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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 내면의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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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29, 2016 23:56에 작성됨.

내면의 악마

 


여우비. 환하게 해가 떠 있는 도중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에 난데없이 흩뿌려지는 비. 종종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던 아가씨, 시부야 린은 가느다란 빗방울이 흩뿌려지듯 자신의 뺨에 와닿은 순간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하늘은 맑았고, 일기예보에서도 비에 대해선 조금도 언급이 없었기에 혹여나 어디서 날려온 물기가 닿은 건가 생각한다. 하지만 머뭇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도 잠시, 보이지도 않는 비 때문에 옷이 젖어드는 걸 깨닫고 린은 서둘러 앞을 향해 뛰어나갔다. 장난스럽게 뛰노는 여우 같은 빗줄기 사이로 섬세하게 빗어둔 검은색 머리카락이 정신없이 휘날린다.

새로운 장난에 금방 싫증을 내는 변덕스런 여우처럼 비는 순식간에 물러갔다. 목적지가 눈에 보일 장소까지 뛰어와서는, 린은 천천히 걸음을 늦추었다. 하늘색 셔츠와 군청색 가디건 둘 다 얇은 편이었기에 습기가 스며드는 찝찝한 감촉이 그대로 느껴졌다. 청바지는 그나마 물에 젖은 것 같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도착하자마자 연습복으로 갈아입는 편이 나을 듯하다. 그렇게 생각하고서 린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린! 좋은 아침이에요!”
“우즈키. 일찍 왔네.”

축 늘어진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탈의실로 들어섰을 때, 린은 자신보다 한 발 먼저 도착한 이의 환영을 받았다. 손을 살래살래 흔들어주는 린의 인사에 환하게 미소짓는 아가씨, 시마무라 우즈키. 그녀 또한 여우비에게 한껏 당한 것인지 입고 있는 상의와 치마가 물기를 머금은 게 보였다. 위아래로 훑어보는 린의 시선을 깨닫고는 우즈키는 부끄러운 듯 뺨을 살짝 붉혔다.

“그게,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젖어버리고 말아서요. 마를 때까지 연습복으로 미리 갈아입으려구요.”
“그렇구나. 나도 마찬가지야.”
“에헤헤, 린도 달려온 건가요? 둘 다 평소보다 빨리 출근했네요.”

그 말에 흘끗 벽에 걸려있는 시계로 시선을 돌린다. 과연 평소의 출근시간보다 십여분 정도 이른 시간이었다. 오늘의 일정도 어차피 연습실에서의 레슨이 대부분이었던 터이다. 느긋하게 옷을 갈아입고 미리 몸을 풀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린은 우즈키의 곁에 나란히 섰다.

[찌이익]

“......”

가디건을 벗어서 옷걸이에 걸어두었을 때였다. 바로 곁에서 치마 지퍼를 내리는 소리가 유독 선명하게 들려온다. 이른 시간에 우즈키와 단둘이서 있다는 사실에 그렇지 않아도 약간 설렌 기분이 되었던 린은 신경을 잡아끄는 그 소리에 움찔 어깨를 떨어버리고 말았다. 곧이어 사르륵, 옷자락이 아래로 떨어지는 기척이 들렸을 때 아가씨는 의식적으로 반대편을 향해 고개를 돌려버렸다.

딱히 의식할만한 일이 아닌 걸지도 모른다. 그냥 평범하게 옷을 갈아입을 뿐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상대에게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상태라면 같은 성별이라고 하더라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에 젖은 상의를 걸쳐입고 아래로는 자그마한 속옷만을 차려입고 있는 우즈키의 모습을 상상하고서, 린은 살짝 자괴감을 느끼고 말았다.

