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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CHEMY] 하루카 "프로듀서는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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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27, 2016 17:19에 작성됨.

"응?"

 

조금 바보처럼 되물었나 싶었는지, 인상좋은 남성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안경을 고쳐썻다.

바보라고 불리울 정도의 학벌은 아니었지만, 좀처럼 눈앞에서 순수히 물어오는 소녀의 질문에는 조금 곤란하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괜스럽게 안경을 만지작 거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불안하다는 증거와 더불어 시간을 벌기위한 필사적인 발버둥이라는 점.

평소라면 에헤헤거리며 물러났을 소녀도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분것인지 그 맑은 눈동자는 계속해서 아카바네 프로듀서를 비춰내고 있었다.

마치, 너무도 투명해서 거울을 바라보는 것만 같았던 아카바네는 이내 그녀의 눈동자를 통해서 바보같은 표정을 짓고있는 자신을 발견해냈다.

그때문이었을까, 그는 아마 의미도 없을 백기를 들어올려 항복하기로 했다.

 

"무슨 말인지 물어도 될까?"

"으음.. 그렇네요. 저는 프로듀서 씨가 틀림없이 차장 님이라고 생각해요."

 

이제야 질문의 의도를 파악한 것인지 작게 탄성을 내지르는 그였지만, 여러가지로 함축 되어버렸다고 할까.

생략되어버린 말이 많았지만 그래도 모처럼의 진지한 질문이었다.

받아두도록 하자.

결심이 서자 아카바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변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라면 아직 유명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하루카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도의적인 변장이지만, 아미나 마미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답답하다고 당당히 거리를 활보하며 사무소와 집을 오가고는 한다.

물론, 별다른 기삿거리라던가 기자 혹은 팬들에게 발견되어서 둘러쌓인 적은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가슴 한구석이 아파오는 것은 왜일까.

 

여하튼간, 하루카가 물어보는 것은 이 전철에서 프로듀서의 위치와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하고있는, 즉. 가장 닮은 꼴을 찾아달라는 뜻이라고 생각한 아카바네는 이내 대답하려다가 말을 아끼고 말았다.

대답을 찾지못해서 어물쩡거리고 있었던 것을 말을 아끼는 것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그 증거로 하루카는 이제서야 베시시 미소지으며 자신의 말을 보충하기 시작했으니까.

 

"에헤헤. 왜냐하면 차장 님은 프로듀서처럼 철저하게 기차를 관리하지 않나요?"

"어라. 그러고보면 그럴지도."

"그렇죠?"

 

이 나잇대의 소녀들은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꺄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끝없이 수다를 떨 수 있다고하던가.

그것을 증명하듯이 무미건조한 대답에도 눈을 빛내며 호응해주는 하루카였다.

 

"으음~ 그리고 이렇게 승객을 팬분들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오. 그렇구나. 꽤나 그럴듯한 비유네."

 

실제로는 자동차 운전면허 뿐이라서 전철관련으로는 문외한이었던 아카바네였지만, 의외로 하루카의 비유는 그것을 제쳐놓고서라도 그럴듯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결국, 이 이상의 대답을 할 자신이 없던 아카바네는 하루카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그대로 인용하며 이 대화를 마치기로 했다.

정확하게는 전철에 타기 위해서였지만, 아무래도 하루카에게는 다르게 들린 모양이다.

 

"나도 하루카와 같은 생각인걸~ 조심해서 들어가고, 내일 보자."

"우우.. 프로듀서! 너무 성의 없잖아요!"

 

멀리서 다가오는 전철을 바라보며 하루카는 뾰루퉁한 얼굴을 숨기지 않았다.

아무래도 하루카는 아카바네만의 생각을 듣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일단, 생각할 시간도 길지 않았으니까.

 

전철에 올라서며, 하루카는 아카바네에게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단단히 벼른모양새다.

 

"그야 요즘 뒤숭숭하니까 저를 생각해서 역까지 바래다주시는건 감사한데요.. 저기, 저는 프로듀서의 생각을 알고 싶달까.."

