 둥실둥실 떠오른 상태의 머리로는 고작 그 정도가 한계였지만.

“큭, 누가 들으면 진짜 어른의 이야기인 줄 알겠네요. 그래서, 어떤 이야기가 듣고 싶으신가요? 사쿠마 이야기?”

나도 모르게 ‘일상의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녀들이 눈치채지 못하기를 바라면서, 나는 적당히 비꼬는 듯한 어조를 골라 적당히 내놓았다. 그 말투에 반응한 것인지, 술기운이 잔뜩 오른 치히로의 눈썹이 움찔, 하는 것이 보였다.

“네.”

“센카와 씨도 느꼈습니까?”

“저는 프로듀서 씨와는 다르게 거의 하루 종일 사무실에 있으니까요. 마유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사실은 전부터 눈치채고 있었어요.”

“그랬군요.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예전에 선수 시절, 슬럼프에 빠진 동료들은 아무리 술을 먹어도 취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술 기운에 기대어 취한 척을 하기는 했지만, 결국 정신은 멀쩡한 상태였다. 그 때만 하더라도 어렸던 나였기에 그것이 어떤 현상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지금 그 상태니까.

눈동자 깊숙한 곳에 차가운 분노를 품고, 포문을 연 치히로는 속사포처럼 내게 말을 쏟아냈다.

“프로듀서 씨, 다른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 그리고 마유와 이야기할 때, 프로듀서 씨의 자세가 다르다는 사실 알고 계세요? 마유에게는 왜 눈을 맞춰주지 않으시는 건가요?”

“…….”

“마유는 저 멀리 센다이에서 당신 하나만을 보고 따라왔단 말이에요. 그런데 프로듀서는 왜 그 아이를 피하는 거죠? 당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마유가 얼마나 당신을 찾아다녔는지 알고 계시잖아요?”

씩씩거리며 한 차례 속사포를 쏟아낸 치히로를 앞에 두고, 나는 대답 대신 잔에 남은 사케를 쭉 들이마신다. 맥주와는 차원이 다른 농도의 알코올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활활 타는 듯한 뜨거움이 목구멍을 가열했다.

“어서, 말해주세요.”

“글쎄요, 마치 자석 같은 관계라고나 할까요?”

“자석?”

“그것도 아니면, 동족혐오라고나 할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 지 모르겠어요. 동족혐오라뇨?”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들을 향해, 나는 목소리를 한층 낮게 낮추어 말했다.

“지금부터 제가 말하는 건, 우리 셋만의 비밀입니다.”

‘비밀’이라는 말에 두 사람. 특히 카에데는 눈빛을 빛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 모두, 전에 우리 집에 온 적 있죠?”

“네.”

“거기서, 뭔가 이상한 점은 못 찾으셨나요?”

“이상한 점? 글쎄요…….”

잠시 생각하던 카에데가 손바닥을 짝, 하고 마주쳤다.

“사진! 가족사진이 없었던 것 같네요.”

“맞아요. 잘 기억하셨어요.”

“당연하죠. 그 때도 제가 물어봤었으니까.”

“하하, 그랬었죠. 그때는 제가 그냥 집에 놓고 왔다고 말했었죠?”

“네.”

“거짓말입니다.”

“……?”

“가족사진 같은 거, 원래 없었어요. 애초에 가족이 없으니까.”

술잔을 내밀자, 카에데는 군소리 없이 다시 술을 채워주었다. 지체하지 않고 그것을 다시 쭉 들이킨다. 속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알코올을 받아 조금 더 거세게 타올랐다.

좋아, 이 정도 열기면 충분하겠지.

“저, 성격장애에요. 아니, 장애였다고 해야 하나. 뭐, 지금은 좀 덜하니까.”

“네?”

“에?”

두 사람은 동시에 얼빠진 듯 한 소리를 냈다.

왠지 모르게 콩트 같아서 재미있다.

