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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즈 담당 프로듀서는 죽을 만큼 후회했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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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26, 2016 18:38에 작성됨.

원작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A-1 Pictures

안즈는 주먹을 쥐었다. 운동하자니 지칠 것 같아서 싫고, 가만히 있자니 지루하다. 근래 아이돌 레슨으로 체력을 키웠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론 움직이기 귀찮으니까. 안즈는 그런 인간이다.

잠이라도 잘까, 안즈는 눈을 감았다. 시각이 차단되자 다른 감각에 정신이 쏠린다. 운동장에서 함성을 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피부 위로 바람이 지나가는 감각……. 모두 안즈의 기분을 묘하게 고양했다.

몸이 두둥실 뜨는 감각. 그리고 안즈의 의식이 점점 심연으로 가라앉다가…….
“안즈 쨩! 같이 움직여요!”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또렷해졌다. 안즈는 눈을 번쩍 떴다. 아카네가 안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늘은 패스.”
“우리가 지금 보내는 오늘은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오지 않아요! 내일이 와도 내일은 내일이에요!”
“괜찮아. 인생은 의외로 길다고. 하루쯤은 낭비해도…….”
“하루쯤은 알차게 움직이는 게 좋아요!”
아카네는 안즈의 어깨를 잡고 억지로 일으켰다.

“오늘은 진짜 움직이고 싶지 않아서 그래.”
안즈는 상반신을 힘없이 앞으로 푹 숙였다. 안즈가 평소보다 더 축 늘어져 보였다.

“무슨 일 있었죠?”
“글쎄…….”
담당 프로듀서를 걸고 다른 프로덕션의 톱 아이돌과 메이저 무대에서 결투를 벌이기로 했는데 담당 프로듀서 본인이 탐탁지 않아 해.
……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내키지 않으니까. 사정을 설명하는 것도 귀찮고 아카네하곤 상관없는 일이니까. 털어놓으면 기분이 조금 풀어질지도 모르지만…….

“안즈 쨩. 답답하면 몸을 움직여볼래요?”
“보통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건 지쳐서 아무런 생각도 못 할 정도로 운동하는 거잖아.”
“아뇨, 그 정도로 할 생각은 없어요. 자아, 일어나요.”
아카네는 마치 환자를 부축하는 것처럼 안즈를 일으켜 세웠다. 안즈는 아카네의 팔을 뿌리쳤지만 마지못해 일어섰다. 일어서보니 아카네가 럭비공을 들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난 태클 맞으면 바로 날아갈 거야.”
“럭비 말고 다른 걸 할 거예요.”
둘은 테니스 코트 옆 공터로 향했다. 서로 거리를 벌리고 나서, 아카네가 안즈에게 럭비공을 던졌다. 정확히 받기 좋은 궤도로 날아왔기에 안즈는 공을 어렵지 않게 받았다.

“캐치볼을 할 거예요.”
“어린애도 아니고…….”
안즈는 불평하면서도 공을 던졌다. 이번엔 공이 불안정한 궤도로 높게 날아갔다. 아카네는 공이 떨어질 곳을 정확히 알아보고 몇 걸음만 옮겨서 공을 완벽하게 받았다.

“자, 그럼 이번에 또 갑니다!”
이번에도 완벽한 궤도. 안즈는 공을 캐치하고, 곧바로 아카네가 던진 자세를 따라 해 공을 던졌다. 공이 처음 던졌을 때보단 안정적인 궤도로 날아갔다.
“잘하네요!”
다시 아카네가 던지고 안즈가 받았다.

“저기 말이야. 캐치볼 할 거면 다른 아이들도 있을 텐데 왜 안즈한테 왔어?”
안즈가 던지고 아카네가 받았다.
“침울해 보여서요.”
아카네가 직구로 던졌다.
“그렇게 티가 났어?”
“많이 난 건 아니었어요.”
한마디 하면서 던지고 받고, 또 던지고 받고. 둘은 그걸 계속 반복했다.

“이렇게 체육 시간에 럭비공으로 캐치볼을 하게 될 줄은 몰랐어.”
“청춘드라마 같아서 좋지 않나요? 석양이 내리는 공원이었으면 더 좋겠지만요.”
“언제 적 드라마 이야기야……. 하지만 캐치볼이 왜 그런 장면에 나오는 건지는 알겠어.”
주고받고, 주고받고, 주고받고. 캐치볼의 기본.
주고받고, 주고받고, 주고받고. 대화의 기본.