달칵. 벗어내린 치마를 옷걸이에 매달아 사물함 안에 넣어둔 걸까.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할수록 두근거리는 호기심이 계속해서 강해져서, 린은 결국 흘끔 곁눈질을 하였다. 스스로의 욕망을 이기지 못한 덕분에 살짝 위로 들어올려진 상의의 끝자락 아래로 하얗게 드러난 아랫배와, 바로 그 부분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는 속옷의 끈과, 물기가 묻어 한층 반들거리는 광채를 내는 예쁜 허벅지가 만들어내는 광경이 그대로 시야에 잡힌다.

“......”
“흐아아, 그러고보니 머리도 축축하게 젖어서......다시 묶는 편이 좋겠네요.”

곁을 지키고 있는 이가 어떠한 심경인지 조금도 모르는 걸까. 치마를 벗어버린 그 무방비한 상태로, 우즈키는 갑자기 자신의 머리카락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연습복 바지라도 주워입은 다음 머리카락 손질을 하였다면 좋았을 것을, 생각난 일부터 바로 해야만 하는 것인지 우즈키는 그대로 탈의실의 걸상 위에 걸터앉았다. 두 손을 위로 들어올려 한쪽으로 묶어올린 머리카락을 풀어내린다. 상체가 위쪽으로 살짝 들어올려지고, 탐스러운 젖가슴이 한층 옷자락을 위로 끌어올려서 허벅지 사이로 얼핏 보이는 하얀 속옷을 보다 확연하게 드러나게 만든다. 그야말로 자극적인 모습을 하고선 소녀 스스로는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일에 여념이 없다.

어느 순간 자신이 따라서 걸상에 앉았는지 린은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즈키의 곁에 나란히 앉아있는 중이었달까. 홀린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린에게로 우즈키는 멋도 모르고 귀엽게 방긋 웃어보이기만 했다.

“우즈키......”

이름을 부르려는 목소리를 급히 목 너머로 집어삼킨다. 들리지 않은 듯, 우즈키는 다시금 머리카락을 만지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올린 덕분에 훤히 드러난 하얀 목덜미를 눈으로 훑으며, 린은 반사적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좋은 향기가 날 것이 분명한 그 고운 살결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아래로 끌어내려서 유혹하듯 살랑살랑 흔들리는 허벅지를 훔쳐본다. 보기좋게 통통한 모양새에 아래로 쭉 내리뻗어가는 선 또한 극히 아름답다. 양쪽 허벅지 사이에 형성되는 좁다란 계곡과 그 안으로 이어지는 하얀 속옷 또한 보는 이의 심장이 뒤흔들릴 정도로 뇌쇄적인 광경을 이룬다.

마음 속의 악마에게 지고 말 거야. 자꾸만 귓가에 아른아른 유혹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아서 린은 주먹을 꽈악 감싸쥐었다. 보리수나무 아래의 수행자들을 유혹하였다는 악령이 꼭 이와 같은 식으로 다가들었을까. 천진난만한 얼굴을 하고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우즈키에게서 시선을 돌려야겠다고 생각할수록, 린은 오히려 점차 더 가까이로 몸을 움직여나갔다.

“에?”

갑자기 어깨를 움츠리더니 자신을 쳐다보는 우즈키에게로, 린은 멍하게 눈을 깜박거렸다. 한동안 두 소녀의 눈동자가 서로의 색채 속에서 녹아들었다. 왜인지 붉어진 우즈키의 뺨을 쳐다보며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린은 그제서야 자신의 손이 우즈키의 허벅지 위에 올려져 있음을 깨달았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그대로 굳어버린다. 자신이 손을 움직인 적이 있었던가?

“아, 아니, 우즈키......이건......”
“......”

어떻게든 변명을 짜내려고 하지만 콧잔등까지 화끈거리는 열기 속에서 버벅거릴 뿐, 제대로 말을 꺼내지 못한다. 어쩔 줄 몰라하는 린을 쳐다보면서 우즈키 또한 귓불까지 빨갛게 얼굴을 물들이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와중에도 린의 손은 우즈키의 허벅지 위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마치 그 보드라운 살갗에서 손바닥이 떨어지지 않는 것마냥.

