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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혹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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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24, 2016 19:55에 작성됨.

바람을 가르는 거친 소리와 함께, 검은 허공을 새하얀 빛이 가른다.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던 검은 안개가, 그 새하얀 빛에 쫙, 옆으로 갈라졌다.


「키에에에에엑!!!」


귓가를 울리는 비명소리에, 흑발의 소녀가 인상을 찌푸린다. 검은 안개는 뭉클, 하며 뭉치더니,  금빛을 손에 든 소녀를 피해서 휙, 화살처럼 쏘아져나갔다. 그 검은 안개가 쏘아져 나간 방향을 힐끗 돌아본 소녀는, 별달리 놀라지도 않은 채 그 곳을 바라보았다.

 

"束!!"

 

그 순간, 소녀의 목소리가 크게 울림과 동시에 숲에서 푸른 빛줄기가 뻗어나왔다. 그 빛줄기에 검은 안개는 당황하며 멈칫했지만, 어떻게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빛줄기가 검은 안개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푸른 장발의 소녀가 나무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흑발의 소녀가 이 쪽으로 오고 있는 것까지 확인한 소녀는,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정말로 잡기 힘든 녀석이네. 적당히 돌아가면 좋을텐데... 동물의 영이라 그런가, 엄청 재빠르기만 하고."
"끝난걸까?"
"아마도..."
"치하야쨩!"


그 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소녀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소녀의 눈 앞을 붉은 옷자락이 가렸다. 동시에 공중으로 붕, 몸이 떠오르는 듯한 느낌에 자신도 모르게 그 옷자락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귓가에 처절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울음소리가 울렸다.


「끼아아아아악!!!」


그 엄청난 울음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귀를 틀어막는다. 그 사이 소녀는 무사히 땅에 내려왔다. 그리고 자신을 놓아주는 옷자락에, 시선을 들어 그 옷의 주인을 본 소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고마워, 하루카."
"에헤헤~"


그 말에, 싱글싱글 웃는 여성. 그 여성에게서 시선을 돌리자, 자신의 동료가 던진 백색의 작은 검에 사그라져가는 검은 안개가 보였다. 기습을 했던 건 저 녀석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소녀는 손을 내저었다.


"이걸로 진짜 끝났겠지. 돌아갈까?"

 

 

 

 

 

 

 

 

 

"감사합니다, 주술사님!"
"아니에요.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니까요..."


마을 뒤쪽의 숲에서 나타나는 영들을 처리해준 일에 몰려와선 감사를 표하는 마을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는 치하야를 힐끗 본 하루카는 시선을 반대쪽으로 돌렸다.
그 날 이후, 벌써 이들과 같이 여행한지 두달 남짓 되었다. 그리고 슬슬 이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도 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일하는 방식과 개인사라면 반대다.
치하야는 하루카의 과거를 전부 알고 있다. 아니, '전부'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략적인 이야기는 알고 있다. 그 날 치하야는 자신의 기억을 읽어냈으니까. 하지만 하루카는 치하야의 감정까지는 동화되었더라도 기억은 읽지 못했고, 그리고 치하야는 어째서 주술사가 되었는지, 어떤 일로 마코토와 만났는지, 그런 사소한 과거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건 마코토도 마찬가지었다.


그녀는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데, 자신은 모른다니 조금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며 하루카는 퉁명스런 시선으로 다시 치하야를 바라보았다. 치하야는 마을 사람들이 붙잡는 것을 거절하느라 곤란해하고 있었다.
천 년을 지상에서 머문 인간의 영인 하루카는, 그 지낸 세월만큼이나 지상의 생물들과 동화되어 있다. 지금처럼 그냥 실체화 한 채로 있으면 그 누구도 그가 인간이 아닌 영혼이라는 것을 알지 못할 정도로. 그래서 당연히 '주술사님의 동료'로 알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난동을 피우지 않은 것이지, 만약 알았다면 큰일이 났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하루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좀 이상한데..?"
"응?"


그렇게 딴 생각을 하고 있던 하루카는,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그 옆에선 마코토가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하다니? 뭐가?"
"너무 많아서.."


하지만 그 대답이 너무 간략해 이해하기 어려운 범주의 것이라는 사실에 당황한 하루카는 마코토의 대답을 이해하기 위해 고민하려 했다.
하지만 어느샌가 뒤로 다가온 치하야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해석해주었다.


"응. 확실히 많아. 거기다가 이상할 정도로 동물의 사령만..."
"어...그게 뭐 잘못된 거야?"