“어, 이거는 말하면 안 되는 거였나. 뭐, 병원에서 했던 멘탈 테스트에서 나온 거니까 거짓말은 아닐 겁니다. 뭐라던가, 의존적 성격장애라던가 뭐시기였는데.”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저기, 프로듀서 씨. 조금 술을 과하게 드신 것 같은데…….”

“타카가키 씨. 제가 지금 취한 걸로 보이나요?”

“네. 그렇게 보여요.”

“좋네요. 그럼 취중진담이라 생각하고 들어주세요. 제 푸념 같은 거니까. 이런 거 처음이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좋습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요……일단, 그거 저한테 주시겠어요? 아무래도 그거 없으면 이야기가 매끄럽게 안 나올 것 같네요.”

나는 카에데에게 손을 내밀어 그녀가 들고 있던 술병의 병목을 움켜쥐었다.

“저는 태어난 건 도쿄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3학년에 미국으로 건너갔어요. 부모님이 이혼했거든요. 아버지 손 잡고 따라갔죠.”

‘이혼’이라는 단어에 맞은편의 두 사람이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창 밖에 보이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미국으로 가서 뭘 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납니다. 확실한 건 초등학교 체육시간에 야구를 했고, 거기서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야구 클럽으로 반 강제로 들어가게 된 건 기억나네요. 동양인이라고 눈길도 안 주던 선생들이 그 때부터 저를 사람처럼 대접하기 시작했어요.”

슬슬 불길이 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병을 기울여 빈 잔에 술을 채우고 그대로 그것을 쭉 들이켰다. 연료가 공급되자 다시 불꽃이 살아난다.

“그렇게 6년동안 그냥 살았습니다. 딱히 머릿속에 남는 기억이 없으니 정말로 평탄하게 살았겠……아니, 잠깐만요. 뭐가 있었는데.”

나는 말을 멈추고 턱을 만지면서 곰곰히 생각에 빠졌다. 그러자 금방 어떤 일이 떠올랐다.

“아, 기억에 남는 게 하나 있군요. 중학교 졸업식 날 아버지가 죽었어요. 사인은 잘 기억이 안 나네요. 뭐라더라, 무슨 사고로 죽었다고 했는데. 으음……”

눈을 감고, 미간을 찌푸리면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틀렸다, 기억이 안 난다.

“아, 기억이 안 나네요…… 잠시만, 왜 그런 눈으로 봅니까? 당사자인 제가 이렇게 멀쩡한데.”

“하지만, 프로듀서 씨…….”

무언가 말을 꺼내려는 치히로를 나는 손을 뻗어서 제지한다.

”괜찮아요, 옛날 일이고,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말이니까, 여차하면 그냥 주사(酒邪)를 부리는 거라 생각하셔도 좋고……. 아 참, 듣기 싫으시면 그만 말해달라고 하세요. 저도 이렇게 말하는거 좀 부끄럽거든요.”

“그래도 아직 그 정도는 아니죠?”라고 확인차 물어보자, 두 사람은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씨익,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좋습니다.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아아, 맞다. 아버지 죽은 데까지죠. 아무튼, 그 뒤에 저는 복지시설에 들어갔습니다. 한 두어 달 정도. 개학 시기가 맞물려서,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갔거든요. 어차피 야구는 계속 할 거라 생각했고, 학교 쪽에서도 선수로써의 저는 1인분을 한다고 생각했는지 흔쾌히 받아 줬습니다.”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나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라고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어요. 궁금하세요?”

여전히 입꼬리는 올라간 상태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고는 다시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사실은 복지시설에서 내쫓긴 겁니다. 동양인이라고. 거기에 계셨던 선생님들은 조금 생각이 달랐던 것 같기도 한데, 거 하얀 꼬맹이들 엄청 틱틱대더라구요. 그래서 조금……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일이죠?”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카에데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음, 자랑할만한 건 아닌데. 그냥 좀 싸웠어요. 맨손으론 머릿수가 딸리니까 학교에서 알루미늄 배트를 가지고 와서 싸웠죠. 그러다 칼침도 몇 번 맞았고. 그 때 흉터가 아직까지 있는데……아, 여기 있네요. 여기 쇄골 밑에. 보이죠? 하하하, 정말 아팠어요. 죽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나는 재킷의 지퍼를 다시 올렸다.