 

아무래도 마음을 열어주고 다가오려는 표시였을까.

아카바네는 결국 또 다시 항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남자는 무릇 여자에게 천성적으로 약하다고 하던가. 하물며 이런 미소녀가 그 대상이 되어버린다면 남자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전철 문이 닫히기 직전, 아카바네는 잔뜩 부풀어 오른 복어마냥 볼을 푸풀린 하루카에게 안심하라는 주문을 걸어주었다.

 

"그렇네. 괜찮다면 내일도 이곳까지 함께 와줄테니까. 내 생각은 그때 듣는걸로. 어때?"

 

문이 닫히고 전철이 떠나간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할 수 있는 이유는 다행스럽게도 밝은 미소로 고개를 끄덕여준 하루카 덕분이리라.

다행히 반대편으로 건너가서 전철을 늦지 않게 탈 수 있었다.

하루카와는 그러고보니 집방향이 반대라면 반대였구나.

조금은 시덥잖은 생각을 하는 아카바네였다.

 

다음날 아침.

'어디보자. 유키호는 차가 떨어졌다고 했었고. 마코토와 히비키는 이온 음료가 필요하다고 했었지.'

아이들의 필요한 물품을 구비한 후, 아카바네는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미와 마미의 간식과 이오리의 주스등을 챙기다보니 인원이 많기 때문일까.

몇개 집지 않은듯 싶었지만 양손가득 봉투가 만들어졌다.

얼마간 열심히 움직이던 아카바네는 이내 하루카의 과제아닌 과제가 떠올랐다.

가장 먼저 출근한 사무원의 인사를 받으며 아카바네는 곧바로 과제 해결을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학교 다닐때도 이렇게 열심히 과제는 안했던것 같은데.

작게 중얼거린 그와는 반대로 사무원 오토나시 코토리의 반응은 격렬하기 그지없었다.

 

"헤에- 그렇네요. 프로듀서가 이곳에서 어떤 존재이시냐구요? 여러 생각이 마구마구 떠오르네요~"

"아하하. 간략적으로라도 제가 하는 역할이라던지.. 너무 뜬금 없을까요?"

 

가져온 짐들을 능숙하게 냉장고에 정리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코토리는 화들짝 놀라며 함께 정리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정리가 끝나고 난 후에 코토리는 아카바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자기의 직업에 대해서 타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묻는다라.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뭔가 이상해도 한참 이상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여러모로 코토리에게는 단순히 흥미로운 주제라는 인상이다.

 

"아이돌의 관리가 주업무라고 생각해요."

"그렇죠. 그것이 사전적인 프로듀서의 업무이긴 하지만 말이죠.."

 

하루카에게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전하고 싶은 욕심에 아카바네는 작게 목소리를 삼켰다.

코토리와의 이야기가 어느정도 지속되었을까.

리츠코와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린 아카바네였다.

 

"먼저 일간지와 주간지, 아이돌 잡지등을 빠르게 훑어봐야겠네요.."

"아직은 우리 아이들을 공격할 걱정은.."

"혹시 모르는 것이니까요. 저는 길게 보고있거든요. 지금부터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소음을 주의하지 않으면 안되겠죠."

 

놀란듯 바라보고있던 코토리는 싱긋 미소지으며 그녀의 업무로 되돌아갔다.

 

"프로듀서가 정말로 없어서는 안되겠네요."

"네?"

 

잡지를 읽다가 소리를 놓친 덕분에 다시 되물은 아카바네였지만 돌아오는것은 싱긋 미소짓는 코토리의 얼굴 뿐이었다.

 

"오빠~ 우리가~"

"왔다궁~!"

 

단 두명이 먼저 도착했을 뿐인데 거짓말처럼 사무소가 시끌시끌해지기 시작했다.

한창 말이 많을 나이의 쌍둥이라서 그럴지도.

 

"너희들 아침은?"

