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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정, 그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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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29, 2016 23:34에 작성됨.

 앙상한 나뭇가지에 걸린 잎사귀가 찬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어느 추운 겨울 밤, 프로듀서는 갓길에 잠시 차를 세워두고 일정 확인을 했다. 연말이라 그런지 며칠 동안은 빼곡히 있는 일정을 보며 인상을 구기곤 담배를 태웠다. 그나마 내일이 비번인 게 다행이었다. 연기를 내뿜는 것과 동시에 메일 착신음이 울렸다. 창 밖으로 담뱃재를 털면서 확인했다. 발신인은 ‘키사라기 치하야’, 그의 담당 아이돌이다.

 ‘레슨 끝났습니다.’

 짧고 간결한 문장이 그의 성격을 짐작하게 했다. 그는 데리러 가겠다는 메일을 보내고 남은 담배를 쭉 빨아들이고는 시원하게 연기를 뿜었다. 다시 시동을 걸고 레슨 연습실로 향했다. 엔진 소리만 가득한 차 안 분위기를 바꾸려 라디오를 틀었다. 19시 정각을 알리는 차임 벨과 함께 라디오 뉴스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십니까. 12월 18일 NHC 뉴스를 시작하겠습니다.”

 앵커의 시작 멘트에 그는 작게 웅얼거렸다.

 “벌써 18일이군.”

 12월 18일. 다른 사람들은 12월 중순이라고밖에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에겐 달랐다. 키사라기 치하야의 프로듀서로 있을 날이 이제 13일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그는 엷게 쓴웃음을 지으며 액셀을 밟았다.

 때는 11월 말, 프로듀서의 계약이 끝나가자 타카키 사장이 계약 연장을 위해 그를 사무실로 부른 것부터 시작한다. 원래 프로듀서는 신입 프로듀서가 아니라 몇 년 정도 업계 일을 해왔다. 다른 사무소 사람들에게 업무 관련에선 꽤나 괜찮은 평가도 받았고, 아이돌이 힘들지 않도록 일도 적절하게 잘 받아왔기 때문에, 타카키 사장은 장기 연장을 해주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로듀서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장기 계약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장은 멈칫하며 마시던 커피를 잠시 내려놓았다. 사장실엔 침묵이 흘렀다. 무겁게 그의 입이 열렸다.

 “그렇게 결심한 이유가 있나?”

 프로듀서가 커피잔을 만지작거렸다.

 “뭐랄까요. 예전과는 다르게 점점 지친다는 게 저 스스로도 느껴지더군요.”

 그렇게 말하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입을 굳게 닫았다. 사장은 프로듀서의 얼굴을 보았다. 하지만 처음 그가 들어왔을 때의 모습과는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차갑고 속을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이다. 그러나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으니, 그렇게 말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의 말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럼 치하야 군에게도 얘기는 해뒀나?”

 잔을 거의 비운 사장이 말했다. 프로듀서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빨리 이야기해두는 게 좋지 않겠나?”

 “빠른 시일 내에 이야기하겠습니다.”

 프로듀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타카키 사장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사장실을 나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지만, 프로듀서는 아직도 치하야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프로듀서가 연습실 건물에 다다르자 멀리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치하야다. 레슨이 끝나고 내려와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다.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멈춘 차 안으로 그가 탔다. 프로듀서는 히터를 켰다.

 “오래 기다렸어?”

 “방금 내려왔습니다.”

 치하야가 손에 입김을 뱉으며 말했다. 그리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은 업무 외 시간엔 언제나 이렇게 조용했다. 둘의 성격도 그렇거니와 말주변이 없는 것 때문에 소통을 못 한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프로듀서는 컵 홀더에 끼워놓았던 따뜻한 캔 커피를 치하야에게 건넸다. 그는 조심스레 받고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손이 차가웠는지 캔을 꼭 붙잡고 있다가, 이내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잠시 뒤에 치하야가 나지막이 말했다.

 “프로듀서.”

 “왜 그래?”

 치하야가 코를 살짝 잡는 시늉을 했다.

 “담배 냄새 납니다.”

 “어…, 미안. 냄새를 뺀다고 뺐는데.”

 프로듀서는 머쓱한지 머리를 긁으며 사무소로 차를 몰았다.

