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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치하] 『어느 봄날의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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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03, 2016 00:00에 작성됨.

파란 캔버스에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 햇님. 그렇게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포근한 날씨. 곧게 쭉 뻗은 길을 따라 양 옆에 펼쳐져있는 벚나무들. 봄이라는 걸 한 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활짝 꽃이 피었습니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이 가지를 흔들면, 살랑살랑 춤추듯 내려오는 여린 꽃잎들.

 

읏차, 그 사이로 대담하게 발을 옮겨봅니다. 흐음.....뭔가 간질간질한 기분.

 

"흐흥~ 후흐흥~♪"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즐거워요. 단순히 길을 걸어가는 것뿐인데요. 에헤헷, 봄에는 사람을 들뜨게 하는 마력이 있다는 걸까요?

 

"잠깐, 하루카."

 

그 때 뒤에서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너무 앞서 걸었던 탓일까요, 그만 동행자를 깜빡하고 말았던 모양입니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자 착실히 이 쪽을 따라오고 있는 사람, 치하야쨩이.

 

"혼자 가면 어떡하니."

 

"미안 미안. "

 

이제는 둘이서 나란히 이 길을 걸어갑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요? 전보다 더욱 간질거리고, 두근거리기 시작했어요. 보고 있는 건 분명 똑같은 풍경일텐데. 이러다 재채기라도 나오지 않을까,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다던가 하는 건 아닌데. 쓸데없는 걱정을 속으로 삼키고 대신 다른 것들을 재잘거려봅니다.

 

"오, 오늘은 정말 날씨가 좋네. 그치?"

 

"그렇네. 내일은 비가 내린다는 모양이지만."

 

"에, 정말?"

 

"적어도 오늘 본 일기예보에서는 그랬어."

 

"그렇구나....."

 

아쉬운 눈치로 벚나무들을 살폈습니다. 앞으로 닥쳐올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화려하게 만개 중. 둘만이 보기에는 좀 아깝다는 생각과 함께, 둘이서만 볼 수 있어서 기쁘다는 조금 나쁜 쪽의 것도 살포시 고개를 내미는 중. 어느 쪽 장단을 맞춰야 할 지 저로서는 잘 모르겠어요.

 

"치하야쨩, 벚꽃도 잼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거 알아?"

 

"들어본 적은 있는 것 같아."

 

"무슨 맛일까 궁금하지 않아?"

 

"글쎄, 어떨까."

 

"다른 건 몰라도 향은 되게 좋을 것 같은데."

 

살짝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며, 아무래도 좋을 법한 회화를 나누며 우리들은 쭉 걸었습니다. 그렇게 한 5분 정도가 지났을까, 언제까지나 이어지겠거니 생각했던 핑크빛 터널도 끝을 보이고 마네요. 우뚝 멈춰서고 만 저. 사라져가는 꽃향기를 쫒아 고개를 돌렸지만 이내 사그라들고 맙니다.

 

"흐음....."

 

여기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여러 사람들이 오고가는 도로변과 마주하게 됩니다. 바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돌아갈 수도 없는 길. 그치만 이대로 떠나기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미련이 남습니다. 왜 이럴까. 비가 오고나면 사라지고 말 이 날의 광경을 머리 한 구석에서나마 남겨두고 싶은 걸까나.

 

음.....아닌 것 같아요. 그럴 생각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는 없겠지만, 좀 더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가 따로 존재한다고 해야할까. 그런데 그걸 모르겠어요. 대체 왜, 저는 멈춰서고 만 걸까요.

 

"하루카?"

 

앞으로 가지도 못하고, 뒤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미적거리고 있자니 치하야쨩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으, 응?"

 

목소리가 떨려와서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아, 정말 왜 이러는 거야 나.

 

"뭐해?"

 

"좀 아쉽구나- 해서! 이렇게나 활짝 핀 벚꽃들, 비가 내리면 전부 떨어져버리지 않을까."

 

"비, 그렇게 많이는 내리지 않는 것 같아."

 

"아하하, 그렇구나- 나는 또 뭐라고."

 

스스로 생각해도 뭔가 좀 이상하게 대답해버렸습니다. 괜시리 부끄러워져서 얼굴을 붉힌 저는 습관적으로 뒷통수에 손을 가져다대었습니다. 그런데.

 

"하루카."

 

조금 앞서나가 있던 치하야쨩이 이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응? 무슨 일이라도?

 

"잠깐 가만히 있어봐."

