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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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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18, 2016 21:10에 작성됨.

카와즈님이 제공해주신 플롯을 바탕으로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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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게 깔린 안개 사이로, 일정한 크기의 돌이 늘어서 있다. 치하야는 여기가 어디인지 알고 있다. 묘지. 동생이 잠들어있는 곳. 그리고 꿈 속의 세계.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기억과 무의식을 바탕으로 새롭게 창조된 공간. 아침이 되어 눈을 뜨면 사라지고 마는 임시적인 장소.

 

싸늘한 바람이 휑하니 불었다. 치하야는 아무 흔들림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계속 그 자리에 서서 꿈에서 깨어나길 기다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치하야는 물 흐르듯이 걸어갔다. 동생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적막한 묘지에 단 하나의 존재만이 일렁거린다. 일정한 규격에 맞춰진 죽음의 표식이 즐비한 이 곳. 몇 번을 오가도 익숙해지질 않는 분위기.

 

걸음걸이가 저도 모르게 빨라졌다.

 

'키사라기 유우의 묘.'

 

찾는 건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안개 때문에 시야가 다소 협소해졌지만, 위치 정도는 기억하고 있으니까. 무릎을 꿇어앉는다. 꽃이라도 올려주고 싶지만 지금으로서는 가진 게 하나도 없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아 합장한다.

 

부디 그 곳에서는 행복하게 지내기를.

 

너무 많이 해서 의미가 퇴색되거나 하지는 않았을까 생각되는 기도를 올리는 걸로 끝을 맺는다. 익숙해진 행동을 마치고 다시 천천히 눈을 떴다.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차갑고 각진 석재. 같이 웃고 떠들던 작은 동생의 모습은 갈수록 가물가물해져만 가고, 반대로 점점 이것이 선명해진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눈을 돌린 순간이었다.

 

"어.....?"

 

마치 그녀의 시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옆에 있는 묘에는 꽃다발이 놓여있다. 꽤 최근에 놓고 갔는지 꽃잎은 아직도 형태를 선명하게 유지하고 있다. 누구 묘일까? 치하야가 꽃다발에 쏠렸던 시선을 비석으로 올리려는 순간이었다.

 

삐비빅.

 

돌연 전자음이 끼어들면서 시야가 일변했다. 몸에 전해지는 감각도 달라졌다. 등에 닿는 시트, 온 몽을 덮은 적당한 두께의 이불. 일어나야하는데. 그녀의 눈은 번쩍 뜨였지만 다른 곳이 문제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꿈에 아직도 정신이 붙잡혀있다. 치하야는 침대에서 나가질 못하고 밍기적거리다, 겨우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딛었다.

 

그 뒤로는 의외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씻고, 식사하고, 언제나의 트레이닝을 끝낸다.

 

- 짙은 안개가 낀, 무서울 정도로 조용한 묘지.

 

거울을 보며 스스로의 모습을 체크한 뒤 집을 나선다.

 

- 마지막 순간 보였던 '누군가' 의 묘.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그 꿈은 머리 한 구석에 끈질기게 남아있다. 익숙한 전철에 몸을 맡기는 때가 와도, 잊혀지지 않고 몇 번이고 반복되는 기억. 막연하게 느껴지는 불길함.

 

단순한 꿈이야. 뭘 의미하는 건지도 모르잖아. 괜히 이상한 쪽으로 해석하는 건 그만둬.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타일러도 차도를 보이지 않는다. 정말 기분 나쁜 꿈이야. 이런 건 다시는 꾸지 않았으면 좋겠어. 치하야는 속으로 그렇게 바라며 좋지 않은 하루를 시작했고, 끈적끈적한 불쾌함을 하루 종일 달고 다녔다.

 

"치하야, 괜찮아? 안색이 좀 나빠보이는데."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프로듀서가 치하야에게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혹시 몸 상태가 별로이진 않은가, 그렇게 추궁하고 있었다. 별로 내색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저도 모르게 드러나고 말았던 모양이다.

 

아픈 것은, 아니다.

 

"괜찮습니다."

 

꿈은 꿈일 뿐. 다음날이 되면 잊어버릴 수 있을 거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고 싶었다.

 

.....

 

'다들 이미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결국 시신이 발견되었대.'

 

애써 무덤덤하게 사실을 전달하려고 노력하지만, 암울한 기색이 역력한 프로듀서. 옆에는 사장도, 사무원도, 또 다른 프로듀서도 같이 있다. 리츠코는 침묵을 유지한다. 코토리는 진작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장은 뭔가 말하려다 그만둔다.

