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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즈 담당 프로듀서는 죽을 만큼 후회했다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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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27, 2016 00:43에 작성됨.

원작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A-1 Pictures

7월 21일

오랜만에 등교했지만 학교생활은 전보다 더 불편해졌다.

C5 발표가 화제가 된 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쓸데없이 달라붙거나 친한 척을 하는 아이들이 있을 거로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은 약간 빗나갔다. 수업 시간에 교사가 쓸데없이 지목하는 건 예상 내. 하지만 수업 중이든 쉬는 시간이든 간접적인 따가운 시선만 쏟아지는 건 예상외.

안즈의 학우……. 아니, 친구라는 표현엔 맞지 않지만 같은 반 아이들은 안즈에게 말을 걸거나 활동을 같이하자고 권유하지 않았다. 그 대신 시선으로만 안즈를 주목했다.

학교에서 아웃사이더 포지션에 있던 안즈에게 이제 와서 말을 걸 아이들은 없었다. 자업자득이다. 어차피 안즈 쪽에서 거절했으니까. 말을 걸지도 않으면서 주변을 계속 얼쩡거리거나 안즈를 보면서 자기들끼리 쑥덕대는 건 묘하게 짜증이 났지만.

이점에선 C5 결성 전과 똑같지만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안즈는 짜증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여기서 튀게 행동했다간 짓궂은 아이들의 먹잇감이 될 테니까.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이다.
이래서 학교에 오기 싫었는데…….

안즈는 얼마 전 프로듀서와 학교에 관해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프로듀서는 왜 자꾸 안즈 보고 학교에 가라고 해?”
“그야 다들 고등학교까진 가니까.”
“겨우 그런 이유로? 남들 다 하니까 해야 하는 게 이유면 어째 인정하기 싫은데…….”
“맞아, 시시한 이유지. 하지만 학교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경험이 있거든. 난 그걸 안즈도 얻었으면 해. 학교는 마굴이야. 미숙한 선의도 있지만, 그걸 뛰어넘는 덜 다듬어진 악의가 넘쳐나는 곳이지. 학교는 끈적끈적한 진흙탕이야. 발을 담그면 발이 바로 진흙 색으로 변하거든. 몸도 무거워져.”
프로듀서는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진흙탕에서 진주를 하나 건질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학교생활에 가치가 있어.”
“진주? 어떤 진주?”
“넌 이미 그걸 찾았잖아? 그 진주 덕분에 도움도 받았지. 너도 그렇고, 나도 말이야.”
프로듀서는 짓궂게 웃었다. 안즈는 프로듀서의 말을 이해하곤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긁적였다.

점심시간.
안즈는 미리 사 온 빵을 들고 교실을 나섰다. 지나가는 학생들이 안즈를 힐끔 쳐다본다. 안즈는 거북해서 걸음을 빨리 옮겼다. 시선의 화살을 요리조리 피해서 움직인다. 문득, 메탈 기어 솔리드에서 감시병을 피해 잠입하는 게 떠올랐다. 게임을 하는 기분이 들고 나니까 거북함이 어느 정도 가셨다.

“안즈 쨩!”
안즈가 계단에서 옥상으로 향하려던 차에 누가 안즈를 불러 세웠다. 귀에 익은 목소리가 안즈를 친근하게 불렀다. 아카네였다. 안즈는 주변을 둘러보곤 아카네에게 조곤조곤 말했다.

“스네이크는 지금 바빠.”
“예? 뱀이요?”
“아니, 그냥 게임 농담이었어.”
역시 이런 오타쿠 개그는 일반인한테는 안 통하는구나. 프로듀서였으면 받아줬을 텐데…….

안즈는 조금 아쉬워하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안즈는 어깨를 으쓱이기 직전 아카네가 들고 있는 도시락통을 보았다. 아카네도 안즈처럼 옥상에서 밥을 먹으려고 이동하는 중인가? 아카네가 평소처럼 기운차게 안즈에게 말했다.

“같이 밥 먹어요! 같이 먹으려고 했는데 교실에 안 보여서 찾아다녔어요!”
아카네의 목적은 처음부터 안즈였나. 안즈는 오늘 혼자 먹을 예정이었지만, 마침 아카네에게 볼일이 있었기에 곧바로 승낙했다.

