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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치마스(RM)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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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09, 2016 21:22에 작성됨.

'생각해보니까 바보같았다.'

 

'진짜 나'라느니, '가짜 나'라느니. 쓸데없이 이상한 고민을 해버렸다. 연기든, 뭐든 그걸 행하는 주체가 나 자신인만큼 진짜도, 가짜도 의미가 없는데...어쩌다가 이런 고민까지 하게 된 거냐, 나.

 

*

 

방과 후. 봉사부에서의 일이었다.

 

"짜잔! 시키냥의 깜짝 물약! 이걸 마시면 High한 기분이 된다구!"

 

이치노세가 갑자기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더니 수상쩍은 녹색의 용액이 든 플라스크 병을 가져왔다. 정말 수상하기 짝이 없는 용액이었다. 유키노시타가 눈쌀을 찌푸리며 묻는다.

 

"임상실험은 해 본 거니?"

 

"물론! 실험용 흰 쥐에게! 검사 결과 뇌파의 반응이 이전보다 몇 배는 더 빨라지고 흰 쥐 본인도 매우 High한 기분이 되어서 이리저리 날뛰었다구!"

 

"......그 뒤에는?"

 

"픽 하고 쓰러져 버렸지만."

 

위험하잖아, 그거. 뒷이야기는 안 했지만, 그 쥐, 미쳐날뛰다가 죽은 거 아니야?

 

"엄청 위험하다는 거 아니야?!"

 

"에에~ 역시 그러려나~"

 

유이가하마의 경악찬 표정에 이치노세는 재미없다는 듯한 어조로 병을 흔들었다. 결국 정체불명의 녹색 용액은 화분에 버려졌다. 그러자 갑자기 화분에 심어져 있던 식물이 부르르르 하고 진동하더니 픽 하고 꺾여 쓰러졌다...역시 위험하잖아 저거.

 

다시 침묵이 내려앉는다. 언제나 항상 가장 먼저 화제를 꺼내던 유이가하마도 지금은 침묵하고 있다. 봉사부에 다른 사람까지 끼어서 침묵이 내려앉은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치노세가 어떻게 나설지, 그녀가 어떻게 반응할지 살피고 있는 거다.

 

이치노세는 단순히 의자에 앉아 바닥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기분이 들쑥날쑥. 또 뭐에 흥미를 붙이며 일어날지 기다리는 중이다.

 

한 몇 분간 조용했을까. 갑자기 이치노세가 고개를 팍! 들어올리며 외친다.

 

"그러고보니, 나 이번에 데뷔 무대가 잡혔어!"

 

"엣? 진짜! 대단해, 시키냥!"

 

드디어 데뷔 무대인가...이런 녀석이 아이돌이 되어도 괜찮은 건가, 라고 한순간 생각했다. 흥미가 떨어지면 무대에서 공연을 하던 도중에도 나가버릴게 뻔한 그녀이다. 만약 첫 데뷔 무대의 반응이 시원찮으면 데뷔 공연 도중 탈주라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346 또한 이치노세의 의외성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거다. 그 날 보았던 그 덩치 큰 사람의 반응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어떻게 이치노세의 고삐를 쥐고 흔들려고 그러는 걸까.

 

"당신 같은 사람도 기어코 데뷔를 하는구나."

 

"엑. 유키냥, 그건 너무한 말인걸. 나를 대체 어떻게 보고 있는 거야."

 

"귀염성 없는 고양이. 그리고 유키냥이러고 부르지 말라고 했을텐데?"

 

이치노세를 째려보는 유키노시타. 이치노세는 그녀를 비웃듯이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냐하하하─. 그 얼굴을 보고 싶었다니깐, 유키냥. 그 표독스러운 표정. 유키냥만의 매력이라고 봐."

 

"...그런 매력은 필요업다고 생각한단다. 그 이전에 내 매력은 그것만이 아니고."

 

뭐, 여러가지 있기는 하지. 외모라던가, 독설이라던가, 성격이라던가...잠깐이지만 유키노시타가 아이돌로 데뷔한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팬들은 분명 유키노시타의 독설을 좋아라 하며 반기는 M들이 아닐까? 그런 M들의 찬양을 받으며 무대에 서 있는 유키노시타...우와, 뭔가 깬다.

 

"방금 나를 대상으로 이상한 망상을 하지 않았니? 망상가야 군."

 

"그런 것 하지 않았다."

 

들키는 줄 알았다. 여자의 감이라는 녀석은 역시 무섭죠.

 

"어, 어쨌든 시키냥이 데뷔한다는 걸 알린다는 건, 우리가 무대에 찾아와줬으면 하는 거지?"

 

유이가하마가 화제를 다시 이치노세의 데뷔로 돌린다. 나이스 어시스트다, 유이가하마.

 

"냐─. 와도 좋고 안 와도 좋지만. 참고로 티켓은 공짜가 아니야? 내 지인이라는 것만으로 티켓을 막 뽑아 전달해주는 건 매너 위반이거든. 난 팬들을 평등하게 대할 거니까."