 

 “난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용건 마치고 내려와.”

 프로듀서는 사무소 근처에 차를 세우고, 치하야에게 사무소에 다녀오라고 말했다. 알겠다고 짧게 대답한 그는 빠른 걸음으로 사무소에 들어갔다.

 “업무 끝났습니다.”

 “아, 늦게까지 수고했어.”

 사무소에선 사무원, 오토나시 코토리가 업무를 마치고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은 게 궁금한 듯 치하야가 말했다.

 “다른 애들은요?”

 “아무래도 TV 프로그램 방송 녹화가 길어져서 사무소로 곧장 안 들르고 집으로 갈 것 같아.”

 “그렇군요.”

 치하야는 사무소에 놓아둔 숄더 백에 레슨 복을 넣고 챙겼다. 코토리는 문 앞에서 빨리 가자며 손짓했다. 둘은 함께 사무소를 나서 밖으로 나왔고, 차와 좀 떨어진 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프로듀서를 보았다. 그가 둘이 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남은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고 불을 껐다. 치하야는 한숨을 쉬었고, 코토리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수고하셨어요, 프로듀서.”

 “예. 오토나시 씨도 늦게까지 수고하셨습니다.”

 “아, 프로듀서. 잠시 할 말이 있는데요.”

 코토리가 프로듀서에게 그렇게 말하자, 치하야는 둘이서 일 보라는 듯, 아무 말 없이 프로듀서 차에 탔다. 둘은 차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이제 며칠 안 남았는데, 치하야에게 이야기는 하셨나요?”

 그는 잠시 아무 말 없이 있다가 입을 뗐다.

 “아뇨, 아직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요?”

 코토리는 살짝 당황한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계약 만료까지 며칠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말하지 않았다고 하니 말이다. 그는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프로듀서. 이건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아두세요. 프로듀서가 지금 어떤 마음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루라도 빨리 치하야에게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주셔야 해요. 그게 최소한의 배려예요.”

그의 단호한 말투에 프로듀서는 내심 놀랐다. 항상 밝게 웃던 그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 했던 것이다. 프로듀서는 잠시 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코토리에게 말했다.

 “꼭 말하겠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코토리는 그의 말이 아직 미덥지 못 했다. 하지만 그를 믿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개입해서 치하야에게 말하면 일이 더 크게 번질 것이고, 두 사람의 관계가 영영 깨질 것 같아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알겠습니다.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사무소에서 뵐게요.”

 짧은 인사와 함께 코토리는 서둘러 갈 길을 재촉했다. 프로듀서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불안함과 초조함이 섞인 한숨이었다. 그는 저 멀리 차 안에 앉아 있는 치하야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조수석에 앉은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정신을 차리자며 손으로 얼굴을 쓸고 운전석에 올랐다.

 치하야는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으며 음악을 듣고 있었다. 자는 건지, 아니면 그저 눈을 감은 건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가 시동을 걸자 차체 진동 때문인지 치하야가 살며시 눈을 떴다.

 “아, 미안. 내가 깨웠나?”

 “아뇨. 그냥 잠시 눈만 감고 있었습니다.”

 담담히 대답한 치하야는 이어폰을 빼고 가방에 넣었다. 다시 조용해진 차 안. 프로듀서는 흘끗 시계를 쳐다 봤다. 시계는 저녁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턱을 괴고 창 밖을 보는 치하야에게 물었다.

 “치하야, 배고프지 않아?”

 “조금 그러네요.”

 그는 턱을 괸 채로 대답했다.

 “그럼 저녁이라도 먹고 가자. 내가 살 테니. 그리고 할 얘기도 있어서 말야.”

 “……알겠습니다.”

 잠깐 고민한 끝에 치하야는 승낙했다. 프로듀서는 무거운 마음으로 차를 몰았다. 왠지 모르게 가로등이 어둡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차가 멈추고 내린 둘은 말 없이 걸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주택가. 시간이 시간인 만큼 거리에 사람들은 없었다.

 “저기야.”

 프로듀서는 홍등이 걸린 작은 밥집을 가리켰다. 미닫이 문이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열렸다.

 “어서오쇼!”