직구든 변화구든 궤도가 너무 뜬 공이든 그걸 받고 상대방에게 돌려준다. 캐치볼과 대화는 통하는 부분이 있다.

“전 말이죠, 성격이 이렇잖아요? 쉽게 달아오르고 성격도 급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친구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있어요!”
아카네가 안즈에게 던졌다.

“아카네 쨩도 친구랑 싸울 때가 다 있나 보네.”
“성격이 이러니까요. 근데 기분 상한 친구한테 물어봐도 왜 기분이 상했는지 대답하지 않는 경우가 있잖아요. 아니면 대화를 피하거나……. 그럴 때 캐치볼을 하면 대개 기분이 풀리는 모양이더라고요! 캐치볼은 좋아요. 이렇게 친분도 쌓고 기분도 풀고!”
“그건……. 그런 것 같네. 인정할게.”
“어때요? 재밌죠?”
한 차례 더 주고받고, 다시 안즈 차례가 왔다.

“실은 아는 사람이랑 싸웠어.”
안즈가 던진 공이 낮게 날았다. 아카네가 앞으로 달려가서 잡아야 했을 정도로.
아카네가 말없이 안즈에게 공을 넘겼다. 안즈는 다시 공을 잡고,
“안즈가 하고 싶은 걸 그 사람이 반대해. 그 사람은 안즈를 항상 잘 지켜보는 사람이었어. 그리고 안즈가 바라는 걸 해주겠다고 말했던 사람이었어. 근데……. 이번엔 안즈 앞을 가로막았어. 그 사람이 왜 그런지는 알아. 이해도 돼. 하지만 이번엔…….”
“그분하고 싸움의 원인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해봤나요?”
“자꾸 평행선만 달려서……. 설득하려고 해도 안 되더라고.”
아카네에게 던졌다. 아카네는 공을 받고 잠깐 고민하더니,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이야기해봤어요?”
다시 공을 던졌다. 이번에도 쭉 오는 직구. 이번엔 안즈의 손바닥이 조금 아플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건 잘 모르겠어.”
“대화만으론 풀 수 없는 것도 이 세상엔 잔뜩 있어요! 하지만, 그래도 대화는 중요해요. 안즈 쨩은 그 사람이 안즈 쨩의 의견을 따르지 않아서 서운한 거지요? 그 사람이 안즈 쨩에게 있어 중요한 사람이라서 그렇게 느끼는 거죠? 아무래도 상관없는 사람의 의견이면 그렇게까지 신경 쓰진 않을 테니까요.”
다시 한 차례 주고받기.
안즈는 아카네에게서 받은 공을 양손으로 더듬었다.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저기, 이거 빌려도 될까?”
“마음에 드셨으면 가지셔도 돼요. 몇 개 더 있거든요.”
“쓰고 나서 꼭 돌려줄게.”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프로듀서와 이야기를 해보자.
안즈는 그렇게 결심했다.

6월 14일

프로듀서는 사무실에서 당당하게 비타를 조작했다. 근래 안즈 활동 때문에 밀렸던 디지몬 스토리 사이버 슬루스를 진행하는 중이다. 프로듀서의 책상 구석에는 미시로 상무가 직접 내린 오다이바 페스에 관한 자료가 놓여있지만 프로듀서가 책상에 올려놓은 뒤로 손을 댄 흔적이 없다.

프로듀서는 책상을 청소할 때도 자료만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래서 자료에만 먼지가 조금 앉았다.
사무실 문이 열린다. 프로듀서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비타 버튼을 두드렸다.

“대놓고 땡땡이야?”
“머리를 식히고 싶어서.”
들어온 인물은 안즈였다. 프로듀서는 비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안즈는 비타 화면을 들여다보곤 프로듀서가 어느 부분을 진행하는지 알아맞혔다.

“에테몬이 나오는 걸 보니 챕터 8쯤 왔네.”
“맞았어. 잘도 맞혔네.”
“이 에테몬은 디지몬 어드벤처의 에테몬이랑 성우가 같대.”
“응, 오랜만에 들었는데도 목소리가 여전해서 놀랐어.”
프로듀서가 비타를 조작하고, 안즈는 그걸 구경한다. 게임의 이벤트 구간이 끝났다. 조작 구간이 진행되자 프로듀서는 메뉴를 불러 게임을 저장하고 비타를 껐다.
“자, 그럼 오늘은…….”
프로듀서는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오늘 안즈의 스케줄은 레슨. 프로듀서는 사무처리.

