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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즈 담당 프로듀서는 죽을 만큼 후회했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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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23, 2016 00:03에 작성됨.

원작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A-1 Pictures

“와……. 진짜 잘 만들었어요! 안무도 알기 쉽고요! 3D도 직접 만든 건가요?”
“3D 모델링은 무료로 배포된 걸 썼어. 원래 그런 프로그램이니까. 내가 만진 건 움직임이나 카메라 워크, 화면 전환 연출 뭐 이런 거지.”
“그래도 굉장해요!”
“칭찬하고 싶으면 칭찬해. 후후…….”
안즈는 가슴을 곧게 폈다. 뿌듯함이 안즈 뱃속에서 올라와 안즈의 어깨를 주물렀다.

묘하게 자존감이 채워진다. 아이돌 활동에 치이고 초조해하다가 잘하는 분야에서 칭찬을 받아서 그런가?
가슴이 괜히 우쭐해진다.
아까 빠져 있던 침울한 감정은 어느새 깨끗하게 사려졌다.

안즈는 기분 좋게 오전 스케줄을 보냈다. 레슨을 마치고 이윽고 점심시간이 가까워졌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탕비실로 집합. 프로듀서가 오늘은 웬일인지 탕비실로 오라고 전했기에.

“혹시 도시락 싸오셨나요?”
프로듀서가 멤버들에게 대뜸 이렇게 물었다.
“아뇨, 오늘은 카페에서 먹을 예정이었거든요.”
오늘은 멤버들 다 같이 카페에서 사 먹기로 정했다.

멤버들은 프로듀서의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방 알아차렸다. 탕비실에 가득한 매콤하고 달콤한 냄새. 식욕을 콕콕 찔러 자기도 모르게 침을 고이게 하는 냄새가 탕비실을 가득 채웠으니까. 냄새의 진원지는 가스레인지에 올려진 중화 냄비였다.

“혹시 괜찮으시면 여러분께 제가 대접해도 될까요?”
프로듀서는 중화 냄비의 뚜껑을 열었다. 냄비는 두 개였는데 하나에선 매콤한 냄새가 주로 올라오고, 다른 하나에선 매콤한 냄새보단 달콤한 냄새가 짙게 올라왔다. 두 냄비의 내용물은 마파두부. 프로듀서는 두 마파두부를 각각 다른 접시에 담아 테이블에 올렸다.

각각 매운 정도가 다른가? 하나는 새빨갛고 나머지 하나는 주황색에 가까웠다. 둘 다 맛있어 보이는 건 마찬가지지만.

“아, 미쿠는…….”
미쿠가 곤란한 듯이 입을 오므렸다. 순간 프로듀서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안즈는 그걸 캐치하고 미쿠의 등을 밀었다. 미쿠의 등을 잡고 미쿠를 테이블로 순식간에 끌고 갔다.

“아, 배고프다 배고파. 그냥 여기서 먹자. 귀찮게 카페까지 가지 말고.”
안즈가 자리에 앉는다. 미쿠는 멀뚱히 서 있다가 다른 멤버들도 자리에 앉는 걸 보고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미쿠는 테이블 위, 정확히는 미쿠 자리 앞에 있는 새빨간 마파두부를 보고 표정을 더욱 굳혔다.

단순히 프로듀서와 사적인 시간을 보내는 게 거북해서 그런 게 아니다.

프로듀서는 접시를 들어 올리며 설명했다.
“오늘은 솜씨를 발휘해봤습니다. 평소보다 더 신경 써서 만들었으니 꽤 괜찮을 거예요. 보시다시피 주황색이 달콤한 맛, 그리고 엇차……. 이 새빨간 게 매운맛입니다,”
프로듀서는 설명을 마치고 자연스럽게 접시를 다시 올렸다. 프로듀서가 테이블에 다시 올리면서 매운맛과 달콤한 맛의 위치가 바뀐 걸 안즈와 미쿠 외에는 눈치채지 못했다.

미쿠는 달콤한 마파두부와 프로듀서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미쿠의 얼굴에 복잡한 심경이 미약하게 실렸다.