 

지금도, 꿈이다. 치하야는 저도 모르게 그렇다는 걸 알아챘다. 그런 것치고는 무척이나 '현실'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며칠 후에 장례식이 있을테니 부디 꼭, 참가해줬으면 좋겠다.'

 

저기, 누구야. 누구의 시신인거야? 우리들이랑 관련있는 인물인 것 같은데. 치하야는 주변에 있는 동료들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충격이 너무 큰 나머지 듣지 못하고 있는 걸까. 치하야는 다시 한 번 그들을 불렀다.

 

미키! 하기와라씨! 가나하씨!

 

상황은 여전했다. 그녀들은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눈물을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상황이 좋지 않다. 치하야는 눈 앞에 있는 프로듀서를 보았다. 그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누구야. 대체 누가 죽었길래 그러는 거야.

 

치하야는 다급하게 주변을 돌아보았다. 미나세씨, 타카츠키씨, 마코토, 아미, 마미, 시죠씨, 아즈사씨.....차례차례 살아있는 동료들을 확인해가던 도중이었다.

 

"읏!?"

 

팟, 하고 TV 전원이 꺼지듯 눈 앞에서 모두가 사라졌다. 검은 화면조차 지나간 뒤 보이는 건 별 특색없는 천장. 그녀가 살고 있는 집. 이상한 꿈을 꾼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이런 꿈이라니. 꾹, 하고 짓누르는 듯한 아픔이 느껴져 이마를 부여잡았다. 조금 축축하다.

 

"하아......"

 

악몽, 이구나. 치하야는 작게 몸을 떨었다. 자랑거리라고도 할 수 없지만, 악몽이라면 수없이 꾸었다. 아스팔트에 뿌려진 피, 덩그러니 남은 주인 잃은 신발 한 짝. 어렸을 적 목격한 죽음은 쭉 그녀를 괴롭혀왔다. 스스로도 익숙해졌다고 자조할 정도로.

 

그렇지만 이번 건 뭔가 달랐다.

 

지금까지의 악몽이 과거의 끝없는 변주라면, 방금 보았던 그건 앞으로 일어날 것만 같아서-

 

"아니야, 그럴 리는 없어."

 

미처 헤아리지 못한 한 사람을 생각하던 치하야는 웅크린 체 수도 없이 중얼거렸다. 꿈은 꿈일 뿐이야. 잊어. 잊어야만 해. 필사적으로 스스로에게 암시를 건 결과 어떻게든 마음 속을 집어삼키려는 불안감을 멈춰 세울 수 있었다.

 

탓.

 

하얀 발이 조심스럽게 바닥에 닿았다. 언제까지고 있지도 않은 일에,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허상에 벌벌 떨 수만은 없었다. 치하야는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며 일어섰다. 그렇게, 언제나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출근하고, 바쁘게 왔다갔다 하는 동료들과 어서와, 잘 갔다와 같은 인사를 나눈다.

 

전과 같은 무명이 아니게 된 지금, 그녀의 하루는 바쁘게 흘러간다. 특히 오늘은 더 그렇다. 빈틈없는 스케쥴표, 무섭게 밀어닥쳐오는 일. 그리고 실력이 녹술지 않도록 끊임없는 레슨이 이어진다.

 

그래도 그 사이에 있는 잠깐의 휴식시간을 틈 타, 치하야는 겨우 사무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 치하야쨩, 어서와."

 

모두가 저마다의 일정으로 흩어진 탓에, 지금은 사무원 혼자만 덜렁 이 작은 사무소를 지키고 있었다.

 

"오토나시씨밖에 안 계신건가요?"

 

"응. 좀 전까지만 해도 하루카쨩하고 미키쨩이 있었어."

 

"그렇군요."

 

치하야는 잡지 같은 게 이리저리 펼쳐져 있는 탁상에 시선을 보냈다. 미키가 덮고 있었을 모포는 널찍한 소파 바로 아래에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다. 정리라도 하고 가면 좋았을텐데. 시간이 촉박했던 걸까.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 쪽으로 향했다.

 

"어디보자, 슬슬 애들이 올 때가 되긴 했네."

 

"그렇습니까."

 

치하야는 아침에 올 때부터 구석에 놓아두었던 가방에서 악보 몇 장을 꺼내들었다. 그러고는 난장판이 된 그 곳을 적당히 치워내고 앉았다.

 

"....."