 둘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주인이 우렁찬 소리로 맞이했다. 프로듀서는 살짝 웃으며 화답했다. 치하야가 그의 모습을 보고 눈이 커졌다. 평소에는 항상 차갑고 딱딱한 그가 입가에 미소를 띤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평소처럼 돌아온 그는 카운터 석에 앉았다. 치하야도 그의 옆에 앉았다.

 “오늘은 둘이군. 여자친구인가?”

 가게 주인이 물수건과 물잔을 건네며 프로듀서에게 물었다.

 “그러면 전 범죄자겠지요. 제 담당 아이돌입니다.”

 그가 익살스럽게 대답했다. 그리고 치하야에게 눈짓했다.

 “아.”

 손을 닦고 있던 치하야가 그의 눈짓을 보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키사라기 치하야입니다. 765 프로덕션에서 아이돌을 하고 있습니다.”

 “음. 아이돌은 잘 모르지만 여튼 반갑구만.”

 가게 주인은 치하야 앞에 입가심용 안주거리를 내놓았다.

 “저, 이건…….”

 “서비스다. 신경 쓰지 말고 먹어도 돼.”

 “그게 아니라 전 미성년자입니다만…….”

 손을 닦던 프로듀서가 쿡쿡 웃었다. 치하야가 눈을 흘기며 프로듀서를 쳐다보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아 보였다.

 “네가 꽤 나이가 있게 보이나 보다.”

 프로듀서의 발이 밟힌 건 순식간이었다.

 

 프로듀서가 위스키 하이볼로 목을 적시고 있을 때, 치하야는 가게 주인 추천메뉴인 돼지고기 생강구이 정식을 먹었다. 속도는 느리지만 입맛에 맞았는지 조용하게 먹는 치하야에게 프로듀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치하야. 할 말이 있어.”

 치하야는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입 안에 든 걸 삼키고는 덤덤하게 말했다.

 “프로듀서. 얘기는 식사가 끝나고 해도 늦지 않잖아요. 여유를 갖고 천천히 얘기해요.”

 프로듀서는 멋쩍은 듯 다시 술을 들이켰다. 이야기를 하겠다는 사람이 저렇게 술을 마셔대니, 치하야는 그런 프로듀서를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치하야가 식사를 모두 끝냈다. 프로듀서는 살짝 취기가 오른 얼굴이었다.

 “그래서 할 말이 뭐죠?”

 “으응. 사실은 내가…….”

 “이번 달을 끝으로 계약 만료 된다는 것과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는 거 말인가요?”

 프로듀서는 깜짝 놀랐다.

 “너 그걸 어떻게…….”

 “들었어요. 사장실 밖에서.”

 그랬다. 그날 사장실에 둘이 얘기를 하고 있을 때, 치하야가 그 이야기를 엿들었던 것이다. 고의적인 것이 아닌 순전히 우연이었다.

 “왜 빨리 말씀하지 않으셨나요?”

 치하야가 차갑게 말했다. 프로듀서는 그 말을 듣고 위축됐다. 몇 년 전에 몇 명의 아이돌을 이렇게 떠나보내고, 이런 말을 수없이 들었던 탓이었을까? 그는 치하야의 말에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 했다. 무거운 정적이 가게 안에 흘렀다.

 “안 말하려고 한 게 아니야.”

 그가 겨우 입을 열었다.

 “핑계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들어줬으면 좋겠다.”


 그가 아이돌을 처음 배정받은 것은 약 6년 전. 열의를 갖고 시작한 프로듀서 업무이거니와 첫 아이돌인 만큼, 그는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안 풀리는 날도 있었고, 담당 아이돌과 업무 상 다투는 일도 있었다. 어떤 날엔 라이브 같은 업무를 2, 3개씩 따오기도 하고, 담당 아이돌을 TV 프로그램에 꽂아줄 정도로 잘 풀리기도 했다. 굴곡을 그리는 나날이 흘러가며 재계약 시즌이 왔을 때 그는 당장 재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담당 아이돌이 바뀌는 일이 일어났다. 프로듀서는 사장에게 항의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이랬다.

 “그 아이는 많이 성장했잖나. 그러니 경험 많은 다른 프로듀서에게 맡겨두고, 자네는 새로운 담당 아이돌 육성에 힘써주게.”