안즈는 그걸 보고 무언가 답답한 느낌이 가슴에 차오르는 걸 느꼈다. 가슴 한구석이 불편하다. 가슴 한구석이 모래라도 채워놓은 양 무겁고, 그 모래를 입으로 씹은 양 입안이 영 씁쓸했다.

“향기 좋네요. 프로듀서 씨의 솜씨가 전보다 더 늘어난 것 같아요.”
나나가 손바닥으로 부쳐가면서 향기를 맡는다.
“향만 더 좋아진 건 아닐 걸요? 먹어 보시면 알 겁니다. 스트레스를 쫙 풀고 싶은 사람은 매운맛을 추천해요. 물론 달콤한 맛도 괜찮습니다. 둘 다 공을 들여서 만들었거든요.”
프로듀서는 국자를 안즈에게 내밀었다.

스트레스라……. 안즈를 위해서 준비했나. 안즈는 달콤한 쪽을 자기 접시에 덜어 맛을 보았다.
입안 가득히 달콤한 풍미가 퍼진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두부가 혀를 감싼다. 부드러운 두부는 혀와 이에 닿아 으스러지지만, 으스러지면서도 씹는 맛이 살아있었다.

“마, 맛있어……! 뭐야 이거! 두부에 씹는 맛이 제대로 있어! 이런 거 처음 먹어봐!”
안즈는 자기도 모르게 감탄했다.
“신경 써서 만들었으니까.”
프로듀서가 우쭐거린다. 아까 안즈가 그랬던 것처럼.

안즈는 접시를 핥을 기세로 마파두부를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손과 입을 정신없이 움직였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뱃속에 마파두부를 채우는 만큼 전신에서 힘이 솟아오르는 착각마저 들었다.

달콤한 맛은 대만족!
안즈는 이번엔 매운맛을 접시에 덜었다.
과연 이건 어떨까? 안즈는 매운 마파두부를 입에 넣었다.

먹는 것에 정신 팔려 불행히도 프로듀서가 우유를 준비하는 걸 보지 못했다.

안즈는 오늘 매운 걸 먹고 스트레스를 푸는 건 아픈 걸 잊으려고 가구에 새끼발가락을 찧는 것과 같다는 걸 배웠다.

7월 14일

오늘은 중대발표를 위한 녹화일.

근래까지 C5 멤버들은 맹연습에 들어갔다. 오다이바 페스까지 시간이 없다. 시간이 촉박하면 그만큼 현장에서 뛰는 실무진에게 압박이 가기 마련이다. 아이돌 업계도 마찬가지. 그나마 첫 번째 곡만 완성되었을 때는 할 만했지만, 두 번째 곡이 완성되자 부담이 가중되어 레슨 때 다리가 후들거리지 않은 멤버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안즈가 만든 영상 덕분에 레슨 난이도가 많이 하락했다.
적어도 안무는 쉽고 빠르게 외웠으니까.

안즈는 두 번째 곡도 MMD 영상으로 만들었다. 이번에도 알아보기 쉽다고 프로듀서와 멤버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좋아, 더 칭찬해! 후후!”
안즈의 자존감도 채워지고 일석이조.

두 번째 곡은 오다이바 페스 당일에 발표할 예정이다. 오늘 피로하는 건 첫 번째 곡, ‘나아가라☆소녀여 ~jewel parade~’. 오늘 녹화하는 가요 프로그램에서 이 노래를 공연하면서 C5 결성과 오다이바 페스 참가를 알릴 예정이다.

오늘은 외부로 알리는 중요한 첫걸음이다. 프로듀서는 그 첫걸음에 알맞게 큰 무대를 준비했다. 전국 방영 가요 프로그램. 그것도 몇 년째 MC를 바꿔오면서 이어오고 있는 상당히 큰 프로그램이다.