 

말없이 지시에 따르자 한 걸음, 두 걸음 거리를 좁혀오는 치하야쨩. 아- 잠깐만. 너무 가까이 온 거 아닐까? 그, 서로의 신체가 닿을 듯 말 듯해서.....굉장히 부끄러운 기분.

 

미안한데 조금만 떨어져주지 않을래?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입모양만 벙긋거릴 뿐이고.....어, 어 어쩌지? 음.....그렇네! 내가 떨어지면 되는구나! 하지만 이번에는 다리가 움직여주질 않아. 그만해 치하야쨩! 하루카씨는 아 아직 마음의 준비가!

 

"자. 이게 붙어 있었어."

 

"그, 그렇네. 고마워."

 

같은 게 아니죠. 네, 저 혼자 괜히 의식한거에요. 치하야쨩은 제 머리에 달라붙은 벚꽃잎을 떼줬을 뿐입니다. 그래요. 그랬을 뿐. 그렇게, 더욱 달아오르는 양 뺨을 숨기고 싶어 고개를 숙이려는 도중이었는데.....시야에 꽃잎이 한 장 스쳤습니다.

 

"앗."

 

좀 더 자세히 보니 치하야쨩 머리에도 갈 곳을 잃은 벚꽃잎 한 장이 정차 중. 후훗, 원래 본인은 모르는 법이죠.

 

"치하야쨩."

 

"응?"

 

"잠깐만 거기 있어볼래?"

 

당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 똑같은 지시를. 멍하니 서 있던 치하야쨩은 곧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괜찮아."

 

그러고는 푸른 기가 도는 장발을 더듬거리기 시작합니다. 아, 치사해. 나한테는 멋대로 손을 대놓고서는. 이렇게 된 이상 이 쪽도 가만 있지는 않을 거에요.

 

"어흠, 거기 동작 그만."

 

"그러지 않아도....."

 

곤혹스러운 듯 내뱉는 말을 무시하며 치하야쨩의 머리 위로 한 팔을 쭉 뻗었습니다. 마침 꽃잎은 아직 제 자리에. 좋아, 떼었다. 고작 손톱만한 꽃잎 한 점 가지고 여기까지 했어야했나- 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지만, 뭐 어떻습니까. 임무는 완수했어요.

 

"읏차, 치하야쨩 것도 떼줬어."

 

"고마워."

 

"헤헷, 천만에요."

 

그렇게 서로의 눈이 마주친 순간이었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지금 나.....치하야쨩과 아주 가까이 있어. 으으, 저는 왜 꼭 이상한 곳에서 인식해버리고 마는 걸까요. 치하야쨩은 아무 생각도 없어보이는데! 저는 또 다시 화끈해지는 양 볼을 엉겁결에 감싸쥐고는 두 눈을 감았습니다.

 

"푸, 후훗....크후흐흡....."

 

그 와중에 바로 앞에서 웃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에, 잠깐. 슬며시 눈을 뜨자, 치하야쨩은 미소를 머금은 체 제 얼굴을 가리키고 있네요. 나, 그렇게나 꼴사나운 모습 하고 있는 거야?

 

"왜, 왜 그런데? 혹시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후훗, 그게....."

 

오른손을 더듬거리자 무언가 잡혔습니다. 확인해보니 벚꽃잎입니다. 한 때 치하야쨩에게 붙어있던 그것은 어째서인지 제 콧잔등에 안착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에....."

 

"정말 절묘하게 붙어있어서, 그만.....거울이 있다면 보여주고 싶었을 정도였어."

 

"그, 그랬구나."

 

"카메라가 있었으면 좋았을지도."

 

"우우.....그렇게 웃겼던 걸까, 나."

 

방금 그건 단순한 우연? 아니면 무언가의 복선? 장대한 대서사시의 개막? 이건 너무 나간 것 같고. 수많은 추측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치하야쨩이 먼저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잠깐, 기다려~! 눈 앞의 사람을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망설임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습니다. 시원스럽게 떼어지는 발걸음.

 

"아."

 

쫒아가면서 깨달았습니다. 그냥, 치하야쨩이랑 같이 있고 싶었던 거네요. 둘만이서. 어느 곳이나 상관은 없지만 이왕이면 좀 전의 벚꽃길같은 아주 멋진 곳에서 말이에요. 음, 어쩌지......지금이라도 이렇게 말해볼까.

 

조금만 더 저 길을 돌아보지 않을래, 라고.

 

아니,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지금은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최선입니다. 아아- 꼭 이럴 때만 용기가 나오질 않네요. 아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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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카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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