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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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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29, 2016 16:45에 작성됨.

카와즈님이 제공해주신 플롯을 바탕으로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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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럼 수고해."

 

뚝.

 

옥상에 있던 치하야는 하루카와의 통화를 끝내고는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2, 3일에 한 번. 2분에서 3분, 가끔 길어지면 5분. 원래 정 걱정되면 하라는 전화였다. 하지만 무심결에 걸어버린 이후 두 사람의 일상에 추가가 되었다.

 

"후우."

 

불어오는 바람에 긴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치하야는 걸리적거리는 앞머리를 정돈하며 기대고 있던 난간에서 멀어졌다. 탁 트인 공간에서 저기 뒤에 있는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돌아가자.

 

텅텅,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소리. 치하야가 사무소 안 쪽으로 슬쩍 비집고 들어왔을 때는 타카네 혼자만이 머물고 있었다.

 

"바람이라도 쐬러 갔던 건가요."

 

"네."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맞아주는 그녀. 시선이 치하야의 손에 들린 전화기에 향한다.

 

"잠깐, 하루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치하야는 질문이 나오기도 전에 선수를 쳤다. 타카네는 살짝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는 입을 열었다.

 

"꽤 중요한 일이었나보군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솔직히 별 의미 없다고, 치하야는 생각했다. 하루카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둘이서 통화를 하는 게 즐겁다고 말해주었지만. 실은 귀찮은 걸 억지로 받아주기 위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상냥하니까. 그녀는 고개를 사선으로 돌렸다.

 

"흐음, 무슨 대화를 했는지 궁금해지는데요. 괜찮다면 들려주지 않겠습니까."

 

"딱히, 대단한 내용은 아니어서."

 

고작 서로의 안부나 묻고 끝나는 정도. 그 애에게 도움이 될 수나 있긴 한걸까?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혹시나, 만약에. 정말 위험에 처했을 때 전화가 무슨 소용이라도 된단 말인가.

 

치하야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거칠게 쑤셔박았다. 이런 것밖에 할 수 없는 스스로가 조금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치하야."

 

타카네도 알고 있다. 치하야가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그 꿈이 가리키는 것이 하루카이지 않은가하는 의견들 또한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생각한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거기에는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라고.

 

"저에겐.....그것밖에 없다는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치하야는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몇 초간 마주하는 두 사람의 시선. 붉은 빛이 감도는 눈에 비해, 확연히 이지러짐이 보이는 갈색 눈동자.

 

꿈은 현실이 아니다. 언제 일어날 지도 모르는 사고에서 남을 구할 수 있는 건 초인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감당할 수 없는 것까지, 그러지 않아도 되는 것까지 껴안으려하지 마라. 키사라기 치하야, 너는 충분히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

 

여러가지 걱정과 질타와 조언이 머릿 속에서 떠오르는 가운데, 타카네는 다음과 같은 한마디만 입에 올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때가, 있지 않을까요."

 

그러고는 이 이상 어쩔 도리 없이 웃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치하야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다면 좋겠습니다만."

 

단정한 옆 얼굴. 그 안에는 검고 커다란 괴물이 단단히 자리잡고 있다. 불안, 이라는 괴물이. 타카네는 말 없이 옆에 나란히 서서 같은 곳을 바라봤다.

 

.....

 

그로부터 또 며칠이 쉼없이 흘러갔다.

 

"후우."

 

덜컹거리는 객실 안. 치하야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그녀는, 지역 축제가 벌어지는 장소로 향하는 중. 평일 낮이라서 그런걸까? 아니면 그 쪽이 그다지 왕래가 빈번하지 않는 곳이라서 그런 걸까. 사람이 별로 없는 걸 넘어서, 아예 혼자만이 존재하고 있다.

 

오늘따라 정해진 시간보다 한 10분은 늦게 왔네. 전차가, 이렇게까지 늦는 일이 있던가? 아무 빈 자리에 앉은 치하야는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앞으로 1시간 정도면 도착. 지정된 때까지는 늦지 않는다.

 

그 사이 치하야는 메일 한 통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았다.

 

- 정말 미안! 그 쪽으로 먼저 이동하고 있어줘!

 

화면에 표시된 문자만 봤을 뿐인데, 벌써 머릿 속에는 두 손을 모으고 있는 프로듀서의 모습이 그려졌다. 원래라면 하루카와 같이 레슨이 끝나는대로 그 사람이 데리고 갈 예정이었다.

 

급하게 일정 변경이 생겨 치하야 먼저 도착해있기로 했지만.