“프로듀서.”
안즈는 가방에서 럭비공을 꺼냈다.
“땡땡이 조금만 더 치지 않을래?”
-

옥상. 안즈의 제안으로 프로듀서와 안즈는 캐치볼을 하기로 했다. 지상에서 하기엔 엄연히 업무시간이므로 눈에 띄니까 기각. 사람들 눈에 덜 띄면서 넓은 장소가 필요하다. 소거법으로 한둘씩 줄이다 보니 옥상만 남았다.

“캐치볼이라……. 굉장히 오랜만이네.”
“아는 애……. 친구한테 공을 빌렸어.”
“오오, 친구와 캐치볼. 좋네. 청춘 같아서. 그러고 보니 청춘드라마에서 이렇게 캐치볼을 주고받는 신이 많이 나왔던 것 같은데.”
“걔도 그 말 하더라.”
안즈는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와 킥킥거렸다.

“이런 걸 최근에 본 건……. 어디 보자……. 더블이네. 더블도 몇 년 전 작품이니까 꽤 됐나.”
“가면라이더 말이지? 더블은 나도 봤어. 그럼 안즈가 필립인가.”
“내가 쇼타로? 직접 움직이는 건 아이돌이니까 오히려 안즈가 쇼타로 아니야?”
공통 화제가 떠올랐다. 가면라이더 더블은 둘이서 한 명의 초인, 가면라이더 더블로 변신하는 히다리 쇼타로와 필립,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둘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관계가 돈독해진 둘도 없는 파트너인데, 그들도 캐치볼로 갈등을 푼 적이 있다.
지금의 안즈와 프로듀서 같은 상황에서.

둘은 적당히 거리를 벌렸다. 먼저 공을 잡은 건 안즈.

“프로듀서, 계속 생각해봤는데……. 페스에 나가고 싶어.”
안즈는 프로듀서에게 공을 던졌다. 공이 깨끗한 궤도를 그리며 프로듀서에게 날아갔다. 프로듀서는 그걸 양손으로, 정석적인 자세로 받았다.

“나도 계속 생각해봤어. 난 역시 반대야. 나 때문에 네가 그러는 게 싫어.”
프로듀서가 안즈에게 던진다. 조금 뜬 공이었지만 안즈가 점프하여 그 공을 받았다.
“이건 이제 안즈의 문제이기도 해. 이걸 과거의 문제로만 보는 건 프로듀서야.”
“그래, 넌 그때도 내가 널 통해 과거를 보고 있다고 그랬지. 맞아. 그 말대로야. 지금 일에 한해선 맞는 말이야. 난 또 실패할까 봐 무서워. 그래서 널 필사적으로 말리고 싶어.”
“안즈가 정말 하고 싶은 거라도?”
안즈가 공을 던졌다.

“그래.”
프로듀서는 공을 받자마자 안즈에게 돌려준다.
“안즈는 안즈야.”
“알고 있어. 그래서 더 말리는 거야. 네가 개성을 잃을지도 모르니까. 넌 유이하고 얽히고 나서 페이스를 흐트러트렸어. 넌 네 페이스대로 움직이면 돼.”
“그럴 때는…….”
안즈는 이번엔 공을 세게 던졌다.
“프로듀서가 안즈를 잡아주면 되잖아.”
안즈는 프로듀서를 똑바로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공이 시원한 소리를 내면서 프로듀서의 손바닥을 때렸다.

“난 너를 잡아줄 자신이 없어.”
“자신이 없어도 돼. 그저 옆에서…….”
“지지해주기만 하는 게 프로듀서가 하는 일이 아니야.”
“그럼 프로듀서가 뭘 해야 하는데?”
프로듀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왜 실패를 전제로 생각해?”
프로듀서는 이번에도 입을 다물었다.

“오오츠키 유이는, 이번 일을 운 좋게 넘겨도 계속 찾아올 거야. 언제까지 피할 수만은 없어. 조건을 달아서 이길 수밖에 없어. 그리고……. 안즈는……. 난…….”
안즈의 얼굴이 조금 울상이 되었다.
“프로듀서랑 이렇게……. 이런 기분을 속에 쌓아두고 싶지 않아.”
프로듀서는 안즈에게 공을 던졌다. 공이 안즈가 받기 좋게 안즈의 눈높이에 딱 맞게 날아왔다. 공을 던진 프로듀서의 얼굴도……. 조금 울상이 되었다.