“시설 쪽에서는 제가 평소에 피해자 입장에 있었다는 걸 감안해서 불문에 부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무사히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어요. 고등학교 생활은 좋았습니다. 학교에서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줬고, 친구들도 기본적으로 제가 실력이 되니까 다들 인정해주는 분위기였죠. 네, 맞아요. 흔히 말하는 에이스였습니다. 인정을 받고 살았으니까, 정말로 좋았어요.”

“인정을 받고 살았으니까.”

“네. 인정을 받고 살았으니까.”

일부러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한 말을 똑같이 반복하는 카에데를 바라보며 나는 몇 번째인지 모를 억지 미소를 띄웠다. 그 웃음이 껍데기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인지, 카에데의 표정이 한층 복잡한 그것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 구단에 지명을 받고 데뷔전을 치렀어요. 데뷔전은 말아먹었죠. 아마 중학교에서 제일 잘 던지는 애를 세워놔도 그때의 저보다는 잘 했을 겁니다. 지금 생각해도 최악이었어요. 그날 경기가 끝나고, 별의 별 사람한테 다 욕을 먹었습니다. 스카우터, 고등학교 시절 코치, 고등학교 담임선생님, 저를 뽑은 팀의 팬, 기타 등등……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나네요. 아뇨, 괜찮아요. 올릴 것 같으면 바로 화장실로 뛰어갈게요. 저 쪽 맞죠?”

내 질문을 받고 카에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고맙습니다. 결정적인 건, 데뷔전 직전이었을 거에요. 프로 팀에 입단하기 전에는 메디컬 테스트라고 해서, 몸 상태나 정신 상태 등을 정밀점검을 받습니다. 거기서 의사양반이 말하기를 몸은 문제가 없었는데, 정신 쪽에서 문제가 있다고 그러더라구요. 거기서 나온 진단명이 의존성 성격장애 였습니다. 두 사람은 뭔가 짚이는 곳이 있죠?”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카에데와 치히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 모두 나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면서 시선을 피했다.

“아마 지금쯤 사쿠마 마유가 떠올랐을 겁니다. 맞아요, 사쿠마의 성격에서 ‘애정’을 ‘인정’으로 바꾸면 그것이 어릴 적의 제가 됩니다. 사쿠마가 애정을 주고 애정을 요구한다면, 저는 노력을 주고 인정을 요구하는 거죠. 아, 물론 지금은 괜찮습니다. 하도 심하게 뒤통수를 맞아서 지금은 그 때에 비하면 정상인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희석되었으니까.”

스스로 빈 잔을 채우고, 그것을 입 안에 털어넣었다. 죽어가는 불길에 마지막으로 연료를 투입한다.

“센카와 씨, 연습생 중에서 그런 아이 있었죠? 마에카와 미쿠라고, 고양이 캐릭터 고수하던 아이. 그 아이랑 비슷해요. 마에카와가 고양이 캐릭터를 연기한다면, 저는 완벽한 인간을 연기하는 겁니다. 좋게 말하면 노력가, 나쁘게 말하면 컨셉쟁이죠. 뭐 잘 나가다가도 가끔씩 이렇게 NG가 나기도 하지만요. 하하핫.”

그렇다, 오늘처럼, 가끔씩 NG가 나기도 한다.

그것이 정말로 우스워서, 나는 나도 모르게 박장대소했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선은 무언가,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으로 물들어 있었다.

”휴우, 생각해보니 백조 같은 인생이네요. 물 위를 도도하게 헤엄치는 백조를 물 밑에서 보면 필사적으로 물장구를 치고 있는. 딱 제 인생이 그 꼴이군요. 고작 남들한테 인정받는 그게 뭐라고 한평생 뭔 짓을 하는건지, 나 참.”