오늘 날씨는 정말 좋았다. 너무 서늘하지도, 덥지도 않은 좋은 기온. 몇 시간 동안 음식을 놔둬도 상하지 않을 정도로, 야외에서 도시락을 먹기에 정말 좋은 날이었다. 날씨가 좋아 밖에서 밥을 먹고 싶다고 생각한 아이들이 많았는지 옥상은 평소보다 사람이 더 많았다.

안즈와 아카네는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좋은 자리는 이미 다른 아이들이 차지했고 안즈가 사람이 많은 곳에서 먹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애초에 사람을 피해서 옥상으로 왔으니까.

옥상에 괜히 왔나……. 안즈는 후회하다가 안즈에게 향하는 시선이 거의 없는 걸 보고 후회를 거두었다. 옥상에 모인 아이들은 제각기 무리 지어 하하호호 떠드느라 정신이 없다.

안즈가 조용히만 있으면 주목받지 않겠지.
“와아! 정말 날씨 좋네요! 운동하고 싶어져요!”
옆에서 아카네가 우렁찬 목소리로 떠들지만 않으면.

시선이 이쪽으로 몰린다. 안즈는 고개를 돌렸다. 안즈의 얼굴을 못 봤는지 다른 아이들이 다시 자기들 이야기에 집중한다. 안즈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비닐 봉투를 뒤적였다. 오늘 점심 메뉴는 멜론 빵과 바나나 우유.

아카네가 도시락통을 연다. 방울토마토, 햄버그, 양배추 샐러드 등 영양소를 고려한 식단이 도시락통에 꽉 차 있었다.

안즈가 멜론 빵을 베어 물고 아카네는 젓가락질한다. 둘은 15분 동안 음식을 씹는 것에만 집중했다. 안즈는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아카네는 먹는 것도 힘차게 우걱우걱. 속도는 달랐지만 양의 차이 때문인지 둘은 비슷한 시간에 식사를 마쳤다.

“잘 먹었습니다!”
아카네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배를 두드렸다. 안즈는 멜론 빵 봉지를 구겨서 비닐봉지에 투하. 그리곤 주머니에서 입가심용 알사탕 두 개를 꺼냈다. 안즈는 하나를 아카네에게 던졌다. 예고 없이 던졌지만 아카네는 자기 앞으로 날아온 사탕을 정확하게 받았다.

“주시는 건가요? 감사히 먹을게요!”
안즈와 아카네는 알사탕을 입에 던졌다. 아카네는 사탕을 입에 넣자마자 깨물어 삼켰지만 안즈는 사탕을 혀로 굴렸다. 입가심용이니까.

“맛있는 사탕도 먹고, 오늘 점심은 운이 좋네요!”
아카네가 여름날의 햇살 같은 눈부신 미소를 지었다. 안즈는 말없이 아카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프로듀서가 말한 학교생활의 진주. 그건 다름 아닌 친구를 가리키는 거였다. 안즈가 이해한 바로는 그렇다.

친구 같은 건……. 쓸모가 하나도 없다고,
안즈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여태까지 17년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현실에서 친구를 사귄 적이 그다지 없어서 그렇다. 그래서 친구가 쓸모 있는지, 없는지 안즈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 물론, 친구라는 개념은 익히 알고 있다. 그게 어떤 관계를 의미하는지, 있으면 뭐가 좋은지, 있으면 뭐가 나쁜지 지식으로 알고 있다.

당연하다. 사회의 일원인 이상, 인간관계의 개념은 자연스레 익혀진다. 그 관계를 자기가 맺든 안 맺든 상관없이. 그야 상식이니까.

그리고 안즈도 현실에서 눈을 돌리면 친구 카테고리에 넣을 만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인터넷상. 블로그, 트위터, 애니메이션 커뮤니티 등등……. 실제로 얼굴을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볼 생각은 없지만 서로 안부를 물으며 공통 화제를 떠들 만한 사람들은 있다.

단, 어디까지나 현실을 벗어난 전뇌공간에서의 이야기다. 현실의 안즈는 친구를 사귄 적이 그다지 없다.