"에.. 그게. 나는 먹겠다고 했는데 아미가 반찬투정을 해버려서!"

"뭣?! 말은 내가 꺼냈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를 몰아세운건 마미겠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버린 사무소를 바라보고 있자, 곧이어서 리츠코를 포함한 다른 아이돌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아카바네는 아침에 사온 것을 떠올리며 말했다.

 

"빵으로 괜찮다면 그거라도 먹을래? 다음부터는 아침을 거르지 말도록 하고."

""옛썰~!""

 

기다렸다는 듯 빵을 먹기 시작하는 쌍둥이들을 못말린다는 듯 바라보고 있자, 멀리서 유키호와 마코토가 인사해왔다.

 

"유키호! 마코토! 좋은 아침!"

"네! 프로듀서도 안녕하세요!"

"네에에에-"

 

너무나도 상반된 반응에 힘이 빠질만도 했지만, 아카바네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마코토랑 히비키가 좋아하는 이온음료를 잘 몰라서 포ㅇ리를 사왔어."

"ㅇ카리 인가요! 좋아요! 더 열심히 트레이닝 할 수 있겠네요!"

 

해냈다는 듯 기쁘게 미소짓는 마코토의 등뒤로 조심스럽게 급탕실로 사라지려던 유키호를 발견한 아카바네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러세웠다.

 

"저기, 유키호."

"히이이익! 죄, 죄송해요..! 저..저는 그, 급탕실에 정리할 것이 있을까 하고.."

"정리라면 괜찮아. 아침에 오토나시 씨랑 했거든. 어제 퇴근할 때 보니까, 찻 잎이 거의 다 떨어진것 같아서 사왔어. 차는 잘 몰라서 잘 사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놀란듯 아카바네를 바라보던 유키호는 이내 다시 가득 차있는 찻잎을 바라보며 놀란듯 굳어버렸다.

극심한 남성공포증 덕분에 필요한 것을 미처 말하지 못했었을것이다.

성격이 이렇기에 보나마나 미움을 받고, 관심도 없을거라고 생각했던 유키호는 머리가 빙빙 도는것 같았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해야하지만, 상대는 남자였다.

멀리서 눈만 마주쳐도 몸이 그대로 굳어버려서 제대로 말을 꺼낼수 없었다.

그런 유키호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은 친한 친구인 마코토였는지, 재빠르게 유키호를 독려하며 말했다.

 

"유키호. 괜찮으면 차 한잔 얻어마실수 있을까? 아, 프로듀서는요?"

"아, 그래. 부탁해도 될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유키호를 바라보며 아카바네는 그래도 노력하고 있는 유키호에게 남몰래 미소를 지었다.

조금더 노력하면 나아지겠지.

 

"자자, 아미랑 마미. 마코토와 유키호. 어서 레슨하러 가야지."

 

도착하자마자 능숙하자 아이들을 레슨장으로 보내는 리츠코의 모습을 보고있자니, 자신보다 더 선배 같은 느낌도 드는 아카바네였다.

저런 카리스마도 필요한 부분일지도.

 

"찻잎..감사합니다."

 

비록 멀찍이 떨어져서 차를 놓고 도망치듯 말하는 유키호였지만, 아카바네에게는 충분히 넘치도록 전달되었다.

한바탕 아침레슨조가 휩쓸고 간 후, 점심이 다다르고 있었다.

지금쯤은 모두 바로 레슨장으로 갔을테니까.

빛날 내일을 위해서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

이런 시덥잖은 감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그에게 치하야가 다가왔다.

그러고보면 오늘 치하야는 따로 보컬 레슨이었던 모양이다.

 

"..."

"..."

 

섯불리 인사를 걸었다가 되려 혼난 적이 있었기에 어찌할까 고민하는 그에게, 치하야는 의외로 선뜻 인사를 건네왔다.

다행스럽게도 기분이 괜찮은 모양이다.

 

"안녕하세요."

"아, 응. 하루카는?"