결국에는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툭 던지듯 꺼내고, 나는 마지막으로 한 잔을 채운 뒤 그것을 쭉 들이켰다. 이제는 연료를 부어도 더 이상 불길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분명 하얗게 다 타버렸을 것이다.

“이야기는 여기까집니다. 신기하죠? 겉으로 봤을땐 멀쩡한데 정신병자라니.”

“정신병자라뇨.”

“프로듀서 씨, 조금 단어가.”

“괜찮잖아요? 틀린 말 아니니까. 정신병자보고 정신병자라는데 뭐가 문젠가요. 아참, 지금은 정신병자가 아니니까, ‘정신병자 였다니’가 맞는 표현이려나.”

깊게 날숨을 내쉬었다. 마치 촛불이 훅, 꺼지듯 가슴 속의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먼 하늘을 바라보는 시선이 장막에 덮인 듯 흐릿해졌다.

“사쿠마는 저와 비슷합니다. 제가 자석의 S극이라면 사쿠마도 S극이에요. 사쿠마가 제 애정을 원한다면, 저는 사람들이 저를 인정해주길 원했습니다. 지금 그 아이의 모습이, 잊고 싶었던 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였기에, 저는 무의식적으로 그 아이를 피해 다녔습니다.”

피해 다녔다? 그건 아니지. 확실하게 피해 다녔다면 지금 같은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잘 생각해 보니까 피해 다닌 것 같네요. 어중간했죠. 완전히 피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프로치에 응대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지금 이 상황까지 온 것 같습니다.”

폐부에 가득 찬 날숨을 내뱉는다. 마치 타고 남은 재를 내뿜듯. 이번에 내뱉은, 뜨거운 그것은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하얗게 부서지는 일도 없이 그저 사라졌다.

"사쿠마는 언행이나 분위기에 비하면 어프로치가 약한 편입니다. 말에 비해 행동이 소극적이에요. 그것이 비단 저에게만 그런 것인지,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요. 이따금씩 그 정도가 심해지면 밖으로 향해야 할 벡터가 밖이 아니라 안을 향할 때가 있습니다. 저 사람이 나를 봐 주었으면 좋겠다, 나만을 바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으니까, 결국 속만 새까맣게 태우는 것이죠."

'북풍과 태양'에서, 만약 나그네가 햇볕에도 옷을 벗지 않고 가던 길을 계속 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북풍의 차례에서는 옷깃을 세우는 것으로 그의 존재를 긍정했지만, 태양의 차례에서 나그네가 아무런 리액션도 취하지 않았다면 태양은 어떻게 했을까.

모두에게 빛을 발하는 태양이기에, 태양이 품는 질투는 안으로, 안으로 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정신을 차려보면 그 속은 이미 새까맣게 타 들어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빙글빙글 돌리던 술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쩍 본 시계는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가 볼게요. 말이 너무 많았네요. 내일도 출근해야 하니까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마시고……그리고, 오늘 한 이야기는 우리 셋만의 비밀입니다.”

꾸벅, 허리를 숙이며 좋은 자리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건넨 뒤, 나는 현관으로 걸어갔다. 평소보다 꽤 많은 술이 들어갔을 텐데, 이상하게 의식은 또렷했다.

문을 열기 위해 체인에 손을 갖다 대는 순간, 등 뒤에서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타카가키 씨, 다 큰 처자가 외간남자한테 함부로 그러는 거 아니에요. 손 놓으세요.”

“괜찮아요. 우린 동료니까.”

“뭐……그렇기야 하죠. 그래도 하지 마세요.”

“프로듀서 씨.”

“네.”

“저는 카나리아였어요. 새장 밖을 모르고, 새장 밖을 두려워하던.”

“…….”

“그런 저에게, 새장 밖의 세상과 새장 밖의 바람을 가르쳐준 건, 바로 당신이었어요.”

“네.”

“당신은 저로 하여금 과거의 저를 잊고 새롭게 살아가도록 길을 열어 주었어요. 그렇다면, 당신 스스로의 길도 당신은 새롭게 찾아낼 수 있을 거에요.”

