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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즈 담당 프로듀서는 죽을 만큼 후회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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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18, 2016 19:13에 작성됨.

원작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A-1 Pictures

“한 번 쓱 본 거로 이렇게 혼자서 나오다니.”
그리곤 안경을 고쳐 썼다. 굳은 표정을 한 안즈의 모습이 안경알에 또렷이 비춘다.

“오늘 여기에 온 목적이 뭐야?”
안즈는 치나츠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치나츠는 안즈의 눈빛을 그대로 정면으로 받아내면서
“네가 지금 생각하는 거.”
그저 태연하게, 정말 태연하게 대답했다.

“탐색 목적이야?”
안즈의 물음에 치나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넌 이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탐색 목적만으로 올 필요가 없다. 꿍꿍이속이 더 있다고.”
치나츠가 안즈에게 다가왔다.
“맞아, 어디까지나 탐색 목적이야. 안즈 쨩을 시험해 보려고 왔을 뿐이지.”
조금 전까지 따분해 보이던 표정을 유지하던 치나츠가 입술을 조금 비틀었다. 웃음. 어딘가 비틀린 웃음, 비웃음이다.

“시험? 안즈가 오오츠키 유이와 싸울 만한 상대인지 판단하러?”
안즈가 치나츠를 똑바로 올려다보면서 따지듯이 물었다. 치나츠는 안즈를 똑바로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맞아.”
“그런 이유로 토크 때 안즈를 공격했어?”
“그건 조금 다르네.”
치나츠는 코웃음을 쳤다. 안즈의 말이 가소롭다는 듯이.

“안즈 쨩이 내 생각대로 움직일 만큼 단순한 아이인지 확인하려고 그랬어.”
안즈는 치나츠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바로 이해했다. 치나츠가 안즈를 공격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수단일 뿐. 안즈를 시험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럼 나는 그쪽 말에 촬영 내내 끌려다닌 거였네.”
안즈는 이를 악물었다. 목구멍이 분한 감정으로 가득 찼다.
치나츠는 안즈의 심리를 꿰뚫어 보고 안즈를 이리저리 움직여 가지고 놀았다. 마치 장기 말을 다루는 것처럼.

그때와 똑같다. 유이가 346에 와서 안즈를 도발했던 때처럼 안즈는 치나츠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다.

“대단하네. 오오츠키 유이가 시켰어?”
“아니, 유이 쨩은 관계없어. 어디까지나 내 의지로 나온 거야.”
의문이 하나 풀렸다. 이미 탐색을 마친 유이가 안즈를 또 탐색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쪽은, 그래, 책사 같네.”
“나는 나 자신을 책사로 칭할 생각은 없어. 그렇게 불리는 것도 별로고. 나는 책을 조금 많이 읽었을 뿐이야.”
치나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판단한 바로는 안즈 쨩은 주관이 약해. 이렇게 쉽게 끌려다닐 정도니까. 안즈 쨩을 시험해 본 결과는…….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치나츠는 그 말만을 남기고 다시 자기 갈 길을 갔다. 안즈는 치나츠를 붙잡거나 치나츠의 말을 반박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 안즈 쨩, 여기서 뭐 해요?”
우즈키, 나오, 사치코가 대기실에서 나왔다. 다들 가방을 메고 있었으므로 이야기가 끝났나 보다.

“졌어.”
안즈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가방을 가지러 대기실로 들어갔다. 발걸음이 무겁다. 안즈는 패배감을 곱씹으며 혀에 퍼지는 쓴맛을 이로 씹어 억눌렀다.

안즈는 오늘 치나츠에게 졌다.
오늘은.

6월 24일

오늘 아침은 묘하게 안개가 많이 끼었다. 초여름에 낀 안개답게 지나는 것만으로도 불쾌한 기분이 엄습한다. 마치 달팽이 점액질이 피부에 닿는 것처럼 기분 나쁜 촉촉함이 온몸을 지나간다.

치나츠는 더욱이 안경을 쓰고 다니므로 이런 아침 안개에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었을 테지. 치나츠는 평소보다 더욱 가라앉은 오라를 휘감곤 소속사로 출근했다.