"역앞에서 만나서 같이 오긴했지만, 지금쯤은 댄스 레슨중일거라고 생각해요."

 

물끄러미 검토중이던 서류를 바라보던 치하야는 어째서인지 작게 미소짓고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아카바네는 화들짝 놀라며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상냥하시네요."

"아, 아니야. 이건 일일 뿐이고."

 

서류라고 할수도 없는 그의 메모장에는 각 아이돌 별로 주의할 점과 목표, 지향해야 할 점을 나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것이 최근의 이벤트와 행사를 검토하며 누가 더 적합한지를 고민하는 것이었고.

즉, 아카바네는 숨겨야 할것을 잘못 생각하고 말았다.

 

"프로듀서의 일이 어느정도로 힘들지 잘 상상이 가지 않지만, 혼자서 모든 아이돌들을 관리하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아아, 이것의 이야기구나."

 

이제서야 무엇을 보여지고 있었는지를 깨달은 그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프로필만으로 너희들을 판단해서는 안되잖아. 너희들의 좋은점을 프로필만으로는 모두 나타낼수 없으니까."

"그러시다면 직접 본인들에게 물어보는건?"

"그렇네. 하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느낀점을 더 적고싶달까. 그리고 정작 자기 자신의 장점을 나열해보라고 물어본들 그것은 그것대로 스트레스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압박면접도 아니고 말이야. 지금 이대로도 너희들은 충분히 최선을 다해주고 있으니까, 더 짐을 지울 생각은 없어."

"..."

 

잠시동안 빤히 아카바네를 바라보던 치하야는 작게 미소를 지어내며 인사했다.

 

"쉬는 시간이 끝났네요. 다시 레슨하러 가보도록 할께요."

"아, 수고해줘."

 

이 광경을 계속 지켜보던 리츠코는 역시, 라는 표정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치하야가 저렇게 기분좋은 미소를 짓는건 오랜만에 보는것 같은데요."

"그랬나?"

 

정신없이 일하던 도중, 점심시간이 가까워짐을 느끼게된 아카바네였다.

정확히는 열심히 점심을 먹는 소녀들 덕분이겠지만.

 

"우갸! 타카네! 튀김을 가져가면 나는 뭐랑 먹어!"

"이 새우튀김은 라면과 기묘한 조합을 내는군요."

"아라아라. 타카네. 히비키가 불쌍하잖니."

"기이한! 한입 드시겠는지요, 히비키?"

 

그리고 그런 그녀들에게 괜찮다는 듯이 자신의 도시락을 선뜻 건네는 하루카.

결과적으로는 모두가 만족스러운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우아~ 살았다구. 오늘 댄스 레슨은 꽤나 힘들었으니까."

"확실히 그렇네. 레슨실에서 먹고 낮잠을 자겠다고 하는 아이들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여유로운 아즈사를 바라보며 아카바네는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아즈사 씨. 냉장고에 푸딩이 있어요. 히비키도 이온 음료를 사뒀으니까 마셔두면 좋아."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며 냉장고로 향한 두명과는 다르게 타카네와 하루카는 말없이 아카바네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것에 잘못한것이 없음에도 압도되어버린 그는 애써 미소지으며 물었다.

 

"하하..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귀하. 혹 너무 무리하고 계시지는 않으신지."

"맞아요! 정말! 모두를 신경쓰다니 무리라구요, 무리!"

 

타카네의 눈빛에 진지함이 묻어나왔다. 그것에 결국, 하던 일을 잠깐 멈춘 아카바네. 약하게 미소지으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말 힘들게 된다면 사장님에게 말해서 프로듀서를 늘려달라거나 말해볼테니까. 나는 최대한 너희들을 받쳐주고 싶어."

"하오나.. 그러시면 저희들은.."

"부담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어. 너희들을 이곳으로 이끈것은 나야. 그리고 앞으로도 펼쳐져있을 끝없는 길을 받쳐주고 싶기도하고."

"귀하.."