 

시간은 오후 2시. 멀쩡한 사람도 자연스럽게 졸음이 쏟아지는 때. 코토리는 하품을 하며 자판을 두드리다 그 쪽을 슬쩍 곁눈질 했다. 어라 치하야쨩, 오늘따라 어딘가 좀 피곤해보이네. 아직 일이 하나 남았을텐데 괜찮을까. 내 것도 타는 김에, 하나 더 만들어야겠어.

 

그녀는 조심스럽게 의자를 빼고 자리에서 일어나, 급탕실로 향한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자기 것 하나, 치하야 것 하나해서 커피 두 잔을 타고는 슬쩍 그 쪽으로 걸어갔다.

 

"오토나시씨?"

 

"미안. 혹시 집중하는 걸 방해했던 걸까."

 

작게 내는 발소리에도, 치하야는 생각했던 것보다 시원스럽게 돌아봐주었다. 코토리는 조금 의아해하면서 들고 있던 머그컵 하나를 탁자에 툭, 내려놓는다.

 

"괜찮습니다."

 

의례적으로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정말 괜찮았다. 그도 그럴게, 집중 자체를 할 수 없었으니까. 두 눈은 오선지를 따라 흘러가는 음표들을 쫒아가지 못하고 흐트러져있었다. 치하야는 탁자의 빈 곳에 악보들을 내려놓고,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컵을 꼭 잡아쥐었다.

 

커피 특유의 향, 양 손에 느껴지는 적당한 정도의 뜨거움. 가슴 높이까지 들어올린 그것을 입가에 대지는 못하고, 멍하니 붙잡고만 있었다.

 

"괜찮니? 오늘 일정이 좀 빡빡했나보네. 치하야쨩이 이렇게나 힘들어할 정도라면."

 

"아니요, 그렇지는."

 

타준 사람의 성의를 봐서 한 모금이라도 넘기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치하야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천천히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검은색에 한 없이 가까운 갈색 내용물을 쭉 바라보았다.

 

"음.....아무래도 커피보다는 조금이라도 눈 붙이는 게 나을 것 같네."

 

"아."

 

코토리는 황급하게 치하야의 몫을 치워냈다. 억지로라도 들이키고 무리할 것만 같아서였다. 치하야는 멍한 눈으로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자."

 

커피를 두 잔이나 자기 자리에 갖다 놓은 코토리는 떨어진 모포를 주워들어 툭툭 털고는 치하야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마지못해 두 손을 들어 받아들었다.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까지 졸립다는 건 아닙니다만."

 

"조금이라도 자두렴. 그럼 어느정도 개운해질거야."

 

"....."

 

치하야는 맨구석에 몸을 구겨넣었다. 평소라면 이보다 더한 일도 해치울 수 있지만, 오늘은 완전히 무너지기 일보 직전. 이 때다 하고 밀려오는 졸음에, 그녀는 뱉었던 말과는 다르게 금방 고개를 꾸벅거렸다. 눈은 벌써 반쯤 감긴 지 오래. 하지만 치하야는 잠들고 싶지 않았다.

 

혹시 또 이상한 꿈을 꾸면 어쩌지.

 

완전히 감길 듯 말듯 하는, 점점 흐릿해지는 시야. 싫어. 치하야는 고개를 흔들며 덮쳐드는 수마를 쫒아내려고 했다.

 

"괜찮아. 시간이 되면 깨워줄테니까."

 

오토나시씨, 저는, 그게 아니라. 치하야는 정정을 시도하려다 그만두었다. 악몽을 꿀까 두려워서 잠들지 못한다니, 어린 아이나 내세울 법한 이유니까. 그러는 사이 껌뻑껌뻑이던 두 눈은 결국 완전히 닫혔다. 그 뿐만이 아니다. 폭, 하고 비스듬이 등받이에 기댄 어깨. 그 쪽으로 살짝 흘러내린 푸른 기 도는 장발. 규칙적인 숨소리. 완만하게 오르내리는 가슴.

 

더 이상 버텨낼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녀가 완전히 잠든 걸 확인해도, 코토리는 한동안 걱정어린 시선을 떼지 못했다. 콕 찝어 말할 수 없지만 뭔가 좀 이상했다. 그렇지만 이미 잠든 사람에게 물어볼 수는 없는 법. 그녀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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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쨩 잔다 근데 잘 못 잔다 으헤헤헤(????) 대본체가 아닌 글로는 꽤 쏘롱을 달릴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듭니다. 이 일단은 적당히 느긋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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