평소처럼 사무실에 들어가니 유이가 TV를 시끄럽게 켜놓은 채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우 같은 것에 홀리기라도 한 양 유이는 창밖의 전경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뭘 보는 거야?"
치나츠가 물었다.
"몽환적이라서 보고 있어. 딴 세상 같단 생각이 들었거든."
유이가 대답. 치나츠가 소파에 앉자 유이가 말을 이었다.

"보다 보니까 문득 옛날 생각이 나는 거 있지? 꿈속 세상처럼 보여서 그런가?"
"어느 정도로 옛날 생각인데?"
"양성소 시절."
바라보는 곳은 변함없지만 유이의 눈이 먼 곳을 응시하듯 아련해졌다.

"아아, 전에 했던 그 이야기야?"
"응, 그 이야기."
잠시 침묵. TV에서 들려오는 아이스크림 광고 송의 요란하고 발랄한 음색이 침묵을 가로 질렀다. 광고 내용은 옛날에 유행했던 상품이 요즘 복각된다는 소식이었다. 아이스크림 광고가 끝나고 이번엔 옛날 영화의 블루레이 발매 소식이 흘러나온다.

오늘은 복고 특집이라도 하나?
치나츠는 TV로 향했던 신경을 유이에게 돌렸다.

“이야기하고 싶으면, 하는 게 어때? 난 다시 들어도 상관없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네 마음이 편해진다면 말이야.”
치나츠는 소파에 앉았다. 시선은 TV로 향했지만 정신은 유이 쪽으로. 유이는 여전히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지만 치나츠와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는 것처럼 친근하게 대답했다.

“그럼, 치낫땅의 호의를 받아볼까?”
유이는 휘파람을 휘익- 불었다. 스타트 신호. 유이는 곧바로 유창한 어투로 막힘없이 말을 이었다. 몇 번이고 했던 이야기니까, 이제 와서 혀를 씹거나 말을 더듬는 일 같은 건 있을 수 없다.

“유이가 아직 양성소에서 레슨받는 아이돌 후보생이었던 시절이었지. 동기들은 하나둘 데뷔해 가는데 유이는 여전히 후보생이어서 초조해지던 시점이었어. 그때 오디션 합격 통보가 온 거야.”
그때 느꼈던 기쁨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뛸 듯이 기뻤다. 합격 통보를 알린 우편물을 보기만 해도 기쁨에 겨워 춤추고 콧노래를 절로 흥얼거렸던 그때.

“그래서 가봤는데 오디션 심사위원들이 이러더라고. 다른 아이와 착각했다. 전산 오류였다고. 아아, 그땐 정말 실망했지. 그래도 심사위원들한테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웃었어. 근데 사무실에서 나오니까 저절로 웃음이 싹 가시더라.”
이때 느꼈던 실망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가슴 한구석이 욱신거리고, 그 욱신거리는 부분에, 멍이 든 부분에 무거운 무게 추를 달아 놓은 것 같은 그런 감각.

“이번엔 아깝게 됐네. 괜찮아. 나중에 더 잘하면 되지. 그래도 인상은 좋게 남겼을 거야. 이렇게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면서 기분 전환으로 자판기에서 주스를 뽑아 먹고 사무실을 지나니까, 사무실 문이 열려있더라고. 아주 살짝. 안에서 소리가 새어 나올 정도로.”
유이의 목소리가 조금 흐려지고 굵어진다.

“설마 진짜로 올 줄은 몰랐다, 기대하고 온 얼굴 봤어? 이야아, 그렇게 기대했던 걸 보니 괜히 미안해지는데?”
유이가 목소리 톤을 바꾸었다. 유이는 1인 연극을 하는 것처럼 목소리 톤을 바꿔가면서 여러 사람이 나눈 대화를 흉내 내었다. 그날 들었던 대화가 유이의 목을 통해 재연된다.

“전산오류인 건 알고 있었는데 말이야, 일일이 수정하기 귀찮아서 그냥 전부 보내버렸지. 그런데 진짜 오네?”
웃음소리. 창가에 비친 유이의 입가는 올라가지 않았다.