"그러니까, 너희들은 최선을 다해 달려나가주면 돼.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니까."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하루카는 이내 타카네와 히비키, 아즈사를 이끌며 나갔다.

 

"그렇네요. 그렇다면 다시 레슨 받고 올께요!"

 

그 순간, 하루카는 기분좋은 미소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오늘도 전철까지 잘 부탁드려요, 프로듀서!"

"아, 응. 레슨이 끝나는대로 바래다줄께."

 

그러고보면 벌써 하루카에게 대답을 들려줘야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게 되었구나.

그 생각이 미치자 허겁지겁 대답을 떠올려보지만, 역시 바로 떠오르지는 않는다.

당황하는 아카바네를 아는지 모르는지, 이오리와 야요이가 들어왔다.

 

"정말이지. 쉬는시간없이 할테니까 뭐가 계속 해보자야!"

"이오리~ 그래도 정말로 다른 언니들에 비하면 일찍 끝났으니까. 응?"

"흥. 당연하지. 이정도도 버티지 못하면 이오리 님이 아니니까!"

 

생각에 잠겨있었기 때문일까. 미처 이오리와 야요이를 발견하지 못한 아카바네였다.

그리고 그 모습에 있는 힘껏 못마땅함을 표현하는 얼굴로 이오리가 외쳤다.

아무래도 옆에서 야요이가 바쁘니까 그러셨을거라는 말로 만류를 해보았지만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너말이야! 자기가 관리하는 아이돌이 왔으면 반응정도는 해주는게 어때?"

"응? 아아! 이오리구나. 야요이도. 어서와..라고 하기에는 이제 너희들은 오늘 레슨을 모두 끝냈구나."

 

새삼 미안함이 밀려왔던 것인지, 아카바네는 떠올랐다는 듯이 냉장고를 향해 말했다.

 

"미안해. 잠시 생각할 것이 있어서. 혹시 목이 마르다면 내가 사둔 주스가 있으니까 그걸 마시는것은 어때?"

"흥! 제법이네. 100% 과즙이 아니면 절대로 화낼테니까!"

 

그 후로, 그런대로 투정을 안부리는 것을 본다면 다행스럽게도 100% 과즙인 모양이다.

주스 한컵을 가득 따라온 소녀들은 소파에 앉은채로 아카바네에게 물어왔다. 아무래도 자기들을 뒤로할정도로 중대한 고민거리를 듣고싶은 모양이었다. 야요이도 표현하진 않았지만 궁금한 기색.

결국, 이오리의 물음에 답하듯 되물을 수 밖에 없던 아카바네였다.

 

"이 사무소에 있어서 나는 뭐라고 생각해?"

"바보아니야? 프로듀서잖아."

"이오리의 말이 맞아요! 프로듀서는 프로듀서이니까요!"

 

아카바네의 물음에 아침에 잠깐 말을 나눴던 코토리는 작게 어깨를 으쓱이며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했지만, 리츠코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프로듀서가 된지 얼마 되지않아서 더더욱 그럴지도.

 

"프로듀서. 숨은 속내가 있는건가요?"

"아니. 딱히 그런건 아니야. 다만 내 위치와 역할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고 싶어서."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루카에게 대답을 해줘야 하거든.

그 사실은 숨겨낸 아카바네였다.

굳이 말해서 득볼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주스를 홀짝이며 생각에 잠긴 이오리와는 다르게 야요이는 활기차게 손을 들어올리며 답했다.

 

"웃우-! 프로듀서 씨는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우리들을 위해서 노력해주고 계세요! 그렇지, 이오리?"

"뭐, 그, 그럴지도 모르겠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말이야."

 

잔뜩 얼굴을 붉힌채로 주스를 마시는 이오리에게 리츠코는 재미있다는 듯 되물었다.

 

"그렇다면 이제 이오리는 내가 전담하도록 해볼까."

"키이잇! 리츠코는 융퉁성이 없잖아! 저 녀석은 그런대로 말없이 조력하니까!"