하지만 치하야의 말에서 잘못된 부분을 찾을 수 없었던 하루카는 그렇게 물었다.
동물은 인간보다 짧은 생을 산다. 그러니까 인간의 사령보다 동물의 사령이 많은 것도 당연한 것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던 하루카는 이마에 손을 짚은채 한숨을 내쉬는 치하야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하루카... 생각 해봐. 넌 사령이었으니까 알지? 영혼이 저승으로 가지 않고 이 세계에 남는 이유가 뭐지?"
"그거야... 미련이랑 집착이지. 이승에 남긴 것들에 대한 미련... 혹은 증오... 그런 것들 아냐?"
"맞아. 그리고 그게 동시에 보통 이승에 남은 사령들이 인간의 영인 이유지. 죽은 영이 힘과 순리를 어기고 이승에 남을 정도의 미련은 보통 미련이 아냐. 그 정도로 강한 미련을 가지는 건, 보통 인간의 영 외엔 거의 없거든. 그런데 동물의 영이 이렇게 많이 떠돌고 있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는 거지."
"우웅..."


하루카가 뺨을 긁적이며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것을 본 치하야는 하루카가 어디선가 잘못 이해했다는 것을 깨닫곤 한숨을 내쉬었다. 감정 뿐만이 아니라 이해를 하고 못했고의 정도도 지나치게 얼굴로 잘 드러나는 녀석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치하야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동물은 인간보다 훨씬 더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생물이란 말야.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죽음에 의문을 품는 일도 거의 없고, 죽는 때를 알기 때문에 미련이나 증오같은게 거의 남지 않지. 그런 탓에 동물은 사령보단 요괴가 되는게 더 쉬워. 여태까지 돌아다니면서 그렇게 동물의 사령을 많이 본 적 있어?"
"아... 확실히 동물의 사령은 별로 본 적은 없는 것 같아."
"그래. 천 년동안 그렇게 동물의 사령을 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동물의 사령이 많이 보이면 이상한 것 같지 않아?"
"응, 확실히 이상하구나. 조금은 이해가 됐어!"


약간은 다른 방향이지만, 겨우 어떻게 이해는 된 듯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하루카를 본 치하야는 이마를 짚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른 곳도 이렇던가?"
"응? 아니... 그래서 이상하다는거야. 이 근처에서 대규모 수렵같은 거라도 있었나... 왠지 이곳만 동물의 사령이 많아서."


이 곳에 있는 사령들을 처리하는 데에만 삼일이 걸렸다. 하루카의 확인으로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끝난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많은 숫자의 영들이었다. 이 정도로 사령이 많은 곳도 처음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치하야가 정말로 끝난 것인가, 하는 의문을 다시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을 때,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던 하루카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치하야쨩."
"왜?"
"치하야쨩의 '이상하다'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아."
"뭐?"


의미를 알 수 없는 하루카의 말에 치하야가 당황해서 하루카를 보았다. 하루카의 눈동자에는 이미 어리숙함이나 천진난만함 같은 것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차갑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산을 바라보며 하루카는 조용히 말했다.


"저 곳에서 또 대량의 사령들이 나타났어. 이건 거의 방출이라고 표현해야 겠는데?"
"뭐?! 얼마나 되길래 방출이라는 거야?!"
"으응...한, 80~90? 뭉쳐 다녀서 잘 모르겠어. 워낙에 기운이 적어서.."


그리고 하루카의 날카로운 감에 잡힌 숫자를 들은 치하야는, 머리가 어지러워 오는 것을 느꼈다. 이 일, 끝나기는 할까? 라는 생각이 치하야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커다란 산을 뒤덮고 있는 나무 속에서, 타닥거리며 붉은 포식자가 불탄다. 하지만 그 나무의 포식자며 천적인 붉은 생물은 그 때만은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인간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었다.

 

"...머리가 지끈지끈해..."
"괘, 괜찮아, 치하야쨩? 너무 무리하고 있는 거 아냐?"


그리고 어둠을 불태우는 모닥불을 둘러싸고 앉은 채, 치하야는 이마를 짚었다.
벌써 삼일─ 아니, 오늘까지 치면 사흘째, 마을에 쳐둔 결계를 유지하고 있다. 결계에 유지하기만 하는 거라면 2주일은 무리도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여기저기서 결계를 향해 돌진하는 사령들 때문에 사흘인데 지쳐가는 걸 느끼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치하야가 칠 수 있는 결계는 최고다. 하루카는 그 사실을 망설이지 않고 인정할 수 있었다. 최초, 치하야가 자신의 귀기 사이에서 결계를 쳤을 때 하루카는 그 결계를 뚫고 아무런 타격없이 들어가기란 무리라고 판단했을 정도였다. 그 거대한 힘을 지닌 하루카의 영혼이 타격을 받을 정도의 결계인데, 기껏해야 동물의 사령이 파괴할 순 없을 것이다. 그것만은 확실했지만, 문제는 숫자였다.
말이 사흘이지, 매일매일 백마리가 넘는 사령들이 결계에 부딪혀온다. 그리고 그 충격은 그대로 치하야에게 온다. 사령들이 부딪히는 충격들을 한 마리 한 마리 환산하면 정말 버티기 힘든 부담이 된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하루카는 걱정스레 치하야를 바라보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치하야쨩, 너무 무리하지 마... 그러다가 쓰러지면 그것도 큰일이라구!"
"...그것도 문제긴 한데... 하루카,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이야기는 하지 마..."
"우으..."


