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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매화나무 가지에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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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27, 2016 13:26에 작성됨.

봄은 매화나무 가지에서 피어난다

 

“봄처녀께서 딛는 걸음을 따라 나뭇가지마다 희고 붉은 꽃잎들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봄이 찾아오는 소식은 매화 꽃봉우리에서 읽을 수 있다고 하지요. 이번 주말, 가까운 이들과 함께 명승지에서 꽃구경을 즐기시는 건 어떨까요.”

하얀 눈 녹으니 은은한 물내음 속 매화향 차오르네, 라고 하였던가요. 정말로 봄이 다가왔사옵니다. 화면 가득 매화 꽃봉우리들이 잡히는 광경을 멍하게 바라보며 코바야카와 사에는 두 손을 가슴께에 맞잡았다. 반짝이는 눈동자에는 봄을 반기는 소녀심이 물씬 엿보였다. 차갑고 깨끗한 겨울의 풍경이 포근하고 화사한 봄의 색채로 덧칠되어가는 광경에 매료되지 않는 소녀는 없으리라.

이른 봄날의 하나미 특집 프로그램은 한참 동안 흐드러지게 매화가 피어난 명승지의 정경을 비춰주고 있었다. 봄기운에 취한 건지 소식을 전하는 리포터의 목소리에는 들뜬 기색이 묻어났다. 일견 호들갑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가 사에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마치 좋은 작품을 감상한 직후 보이는 반응처럼, 숨을 쏟아내고는 빙긋 미소를 짓는다.

“아름다운 봄이어요. 한껏 피어난 매화들을 보니 봄 기운을 한가득 느낄 수 있사와요.”
“정말이네요. 날씨도 온화하게 풀렸고, 화면 너머이긴 하지만 꽃구경도 하고......”
“흘러넘치는 매화향에 흠뻑 취해, 짧은 봄이 끝나는 줄도 모르게 되어......”
“후후, 사에 씨가 읊조리니 운치가 느껴지네요.”

소파에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사에의 뒤로, 등받이에 상체를 기댄 채 서 있는 아가씨가 말을 받는다. 자신 곁의 빈 자리에 와서 앉지 않겠냐고 사에가 손짓으로 권유하자 고개를 살짝 저어보이고는, 사쿠마 마유는 TV로 다시금 시선을 돌렸다. 카메라가 오래된 신사의 커다란 석조 도리이를 지나 매화 정원으로 들어서는 순간이 화면에 비치고 있었다. 늘어진 수양버들처럼 땅으로 뻗어내린 매화 가지에 하얀색과 분홍색의 꽃망울들이 올망졸망 붙은 모양새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석탑 주변으로 꽃들이 차오르고, 그 뒤를 초록빛 침염수림이 채워 배경을 만들어낸다. 만개한 봄꽃과 푸른 녹음이 봄날의 맑은 하늘과 뒤섞인 풍경. 소녀들의 입에서 또다시 가벼운 한숨이 꽃송이처럼 피어올랐다.

“조난구의 매화 정원은 언제나 아름답지요. 조난구의 홍매화를 감상하지 않고서 교토의 봄꽃 구경을 하였다고 말하지 말아달라는 옛말도 있답니다. 꽃구경, 올해도 갈 수 있었으면 좋을 터인데......”
“교토에 있는 신사였지요? 사에 씨에게 익숙한 곳이겠네요. 저렇게 매화가 예쁘게 핀 곳으로 나들이를 가면 분명 즐거울 거에요. 하지만 이번 봄, 다들 틈을 내기 힘들 정도로 일정이 바쁘게 잡혀서......”

뺨에 손을 가져다대며 마유는 아쉽다는 듯 고개를 살래살래 내저었다. 어깨에 닿는 그녀의 갈색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사륵사륵 듣기 좋은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프로듀서 씨와 꽃구경, 갈 수 있다면 참 좋을 건데. 마유가 애절함을 담아 중얼거리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사에는 고개를 돌려 사무실의 벽면을 바라보았다. 크게 걸려있는 달력을 잠시 동안 눈으로 훑는다.