"잘도 말해줬네. 너랑 아미는 조만간 내가 관리를 꼭 하도록 해야겠어."

 

얼마간의 리츠코와 이오리의 티격태격을 보고있는 동안, 시간은 놀랍게도 빠르게 흘러갔다.

나란히 손을 잡으며 사무소를 나서는 소녀들을 바라보던 아카바네는 사무소 한쪽 구석의 형광등이 이상한 것을 느꼇다.

 

'내일 갈아둬야겠다.'

 

내일 할 일에 적어놓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리츠코와 코토리는 재빠르게 그를 만류했다.

 

"형광등 정도는 우리들이 갈도록 할께요."

"맞아요. 정말이지. 프로듀서가 다 해버리시면 제가 나설틈도 없잖아요."

"아니에요. 그렇게 거창한 일도 아니고요. 제가 할께요."

 

슬슬 하루카의 레슨이 끝날때 쯤.

퇴근 할 시간이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 리츠코는 방금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말을 꺼냈다.

 

"프로듀서. 저는 프로듀서의 존재는 반드시 이 사무소에서는 없어서 안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설마. 나같은 녀석은 이 사회 어딘가에도 무수히 널려있어. 더 능력있거나, 더 잘생겼거나."

"설령, 볼품없는 일을 도맡아 하실지라도 그것을 도맡아 하시는 프로듀서의 품격과 중요성을 폄하시키지는 말아주세요."

 

어째서인지 부끄러운 기분이다.

그런 기분이 들어버린 아카바네는 허겁지겁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하루카의 배웅인가요?"

 

리츠코의 배웅에 아카바네는 고개를 끄덕여버렸다.

실제로 하루카의 배웅을 권유한건 리츠코였다.

그녀가 타고다니는 지하철 역 근처에서 성추행범이 검거되었다는 뉴스를 접한 후, 당분간은 지켜봐달라는 뜻에서였지만, 생각해보면 조금 무례한 부탁이었을까.

그런 리츠코의 생각을 읽듯이 아카바네는 걱정말라는 듯 미소지었다.

 

"괜찮아. 오히려 이것을 계기로 하루카를 통해 다른 아이들의 고민이나 상황을 더 잘 알수 있으니까."

"뭐.. 퇴근하시고서도 일에 대해서 생각하시는 것은 존경해야 할지 어떨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그렇게 생각해주신다면 감사합니다."

"맡겨둬. 리츠코는 퇴근안해?"

"아, 네. 코토리 씨와 몇가지 의논할 것이 있어서요."

"그래. 그러면 내일 봐. 형광등은 걱정하지 말고."

 

가볍게 손을 흔들며 떠나는 그에게 리츠코는 작게 '존경하고 있어요, 프로듀서.'라고 배웅했다.

잔뜩 붉어진 얼굴로 허둥지둥 떠나는 그의 뒷모습에 리츠코와 코토리는 약속이라도 한듯이 약하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정말로 그는 사무소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프로듀서! 여기에요, 여기!"

레슨장에서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하루카가 손을 흔들며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

지금은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나중에는 조금 주의를 주도록하자.

작게 다짐한 아카바네는 하루카와 함께 걸어가기 시작했다.

 

"우와~ 오늘 레슨은 평소 이상으로 힘들었어요. 트레이너 씨. 맞선이 잘못된거러나요."

"어쩐지. 모두들 쉬는 시간에 힘들어 하더라고. 미키의 경우는.."

"네. 주먹밥을 먹고서는 아예 레슨장에서 잠들어버렸어요."

 

해가 지고있다.

슬슬 퇴근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런 그들의 발걸음을 붙잡기 위한 음식점들이 그 냄새들로 그들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점심을 먹지 못한 아카바네에게는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돈코츠 라멘인가.."

"그 옆집의 오코노미야키도 맛있어요."

 

아카네는 약하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신차려보니 점심 시간을 지나버렸지 뭐야."

"으으.. 역시 도시락을 나누는게 아니었나봐요."