여기서 치하야가 쓰러지면 당연히 마을은 사령들에게 총공격을 받게 된다. 동물의 사령은 잘 생기지 않지만, 동시에 한 번 동물의 영이 사령이 되면 단순할 정도의 증오만이 그 자리에 남게 되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아찔해지는 것을 느끼던 치하야는 이마를 짚은 채 다른 생각에 빠졌다.
그러고보면 이 영들은 대체 왜 마을을 습격하는 걸까.


그들의 증오나 미련의 대상은, 이 '마을'인건가? 하지만 최근 그들이 한꺼번에 나서서 한 거대한 수렵같은 건 없었다.
그렇다면 왜?


"...아, 치하야쨩!"
"왜?"


그 이유를 찾기 위해 고민해보려던 치하야는 하루카의 목소리에 시선을 들었다. 상대해주지 않으면 처리가 곤란한 아이니까. 하지만 치하야의 반응에 하루카가 발언한 내용은 더 처리가 곤란했다.


"하루카씨가 이 주변에 귀기를 뿌리면 사령들이 전부 없어지지 않을까?! 커다란 귀기는 다른 귀기를 먹어버리니까!"
"...하루카, 날 죽일 셈이니? 지금 나보고 네 귀기 안에서 버티라고?"
"에?! 아, 아니, 그런 건... 새,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


그 발언을 단 한마디로 기각시켜 버리곤, 하루카가 다시 고민에 빠지게 함으로서 주변을 조용히 만든 치하야는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다시 지끈거리고 아파왔다.
이래서야 앞으로 며칠을 버틸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치하야는 원망스러운 시선으로 맞은편에 앉아있는 마코토를 바라보았다.
마코토는 강하다. 영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한치의 실수도 없이 완벽하고, 운동 능력도 뛰어나다. 하지만 정화도, 결계도 다 할 줄 모른다. 그 점이 매번 치하야를 머리아프게 만들었다.
마코토가 그 방면에 대해서 기초만 알았더라도 자신이 이 정도의 고생은 하고 있지 않았을텐데, 라고 원망을 머릿속으로 퍼붓던 치하야의 옆에 앉아 어떻게 치하야가 고생하거나 힘들어하지 않고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고민하던 하루카가 갑자기 확 고개를 들었다.


"...하루카? 왜 그래?"


그런 하루카의 급작스런 반응에 치하야가 약간 불안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마코토도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 쪽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게 느껴졌다. 그들 중에선 하루카의 감각이 가장 날카롭다. 원한다면 하루카는 이 산에 있는 모든 기운이 움직이는 걸 감지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신경쓰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누군가 사령들하고 싸우고 있어. 주술사...인지는 모르겠는데.."
"...뭐? 하루카, 그게 어디야?"
"응? ...설마, 갈 생각이야?"
"당연하잖아. 어디야?"


그리고 하루카의 말에 당장 벌떡 일어나 그렇게 묻는 치하야에, 하루카는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남의 일이라면, 그냥 지나치면 좋을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하루카는 인상을 찌푸린 채로 이걸 말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치하야의 험악한 표정에 입을 열었다.


"동쪽이야. 그다지 멀진 않은 것 같아."
"좋아, 그럼 앞장서. 마코토, 일어나!"


모닥불에 모래를 발로 차 끼얹으며 치하야가 한 말에, 하루카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저렇게 사람이 좋은 것도 정도가 있으면 좋을텐데─ 라고 입속으로만 중얼거리며, 하루카는 조심스레 숲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앞장서서 빠르게 달리는 하루카의 뒤를, 치하야와 마코토가 쫓아 달린다. 앞을 가리는 장애물들은 하루카에겐 영향을 주지 않지만, 인간인 치하야와 마코토에게는 달리기에 꽤나 불편한 환경이어서, 조금씩 뒤쳐지는 것이 눈에 보이긴 했지만, 두 사람은 앞서는 하루카를 따라 잘 달렸다.
 