정확히는 사귀지 않은 게 아니라 사귈 수 없었다.

안즈는 지금 혼자 산다. 17살이 혼자 살면서 청소 등의 집안일은 외부인을 고용해서 처리한다. 보통 일이 아니다. 17살이 혼자 사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17살이 자기 명의의 맨션을 소유하며 외부인을 고용해 집안일을 처리하는 점이다.

이런 특이점이 성립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바로 돈이다.

안즈의 본가, 후타바 가는 유복하다. 그냥 유복하단 말로는 안즈네 집안의 부가 설명되지 않을 정도로 부유하고 윤택하고 유족하다. 그리고 이런 집안에서 태어난 자는 으레 그러듯이 안즈 또한 집안 이름의 무게에 짓눌려 살았다.

개인적인 흥미는 말살되고 인간관계는 가지치기 당했다. 안즈는 일정 소득소비 수준 아래 사람들에게 손을 뻗을 수 없게 철저하게 관리되며 살아왔다. 물론 몇 번은 집안의 눈을 피해 인간관계를 구축할 뻔한 적이 있었다.

안즈가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전혀 없다고 단언할 수 없게 하는, 몇 안 되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집안의 철퇴를 맞아 끝이 좋게 나질 않았다. 그래서 횟수도 몇 안 되는데 기간도 짧다.

집안에선 고독을 강요하진 않았다. 대신 집안에서 주선한, 다른 부유계층 아이들과 말을 섞길 강요했다. 안즈는 그게 싫었다. 안즈는 영리한 아이. 억지로 구축된 인간관계의 말로가 어떤지, 그렇게 섞인 인간들의 속내가 어떤지 가늠할 수 있는 아이였다.

그게 안즈의 축복이자 불행이었다. 안즈는 현실에서 제대로 된 친구를 만들 수 없었고, 이제는 만들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아카네가 느닷없이 안즈의 친구가 되었다.

“어라? 안즈 쨩? 왜요?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요?”
아카네는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았다. 소스나 밥풀이 묻었다고 생각하나 보다. 안즈는 아카네의 생각을 부정했다.

“그냥, 조금 인지 부조화가 생겨서.”
친구 맞구나. 친구 맞아. 안즈는 사탕을 아작아작 씹어 먹었다. 입가심을 끝났으니까.

“저기 말이야, 오다이바 페스 알아?”
“물론 알죠! 유명하니까요! 거기 나가신다고 들었어요!”
아카네가 콧김을 낼 기세로 흥분한다.
심상치 않은 기세다.

“가고 싶어?”
“아, 그게 표를 구하지 못해서요…….”
조금 전의 기세가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꺾였다.
아카네가 시무룩해 한다. 안즈에겐 잘된 일이지만.
안즈는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그리곤 그걸 아카네에게 내밀었다.

“어? 이건…….”
“오다이바 페스 표야. 친구 주라고 받은 표가 있거든. 줄게.”
지금 이 시점에 친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아카네의 얼굴이다. 아니, 아카네밖에 없다.
이런 낯간지러운 사실은 입에 담을 수 없다. 안즈는 최대한 평정을 가장하여 아카네에게 표를 건넸다.

아카네는 받은 표와 안즈를 멍하니 번갈아 보았다. 잠깐 굳었다가, 자기 볼을 세게 꼬집고……. 그 자리에서 맹렬하게 폴짝 뛰었다.

“오오오오오! 이얏호!!”
“야야, 진정해!”
“고마워요! 안즈 쨩! 저, 안즈 쨩이랑 친구가 된 걸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아카네가 갑자기 안즈를 포옹한다.

“수, 숨이……!”
안즈가 불평을 채 잇기도 전에 아카네의 팔이 안즈의 겨드랑이를 잡았다. 안즈의 시야가 순식간에 하늘로 솟았다. 아카네가 안즈를 번쩍 들어 올렸다.
“내, 내려줘! 내려줘!”
“안즈 쨩! 만세! 만세! 만세!”
안즈는 9번을 날고 나서야 지상에 내려왔다.

7월 24일

C5는 연예계에서 주목을 톡톡히 받았다.