“어차피 뜰 것처럼 보이지도 않네? 오히려 여기까지 불려온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알아야지! 그건 그렇지. 갸루 컨셉은 죠가사키 자매가 인기란 말이야, 저런 애는 써먹을 데가 없어.”
유이는 손가락으로 창문을 톡톡 두드렸다. 유이의 손가락을 타고 창문에 맺혀있던 물기가 흘러내린다. 창문이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어쩜 저렇게 주제를 모를 수가 있을까? 그래도 우리한테 고마워해야 해. 여기 오는 동안 꿈에 부풀어서 분수도 모르고 기뻐했을 거 아니야?”
유이가 숨을 조금 끊어 쉬었다. 유이는 원래 목소리 톤으로 말을 이었다. 녹음기 같던 유이의 목소리에 유이 자신의 감정이 돌아왔다.

“와~ 정말 화가 났어. 그런데 문을 열고 항의할 수도 없잖아? 그래서 씩씩거리면서 무작정 걷고 또 걸었어. 그러다 근처 공원까지 갔지. 어떻게든 기분을 풀고 싶었어. 공원을 목적으로 걸은 건 아니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공원에 있었어.”
간혹 이런 경우 있잖아? 유이가 치나츠에게 동의를 구한다. 치나츠는
“아주 가끔.”
부분적으로 동의했다.

“공원에는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도 있었고, 가족끼리 나들이 온 사람도 있었고, 사람이 꽤 있었어. 사람이 꽤 있었지만 그땐 안중에도 없었지. 유이는 머리를 식히고 싶었거든. 그래서 움직였지. 춤을 췄어. 레슨 때 몇십 몇백 번이고 췄던 걸 힘을 실어서 췄어.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힐끗 보긴 했지만 제대로 보는 사람은 없었어. 사람들은 춤추는 유이 옆을 그냥 지나쳤고, 유이도 지나가는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춤에 집중했어.”
유이는 구두 굽으로 바닥을 툭툭 쳤다. 굽 소리가 댄스 리듬을 탔다.

“그렇게 정신없이 춤을 추니까 스트레스가 풀렸어. 그리고 스트레스가 풀리니까 유이를 보는 시선 하나를 느꼈어.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를 가로질러 유이만을 바라보는 시선. 좌우로 산개하는 사람들의 시선 사이로 곧은 시선이 유이를 주목했어.”
유이는 기쁘게 웃었다.

“프로듀서 쨩이었어. 유이가 춤을 마치자 프로듀서 쨩은 와서 말했어. 너 진짜 굉장하구나. 재능 있어. 너는 그야말로 원석이다.”
프로듀서는 그렇게 말하곤 유이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대기업 346 프로덕션의 사명이 적힌 명함. 스카우트다. 유이가 깜짝 놀랄 틈조차 주지 않고 프로듀서는 말했다.

아까 그 건물에서 나오는 걸 봤다고. 유이의 놀란 가슴이 차갑게 식기도 전에, 이번에도 프로듀서는 매끄럽게 말을 이었다.

“그쪽 사람들 진짜 별로지? 사람 가지고 놀기로 유명한 놈들이야. 오히려 그쪽하고 엮이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여기는 게 나을 거야.”
프로듀서는 혀를 찼다. 안타까운 것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아까 그 건물 쪽을 쓱 돌아보았다.

“나도 일이 아니면 그다지 상종하고 싶지 않은 놈들이야. 하지만 공교롭게도 오늘은 일이 들어왔어. 그래서 용무를 빨리 마치고 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굉장한 기세로 밖으로 나가는 아이가 있더라고. 궁금해서 뒤를 쫓아와 보니까 굉장한 원석과 만났지 뭐야? 어떤 의미론 행운이네. 너 같은 아이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
프로듀서가 다시 유이에게 시선을 맞춘다.

“이대로 끝내고 싶진 않지? 분하지? 저놈들을 후회하게 하고 싶지? 우리 쪽으로 오면 그렇게 할 수 있어. 나와 함께 가면.”
유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들어온 제의. 도가 지나치게 구미 당기는 달콤한 이야기. 사기인지 거짓말인지 의심해볼 법한 상황이지만 유이는 프로듀서를 의심하지 않았다.

“어때? 올래?”
프로듀서의 눈은 유이를 담아둔 채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으니까.

“갈래!”
유이는 그렇게 아이돌이 되었다.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해도 그날은 운명의 날이었어. 그날 프로듀서 쨩이랑 만나지 않았으면 지금의 유이는 없었을 거야.”
유이는 그날 프로듀서와 만나 아이돌을 꿈꾸던 아이돌 후보생에서 진짜 아이돌이 되었다.