 

덜커덩, 덜커덩

 

평소보다 미묘하게 더욱 커진 듯한 차 내의 진동. 치하야는 무릎 위에 올려둔 가방을 꼭 끌어앉은 체 고개를 연신 꾸벅거렸다. 흔들, 흔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아예 고개가 저 아래로 푹 꺾였다. 바닥이 가깝게, 그리고 가물가물하게 보인다.

 

알게 모르게 쌓인 피로가 상당했다. 갈수록 얕아지는 잠, 짧아지는 수면 시간. 그 때의 직설적인 악몽 이후로는 다시 아무 것도 없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치하야는 편히 잠들 수 없었다. 목에 떼어낼 수 없는 밧줄이 걸려있는 것만 같았기에. 그래서 어제는 결국, 한숨도 못 잤다. 지금은 느슨하지만 언제 콱 조일지도 알 수 없다. 반 음 어긋난 일상은 원래대로 돌아갈 줄을 몰랐다.

 

이번에도 아무 일 없이 넘어갈 수 있을까.

 

그녀의 의식이 어두운 저 편으로 가라앉기 직전, 거품이 살짝 일었다.

 

.....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는 레슨장이었다. 치하야는 흠칫 몸을 떨며 걸음을 몇 발자국 떼었다. 그녀는 몽롱한 머리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 그래. 아까 그건 꿈이었구나.

 

라-♪

 

눈에 확 띄는 피아노. 포근한 인상의 트레이너씨가 건반을 하나 하나 누르면 하루카가 그에 맞춰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얼마나 피곤했길래 레슨 중에, 그것도 선 체로 잠이 들었단 말인가.

 

치하야는 얼굴을 붉혔다. 혹시 깜빡 졸았던게 들키지는 않았을까. 다행히 눈치채지는 못한 듯 싶다.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음 번 타이밍부터 착실하게 소리를 냈다.

 

그렇게 간단한 목 풀기가 끝난 뒤. 본격적인 노래 연습에 들어갔다. 각자 배부받은 악보를 들고, 피아노뿐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러보는 순간.

 

묘한 느낌이 들었다.

 

'나아가자- 매일♪ 꿈을 향해- 막연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전에 많이 불렀긴 해도, 꽤 긴 시간이 흐른 뒤 다시 해보는 건데. 어째서. 데자뷰와는 좀 다르다. 그래, 이건 몇 시간 전에 수업을 듣고 집에 돌아와 내용을 복습하는 것만 같다.

 

왜 그럴까. 단순한 착각?

 

덜컹.

 

이 장소와는 전혀 연관없는 소리가 멀리서 아련하게 들려오나 했더니, 레슨실 전체가 울렁거렸다. 설마, 지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치하야는 황급히 두 사람 쪽을 바라봤다.

 

'음, 역시 오랜만에 불러봐서 그런가? 여기가 또 말썽이라는 느낌이네요.'

 

'괜찮아. 한 번 감 잡은 건 금방 복구할 수 있으니까.'

 

'네. 자전거 타는 것처럼 말이죠?'

 

방금 그건 신경도 쓰지 않고 재잘거리고 있다. '전에 들었던' 대사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기억 속에 남아있던 것과 똑같은 몸짓이 펼쳐진다. 그렇구나.

 

치하야는 지금이 꿈이라는 걸 깨달았다.

 

무시무시한 악몽은 단순한 과거의 재현으로 끝을 맺었다.

 

후우, 긴장이 쭉 풀림과 함께 한숨이 흘러나왔다. 벼랑 끝에 내몰린 끝에 저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았는데, 겨우 멈췄다. 기분 좋은 탈력감이 전신을 감돌았다.

 

덜크럭, 덜컹.

 

".....음?"

 

또 한 번 들리는 기묘한 소리. 기억 속의 풍경은 녹아내리듯 자취를 감추었다. 잠에서 깨어난 치하야는 아직 두 눈은 감은 체, 철봉에 기댔던 머리를 살짝 들었다. 여긴, 어디.

 

덜커덩.

 

아, 맞아. 여긴 전차 안이다. 슬며시 눈을 뜨자 조금 탁한 빛깔의 하늘이 창가를 통해 들어왔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앉았던 자리는 이보다 조금 왼쪽이었을텐데, 어느 순간 오른쪽 구석으로 몰려있었다.

 

덜컥!

 

객실이 심할 정도로 뒤흔들린다.

 

"읏!?"

 

치하야가 깜짝 놀라 주변의 것들을 꽉 붙잡으며 좌우를 살폈다. 기이잉, 위이잉! 불길한 소리가 텅 빈 객실 안을 달구고 있다.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고 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전차가 빠르게, 달려나가고 있다.