“웹으로 발표할 줄 알았어.”
“요즘은 소셜미디어 시대지만 매스미디어는 여전히 중요해. 인터넷 같은 쌍방향 교류 매체는 아니지만, TV의 파급력은 아직 건재하니까. 보통 대중은 TV에 나오는 정보를 한 번 정제한 정보, 즉 중요한 정보라고 여기기 마련이야. 그만큼 받아들이는 정도가 달라. 뭐……. 이것도 몇 년 더 지나면 달라지겠지만. 아무튼 지금 이 시점에서 TV 전파는 강력한 홍보 수단이야. 쓸 수 있으면 이쪽을 쓰는 게 낫지.”
“용케도 잡았네…….”
“고생했어. 특히 협상하는 데에 진을 뺐지……. 스케줄이 꽉 차 있는 걸 억지로 비집고 들어갔거든. 자아, 아무튼 이제부턴 너희 차례야. 안즈. 잘하고 와야 한다!”
프로듀서는 이번에도 업무 때문에 현장 동행 불가.

대신 나나와 미쿠에게 멤버들을 잘 부탁한다며 거듭 당부를 전했다. 안즈는 프로듀서의 격려를 가슴에 담고 대기실에 발을 내디뎠다.

C5 말고도 다른 아이돌 아이들 몇 명이 의상이나 메이크업 체크를 각 담당 직원에게 받고 있다. 다들 매무새가 가지런히 정리되었고 분위기도 차분해 보였다. 침착하고 안정되어 보인다.

전국 방송 공연이라……. 안즈는 잠시 심호흡했다. 그리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힘을 주었다.
긴장이 풀어진다.

안즈는 자리에 앉았다. 메이크업 담당이 와서 안즈의 얼굴을 손질한다. 프로의 손이 안즈의 얼굴을 종횡무진 돌아다녔다. 안즈가 듣도 보도 못했던 신기한 도구들이 안즈의 피부를 간지럽혔다.

여태까지 받았던 메이크업보다 더욱 기합이 들어간 것이 피부를 통해 전해진다. 그만큼 오늘 무대는 만만치 않으리라. 하지만 이번은 오다이바 페스를 향한 진정한 첫걸음이다.

여기서 기죽을 순 없다. 앞으로 예정된 여정이 뜨겁게 달군 철판 위를 걷는 수준이라면 지금은 초여름의 모래사장을 걷는 수준이다.

안즈의 메이크업이 끝났다.
다른 멤버들의 메이크업이 이어진다. 메이크업을 받는 멤버들의 얼굴은 아이돌답게 화사했지만 한편으로는 늠름해 보였다. 얼굴에 무대 경험이 그대로 녹아내린 게 백전을 겪은 무장이 떠오를 정도다.

……유일하게 미호의 얼굴이 다소 긴장의 빛을 띠고 있지만 이건 개인의 개성으로 치자.

멤버들의 메이크업이 끝났다. 멤버들 다 같이 의상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 준비가 끝났다.

대기실에 있던 다른 아이돌 아이들 몇 명이 대기실을 나선다. 목적지는 아마 무대겠지. 아직 C5의 차례가 되려면 멀었다. C5 멤버들은 지정석에 앉았다.

대기실엔 모니터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무대 상황을 비추는 모니터. 또 하나는 외부회선과 연결되어 일반 방송을 보여주는 일반 TV.

모니터를 통해 무대가 보인다. 촬영을 위해 실내에 만든 방송 전용 스튜디오. 그러나 다른 방송에 돌려쓰지 않는 전용 스튜디오치고는 규모가 상당하다. 게다가 관객석도 잘 갖추어져 있다. 그 점이 이 방송의 위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안즈는 무대를 조금 살펴보다가 TV로 시선을 돌렸다. TV에선 얼마 전부터 방영을 시작한 신작 애니메이션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안즈가 조만간 볼까 고민하던 작품이다. 광고에도 관심이 갔지만 안즈의 눈은 다시 무대 모니터 쪽으로 굴러갔다.

저건 나중에 보도록 하자. 지금 급한 건 이거다.

안즈는 모니터를 통해 무대와 관객의 위치, 안즈가 서게 될 자리를 가늠했다. 이미 짧은 리허설 무대로 재어 봤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눈에 새겨둔다.

안즈는 그러다 문득 옆자리를 돌아봤다. 우즈키, 미쿠, 나나, 미호. 전원 시선이 무대 모니터로 향해 있었다. 안즈가 조금 전에 그런 것처럼 무대와 관객 위치, 설 자리를 가늠하듯이 눈동자가 굴러갔다.