프로듀서 덕분에 아이돌 생활의 혹독함과 즐거움을 알았다. 프로듀서 덕분에 스포트라이트의 빛이 얼마나 눈부신지 알았다. 프로듀서 덕분에 스테이지에 설 수 있었다. 유이는 지금도 프로듀서와 만나지 않았으면 스테이지에 서지 못했을 거로 여기고 있다.

“솔로도 재밌었지만 유닛 활동도 재밌었지. 아~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어라? 늙은이 같은 소리를 했나? 아무렴 뭐 어때? 파국으로 끝났지만 정말 소중한 만남이었는걸.”
유이는 제자리에서 빙글 돌았다. 힘차게 도는 바람에 구두 굽에 짓눌린 바닥이 높은 비명을 냈다.

“그래서, 후회를 멈출 수 없지. 아이돌 얼티밋. 그 무대에서 유이가 이겼으면 잃어버리지 않았을 테니까. 유이……난 말이야. 그 무대 이후로 그 순간을 후회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그날로 다시 돌아갈 수 있으면, 그 순간을 다시 뒤집을 수 있으면 뭐든지 하고 싶어.”
유이의 눈초리가 싸늘해졌다. 후회를 담은 눈동자가 후회를 냉소에 어울리는 온도로 식혔다. 가슴에 담으면 심장을 새까맣게 태울 정도로 뜨거운 후회가, 지금은 차갑게 표출된다.

보는 사람의 마음조차 차갑게 얼려버릴 정도로 싸늘한 시선이었건만 치나츠는 유이의 그런 시선을 한눈에 받으면서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다. 치나츠는 그저 차분하게 유이의 말을 경청할 뿐이었다.

유이는 치나츠 옆자리에 몸을 던지듯이 앉았다. 유이의 눈에 조금 전까지 품었던 싸늘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것처럼 평온함만을 따뜻하게 품고 있다.

“오늘 일 끝나고 예정 있어?”
유이가 치나츠에게 물었다. 평범한 일상에서 친구에게 평범하게 던지는 투……. 그저 평온하고 평범하게.
“딱히 없어.”
“그럼 노래방 가자! 요즘 꽂힌 노래가 있거든!”
유이는 치나츠의 어깨를 밀치면서 달라붙었다.

치나츠는 유이 때문에 살짝 기울어진 안경을 고쳐 썼다. 치나츠는 한쪽 팔을 소파 팔걸이에 걸쳐 기울어진 몸을 익숙하게 일으켜 세웠다.

유이가 이렇게 응석을 부리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치나츠에겐 익숙한 광경 중 하나다.
유이가 울적함을 숨기려고 일부러 밝게 행동하는 것도 익숙한 광경 중 하나다.

치나츠는 유이의 제안을 승낙했고 유이는 소파 위에서 그대로 뛸 듯이 좋아했다. 역시 익숙한 광경. 그리고 치나츠는 친구의 쓸쓸한 마음을 옆에서 달래는 데에도 익숙해져 있다.

-
시간이 지나도 침울함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안즈는 치나츠에게 보란 듯이 휘둘려지고 놀림 받았다. 어린아이 손에 잡힌 장난감처럼.

사무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마치 진흙길을 걷는 것처럼 무겁고 끈덕지다. 더욱이 오늘 아침은 쓸데없이 습도가 높았다. 불쾌지수가 올라가는 것도 당연하리라.

안즈는 축축한 습기와 달리 꾸덕꾸덕하게 굳은 마음속을 잘근잘근 씹으며 사무실로 출근했다.

“안즈 왔니?”
프로듀서가 안즈를 맞이했다. 다른 멤버들은 아직 출근하지 않은 모양이다. 이번에도 안즈가 1등. 일부러 노리고 일찍 온 건 아니다. 전철 시간이 미묘하게 안 맞아서 제시간에 오려면  전철을 일찍 타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안즈가 아침에 출근하면 대부분 이런 시간이다.

안즈는 평소처럼 소파에 앉았다.