 

안전벨트 없이 탄 롤러코스터가 서서히 가속하고 있는 듯한, 그런 감각. 치하야의 등줄기에 굵은 땀이 뚝뚝 흘러나왔다. 뭐야, 이 상황은!? 지나칠 정도로 빠른 속도에 사고가 따라가질 못한다.

 

덜컥, 덜커덕! 카가각!

 

거칠게 쇠 긁히는 소리와 함께 천장에 매달려있는 손잡이들이 마구 뒤흔들렸다.

 

"꺄악!"

 

우당탕!

 

치하야는 그만 바닥에 크게 넘어져 굴렀다. 지금, 이건 꿈? 아니면 현실? 바닥에 납짝 엎드려 있는 그녀는 팔꿈치를 타고 오르는 찡한 아픔을 느꼈다. 후자임이 명백하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위험하다. 나가야 한다. 이 곳을, 당장!

 

치하야는 바들거리며 일어섰다 넘어지기를 반복하다, 겨우 설치된 철봉을 붙잡았다. 객실이 멀미가 날 정도로 요동치고 있다. 바깥에 보이는 건 흐릿하게 깔린 강변. 멈춰설 곳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지금 이 속도로는!

 

키기기긱!

 

또 한 번 금속 소리가 대기 중을 할퀴고 지나갔다. 안 돼, 무리야, 틀렸어! 기우뚱, 객실이 오른쪽으로 쏠린다.

 

"으긋, 큭!"

 

꽉 잡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힘없이 풀려난 손가락이 허공을 헤집었다. 전신이 달리는, 아주 짧고 기이한 부유감. 그 뒤로는.....

 

쾅!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었던 아주 거대한 충격이 치하야의 전신을 콱 찍어눌렀다.

 

.....

 

싸늘한 바람이 휑하니 불었다. 치하야는 한 점 흔들림 없이 서 있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마모되어가고 있는 네모난 돌덩어리들. 일정한 간격마다 존재하고 있다. 고요한 죽음이 내려 앉아있는 이 곳. 모든 것의 시작이 되는 장소.

 

치하야는 얕은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본다. 전처럼 짙은 안개가 깔려있었다. 뭐라도 해야만 했다. 그녀는 희뿌연 안개에 녹아들듯이, 한 걸음 두 걸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억 속의 그 묘지로.

 

'키사라기 유우의 묘.'

 

아. 치하야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입이 저절로 벌려졌다. 동생의 묘에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익숙한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목표로 한 곳의 바로 옆쪽에. 어깨에 살짝 닿는 길이의 밤색 머리카락. 양 옆에 달린 리본 한 쌍이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에 사락사락 흔들린다.

 

소동물처럼 움츠리고 있는 그 사람.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앞에 놓인 제단에 어떤 물건을 내려놓는 것이다. 치하야는 조심스럽게 한 발 내딛었다.

 

하루카.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는 위태롭게 일어섰다. 눈 앞에 보이는 축 처진 어깨. 치하야는 한 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 때 하루카가 완전히 뒤를 돌아봤다. 눈물은 진작부터 말라버리고 만, 텅 빈 초록눈. 어디를 응시하고 있는 건지도 알 수 없다.

 

하루카!

 

치하야는 크게 소리치며 두 손을 뻗었다.

 

어?

 

두 손은 눈 앞에 있는 사람을 붙잡지 못했다. 몇 번이나 이름이 불려도 응답 없던 하루카는 치하야에게 비척비척 걸어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가 지나갈 자리에 치하야가 서 있던 것이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것도 느끼지 않는다는 듯, 너무나 자연스럽게 가로막고 있는 존재를 통과했다. 치하야는 방금 전 일어난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이럴, 수가. 하루카!

 

정신을 차렸을 때는 혼자밖에 남지 않았다. 치하야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자기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점은 전혀 없었다.

 

어떻게 된거야, 나.

 

눈동자가 불안 속에서 바쁘게 움직이다, 꽃다발에 꽂혔다. 방금 전에 하루카가 두고간 것. 하얗고, 노란 꽃 여러 송이가 보라색 포장지에 한데 모여 감싸져있다. 처음에 봤던 것과 똑같은 모양.

 

치하야는 아주 느릿하게, 비석을 향해 고개를 올렸다.

 

'키사라기 치하야의 묘'

 

모든 것이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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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뜬 플포마스 플레이 영상을 보면서 제 심장도 멈춰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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