"하루카! 아직, 멀었어?!"


뒤에서 치하야가 그렇게 외치는 것에, 하루카가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10분여를 밤의 숲길에서 달린 탓인지, 치하야는 퍽 지쳐보였다. 그렇게 묻는 것도 당연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하루카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이 근처야. 하지만... 치하야쨩, 마코토, 잠깐 멈추자."


그 말에 치하야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마코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멈춰섰다. 확실히 감각의 예리함은 치하야보다 마코토가 앞선다, 그렇게 평가를 내리며 하루카는 주변을 둘러보곤 말했다.


"그 사람이 있는 곳에 모두 모여있어. 함부로 뛰어들었다가는 오히려 더 곤란해지겠는데..."
"모여있다니, 얼마나?"
"으응..잘 모르겠어. 너무 뭉쳐있어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긴 하지만... 아?"


대답하던 하루카가 갑자기 말을 끊자, 답답해진 치하야는 무슨 일이냐고 재촉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옆에 서 있던 마코토가 말했다.


"이 쪽으로 온다!"
"에?"
"치, 치하야쨩, 이 쪽으로!!!"


아직 사태를 이해 못 한 탓에 치하야가 멍청히 되묻는 순간, 하루카가 확 치하야의 손을 붙잡아 자신 쪽으로 이끌었다. 강한 힘에 이끌려 치하야가 하루카의 품에 푹 파묻히는 순간, 하루카는 치하야를 끌어안은 채로 위로 뛰었다. 마코토 또한 하루카와 거의 동시에 돌아보지도 않고 뒤로 돌아 달렸다.
그 순간, 거대한 귀기가 그들이 있던 자리를 궤뚫고 지나갔다. 물리력을 지닌 귀기에 나무들이 넘어져 버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저건..."


하루카에게 의지해 허공에서 몸을 지탱한 채, 치하야는 멍하니 '안개'도 아니고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꿈틀거리는 귀기를 바라보았다. 치하야를 안은 채로 허공에 뭔가 밟을 것이라도 있는 듯 자연스레 서 있던 하루카도 쯧, 하고 혀를 찼다.


"저런 미약한 애들이라도 뭉치면 저렇게 되는구나... 하지만, 저건..."


보통의 귀기처럼 투명한 것도 아니고, 완벽하게 새까맣게 물들어 꿈틀거리는 귀기를 바라보며, 하루카는 인상을 찌푸렸다.
살아있는 이들은 모르겠지만, 이미 살아있는 이가 아닌 하루카에게는 쉽게 느껴졌다.


저건 적의같은 게 아니다.
공포와 슬픔만으로 가득찬, 그런 영들이다.


지나친 공포에, 자아마저 던져 버린 그 모습이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져, 하루카는 치하야에게 물어보려고 했지만 저 쪽에서 들려온 비명소리에 그 말은 시원스레 먹혀 버렸다.


"꺄아아악!!"
"앗차, 그 사람들...! 마코토!"
"맡겨둬!"


그 비명소리에 생전 처음 볼 정도로 짙은 귀기를 바라보느라 거의 넋이 나간 듯 있던 치하야가 정신을 차리고 마코토의 이름을 부르자, 어디에 있었는진 몰라도 듣고 있었던 듯 팟, 하고 숲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게 보였다. 그리고 그 옆을 따르는 작은 금빛에 치하야는 그게 마코토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루카, 너는 나랑 저 녀석들을 일단 정리하자. 저 녀석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해줘."
"...알았어."


치하야가 자신을 제일 먼저 떠올리지 않고 마코토를 먼저 불렀다는 사실에 기분이 나빠진 하루카는 그녀의 말에 조금 부루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하루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리 없는 치하야는 그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서 소매를 걷어올리곤 손으로 인을 맺었다.
그 긴 손가락 끝에서 나오는 푸른 빛에, 아래에서 꿈틀대고 있던 귀기의 덩어리가 움찔, 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하루카는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결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면서, 언제나 영들을 '제거'하지 않고 '성불'시키려고 한다. 차라리 제거하라고 명령하면, 자신 혼자서도 이런 영들은 얼마든지 없애 버릴 수 있다. 그리고 그게 치하야에게도 편한 일이다. 치하야도 그건 알고 있을 텐데도 절대로 치하야는 그렇게 명령하지 않는다.
그녀가 그렇게 사람이 좋기 때문에 자신도 받아들여준 것이겠지만, 하루카는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적당히, 자신도 돌보면 좋을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손을 내뻗는다. 그 순간 검은 귀기가 마치 벽처럼 그들과 귀기 덩어리 사이에 쫙, 뿌려졌다. 아무리 짙은 귀기더라도 영의 질이 다른 만큼 그 기운의 질도 다르다. 그 정도의 차이가 나는 그 귀기를 보았을 텐데도 못 본 것처럼 귀기의 덩어리가 달려드는 모습을 보고, 하루카는 순간 충동적으로 이 것들을 전부 흡수해 버리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지금 치하야가 무리해서 힘을 쓸 이유는 없어지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기 전에 치하야가 먼저 인을 전부 맺은 듯 손애 머금은 빛을 내던진 모습에 하루카는 이번은 포기하고 그냥 눈감기로 했다.