“큰 행사가 예정되어 있으니까요. 여러 모로 준비를 해야하니, 이번 주는 주말에도 다들 바쁠 듯 하여요. 저도, 마유 씨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봄맞이 행사를 위해 오히려 봄을 느낄 여유를 가지지 못한다니, 약간 서글픈 일이네요.”
“후훗,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그래도 아예 일정이 없는 쪽보단 이처럼 바쁜 게 도움이 되니까요.”
“저희를 위해서 프로듀서 씨께서 준비해주신 업무니까요. 열심히 한다면 또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거고......”

칭찬을 받는 일을 상상한 건지, 두 손으로 뺨을 감싸고는 몸을 부르르 떨며 마유는 행복해했다. 그건 영락없이 주인에게 예쁨을 받아 기뻐하는 고양이의 태도랄까. 마유 씨는 여전하시군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속으로 납득을 한다. 맡은 일을 제대로 처리하고서 그에 대해 칭찬을 받는다는 건 이쪽 세계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의미이니까. 약간의 사심이 섞여있다고 하더라도 열심히 하려는 태도 자체는 나쁠 게 없다. 이제는 뺨까지 새빨갛게 붉히는 마유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사에는 TV로 시선을 돌렸다. 그 사이에 특집 프로그램은 끝을 맺은 건지, 화면에는 한창 유행 중인 목캔디 제품의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교토에서 태어나 지내며 해마다 봄이 되면 꽃길을 걷곤 했던 사에였다. 봄맞이 꽃으로 벚꽃을 으뜸으로 치기는 하지만, 소녀는 우아하고 정결한 교토의 매화를 보다 사랑했다. 불어오는 바람에 겨울날 한기가 섞여있어도 떨어지는 일 없이 느긋하게 흐름에 맞춰 살랑이는 매화의 춤사위는 교토의 순진무구한 아가씨를 황홀하게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조난구의 다섯 매화 정원과 기타노텐만구의 매화밭을 사뿐사뿐 거닐며 스스로 봄처녀가 된 듯한 앙큼한 상상도 해보곤 했었던가. 가늘지만 풍성하게 쭉 내리뻗은 검은색 고운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얇고도 뚜렷한 눈썹을 부드럽게 드러낸 아가씨가 홍매화와 백매화 가지 아래로 다소곳하게 걸어가는 자태는 분명 봄처녀만큼이나 아리따웠지만.

봄이 찾아왔지만 그를 맞이하지 못한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소곳하게 두 손을 포개어 아랫배에 대고서 사에는 사무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조금 전까지 매화꽃의 자태를 감상하였기 때문인지, 깔끔하게 정리된 공간이 지금은 다소 삭막하게 느껴졌다. 집무 및 간단한 편의를 위한 설비들만 갖춰진 사무실에서 봄날의 색채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봄 느낌이 가득 넘치는 꽃이라도 한 송이 둘 수 있다면 좋으련만.

“사무실에 봄을 상징하는 꽃이라도 있었으면 싶기도 하여요. 따로 꽃을 구경하러 가지 못하니, 대신 여기서라도 그 풍취를 느낄 수 있게 말이어요.”
“꽃이라......마유, 예쁜 꽃이 있다면 꽃꽂이를 해서 보기 좋게 둘 수 있지만요, 지금 당장은 꽃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요.”
“으음......”

회사의 정문 앞의 길에 벚꽃 나무가 길게 심어져 있었던가. 뒤뜰에도 샛노란 개나리들이 피어있었던 듯 하다. 하지만 왠지 창문을 통해 그를 내다보는 걸로는 지금 느끼고 있는 묘한 아쉬움을 달랠 수가 없었다. 무엇에 허전함을 느끼고 있는 걸까. 어떻게 봄을 맞이하여야만 그 포근함을 즐길 수 있는 걸까. 스스로에게 그 물음을 던지며 사에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허옇기만 할뿐, 밋밋한 백색의 면을 멍하게 바라본다.