동질감일까? 소속감일까? 아니면 단순한 공감일까? 안즈는 묘한 감정을 느끼며 시선을 무대 모니터로 옮겼다. 조용한 시간이 몇 분 이어지다가 끝났다. 우즈키가 눈을 빛내면서 말했다. 우즈키의 발언이 조용한 시간에 종언을 고했다.

“오늘 무대, 꼭 성공해요!”
멤버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응, 혹은 그래요!라고 말하면서 우즈키의 말에 응했다.

이후론 나갈 시간이 될 때까지 시시껄렁한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요즘 읽는 소설, 학교 이야기, 공부 이야기 등등이 이어지다가……. 나갈 차례가 왔다.

안즈는 비장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비장하게 걸었다. 그렇게 무대 뒤편에 도착. 이제 몇 걸음만 더 가면 무대다. 무대로 바로 앞. C5 전 공연 팀이 무대에서 내려온다. C5는 아직 대기. 지금부터 짧은 시간 동안 MC 토크 타임이다.

누가 안즈의 손목을 건드렸다. 미호였다.
“안즈 쨩, 릴렉스해요!”
미호가 부들거리면서 말했다.
안즈는 조금 어이없어하면서 웃었다.
“어, 어라? 저 어디 이상해요?”
“설득력 없는 말을 해서. 이제 됐어.”
안즈가 웃는 걸 보고 미호도 긴장을 풀었다.

그리고, 시간이 되었다. C5 멤버 모두 무대에 올랐다. 관객들 기준으로 왼쪽부터 미호, 우즈키, 안즈, 미쿠, 나나 순으로. 다섯 명 모두 자기 포지션대로 무대에 위치했다. 전주가 흘러온다. 전주에 맞춰 멤버들 모두 손을 뻗었다. 관객들의 시선이 멤버들의 손에 머물렀다. 멤버들은 시선이 머문 손을 관객들에게 향하여 관객들에게 받은 관심을 온몸으로 분산시켰다.

관객들이 멤버들을 똑바로 본다. 관객들이 C5를 주목하는 이때, 멤버들이 노래한다.

"꿈은 보석, 누구나 다 하나씩 가슴에 품고서~“
“향하는 골, 언젠가 최고로 빛나고 싶어~”
“오늘의 현실은 정말 힘들고 혹독했지만~”
"멈추지 않을 거야, 내 곁에는 동료가 있으니까~“
“모두 모여 오라를 한데 모아~”
레슨의 성과가 목을 타고 올라온다. 멤버들의 노래가 관객들에게 먹혔는지 관객들은 제각기 고개를 끄덕이거나 어깨를 들썩이고 있다. 관객들의 시선이 C5에게 쏟아진다. 쏟아진 시선이 멤버들을 한 명씩 훑는다.

“마치 무지개 목걸이처럼 눈부신 인연~"
안즈는 처음 느껴보는 시선. 시선이 파도가 되어 안즈를 집어삼킨다. 안즈 개인뿐만이 아니라, 무대에 선 5명 모두에게 시선이 이리저리 요동치며 부딪친다.

이게 유닛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인가, 시선이 분산되었다 싶으면 다시 결집한다. 안즈는 시선의 흐름 속에서 노래했다.

“나아가라 소녀여~ 좀 더 앞으로~”
다섯이서 목소리를 섞은 다음, 우즈키가 혼자 목소리를 낸다.
“이상적인 스테이지로 향하자~”
그리고 목소리가 다시 섞인다.
“서로 이해하는 기쁨이 이제 용기가 될 테니까~”
혼자서는 낼 수 없는 목소리가 만들어진다. 관객들의 시선도 더욱 뜨거워진다.

멤버들도 호응에 힘입어 춤춘다. 마치 해류를 헤치고 헤엄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기분 좋은 성취감이 몸의 말단부터, 점점 더 깊숙이 스며든다. 물에 젖은 듯한 감각이 온몸을 돌아다닌다.