"아~ 모두 나눠먹었던 그 도시락?"

"네. 자신작이었거든요."

 

하루카도 꽤나 식탐이 있는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한 아카바네와는 다르게 하루카는 약하게 혀를 내밀며 베시시 웃음을 흘렸다.

 

"에헤헤.. 사실은 프로듀서에게 주려고 만들었거든요."

"정말이야? 아쉽네. 정말 배고팠었는데."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반쯤 농담으로 건넨 말이었지만, 하루카는 이미 울상을 짓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잘못 받아들였는지, 다급히 사과하기 시작했다. 

 

"미, 미안. 장난으로 말한건데 너무 진심으로 받아버렸네. 하하하.."

"그, 그게 아니에요. 으음.. 아!"

 

슬슬 지하철 역에 다다랐다. 하루카와 함께 역 안으로 들어서자, 아카바네는 작게 몸을 굳히기 시작했다.

과제아닌 과제에 몸을 떨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하루카는 그것을 놓칠 위인이 아니었다.

 

"자~ 프로듀서! 그렇다면 어제의 답을 들어볼까요!"

"으음."

 

힐끗, 하고 역 상황을 보아하니 아직 4정거장이나 전이다.

시간끌기로는 틀렸다.

생각을 마친 아카바네는 나름대로 오늘 하루동안 묻고 들은 정보를 종합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하루카. 나는 너희들을 프로듀스 하게 되어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있어."

"에헤헤. 저도 프로듀서라서 좋아요."

 

화끈.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진 하루카였지만, 애석하게도 전철의 레일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가는 아카바네에게는 보이지 않은 모양이다.

다행스러움과 실망스러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던 하루카는 이어지는 아카바네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별 볼일 없는 남자에게는 과분한 아이돌들이 잔뜩있어. 나같은 사람은 지천에 널러있을텐데."

 

그렇지 않아요.

그러한 하루카의 말을 막은 것은 아카바네의 얼굴이었다.

씁쓸함과 평온함을 담아낸 얼굴.

그 남자의 모습에 하루카는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고 있어. 볼품없어 보이더라도 너희들을 위해서 준비해오고, 항상 너희들을 생각하고.. 아, 미안해. 이건 성희롱이라던가 그런게 아니니까."

 

너무 무거워질 분위기에서 그 나름대로의 농담이었을까.

그렇지만, 그는 이윽고 다시 분위기를 다잡고 말을 이어나갔다.

가장 큰 이유는 말없이 진지한 얼굴로 경청하고 있는 하루카의 모습일 것이다.

 

"만일 아이돌들 사이에서 마찰이 일어난다면 내가 중재를 해주고 싶고, 외부에서 너희들을 노리더라도 막아주고 버텨주고싶어."

"프로듀서.."

"물론 이것들이 익숙치 않게 된다거나 너무 넘쳐버린다면, 너희들의 길을 막아서는 장애물 밖에는 되지않겠지만 말이야."

 

잠시, 생각에 잠기던 아카바네는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항상 노력하기로했어. 너희들이 보이지 않는곳에서도 너희들을 받쳐줄수 있도록. 언제든지 달려나갈 너희들의 길을 지탱해주도록. 안심하고 뻗어나갈수 있도록."

 

그 순간, 아카바네는 레일을 바라보는 것을 멈추고, 그곳을 향해 손가락을 가르켰다.

보이는 것은 레일뿐.

스스로를 레일이라고 말하고 싶은걸까.

그런 하루카의 생각을 묻듯이 아카바네가 물어왔다.

 

"뭐가보여?"

"레일이요. 깨끗하게 놓여있는.. 레일이요."

 

그 말을 예상하기라도 한것처럼 아카바네는 작게 미소지었다.

평소 어른이라고 느껴졌던 그에게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남자아이의 미소였다.

그는 멍하니 바라보는 하루카에게 차근차근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하루카에게 하고싶은 대답은, 저기 있는 돌멩이야."

"네!?"