“이렇게 아침 일찍 출근하는 거에 익숙해져 가는 게 무섭다…….”
안즈는 프로듀서가 듣지 않게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프로듀서가 안즈 앞에 350ml 페트병을 올려놓았다. 보리차다. 밀봉 새 제품. 안즈는 그걸 몇 모금 마셨다. 입 안의 텁텁한 기분이 보리 향에 씻겨 내려간다.
프로듀서가 안즈 맞은편에 앉았다.

“재난이었구나. 정말.”
프로듀서는 씁쓸한 어투로 말을 꺼냈다. 정확한 언급은 없지만 치나츠에 관한 이야기겠지. 위험한 초청에 난입한 치나츠. 프로듀서는 치나츠의 난입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미리 알 방법도 없잖아. 어쩔 수 없어.”
안즈는 보리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기분 탓인지. 보리의 쓴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미안하다.”
프로듀서가 고개를 숙였다.
안즈는 페트병 뚜껑을 닫고 페트병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리곤 손을 뻗어 프로듀서의 턱을 잡아 그대로 프로듀서의 고개를 올렸다.

“프로듀서가 미안해할 것도 없고 고개를 숙일 것도 없어. 그러니까 이러지 마.”
안즈는 프로듀서와 눈을 맞추고 또박또박 말했다. 안즈는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하게 프로듀서와 눈을 맞추었다.

“적어도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프로듀서가 사과할 일은 아니다. 애초에 유이와의 대결 자체가 안즈가 억지를 부려서 성사된 일이니까. 안즈는 프로듀서의 얼굴에서 손을 떼었다. 프로듀서는 안즈가 잡았던 턱을 쓰다듬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안즈가 잡았던 곳에 미묘한 온기가 남아 프로듀서의 턱을 간지럽혔다.

“그래, 알았어. 대신에 오늘은 선물 하나 해줄게.”
“사탕이야?”
안즈가 눈을 빛낸다. 프로듀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 나선 눈초리를 묘하게 끌어올리면서 짓궂게 웃었다.

“그건 아니지만 다른 의미로 좋은 거야. 아이돌의 컨디션을 관리하는 것도 내 업무야. 스트레스를 제대로 해소할 만한 걸 준비할 테니까 기대하고 있어줘.”
그 후 프로듀서는 책상 업무로. 안즈는 합동 레슨을 위해 다른 아이들의 출근을 기다렸다.

안즈는 기다리면서 핸드폰 화면에 집중했다. 동영상 플레이어에서 안즈가 만든 MMD 영상이 재생된다. 음악이 없어 심심한 영상이지만 음악은 머릿속에서 재생되고 있고, 어디까지나 동작 참고용으로 만든 영상이라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

안즈는 MMD 영상을 만든 후로 영상으로 틈틈이 안무를 정리했다. 완벽하게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도록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안녕하세요!”
우즈키 출근. 안즈는 영상에 너무 집중해 우즈키가 사무실로 들어온 것도 몰랐다. 프로듀서의 인사를 받은 우즈키가 안즈 곁으로 살금살금 다가왔다. 우즈키는 안즈의 어깨 위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와! 이거 뭐예요? 잘 만들었네요!”
귓가에서 갑자기 울린 소리 때문에 안즈는 앞으로 고꾸라질 뻔한 거로 모자라 이상한 비명까지 질렀다.

“앗, 죄송해요. 놀래려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아아, 놀랐잖아. 진짜…….”
안즈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놀랐을 때 터치 화면을 건드렸는지 동영상 화면이 200배 확대로 넘어갔다. 안즈는 화면을 줄이고 정지시켰다. 그때 마침 나머지 멤버 셋이 나란히 출근했다.
들어오자마자 셋의 시선이 안즈와 우즈키에게 몰려들었다.

“무슨 일이야? 냥.”
“이거 3D 동영상인가요?”
“MMD인가요? 전에 본 적 있어요.”
안즈는 재빨리 화면을 끌려고 했으나 하필 손이 미끄러져 영상이 재생되었다.

“어라? 이 동작 우리 안무랑 비슷하네요?”
우즈키를 시작으로 멤버들 전원 동영상 내용을 눈치챘다.
소란을 느낀 프로듀서도 소파로 다가왔다.