“네.”

“스스로를 믿으세요. 당신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하고 멋진 사람이니까.”

“조언 감사합니다. 힘이 솟네요.”

허리를 감싸안은 카에데의 손을 풀고, 나는 현관문을 열었다.

”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오지 않는 편이 좋을 겁니다. 그럼, 내일 뵙죠.”

“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그라운드에서 쫒겨나고,  나는 프로듀서의 길을 선택했다.

무엇 때문에, 왜 그 많은 길 중에서 하필 이 길을 선택했는지는 모른다.

그저 막연하게 어린 시절 품었던 무대의 뒷면에 대한 동경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언젠가 누군가가 나에게 왜 이 길을 선택했냐고 묻는다면.

그리고 그 때까지 내가 스스로 만족할만한 답변을 찾지 못한다면.......

그 때가 되어서도 나는 다른 사람의 앞길을 제시하는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길로 기숙사에 돌아가서 기절하듯 쓰러져 잠들었다. 그 날 밤에, 나는 아주 오랜만에 누군가가 나오는 꿈을 꾸었다. 누구였는지는 기억이 모호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고 일어났을 때 마치 다시 태어난 것처럼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다음 날.

 

“좋은 아침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프로듀서 씨.”

힘차게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침 업무를 준비하던 치히로가 나를 바라보더니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아하하, 안녕하세요. 센카와 씨.”

“저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요?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데.”

“그러게요. 어제 속에 쌓아놓은 걸 다 털어놔서 그런가 기분이 영 상쾌하네요.”

“아하하, 그런가요…….”

“어제 집에는 잘 들어가셨죠?”

“그, 아니요…….”

“……설마, 타카가키 씨 집에서 잤습니까?”

“프, 프로듀서 씨 때문이라구요! 비밀이랍시고 그런 폭탄을 던져놓으니까…….”

“거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리면 될 것을.”

“그, 그래도 관심있는 남자인데…….”

“저 말고 좋은 사람 많으니까, 다른 사람 알아보세요. 인생 망칩니다.”

“아~! 진짜! 프로듀서 씨는 로맨스도 모르나요!”

“뭔가요 그게, 먹는 건가?”

“으으~!”

얼굴을 붉히며 두 손을 부들부들 떨던 치히로는 성큼성큼 급탕실로 향했다.

“아, 저는 커피 주세요! 설탕이랑 크림 뺀 걸로!”

“몰라요!”

“아하하하하.”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를 앞에 두고, 오늘의 일정과 스케줄 보드를 대조하고 있자니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치히로가 내게 물었다.

“프로듀서 씨.”

“네?”

“혹시, 카에데 씨의 프로듀스도, 어제 말씀하신 그런 것이 작용한 건가요?”

나는 서류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돌려 치히로를 바라보았다. 약간은 걱정하는 듯한 그녀의 눈빛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어제 말씀드렸다시피, 지금은 그런 증상은 거의 없어요. 뭐 그래도 누가 인정해주면 기분 좋기야 하지만요. 타카가키 씨에 관한 건, 그냥 제 개인적인 호승(好勝)심이라고밖에 드릴 말씀이 없네요.”

“호승심?”

“네. 헐리우드에서 몸으로, 눈으로, 귀로, 체득하고, 보고, 들은 것들을 직접 한 번 써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타카가키 씨가 이렇게 잘 나가는 건 순전히 그녀의 재능이죠. 제가 아니라 누가 그 사람을 맡더라도, 언젠가는 톱의 자리에 올랐을 겁니다.”

“아아, 그런 거였나요.”

치히로는 그제서야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네, 그런 거지요. 자, 그럼 슬슬 아이들 올 때가 됐으니까, 우리도 시작해 볼까요?”

“그러죠. 칼퇴근을 위하여!”

“위하여. 하하.”

 

 

오후가 되어, 레슨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마유에게 나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지나가듯 가볍게 말했다.

“사쿠마, 할 말이 있으니까 잠시 회의실로 와줘.”

“……네.”