그랬다. 당시 업계 관행은 신입 프로듀서가 안 알려진 아이돌을 띄워놓으면 그 아이돌을 중견 프로듀서에게 넘기고, 다른 아이돌을 신입에게 넘겨주는 방식을 쓰고 있었다. 그것은 그 회사뿐만이 아니었다. 거의 대부분의 회사에서 통용하는 방식이었다. 프로듀서는 허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새로운 담당 아이돌을 보아도 예전처럼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표면상 업무는 제대로 하고 있음을 보여줬지만 말이다. 재계약 시즌이 다가왔다. 그러나 더 이상 재계약은 하지 않기로 했다.

 만료 전까지 새로운 담당 아이돌에게 계약 만료 사실을 알려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약 만료일까지 일체 함구했다. 만료일이 되자 자신의 담당 프로듀서가 바뀐다는 소식에 담당 아이돌은 당황했고, 사장은 길길이 화를 냈다.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돌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지만, 마음 한 구석으로는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그 나름대로의 복수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계약할 때부터 아이돌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언제 헤어져도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일찌감치 벽을 쌓은 것이다. 그리고 현재 담당 아이돌, 키사라기 치하야와도 벽을 쌓으려 했으나 이미 저편에서 커다란 벽이 세워져 있단 걸 깨달았다. 벽과 벽이 가운데 있으니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헤어질 때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돌의 얼굴을 보며 느끼는 죄책감에 마음이 찔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도 그렇게 뻔뻔하지는 않았으니까.

 이번에도 만료일까지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을 바꿔놓은 것은 코토리의 단호한 말 한 마디였다. 자신의 행동을 지적해준 따끔한 말에 그도 생각을 조금 바꾼 것이다. 그런데 이미 당사자가 사태를 전부 알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을 일이었다.



 “그렇게 된 거야.”

 말을 마친 프로듀서는 하이볼을 마셨다. 술이 계속 들어갈수록 프로듀서의 취기도 상당히 올랐다. 새빨개진 얼굴로 치하야를 바라본 그는 이윽고 카운터 석에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치하야는 그런 프로듀서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바보 같은 남자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에게 큰 상처로 남았고, 자기 나름대로 복수를 하고 싶었다는 건 알겠지만 그 방식은 서로에게 더 큰 상처를 줄 뿐이라는 걸 치하야는 알고 있었다.

 “이 놈이 이렇게 장황하게 말하는 건 처음이군.”

 “그런가요?”

 가게 주인이 설거지를 끝내고 돌아왔다. 아마 안에서 얘기소리를 다 들은 모양이었다.

 “녀석이 연말만 되면 술에 떡이 되도록 마신 이유를 이제야 알겠구만.”

 “죄책감을 잊기 위해서군요.”

 “그래. 제 나름대로 그런 거겠지.”

 두 사람은 자고 있는 프로듀서를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폐점 시간인데 폐를 끼쳐서.”

 “신경 쓸 필요 없어, 아이돌 양.”

 밤 10시가 넘은 시각. 가게 주인은 폐점 시간에 맞춰 가게 문을 닫았다. 잠든 프로듀서를 치하야가 부축했다. 무게가 쏠려 중심을 잘 잡을 수는 없었다.

 “그건 그렇고 자네는 어떻게 할 건가?”

 “글쎄요. 일단 저보단 프로듀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 것 같네요.”

 “응? 녀석이 말을 안 해줬나? 얘 집은 바로 저기야.”

 가게 주인이 얼마 멀지 않은 집을 가리켰다.

 “혹시 저기가?”

 “그래. 녀석 집이지.”

 “그래서 여기로 왔군요.”

 치하야는 허탈한 표정으로 집을 바라봤다.

 “여자 혼자 부축하기엔 너무 무거우니까 내가 도와주지.”

 가게 주인은 그렇게 말하며 프로듀서를 부축했다. 집까지는 몇 발자국 걷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둘은 프로듀서의 주머니에 있는 열쇠로 집 안까지 들어가 이부자리를 펼치고 그를 뉘였다. 치하야가 가게 주인에게 감사 인사를 했으나, 그는 별 거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대신 프로듀서를 부탁한다며 미안해하며 돌아갔다.