 

 

 

 

 

 

 

 

 


눈부신 금빛이 검은 안개를 갈라놓는다.


깔끔한 솜씨였다. 금빛의 작은 검을 든 그녀의 행동은, 한치의 망설임도, 번복도, 필요없는 움직임도, 그 무엇도 없이 주변을 둘러싼 검은 안개를 베어버린다.
화살처럼 쏘아져오는 안개에 가볍게 옆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단 한 발만을 내딛으며, 검을 정확히 형체없는 안개에 찔러넣는다. 그 순간 잠깐이나마 모습을 되찾는 그 것은, 정확히 목을 찔려있다. 이미 죽은 영이라 피도 없고 무엇도 없지만 너무나 깨끗하고 정확해서 어찌 보면 소름끼치는 느낌이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그저 바라만 보고 있자, 그 눈동자가 힐끗, 자신을 보았다가 다시 앞을 보았다. 그리고 빛나는 곡선을 휘두른다. 깨끗한 금빛과 함께, 안개에 작은 검이 정확히 박힌다. 그 모습에 당황한 듯,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작은 영들이 하나하나 어디론가 도망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확인한 듯, 그녀가 시선을 돌렸다.


"야요이!!"


옆에서 쓰러져있을 동료가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려야 된다고는 알지만 상처를 입은 온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단지 정신만을 긴장시킨 채 그 사람을 바라본다.
달빛을 받아, 새하얗게 물든 손이 그녀에게로 뻗어져왔다─


"괜찮아?"
"...에...?...저... 도와주는...건가요?"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데."


설명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부족한 감이 있는 말이었지만 일단 악의는 없는 것 같다. 그건 근처에 있던 그녀의 동료인 소녀도 느꼈는지, 아이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어느새 일어서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이다, 위험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손을 붙잡았다. 갑자기 옆에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빛의 기둥이 일어났다.


"이, 이번엔 또 뭐야?!!"


자신의 동료인 소녀의 외침에, 그녀도 멍하니 그 빛 쪽을 바라보았다. 빛의 기둥에 빨려들 듯이, 검은 귀기가 흩어져 빛의 기둥을 따라 흰 빛이 되어 올라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그녀의 옆에서 멍하니 보던 소녀는, 앗,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또, 또 사령이야!!! 야요이, 여긴 나한테 맡겨!"
"아, 저건..."
"앗, 이오리쨩, 잠깐...!"


당황해서 그녀를 제지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소녀는 전투 태세로 돌입한 뒤였다.
그 작은 손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공기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날아간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숲속에서 보이는 그림자를 향해 날아간 것에, 그녀는 순간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퍽, 하는 소리가 숲에 울렸다. 그 소리에 소녀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정확히 맞았다. 공격력에는 그렇게 자신은 없지만 사람을 기절 시킬정도의 위력은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녀의 공격을 맞은 커다란 그림자가, 쓰러지긴커녕 옆에 서 있던 그림자에게 달려가 매달리는 모습에 소녀는 순간 당황했다.


"치하야쨩, 치하야쨩!! 아파아!! 저, 저쪽에서 공격해 왔다구, 치하야쨩!"
"알았으니까 좀 진정해, 하루카. 움직일 수가 없잖아!"


그녀는 시끄러운 목소리에 눈을 감았다가 살짝 뜨곤 상황을 확인했다. 그리고 맞고 쓰러지지도 않았을 뿐만이 아니라 멀쩡한 듯 보이는 그 두 사람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의 귓가로, 옆에 서 있던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그러니까, 내 동료들이야."
"에?"
"에엑?"


때를 놓친 설명에 두 소녀는 당황해서 마코토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울먹이는 하루카를 매단 채, 치하야가 질린다는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마코토, 적어도 그 쪽에서 적으로 오해하고 공격하기 전에 설명해줘..."


그리고 마코토는 그럴 시간이 없었단 변명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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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지않는 꿈에서 이어지거나 뭔가 그런거 '~`..

며칠만이지. 아하하하 망할 동원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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