 

평등(웃음). 전부 재미없는 사람들이라고 낙인을 찍거나, 개중에서 재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편애할 거다. 이치노세는 그런 녀석이니까. 그보다...이런 흐름이면 나도 따라가게 되는 건가.

 

"그래? 유키농, 힛키. 우리 다 같이─."

 

"싫다. 안 갈거야."

 

"이번에는 나도 히키가야 군과 같은 의견이야, 유이가하마 양. 사람이 많은 곳은 싫거든. 특히 시끄러운 곳은 더욱더."

 

대인관계가 영 좋지 못 한 외톨이라서 그런게 아니다. 그냥 그런 장소에 가는 것이 귀찮은 거다. 또 이치노세가 무슨 사고를 칠지도 모르고. 그녀의 일로 골치가 아픈 건 평일 정도면 충분하다고 본다. 그러자 유이가하마는 어깨를 떨구더니,

 

"......다 같이 가고 싶었는데. 나, 아이돌의 데뷔 무대에 가 본 적 한 번도 없어서, 조금 기대도 해봤는데......"

 

"......"

 

유키노시타가 힐끗힐끗 유이가하마와 책을 몇 번 번갈아가며 돌아본다. 아, 이건 글렀구만. 유키노시타는 결국 책을 덮고 큼큼, 헛기침을 하더니

 

"한 번쯤은 견학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우리가 받은 의뢰는 이치노세 양을 지켜보는 것. 그녀가 사고를 치면 수습하는데 조금이라도 손을 보태야 하겠지. 그게 봉사부로서의 책임이자 자존심이니까."

 

"유키농, 고마워!"

 

"아, 알겠으니까 너무 달라붙지 말아주렴, 유이가하마 양."

 

오늘도 찐한 유루유리 한 편을 보았다. 역시 이 녀석, 유이가하마에게 무르다.

 

"힛키. 같이 갈 거지?"

 

"......"

 

주변의 분위기에 맞춰 흘러가는 건 싫어한다. 항상 그런 분위기 밖에서 놀던 나였으니까. 아니, 밖에서 놀았다기보다는 쫓겨나서 갈 곳이 거기 밖에 없었지. 그렇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봉사부원들이니까.

 

"...뭐, 선행투자, 그 정도로 여길까."

 

내가 유키노시타를 무르다고 말 할 입장은 아닌 모양이었다. 슬쩍 시선을 돌려 이치노세를 본다. 기분 나쁜 미소. 이 녀석, 또 이상한 걸 생각하고 있구만.

 

*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면 아이돌의 라이브 무대라던가, 데뷔 무대에 찾아가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보통 TV에서 나오는 걸 보는 정도니까......최고다 야요이짱!

 

 

 

"생각보다 작은 라이브장이로구나. 예상 외네."

 

 

 

"346프로에 있으니까 좀 더 큰 곳에서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복차림의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 전교 문과 3위의 나의 어휘로도 그녀들의 복장에 대해서 멋있게 묘사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도 그럴게, 저런 옷들의 브랜드명 같은 건 잘 모르거든.

 

 

 

어쨌든 옷걸이가 좋으니 옷도 살아나는 거라고, 그녀들의 외모는 이런 작고 어두운 라이브장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어이 거기. 사진 찍으려 들지 마라. 초상권 침해라고.

 

 

 

"아무리 대기업 소속이라고 해도 그 아이돌을 제대로 밀어줄 수 있는 건 팬들과 대중이야. 정말로 뜨지 못 하는 아이돌이라면 대기업이 열심히 밀어준다고 해도 결국 뜨지 못 하는 것처럼."

 

 

 

"...뭔가 좀 그렇다..."

 

 

 

그보다 슬슬 무대가 시작될 때다. 관객석을 비추는 조명이 어두워지고 무대만을 밝힌다. 그리고 요란한 노랫소리와 함께 이치노세가 웃는 얼굴로 뛰쳐나온다.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괜히 설명하기도, 소개하기도 귀찮으니 대충 노래하고 내려갈게요!"

 

 

 

저런 소개로 괜찮은가.

 

 

 

"my secret eau de toilette.

 

 

 

욕조에 수지를 가득 채우고 알몸으로 잠기면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이 방울방울 떨어져

 

chu chu chu─인체실험 중♡"

 

 

 

이런 가사로 괜찮은가. 순간 욕조에 몸을 푹 담근 알몸의 이치노세를 상상해버렸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자극이 강하다. 남자고교생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노려봐주지 말아주세요, 유이가하마 씨.

 

 

 

"포화되면 알콜에 녹여서 휘젓고

 

잔류물은 치욕적일 정도의 나

 

너를 홀리는 향기에 투여하여

 

자아 magical show의 막이 오른다 따란따란"

 

 

 

이치노세의 성향이 성향이다 보니 전파송 같은게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조금 자극적인 가사인 걸로 제외하면 꽤 잘 뽑힌 것 같다.