 어둑한 방. 치하야는 프로듀서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노래를 듣고 있었다. 순간 노랫소리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뭔가 싶어 이어폰을 빼보니 프로듀서가 흐느끼고 있었다. 뭔가 이상이 생긴 게 아닌가 싶어 그에게 다가갔다.

 “미안해, 치하야……. 미안해, 얘들아…….”

 잠꼬대로 울면서 사과하는 그를 보며, 치하야는 그의 모습이 한없이 작게 보였다. 복수라고 말은 하지만 얼마나 슬펐을지, 얼마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을지 그는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바보…….”

 치하야는 프로듀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음의 응어리가 풀어지길 바라면서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다음 날, 프로듀서가 자기 곁에서 자는 치하야의 모습을 보며 심장이 멎을 뻔한 건 비밀이다. 그리고 그 날, 프로듀서는 전화로 자신이 여태 맡았던 아이돌들에게 그 때 했던 일을 밝히고 사과했다. 어떤 아이돌은 이해해주기도 하고, 어떤 아이돌은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찝찝해하는 아이돌도 있었다. 하지만 프로듀서는 정말 진심을 다해 사과하고, 자신의 책임을 평생 짊어지고 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조금이나마 그 아이돌들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며칠 뒤, 사장실에 프로듀서와 치하야가 들어갔다. 프로듀서는 치하야에게 계약 만료 소식을 전했다는 걸—어디까지나 들킨 거지만 말이다.—보고하기 위해서였고, 치하야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치하야는 만료가 되어도 프로듀서 없이 혼자 해보겠다는 것을 타카키 사장에게 전했다. 사장은 너무 위험한 생각이라며 치하야를 만류했지만, 그의 굳은 결심을 보고서 한 발 물러나기로 했다.

 “정말 괜찮겠지, 치하야 군?”

 “네. 괜찮습니다. 아, 한 가지 더.”

 “음? 뭔가?”

 “제가 혼자 행동하는 건 어디까지나 프로듀서가 돌아올 때까지입니다.”

 치하야의 말에 사장은 프로듀서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는 건?”

 “사장님. 염치 불구합니다만 며칠만 시간을 주십시오. 완벽하게 회복해서 다시 이곳에 돌아오겠습니다.”

 프로듀서는 허리를 숙이며 부탁했다. 사장은 잠시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시간을 그렇게 주면 그만큼 업무에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알겠지?”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사장은 알겠다는 말과 함께 두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장실을 나온 둘은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고비를 무사히 넘겨서 다행이란 뜻이었다. 코토리도 프로듀서에게 잘 했다는 말을 남겼다. 프로듀서는 그가 준 따가운 충고에 감사하다며 다시 인사했다. 코토리는 나중에 한 턱 쏘라는 말과 함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럼 오늘 일정을 처리해 볼까?”

 “연말도 며칠 안 남았으니 바쁘겠네요.”

 “그렇지. 그럼 오늘도 열심히 해보자, 치하야.”

 “잘 부탁드립니다, 프로듀서.”

 두 사람은 마음의 벽에 생긴 조그마한 구멍으로 서로 눈을 마주쳤다. 이 작은 구멍이 언젠간 커다랗게, 벽을 모두 허물 것이라 생각하며 사무소를 나섰다.

 

 에필로그

 “프로듀서. 일어나야죠.”

 치하야가 잠자는 프로듀서를 흔들어 깨웠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다. 765 프로덕션에 돌아온 프로듀서는 다시 치하야를 담당했다. 2년 뒤, 치하야는 아이돌 생활을 마치고 전문 보컬리스트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처음에는 불안과 기대가 반반이었지만, 치하야의 뛰어난 기량과 프로듀서의 업무 능력으로 인해 불안은 해소되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성인이 된 치하야는 프로듀서와 동거를 시작했다. 언제 들킬지 모르지만 두터운 신뢰 관계가 있기에 둘은 개의치 않았다.

 “우으……. 잘 잤어, 치하야?"

 “네, 잘 주무셨어요?”

 프로듀서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그럼 오늘 하루도 힘내볼까?”

 “잘 부탁드립니다,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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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쓰는 팬픽이라 어...

많이 부족하네요.

그냥 읽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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