“이게 뭐야?”
프로듀서는 화면을 보곤 얼굴을 긁적였다. 프로듀서도 역시 멤버들처럼 동영상 내용이 뭔지 알아차렸다. 프로듀서는 잠시 말문을 닫았다. 프로듀서의 목구멍에서 곤란함과 흥미가 서로 입 밖으로 나가겠다고 다툰다.

안즈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괜한 짓을 들킨 건가……. 상의 없이 이런 걸 만들었으니 혼날지도 모른다. 보안 문제도 있으니.

“누가 만들었어?”
“안즈가…….”
프로듀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듀서는 어떤 말을 꺼낼지 결정했다.

“잘 만들었네. 교재로 써도 되겠어. 아직 미발표 안무니까 어디 올리진 말아라. 아니, 너한테는 이런 말까지 할 필요는 없으려나. 알아서 잘할 테니까.”
프로듀서가 기뻐 보인다. 왜 그럴까?

“안즈 쨩, 이거 저한테도 보내주실 수 있나요? 참고하고 싶어요!”
“이게 있으면 안무를 쉽게 외울 것 같네요.”
“참고 자료로 좋을 것 같네. 냥. 미쿠도 보고 싶어냐.”
“어? 그럼 저도요!”
우즈키, 미호, 미쿠, 나나가 안즈를 향해 눈을 빛냈다. 안즈는 프로듀서를 올려다보았다. 프로듀서는 새침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눈꼬리로 실실 웃고 있으므로 안즈는 볼에 바람을 불어 넣었다.

안즈의 볼이 햄스터처럼 부풀어 올라서야 프로듀서가 입으로도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마음대로 해. 공개 전까지 유출만 안 되면 상관없으니까.”
“알았어.”
안즈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쳤다……. 안즈는 메일 앱을 띄우고 잠깐 손가락을 멈추더니 프로듀서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지쳤으니까 대신 보내줘.”
“내가 보내도 괜찮아?”
안즈는 반쯤 떠밀듯이 프로듀서의 가슴에 핸드폰을 밀었다. 프로듀서가 핸드폰을 받자 안즈는 소파에 삼켜지듯이 반쯤 드러누웠다.

안즈는 프로듀서에게 동영상 파일 경로를 알려주었다. 프로듀서는 핸드폰을 몇 번 두드려 멤버 전원에게 동영상 파일을 보냈다.

4명 동시에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안즈는 핸드폰을 받아 보낸 메일함을 확인했다. 제목은 아무렇게나 친 의미 없는 문장이고, 받는 사람 리스트는 모두 제대로 체크되어 있다. 본문 내용도 의미 없는 문자 나열. 첨부 파일엔 동영상 여러 개…….

카메라 구도를 바꿔서 만든 영상 몇 개가 있으니까 당연히 첨부 파일은 여러 개.
그런데, 어째 하나 더 있는 것 같다?

“프로듀서, 혹시 폴더째로 보냈어?”
“응? 그런데?”
“아……. 뭐, 됐어.”
파일이 하나 더 들어갔구나.
안즈는 핸드폰 화면을 껐다. 봐도 곤란한 건 아니니까.
타이밍 좋게도 다른 아이들이 문제의 파일을 확인했다.

“이건 안즈 쨩 노래네요?”
유즈키의 핸드폰에서 안즈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안즈가 MMD로 만든 안즈의 노래 동영상. 이건 안즈가 MMD 시험용으로 만든 영상이다. 이쪽은 이미 공개된 곡이고 음원도 있으므로 음악까지 넣은 완전판이다. 안즈는 MMD를 작업할 때 안즈의 노래 영상과 나아가라☆소녀여 영상을 같은 폴더에 저장했다.

안즈가 영상을 핸드폰에 전송할 때 폴더째로 넣었기에 안즈의 핸드폰에 이 영상이 들어갔다. 그리고 프로듀서가 폴더째로 다른 멤버들에게 전송하는 바람에 다른 멤버들 핸드폰에도 이 영상이 전송되었다.

“이렇게 보니까 진짜 뮤직비디오 같네요.”
멤버 넷 다 안즈의 노래 동영상을 감상한다. 시험 삼아 만든 거라서 화면 효과를 이것저것 넣어본 게 멤버들의 눈에 들어온 모양이다. 넷 다 흥미롭게 영상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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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는 4월 22일에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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