전국 방송에서 결성을 발표. 여기까진 그렇다 치더라도 곧바로 오다이바 페스 참가까지 발표. 화제가 안 될 수가 없는 구성이다.

연예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신문과 잡지에 346 프로덕션이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아이돌 부문을 다시 살리려고 발족한 프로젝트가 아니냐는 칼럼까지 실을 정도로 C5에 관한 관심은 뜨거웠다.

우선 주목도는 프로듀서의 성에 찬 모양이다. 프로듀서는 제1단계를 무사히 달성했다면서 멤버들에게 제법 풀어진 얼굴로 보고했다. 그리고 이제부터 제2단계. 홍보다.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팬을 끌어들이기엔 아직 멀었으니까. 멤버들 개인의 팬들은 둘째 치고 긁어모을 수 있는 팬들은 최대한 긁어모으는 게 오다이바 페스의 필승 전략이다.

프로듀서는 그런 홍보의 일환으로 5일간 수도권의 여러 무대를 돌아다니는 미니 라이브 기획을 세웠다. 라이브 일정은 인터넷으로 고지, 그리고 라이브는 인터넷으로 생중계. 팬들과 C5에 관심 있는 대중들에겐 흥미로운 기획이다.

5일 동안 픽업 차량으로 돌아다니면서 공연, 그리고 각 지역 호텔에서 숙박. 하루에 한 군데에서만 공연하는 게 아니라 여러 군데를 돌아야 하므로 빠듯하고 피곤한 스케줄이지만 시간이 촉박하기에 이만큼 공격적으로 나가야 한다. 프로듀서는 멤버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오늘은 그 첫날.

첫날 스케줄은 오후 5시 종료. 오다이바 페스를 앞둔 C5가 보기엔 이른 시간이지만
“여러분은 미성년자니까, 노동 시간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지켜야죠.”
프로듀서가 이런 이유를 들어서 다들 이해하고 넘어갔다.

“나나 씨는 괜찮겠지만요.”
“그, 그게 무, 무슨 말씀이시죠? 프로듀서 씨도 참!”
다들 이해하고 넘어갔다.

오늘 숙소는 방 구성을 안즈와 미쿠 2명과, 우즈키, 미호, 나나 3명, 그리고 프로듀서 혼자 독실로 잡았다.

씻고 갈아입고 몸의 피로를 풀다 보니 7시. 식사는 7시 30분 예정이다. 안즈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자기가 만든 MMD 안무 영상을 잠깐 보고 플레이어를 종료.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로 다른 앱을 기동했다. 유튜브 앱.

안즈는 핸드폰 너머로 미쿠를 슬쩍 흘겨보았다. 미쿠는 머리카락을 말리는 중. 미쿠는 거울을 보면서 머리카락 손질에 열중하고 있었다. 안즈는 유튜브에서 미쿠의 이름을 검색했다.

미쿠의 라이브 영상 클립이 목록에 좌르륵 떠올랐다. C.M.Y.K. 시절 영상도 있었고, 얼마 전에 찍은 영상도 올라와 있었다.

안즈는 동영상 정렬을 최근 순서로 맞추었다. 그리고 그중 섬네일이 눈에 띄는 영상을 하나 짚어 재생했다.

-안녕! 냥! 미쿠냥!

미쿠가 화면 속에서 관객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관객들도 팬 라이트를 흔들면서 대답. 이윽고 노래가 시작되고 관객들이 열광한다. 관객들이 미쿠의 손짓, 악센트 하나하나에 반응한다.

미쿠의 노래와 관객의 반응이 조화를 이룬다. 라이브가 물 흐르듯이 순조롭고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마치 상호작용을 제대로 살린 게임을 보는 것 같다.

안즈가 보기엔 이건 이미 기예의 영역이다. 미쿠가 달인으로 보인다. 무대 경험이 없었으면 그냥 멋진 무대라고만 여겼겠지만 안즈가 무대에 선 경험이 안즈에게 판단 근거를 전해준다.

미쿠가 저 경지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무대를 거쳤을지, 얼마나 많이 연습했을지, 재능을 얼마나 갈고닦았을지 수많은 추측을 할 수 있게.