“나도 마찬가지야. 널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아.”
“안즈는…….”
안즈는 공을 꾹 쥐었다. 안즈의 약한 악력에 단단한 럭비공은 찌그러지지 않는다. 하지만 안즈는 힘을 거두지 않았다. 감정을 담아 힘을 넣었다.

“안즈는 살아오면서 하고 싶은 걸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 안즈가 본가에 있었을 땐 단것조차 제대로 먹지 못했고, 친구들하고 제대로 놀지도 못했고, 게임도 제대로 즐기지 못했어. 안즈가 잠깐 즐겼던 휴대용 게임기는 구둣발에 짓밟혀서 박살 났어. 그런 주제에 안즈가 뭘 하고 싶은 건지 물어보더라. 안즈가 하고 싶은 걸 시켜주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 하고 싶었던 것조차 주지 않았던 사람들이. 안즈는 그런 생활에 싫증이 났어. 진저리가 났어.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지조차 몰라서 안즈는 결국 모든 의욕을 잃었어……. 의욕을 잃고 집에서 쫓겨났어. 정말로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게 됐어.”
안즈는 공을 던졌다.

“그랬는데 프로듀서가 안즈를 아이돌로 만들었어.”
“너와 함께하면 다시 프로듀서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공은 프로듀서를 거쳐 다시 안즈에게 돌아왔다.

“안즈는 지금도 아이돌을 하고 싶은 건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프로듀서……. 안즈가 전에 말했지? 공유하지 않은 추억만큼 공감할 수 없는 건 없다고.”
“사이버 슬루스에서 나온 대사였지? 기억해.”
“난 프로듀서와 그 아이들의 과거에 대해서……. 이해하고 아픔도 느끼지만, 공감할 순 없어. 난 그걸 직접 겪지 않았으니까. 과거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해도, 슬픈 이야기를 해도 안즈는 짐작할 순 있지만 똑같이 느낄 수 없어.”
안즈는 공을 던졌다. 공이 이번에도 깨끗한 궤도를 그리며 날았다.
프로듀서가 던질 차례가 왔다.

“당연한 이야기야. 미안해. 널 말려들게 했구나.”
“나 참, 힘든 일에 괜히 말려들어서 고생이야.”
안즈는 넉살 좋게 말꼬리를 올렸다. 프로듀서도 피식 웃었다. 마음속에 있던 게 조금은 해소된 기분이다. 프로듀서가 공을 던졌다. 안즈가 완벽하게 캐치. 안즈는 심호흡을 하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 그건 바로 프로듀서와 공감할 수 있는 추억을 쌓는 거야.”
공을 다시 던졌다.
안즈는 말을 이었다.

“안즈는 프로듀서가 아픈 걸 해결할 수 없어. 하지만 더 아프지 않았으면 해. 과거를 해결할 수 없으면, 안즈는 프로듀서랑 같이 지금 닥쳐온 일을 해결하고 싶어. 적어도 가슴에 답답한 감정을 남기면서 마주하고 싶지 않아.”
“힘들 거야. 유이는 지금 업계 톱급이야. 5명 유닛으로 덤벼도 질 가능성이 커.”
“프로듀서가 안즈를 도와줘! 안즈를 이기게 해줘! 프로듀서랑 같이 오오츠키 유이를 이기고 싶어!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건 이거야!”
프로듀서는 말없이 안즈에게 공을 넘겼다. 표정은 다소 복잡해 보였다, 슬퍼 보이기도 하고, 씁쓸해 보이기도 하고, 자신 없어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프로듀서! 안즈를 똑바로 봐줘!”
한편으로는…….

“그런 말을 하면, 말릴 수 없잖아.”
불이 붙은 것처럼 보인다.

“난 네가 이길 거란 보장은 할 수 없어.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 순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야. 그래도 괜찮아?”
“충분해.”
“그래, 알았어. 네가 의욕을 보이는데 초를 칠 수는 없지.”
“니트가 의욕을 보이는 건 보기 드문 귀한 현상이야. 프로듀서.”
“아아, 난 프로듀서 실격이구만.”
“업무 시간에 캐치볼을 하는 것부터가?”
“뭐래, 요 공범 녀석이. 엇차!”
안즈가 기습적으로 공을 날렸다. 프로듀서가 다시 안즈에게 패스. 프로듀서와 안즈는 그렇게 공을 주고받았다. 이번에는 순전히 캐치볼을 즐기기 위해서.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추억을 쌓기 위해서.