노래가 끝났다. 관객들의 함성이 치솟았다. 멤버들 모두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성원을 돌려주었다. 함성이 잦아들자 미쿠가 입을 열었다. 마이크 회선은 아직 연결되어있다. 프로듀서가 방송 측에 협상해서 특별히 얻은 토크 시간이므로.

“안녕 냐!”
미쿠가 유닛 리더 자격으로 멤버들 앞에 나서서 관객들에게 말했다. 관객들도 안녕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유닛이 나와서 깜짝 놀랐어? 어땠어?”
미쿠가 귀에 손을 댄다. 열렬한 반응이 돌아왔다.
“오늘부터 오다이바 페스까지 기간 한정으로 결성한 C5야! 오다이바 페스에 참가하니까 모두 잘 부탁해! 냥!”
그리고 멤버들이 한 마디씩 홍보 멘트를 날렸다. C5는 박수갈채를 받으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오늘 무대는 완벽하게 성공했다. 관객들 호응은 정말 좋았다. 녹화 방송이라서 더 큰 반응은 방송 이후를 봐야 하지만, 방송 반응도 좋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이 정도로 관객들이 열광적인 걸 보고 방송 반응이 좋지 않을 거로 여기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안즈는 의상을 갈아입고 메이크업을 지운 후에도 오늘의 무대를 곱씹었다. 오늘 처음 경험한 유닛 무대. 아이돌이 되고 나서 처음 경험하는 것투성이지만 오늘 무대에서 느낀 느낌은 빛 바라지 않고 신선했다.

픽업 승합차 안에서 안즈는 거리의 불빛을 보고 오늘 받은 스포트라이트를 연상했다. 불빛이 여운이 되어 안즈의 감성을 자극한다. 안즈의 감성은 거리의 불빛에 부드럽고 따뜻하게 버무려졌다.

머릿속에서 오늘 무대가 느리게 재생된다. 오늘 쏟아진 시선 세례. 멤버들이 목소리를 맞추면, 관객들이 열광한다.

하지만, 안즈는 감성을 이내 평소 상태로 되돌렸다. 안즈의 감성이 다시 탄력을 되찾고 원래 온도로 내려갔다. 안즈의 머리에 몰렸던 피가 전신을 돈다. 안즈의 머리가 다시 냉정해진다. 무대를 회상하는 순간순간, 여운의 흐름을 끊는 것이 존재했다. 그게 안즈의 마음에 걸렸다.

안즈가 피부로 느낀 시선의 흐름에 단서가 있다. 안즈는 그것을 분석했다. 시선의 흐름을 더듬고 관객의 호응을, 호응하는 정도를 되짚었다. 안즈는 얼마 안 가 마음에 걸린 게 무엇인지 알아냈다.

관객들이 가장 많이 열광한 구절, 퍼포먼스, 멤버……. 그 무엇도 안즈가 아니다.
안즈에게 돌아온 호응은 다른 멤버들보다 적었다.

“뭐, 당연한 거지만.”
안즈는 중얼거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굳이 말로 꺼낼 필요도 없이 당연하다. 유닛 결성 때부터 이미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사실이다. C5 멤버 중에서 안즈의 인지도, 인기, 실력, 경험이 가장 떨어진다. 안즈는 C5 멤버 최약체다. 그럼에도 유닛의 센터를 맡았다.

센터란 유닛의 중심이다. 가장 주목받아야 할 중요한 자리다. 오늘 무대에서 느낀 시선의 흐름은 다소 거칠었다. 안즈를 지나치기만 한 시선이 많았기 때문이다.

“무슨 생각을 해? 냐.”
옆자리의 미쿠가 안즈에게 말을 걸었다. 안즈는 창밖의 풍경에서 시선을 떼었다.
“그냥 오늘 무대.”
“첫 유닛 무대는 어땠어? 냐?”
안즈는 말을 고를까 고민하다가 곧바로 고민을 접었다. 말을 골라봤자 이득이 없으니까.

“안즈가 얼마나 작은지 알게 되었어.”
“키가? 냐?”
“13cm 차이 가지고 너무 그러지 마.”
“미안 미안. 장난이었어. 냐.”
미쿠가 이런 장난도 치네? 레슨을 받으면서 많이 부대껴서 그런가? 안즈는 배시시 웃는 미쿠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미쿠의 무대를 처음 봤던, 안즈의 데뷔 날을 떠올렸다.