평소보다도 훨씬 더 퀭한 눈을 한 채, 그녀는 나를 슬쩍 바라보곤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회의실에 들어가자, 이미 마유는 회의실에서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달 전, 거침없이 내게 다가오던 그 때와는 다르게 이런 상황에서는 좀처럼 내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앞에 있는 사무용 의자에 다가가, 높이를 최대한 낮추어 앉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혹시 알고 있어?”

“꾸중 아닌가요? 마유는 마유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까요.”

“흠, 평소라면 정답이겠지만, 오늘은 아냐.”

최대한 낮췄지만 여전히 이 쪽의 시선이 높았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천천히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녀의 코앞에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신장 153cm와 앉은키 158cm. 이렇게 앉으면, 그제서야 이 쪽의 눈높이가 약간 더 낮아진다.

“프로듀서 씨……?”

시선을 피하면서 뒤로 물러서는 마유의 두 손을 나는 양 손을 내밀어 조심스레 잡아았다. 그리고 그녀의 두 손을 한 곳으로 모아 쥐었다. 아담한 체구였지만, 의외로 그녀의 손은 조금 차가웠다.

“우선은 네게 사과를 해야겠어. 미안해. 정말로.”

“아, 저, 저기, 이건…….”

“네가 아이돌이 되기로 한 날. 나는 네게 태양이 되어야 한다고 했었지. 팬 모두에게 미소라는 빛을 줄 수 있는 태양이.”

“네. 하지만 마유는, 그렇게 되지 못했어요. 그렇게 될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

“왜냐하면, 마유는 해바라기니까요. 당신이라는 태양을 바라보고 사는, 해바라기니까요…….”

이야기를 하는 마유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녀의 녹색 눈동자가 조금씩 젖어들기 시작했다. 점점 떨기 시작하는 그녀의 손을 나는 손아귀에 조금 더 힘을 주어 꼬옥 잡았다.

“고생했다, 정말로. 나 같은 녀석 따라온다고…….”

“아니에요, 전혀.”

그렇게 말하자, 마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언젠가는, 당신께서 저를 보아 주실 거라 믿었……흑, 흐윽!”

결국 넘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마유는 손을 풀고는 두 손으로 눈물이 흘러넘치는 두 눈을 가렸다. 나는 몸을 일으켜, 무릎으로 일어선 채 오열하는 마유를 끌어안았다.

“미안하다, 정말로. 내 이기심으로 너를 얼마나 괴롭게 했는지…….”

품 속에서 작게 웅크린 채, 끊임없이 울음을 삼키는 마유의 등을 나는 가볍게 토닥였다.

“여긴 회의실이야. 너와 나 말곤 아무도 없어. 울고 싶으면 마음껏 울어.”

마유가 와이셔츠의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나는 계속해서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그래, 괜찮으니까. 마음껏, 다 토해 내렴.”

그것이 방아쇠였는지, 마유는 지금까지 쌓아 온 것을 모조리 토해내듯, 내 품에 안겨 들어본 적 없는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도저히 그 나이대의 감정이라고 보기 힘든, 살풀이에 가까운 통곡이었다. 나는 이것을 전에 한 번 들었던 적이 있다.

그래. 이건 어제 스튜디오에서 들었던 ‘그것’과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우우……구멍 파서 들어가고 싶어요오…….”

“어허, 그거 다른 사람 네타.”

잠시 후, 제 정신이 돌아온 마유는 회의실의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그녀 나름대로 두 팔을 이용해 최대한 얼굴을 덮고 있지만, 그래도 팔 사이로 드러난 눈가는 새빨갛게 퉁퉁 부어 있었다.

축축해진 와이셔츠를 손수건으로 적당히 닦아내며, 나는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사쿠마의 목소리가 이렇게 클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라고, 히죽거리면서 말을 꺼내자 마유는 벌떡 일어나 가슴팍을 툭툭 두드렸다.

“이, 잊어 주세요……!”

“글쎄다, 아마 평생 못 잊을 것 같은데.”