그날 레슨은 완전히 땡땡이. 나중에 프로듀서와 안즈는 트레이너에게 귀가 얼얼할 때까지 잔소리를 들었다.

6월 17일

15, 16일은 스케줄이 비었기에 안즈는 학교생활에 전념했다. 아카네에게 빌렸던 럭비공을 돌려주고 수업시간을 대강 넘기고, 쉬는 시간에 늘어지면서……. 평소처럼 학교생활을 보냈다.

안즈는 오다이바 페스를 앞뒀으므로 레슨에 전념하고 싶다고 프로듀서에게 의견을 피력했지만 프로듀서는 오히려 앞으로 바빠질 테니 2일 동안은 학교생활에 전념하라고 조언했다.

“불이 붙은 건 좋지만, 쉴 수 있을 때 충분히 쉬어둬. 니트답게.”
“그럼 학교는…….”
“학교는 가라.”
안즈는 2일 동안 프로듀서의 말을 지켰다.

그리고 오늘. 안즈가 출근하는 날.
안즈는 사무실 문고리를 쥐고 심호흡을 했다. 오늘부터 시작이다. 안즈가 여태 살아오면서 겪은 것 중에, 가장 큰 모험이 이제부터 시작된다. 이 문을 열면…….

안즈는 침을 꿀꺽 삼키고 문고리를 돌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안즈는 책상에 머리를 박고 축 늘어진 프로듀서를 보고 화들짝 놀라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프로듀서! 뭐야? 괜찮아?”
안즈는 프로듀서의 멱살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러자 프로듀서가 정신을 차렸는지 퀭한 눈을 거슴츠레하게 떴다.

“아……. 자고 있었어.”
“놀래라……. 갑자기 쓰러진 줄 알았어…….”
안즈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도 아직 걱정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니지만. 프로듀서의 몰골은 상당히 초췌해 보였는데 얼굴 피부는 창백하고 거칠어 보였고 머리카락도 푸석푸석해 보였으며, 침을 질질 흘리면서 자고 있던 것과는 달리 입술이 바짝 말라 있었다.

프로듀서는 책상에 올려 있던 식은 커피로 목을 축였다.
안즈는 프로듀서의 손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가 책상에 올려 있는 두툼한 서류 뭉치를 발견했다.

“아, 이거? 오다이바 페스에 관한 자료들이야. 그리고 이번에 기간 한정으로 결성할 유닛 자료. 볼래? 어차피 나중에 알려줄 내용이지만.”
안즈는 프로듀서의 권유에 따라 자료를 훑어봤다. 오다이바 페스에 관한 자료. 페스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는 이미 안즈도 조사를 했으므로 그 부분에선 새로운 사실을 알 순 없었다.

오다이바 페스는 3일 동안 진행되는 대형 페스티벌이다. 3일 동안 현장의 팬, 인터넷, 전화 앙케이트 등 투표를 통해 참가 아이돌들이 포인트를 얻어 포인트 순으로 순위가 정해지는 대회형 페스티벌.

안즈는 오다이바 페스의 시스템 자료를 넘겼다. 서류를 넘기고, 넘기고, 또 넘겨서 임시 유닛 자료에 도달했다. 제일 첫 장은 안즈의 프로필 서류. 사진과 프로필, 활동 이력, 안즈의 실력에 관해 프로듀서가 붙인 의견 등등이 적혀 있다. 두 번째 장으로 넘어갔다.

이번엔 미쿠의 프로필 서류.

“유이의 요청도 있으니 이번 유닛의 중심은 너지만……. 키 멤버는 미쿠야. 그 녀석은 유닛 경험도 많고 실력도 있고 인기도 있으니까. 무엇보다 이번 유닛에 꼭 필요해. 이미지상으로 말이지.”
안즈는 서류를 더 넘겼다. 안즈가 모르는 아이들 프로필 3장.
아니, 346 사내에서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이 중 한 명은 안즈가 전에 TV에서 본 적이 있다. 안즈는 끝까지 훑어보고 멤버 5명의 공통 이미지를 짚었다. 프로듀서가 안즈의 예상에 쐐기를 박았다.