[달칵]

“어라, 두 분. 다른 사람들은 없는 건가요?”
“어머나, 사치코 씨. 오늘 하루 수고하셨사와요.”
“수고하셨어요.”
“흐응, 여기저기서 제가 필요하다고 놓아주질 않아서 늦어버리고 말았네요! 정말이지 매번 곤란하다니까요.”

연신 옆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는 행동을 하며 코시미즈 사치코는 의기양양하게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평소보다 허전하게 느껴지는 사무실의 분위기가 다소 어색한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가, 곧바로 있어보이게 자세를 잡는 걸 잊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쇄도하는 탓에 아이돌 생활이 힘겨운 나, 라는 연기에 도취되어 있는 사치코를 사에와 마유는 그저 재밌다는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보다 두 분이서만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니 아무래도 심심하셨겠네요. 어쩔 수 없죠. 이제 이렇게 제가 왔으니, 제 귀여움을 살려 분위기를 화사하게 만들어야겠네요.”
“어머, 그렇지 않아도 화사한 분위기였답니다. 봄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거든요.”
“덧붙여서 사무실에 봄이 온 느낌이 조금 났으면, 하고......”
“그런 대화를 하고 있었던 거로군요. 과연, 제가 돌아와서 다행이었네요! 꽃이라고 한다면 이렇게, 꽃처럼 매력적인 제가 왔으니까 말이죠.”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반색을 하며 사치코는 앞으로 폴짝, 두 소녀를 향해 다가왔다. 보란 듯이 자신의 얼굴을 치켜들고는 두 손을 턱에 붙인다. 마치 꽃을 감싸는 풀잎 받침이란 것마냥 붙인 손바닥을 휘적휘적 흔들기도 하면서. 귀여운 소녀가 스스로를 꽃으로 칭하며 애교를 부리는 광경은 확실히 꽤나 사랑스러웠으나, 그럼에도 어딘가 설명하기 힘들게 유감스러운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달까. 조용해진 사무실의 공기 사이로 잠시 동안 TV의 스피커만이 소리를 쏟아내었다.

“과연 사치코 씨여요. 여태까지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게 확 바뀌고 말았답니다.”
“그, 그렇죠?”
“어디, 사치코 씨가 꽃이라고 한다면......그러네요. 사치코 씨를 재료로 삼아 마유 씨에게 꽃꽂이를 부탁해도 되려나요.”
“으응? 사치코 씨로 사무실을 장식해도......괜찮은 건가요? 마유, 꽃꽂이......예쁘게 할 수 있으니까요.”
“에?”

자신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마유의 행동에 어깨를 한 차례 부르르 떨고서 사치코는 급히 자세를 풀었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이야기니까요. 대충 이야기를 마무리짓고는 도망치듯 소파에 풀썩 앉는다. 곁에 앉은 사치코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며 사에는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 머리카락을 매만져주는 행동이 마치 몇 살 아래의 동생을 돌보는 것마냥 익숙하였다.

“그보다 프로듀서 씨는 아직 돌아오지 않으신 거죠? 아까 촬영장에 오셔서 응원해주고 어디론가 가시던데......바쁘신 모양이네요.”
“프로듀서 씨, 사치코 씨가 일하는 장소에 가셨었군요.”
“뭐어, 원래라면 제가 열심히 힘내는 모습을 끝까지 다 지켜봐주시는 게 당연하지만 지금은 이래저래 업무가 많은 시기이니까요. 이해해드릴 수밖에 없겠어요.”
“마유가 일하는 곳에도 함께 있어주시면 좋을 건데......”