나는 두 손으로 마유의 얼굴을 꽉 붙잡고, 엄지손가락으로 퉁퉁 부어오른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앗......?”

“그래, 아마 평생 못 잊을 거야.“

나는, 너로 인해 나를 지울 수 있었으니까.

“고맙다, 사쿠마. 아니, 마유.”

“……?!”

마치 무엇인가를 잘못 듣기라도 한 듯, 마유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저, 저기, 지금, 방금, 무엇이라고…….”

“지금까지 소홀히 한 것에 대한 사과의 뜻으로 둘만 있을 때는 이렇게 이름으로 부를까 하는데, 싫어?”

마유는 붕붕, 소리가 들릴 정도로 거세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아요, 얼마든지, 그렇게 해 주세요!”

“마유.”

“네.”

“마유.”

“네, 프로듀서 씨.”

“마유.”

“네, 프로듀서 씨!”

꼬리가 달려 있다면 지금쯤 맹렬하게 흔들고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과도하게 눈을 빛내는 마유를 바라보면서, 나는 빙긋 웃으면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우우…….”

“또 울려고?”

“아, 아니에요오…….”

 

 

 

스튜디오 내부는 2일 전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2일 전과는 전혀 다른 마유의 첫 번째 리테이크를 듣고, 보컬 트레이너는 휘둥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렸기에 2일만에 퍼포먼스를 이렇게 끌어올렸는지를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사람 잘 만난 덕이죠, 라고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나는 팔짱을 고쳐 끼고는 녹음실 안쪽을 바라보았다.

“오케이! 이 정도면 됐어요! 다음 번에 바로 레코딩할게요!”

스태프의 신호를 받고, 나는 드링크 병을 챙겨 들고 녹음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녹음실 내부에는 땀으로 샤워를 하고 있는 마유가 막 헤드폰을 벗고 있었다.

“고생했다.”

“후훗, 아니에요.”

나는 드링크를 받아 들고, 빨대로 음료를 빨아먹는 마유의 옆에 서서 녹음실 밖의 분주한 광경을 함께 바라보았다.

“사쿠마, 너는 내게 붉은 운명의 리본을 보았다고 했지.”

“네.”

“그 리본, 아직 이어져 있을까?”

“네, 당연히 이어져 있어요.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그래.”

“저기, 프로듀서 씨.”

“응?”

“하늘의 푸름도 좋지만, 땅의 붉음도 한번씩은 보아 주세요.”

“뭐, 그거야 그 쪽이 어떻게 어필하느냐에 달려 있겠지?”

“후훗,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어요. 두고 봐요, 반드시 당신을 이 리본으로 묶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마유는 왼팔에 묶은 리본의 한쪽 끝을 내 팔에 둘둘 감았다.

태양이 품는 질투는 내 생각보다는 조금 더 귀엽고, 그보다도 좀 더 아담한 것이었다.

 

 

 

 

마마유의 피비린내 나는 얀데레 잔치를 기대하셨나요?

유감! 서로가 병들어 있던 환자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이 편을 쓰면서 솔직히 제일 고생했습니다. 지금까지는 P의 앞면이라면, 이번에는 P의 뒷면을 테마로 했거든요.

전편 후미카의 이야기가 완결에서 애를 먹었다면 이 이야기는 전개에서 애를 먹었습니다. 태양의 질투라는 제목을 정해놓고 시작을 했는데 마유의 시점에서 전개하면 너무 뻔한 스토리가 될 것 같고, 그렇다면 P의 시점으로 전개를 해볼까 했는데 그건 또 그것대로 한 걸음 한 걸음이 진흙탕을 딛는 것 같이 힘드네요. P의 설정을 심화시킬 단계가 됬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물론, 읽어주시는 분들께서 재밌게 읽어주신다면 그걸로 땡이긴 하지만요.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하리라!!라는 느낌이 팍팍 듭니다만, 재미있게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이 편 쓰는 도중에 아이매거진 연성주제를 봐버리는 바람에 스토리가 크게 흔들린 건 안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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