“큐트한 이미지야.”
“그런 것 같네.”
“업계에서 아이돌을 크게 3가지 분류로 나누는 거……. 알아?”
“아니, 그건 모르는데.”
“큐트, 쿨, 패션. 어디에선 보컬, 비주얼, 댄스로 나누는 모양이지만 난 이쪽을 선호해.”
“후자는 대강 알겠는데 전자는 기준이 뭐야?”
“아이돌의 성격과 개성이야.”
안즈는 서류를 책상에 올려놓았다.

“안즈가 큐트라……. 하긴 소거법으로 치면 세 분류 중에서 이게 제일 맞겠네. 안즈는 쿨하지도 않고 딱히 열정을 불태우는 타입도 아니니까.”
요즘에 불이 붙은 건 예외야. 안즈는 헛기침과 함께 덧붙였다.
“난 네 본질적인 개성이 그거라고 봐.”
프로듀서의 말에 안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외모적인 면이지?”
“성격하고 같이 아울러서.”
“갭?”
“그런 것도 있고.”
안즈는 잠깐 생각하더니
“안즈안즈링~ 꺄삐삐삐삐삐 후타바 안즈! 17세예요! 당신을 만나러 토깽이 별에서 왔습니다! 꺄핫!”
윙크, 혀 내밀기, 피스 손동작, 한발 들기를 한꺼번에 해냈다.

“어때?”
“강도 좀 낮출까.”
“후타바 안즈! 17세예요!”
윙크와 손동작만 남겼다.
“음, 적당한 것 같다. 이 정도면 팬들이 좋아하겠지.”
“왠지 지치는걸.”
“그냥 너 편한 대로 해.”
프로듀서가 간이 의자를 끌어다 안즈를 앉혔다.

“고마워.”
안즈의 감사 인사 후에, 프로듀서가 안즈에게 캔 커피를 권했다.
“커피 마실래?”
“아니, 됐어.”
프로듀서는 캔을 따고 커피를 단번에 들이켰다. 그리고 자기가 마시려고 꺼냈던 캔 커피도 마저 따서 들이켰다.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니야?”
“졸려서 그래.”
프로듀서는 캔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쓰레기통에 커피 캔과 일회용 종이컵이 수북이 쌓였다. 그 사이로 간혹 스테미너 드링크와 에너지 드링크가 보인다.

“시간이 없어. 오다이바 페스까지 얼마 안 남았어. 시간이 너무 촉박해.”
프로듀서는 모니터를 켜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프로듀서의 손가락이 정신없이 움직이고 모니터 속 프로젝트 기획 파일의 내용이 같은 속도로 불어간다.
“미안해. 프로듀서. 안즈가 억지를 부려서…….”
안즈는 조금 쭈뼛거렸다. 다리도 꼬면서. 프로듀서의 손가락이 멈췄다.

“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야. 어찌 되었든 피할 순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프로듀서는 모니터를 보던 고개를 다시 안즈를 향해 돌렸다. 피곤해 보였지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솔직히 말해서 어느 정도 후회는 하고 있어.”
미소와 안 어울리는 가시 돋은 내용. 하지만 프로듀서의 어투는 부드럽다.

“아직 프로젝트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이니까 이 기회에 말해두는 게 낫겠지. 난 네 부탁을 들어준 걸 후회해. 당연하지. 이런 기획은 제정신인 프로듀서라면 보통 사양할 거야. 그래도…….”
안즈는 프로듀서의 말을 경청했다. 프로듀서의 입에서 어떤 말이 이어질까. 안즈는 불안한 마음에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프로듀서의 다음 말이 듣고 싶어 귀를 쫑긋 세웠다.

“네가 널 봐달라고 했으니까. 그건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킬 거야. 난 네 프로듀서니까.”
프로듀서는 고개를 다시 모니터 쪽으로 돌렸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들린다. 안즈는 꼼지락거리던 손을 세게 깍지 꼈다.
“프, 프로듀서! 피곤하지? 어깨 주물러 줄까?”
키보드 소리가 뚝 끊겼다.

“너……. 안즈 맞아?”
“실례야…….”
“농담이야. 내 어깨를 주무를 시간에 네 몸 관리에 시간을 쏟는 게 좋을 거야. 무대에서 직접 움직이는 건 내가 아니고 너잖아. 아이돌은 몸이 생명이야. 좋아, 말이 나왔으니 차를 끓여주마. 좋은 재스민차가 들어왔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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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는 4월 2일 저녁 5시~8시 사이에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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