많은 사람들에게 신뢰 받는 사람의 입장도 의외로 곤란한 걸지도. 풀이 죽은 마유를 올려다보며 사에는 눈을 깜박거렸다. 다섯 명이 넘어가는 인원을 담당하고 있긴 해도, 프로듀서의 몸은 하나이고 시간 또한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하루 24시간 주어질 뿐이다. 다른 일들에 할애하는 업무 비중이 높아질수록 한 아이돌과 공유하는 교점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겠지. 아쉽기는 해도 사치코의 말대로 그녀들이 이해를 해야만 하는 부분이리라.

그처럼 정신없이 삶을 살아가며, 담당하고 있는 아이돌들 외에 프로듀서 본인의 몫은 챙기고 있으려나. 어쩌면 봄이 다가왔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이 업무에서 저 업무로, 현장에서 현장으로 바삐 돌아다니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전해주기 위해 소소하지만 소중한 자신의 행복을 챙기지 못한다면, 그건 슬픈 일이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을 하고선 사에는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아까 전부터 느끼고 있던 허전함이 한층 강렬하게 가슴을 뒤흔드는 기분이었다.

“저, 잠시 꽃을 꺾으러 다녀오겠사와요.”

딱히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나 그렇게 둘러대는 말을 한 다음 아가씨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입고 있는 전통복의 자락이 소파 표면에 스치며 소리를 내었다. 다녀오라는 말을 하고서 사치코와 마유는 새롭게 시작한 TV 프로그램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녀들에게 익숙한 얼굴들이 화면에 등장하는 걸 보고서 가볍게 탄성을 터뜨린다. 문가에 멈춰서서 왠지 회색으로 느껴지는 사무실의 정경을 잠시 바라보다가 사에는 바깥으로 나섰다.

복도의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에서 봄의 기색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오가는 사람 없는 복도에 홀로 서서 사에는 그렇게 바깥을 쳐다보았다. 춘분이 지난 시기였기에 겨울보다 늦게 찾아오는 어스름이 조금씩 멀리 보이는 도시의 지평선을 따라 번지고 있었다. 하늘에서 해가 떨어지고 나면 아직은 쌀쌀한 바람만 불어오겠지요. 왠지 한기를 느끼며 아가씨는 입고 있는 전통복의 옷깃을 다시 여몄다. 한 차례 옷의 맵시를 다듬고는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사에?”
“어맛.”

갑자기 곁에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한 걸음 옆으로 물러섰다가, 멋쩍게 웃어보이는 이를 마주하고서 사에는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프로듀서 씨. 작게 부르고는 입술을 살짝 벌린다. 쓸쓸한 감상에 푹 빠져서 곁에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도 알아차리지 못한 걸까. 예상하지 못한 일에 심장이 여전히 두근두근 뛰었지만, 아가씨는 곧 부드럽게 반기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지금 돌아오시는 길이신 걸까요? 하루 수고하셨사와요.”
“사에도 수고했어. 그게, 복도에서 가만히 서 있길래 말을 걸었는데 놀라게 해버린 거 같네. 미안해.”
“아니어요. 제가 잡념에 빠져있었던 터라......부끄럽사옵니다.”

봄을 타게 되어서 어딘가 외로운 심정이었다고 솔직하게 말하기는 아무래도 부끄러웠다. 업무가 바쁘게 잡혀서 예년과는 달리 꽃놀이를 가지 못해 아쉽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꺼낼 수 없었다. 한층 수고하고 있을 상대에게 그처럼 말하는 건 어린애 투정과 다를 게 없을 거니까. 봄에 대한 말 자체를 꺼내지 않기로 생각하면서 사에가 대화를 돌리려고 하였을 때였다.

“자, 선물.”
“어머나......”
“어때? 향기가 나려나?”