그날 미쿠의 무대는 엄청났다. 마치 지휘자처럼 무대의 모든 흐름을 지배했다. 음악은 물론이고 관객들의 반응과 시선마저. 무대에 관련된 모든 것이 미쿠의 손과 성대에 휘감겨 조종당했다.
관록과 경험, 그리고 실력의 결과.

“너무 초조해할 필요는 없어 냐. 누구나 다 성장하는 속도가 다르니까. 냥.”
느닷없이 미쿠가 정곡을 찔러온다.
하긴, 레슨하면서 안즈가 몇 번이고 마주친 벽이니까. 옆에서 조금만 관찰해도 알 수 있겠지.

“미쿠는 리더니까. 냐. 상담할 게 있으면 말해.”
아까 장난친 건 리더의 본분을 다하려고 그런 거였구나. 안즈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안즈는 다소 풀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운 덩어리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본다. 안즈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 아직 환상에 빠진 이들이 보인다.

“아까 무대는 좋았어요.”
“저는 아까 거리를 잘못 쟀다가 실수할 뻔해서요. 안무를 좀 더 잘 외워야겠어요.”
“아으……. 저도 울렁증 나올 뻔했어요.”
아이들은 환상에 빠진 채로 현실을 직시한다.

“옆에서 보면 안즈 쨩도 비슷했어. 냐.”
미쿠가 한 마디.
각자 저마다 고민을 안고 무대에 오른다. 무대에서 내려온 다음에도 고민은 계속 이어진다. 안즈도 그렇고, 다른 멤버들도 그렇다.

“같은 유닛이니까 이건 좋은 징조야. 냐.”
“그래?”
아이들은 모두 고민을 나누면서 서로 개선점을 조언한다. 그곳에서는 미리 어디를 봐야 한다, 다음엔 손을 어떻게 뻗어야 한다는 등 레슨에선 알 수 없는 실전 경험을 공유했다. 좀 더 빛나기 위하여. 더 나은 아이돌이 되기 위해서.

이 아이들에게 있어 아이돌 활동은 꿈이다. 꿈을 향해 나아가라, 소녀여. 이 노래의 가사처럼 이 아이들은 꿈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

안즈에겐 이렇다 할 꿈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과 같은 무대에 서 있다.
이 아이들과 같은 무대에 더 서다 보면 안즈에게도 꿈의 실마리가 보일까? 프로듀서와 함께 찾고 싶은, 안즈가 하고 싶은 일이 보일까?

그건 아직 모른다. 나아가지 않으면 모른다.
그리고 우선 넘어야 할 산이 있다. 그 산을 넘기 위해선 나아가야 한다. 앞이 보이지 않더라도, 나아가야 한다. 이 아이들과 함께.

안즈는 시트에 몸을 밀었다. 시트가 고급품이어서 그런지 안즈의 몸을 푹 감쌌다. 안즈는 시트에 파묻혀선 미쿠를 보았다. 미쿠도 어느새 다른 아이들과 섞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각자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무대에 오른다면, 미쿠는 어떤 고민을 안고 있을까?
미쿠는 프로듀서를 피하고 있다. C.M.Y.K. 시절부터,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전부터 프로듀서와 알고 지냈을 미쿠. 미쿠는 프로듀서와 아픈 과거를 공유한다. 같은 상처를 품고 서로의 상처를 건드릴까 봐 멀찍이 떨어졌다.

지금은 해결할 일이 생겨서 프로듀서의 지휘를 받지만 사적인 자리는 되도록 피하려고 한다.

안즈는 눈을 감았다. 생각이 너무 많았나? 아니면 오늘 무대가 너무 피곤했나?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차가 도로의 요철을 밟고 조금씩 흔들리는 게 수면욕을 기분 좋게 자극한다.

오늘은 폐점.
나머지는 내일부터……. 생각하자. 안즈는 금방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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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늦었네요. 다음 화는 4월 26일에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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