“나, 나도 모르게, 고의가 아니라......”

눈앞이 핑핑 돌기 시작한다. 평소 차분하고 쿨한 성격의 소유자이면서도 어째서 우즈키와 단둘이 있을 때마다 이처럼 서투르기 짝이 없는 모습만을 보이게 되는지 린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아무 말도 없이 곁에 다가와서 허벅지를 만지작거리다니, 엄청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저지른 실수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제대로 인식하고서 린은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장난이었던 것마냥 넘어가도 되겠지만, 늘상 성실한 린이었기에 그런 대처는 떠올리지도 못했으리라.

“......괜찮아요.”
“미, 미안......에?”
“저하고 린은 특별한 사이니까......만져도 괜찮아요.”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시야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수줍음 가득한 우즈키의 속삭임을 듣고서 린은 순간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그러니까......허락받은 거야? 특별한 사이였던가? 특별한 사이란 게 뭐지? 온갖 의문이 어지럽게 떠오르는 와중에 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에 대해 긍정하는 것인지도 깨닫지 못하면서.

여우비가 흩뿌린 물기가 남아있는 새하얀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훑는다. 살짝 내리누르면 말캉한 감촉과 함께 탄력적으로 마주 밀어내는 감각이 느껴진다. 물기 때문인지 살갗은 솜털의 존재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매끄러웠다. 자신의 몸을 매만지는 린의 손길을 느끼고서 우즈키는 작게 콧소리를 흘렸다. 긴장감에 옅게 떨고 마는 게 그대로 손끝으로 전해진다.

보다 편하게 애무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인지 상체를 뒤로 살짝 기울이면서 다리를 양쪽으로 살짝 펼친다. 한쪽 팔을 들어올려 몸을 뒤로 빼는 우즈키를 감싸안아주고서, 린은 조금 전보다 큰 각도로 열린 우즈키의 하체를 더듬어나갔다. 그대로 드러난 속옷을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우즈키가 부끄러워 할 것 같아서, 달아오른 시선은 억지로 우즈키의 갈색 눈동자에 집중한다. 오히려 그게 더 상대를 부끄럽게 만드는 걸지도 몰랐지만.

“괜찮아?”
“......네.”

바보처럼 또 뭘 묻고 있는 거야. 속으로 그렇게 질책을 하고서, 린은 달아오른 숨결을 한 차례 꾸욱 삼켰다. 우즈키의 숨결 또한 뜨거워져서, 짧은 주기를 두고 할딱이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비어있는 이른 아침의 탈의실에서 오로지 서로의 숨소리만이 들리게 된다. 음란한 행동을 하도록 부추기는 악마가 마음 속에 있다면, 이미 충분히 만족하고 있겠지. 촉촉하게 젖어서 도드라지게 반들거리는 우즈키의 분홍빛 입술을 멍하게 쳐다보며 린은 그렇게 엉뚱한 생각을 하고 말았다.

“기분......좋아?”
“......네. 린이 만져주는 거, 기분 좋아요......”

대답하는 우즈키의 목소리에는 옅게 울음기가 섞인 것만 같아서, 한층 야하게 들렸다. 아직도 더 끊어질 이성의 끈 같은 게 남아있는 거야? 순간적으로 우즈키를 밀치며 완전히 덮쳐버리고 싶다는 욕망을 이번에는 간신히 내리누르곤 린은 크게 숨을 헐떡거렸다. 이 이상은 정말로 곤란하다. 분명, 엄청 심각한 일이 되어버리고 말 거야. 그렇게 힘겹게, 스스로를 진정시킨다.

......아니, 애시당초 지금 진정이 될 수 있는 상황인 건가?

“하아......”