상대의 손에서 마치 마술처럼 톡 튀어나온 것을 보고서 사에는 눈을 깜박거렸다. 섬세함이 느껴지는 하얀 손에서 솟아난 건 연한 분홍색과 하얀색 꽃송이들이 달린 작은 가지였다. 엄지와 검지로 붙들고 있는 가지는 그리 굵지 않았으나, 그래서 오히려 모양새가 참으로 예뻤다. 위로 쭉 뻗은 가지에 꽃이 달린 잔가지들이 간격을 두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그건, 분명 매화나무의 꽃가지였다.

꽃가지를 보고서 그제서야 은은하게 피어오르고 있던 향을 알아차린다. 나무를 찾기 전에 향부터 먼저 알아차리게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짙은 매화향이 아니었던가. 저도 모르게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사에는 뜻밖의 선물을 가지고 온 이를 바라보았다. 생긋,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에는 봄의 기운이, 소녀에게 익숙한 그 색채가 감돌고 있었다.

“촬영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매화가 예쁘게 피어있는 나무들을 지나치게 되었거든. 왠지 좋은 기분이 되어 걷고 있는데, 보니까 가지가 하나 부러져서 아래로 늘어져 있더라구. 아직 꽃들도 예쁘게 달려있으니 아까운 마음에 가지고 왔어.”
“그랬었군요.”
“경우 좋은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무실에도 매화꽃을 닮은 아가씨들이 기다리고 있잖아. 좋아해주지 않을까, 생각했지. 봄이잖아?”
“아......”

뭐라고 말해야만 좋을지 순간 생각이 나지 않아서, 입술만을 달싹이게 된다.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놓쳐버리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추억이 작은 꽃봉우리에 피어나 있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개화하고 있는 듯 화사하게 보이는 꽃송이들을 바라보다가 상대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혹여나 봄에 대해 잊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염려했던 이는, 사실 누구보다도 새롭게 찾아온 봄을 기쁘게 맞이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고 아가씨는 생각했다.

“매화꽃, 늘 다소곳하고 차분한 사에에게 잘 어울려. 이렇게......됐다.”

꽃가지에서 커다란 꽃송이 하나를 골라내어 쥐고는, 그를 아가씨의 왼쪽 귀에 살포시 꽂아준다. 상대의 손길이 상냥하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는 감각에 사에는 뺨이 화끈 달아오름을 느꼈다. 수줍게 피어난 백매화는 분명 아가씨와 참으로 잘 어울렸다. 누구보다 봄을 기다리던 봄처녀에게 그보다 멋진 장식은 없었다.

“감사, 하여요. 그게, 저......”
“응?”
“......아니어요. 매화가, 참으로 아름다워서......”

들고 있는 꽃가지에게로 눈짓을 해보이고는 사에는 얼굴을 푹 숙이고 말았다. 아까 전까지 허전하게 비어있던 가슴에 따뜻한 봄의 기운이 가득 차올라서, 도저히 태연하게 있을 수가 없었다. 아가씨가 서 있는 세상 전체가 은은한 매화 향기로 젖어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매화꽃이 피어난 가지에서 봄이 찾아온 셈이었다.

“이걸 장식해두면 조금은 봄이 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겠지. 사무실에 잘 어울리려나.”
“네, 분명......”
“그럴까. 사에가 그렇다면 그렇겠지?”

기분 좋게 웃고는 상대는 살짝 몸을 돌렸다. 다른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니까 이제 들어가자. 그렇게 말을 하고서 들고 있는 꽃가지를 가볍게 흔들어보인다. 한층 짙어진 향기 속에 머물러 있다가, 사에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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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처음으로 아이마스 커뮤니티에 글을 쓰게 되네요. 데레마스 위주로 덕질하고 있는 후미카P입니다. 주로 백합 쪽 덕질을 하곤 하는데, P 드림 작품도 종종 파기도 합니다. 여성P, 남성P 둘 다 좋아해요! 이번에 데레스테에 사에항 SSR이 등장하여서 그 기념으로 짧게 글을 써보게 되었습니다. 데레마스 덕질하는 P분들과 즐겁게 교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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