테두리 밖에서 테두리 안을 관찰하는 것과, 테두리 안에서 테두리 안을 관찰하는 건 많은 차이가 난다. 직접 겪었느냐 겪지 않았느냐의 차이. 아이돌 업계뿐 아니라 수많은 업계에도 통하는 진리.

안즈가 저 경지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저런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확실한 건, 지금의 안즈는 저 경지에 오르지 않았고, 언제 오를 수 있을지 모르는 점.

초조해진다. 지금 상태로 안즈가 과연 유이에게 이길 수 있을까? 오다이바 페스에 참가하기로 정했을 때는 승산이 있다고 여겼다. 5명이 덤비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드시 이기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안즈가 현실을 깨달을수록 마음속에 불안감이 번졌다.
아니, 승산 같은 건 처음부터 불안하다고 생각했다. 그저 오기로, 안즈 답지 않은 열기에 휘둘려 결정했다.

안즈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이미 엎지른 물이다. 이제 와서 참가하지 않겠다고 할 수도 없다. 유닛 결성은 이미 발표되었고, 유닛으로서 무대에도 올랐다. 이미 돌아가기엔 너무 먼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돌아가고 싶지 않다. 여기까지 온 이상 오기로라도 헤쳐나가야 하기에. 안즈는 지금 자기가 처한 현실을 이해해서 불안도 느꼈지만, 그 이상으로 지금 상황과 앞으로 예정된 것들을 없던 것으로 만들 수 없다는 걸 더욱 잘 이해했다.
 
퇴로는 없다. 선택지는 이제 하나고, 그 선택지마저 강제 자동 선택이다.

불안하다고 해서 주저앉을 순 없다. 주저앉고 싶지도 않다. 아무 생각 없이 침대에 드러누워서 사탕이나 빨고 싶지만 여유는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 누릴 생각이다.

안즈는 검색창에 유이를 검색했다. 미쿠 때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영상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최신순으로 맞추고…….

“윽…….”
안즈는 질색하면서 리스트를 내렸다. 안즈와 유이가 함께 한 게릴라 콘서트 무대 영상이 보여서…….

안즈는 리스트를 내리다 적당한 영상을 눌렀다. 영상이 재생된다. 관객 수, 무대 규모 모두 대규모의 라이브 현장. 그 한가운데에서 유이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화면 속 유이의 시선이 시청자인 안즈를 자신만만하게 올려다보았다.

한 호흡 머금고, 유이가 노래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에 맞추어 관객들이 뽑아내는 열광적인 응원. 유이는 무대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관객들의 호응을 적극적으로 끌어올렸다. 유이의 지휘에 따라 관객들의 반응이 바뀐다.

유이도 미쿠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관객들의 반응을 조율하는 것이 보였다.
유이가 손을 틀자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팔을 휘두르면 팬 라이트의 불빛 세례가 쏟아진다.

안즈는 화면을 보며 유이처럼 손을 틀고, 팔을 휘둘렀다.
“이렇게……. 인가?”
따라해 봤지만 느낌이 다르다.
이게 아니다…….
안즈는 영상을 끝까지 보고 앱을 닫았다.

이어폰을 빼고 핸드폰을 적당히 던졌다. 시트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는 걸 보니 무사히 침대에 낙하했나 보다. 안즈는 토끼 인형을 얼굴에 묻고 익숙한 냄새를 빨아들였다. 마음에 평온함이 감돌았다.

“안즈 쨩, 뭐해? 냥.”
머리를 다 말린 미쿠가 안즈의 침대에 앉았다. 안즈는 여전히 인형에 얼굴을 묻은 채로 말했다.
“답답해서.”
“뭐가?”
“그냥.”
“리더한테 털어놔 봐. 전에 말했잖아? 냐.”
안즈는 인형을 내리고 미쿠를 흘끔 쳐다보았다. 영상을 보고 난 직후라서 그런지 미쿠의 온몸에서 노련미가 흘러나와 보인다.