허벅지를 쓰다듬는 손이 조금씩 안으로, 안으로 침범한다. 손가락을 세워 부드러운 살결을 꽈악 붙잡아보기도 하고, 그 때문에 하얀 피부 위에 옅게 붉은 흔적이 남은 걸 지워주려는 듯 살살 문지르기도 한다. 그 행위 하나하나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위태롭게 느껴져서 두 소녀는 숨을 죽인 채 신경을 통해 전달되는 자극 하나하나에 필사적으로 집중하였다. 행위에 전념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탈의실의 시계가 째깍째깍 움직이고 있음을 아가씨들은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하는 중이었다.

“우즈키......”
“읏......”

그럼에도 점차 과감해지는 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도전해보고자 하는 심리 때문일까. 허벅지를 애무하던 손길을 움직여서 하얀 속옷에 손가락을 올렸을 때, 빗물과는 다른 무언가로 표면이 촉촉하게 젖었음을 깨닫고 린은 한 차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조심스럽게 검지로 속옷의 겉을 따라 쓰다듬는다. 순간 앓는 듯한 소리가 약하게 우즈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요염함이 녹아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처럼 황홀한 교성이.

천천히 위로 끌어올려진 손이 아랫배를 더듬다가, 마침내 속옷의 테두리 안쪽으로 파고들려고 하였을 때, 린은 탈의실 문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인기척을 느꼈다. 마치 무척이나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듯 전신의 피가 차갑게 얼어붙는 감각에 굳어버리고 만다. 우즈키 또한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은 것인지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달칵]

“어머, 일찍 도착했었구나.”
“아,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탈의실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 닛타 미나미와 아냐스타샤에게 걸상에 앉아있던 우즈키만이 간신히 인사를 했다. 후다닥 셔츠를 벗어서 사물함 안에 던져넣고는 연습복 상의를 뒤집어쓰고 있던 린은 도저히 인사를 할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간신히 연습복 바깥으로 머리를 빼낸 린이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한 채 더듬더듬 아침 인사를 하였을 때, 두 사람은 반갑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후우......”

각자의 사물함 앞으로 걸어가는 미나미와 아냐스타샤를 쳐다보다가, 린은 터질 듯이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며 길게 안도의 한숨을 쏟아내었다. 만약, 그들이 제대로 인기척을 내지 않고 탈의실로 다가왔다면......아니면 자신들이 전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그러한 경우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조금 전 자신들이 하고 있던 행위가 얼마나 무모했는지 린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스스로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마음 속에 있는 악마가 꼬드겼던 거야.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호흡을 억지로 내리누르며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자신도 이해 못할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거니까. 다시금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서 고개를 휘휘 내젓는다. 차오르는 부끄러움으로부터 도망치려는 듯 린이 입고 있는 청바지에 손을 올렸을 때였다.

“나중에 마저해요.”

곁에서 들려온 그 작은 속삭임에 린은 스르르 시선을 돌렸다. 빙긋 미소짓고 있는 우즈키의 얼굴을 넋을 놓은 채 쳐다보고 있다가, 린은 유혹의 악마가 자신의 마음 속에만 있었던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귓가에 흘러든 유혹은 도저히 뿌리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해서......

“......응.”

아가씨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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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짧게 썼던 우즈린 이야기입니다. 처음 데레마스 접하면서 최애컾을 우즈린으로 뒀었어요. 최애캐는 후미카였지만 커플링으로는 엮지 않아서 우즈린을 팠었구요. 지금은 아리후미, 카렌나오도 좋아하고 사에사치마유도 좋아하고 카에데 씨로도 이래저래 좋아하고 온갖 아이들에게 다 관심을 두게 되었지만요. 예나 지금이나 주로 쿨 아이들을 좋아하는데 시부린은 여전히 차애 수준으로 좋아해요!

 

어제 추운 곳에서 일을 했더니 저번 주부터 있던 목감기 기운이 한층 심해져서 고생 중입니다. 다들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셔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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