 

예상치 못한 대답에 놀란듯 되물어보지만 그는 발언을 철회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설명을 요구하는 하루카에게 그는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저기에 있는 돌멩이들은 형편없어보이고 사람들의 관심을 잘 받지못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도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아."

"어떤 일을 하나요?"

"잡초가 자라는것을 막아줘. 전철이 안전하게 달릴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거든. 그리고 흔들리는 전철의 충격도 줄여주기도 하고."

"헤에.. 중요하네요."

"맞아. 그리고 소음을 줄여주는 역할도 한다고 해. 먼지를 일으키는 것도 방지한다고."

"엄청나네요."

 

진심으로 놀란듯 돌멩이를 바라보던 하루카에게 아카바네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과제는 어때?"

"으우우. 완벽하시네요."

"해냈구나. 나름대로 신경썻어. 하루카를 실망시키기 싫어으니까."

"그, 그러셨군요. 응~ 그렇다면 다른 과제를 하나 더 드려야 할까요."

"어려운 것은 봐주길바래. 이번에도 급하게 돌멩이의 성능을 핸드폰으로 찾아내느라 빠듯했어."

"와아아앗! 무드가 깨지잖아요, 무드가!"

 

서서히 전철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카바네는 익숙하게 하루카를 앞세우며 타는것을 바라보려했다.

그런데 그순간.

 

문이 열렸습니다. 안전한 승하차를 위해-

 

안내방송따위를 듣고 있을때가 아니었다.

아카바네는 까치발을 한채로 자신의 볼에 입을 맞추고 있는 아이돌을 바라봤다.

너무 놀라면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다고 했었던가.

그 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다음 과제입니다."

 

아직도 그로기 상태인 아카바네에게 하루카는 작게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저에게 프로듀서는 뭘까요?"

 

공황상태인 아카바네를 뒤로한채 하루카는 재빠르게 전철에 탑승했다.

문이 닫히고, 그때가 되어서 정신을 차린 아카바네는 놀란듯 하루카를 불러보았지만-

 

약하게 혀를 내밀며 손을 흔드는 하루카가 점차 멀어지는 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아직까지도 꿈만 같은 느낌에 입맞추어졌던 볼을 만져보았다.

그 나잇대의 여학생들이 사용할법한 립글루스가 묻어나왔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문제라면 질릴정도로 풀었고, 질문도 적지않게 받았다.

숙제와 과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카바네는 이제는 멀어져서 보이지않는 전철을 향해 계속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의 나이가 많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한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하하..과제가 너무 어렵잖아."

 

진심어린 아카바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반대편에서 전철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그곳을 향해 달려가며 아카바네는 일단 전철을 타고나서 고민하기로 했다.

난제를 풀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간신히 숨을 헐떡이며 전철에 탄 아카바네.

그런 그를 위로하듯, 전철은 소음하나 없이 미끄러지듯 그 역을 빠져나갔다.

 

...

..

.

 

다음날, 퇴근 후 같은 장소.

그와 하루카의 심경을 대변하듯 그날은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쏟아지는 비를 우산으로 피해내며 아무말 없이 서로 걸어온 하루카와 아카바네였다.

 

"과제는 해오셨나요?"

"..응."

 

뿌아앙-

 

아카바네의 입이 열린것과 동시에 전철이 다가왔다.

그리고 얼마간 문이 열리고, 닫혔다.

 

결국, 아카바네는 늘 그랬던 것처럼 전철 안에서 손을 흔드는 하루카를 배웅하지 못했다.

 

뿌아앙-

 

다시한번 경적이 울리며 전철은 떠나가고 말았다.

아카바네가 하루카를 배웅하지 못한 이유는-

 

하루카가 전철을 타지 않은채, 기쁜 얼굴로 아카바네에게 안겨들었기 때문이다.

 

말한대로 된다고 하던가.

아카바네는 사무소의 모두에게 돌멩이마냥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 이유는-

 

그날 현장을 목격한 수많은 돌멩이들에게 물어봐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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