“저기 말이야, 그럼 뭐 좀 물어봐도 돼?”
“뭔데? 냐.”
“관객들의 호응을 끌어올리는 방법……이라고 할까, 그…….”
안즈는 미쿠와 유이의 무대에서 느낀 걸 미쿠에게 털어놓았다. 미쿠는 미간을 찌푸리고 턱에 주름을 잡았다. 미쿠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는 티가 팍팍 날 정도로 끙끙거렸다. 몇 분 동안의 시간이 지나고 미쿠의 얼굴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이건 계속 무대에 서다 보니 된 거라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냥.”
“뭐, 그럴 것 같았어.”
예상대로 경험과 연륜 문제.

“무대에 많이 서면 그게 보여. 무대의 흐름이. 냥. 음악의 선율과 관객의 시선, 그리고 고동, 리듬, 박자 모든 게 다 보이게 돼. 냐. 피부로도 느껴지고, 눈으로도 보이고, 귀에도 들려.”
“어느 날 갑자기 각성하는 계열이야? 이능 배틀물 주인공처럼?”
“아니, 그런 건 아니야. 냥. 서서히 깨우쳐간다는 게 정확하겠네. 냐.”
서서히 깨우쳐간다……. 역시 경험인가.
미쿠는 라이브에 숙련되면 보인다고 하는 게 타당하겠다고 의견을 전했다.

“그건 그렇고 안즈 쨩은 눈썰미가 좋네. 아이돌 경험도 아직 얼마 없는데 이걸 눈치챌 줄은 몰랐어. 냐. 혹시 예전에 이야기 들은 거 있어?”
“그냥 보이던데? 보통은 그런 거 아니야?”
“관객의 호응이 좋다, 별로다. 이런 걸 떠나서 무대의 흐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는 건 그렇게 간단히 깨달을 수 있는 게 아니야. 이걸 얼마 안 되는 경험으로 깨우친 건 정말 대단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는걸. 냥.”
역시 P쨩이 눈여겨본 만큼 재능이 있네. 미쿠는 안즈에게 들리지 않게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튼 너무 초조해하지 마. 전에 말했듯이 사람마다 성장하는 속도가 다르니까. 냥.”
미쿠가 안즈를 격려한다. 미쿠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솔로가 아닌 유닛이니까. 유닛은 서로의 장점을 부각하고, 단점을 커버하면서 상쇄할 수 있어. 냥. 지금 안즈 쨩에게 중요한 건 유닛과 조화를 이루는 거야. 냥. 그리고 이건 지금까지 해온 걸 보면 순조롭다고 볼 수 있어. 냐.”
미쿠가 정론을 말한다. 아직 오르지 못하는 경지를 우러러보고 어슬렁거려봤자 얻을 건 아무것도 없다. 안즈도 이해한다.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다른 건 몰라도 오다이바 페스가 끝나면 안즈 쨩이 크게 성장할 것 같아. 냥. 그러니까 너무 자기를 몰아세우진 마.”
미쿠는 쓴웃음을 지었다. 쓴웃음이었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려고 짓는 쓴웃음이다. 이런 배려에서도 미쿠의 관록이 빛난다. 안즈의 눈에 미쿠가 정말 어엿하고 어른스러워 보였다. 안즈는 미쿠의 어두운 부분을 알지만 지금 이 순간은 미쿠가 그저 빛나 보일 뿐이었다.

미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저녁 먹을 시간이 됐다.
“아아, 배고프다. 냥. 뱃속이 텅 비어서 두드리면 소리가 날 것 같아.”
“오늘 저녁은 고기랑 생선 중 하나를 고르는 거래.”
“고기 먹어야지! 냥!”
“그럼 안즈는 생선을 먹을까. 저기, 안즈랑 한입씩 바꿔먹지 않을래?”
“으겍! 그, 그건 안 돼!”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야. 냥.”
왜 그럴까? 지금은 미쿠가 조금 어린애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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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번 화 후기에 넣어야 했는데 깜빡 잊고 안 넣은 게 있어서 이번 화 후기에 넣네요.

(이미지가 안 보이면 이걸 클릭해주세요. 이미지1, 이미지2)

이 글에서 C5 배치는 이렇습니다.
데레스테 원래 배치하곤 다르죠.
진행상 이렇게 했습니다. 양해해주시길...
다음 화는 30일에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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