 

 

 

"사향에 숨긴 비밀의 분자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흡입하고

 

너는 나에게 몰두하게 될 거야"

 

 

 

방금 전에 한 소리 취소. 비밀의 분자를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흡입한다는 거...과대망상일 수도 있지만 마약 한다는 이야기로 들리지 않나 싶다.

 

 

 

"la la love potion 뇌하수체에 전해져라

 

동공이 풀리는 그 순간을 보여줘

 

my secret eau de toilette

 

곧 너는 falling love의 조짐을 보일테지

 

사랑은 화학식 네게는 분명 광기의 사태"

 

 

 

노래는 4분을 넘기고 나서야 끝났다. 잠잠한 관객석. 그때 갑자기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최고다 시키냥!"

 

 

 

이치노세는 관객들의 반응에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했지만 곧 환하게 미소지으며 하얀 가운 안에서 약병들 몇 개를 꺼내 던졌다.

 

 

 

"내가 직접 만든 향수! 한 번 잘 써봐!"

 

 

 

마치 야구경기장에서 관객석으로 날아오는 홈런볼을 잡으려는 것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이 손을 뻗어 그걸 잡으려고 든다. 뭔가 미친 것 같아. 그만큼 흥분하고 즐거웠다는 걸까. 뭐...솔직히 노래 자체는 괜찮았다. 가사가 문제라서 그렇지.

 

 

 

"시키냥 정말 굉장해!"

 

 

 

우리들 중에서 가장 흥분한 사람은 유이가하마였다. 순수하게 친구의 대단함에 감탄하고 있는 유이가하마. 이치노세도 이쪽을 발견했는지 손을 흔든다. 정말로 우리를 보고 한 것인지, 단순히 팬서비스인지는 모르겠지만 환호성은 방금 전보다 더 커졌다.

 

 

 

*

 

 

 

"냐아─. 생각보다 더 재밌었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들 사이에 끼어든 이치노세가 엄청 흥분한 듯 외친다.

 

 

 

"예상 외의 반응! 재미없는 반응이라면 시시해서 그냥 나갈 생각이었는데 신선해서 좋은걸?! 아이돌 일에 질리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네!"

 

 

 

"그거라면 다행이지만 너무 달라붙지 마라.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라면 모를까, 나는 곤란해."

 

 

 

혹시 몰라 고개를 살짝만 숙여도 얼굴의 절반을 가릴 수 있을 정도로 챙이 아래로 기울어진 모자를 가져오길 잘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데뷔를 했으니 슬슬 이치노세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많아질 것이다. 그런 이치노세의 곁에 나 같은 남자가 붙어있는 걸 알면 여러가지로 시끄러워 지겠지.

 

 

 

"하아? 힛키냥. 재미없는 걸 신경쓰네. 무슨 걱정하는지 알겠지만 그런 녀석들 무시해 버리라고."

 

 

 

"이쪽에서 무시한다고 저쪽에서 시비를 걸러 오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전쟁 같은 건 일어나지 않겠지."

 

 

 

"아하하하!! 그것도 그렇네!"

 

 

 

그렇게나 즐거운 걸까. 이치노세는 아까부터 계속해서 웃고 있었다.

 

 

 

"자~ 그럼 난 여기까지."

 

 

 

그러다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우리들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한다.

 

 

 

"또 들러야 할 곳이 있어. 그러니 오늘은 여기서 바이바이~. 다음에 또 봐!"

 

 

 

이치노세에게 방랑벽 같은게 있다는 건 우리들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굳이 말리지 않았다. 그녀가 가버리고 난 뒤, 유키노시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난 그녀가 아이돌을한게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

 

 

 

"유키농도 그렇게 생각하지?! 시키냥, 정말로 반짝반짝 거렸어!"

 

 

 

"그것만이 아니야. 본인도 아이돌 일의 신선함과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았어. 그녀 말대로 질리기 전까지는 즐겁게, 그러니까 더 열심히 할 수 있겠지. 보람이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게 될 테니까. 어쩌면, 우리들이 아니어도, 아이돌로서의 일이 그녀를 갱생하게 만들지도 몰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즐겁게 웃는다. 그건 분명 부러운 일이다. 동시에 축하해줘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굳이 갱생한다고 표현할 거 있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게 그 녀석다운 거 아니야?"

 

 

 

"그런 견해도 있을 수 있지. 결국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다르게 보이는 거니까."

 

 

 

유키노시타의 말대로 이치노세가 아이돌 일을 하는 건 좋은 선택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가 지금의 그녀에서 변하지 않았으면─하고 바란다.

 

 

 

방랑벽이 있고, 향기를 쫓아다니고, 수상한 화학실험을 하는 괴상한 소녀이지만, 그 모습이, 이치노세 시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 것 같아서 그 모습 그대로 있어주면 좋겠다고 내심 생각한다.

 

 

 

멋대로 기대하고, 멋대로 자기의 이상을 덧씌우는 건 피해야 할 자세지만...아이돌은 대중의 '우상'이니까. 한 번쯤은, 기대해 보아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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